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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화령
“네, 대장.”

“고진우, 안 좋은 소식이 있어. 어젯밤 서부 산악 지역에 산불이 발생했는데 세 팀을 투입해도 불길이 여전히 통제 불능이야. 우리 차례가 곧 올 거야.”

“문제없습니다. 언제든 준비되어 있습니다.”

순간 신경을 바짝 곤두세운 채 아픈 마음을 뒤로 하고 택시를 불러 팀에 합류해 명령을 기다릴 생각이었다.

산불이 통제 불능이라니, 정말 끔찍했다.

한번 번지면 얼마나 많은 무고한 가정이 피해를 볼지 몰랐다.

재난 상황과 비교하면 나와 반아영의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금 당장 올 필요는 없어. 이번 상황은... 너도 잘 알겠지만 하루 동안 가족들과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을 줄게. 특히 네 아내 말이야. 결혼했잖아.”

발걸음이 멈칫하며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대원들은 사실 내가 결혼한 걸 알고 있었지만 반아영이 단 한 번도 소방서를 찾아온 적은 없었다. 업무가 바쁘다는 이유로 가족 모임도 몇 번이나 거절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대장과 대원들은 그녀의 존재를 거의 잊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대장.”

전화를 끊고 나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5년이나 같이 살다 보니 나는 반아영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아내는 오로지 종교에만 마음을 두었고 내 일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작전을 나갈 때도 알면서도 그저 형식적인 관심만 보일 뿐이었다.

수년간 나는 반아영의 무심함에 익숙해져 점점 그녀를 귀찮게 굴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사뭇 달랐다...

반아영의 차가운 얼굴을 마주할지라도 돌아서서 그녀에게로 향했다.

5분 거리는 금방이었다. 다시 그녀를 마주했을 때 내가 상상했던 냉담함은 없었다.

차를 몰고 외출하려던 반아영은 우아하고 화려하게 차려입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반아영이 이렇게 정성스럽게 차려입은 건 또 처음이었다.

“할 말이 있어.”

반아영의 차 쪽으로 걸어갔지만 그녀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무심한 어투로 말했다.

“돌아와서 말해. 갑자기 일이 생겼어.”

“어디 가는 거야?”

나는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길을 비켜주지 않았다.

산불이 심각한데 그녀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다.

반아영에게 생길 급한 일이라곤 회사 일이나 절에 가서 기도하는 것밖에 없을 터였다.

그런데 조수석에 임우혁이 앉아 있을 줄이야.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반아영 대신 그가 먼저 입을 열어 해명했다.

“고진우 씨, 죄송해요. 점심에 회사 모임이 있는데 아영이가 저랑 같이 가준다고 했어요.”

말을 마치고 그는 다시 반아영을 바라보았다.

“아영아, 그냥 내가 혼자 갈게.”

“괜찮아, 저 사람은 별일 아닐 거야. 네 일이 더 중요해.”

반아영은 망설임 없이 거절한 뒤 차에 시동을 걸고 바람을 일으키며 사라졌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목구멍에 거대한 돌덩이가 걸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음이 칼에 베인 듯 아팠다.

5년이나 함께하면서 반아영은 내가 초대한 모임을 셀 수 없이 거절해 왔다. 그런데 임우혁 회사 모임에는 망설임 없이 화려한 차림으로 참석하다니.

게다가 점심 모임인데 아침 일찍부터 출발했다.

‘반아영, 수행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배신하지 않는다며? 근데 임우혁이 더 네 남편 같고 네가 신경 쓰는 사람 같네. 설마 그 사람 모임에 참석하는 것도 아이 때문이라고 할 거야?’

그저 우습기만 했다. 온몸이 뼛속까지 차갑게 식어갔다.

반아영이 떠났으니 나도 이곳에 더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한때 따뜻함과 희망으로 가득했던 집이 지금은 오히려 거부감이 들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떠날 때마다 마치 나와 반아영 사이의 아름다운 추억이 산산이 부서지는 듯했다.

그토록 아름다웠고 절망스러웠다.

저녁이 되자 반아영에게서 문자가 왔다.

[오늘 저녁 시간 있어. 같이 밥 먹자.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있다며.]

간단한 초대였지만 나를 불쌍히 여겨 자비를 베푸는 것처럼 느껴졌다.

망설이다가 결국 그녀를 만나 이혼 이야기를 제대로 하기로 결심했다.

만약 정말 돌아올 수 없다면 아무런 미련 없이 떠나고 싶었다. 반아영과 계속 얽히고 싶지 않았다.

