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신나영은 계속 북쪽 저택에 갇혀 있었다.박지환은 그토록 귀하게 여기던 아이도 외국으로 보냈다.아이에게는 죄가 없었다. 하지만 신나영은 달랐다.박지환은 날마다 저택에서 신나영을 괴롭혔다. 아이가 죽었다고 거짓말까지 했다.처음에는 남자 비서가 돌아와 자신을 구해 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이름과 신분을 바꾼 채 종적을 감췄다는 걸 알고는 그 희망마저 놓아 버렸다.몸도 마음도 짓밟힌 끝에, 신나영은 정신마저 온전치 못하게 됐다.다시 만났을 때는 몰라볼 만큼 말라 있었다. 박지환이 찻잔 하나를 엎었을 뿐인데, 곧바로 기어가 바닥의 찻물을 깨끗이 핥았다.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박지환에게 웃어 보였다."지환아, 봐. 바닥 깨끗하게 치웠지?""아이 한 번만 보게 해 주면 안 돼? 말 잘 들을게."내 눈을 의심했다. 대체 얼마나 끔찍한 학대를 당했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그다음 일주일 동안 외삼촌은 온 힘을 다해 백원그룹을 압박했다. 박지환은 순식간에 모든 걸 잃은 처지가 됐다.빚을 받으러 온 사람들이 저택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사람 몰골이 아닌 신나영만 남아 있었다.박지환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남은 돈을 챙겨 외국으로 달아났다고들 했다. 그런데 어느 깊은 밤, 박지환에게서 메시지가 왔다.내용은 짧은 한마디였다.[창밖을 봐.]나는 경계하며 고개를 돌렸다. 창밖에서는 불꽃이 연달아 터지고 있었다.화려한 불꽃놀이는 밤새 이어졌다.박지환은 도망친 게 아니었다. 남은 돈을 전부 폭죽을 사는 데 쓴 것뿐이었다.박지환이 내게 고백하던 밤이 떠올랐다. 그때도 우리는 산 정상에서 밤새 불꽃놀이를 봤다.그날 밤의 불꽃은 오직 나를 위해 터지는 거라고 했다.불꽃이 빛나던 산 정상에서 박지환은 평생 나 하나만 사랑하겠다고 약속했다. 늙고 병들어도, 가난하든 부유하든, 죽음조차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다고 했다.하지만 결국 우리를 갈라놓은 건 기구한 운명이 아니었다. 욕망 하나 이기지 못하는 그 알량한 자제력이었다.문득 우스워졌다.뒤늦게 쏟아 내는
불과 석 달 전, 나를 거듭 짓밟고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었던 사람이었다. 어떻게 그리 쉽게 용서할 수 있겠는가?나는 망설임 없이 문을 닫았다.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박지환은 퇴근해 돌아온 외삼촌이 발견할 때까지 문 앞을 지켰다.박지환의 얼굴을 알아본 순간, 외삼촌은 달려들어 주먹을 날렸다.박지환은 바닥에 나뒹굴었다. 입가에 핏거품이 맺혔는데도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다."외삼촌! 유진이가 용서만 해 준다면, 절 때려 죽이셔도 괜찮아요!""유진이 없이 지내는 동안 사는 게 죽는 것만도 못했어요...""제발 믿어 주세요. 저, 유진이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외삼촌은 더 들을 생각도 없다는 듯 사람을 시켜 박지환을 내쫓았다.그 뒤 며칠 동안 박지환은 자주 문 앞에 나타났다. 지난 추억을 들먹여 내 마음을 흔들어 보려 했다.내가 밖에 나가기만 하면 내 앞으로 달려와 옛이야기를 꺼냈다. 바닷가에서 결혼식을 올리던 날까지 입에 올렸다.앞으로 걸어가려던 나는 잠시 발을 멈췄다.제 말이 통했다고 여긴 박지환은 더 가까이 다가와 우리가 나눴던 맹세를 꺼냈다."박지환..."나는 박지환을 바라보며 한마디 한마디 또박또박 물었다."그해 바닷가에서 거짓말을 한 사람이 있었지. 하지만 그건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아니었어."먼저 약속을 저버린 건 박지환과 신나영이었다.그 말을 들은 박지환은 그 자리에 굳었다.그날 이후로 며칠 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외삼촌 말로는 귀국한 것 같다고 했다.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그런데 모습을 감춘 지 닷새째 되던 날, 영상 하나가 도착했다. 함께 살던 남쪽 저택이었다.진실을 알게 된 날 내가 찢고 부순 물건들이 영상 속에서는 하나하나 다시 붙어 있었다.결혼사진부터 함께 만들었던 물건까지, 하나같이 그대로였다. 거실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 있었고, 베란다에는 내 옷이 널려 있었다. 마치 내가 떠난 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영상 끝에서 박지환이 말했다."유진아, 이것도 마음에 안 든다면 네가 납득할 만한
