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바람났다

아내가 바람났다

By:  화령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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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 심취한 아내에게 욕망은 금기였다. 부부관계는 매달 단 하루, 16일에만 허용되었다. 아내는 모든 것, 심지어 내 표정까지 엄격히 통제했다. 내가 흥분해 이성을 잃으면 아내는 주저 없이 냉담하게 자리를 떠났다. 결혼한 지 5년, 불만은 있었지만 아내를 사랑했기에 계속 참아왔다. 아내가 겉으로는 무정해도 마음속으로는 나를 사랑한다고 믿었다. 화재가 난 호텔의 구조 작전에 투입되었을 때, 내 판단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발견 당시 아내는 흐트러진 옷차림으로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있었고 그들 사이에는 어린아이까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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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제1화

내 아내는 종교에 심취해 있었다.

부부관계는 단 하루, 매월 16일에만 허용됐고 시간과 자세, 리듬은 물론 심지어 내 표정까지 통제받아야 했다.

내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순간, 아내는 아무 말도 없이 관계를 끊고 자리를 떠났다.

결혼 5년 차.

불만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나는 끝까지 참아왔다. 사랑했으니까.

겉으로는 차갑게 굴어도 마음속으로는 나를 사랑하고 있을 거라고 믿었으니까.

그런데 그 믿음이 완전히 부서진 날이 있었다.

화재가 발생한 호텔 구조 작업에 투입된 날. 잿빛 연기 속에서 발견한 건, 내 아내였다.

흐트러진 옷차림으로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있는 모습으로.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는 어린아이까지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반아영이, 그렇게 부드러운 표정을 짓는 건 처음 봤으니까.

그녀 역시 두려움에 떨면서도 남자의 품에 꼭 붙어 아이를 달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주위 온도가 끔찍할 정도로 뜨거운 와중에 나만 온몸이 오싹할 정도의 추위를 느끼며 누군가 심장을 칼로 난도질하듯 아팠다.

“고진우, 왜 멍하니 있어! 저 가족은 나한테 맡기고 너는 빨리 다음 방으로 가!”

대장이 나를 향해 소리치며 망설임 없이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반아영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내 이름이 고진우, 그녀의 합법적인 남편이다.

방독면을 착용하고 있어도 그녀가 나를 알아봤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그들이 한 가족이면 대체 나는 뭘까.

화재 상황이 급박해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서둘러 다음 방에 갇힌 사람들을 구하러 갔다.

불은 무려 세 시간이나 타올랐고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복잡한 마음으로 화재 현장을 벗어난 순간, 반아영과 그 남자, 아이까지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반아영은 나에게 설명조차 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자조적인 웃음이 나왔다.

문득 5년간 유지했던 결혼이 철저히 우스갯거리로 전락한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왔을 때 항상 새벽까지 야근하던 반아영이 집에 있었다.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설명하려 하는 줄 알았다.

왜 호텔에 있었는지, 왜 다른 남자와 가정을 꾸렸는지.

제대로 설명하면 용서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오랜 시간 쌓인 감정 앞에서 가슴을 찢는 듯한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반아영은 컴퓨터를 켜고 화상 회의를 시작했다.

한 시간 넘게 단 한 번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회의가 끝난 뒤에야 그녀는 차가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한 장의 서류를 내게 던졌다.

“입양 확인서?”

흰 글씨에 적힌 검은 글자가 내 신경을 아프게 자극했다.

“응, 오늘 호텔에서 본 그 아이 말이야. 이제부터 우리가 입양하기로 했어.”

“왜? 그 아이랑 무슨 사이인데? 그 남자는 또 뭐고?”

“그 사람 이름은 임우혁, 동호 아빠야. 우린 단지 일로 만난 동료이고 그 이상은 당신이 몰라도 되니까 묻지 마.”

‘이것도 설명이라고 하는 건가?’

실망감이 극에 달하니 조롱 섞인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건 일방적인 통보에 가까웠다.

내게 거절할 권리조차 주지 않겠다는 말투였으니까.

“단지 동료인데 왜 호텔에 갔어? 왜 내가 널 발견했을 때 옷차림이 흐트러져 있었어? 반아영, 말해봐. 그 아이랑 네가 연관이 있어?”

