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1165화

Author: 류한나
주민기는 속으로 아우성쳤다.

‘이게 무슨! 인간으로 살기도, 남자로 살기도 힘들지만 곽승재 비서로 사는 건 진짜 지옥이야!”

다른 비서들은 자기 일만 하면 되는데, 그는 대표님의 목베개가 어떻게 어울리는지, 갖은 수식어를 붙여서 칭찬해야 했다.

‘설마 내가 비위를 맞추느라 그냥 내뱉은 소리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겠지?’

주민기는 표현이 빈약한 머리를 필사적으로 돌리며, 어떻게 하면 이 우윳빛 목베개를 억지스럽지 않으면서 듣는 사람이 기분 좋게 극찬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형!”

그때 밖에서 육현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민기는 감격하여 눈물이 날 정도였다. 적절한 타이밍에 구원자처럼 나타난 육현석이 너무 고마웠다.

“대표님, 현석 도련님이 오셨으니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두 분이 얘기 나누십시오.”

말을 마친 주민기는 서류를 안고 재빨리 사무실을 나섰다.

심지어 너무 급히 나가다가 하마터면 육현석과 부딪칠 뻔했다.

육현석은 토끼처럼 날렵하게 뛰어나가는 주민기를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곽승재에게 물었다.

“형, 민기 씨한테 무슨 짓을 했길래 저렇게 허둥지둥 도망가는 거야?”

곽승재는 편안한 자세로 의자에 앉은 채 흐뭇한 표정으로 육현석을 바라보았다.

“이 목베개를 은서가 선물했다는 걸 어떻게 알았어?”

육현석은 당황하여 눈동자에 동공 지진이 일어났다.

‘이 형이 미쳤네! 그래서 주민기가 저렇게 도망간 거였어. 아! 나도 도망가고 싶다.’

곽승재한테서 목베개를 어떻게 받았는지 간신히 알아낸 육현석은 측은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건 불쌍한 척해서 얻어낸 거잖아.’

하지만 상관없다. 어쨌든 고은서가 직접 준 것이고, 그가 기쁘다면 그걸로 됐다.

“형, 근데 무슨 일로 나를 불렀어? 설마 목베개를 자랑하려고 부른 건 아니지?”

전화는 어제 왔었다. 곽승재가 예지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분명 다른 중요한 일이 있을 것이다.

곽승재는 약간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여시은이 별장을 임차했다고 말했다.

어제 받은 보고에 따르면, 별장의 한 층은 전부 컴퓨터로 채웠고,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Latest chapter

  • 어게인, 비긴   제1168화

    회사 관계자들을 소집한 고은서는 대책 마련 회의를 열었다. 물론 그녀는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에 대해 불필요한 소문이 퍼지면 회사에 더 큰 타격일 수 있었다.하지만 어떤 위기든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대비해 고은서는 직원들에게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사전 대책을 세우라고 당부했다.사실 이미 예비 방안은 준비돼 있어 저작권 분쟁 시 이기는 건 어렵지 않지만 승패와 상관없이 명예와 타이밍을 잃으면 그녀는 패배자일 뿐이었다. 반대로 여시은은 이익을 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고은서를 무너뜨리는 데 목적을 두고 있었다.회의를 마친 고은서는 극도로 지쳐 있었다. 그제야 그녀는 곽승재와 송민준 같은 인물들이 대기업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정신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피곤함에 어깨를 주무르며 퇴근하려고 나선 고은서가 밖에 나와 보니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허기진 배를 움켜쥔 그녀는 빨리 집에 가서 뭐라도 먹고 싶었다.운전기사에게 도착했는지 확인하려던 순간 한 남녀가 달려왔다. 고은서가 알아보기도 전에 두 사람이 “쿵” 하고 무릎을 꿇었다.“누구...?”낯선 여성이 고개를 들었다. “고 대표님, 어제는 제가 눈이 멀어 실례를 범했습니다. 부디 저희를 용서해 주세요!”고은서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제까지만 해도 오만했던 김지숙이 갑자기 이렇게 무릎을 꿇다니?고은서가 멍하니 서있는 사이 김지숙이 아들의 머리를 세게 내리치며 소리쳤다. “말해! 왜 말이 없어!”아들이 항의했다. “난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왜 사과해!”김지숙이 다시 때렸다. “멍청한 녀석! 어제 고 대표님께 했던 막말들을 잊었어? 당장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과 안 하면 네 카드 전부 정지할 거야!”그 말에 아들이 주저앉으며 사과했다. “고 대표님, 용서해 주세요.”김지숙이 이어 말했다. “고 대표님, 저희가 정말 잘못했어요. 함부로 해서는 안 될 말들을 했죠. 고 대표님 같은 능력 있는 분과 식사