그 국을 먹고 싶었다. 서유진도 몹시 보고 싶었다.집 안은 석 달 전 그대로였다. 먹다 남긴 만두가 든 도시락통마저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석 달이 지나 겉모양은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여전히 불룩했다.박지환은 홀린 듯 다가가 만두 하나를 집어 들었다.손끝이 따끔했다. 그제야 썩은 음식 사이에 섞인 수많은 유리 조각이 보였다.서유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만두소에는 정말 유리 조각이 들어 있었다.'그런데 난 무슨 짓을 한 거지?'문득 서유진이 멀지 않은 곳에서 웃으며 말을 거는 것만 같았다."지환아, 국 먹어..."다가갔지만 아무도 없었다.뺨이 간질거려 손을 댔다. 손바닥이 축축했다. 어느새 눈물이 흥건했다.박지환은 예전에 검사를 맡았던 의사를 찾아갔다. 의사는 이미 그 방문을 예상한 듯했다."당시 결과가 나왔을 때, 아내분께서는 남편분이 상처받으실까 봐 본인의 문제라고 해 달라고 하셨습니다.""완치 가능성이 아주 낮습니다. 아이를 가지실 확률은 1퍼센트밖에 되지 않습니다..."마침 친자 확인 검사 결과도 나왔다.신나영의 아이는 박지환의 친자가 아니었다.밖은 햇살이 눈부셨지만, 박지환은 온몸이 싸늘하게 식는 것 같았다.'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쫓아내고, 석 달 동안 남의 아이를 키워 준 거야?'체면 따위는 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힘없이 바닥에 쪼그려 앉아, 사탕을 빼앗긴 아이처럼 울었다.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중얼거렸다."유진아, 대체 어디 있는 거야?""내가 꼭 찾아낼게."...그 무렵, 머나먼 타국에서 석 달 동안 치료를 받은 나는 마침내 목소리를 되찾았다."외삼촌..."관자놀이에 흰머리가 희끗한 남자를 보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엄마의 친동생인 외삼촌 김태성은 오랫동안 해외에서 사업을 해 왔다.엄마와 내가 넉넉하게 살 수 있었던 건, 엄마가 일찍이 외삼촌 사업에 지분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신나영이 떠들던 그런 더러운 일을 해서가 아니었다.엄마가 돌아가신
가는 내내 서유진에게 어떻게 따져 물을지만 생각했다.하지만 저택 문을 여는 순간, 박지환은 그 자리에 굳었다.먼지 냄새가 짙게 밀려왔다.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모든 것이 석 달 전 그날 그대로였고, 바닥에는 핏자국까지 남아 있었다.'유진이가 여기 없다고? 그럼 어디로 간 거야?'어쩐지 비서는 서유진의 소식을 수시로 전하면서도 사진 한 장 찍어 준 적이 없었다.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박지환은 휴대폰을 꺼내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지금 당장 남쪽 저택으로 와."비서는 말로는 알겠다고 했다. 하지만 박지환이 정오부터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저택에서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았다.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는 통화 중 신호만 울렸다.곧바로 사람을 시켜 행적을 알아봤다. 비서는 이미 30분 전에 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른 뒤였다.그제야 자신이 놀아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지환은 가장 빠른 날짜로 검사를 예약했다.결과를 받아 든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검사 결과에는 심각한 무정자증이라고 분명히 적혀 있었다.믿을 수 없어 병원을 몇 군데나 더 찾았지만, 결과는 같았다.'그럼 나영이 아이는 대체 뭐야?'의문을 품은 채 박지환은 다시 북쪽 저택을 찾았다.신나영에게 직접 물으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통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다시는 안 나타나겠다고 약속했잖아.""박지환은 이제 아기가 자기 아이인 줄 알아.""그런데 왜 왔어? 나랑 아기까지 죽일 셈이야?""뭘 그렇게 서둘러? 넌 외국에서 얌전히 기다려. 나랑 아기가 돈만 손에 넣으면 바로 갈게.""그럼 우리 셋이 평생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잖아. 그게 좋지 않아?"신나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지환이 문을 밀어 열었다.박지환은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된 채, 악귀처럼 살기를 뿜고 있었다.박지환은 단숨에 신나영의 목을 움켜쥐었다."말해. 너랑 붙어먹은 놈, 누구야?""그리고 유진이는? 지금 어디 있어?""지환아, 무슨 소리야?""유진이는 남쪽 저택에 있잖아. 붙어먹었다니,