내가 미친 듯이 쏘아붙이며 캐물어도 반아영은 가볍게 눈살만 찌푸렸다.

“괜히 의심하지 마. 수행자에겐 배신도 금기야. 나는 우리 부부 관계를 배신할 생각 없어.”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나는 더 비아냥대는 듯 웃었다.

“가장 큰 금기가 욕망이라고 나와는 한 달에 한 번 겨우 자면서 왜 그 남자의 품에는 그렇게 쉽게 안겨 있는데?”

1800일이 넘는 동안 나는 반아영을 의심 한번 한 적도 없이 그녀의 신앙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왔다.

그런데 지금 그 종교 수행이 단지 그녀의 변명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반아영의 미간이 더 깊게 찌푸려지며 말투가 차가워졌다.

“진실은 알아서 밝혀지는 법이지. 마음대로 생각해. 내가 다른 남자와 불륜을 저질렀다고 생각한다면 이참에 매달 16일에도 내 방에 오지 마. 어차피 아이는 이미 생겼으니까. 대를 잇는 것만 아니었으면 당신과 그렇게 재미없는 짓도 하지 않았어.”

반아영의 말은 칼날처럼 내 심장을 도려내 한동안 숨조차 쉴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매달 한 번씩 하던 나와의 관계가 그렇게 고통스러웠어?’

고고한 그녀는 순결함을 저버리면서까지 결코 나 같은 천한 인간을 남다르게 대하지 않았다.

남다르게 대하는 상대가 있어도 영원히 나는 아니었다.

“그런 걸로 알게. 일찍 쉬어.”

반아영이 노트북을 챙겨 떠나려 하자 나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참으며 그녀를 불렀다.

“동호를 입양하는 건 받아들일 수 있어. 하지만 다시는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습 보이지 마. 적어도 남편인 나를 조금은 존중해 줘!”

반아영의 발걸음이 멈췄다.

“아이가 어려서 친아빠 곁을 떠날 수 없는 건 당연해. 더러운 마음을 품고 있는 너 스스로가 널 존중하지 않는 거지.”

반아영은 그렇게 떠났다.

그날 밤, 나는 고통에 잠들 수 없었다. 뒤척이다 환청까지 들렸다. 반아영이 방에서 임우혁과 즐겁게 웃고 떠드는 소리였다.

다음 날 아침, 동호는 이미 집에 와 있었다.

어린 소년의 짐이 거실을 가득 메웠고 반아영은 환한 얼굴로 아이를 위해 정리해 주었다.

그 모습을 보며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아내가 웃을 줄도 알다니.

나와 결혼한 날 새집으로 이사할 때의 무표정하던 얼굴과는 달랐다. 종교 수행자는 가볍게 행동하면 안 된다고 줄곧 얼굴을 찌푸리고만 있었다.

이제야 그저 나한테 베풀 가치가 없다고 여겼음을 깨달았다.

정리를 마친 반아영은 동호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 목욕을 시켰다.

어찌 된 일인지 방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콸콸 흐르던 물소리도 멈췄다.

나는 조금 걱정스러웠다.

반아영은 어머니 역할을 해본 적도, 아이를 돌본 적도 없어서 아직 어린 동호가 목욕 중에 다치거나 부딪히면 큰일이었다.

결혼한 지 5년, 나는 본능적으로 반아영을 걱정하고 있었다.

비록 어젯밤에 크게 싸웠지만 아이에게 화풀이할 이유는 없었다.

동호가 집에 왔으니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는 노릇이라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런데 눈에 들어온 것은 문에 걸려 있는 한 남자의 외투였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반아영의 방 욕실 문이 반쯤 열려 있어 안의 모습이 쉽게 보였다.

동호는 양치하다가 피가 났는지 겁에 질려 울고 있었고, 반아영은 막 목욕을 마친 채 몸에 수건 하나만 두르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이를 달래고 있었다.

반아영 뒤에는 임우혁이 그녀의 머리를 말려 주며 웃는 얼굴로 동호가 겁이 많다고 말했다.

얼마나 따뜻한 한 가족인가.

이곳은 분명 내 집이고 반아영은 내 아내인데 이 상황에서 정작 내가 생판 모르는 남 같았다.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고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눈앞의 광경은 벼락을 맞은 것 같은 충격으로 전해졌다. 발걸음이 흔들리며 비틀거리다 벽에 부딪혔다.

