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손 놓지 마포장마차를 나선 뒤, 휘웅은 끝내 삼킨 말을 다시 꺼내지 않았다. 대신 지호가 뒤돌아 걸음을 옮기려던 순간, 그가 성큼 옆으로 따라붙었다."같이 가."너무 당연하다는 투였다. 지호가 뭐라 답할 새도 없이, 정신을 차려 보니 두 사람은 어느새 버스 정류장 앞에 나란히 서 있었다.시간은 이미 밤 아홉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지호는 초조한 얼굴로 휴대폰 화면만 들여다봤다. 조금 전 헤어지려던 순간의 여운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지금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통금. 밤 열 시. 단 한 번도 어겨 본 적 없는 약속이었다. 늦는 순간, 아버지는 정말 문을 열어 주지 않을 사람이었다."아직도 열 시야?"옆에서 휘웅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지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네. 저 진짜 큰일 나요.""아버님 무섭네.""엄청요."휘웅은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태평한 얼굴이 괜히 얄미웠다. 지호는 괜히 휘웅을 흘겨봤다."오빠는 무서운 사람 없어요?"휘웅은 잠시 생각하는 척하더니 어깨를 으쓱했다."있지.""누군데요?""우리 할머니."지호는 순간 웃음을 터뜨렸다."진짜예요?""응. 우리 집 실세거든."장난스러운 표정 하나 없이 말하는 모습에 지호는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그때였다. 버스 한 대가 정류장 앞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하지만 문이 열리는 순간, 지호의 얼굴이 굳었다."와…."버스 안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손잡이마다 사람들이 매달려 있었고, 버스 안은 발 디딜 틈조차 없어 보였다.지호는 본능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저걸 타요?"휘웅은 태연하게 버스를 올려다봤다."타야지.""숨도 못 쉴 것 같은데.""다음 버스 기다리면 열 시 넘겠는데?"그 말에 지호는 입을 다물었다. 그건 더 큰일이었다.결국 사람들 틈에 몸을 욱여넣듯 올라탄 순간, 지호는 곧바로 후회했다.뒤에서 누군가가 밀었고, 앞에서는 또 다른 사람이 떠밀려 왔다."죄송합니다."어깨와 팔이 쉴 새 없이 부딪쳤다. 겨우 손잡이
Última atualização: 2026-07-22
Chapter: 6.집에 가는 길“지호야, 이쪽으로 와!”유진이 손짓하며 부르는 소리에 지호는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다.시작은 그저 조별 과제 뒤풀이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유진이 다른 과 동기들과 미리 짜 둔 과팅 자리였다. 좁은 룸 안에는 처음 보는 얼굴들이 가득했고, 다들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자기소개를 주고받고 있었다.“유진아, 나 이런 얘기 못 들었는데.”지호가 작게 속삭이자, 유진이 눈을 찡긋했다.“그냥 밥만 먹고 가면 돼. 재밌을 거야.”재밌을 리가.지호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젓가락만 만지작거렸다. 맞은편에 앉은 남학생이 뭔가 열심히 말을 걸어왔지만, 도무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숨이 막혔다. 웃어야 할 타이밍에 웃고, 대답해야 할 타이밍에 대답했지만, 정작 머릿속은 텅 빈 것 같았다.'그냥, 집에 가고 싶다.'한 시간쯤 지났을 무렵, 지호는 결국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나 화장실 좀.”유진에게 눈짓으로 양해를 구한 뒤, 지호는 룸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화장실 대신 곧장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더 버틸 자신이 없었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안으로 들어선 지호는 닫힘 버튼을 다급하게 눌렀다. 문이 절반쯤 닫히려던 순간이었다.“어.”누군가 손을 뻗어 문을 다시 열었다.지호는 고개를 들었다가 그대로 굳어 버렸다.강휘웅이었다.“오빠가 여긴 왜…….”지호는 말을 잇지 못했다. 휘웅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동학을 만나러 왔다가 우연히 마주친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문이 닫히고, 좁은 공간에 둘만 남았다.휘웅은 대답 대신 지호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그러다 짧게 물었다.“왜 혼자 나와.”“그냥… 답답해서요.”솔직한 대답이었다. 휘웅은 잠시 말이 없다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다음부터 과팅 같은 거 나가지 마.”“…네?”지호가 놀란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하지만 휘웅은 이미 시선을 정면으로 돌린 뒤였다. 표정에는 아무 변화도 없었다. 