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서는 자기 일에 곽승재가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주는 게 너무 고맙지만 그렇다고 집 안까지 초대해서 대화를 나눌 사이는 못 됐다.게다가 오늘 그의 행동이 어딘가 이상해 보였는데 혹시나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착각을 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갔고 온라인에서는 여전히 여시은의 기사로 들끓고 있을 무렵, 여시은이 심문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경찰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틈을 타서 쥐약을 먹었다고 했다.그리고 하얀 거품을 입안 가득 문 채 병원에 실려 갔다.고은서가 이 소식을 듣자마자 이는 분명 송민준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 느껴져 빠르게 곽승재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는 이미 사람들을 시켜서 무슨 상황인지 알아보고 있다고 전했다.또한 백유미가 이제 정상적으로 소통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는데 혹시 고은서더러 같이 정신병원에 가보지 않을지 물었다.혹시나 백유미 쪽에서 송민준에 관련된 증거를 찾을 수만 있다면 그를 제거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었다.하여 그와 같이 백유미 만나러 가기로 했다.고은서는 운전 기사더러 중간에서 내려달라고 한 뒤에 곽승재와 만나 그가 직접 운전해서 정신병원에 가기로 했다.도착 후, 병원 원장이 그들을 안쪽으로 안내했다.백유미는 현재 1인 격리실에 갇혀 있었는데 혹시나 다른 사람을 공격할 것을 미리 방지하고자 발에도 쇠사슬을 차고 있었다.그리고 지난번처럼 난동을 부리거나 그런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그저 얌전히 침대 위에 앉아 창밖만 바라보았다.고은서와 곽승재이 그녀의 방 안으로 들어서니 웬 역한 냄새가 그들의 코를 찔렀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계속 사람을 때리고 꼬집고 난동을 부려서 아무도 환자분에게 가까이하지 못한 관계로 며칠 머리를 감겨주지 못했습니다.”백유미를 잘 감시하도록 일을 맡겼던 한지나가 그에게 다가와 보고했고 그녀더러 일단 밖에 나가 있으라 전했다.“일 있으면 다시 부를게.”이때, 곽승재의 목소리를 알아듣기라도 했는지 백유미가 천천히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그러나 알아보지 못하고는 고개
신호등이 바뀌고 차가 떠나가는 바람에 고은서도 저 사람이 무조건 민시후라고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얼마 후, 운전기사는 은소영이 말한 그 미용실까지 데려다줬는데 마침 그녀가 아래층으로 내려오고 있었다.역시나 혼자인 모습에 고은서가 물었다.“시후 씨는 어디 가고 혼자에요?”그러자 은소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답했다.“만날 사람이 있다고 해서 잠깐 나갔어요.”‘그러면 방금 카페에서 봤던 그 남자가 진짜로 민시후였나?’고은서는 민시후와도 한동안 일을 해봤던 사람이라 그는 카페보다 조용하고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서 고객을 만나기를 더 선호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그러면 오늘은 친구 만나러 갔나?’‘그래서 소영 씨를 데리고 가지 않았고?’은소영은 깊은 생각에 빠진 고은서를 단번에 눈치채고는 싱긋 웃으며 답했다.“아직 우리 두 사람은 아무 사이도 아니기에 무조건 내 옆에 붙어 있을 필요가 없잖아요? 우리끼리 즐겁게 스파나 해요!”그 말에 고은서도 더는 물어보지 못했지만 계속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은소영은 보통 여자들과 달리 민시후에게 아무 감정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그렇게 두 사람은 모든 게 끝난 뒤에 근처의 어느 식당으로 향했다.음식을 주문하고 고은서는 아까 그 향수를 은소영에게 건넸는데 역시나 아주 만족스러워했다.비록 두 사람은 고작 몇 번밖에 만나보지 못했지만 고은서는 그녀와의 만남이 어색하거나 불편함이 전혀 없는 게 참 신기하다고 느껴졌다.은소영은 수다 떨기를 즐겼고 또 여느 부잣집 사람처럼 거만한 면이 전혀 없어 같이 지내기가 너무 편했는데 문득 민시후는 이런 은소영과 함께 있으면 지루할 틈이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식사가 끝난 후, 은소영이 대뜸 오늘 기사를 데려오지 않았는데 집까지 데려다 줄 수 있는지 물었고 고은서도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은소영과 민시후는 지금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고 그들도 막 차에 오르려던 이때, 멀지 않은 곳에 마침 민시후가 차를 세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시후