그 소리에 임우혁이 놀라 뒤돌아선 나를 보더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고진우 씨, 오해하지 마세요. 어제 동호를 데려다주러 왔다가 아이가 아직 어려서 칭얼거리는 탓에 하룻밤 묵었을 뿐이에요. 그냥 아이를 돌봐준 거고 다른 일은 없었어요...”

임우혁의 말에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거센 충격이 밀려오다가 뒤늦게 깨달았다.

어젯밤 그가 왔다. 의식이 흐릿한 상태에서 들었던 소리가 환청이 아니었다.

임우혁은 반아영의 방에서 밤새 머물렀다.

이건 남편인 나조차 누려본 적 없는 특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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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내 아내는 종교에 심취해 있었다. 부부관계는 단 하루, 매월 16일에만 허용됐고 시간과 자세, 리듬은 물론 심지어 내 표정까지 통제받아야 했다.내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순간, 아내는 아무 말도 없이 관계를 끊고 자리를 떠났다. 결혼 5년 차. 불만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나는 끝까지 참아왔다. 사랑했으니까.겉으로는 차갑게 굴어도 마음속으로는 나를 사랑하고 있을 거라고 믿었으니까.그런데 그 믿음이 완전히 부서진 날이 있었다.화재가 발생한 호텔 구조 작업에 투입된 날. 잿빛 연기 속에서 발견한 건, 내 아내였다. 흐트러진 옷차림으로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있는 모습으로.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는 어린아이까지 있었다.나는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반아영이, 그렇게 부드러운 표정을 짓는 건 처음 봤으니까.그녀 역시 두려움에 떨면서도 남자의 품에 꼭 붙어 아이를 달래고 있었다.그 순간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어찌할 바를 몰랐다.주위 온도가 끔찍할 정도로 뜨거운 와중에 나만 온몸이 오싹할 정도의 추위를 느끼며 누군가 심장을 칼로 난도질하듯 아팠다.“고진우, 왜 멍하니 있어! 저 가족은 나한테 맡기고 너는 빨리 다음 방으로 가!”대장이 나를 향해 소리치며 망설임 없이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반아영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내 이름이 고진우, 그녀의 합법적인 남편이다.방독면을 착용하고 있어도 그녀가 나를 알아봤다는 걸 알 수 있었다.눈이 마주친 순간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그들이 한 가족이면 대체 나는 뭘까. 화재 상황이 급박해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서둘러 다음 방에 갇힌 사람들을 구하러 갔다.불은 무려 세 시간이나 타올랐고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복잡한 마음으로 화재 현장을 벗어난 순간, 반아영과 그 남자, 아이까지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반아영은 나에게 설명조차 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자조적인 웃음이 나왔다.문득 5년간 유지했던 결혼이 철저히 우스갯거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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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연나정의 두려워하는 눈빛을 보니 오늘은 죽지 못할 것 같아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런데 이 여자는 여전히 굴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말했다.“그래도 난 죽을 거야. 네가 떠나면 여기서 뛰어내릴 거야.”이에 나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망설임 없이 말했다.“뛰어내리는 건 괜찮아. 그건 내 책임이 아니니까. 하지만 층고가 너무 낮아. 만약 뛰어내려도 죽지 않고 대신 온몸이 불구가 되면 어쩌려고? 내 생각엔 먼저 내려가서 비닐봉지 하나 산 다음 바로 옥상으로 가서 그걸 머리에 씌워. 잘 씌우고 뛰어내리면 분명히 죽을 거야!”