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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7화

Author: 코코넛 서고
“홍복, 네가 모후의 초상화를 서가군 군영에 두었을 때, 예정임이 그것을 두고 우리와 다투려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느냐?”

홍복는 순간 얼어붙더니 눈으로도 뚜렷이 보일 만큼 당황해했다.

“태… 태자, 그게 무슨 말씀이옵니까?”

예정훈의 눈빛은 삽시에 어둡게 가라앉았다.

“네가 모후 곁을 오래 모셨던 공로를 생각하여 스스로 입을 열 기회를 주는 것이다.”

홍복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지고 두 다리가 풀리며 땅에 무릎을 꿇었다.

“태자 전하, 노비가 한 모든 일은 다 전하를 위한 것이옵니다. 선황후께서 생전에 가장 애타게 걱정하신 이는 바로 태자셨사옵니다. 만약 서회윤 장군께서 태자 전하를 뵌다면 틀림없이 전하를 지지했을 것이옵니다.”

“그만!”

예정훈의 얼굴에는 짜증이 스쳤다.

“내 모후와 서회윤 장군은 아무런 관련도 없다. 나 또한 그의 지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니 다시는 멋대로 나서지 말거라. 또 한 번 이런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결코 옛정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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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을 거슬러   제1233화

    서인경이 방금 내뱉은 말은, 덕비를 떠보는 시험에 가까웠다.그리고 지금의 반응을 보는 순간, 그녀의 마음속에는 어느 정도의 짐작이 자리 잡았다.덕비는 지나치게 쉽게 분노했고, 또 너무도 쉽게 남에게 휘둘렸다. 좋게 말하면 단순해서 속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성정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속셈도 계략도 없는 사람이었다.이런 사람이 후궁에서 살아남은 것만 해도 기적에 가까웠다.그런데 과연 이런 인물이, 지난 세월 동안 금족을 이곳에 숨겨 두고 큰일을 도모해 온 족장일 수 있을까?야랑국의 늙은 황제는 노련하고 교활하기로 이름난 인물이다.그런 사람이 수년 동안 곁에 두고도 속셈을 품은 자를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있을까?서인경과 연기준은 짧게 시선을 주고받았다.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이 노무림 안에는, 분명 더 위험한 인물이 숨어 있다.덕비는 그저 앞에 내세워진 희생양일 뿐. 그녀의 딸 역시, 뒤에 숨어 있는 자에게는 하나의 말에 지나지 않는다.오늘 벌어지는 이 기사회생의 의식은 겉으로는 덕비의 집착이지만, 실상은 그 뒤에 있는 자가 서인경과 연기준을 끌어내기 위해 꾸민 판일 가능성이 더 컸다.하지만 덕비 본인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어찌 됐든, 예정연은 반드시 금족의 다음 계승자가 되어야 한다! 오늘 나는 반드시 아이를 되살릴 것이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어!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을 놓아줬다면, 너희가 제물이 되어 내 딸이 다시 태어나는 발판이 되어줘야겠다!”덕비는 두 손을 높이 들어 올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진법을 열어라! 이곳에 있는 자들 전부, 이 자리에서 묻히게 하라!”그 말이 끝나자마자, 하늘과 땅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붉게 타오르던 촛불들이 돌연 눈부신 금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금빛은 서서히 떠올라 하늘 어딘가에 모이더니 이내 찬란하게 빛나는 거대한 화구로 응집되었다.서인경은 고개를 돌려 연기준을 바라보았다.“저 화구보다 더 높은 곳으로 데려가주세요.”연기준은