곽승재는 원래 남을 뒤에서 흉보는 습관도 없었기에 무조건 증거들이 확보되면 그때 사실대로 말하려고 했다.하여 여재훈이 이번 여시은이 벌인 일로 괜히 자책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제야 그들의 관계를 알려줬다.순간 여재훈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다음날, 인터넷 실검에는 여전히 여시은이 올라와 있었고 아무리 그녀가 경찰서에 잡혀있다고 해도 수많은 기자들이 그녀의 단독 취재를 놓치고 싶지 않아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또한 여씨 가문에 대한 의문도 점점 커지고 있었다.하여 여재훈은 회사를 통해 공지하나를 올렸는데 여시은의 이번 사건에 대한 어떤 처벌도 달게 받겠다고 말했고 사회를 시끄럽게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공개적으로 사과했다.일부 네티즌들은 그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아주었지만, 역시나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이 모든 게 다 쇼일 뿐이라면서 분명 여재훈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비난했다.이런 소란스러운 사건들을 더 이상 신경 쓰기 싫어 고은서는 MQ에 들렀다.송민아가 오늘 오후 공식적으로 북성을 떠나기 때문이다.하여 고은서는 그녀에게 뭐라도 선물을 주고 싶었지만 이미 부족한 게 없는 사람이고 작은 선물은 너무 성의가 없어 보여 고민 끝에 그녀를 위해 특별히 향수 하나를 제조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그리고 지난번에 은소영이 도와줬던 것도 기억나 그녀에게도 한 병을 준비했다.MQ에서 나온 뒤, 고은서는 곧바로 송민아를 만나러 갔는데 그녀의 도우미와 운전기사가 한창 짐들을 차에 실어주고 있었다.그리고 준비해 둔 향수를 그녀에게 건네주면서 일부러 슬플 말은 다 빼고 그저 자주 연락하자고 덤덤하게 말했는데 송민아의 눈가는 어느새 빨개진 채 고은서를 품에 안아줬다.“은서야, 잘 있어.”그러자 고은서는 그녀의 등을 가볍게 토닥여줬다.“내 걱정은 하지 마.”“요 며칠 우리 오빠 조심해.”송민아는 한껏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시 말을 이었다.“어제 아빠가 오빠더러 나한테 사과하라고 했었나 봐. 그래서 잠깐 전화를 받았는데 나한테는 그저 대충 어떤 상
여재훈은 고은서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다시 걱정스레 물었다.“은서야, 너 지금 어디야? 우리 오늘 만날까?”그는 지난번 칼에 찔렸던 상처가 아직 완전히 낫지 않았기에 선뜻 오라고 말하지 못했다.“전 괜찮으니까 함부로 움직이지 마세요. 이따가 제가 병원으로 갈게요.”옆에 앉아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곽승재가 그녀에게 말했다.“이따 나랑 같이 뵈러 가자.”고은서는 아무런 대답 없이 핸드폰을 끄려는데 여시은의 고양이 학대 관련 뉴스 기사들이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했다.클릭해서 확인해 보니 그녀가 룸 안에서 고양이를 괴롭히던 장면을 기자들이 인터넷에 올렸다. 또한 여시은이 경찰에게 끌려가는 장면까지 모두 공개되었다.비록 영상이나 사진 속 여시은의 얼굴이 전부 모자이크되어 있었지만 네티즌들은 단번에 저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았다.그녀의 악랄한 만행들에 모두가 한마음으로 분노하고 비난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여시은의 모든 신분이 그대로 드러났다.부잣집 딸이면서도 이토록 음침하고 엽기적인 동물 학대도 서슴지 않는 행동에 사람들은 그녀의 집안 전체를 비난하기 시작했다.게다가 어떤 사람은 그녀가 예전에 예흥의 어느 개업 파티에서 고은서를 일부러 밀치고 그녀에게 술을 뿌린 사건과 게임 표절한 사건까지 모두 폭로했다.한순간 인터넷에서 뜨거운 이슈 거리로 된 여시은에게 사람들은 절대 쉽게 용서하면 안 된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고고하기 그지없던 여시은이 그리도 급하게 여재훈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했던 원인이 그녀도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박지연도 관련 기사를 보자마자 고은서에게 문자 하나를 보냈고 여시은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댓글마다 ‘좋아요’를 눌렀다.[은서야, 이번에야말로 여시은한테 제대로 본때를 보여주고 반성할 때까지 교도소에서 나오지 못하게 해야 해!]고은서도 같은 생각이었다.어차피 지금 여재훈도 여시은의 일에 대해 관여하지 않기로 했고 곽승재도 변호사를 통해 절대 합의는 없으니 반드시 처벌받게 해달라고 전했다.그러나
