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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Author: 차차
조건웅은 절대 이대로 포기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심유진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지난번의 통화를 마친 뒤, 여형민과 계약서에 사인을 마치고 리친시아에 입주할 때까지 그와 그의 가족들은 한 번도 그녀 앞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절대 방심할 순 없었다. 가까운 곳에 이사를 하고 출퇴근할 때에는 어떻게든 사람이 많은 곳으로 다니려고 노력했다.

이틀 후, 총지배인이 그녀를 사무실로 호출했다.

총지배인의 표정은 아주 심각해 보였다.

심유진은 최근에 일어난 일들을 생각해 보았다. 실수할 만한 행동은 아무리 생각해도 하지 않은 것 같다.

그때, 심각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린 총지배인이 입을 열었다.

“심유진 씨, YT 그룹의 우원정 대표와 아는 사이에요?”

“YT 그룹 말씀이세요?”

심유진은 몸에 있는 근육과 신경이 동시에 마비가 되는 느낌을 받았고, 자리에 멍하니 서있었다.

우원정, 전 국민들조차 생소하지 않은 이름일 것이다. 70년대부터 부동산과 재개발을 통해 회사를 세우고 규모가 커짐에 따라 각 분야에 손을 뻗어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다.

심유진이 경주에서 대구로 올 수 있었던 제일 큰 원인은 바로 YT 그룹... 아니, YT 그룹의 고위 임원들 때문이라 할 수 있다.

YT 그룹에서 있었던 불쾌한 기억들은 아직도 그녀의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그런 YT 그룹과 다시 얽히고 싶지 않았지만 회사의 이름만 들어도 몸이 얼어붙고 두려운 느낌이 들었다.

총지배인이 방금 말한 우원정은 그녀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다.

우 씨는 우리나라에서 희귀한 성이라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모릅니다.”

“무슨 일 있으세요?”

그녀의 마음속에 적색 등이 깜빡거렸다.

“진짜 모르는 사이 맞아요?”

총지배인은 마치 심문하는 듯한 눈길로 캐물었다. 그는 눈빛 하나 만으로 그녀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왜 어젯밤에 저한테 전화해서 아무 이유나 대고 심유진 씨를 자르라는 거죠?”

총지배인은 객실 매니저부터 천천히 승진한 사람이다. 심유진이 금방 대학을 졸업하고 그의 권유로 인해 로열 호텔에 입사한 후, 그의 밑에서 3년 동안 열심히 경력을 쌓았다. 일을 빨리 배우고 눈치가 빨랐던 그녀는 바로 그의 인정을 받고 그와 함께 승진할 자격이 주어졌다.

그한테 있어서 심유진은 자신이 직접 키운 수제자와 마찬가지다. 두 사람의 사이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다른 동료들보다 더 많이 가까워지고 돈독해졌다.

그리하여 아침 일찍 출근한 총 지배인은 바로 심유진을 불러들여 사건의 자초지종을 들으려 한 것이다. 어떻게든 그녀를 자신의 손아래에 두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

“진짜 모릅니다.”

의심은 점점 확신으로 변했다.

우원정 대표님은 우정아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우원정 대표가 저를 자르는 이유는 아주 잘 알 것 같습니다.”

“어떤 이유죠?”

총지배인이 그녀의 눈을 쳐다보며 물었다.

“많이 복잡한 일이라 지금 당장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자신과 조건웅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일을 함부로 떠벌리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묵묵히 총지배인을 쳐다보았다.

“저를 자르시겠습니까?”

총지배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 수제자를 내 손으로 자르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총지배인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저었다.

“로열 호텔은 YT 그룹의 소속이에요. 우원정 대표님은 호텔을 관리하는 업무를 하지 않지만 회사에서 직급이 많이 높으신 분이라 저도 감히 심기를 건드릴 수 없을 것 같아요...”

로열 호텔에서 5년 동안 근무를 하고 있었지만 로열 호텔이 YT 그룹의 소속이라는 것은 지금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절대 이곳에 출근하지 않았을 것이다.

“총지배인님.”

심유진은 결심을 한 것 같다.

“저를 자르실 필요 없습니다. 저 오늘부터 그만두겠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의 마음을 알고 미리 말을 꺼낸 심유진이 너무 고마웠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진짜 이대로 그만둘 수 있어요? 아니면 우원정 대표님한테 가서 사과라도 하면 어떨까요?”