  • 어게인, 비긴   제1167화

    질문을 던지자마자 고은서는 곧바로 깨달았다.“여시은이 나를 노리는 거야. 이렇게 가만히 준비하는 걸 보면 우리 WOR 게임과 유사한 게임으로 시장을 뺏으려는 속셈이겠지!”“구체적인 사항은 육현석이 확인 중이야. 거의 틀림없어.”곽승재가 대답했다.고은서의 미간이 더 깊게 찌푸려졌다.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을 거 같아. WOR 게임은 지금 데이터도 평판도 좋아. 여시은이 같은 장르의 게임을 만든다고 해도 이기긴 어려워. 하지만 여시은은 승산 없는 일은 안 해. WOR 게임에 밀리는 건 절대 받아들일 수 없을 거야.”고은서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여시은이 몰래 만드는 게임은 WOR 게임과 똑같을지도 몰라!”이 해석만이 여시은이 그렇게 수고를 들이는 이유가 설명될 수 있었다.고은서의 말에 곽승재는 다시 한번 육현석의 말이 맞았음을 깨달았다. 그는 육현석의 분석을 전했다.“핵심 기술과 데이터가 없다면 여시은이 단기간에 모방하기 어려워.”그래도 고은서의 마음은 무거웠다. 여시은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앞서 여시은이 WOR 게임 회사를 공개적으로 방문한 것도 그녀에 대한 도발이었을 것이다.만약 두 회사가 동시에 동일 게임을 출시한다면 저작권 분쟁 소송으로 시장을 잃을 것이 뻔했다. 게임 시장은 빠르게 변하거니와 이미 많은 이들이 WOR 게임 회사를 시기하고 있었다. 기회만 주어지면 모두가 짓밟으려 들 테니 소송 결과가 나올 때쯤이면 이미 시장에서 도태될 것이다.전생에서 WOR 게임 회사는 투자자와의 소송으로 시장을 잃었었다. 그런데 이번 생에서도 같은 운명을 맞이해야 한단 말인가?“은서아, 너무 걱정하지 마. 아직 모두 추측일 뿐이야.”곽승재가 차분한 목소리로 달랬다.“여시은이 일부러 하는 쇼일 수도 있어. 네가 스스로 무너지게 하려고 말이야.”고은서은 가능성이 낮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여시은이 목적 없이 이렇게 공을 들일 리가 없었다.곽승재와의 통화를 마친 후 고은서는 회사로 돌아와 WOR 게임 회사의