  • 시간을 거슬러   제1232화

    서인경은 의술을 익힌 사람이었다. 그저 한눈에 보아도, 그것이 무엇인지 분간하지 못할 리 없었다.눈앞에 쌓여 있는 것은, 모두 사람의 유골이었다.유골은 산처럼 쌓여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늘 정리된 흔적이 역력했다. 매일 누군가가 치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그 옆에는 커다란 운반용 수레 하나가 놓여 있었다.강물 속에서는 악어들이 여전히 뒤집히듯 몸을 뒤틀며 요동치고 있었다. 낯선 인간의 기척을 느낀 탓인지, 오히려 더 흥분한 듯 보였다.서인경의 머릿속에 한 가지 끔찍한 가능성이 스쳤고, 그녀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이 악어들… 설마 사람 고기로 길러진 겁니까?”사람의 살을 먹고 자란 악어는, 보통의 악어보다 백 배는 더 흉포해진다.한 번 인간의 살맛을 본 뒤로는 식성이 극도로 커져, 성인 열 명의 고기로도 하루 배를 채우기 어려울 지경이 된다.이곳의 악어들은 몸집부터가 남달랐다. 한눈에 보아도 오랜 세월 길러진 것들이었다.셀 수도 없이 많은 무고한 생명들이 이곳에서 스러져 갔을 것을 떠올리자, 서인경의 속에서 분노가 들끓었다. 당장이라도 이곳을 쓸어버리고 싶었다.“이건 모두 변방의 백성들이다.”연기준의 낮게 가라앉은 음성이 뒤따랐다.그 많은 사람을 죽이고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이유. 변방의 기근과 참상, 끝없이 이어지는 비명과 굶주림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가림막이었기 때문이다.하루에 몇 사람이 사라지는지조차, 그곳에서는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서인경은 가슴 깊숙이 분노를 눌러 담은 채, 약왕곡에서 붉은 꽃 한 송이를 꺼냈다.눈부시게 붉은 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름다움이라기보다, 차라리 눈을 찌를 듯한 기괴한 색채였다.약왕곡 전체를 통틀어 가장 독한 독. 혈봉후(血封喉).입에 넣은 지 단 한 순간, 피가 목을 막고 전신이 썩어들어 간다. 결국 남는 것은 한 줌의 핏물뿐. 마치 이 세상에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서인경은 이 독을 처음 쓰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하필이면 악어에게 쓰게 될 줄

  • 시간을 거슬러   제1231화

    붉은 눈의 남궁열은 손에 쥔 명반을 내려다보며, 좋지 못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남궁찬은 이미 서인경의 손에 죽었고, 제물도 진작 서인경이 빼돌렸습니다. 단 한 명도 붙잡지 못했어요! 덕비, 당신은 그들을 너무 얕봤습니다.”제 동생의 죽음을 입에 올리면서도, 남궁열의 목소리는 놀라울 만큼 담담했다. 마치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을 말하는 것 같았다.그 태도는 남궁찬이 그를 대하던 방식과는 완전히 달랐다.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 버려져 밖에서 떠돌던 어리석은 동생은, 죽는 순간까지도 남궁 집안이 자신을 진짜 도련님으로 여긴다고 믿고 있었다.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그 ‘훌륭한’ 아버지는, 애초에 또 하나의 아들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남궁열이 ‘선심을 써서’ 이 낡은 숲, 노무림을 내어주고, 덕비를 위해 목숨을 바치게 하지 않았다면, 그는 어디서 어떻게 죽었을지조차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그럼에도 그 하찮은 은혜 하나에 매달려, 남궁찬은 죽는 그 순간까지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상좌에 앉은 덕비의 얼굴은 음울하게 굳어 있었고, 이전보다 눈에 띄게 수척해져 있었다.예정연은 그녀의 유일한 딸이자, 금족의 다음 계승자로 길러온 아이였다. 그 딸의 죽음은 그녀를 깊이 무너뜨렸다.그리고 그 충격은 서인경과 연기준을 향한 증오를 극한으로 몰아붙였다.“그렇다면 오히려 잘됐군. 들어온 이상, 한 놈도 살아 돌아가지 못하게 하거라. 이곳에 전부 묻어버릴 것이다. 사람을 불러 진을 치고 맞이하거라!”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한 명의 호위가 비틀거리며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얼굴에는 공포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족장님, 큰일입니다! 대규모 병력이 골짜기로 밀고 들어왔습니다. 적어도 만 명은 됩니다!”만 명이라니?덕비의 미간이 깊이 찌푸려졌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그럴 리가 없다. 만 명이나 되는 병력이 절벽을 넘어오면서 어찌 아무런 기척도 없을 수가 있단 말이냐? 게다가 연기준이 맹경운