“이 자식!”연나정은 내 말에 화가 치밀어 눈을 부릅뜨며 몸을 떨었지만 그래도 참지 못하고 물었다.“왜 머리에 비닐봉지를 씌워야 해?”“청소하는 분들한테 폐 끼치지 말라고. 땅에 떨어지면 박살이 날 텐데 그분들이 네 부서진 뇌까지 치워야 하잖아.”“고진우, 넌 인간도 아니야!”연나정은 그 장면을 상상하자마자 겁에 질려 눈을 질끈 감더니 나를 향해 욕을 퍼부었다.그 반응에 나도 그녀가 사실 죽는 걸 두려워한다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져 완전히 마음을 내려놓았다.“자, 내 자격증 돌려줘. 난 이만 갈게. 너는 정리하고 투신 준비나 해.”나는 연나정에게 손을 내밀었다.하지만 그녀는 거부하며 고개를 가로젓더니 분노에 차서 말했다.“안 줄 거야. 네가 어떻게 죽으라고 하면 내가 그렇게 죽어야 해? 아까 내 몸 다 봤잖아. 그냥 갈 생각하지 마.”“난 너랑 시간 낭비할 여유 없어. 빨리 죽어, 난 사람 구하러 가야 해.”말을 마치자마자 나는 연나정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틈을 타서 자격증을 낚아채고는 망설임 없이 돌아서서 성큼성큼 문밖으로 나갔다.비록 그녀를 구해주고 싶었지만 이렇듯 제멋대로인 아가씨에 대해 호감은 들지 않았다.“거기 서. 고진우, 내가 너 절대 가만 안 둬!”뒤쪽 방에서 연나정의 분노에 찬 외침이 들려왔지만 나는 못 들은 척 짐을 챙겨 그대로 떠났다.내가 떠난 뒤 연나정이 손바닥을 펼치자 그 안에는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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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한 번 왔다고요?”“네, 대표님.”“카드 줘요. 내가 올라가서 확인해 볼 테니까.”반아영은 말도 없이 방 카드를 집어 들고 곧장 방으로 향했다.띠릭.문이 열렸다.반아영은 꼭 확인해 보고 싶었다. 고진우가 이번엔 또 무슨 장난을 치고 있는지.방에 들어선 반아영은 안을 둘러보았지만 세면용품과 침구류는 전혀 손대지 않은 상태였다.누군가 머문 흔적은 전혀 없었다.그건 고진우가 그날 잠시 머물다 떠났다는 증거였다.‘그럼 굳이 여길 찾아온 이유는 뭘까? 짐을 가지러 온 걸까?’반아영은 방 안에 고진우의 짐이 없다는 걸 눈치챘고 대신 책상 위에서 그녀의 업무용 노트북을 발견했다.“이게 여기 있었구나. 편지도 있네?”반아영이 가까이 다가가 노트북 위에 얌전히 놓인 편지를 집어 들었다.편지봉투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이별 편지]이 순간, 반아영은 고진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고진우, 며칠 동안 연락도 없고 휴대폰은 꺼져 있더니 이별 편지를 남기고 사라졌어? 이번엔 이런 장난을 치는 거야? 재미없게.”반아영은 눈살을 찌푸리며 짜증 섞인 냉소를 내뱉었다.고진우가 남긴 편지는 보지도 않고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연락하든 말든 알아서 하라지.’고진우가 영원히 이 집에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는 믿지 않았다.차라리 고진우가 없는 동안 동호가 집안 생활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게 좋겠다.고진우가 호텔에 있든 혼자 숨어 있든 반아영에겐 딱히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반아영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호텔에서 업무용 노트북을 열어 서류 몇 개를 처리했다.눈 깜짝할 사이에 몇 시간이나 지나 밖은 어둠이 내렸다.반아영의 업무도 그때쯤 마무리되었다.하품하며 무심코 휴대폰을 확인하니 화면에는 임우혁이 보낸 은근한 메시지만 있었고 고진우는 여전히 소식이 없었다.“나랑 진짜로 해보자는 거야?”반아영은 휴대폰 잠금을 해제하고 임우혁에게 바로 답장하는 대신 계속 스크롤을 올려 고진우와의 대화창을 찾았다.고진우가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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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30분 후, 반아영은 비서가 보낸 메시지를 받았다.[대표님, 확인해 본 결과 최근 며칠간 도심에서는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서부 산악 지역에는 얼마 전 산불이 났습니다. 화재 상황이 극도로 심각해서 인근 마을 소방대원들이 거의 다 출동해도 모자랄 지경이라고 합니다. 고진우 씨가 소속된 2팀도 며칠 전 산불 진압 지원을 위해 출동했습니다.”