  • 어게인, 비긴   제1166화

    곽승재는 육현석의 말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진실을 계속 알아보는 것과 고은서에게 이미 찾아낸 단서를 알리는 것은 서로 충돌하지 않았다.“형, 여시은은 도대체 왜 은서를 노리는 거야? 혹시 형에 대한 사랑을 이런 방식으로 표현하는 거야, 뭐야?” 육현석이 물었다.곽승재와 고은서는 C 선생의 사건을 조사 중인 것에 대해 누구에게도 함구하고 있었다.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을뿐더러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육현석의 추측에 곽승재는 부정하지 않았다.“다시 한번 증명됐어. 인간의 질투심이 얼마나 무서운지.”육현석은 혀를 차며 말했다.예전에 백유미가 그토록 발광한 것도 질투에서 비롯된 일이었다.고은서는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우선 WOR 게임의 공개 테스트 데이터를 확인했다. 다행히 현재 데이터가 아주 안정적이고 반응도 좋았다. 다른 프로젝트들도 순조롭게 진행 중이었다.고은서는 급한 일을 마친 후 송민아를 찾아갔다. 송민아는 이제 단독으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해 자신의 사무실을 갖고 있었다. 마침, 계획서를 하나 다 보고 눈을 감고 쉬려던 참에 고은서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송민아는 깜짝 놀랐다.“고 대표님, 일할 때는 안 보이다가 제가 딱 쉬려고 하니까 나타나시네요. 제 머리 위에 감시 카메라라도 설치한 거 아니에요?”고은서는 송민아의 장난에 맞장구를 쳐주지 않고 용건을 말했다.“너희 오빠 어제 생일이었어?”송민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알았어?”정말로 어제가 바로 송민준의 생일이었다.고은서는 어제 저녁 식사 때 매니저가 선물을 준 일을 설명했다.“너희 오빠는 왜 생일을 안 챙기는 거야?”“나도 잘 모르겠어. 어릴 때부터 오빠가 생일 파티를 하는 걸 본 적이 없어. 엄마 말로는 오빠가 시끄러운 걸 싫어해서 조용히 보내고 싶어 한대. 그래서 매년 오빠 생일에는 부모님이 그냥 용돈이나 선물 정도만 챙겨주고 밖에 나가서 축하한 적은 없어.”고은서의 추측이 더욱 확신으로 굳어졌다. 송

  • 어게인, 비긴   제1165화

    주민기는 속으로 아우성쳤다.‘이게 무슨! 인간으로 살기도, 남자로 살기도 힘들지만 곽승재 비서로 사는 건 진짜 지옥이야!”다른 비서들은 자기 일만 하면 되는데, 그는 대표님의 목베개가 어떻게 어울리는지, 갖은 수식어를 붙여서 칭찬해야 했다.‘설마 내가 비위를 맞추느라 그냥 내뱉은 소리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겠지?’주민기는 표현이 빈약한 머리를 필사적으로 돌리며, 어떻게 하면 이 우윳빛 목베개를 억지스럽지 않으면서 듣는 사람이 기분 좋게 극찬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형!”그때 밖에서 육현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주민기는 감격하여 눈물이 날 정도였다. 적절한 타이밍에 구원자처럼 나타난 육현석이 너무 고마웠다.“대표님, 현석 도련님이 오셨으니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두 분이 얘기 나누십시오.”말을 마친 주민기는 서류를 안고 재빨리 사무실을 나섰다.심지어 너무 급히 나가다가 하마터면 육현석과 부딪칠 뻔했다.육현석은 토끼처럼 날렵하게 뛰어나가는 주민기를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곽승재에게 물었다.“형, 민기 씨한테 무슨 짓을 했길래 저렇게 허둥지둥 도망가는 거야?”곽승재는 편안한 자세로 의자에 앉은 채 흐뭇한 표정으로 육현석을 바라보았다.“이 목베개를 은서가 선물했다는 걸 어떻게 알았어?”육현석은 당황하여 눈동자에 동공 지진이 일어났다.‘이 형이 미쳤네! 그래서 주민기가 저렇게 도망간 거였어. 아! 나도 도망가고 싶다.’곽승재한테서 목베개를 어떻게 받았는지 간신히 알아낸 육현석은 측은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이건 불쌍한 척해서 얻어낸 거잖아.’하지만 상관없다. 어쨌든 고은서가 직접 준 것이고, 그가 기쁘다면 그걸로 됐다.“형, 근데 무슨 일로 나를 불렀어? 설마 목베개를 자랑하려고 부른 건 아니지?”전화는 어제 왔었다. 곽승재가 예지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분명 다른 중요한 일이 있을 것이다.곽승재는 약간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여시은이 별장을 임차했다고 말했다.어제 받은 보고에 따르면, 별장의 한 층은 전부 컴퓨터로 채웠고,