반아영과 처음 데이트했던 그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혼자 오라고, 아무도 데려오지 말라고 했다.

인연이 여기서 시작되었으니 여기서 끝나야 마땅했다.

익숙한 자리, 창가 모퉁이의 풍경까지도 변함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반아영은 답장이 없었다.

저녁 9시가 넘도록 기다려 레스토랑이 문을 닫을 때까지 반아영은 오지 않았다.

역시, 아내는 무정하고 매몰찼다.

괜찮다. 이미 그녀의 무관심에 익숙해져 있었으니까.

그런데 내가 떠나려던 바로 그때, 반아영이 왔다. 임우혁과 동호까지 데리고.

“저 사람들은 왜 온 거야?”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별을 말하는 중요한 상황에서 외부인이 끼어드는 게 싫었다.

반아영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지금까지 야근했는데 우혁이와 동호도 집에서 밥을 안 먹었대. 그래서 같이 왔는데 왜?”

말하는 사이, 임우혁과 동호는 이미 내 맞은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내 옆에도 자리가 있었지만 반아영은 한 번 훑어보기만 하고는 그들 옆에 앉았다.

“우혁이가 사과의 의미로 오늘 자기가 사겠대. 고진우, 좀 보고 배워. 속 좁게 굴지 말고.”

반아영의 무심한 말투가 또다시 내 심장을 갈기갈기 찢으며 아프게 했지만 마지막 만찬이라 그녀와 다투고 싶지 않았다.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하려 했는데 임우혁과 동호가 있으니 준비한 말들이 모두 목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반아영, 만약 오늘 밤 내가 마지막 인사를 건네려던 걸 알게 된다면 넌 곁에 다른 사람을 데려온 걸 후회할까?’

하지만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우리에게 남은 기회도 없으니까.

아내의 마음이 너무도 차갑게 얼어붙어 나는 차마 건드리지 못하겠다.

“고진우 씨, 이건 제가 살 테니 마음껏 드세요. 아영이가 참 착해요. 고진우 씨가 우리 동호 받아주셔서 저도 무척 고마워하고 있어요.”

임우혁이 고맙다는 의미로 나를 향해 잔을 들어 올렸다.

내가 가만히 있자 그는 어색한 듯 그대로 굳어버렸다.

“저 사람은 무시하고 우리끼리 마시자. 속이 너무 좁아서 너처럼 너그럽게 행동할 수가 없어. 네가 괜한 호의를 베푼 거야.”

반아영이 잔을 들어 임우혁과 부딪히며 그를 달래는 동시에 나를 깎아내렸다.

부드러운 말투로 동호까지 불러들였다.

“건배!”

세 사람이 잔을 들어 건배하며 환하게 웃었다. 집 꾸미는 것, 동호가 좋아하는 것들을 얘기하다 보니 맞은편에 앉은 내가 합석한 낯선 사람이 되어버렸다.

“반아영, 나와 만나자고 한 게 너야 저 사람이야?”

문득 정신이 들었다.

“당연히 우혁이가 먼저 당신한테 사과하고 싶다고 했지. 내가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

눈살을 찌푸리며 내뱉는 반아영의 말이 내게 남은 마지막 환상마저 산산조각 냈다.

얼마나 우스운가.

반아영과 나의 마지막 만남을 임우혁이 주선한 것이라니.

가슴이 고통에 무뎌질 무렵 오히려 해방감이 밀려왔다.

“오늘 팀에서 산불 진화 작업에 지원하러 가라는 통보를 받았어. 위험한 작전이라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어. 적어도 그전에 이혼하고 두 사람 축복해 주려고.”

말을 마치고 나니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맞은편에 앉아 있던 세 사람 중 단 한 명도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들의 웃음소리는 멈추지 않았고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순간 내가 광대처럼 느껴졌다.

조금 전까지 가벼워졌던 마음이 다시 찢어질 듯 아팠다.

“반아영, 내 말 들었어?”

“응, 들었어. 조심해.”

반아영은 동호에게 음식을 떠주는 데만 신경 쓰며 무심하게 한 마디로 대충 넘겼다.

피식 웃음이 났다. 대체 이런 결혼 생활을 어떻게 5년이나 버텼는지 모르겠다.

상대가 들을 생각도 없어 보이니 나도 단념한 채 일어나 자리를 떠나려 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머리 위의 샹들리에가 갑자기 흔들리더니 쾅 내 머리 위로 떨어졌다!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유리로 만든 샹들리에가 산산조각 나고 나는 피투성이가 된 채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식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반아영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진우!”

반아영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모든 걸 뒤로하고 내 곁으로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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