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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2화

Author: 비담
강루인은 마음을 정리했다. 문득 그들의 결혼 생활이 딱 섭씨 36도의 미지근한 물 같았다. 데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은 딱 그 정도의 온도였다.

출근하지 않아도 강루인은 무척 바빴다.

사랑에서 정신을 차리면 다른 것들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 법이었다.

그녀는 차성열을 의도적으로 피했다. 하지만 이 바닥의 인맥이 얽히고설켜 완전히 마주치지 않는 건 불가능했다.

강루인이 그와 거리를 두려던 그때 차성열이 입을 열었다.

“넌 친구도 일부러 안 만나?”

그 말에 강루인이 발걸음을 멈췄다. 그냥 가버리면 너무 무정해 보일 것 같았다.

강루인이 말했다.

“그러진 않아요.”

차성열의 목소리에 서운함이 묻어났다.

“난 또 네가 나랑 친구도 그만하려는 줄 알았어.”

그 생각까진 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 그와 어떻게 지내야 할지 모를 뿐이었다. 우정이 아무리 깊어도 혈연을 이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남의 가정에 훼방 놓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하여 애매한 관계를 이어가느니 차라리 연락하지 않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강루인이 솔직하게 말했다.

“선배는 영원히 나의 좋은 친구예요.”

차성열도 더 이상 그녀를 곤란하게 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효정이가 만항으로 돌아간 이유가 뭔지 알아?”

원효정의 이름을 들은 순간 강루인의 얼굴에 나타났던 부드러움이 싹 가셨다. 그녀가 여승현과 손을 잡고 저질렀던 끔찍한 짓들을 아직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이 변하는 걸 본 차성열이 말을 이었다.

“혹시 너 때문이야? 효정이가 너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

원효정이 회사를 그만두자 차성열은 속이 다 시원했다. 그녀가 호감을 보일 때마다 정말이지 너무나 부담스러웠다.

골칫덩어리 원효정이 사라졌으니 어머니 설은희에게 말해야 했다. 그가 사람을 일부러 내쫓았다고 오해할 수 있으니까.

설은희는 그 소식을 듣고 원효정이 제 발로 나갔다는 걸 믿지 않았다. 아들이 뒤에서 내쫓았다고 확신하면서 원씨 가문에 직접 물어보기까지 했다.

원씨 가문 사람들이 얼버무리며 개인적인 사정으로 퇴사했다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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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를 잃은 날, 남편은 다른 여자 촛불 앞에   제284화

    마음이 극도로 차가워지면 사람은 반격할 힘을 잃는 법이다.강루인이 말했다.“미안, 내가 잘못했어. 이미 떠난 사람 얘기를 꺼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사과할게. 내가 너무 경솔했어.”그녀가 갑자기 고개를 숙이자 주영도는 분노가 가라앉히기는커녕 오히려 비꼬는 것 같아 더욱 불쾌해졌다.강루인이 갑자기 로봇처럼 자신의 일과를 보고하기 시작했다.“오전에 스승님을 만나고 나오는 길에 성열 선배를 만나 몇 마디 나눴어. 헤어지고 나서는 혼자 카페에서 일했고 날이 어두워지니까 집으로 왔어.”말을 마친 그녀는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내가 할 얘기는 끝났어. 더 물어볼 거 있어? 있으면 대답해줄게.”두 사람 사이에 숨 막히는 분위기가 흘렀다.주영도는 짜증이 밀려왔는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전달 사항을 끝낸 강루인이 먼저 대화를 끝냈다.“더 물어볼 거 없으면 이만 잘 거야, 난.”그러고는 주영도가 물어볼 게 있는지 없는지 신경 쓰지 않고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다.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던 주영도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침실로 돌아온 강루인은 들고 있던 풍선을 내려다봤다. 역시 이런 순수한 물건은 그녀 같은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창가로 다가가 풍선을 놓아버리자 둥둥 날아가 버렸다.샤워를 마친 후 침대에 누워 꿈나라로 빠져들었다.주영도가 언제 침대에 누웠는지 강루인은 알지 못했다. 몸을 더듬거리는 느낌에 눈을 떠보니 주영도가 그 짓을 하고 있었다.그는 자고 있던 사람을 깨웠다는 미안함 같은 건 전혀 없이 오히려 당연하다는 태도로 말했다.“아기를 가져야지.”반항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다.‘즐기긴 개뿔. 이건 그냥 성폭행이야. 아무리 자기기만을 해도 동의 없이 이루어진 성관계는 즐거울 수 없다고.’강루인은 반항하지도, 즐기지도 않았다. 도마 위의 생선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었다.정상적인 남자라면 반응해주지 않는 걸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강루인이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자 주영도는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