  • 어게인, 비긴   제1164화

    고은서가 말을 마치고 일어서자, 곽승재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그녀의 손을 꽉 잡은 곽승재의 큰 손에서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은서야, 송민준과 너무 가깝게 지내지 않으면 안 될까?”살짝 갈라진 낮은 목소리가 고막을 스치는 순간, 그녀는 갑자기 가슴 어딘가가 쓰라린 느낌이 들었다.곽승재는 민시후가 그녀를 쫓아다닐 때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고은서는 차분하게 대답했다.“우리 약속했잖아. 서로의 연애에 대해 묻지도, 간섭하지도 않기로.”“은서야, 우리는 이제 정말 전혀 가능성이 없는 거야?”“없어.”고은서의 단호한 대답에 곽승재는 눈에 서글픈 기색이 스쳐 지나가더니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고은서는 쓸데없는 감정 소모 없이 가서 전등을 켜더니 연고를 꺼내며 곽승재에게 셔츠 단추를 풀라고 말했다.곽승재가 정말 앓아누우면 좋을 게 하나도 없다.함께 맞서야 할 강적을 앞에 두고, 조력자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곽승재는 고은서의 표정을 유심히 살핀 뒤, 농담이 아님을 확인하고는 술잔을 내려놓았다. 셔츠 단추를 풀자, 탄탄한 가슴근육이 드러났다.곽승재가 고은서 앞에서 처음 웃통을 드러내는 건 아니었지만, 둘만 있는 폐쇄된 공간이라 약간 어색하고 이상했다.고은서는 재킷을 가져다 그의 가슴근육과 복근을 덮은 후, 어깨로 시선을 옮겼다.칼자국은 낫긴 했지만 흉터가 남아있었고, 총상 흔적은 더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이 상처들은 흰 피부와 대조되며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끔찍해 보였다.고은서는 숨을 깊이 들이마신 후 약을 발라주고 차가운 아이스팩으로 냉찜질을 해줬다.곽승재는 처음부터 끝까지 말이 없었고 기분이 더 가라앉은 것 같았다.그런 곽승재를 보며 고은서는 어이없다고 생각했다.이튿날 아침, 고은서는 이미숙에게 문을 열어놓고 바깥 상황을 살피다가 곽승재가 나오면 알려달라고 했다.이미숙은 언제나 이런 임무를 기꺼이 수행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이미숙이 급히 뛰어오더니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며 곽승재가 나간다고 알렸다.

  • 어게인, 비긴   제1163화

    ‘10층인데 계단으로 올라가려는 건가?’고은서는 곽승재의 이상 행동을 신경 쓰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탔다.엘리베이터에서 나오니 이미숙이 퀸을 안고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사모님, 왜 혼자예요? 도련님이 사모님 찾으러 내려가셨는데.”이미숙의 말을 듣고, 고은서는 그제야 곽승재가 내려간 이유를 알았다.그녀가 휴대폰과 가방을 집어 던지고 부랴부랴 내려가는 것을 본 이미숙이 퀸을 데리러 온 곽승재에게 내려가 보라고 부탁한 것이었다.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 곽승재가 비상계단을 통해 올라왔다.그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있었고, 얼굴은 창백하고 눈빛은 여전히 어두웠다.“도련님, 왜 계단으로 올라오신 거예요?”이미숙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까 어깨가 아프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왜 힘들게 계단을 오르신 거죠?”곽승재는 대답할 생각이 전혀 없는 듯 이미숙의 손에서 고양이를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도련님...”이미숙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불렀다.“계단을 오르는 데 팔을 쓰지 않으니 괜찮아요.”고은서가 말하면서 방으로 향했다.이미숙이 그녀의 뒤를 따라오며 말을 이었다.“도련님이 꾀병을 부리는 게 아니에요. 예원 별장에 거주할 때도 날씨가 변할 때마다 어깨 통증 때문에 식은땀을 흘리곤 했어요.”곽승재는 어깨에 총상과 칼상을 입은 적이 있는데, 음습한 날씨가 되면 통증이 심해진다고 육현석한테 들은 바 있다.하지만 고은서는 그 말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곽승재 바라기’인 육현석이 곽승재에게 유리한 말만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 말이 사실일 줄은 생각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방금 곽승재의 입술도 핏기가 없었던 것 같았다. 여기까지 생각한 고은서는 주민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곽승재가 아픈 것 같으니 약을 좀 보내주라고.그녀는 휴대폰을 내던지고 욕조에 몸을 담갔고, 스킨케어도 꼼꼼히 했다.그녀가 욕실에서 나왔을 때, 휴대폰에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가득 들어와 있었다.모두 주민기에게서 온 것이었다.고은서는 주민기에게