“은서야, 차라리 네가 분이 풀릴 때까지 마음껏 때려줘...”곽승재는 한껏 풀이 죽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고은서는 굳이 이 시점에서 곽승재와 예전의 일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았다.이때, 그녀의 핸드폰이 울려 확인해 보니 여재훈이었다.지난번에 그와 엄마의 이야기를 한 뒤로 고은서는 한동안 여재훈 보러 병원에 가지 않았다.아무리 이게 여재훈만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여시은이 그의 양딸이라는 건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여태껏 너무 오냐오냐 키워준 탓에 여시은은 여재훈을 등에 업고 수많은 나쁜 짓을 하고 다녔다.하여 이런 상황들이 고은서는 너무 괴롭기만 했다.게다가 고은서는 여재훈이 자기 친아버지라는 사실이 아직도 실감 나지 않았다.그래서 그런지 여재훈도 요 며칠 고은서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화면에 뜬 여재훈이라는 이름을 보자마자 고은서는 곽승재를 한번 힐끔 바라보았는데 그는 단번에 눈치채고 헛기침을 한 번 한 뒤 그녀의 손을 놓아줬다.곽승재도 분명 고은서가 지금 많이 혼란스러운 상황이란 걸 알고 있지만 그저 그녀를 안아주고 싶었고 불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주고 싶었다.그의 품에서 벗어나 그제야 자기 자리에 앉게 된 고은서는 일단 통화버튼을 누르긴 했지만 여재훈을 어떻게 부를지 몰라 망설였다.바로 이때, 수화기 너머에서 여재훈의 다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은서야, 지금 어디야? 괜찮은 거지?” 고은서는 약간 어리둥절해서 되물었다.“제가 무슨 일이 있겠어요?”그제야 고은서는 갑자기 자신에게 전화를 건 목적이 그도 오늘 여시은에 관련된 일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그러면 됐어.”여재훈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리고 다시 고은서에게 오늘 인터넷 뉴스를 본 것과 그의 비서가 여시은의 도움 요청 전화를 받았다고 알려줬고 그녀가 걱정되어 전화하게 되었다고 말했다.“은서야, 이런 일이 있었으면 진작에 나한테 말해주지.”여재훈의 말투에는 섭섭함이 그대로 담겨있었다.“시은이가 너한테 그런
한창 곽승재한테 말하고 있는데 갑자기 눈앞의 남자가 자신을 품에 꽉 끌어안았다.“뭐 하는 거야!”고은서는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왠지 모르게 화가 났다.그러나 곽승재는 그저 자기 품에 안겨 있는 그녀의 머리칼 향기를 맡으며 나지막이 말했다.“은서야, 너무 보고 싶었어...”귀를 자극하는 그의 목소리와 뜨거운 숨결이 느껴지자 고은서는 자기도 모르게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고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대체 왜 이러는 거지?’“약 하나 발라줘 놓고 왜 갑자기 안는 거야?”그리고 너무 답답해진 고은서가 살짝 그를 밀어내며 말했다.“답답해.”곽승재는 너무 아쉬웠지만 혹시나 그녀가 화를 낼까 봐 안는 대신 손을 꽉 잡았다.그리고 한껏 다정한 눈빛으로 낮게 말했다.“은서야, 넌 참 똑똑하고 세심한 여자야. 예전에 혹시나 무심결에 했던 말이 널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면 사과할게.”“정말 미안해. 오히려 내가 멍청한 놈이었어. 네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인 줄도 모르고...”고은서는 눈앞의 남자가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그리고 한껏 눈을 내리깔고 진중한 얼굴로 말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지금 자신에게 진심으로 미안해서 사과하고 있다는 것만은 알 것 같았다.사실 이혼 후, 곽승재는 부단히 자기 잘못을 고치려고 애를 썼고 행동으로 미안한 마음을 전하곤 했다.그렇다고 해도 고은서의 생각은 변함없었다. 이미 마음을 접기로 했으니 곽승재가 무얼 하든지 그녀로서는 이제 아무 의미도 없다고 생각되었다.과거에 당했던 억울한 일, 답답했던 일들도 이제는 따지기조차 귀찮았다.그러나 오늘 곽승재의 이런 모습을 보게 되니 이상하게 마음이 쓸쓸해지고 그가 안쓰러워 보였다.“넌 정말 쓰레기였어.”다시 살아 돌아온 뒤로 야근하면서까지 작성했던 계획서를 곽승재는 홀랑 가져간 것도 모자라 그녀를 판주 투자은행에 인턴으로 넣었다.아무리 봐도 고은서가 백유미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은서야, 난 단 한 번도 너랑 다른 사람을 비교했던 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