  • 아이를 잃은 날, 남편은 다른 여자 촛불 앞에   제283화

    차성열과 헤어진 후 강루인은 선샤인 빌리지로 돌아가지 않았다. 지금은 주영도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그 집에 있고 싶지 않았다.조용한 카페를 찾아 일하다가 밥때가 되어 대충 챙겨먹었다. 해가 저물어 사람들이 하나둘 집으로 향할 때쯤이 되어서야 컴퓨터를 덮고 느릿느릿 선샤인 빌리지로 돌아갔다.가는 길에 풍선을 파는 장사꾼이 보였다. 갑자기 동심이 발동하여 풍선 하나를 샀다.선샤인 빌리지.진경자가 휴가 중이라 집 안이 칠흑같이 어두웠다. 강루인은 별로 이상하게 생각지 않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바로 그때 갑자기 거실에서 주영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왜 이렇게 늦게 들어와?”강루인은 놀란 나머지 비명을 지를 뻔했다.‘미쳤나? 한밤중에 귀신 놀이라도 하는 거야?’그녀는 질문에 답하지 않고 되물었다.“난 이제 자유도 없어?”주영도가 방금 하던 말을 이어갔다.“밖에서 뭘 하다가 이제 들어왔어?”강루인이 대꾸하지 않고 돌아서자 주영도가 확 잡았다.“지금 묻고 있잖아.”그녀는 그의 손을 가차 없이 뿌리쳤다.“내 일에 간섭하지 마. 난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강아지도 밖에 나가 산책시키는데 하물며 살아있는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다니.주영도의 시선이 강루인이 들고 있는 풍선에 향하더니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다.‘예전에는 이런 유치한 물건을 좋아하지 않았었는데.’그는 사진 뭉치를 꺼내 강루인에게 내밀었다.“내가 차성열이랑 가깝게 지내지 말라고 했지?”사진 속 그녀와 차성열의 모습을 본 순간 강루인의 안색이 변하더니 주영도를 노려봤다.“나한테 사람 붙였어?”‘휴대폰 위치 추적만으로도 부족해서 사람까지 붙였단 말이야?’주영도가 말했다.“넌 내 아내야. 너의 언행과 행동은 너 자신뿐만 아니라 나, 그리고 주씨 가문을 대표해. 저번에 할머니 생신 잔치에 있었던 일도 겨우 마무리 지었어. 주씨 가문의 명예가 손상되는 걸 더는 보고 싶지 않아.”강루인이 피식 웃었다.“그 말은 영도 씨 본인한테나 해. 난 부끄러운 점 없이 떳떳해. 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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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를 잃은 날, 남편은 다른 여자 촛불 앞에   제281화

    주영도가 말했다.“아정이 질투할 필요 없어. 난 그냥 식구라 생각하고 챙겨준 것뿐이야. 사랑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아.”강루인이 코웃음을 쳤다.“알아. 영도 씨가 모든 사랑을 구아정의 언니한테 쏟아부었다는 거.”‘식구끼리 정말 공평하게 나눠 가졌네.’주영도가 그녀를 힐끗 쳐다봤다.“나랑 결혼하기 전에 나한테 여자 친구가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을 텐데.”그 말에 강루인은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고 표정도 어두워졌다.그렇다. 그녀는 주영도의 과거를 알고 있었고 그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그저 그와 결혼할 수만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모든 게 달라졌다.결국 욕심이라는 것에 무너져버렸다.주영도가 계속 이어 말했다.“그건 내 과거야. 부정할 수 없는 과거. 넌 그걸 받아들여야 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어.”강루인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젠 비아냥거릴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사실 그들의 관계에서 초심을 잃어버린 건 그녀였다.주영도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한 게 없었다. 단지 한 번도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을 뿐....양동운이 룸을 나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보고 잠시 망설였지만 차마 무시할 수 없어 받았다.전화를 받자마자 구아정의 목소리가 휴대폰에서 흘러나왔다.“오빠.”“거기 지금 밤 아니야? 왜 아직도 안 자?”구아정은 그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본론을 얘기했다.“오빠, 영도 오빠 뭐래? 내가 돌아가는 걸 허락한대?”양동운이 동문서답했다.“아정아, 섬 날씨가 아주 좋던데 거기서 좀 더 지내고 있어. 안북이 요즘 엄청 춥고 날씨도 안 좋아. 여기 따뜻해지면 다시 데려올게.”구아정이 울먹거렸다.“영도 오빠가 나 못 돌아가게 하는 거 맞지?”그가 구아정을 달랬다.“울지 마. 영도도 네 몸이 걱정돼서 그러는 거야.”구아정은 양동운을 곤란하게 하지 않았다.“영도 오빠가 날 위해서 이런다는 거 다 알아. 난 그저 여기 생활이 익숙지 않아서 언니가