“아니요.”

그의 제안을 그녀는 단칼에 거절했다.

“저 퇴사 수속 바로 해주세요.”

총지배인은 연속으로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일단 연락을 기다리세요.”

심유진이 사무실을 나서자 총지배인은 바로 허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표님, 지금 시간 괜찮으세요? 안 바쁘시면 저의 부탁 좀 들어주세요.”

**

정상적인 퇴사 수속은 한 달 전에 사표를 내고 인수인계를 한 뒤 퇴사를 하는 것이 맞다.

특수 상황인 심유진은 자신이 이 호텔에 얼마나 더 오래 남아있을지 몰라 미리 사무실에 도착해 자신의 업무를 동료들에게 넘겨주었다.

같은 사무실을 사용하는 동료들은 그녀의 사정을 전혀 모르고 물었다.

“심 매니저님, 어디 출장이라도 가세요?”

동료들의 물음에 심유진은 고개를 저었다.

“저 사표 냈어요.”

“네?”

동료들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갑자기 사표를 냈어요?”

“네.”

심유진은 싱긋 웃으며 손가락을 입에 댔다.

“하지만 아직 비밀이에요. 그러니까 비밀 지켜주셔야 해요.”

**

집에 도착한 심유진은 초인종 벨 소리를 듣고 달려나갔다.

리친시아는 경비가 삼엄하기로 유명한 아파트다. 그녀의 허락을 받지 않으면 그녀가 살고 있는 건물로 들어올 수 없게 된다.

현관문을 열어보니 문 앞에 여형민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이미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있는 걸 보아 한참 전에 퇴근을 한 것 같다.

“제가 방해한 건 아니죠?”

여형민은 싱긋 웃으며 물었다.

“아니에요. 들어오세요.”

심유진은 그를 거실 소파로 안내하고 주스를 가져다주었다.

그녀가 그의 품속에 있는 서류를 보며 물었다.

“그건 뭐예요?”

“필적 감정 결과예요.”

여형민은 얇은 종이 몇 장을 심유진에게 건넸다.

하얀 종이에 빼곡한 글씨가 그녀의 마음을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다.

제일 마지막 페이지의 오른쪽 하단에는 감정 결과가 적혀 있었다. 서명과 이전의 필적은 일치하다.

그러니까, 서명은 그녀가 직접 했다는 말이다.

이미 마음의 준비는 끝난 상태지만, 결과를 직접 보니 두 다리에 힘이 풀리고,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심유진은 넋을 잃은 채 고개를 뒤로 젖혔다.

여형민은 그녀의 반응을 살피며 적당한 시기를 찾아 말했다.

“이건, 나쁜 소식이에요. 제가 좋은 소식도 하나 가져왔어요.”

심유진은 바로 여형민을 쳐다보며 물었다.

“어떤 좋은 소식이에요?”

“유진 씨 전 남편의 명의 이전 수속을 도와준 사람을 찾았어요. 돈을 받고 도와준 게 확실해요. 명의를 이전하는 모든 과정이 불법이라 재판에서 무효로 판정 날 거예요.”

여형민의 말은 간단했지만 뜻은 확실히 전달했다.

이 소식은 최근 연달아 타격을 입은 심유진에게 달콤한 단비처럼 내려졌다. 심유진은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전 남편의 통장 안에 있는 돈을 추적했더니 부모님한테 집을 선물해 드렸더라고요. 빚도 꽤 많이 진걸로 확인됐어요.”

“집을 사드렸다고요?”

심유진은 자신도 모르게 손에 쥔 서류를 꽉 움켜쥐었다.

‘신혼집을 사면서 돈 한 푼도 내놓지 않았던 사람이 집을 선물해 드려?’

“네.”

여형민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물었다.

“사전에 동의를 구했나요?”

“아니요.”

조건웅은 미리 수를 써 둔 것이다.

심유진은 동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신혼집 대출 비용도 자신이 부담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유진 씨 동의도 거치지 않고 함부로 유진 씨 돈을 사용했다는 말이네요?”

여형민의 얼굴에 미소가 더욱 세게 번졌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 돈은 제가 꼭 돌려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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