  • 시간을 거슬러   제1230화

    피가 한 방울씩 그의 입가를 타고 흘러내렸다.그는 간신히 고개를 들어 올려 서인경을 바라봤다. 그 눈에는 온통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담겨 있었다.“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빙능술은 절대 되돌아 공격하지 않아야 하는데…”서인경이 신식을 거두자 결계도 동시에 사라졌다.주변의 사람들은 이미 전부 붙잡혀 있었고 오직 좌장군만이 얼굴이 창백해진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그는 누구에게도 굴복하고 싶지 않았다.일어서려 했으나 두 다리는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마치 쇠못 하나가 그의 다리를 땅에 단단히 박아버린 듯,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서인경은 그의 무릎을 내려다보며 턱짓으로 가리켰다.좌장군은 시선을 따라 내려갔다. 자신의 양 무릎에 두 개의 빙능이 깊숙이 박혀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피가 흘러내려 바닥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하지만 얼음의 냉기로 인해 그는 통증조차 느끼지 못했다.서인경이 이렇게까지 강해졌다는 사실은 그가 단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말도 안 돼… 넌 진국에서 자랐잖아. 어떻게 일불락의 술법을 쓸 수 있지!”서인경은 마치 우스꽝스러운 광대를 보듯 그를 내려다봤다.“나는 수장 가문의 후손이다. 일불락의 모든 기술은 한 번 보면 익힐 수 있어.”거기에 더해 그녀의 몸에는 순수한 일불락의 혈통이 흐르고 있었다.그 모든 능력이 그녀에게는 숨 쉬듯 자연스러웠다.서인경은 연풍에게서 검을 받아 그의 목에 겨눴다.“유언 남길 기회는 줄게. 내가 대신 전해 주지.”좌장군의 눈동자에는 놀람과 분노, 그리고 억울함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결코 이런 결말을 상상한 적이 없었다.출정이 곧 죽음이라니. 아직 남궁 가의 원수도 갚지 못했고 형의 복수도 끝내지 못했는데 이렇게 여인의 손에 죽는다고?그는 이를 악물었다.“유언 따윈 없다. 나는… 죽지 않아.”서인경은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핏줄기 하나가 길게 터져 나오며 바닥에 쏟아졌다.얼굴에서 가슴까지 길게 그어진 상처가 살을 갈라놓았다.그는 한마디도 남기지 못한

  • 시간을 거슬러   제1229화

    서인경은 좌장군이라 불린 그 사내를 찬찬히 살폈다. 얼굴은 놀라울 만큼 젊었다.흰 옷에 검은 머리, 티끌 하나 묻지 않은 듯 단정했다. 피부는 희고 부드러워, 손만 대도 물기가 맺힐 듯했다.그는 손에 접부채 하나를 들고 있었는데 마치 그림 속에서 막 걸어 나온 듯한 풍류 있는 공자 같았다.다른 이들처럼 햇볕에 그을린 흔적은 전혀 없었다.이토록 곱게 자란 귀공자 같은 사내가 겉으로는 실력을 가늠하기 어려운데도 주변 사람들을 완전히 복종시키고 있었다.이런 유형은 둘 중 하나다. 뒤에 든든한 배경이 있거나 아니면 쉽게 드러내지 않는 진짜 실력을 쥐고 있거나.서인경의 눈빛에 경계가 스며들었다.좌장군은 두 사람을 노려보며 눈에서 불이 튀는 듯했다.“서인경, 설산에 가야 만나게 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보게 될 줄은 몰랐군.”서인경이 미간을 찌푸렸다.“난 널 모른다. 이름부터 밝히거라.”좌장군은 느긋하게 부채질을 했다.그러자 서인경의 시선도 자연스레 부채 위로 향하게 되었다. 그 위에 먹으로 또박또박 적힌 글자 하나. 남궁.그녀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지하흑시 남성 성주, 남궁오와 무슨 관계인 것이냐?”좌장군이 냉소를 흘렸다.“남궁오는 내 친부다. 남궁열은 이복형님이지. 네가 내 형님을 다치게 했으니… 그 빚을 어떻게 갚을 생각이냐?”서인경과 연기준은 짧게 눈을 마주쳤다.남궁 가에 이런 인물이 있다는 건 두 사람 모두 예상하지 못했다.심지어 막수한조차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다.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이 인물의 존재는 막수한조차 몰랐다는 것을.그렇지 않았다면, 단 한마디라도 귀띔했을 터였다.좌장군은 두 사람의 반응이 마음에 드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세상 사람들은 말하지. 어족은 일불락 수장 가문에 가장 충성스러운 노예라고. 헌데 나는 그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 남궁 가의 실력은 봉 가에 뒤지지 않으니 어족을 이끌고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다. 헌데 왜 남의 숨결에 기대 살아야 하지?”서인경은