  • 어게인, 비긴   제1162화

    송민준이 지난번에 고은서와 함께 사찰에 가려고 라이트문 아파트를 찾았을 때 곽승연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곽승재의 근황을 알고 있었다.송민준의 반문에 곽승재는 말문이 막힌 듯 다소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은서가 불편해하면 당연히 떠나겠죠. 하지만 그건 송 대표님과 상관없는 일이에요. 이렇게 늦은 시간에 여기서 뭐 하는지 설명해 주시죠?”“곽승재, 민준 오빠가 나랑 같이 저녁을 먹고 데려다줬어.”고은서가 대신 대답했다.한밤중에 두 사람이 언성을 높이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정보 시대인 만큼 누군가가 몰래 찍어 온라인에 퍼뜨리기라도 하면 또 사회면에 오를 것이다.“민준 오빠, 늦었는데 일찍 들어가 쉬어.”송민준은 고집을 부리지 않고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이만 가볼게.”그는 손에 든 토토로 인형을 흔들며 덧붙였다.“은서야, 고마워.”말을 마친 송민준은 차에 올라탔다.송민준이 떠난 후에도 곽승재의 얼음장같이 차가운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왜 내려왔어?”고은서의 질문에 곽승재는 입을 꽉 다문 채 침묵을 지켰다.같은 남자로서, 그는 송민준이 고은서에게 은근한 소유욕을 보인다는 것을 눈치챘다.아까 반문할 때 송민준의 눈빛에서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적대심을 읽었기 때문이다.“은서야, 송민준이 들고 있던 인형은 네가 준 거야?”곽승재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엉뚱한 걸 물었다.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오늘 우연히 송민준의 생일이라는 것을 알게 돼서 소소한 선물을 건넸을 뿐이라고 말했다.곽승재는 가슴 깊은 곳이 먹먹해졌다. 이혼 얘기를 꺼낸 이후로, 고은서는 단 한 번도 그에게 선물을 준 적이 없었다.오랫동안 기대했던 양복은 연예인 주인혁에게로 갔고, 그녀의 선물이라고 믿었던 넥타이핀은 사실 외할아버지의 작품이었다.고은서가 정성 들여 고른 팔찌는 민시후의 손에 들어갔고, 그녀가 항상 경계하는 송민준마저 선물을 받은 상황이다.‘나는 철저히 잊힌 건가?’“무슨 일이 있어? 왜 내려왔냐고?”고은서는