  • 아이를 잃은 날, 남편은 다른 여자 촛불 앞에   제280화

    주영도가 말했다.“밥 먹을 시간이야. 밥 먹으러 가자.”“배 안 고파.”그와 한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싶지 않았다.주영도는 늘 자기 생각만 했다.“난 배고픈데.”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강루인을 차에 밀어 넣고는 더 이상 거절할 틈도 주지 않았다.식당에 도착한 후 주영도가 주문했다.“이거 먹을래?”“아니.”“이건?”“싫어.”“이거 여기 대표 메뉴래.”강루인은 여전히 삐딱하게 반대 의견을 냈다.“별로야.”주영도가 태연하게 말했다.“남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게 뭔지 알아?”그녀는 그를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바로 정복이야.”강루인이 말을 잇지 못했다.‘예전에는 왜 이 남자가 이렇게 비열한 사람이라는 걸 몰랐을까?’주영도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날 도발해봤자 아무 소용 없어.”그녀는 그에게 끌려다녀야만 하는 자신이 너무 무능력하게 느껴졌다.강루인이 방금 먹기 싫다고 거부했던 음식들을 주영도는 모두 시켜버렸다. 그녀가 이혼을 원해도 소용없는 것처럼 그녀의 의견은 아무런 힘이 없었다.막 젓가락을 들려던 찰나 룸 문이 벌컥 열렸다.“영도야.”그 목소리와 함께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 나는 양동운의 얼굴이 등장했다.주영도의 얼굴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식당 매니저가 네가 이 방에 있다고 하더라고.”“무슨 일 있어?”양동운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시선을 강루인 쪽으로 돌렸다.그 모습을 본 강루인이 말했다.“내가 있어서 얘기 못 하겠어? 자리 비켜줄게.”마침 그녀도 이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가 주영도의 옆을 지나가려던 그때 주영도가 손목을 잡았다.“갈 필요 없어.”그러고는 강루인을 옆에 앉혔다.“말해.”‘난 여기 있고 싶지 않은데.’양동운도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했다.“아정이가 그러던데 네가 아정이를 섬에 가둬두고 외부 연락도 금지시켰다며?”주영도가 덤덤하게 말했다.“네가 신경 쓸 거 없어.”“사람을 그런 곳에 가둬놓고 외부랑 연

  • 아이를 잃은 날, 남편은 다른 여자 촛불 앞에   제279화

    “오빠, 난 이런 새언니가 싫어요. 다른 사람으로 바꿔줘요.”강루인이 그 말을 받았다.“빨리 이혼하자. 나도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고 싶지 않아.”“됐어. 다들 입 다물어.”주영도의 얼굴이 굳어지며 내뿜는 압박감에 주초원도 입을 다물었다.강루인은 속으로 아쉬워했다.‘주초원, 왜 이렇게 쓸모가 없어?’“원효정한테 손대지 않은 건 어머니의 체면을 봐서 참은 거예요.”주영도가 박정금을 달랬다.“그러니 팔순 잔치에서 있었던 일은 여기까지 하고 다시는 꺼내지 말아요. 주초원, 루인이는 네 새언니야. 버릇없게 굴지 말고 예의를 갖춰.”“오빠...”주초원이 억울함에 입술을 삐죽거리자 주영도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이젠 오빠 말도 안 듣겠다는 거야?”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 강루인을 째려봤다.“너무 좋아하지는 마!”‘오빠 평소에는 날 엄청 아끼고 내 말도 잘 듣더니 왜 이 일에 관한 거라면 듣지 않는 거지?’환영 파티에 강루인이 참석하는 걸 주초원도 원치 않았고 강루인 역시 있고 싶지 않아 그대로 본가를 나섰다.주영도가 주초원에게 카드 한 장을 건넸다.“집에서 며칠 쉬다가 학교 가.”주초원은 카드를 잽싸게 받았다. 주영도가 가려 하자 또 이렇게 물었다.“오빠, 엄마랑 나랑 같이 저녁 안 먹을 거예요?”“다음에 내가 따로 밥 사줄게.”그러면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앞으로는 말 잘 들어. 어머니 걱정하게 하지 말고.”가버리는 주영도를 보며 주초원이 입을 삐죽거렸다.“엄마, 나 강루인 정말 싫어요. 마음에 안 든단 말이에요.”어렸을 적부터 감히 그녀에게 따귀를 날린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강루인은 가차 없이 내리쳤다.박정금도 강루인을 좋아하지 않았지만...어쩔 수 없이 딸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앞으로는 강루인 그 미친년이랑 가까이하지 마. 또 널 다치게 할지도 모르니까. 걔 지금 미친개 같아서 건드리는 사람은 다 물어버려.”그녀도 며느리를 바꾸고 싶었지만 아들이 싫다는데 무슨 수가 있겠는가?주초원이 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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