Share

26. 썩은 동아줄

Author: 지호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03 07:08:35

새 기획안을 정리하던 제이는, 잠시 손을 멈췄다.

모니터에 띄워진 PG 파트너사 후보 목록을 천천히 훑어봤다.

이미 완성된 안이었다. 이대로 제출해도 문제없을 만큼 정리된 상태였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Latest chapter

  • 스물다섯으로 돌아온 날, 그 재벌이 나를 찍었다   48. 균열의 전조

    이영민의 회사 서버실은 밤낮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개발팀은 이틀째 퇴근하지 못한 채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화면 속 숫자들이 쉴 새 없이 깜빡였다.팀장은 마른침을 삼키며 축축해진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옆자리 직원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잘게 떨리고 있었다."이 정도 부하 테스트는 전례가 없는데…… 정말 괜찮은 걸까요.""원래대로라면 최소 일주일은 더 쪼개서 검증했어야 해. 하지만 대표님이 당장 내일 전면 가동하라고 난리시니 방법이 없잖아."두 사람은 말끝을 흐렸다. 누구도 먼저 이영민에게 다시 보고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그 시각, 김 대리는 제 책상에 앉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랍 속에 깊숙이 넣어둔 휴대전화가 진동할 때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영민이 빚을 갚아주며 쳐놓은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이의 손을 잡았지만, 판이 커질수록 온몸이 타들어 가는 듯한 공포가 그를 짓눌렀다."김 대리님, 요즘 안색이 안 좋아 보여요.""괜찮아요. 그냥 잠을 좀 못 자서요."거짓말이었다. 잠을 못 잔 건 맞지만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는 몇 번이고 휴대폰을 열었다 닫았다 했다. 제이에게 연락을 해야 하나, 아니면 이대로 모른 척해야 하나.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했다.퇴근길, 인적 드문 골목길에 들어서고서야 김 대리는 참지 못하고 제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손가락이 떨려 번호를 몇 번이나 잘못 누를 뻔했다."저기, 이영민 대표가 벌써 실제 물류 트래픽까지 연동해서 시험 구동을 하고 있어요. 생각보다 진행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제이의 목소리는 서늘하리만치 침착했다."알고 있어요, 김 대리님. 걱정하지 마세요.""혹시…… 일이 잘못돼서 저까지 기밀 유출죄로 엮여 철창신세를 지는 건 아니겠죠? 저 정말 무섭습니다…….""약속드렸잖아요. 대리님의 신변과 법적 문제는 저와 본부장님이 끝까지 책임집니다. 지금은 그저 이영민의 눈 밖에 나지 않도록 평소처럼만 행동해 주세요."전화를 끊은 뒤에도 김 대리는 한참

  • 스물다섯으로 돌아온 날, 그 재벌이 나를 찍었다   47. 조급함이 부른 실수

    기자회견장은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로 가득 찼다. 무대 전면을 가득 채운 카메라 플래시가 눈이 시릴 정도로 쉴 새 없이 터졌다. 단상 위에 선 이영민은 맞춤 슈트의 깃을 가볍게 만지며 어느 때보다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당사는 차세대 배송 시스템을 자체 개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기존 물류망의 한계를 뛰어넘어, 물류 트래픽을 실시간으로 분산시켜 배송 지연을 획기적으로 줄인 독보적인 기술입니다."​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특허의 독점성부터 향후 기대 매출까지, 이영민은 준비된 답변을 막힘없이 흘려보냈다. 목구멍 깊은 곳에서부터 오랜만에 느끼는 짜릿한 우월감이 차올랐다. 지방 물류센터 실패로 매일 밤 목을 조여오던 빚독촉과 이사회 임원들의 서슬 퍼런 눈총이 이 한 번의 발표로 완전히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기자회견이 끝난 뒤, 비서실장이 그를 조용히 불러 세웠다.