장난인지,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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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조금씩 가까워지는 사이지호는 밤새 휴대폰 화면을 몇 번이나 확인했다.어젯밤 휘웅이 보낸 짧은 문자 한 통이 자꾸 눈에 밟혔다.[못 들어갈까 봐 내심 기대했는데. 아쉽다. 잘 자, 지호야.]분명 장난스럽게 보낼 수도 있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어디까지가 장난이고, 어디부터가 진심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지호는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몇 번이나 뒤척였다. 휴대폰을 끄면 될 텐데, 자꾸만 화면을 켰다. 문자를 다시 읽고, 또 읽었다. 결국 새벽이 다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다음 날 점심 무렵, 유진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카페에서 자료 정리 다시 하자. 동학 오빠도 같이 와서 도와준대.]그리고 잠시 후, 한 줄이 더 올라왔다.[그리고… 휘웅 오빠도 온다네?]지호는 화면을 내려다본 채 눈을 천천히 깜빡였다.'휘웅 오빠가 왜…?'조별 과제 팀원도 아니었다. 굳이 시간을 내서 올 이유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신경이 쓰였다.약속 장소인 카페 문을 열자, 이미 유진과 동학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유진 앞에는 자료가 넓게 펼쳐져 있었고, 동학은 그 옆에서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다.그리고 맞은편. 강휘웅이 먼저 와 있었다.오늘은 어제와 또 다른 분위기였다. 베이지색 바지에 흰 옥스퍼드 셔츠. 깔끔하게 걷어 올린 소매 아래로 드러난 손목과 단정한 가죽 시계. 꾸민 것 같지 않은데도 이상하게 눈길이 갔다. 오히려 그 단정함 때문에 큰 키와 넓은 어깨가 더 도드라져 보였다.지호는 자기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그 순간, 휘웅이 먼저 그녀를 발견했다.“왔어?”그는 자연스럽게 손을 들어 보였다. 고작 한마디였는데, 지호의 얼굴이 괜히 뜨거워졌다.“안녕하세요.”“잠은 잘 잤어?”“…네.”휘웅은 지호를 빤히 바라보더니 피식 웃었다.“거짓말 같은데.”순간 지호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젯밤 문자 때문에 뒤척였다는 걸 들킨 기분이었다.“아닌데요.”“눈 밑에 다 써 있어.”휘웅이 턱짓으로 지호의 얼굴을 가리켰다. 지호는 괜히 머리카락을 귀 뒤로
Última atualização: 2026-07-22
Chapter: 4.열 시의 신데렐라경주에서의 꿈같은 시간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창밖으로는 어느새 짙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도로 위를 스쳐 지나가는 가로등 불빛만이 창문을 따라 길게 흘러갔다.유진은 동학의 어깨에 기대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휘웅은 창가에 턱을 괸 채 멍하니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다.반면 지호는 한시도 편할 수가 없었다. 휴대폰 화면을 켰다 껐다 하는 횟수만 벌써 열 번이 넘었다.오후 아홉 시 십육 분. 아홉 시 십칠 분. 아홉 시 십팔 분.시간이 흐를수록 심장은 점점 더 조여 왔다.지호에게 밤 열 시는 단순한 통금 시간이 아니었다. 절대 어겨서는 안 되는, 집안의 규칙이었다. 딱 한 번, 중학교 때 친구 생일 파티에 늦었다가 현관문 앞에서 한 시간을 벌벌 떨며 서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날 이후 지호는 단 한 번도 열 시를 넘긴 적이 없었다.지금 바로 버스를 갈아타도 간당간당한 시간이었다. 조금이라도 늦는 순간, 아버지는 정말 문을 열어 주지 않을 것이다.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지호는 거의 뛰다시피 걸었다. 그 뒤를 휘웅이 느긋한 걸음으로 따라왔다.“왜 이렇게 서둘러, 보호자님.”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호는 걸음을 늦추지 못한 채 급하게 대답했다.“저 열 시까지 무조건 들어가야 해요.”“그래?”“아빠가 통금에 엄청 엄격하시거든요.”휘웅이 피식 웃었다.“스무 살인데?”“그러니까요.”지호는 울상을 지은 채 휴대폰 시간을 다시 확인했다. 아홉 시 오십 분. 남은 시간은 이제 겨우 십 분 남짓이었다.“조금만 더 있다 가.”휘웅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안 돼요. 진짜 큰일 난단 말이에요.”“보호자님 생각보다 되게 모범생이네.”“모범생 아니거든요.”“아닌데 통금이 열 시야?”지호는 대꾸할 힘도 없었다.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늦으면 끝이다.골목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 휴대폰 화면에는 아홉 시 오십삼 분이 떠 있었다. 지호는 거의 울먹일 지경이었다.“열 시 넘으면 아빠가 문 안 열어 주세