  • 시간을 거슬러   제1228화

    아직 나뭇잎이 떨어지지 않은 계절이라 가지마다 잎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었다.그 덕분에 두 사람의 모습은 완전히 가려졌다.암위들 역시 재빨리 각자의 은신처를 찾아 몸을 숨겼다.연풍은 서인경과 연기준이 있는 나무 옆 가지 위에 자리 잡았다.조금 늦게 올라온 그는, 여자의 신발 한 켤레를 연기준에게 건넸다.“방금 안에서 평이 짐을 찾았습니다. 새로 사서 아직 신지 않은 신발입니다. 마마께서 잠시라도 신으십시오.”연기준은 그것을 받아들고 서인경에게 나무를 단단히 붙잡으라 했다. 그러고는 몸을 낮춰 한 단계 아래 가지로 내려섰다.마침 그의 손이 닿는 높이에 서인경의 발이 있었다.서인경과 평이는 발 크기가 비슷해 신발은 꼭 맞았다.연기준이 조심스럽게 신발을 신겨주는 모습을 보며 서인경은 문득 말없이 웃음이 새어 나왔다.“그 손은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하는 데 쓰이는 건데, 여인 신발 신겨주는 일까지 이렇게 능숙하네요. 참으로 본받을 만한 남자입니다.”연기준이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빛으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았다.“알아듣게 말하거라.”서인경이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입을 열었다.“…앞으로는 매일 저한테 신겨줬으면 해서요. 물론, 저도 당신한테 신겨줄게요.”예상치 못한 고백이었다. 달콤한 말 한마디 없었지만 그 말은 조용히 연기준의 마음 깊은 곳으로 스며들어 뿌리를 내렸다. 겨울날 햇살처럼 따뜻하게 그를 끌어당기는 힘을 지닌 말이었다.훗날, 수없이 죽음의 문턱에 서게 되는 순간마다 그는 이 한마디를 떠올리며 끝까지 버텨냈다.산속에서 내려온 자들은 곧 마을로 들이닥쳤다. 서인경과 연기준은 나뭇잎 사이에 몸을 숨긴 채, 아래에서 사람들이 집집마다 무너진 잔해를 뒤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결과는 하나같이 같았다.모두 허탕이었다.“이게 어떻게 된 일 이냐?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이냐?”“어제 낮에만 해도, 촌장 그 늙은이가 마을 입구에서 돌아다니는 걸 봤고, 낯선 두 사람이 밭에서 일하는 것도 봤습니다. 헌데 하

  • 시간을 거슬러   제200화

    막 부관은 홀로 나타난 서인경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물었다.“아가씨, 금전초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서인경은 고개를 저으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그토록 귀한 것을 어찌 몸에 지니겠습니까? 지금 안전한 곳에 따로 두었습니다.”그러자 막 부관은 다시 물었다.“그렇다면, 그 금전초를 얼마에 팔고 싶습니까?”서인경은 머뭇거리더니 손가락 하나를 내밀었다.“어머니의 병이 위중하여 의원께서 치료비로 은자 백 냥이 필요하다 하셨습니다. 그저 백 냥만 주시면 내놓겠습니다.”세상 물정 모르는 듯한 태도에 막 부관은 절로 고개를 저었다.

  • 시간을 거슬러   제187화

    서인경은 가볍게 기침을 하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황제는 매번 새로 즉위할 때마다 흑시와 협상을 벌인다지요? 이번엔 누가 파견됐습니까?”연기준은 턱을 괴고 작은 침상에 몸을 기대어 있었다. 그의 목과 손목에는 그녀가 씌워 준 보송보송한 털 장식이 매달려 있어 꼭 한량 귀공자 같은 모양새였다.그의 눈길은 탁자 위에 놓인 닭고기를 스쳐지나 다시 그녀에게로 옮겨졌다.“그냥 이렇게 빈손으로 묻는단 말이냐?”서인경은 그의 뻔뻔한 태도를 단박에 읽고 즉시 닭을 뜯기 시작했다. 그녀는 다리 하나를 잡아 뜯어 그의 앞에 내밀며 웃었다

  • 시간을 거슬러   제176화

    연기준의 마음은 이미 들썩이고 있었다. 어제 하루 종일 먼 길을 달려온 그녀를 배려해 욕망을 억누른 자신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반면, 서인경은 분통이 터졌다.분노의 화살은 두 갈래였다. 느닷없이 농을 던지며 다가오는 연기준이 원망스러웠고 그의 두세 마디 말에 속수무책으로 휘둘려 솔직하게 반응해오는 자신이 미웠다.평이와 온조 앞에서는 뭐든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었는데 정작 연기준 앞에서는 매번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이보다 더 수치스러운 일이 또 어디 있을까?그녀는 어떻게 해도 연기준을 이길 수 없었다.서인경은 그를 무시

  • 시간을 거슬러   제188화

    저건 제 아들을 새 황제의 옥좌를 지탱하는 도구로 삼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만민을 저버리지 않겠다, 황실을 저버리지 않겠다...?그런데 만약 그의 생모가 정말 태황태후에게 목숨을 잃었다면 황실은 이미 오래전에 그를 저버린 것이 아닌가. 여러 생각이 복잡하게 얽히자 서인경은 더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렸다.“손이나 씻고 올게요.”그 순간, 연기준은 막 고기를 집으려던 손을 멈추고 물었다.“그 닭... 뜯기 전에 손은 씻었느나?”서인경은 잠시 기억을 더듬다가 머뭇거렸다.“씻… 씻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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