  • 스물다섯으로 돌아온 날, 그 재벌이 나를 찍었다   46. 미끼를 물다

    그날 밤 이후, 김 대리는 제이와 은밀히 손을 잡았다.겉으로는 여전히 이영민 쪽에 포섭된 배신자 행세를 하되, 실제로는 제이가 짜둔 판 위에서 움직이는 역할이었다.김 대리는 떨리는 손으로 외장하드를 내밀었다. 사무실 안은 조용했다.창밖으로 들어오는 늦은 오후 햇빛만이 두 사람 사이를 비췄다.그 작은 장치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이 방 안에서 정확히 아는 사람은 단 두 명뿐이었다.이영민은 김 대리의 손에서 외장하드를 낚아채듯 받아 쥐었다. 표정에서 초조함이 사라지고 있었다."이게 정말 핵심 소스코드입니까.""전부입니다. 설계도까지 다 있습니다."김 대리의 목소리는 낮았다.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영민은 그 떨림을 아주 자연스럽게 오해하고 있었다.제 손으로 사채 채무를 조용히 청산해주며 사냥개의 목줄을 쥐었으니, 감히 저를 속이지 못할 것이라 믿는 오만함이 그의 눈을 가리고 있었다.김 대리는 들키지 않기 위해 억지로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며, 빚더미에 목이 졸려 동료를 배신한 비겁자의 연기를 필사적으로 이어갔다.노트북 화면 위로 파란 빛이 이영민의 안경 렌즈에 번졌다. 화면 안에는 제이가 심어둔 '더미 코드'가 정교한 시뮬레이션 화면을 띄우며 완벽하게 돌아가고 있었다.대규모 트래픽이 몰리는 순간 시스템 전체를 먹통으로 만들 시한폭탄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이영민의 입꼬리가 비틀리듯 올라갔다.'드디어. 드디어 이걸 손에 넣었다.'"수고했습니다, 김 대리. 약속했던 잔금은 오늘 중으로 처리해주지.""감사……합니다, 대표님."김 대리는 조용히 사무실을 나섰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복도를 걸으며 그는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마음 한구석이 여전히 무거웠다. 제이가 마지막으로 건넨 말이 귓가에 남아 있었다.'어차피 그쪽에서 먼저 배신하려 했던 겁니다. 우리는 그저 조금 먼저 움직인 것뿐이에요.'그 말이 위로가 되어야 했는데, 오히려 더 무겁게 느껴졌다. 그는 엘리베이터 앞에 서

  • 스물다섯으로 돌아온 날, 그 재벌이 나를 찍었다   45. 진짜 반격의 시작

    한별특송 인수 시도가 무산된 지 며칠 뒤, 김 대리를 둘러싼 이영민의 두 번째 접근이 사내에 조용히 소문으로 돌기 시작했다.어둑해진 탕비실, 김 대리가 식은땀이 밴 얼굴로 제이 앞에 섰다. 손에 쥔 커피잔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팀장님, 그게...""이영민 대표 쪽에서 연봉 세 배 제안했다면서요?"제이가 먼저 담담하게 말을 꺼냈다. 화도, 추궁도 아니었다."축하드려요. 김 대리님 가치가 그만큼 인정받았다는 뜻이니까요."김 대리는 예상 밖의 반응에 오히려 더 당황한 얼굴이었다."저, 저는 아직 대답 안 했습니다. 진짜로요.""알아요. 그래서 지금 이렇게 얘기하는 거고요."

  • 스물다섯으로 돌아온 날, 그 재벌이 나를 찍었다   44. 선견지명

    물류 대란 이후, 한별특송의 가치가 업계에 널리 알려졌다. 작은 신생 업체였던 그곳이, 이제는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이름이 오르내리는 곳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소문은, 이영민의 귀에도 정확히 들어갔다. 그가 움직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제이의 휴대폰이 울렸다. 이영민이었다.현제이 씨, 혼자서 판을 잘 짜는 것 같지만.대기업 자본이 밀고 들어오면, 그 독점 계약서 한 장은 종이 쪼가리에 불과해요.제이는 그 문자를 읽고 짧게 헛웃음을 지었다.정준호 품에서 나와서, 저랑 제대로 손잡아 볼 생각 없습니까?이번엔 회사를 통째로 삼키겠다는 거네.문자 하나에서도, 이영민 특유의 여유와 집요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제이는 답장을 보내지 않고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지금은 말보다 대비가 먼저였다.

  • 스물다섯으로 돌아온 날, 그 재벌이 나를 찍었다   43. 나는 당신의 트로피가 아니야

    회장과의 독대 이후, 회사 분위기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매출도, 실적도 꾸준히 올랐고, 얼마 전에는 경제지에서 "주목할 만한 젊은 경영인"으로 제이의 짧은 인터뷰까지 실렸다.수정을 비롯한 팀원들도 이제는 확실히 다른 눈으로 제이를 봤다. 낙하산이라는 뒷말은 완전히 사라졌고, 오히려 존경 섞인 시선이 그 자리를 채웠다.이제 다 해결됐다고, 준호는 생각했다. 그래서 평범한 연인처럼 밥도 먹고, 퇴근도 같이하고 싶었다.하지만 제이는 여전했다."수고하셨습니다, 본부장님. 내일 뵙겠습니다."깍듯한 인사와 함께, 제이는 가방을 챙겨 먼저 자리를 떴다. 회의 시간에도, 보고 자리에서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공적인 태도만 유지했다. 그 뒷모습을 보며, 준호는 깊은 갈증 같은 걸 느꼈다.분명 키스도 나눴고, 할아버지 앞에서도 뜻을 같이했는데.왜 이 사람은, 아직도 나를 이 선 안으로 들여보내 주지 않는 거지.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