의식을 잃기 직전,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그 사람은 안타까운 얼굴로 나를 품에 꼭 안은 채 병실을 나섰다.오전 내내 소동을 겪고 나서야 신나영은 고비를 넘겼다.그제야 박지환은 병실에 내버려 둔 서유진이 떠올랐다.피곤한 듯 미간을 문질렀다.서유진이 아이를 받아들일 줄 알았다.'어차피 아이도 못 낳잖아. 나영이는 유진이랑 가장 친한 친구고. 이 바닥에서 안 그러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남자가 유혹에 좀 흔들리는 게 뭐 어때서? 이혼하자는 것도 아니잖아. 남쪽과 북쪽에서 따로 살면 된다고, 깔끔한 해결책까지 내놨는데.'그런데 서유진은 받아들이기는커녕 이혼하자는 말까지 꺼냈다.'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아이 하나가 생긴 것뿐이잖아. 내가 더는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됐어. 일이 좀 정리되면 다시 달래 주면 되지. 성미가 좀 까다롭긴 해도, 내가 다 받아 줘서 그렇게 된 걸 어쩌겠어?'그런 생각을 하며 박지환은 서유진의 병실에 가 보려 했다.하지만 반쯤 가다가 마음이 바뀌었다.'나영이를 저렇게 만들어 놓았는데 쉽게 용서해 주면, 더 제멋대로 굴겠지. 본때를 보여 줘야 해. 혼자 좀 진정하게 둬야지.'박지환은 걸음을 멈췄다.휴대폰을 꺼내 보니 서유진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사진인 듯했다. 몇 분을 망설였지만 끝내 대화창을 열지 않았다.내용을 보면 또 마음이 약해져 용서해 줄 것 같았다.'이번만큼은 버릇을 고쳐 놓겠어.'박지환은 화면을 아래로 내려 비서와의 대화창을 찾았다.[병실에 가서 사모님 좀 봐. 괜찮으면 도시 남쪽 저택으로 모셔 가고.]그러고는 신나영의 병실로 향했다.그날 오후, 비서에게서 서유진은 괜찮다는 연락이 왔다.몸에 좋은 것 좀 사다 주라고 답한 뒤, 박지환은 다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그 뒤 석 달 동안 박지환은 도시 북쪽 저택에서 신나영과 아이 곁을 지켰다.처음에는 서유진이 울고불고할까 걱정했다. 어떻게 달래 줄지까지 미리 생각해 두었다.그런데 뜻밖에도 이번에는 얌전했
만두소에는 유리 조각이 잔뜩 들어 있었다.한 입 삼킬 때마다 수없이 많은 바늘로 목을 찌르는 것 같았다.나는 고통을 참으며 만두를 뱉어 내고 신나영에게 따졌다."만두에 유리 조각을 넣어 놓고, 이게 사과라고?"고통스러워하는 나를 본 박지환이 의아한 눈으로 신나영을 돌아봤다.신나영은 순식간에 눈물을 쏟았다.그러더니 힘없이 박지환의 품에 몸을 기댔다."난 안 그랬어...""만두 빚는 것도 지환이가 옆에서 봤는데, 어떻게 유리 조각이 들어 있겠어?""유진아, 난 진심으로 사과하러 온 거야. 왜 그런 뻔한 거짓말로 날 모함해?""나랑 아기가 죽기라도 해야 용서해 줄 거야?"신나영의 말 몇 마디에, 박지환은 내 잘못이라고 단정했다."유진아, 정말 실망이야...""오늘은 무조건 나영이한테 사과해."문득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박지환을 보러 회사에 갔을 때였다. 여비서가 내가 일부러 자기 서류를 더럽혔다며 뒤집어씌웠다.아무리 해명해도 소용없던 그때, 박지환이 나타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 여비서를 해고했다.그때 박지환은 이렇게 말했다."난 내 아내를 무조건 믿어."하지만 이제 그 믿음은 다른 여자를 향하고 있었다."내 잘못도 아닌데, 왜 내가 사과해야 해?"나는 가슴을 짓누르는 아픔을 참으며 외쳤다.내 태도에 박지환은 더 격해진 듯했다.박지환은 미친 듯이 내 입에 만두를 밀어 넣었다.내가 피를 한 모금 토하고 나서야 박지환은 정신이 드는 듯했다."유진아, 왜 그래?"목소리가 조금 떨렸다.하지만 나는 대답할 힘조차 없었다.의식을 잃기 직전, 박지환이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빨리 구급차 불러!"다시 눈을 떴을 때, 눈앞에는 박지환의 걱정 가득한 얼굴이 있었다. 그런데 입에서 나온 말은 또다시 칼날처럼 꽂혔다."나랑 나영이 원망하는 건 알아.""그래도 나영이한테 뒤집어씌우겠다고 네 몸을 해치면 안 되지."입을 열어 보았지만,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유리 조각에 성대를 다친 건지, 다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