Última atualização: 2026-07-21
Chapter: 3.나는 너의 히어로터미널에서의 아찔했던 소동이 지나고, 마침내 네 사람은 경주행 버스에 올랐다.유진과 동학은 약속이라도 한 듯 앞자리에 나란히 앉았고, 지호와 휘웅은 자연스럽게 뒷자리에 앉게 되었다.창가 쪽에 앉은 지호는 애써 태연한 척 창밖만 바라봤지만, 시선은 자꾸만 옆자리로 향했다. 연청바지에 보라색 니트. 놀이공원에서 봤을 때와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다리를 길게 뻗고 앉아 있는 모습마저 이상하게 그림 같았다.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어깨가 스쳤다. 그럴 때마다 지호는 자꾸 자세를 고쳐 앉았다. 창밖으로 눈을 돌려도, 차창에 희미하게 비친 옆모습이 자꾸만 신경 쓰였다.심장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조별 과제에 필요한 자료 조사를 대강 마쳤을 무렵,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늦봄의 바람이 불어오자 가로수 잎사귀가 바스락거리며 흔들렸고, 네 사람은 터미널 근처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유진과 동학은 어느새 앞서 걸으며 시시한 장난을 주고받고 있었다.“오빠, 나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방금 밥 먹었잖아.”“그래도 먹고 싶단 말이야.”투덜거리던 동학은 결국 길 건너 편의점으로 뛰어갔고, 유진은 그런 뒷모습을 보며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지호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사실 조금 신기했다. 누군가에게 투정을 부리고, 또 그 사람이 당연하다는 듯 그걸 들어주는 관계. 지호에게는 아직 낯선 풍경이었다.“부러워?”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지호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휘웅이 바로 옆까지 다가와 있었다.“아, 아니거든요.”급하게 고개를 저었지만, 휘웅은 피식 웃으며 그녀를 내려다봤다.“표정이 딱 그런데.”“무슨 표정인데요?”잠시 생각하던 휘웅이 느릿하게 말했다.“나도 저런 거 해 보고 싶다, 하는 표정?”순간 얼굴이 뜨거워졌다. 지호는 괜히 발끝만 내려다봤다.다행히 휘웅은 더 놀리지 않았다. 대신 아무 말 없이 자판기 앞으로 걸어가더니 캔커피 하나와 복숭아 음료 하나를 뽑아 들고 돌아왔다.“이거.”지호는 얼떨결에 음료를 받아
Última atualização: 2026-07-21
Chapter: 2.어린이를 찾습니다놀이공원에서의 첫 만남이 지나고 며칠 뒤였다.윤지호와 배유진은 조별 과제 때문에 경주로 내려가게 됐다. 원래는 여자 둘이서 조용히 다녀올 예정이었지만, 장거리 이동이 심심했던 유진이 슬쩍 남자친구 최동학을 끌어들였다. 그리고 지호에게 미안했는지, 동학의 친구인 강휘웅까지 자연스럽게 합류하게 됐다.그 소식을 들은 날부터 지호는 괜히 휴대폰만 들여다봤다. 딱 한 번 만났을 뿐인데 이상했다. 바이킹에서 자신을 보며 웃던 얼굴, 회전목마 앞에서 건넸던 말, 그리고 사진 속에서 혼자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시선이 자꾸만 떠올랐다.그저 친구의 친구일 뿐인데. 아직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어색한 사이인데. 그런데도 경주에 간다는 말 한마디에 며칠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다.토요일 아침, 지호는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눈을 떴다. 옷장을 열었다 닫기를 몇 번이나 반복한 끝에, 연한 색 니트와 청바지를 꺼내 입었다. 거울 앞에 선 그녀는 머리카락 끝을 만지작거리며 한참을 망설였다.'너무 꾸민 것 같나?'아니다 싶어 귀걸이를 뺐다가, 다시 끼기를 반복했다. 결국 집을 나서면서도 마음은 조금 불안했다. 괜히 기대하는 것 같아서. 괜히 혼자 들떠 있는 것 같아서.하지만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순간, 그런 생각들은 모두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대합실 의자 끝에 앉아 있는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강휘웅이었다.핏이 깔끔하게 떨어지는 연청바지에 선명한 보라색 니트. 누구나 한 번쯤 쳐다보게 될 만큼 눈에 띄는 색이었지만, 이상하게도 휘웅은 그 옷을 너무 자연스럽게 소화하고 있었다. 큰 키와 넓은 어깨, 길게 뻗은 다리. 무심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내려다보고 있는데도 주변 공기가 미묘하게 달라 보였다.지호는 들고 있던 가방 끈을 괜히 더 세게 움켜쥐었다.'와…….'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잘생겼다. 놀이공원에서 처음 마주쳤을 때보다 훨씬 더.그 순간, 휘웅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왔네.”낮고 느긋한 목소리였다. 고작 두 글자인데, 지호는
Última atualização: 2026-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