  • 어게인, 비긴   제1161화

    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별다른 설명 없이 차에서 내려 아파트로 들어갔다.10분쯤 지났을 때, 그녀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이때 송민준은 차에서 내려 차창에 무심히 기댄 채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얼굴은 무표정 그 자체였다.“민준 오빠.”고은서가 부르는 소리에 그는 이내 감정을 추스르고, 준수한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띠었다.“내려왔어?”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든 짙은 회색의 토토로 인형을 내밀었다.“선물이야. 생일 축하해.”정장 차림에 성숙되고 세련된 송민준이 인형을 들고 있으니 어딘가 어색해 보였다.고은서가 살짝 민망해하며 말을 이었다.“오늘 생일인 줄 몰라서 미리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어. 이 토토로 인형은 새것이야. 줄곧 장식장에 넣어두고 사용한 적 없어.”“좀 유치한 선물이고 오빠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 하지만 토토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이고 치유와 따뜻함을 상징한다고 생각해.”그녀는 토토로 손에 들린 큰 나뭇잎을 가리키며 말했다.“스트레스를 받을 때 이렇게 주물러 봐. 감촉이 좋고 스트레스가 풀려.”“외할아버지께서 생일은 생명의 탄생을 축하하는 특별한 날이고, 의미 있는 의식을 가져야 생명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느낄 수 있다고 말씀하셨어.”고은서가 말을 이었다.“이전에 오빠가 나와 민아는 어릴 적부터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순탄하게 자랐다고 말할 때 표정이 좀 어두워 보였어. 오빠가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왜 생일을 챙기지 않는지 모르지만 다 지나간 일이야.”고은서는 귀여움이 철철 흐르는 토토로를 손으로 꼬집으며 미소를 지었다.“이 유치한 선물은 어린 시절의 송민준에게 주는 거라고 생각해줘.”말을 마친 후에야 그녀는 송민준이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왠지 어색해진 그녀는 급히 토토로를 만지던 손을 거둬들였다.“미안해. 내가 좀 웃겼지? 나중에 제대로 된 선물을 준비할게.”고은서가 토토로를 가져가려는 순간, 송민준이 잡아챘다.“그럴 필요 없어. 이것으로

  • 어게인, 비긴   제1160화

    단은숙이 초대한 자리였지만, 송민준이 이미 방을 예약하고 음식까지 시켜놓았다.차에서 내리자마자 매니저가 친절하게 맞이하며 그들을 방으로 안내했다.식사하는 동안, 송민준은 신사다운 매너로 고은서와 단은숙을 세심하게 챙겼다.단은숙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송민준을 칭찬했다. 다만 고은서가 싫어할까 봐 둘을 엮어주는 말은 하지 않았다.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고국성이 단은숙에게 전화를 걸어와 식사했냐고 묻자, 그녀는 자기도 집에 들어가려던 참이었다고 대답했다.“은서야, 삼촌이 요즘 너무 피곤한지 입맛이 없어서 식사를 잘 안 하셔. 내가 들어가서 좀 챙겨야 해. 민준 군이랑 천천히 먹어.”단은숙은 가방을 챙기며 말했다.“민준 군, 오늘 정말 고마웠어. 다음에 은서랑 한번 식사 자리를 마련할게.”송민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조심히 들어가십시오.”숙모가 떠난 후 고은서도 시계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그때 호텔 매니저가 정교하게 포장된 장수면과 케이크 상자를 들고 왔다.“송 대표님, 생신 축하합니다. 이건 저희 호텔에서 준비한 장수면과 케이크입니다. 약소한 선물이지만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이 말을 들은 고은서는 의아한 눈빛으로 송민준을 쳐다보았다.“오늘 생일이었어? 왜 말하지 않았어?”‘생일인데 왜 옆에 아무도 없지?’송민아조차 한마디 언급이 없었다.‘우리랑 같이 식사하지 않았다면 송민준은 이 시간에 야근하고 있었겠네.’‘송씨 가문에서 송민준을 이렇게 대할 리 없는데.’송민준은 선물을 받으며 가볍게 인사하고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담담히 말했다.“나는 평생 생일을 챙겨본 적이 없어. 식구들도 다 알고 있어서 언급하지 않아. 호텔에서 선물을 주지 않았으면 나도 모르고 지나갔을 거야.”고은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어떻게 생일을 기억 못 하고 안 챙길 수가 있지?’문득 송민아가 송민준과 이복형제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송민준도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별로 좋은 기억이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설마 생일만 되면 친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