이걸 본 반아영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지며 저도 모르게 침대 가장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몸이 살짝 떨렸다.[그럼 지금은 진압됐어? 고진우가 있는 2팀에 사상자는 없고?]반아영은 떨리는 손가락으로 메시지를 입력하고 전송 버튼을 눌렀다.이 순간 그녀는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숨이 막힐 듯한 느낌이 계속해서 밀려왔다.[그게... 현장 상황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며칠 사이 산불은 이미 통제되었습니다. 대표님, 고진우 씨는 운이 좋은 사람이니 무사할 겁니다.]비서의 답장을 보며 반아영은 무의식적으로 질끈 눈을 감았다.오직 그녀만이 알고 있었다. 고진우가 며칠 전부터 연락이 끊겼고 지금도 휴대폰은 계속 꺼져 있다는 사실을.반아영은 고진우가 쓴 편지의 마지막 말 때문에 더 두려웠다. 최근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설마 목숨 걸고 산불에 뛰어든 건 아닐지.[그래, 알았어. 산불이 난 위치를 알아봐. 지금 거기로 가야겠어.]다시 눈을 떴을 때 반아영은 이미 결심을 굳히고 비서에게 지시를 내렸다.고진우와 무슨 갈등이 있든 그것은 오로지 부부 사이의 문제였다.고진우는 여전히 그녀의 합법적인 남편이었다.산 사람이든 죽은 시체든 직접 두 눈으로 봐야겠다.[네, 대표님. 그런데 임우혁 씨 쪽에서 오늘 저녁 레스토랑을 예약했는데 대표님께서 바쁜지 답장이 없다고 하네요. 어떡하죠?]그 메시지에 반아영은 눈살을 찌푸린 채 얼마 망설이지 않고 선택을 내렸다.[취소하라고 해. 저녁에 할 일이 있으니까 다음에 만나자고.][네, 대표님.]대화를 마친 반아영은 마음이 불안해 방에 앉아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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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고진우, 쓰레기 같은 놈! 무슨 자격으로 나를 이렇게 내버려두고 떠나는 거야?”차에 오른 반아영은 마침내 오랫동안 억눌러 왔던 감정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을 왈칵 쏟으며 서러운 마음이 극에 달했다.조금 전 그녀는 방화복을 입은 채 하얀 천 아래에서 움직임 없이 누워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마음속으로 무척 두려웠다.고진우를 찾지 못할까 봐.한편으로는 하얀 천을 걷어내면 고진우가 거기에 누워 있을까 봐.반아영은 더 이상 냉정함을 유지할 수 없었고 마음이 바늘로 쑤시는 듯 아팠다.‘고진우는 정말 죽은 걸까?’모르겠다. 더 살펴볼 용기도 없었다.오랜 세월 종교 수행으로 마음을 단련해 충분히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 순간 예외 없이 무너져 내렸다.어린아이처럼 핸들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며 울었다.바로 그때, 주머니 속 휴대폰이 울리자 반아영은 순간적으로 벌떡 일어나 들뜬 마음으로 휴대폰을 꺼냈다.“고진우?”혼란스러운 와중에 반아영은 이미 고진우 대신 그의 변명거리를 생각해 냈다.이토록 오래 사라졌던 건 산불 진압에 바빠 그녀에게 연락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일 거라고.휴대폰이 꺼져 있었던 건 산에서 지내며 배터리가 다 됐기 때문일 거라고.하지만 고진우는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고 예전처럼 신경 쓰고 있을 것이었다.그래서 전원이 켜지는 순간 가장 먼저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을 터였다.그렇게 생각하니 반아영의 마음도 조금은 나아졌다.하지만 시선을 휴대폰 화면으로 돌린 순간 눈에 보이는 발신자는 고진우가 아니라 ‘혁’이었다.“얘가 왜...”순간 반아영의 얼굴에 번지던 미소가 갑자기 굳어지며 소리 없이 얼어붙었다.평소 그녀가 가장 싫어하던 게 고진우 연락이었고 가장 반가워하던 게 임우혁인데 지금은 정반대가 되었다.고진우가 한 번이라도 먼저 연락해 주길 얼마나 바랐던가.휴대폰 벨 소리는 계속 울려댔다.반아영은 볼품없는 산불 잔해를 바라보며 어쩔 수 없이 눈을 감았다.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이미 눈물을 닦아내고 감정을 추스른 뒤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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