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162화

Author: 류한나
원래는 자신의 늠름한 얼굴을 감상하려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부스스한 머리, 얼굴은 깨끗한 편이지만, 눈가에는 메이크업 흔적이 조금 남아있는 모습을 보았다.

고은서는 어젯밤 차 안에서 바로 잠들었기에 곽승재가 자신을 안고 방까지 올라왔는데 화장 지우는 법을 모르니까 수건으로 얼굴만 대충 닦아준 모양이었다.

그렇다 한들 고은서는 여전히 이 상황이 믿겨 지지 않았다.

‘어젯밤, 곽승재가 클럽에 찾아왔을 때 기분이 분명 안 좋아 보였는데, 정색해서 날 책문하지 않았을뿐더러 이렇게 인내심을 가지고 나의 얼굴을 닦아주었다고?’

근데 고은서가 감격해야 할 것도 없었다.

고은서도 술에 취한 곽승재를 보살피느라 그의 얼굴이랑 몸을 닦아주고 옷도 갈아 입힌 적이 있었다...

옷!

고은서는 갑자기 자신이 지금 잠옷을 입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곽승재가 옷도 갈아 입혀준 거야?!’

고은서는 화가 나서 밖으로 나가 곽승재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 그러나 고개를 돌리는 순간, 자신의 목 뒤에 수상쩍은 빨간 점이 있는 걸 발견했다.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들어 올려 자세히 살펴보았다.

빨간 점은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여서 머리카락에 가려졌을 때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이렇게 불빛에 비치니 아주 눈에 띄었다.

고은서는 눈썹을 찌푸리며 빨간 점을 만져 보았다. 통증도 없고 가려움도 없었다.

그녀는 쪼가리를 받아본 적이 없지만, 예전에 룸메이트가 남자친구에게 받은 쪼가리를 본 적이 있었다.

진한 빨간 점은 컨실러로 커버되지 않으며 누르면 약간의 통증도 느껴진다고 했었다.

고은서의 빨간 점은 쪼가리가 아닌 게 분명했다.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벌레가 물었나 보네. 곽승재는 내가 취했을 때 슬그머니 내 몸에 손댈 정도로 비열하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잠옷은...’

고은서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이미숙에게 물었다.

“아줌마가 어젯밤에 제 옷을 갈아 입혀준 건가요?”

이미숙은 상을 치우면서 대답했다.

“네. 사모님이 어제 취해서 깨지 못하니까 도련님이 저보고 잠옷으로 갈아 입히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어게인, 비긴   제163화

    물음이 입 밖으로 나가고 나서야 육현석은 자신이 쓸데없는 말을 했다는 걸 알아차렸다.‘형의 표정을 보니, 형도 형수님이 드럼 칠 줄 안다는 사실을 몰랐던 눈치네.’설사 알고 있었다고 해도, 예전에 고은서를 싫어했던 곽승재는 그녀의 일을 자기 형제들에게 알릴 이유가 없었다.“형수님 너무 예쁘다. 근데 난 왜 예전에 형수님이 이렇게 예쁜 줄 몰랐지? 이상하네...”육현석은 혼잣말했다.“예전에도 예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지금의 이런 늠름함이 없으니까 개성이 좀 덜했다고 해야 하나?”곽승재는 말이 없었다. 동영상 속의 고은서는 밝게 웃고 있었고 한껏 즐기고 있는 표정이었는데, 이는 곽승재가 본 적이 없는 모습이었다.특히 손가락 사이로 드럼 스틱을 돌릴 때 그녀의 얼굴에는 약간의 교만함, 아름다움, 그리고 멋이 담겨있었다.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영혼마저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듯했다.“대박. 형, 이 사람의 댓글 좀 읽어 봐...”[이 영상을 찍은 사람은 분명히 이 여자분에게 관심이 있는 거예요. 보통 사람은 분위기, 기교, 비트에 대한 장악도 등에 중점을 두고 영상을 찍거든요. 근데 이 영상을 찍은 사람은 영상 속 주인공의 웃음과 눈빛만 찍었어요. 그래서 보는 사람도 같이 즐거워지게 만들어요.]“밑에 찬성하는 사람도 있어요!”[이분이 엄청 세심하게 관찰하셨네요. 그러니까 제가 이 동영상을 볼 때 뭔가 달콤하고 입꼬리가 자꾸 올라간다 했어요. 역시나 애정을 듬뿍 담아서 촬영해서였네요!]“형...”육현석은 곽승재에게 아래의 댓글을 더 읽어주려 했지만, 곽승재는 아예 그의 핸드폰을 빼앗아서 동영상을 꺼버렸다.“왜 그래? 설마 네티즌들의 막말을 믿는 건 아니지?”육현석은 곽승재의 눈치를 보지 않고 네티즌의 댓글을 더 읽으려 했다. 그러자 곽승재는 또 육현석을 잡지 못해 안달이었다.“프로젝트 기획안이 통과되었다고 해서 일이 끝난 게 아닐 텐데.”육현석은 어이가 없었다.“형, 너무하는 거 아니야?”육현석은 참지 못하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 어게인, 비긴   제164화

    육현석의 말을 듣자, 곽승재는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졌다.그는 이혼이든 재혼이든 모두 저촉했다.한 달 전, 고은서가 이혼을 제기하던 그 날 밤, 곽승재는 분명 아무 느낌도 없었다.이혼하면 그만이고 걱정거리 하나가 줄어들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왜 한 달 만에 마음이 이렇게 이상하게 변한 거지?’“형?”반나절 동안 대답을 듣지 못하자 육현석은 곽승재를 귀띔했다.“아쉬울 게 뭐 있어.”곽승재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냥 결혼한 지 1년이 넘어서 나도 익숙해졌고 할머니도 은서를 마음에 들어 하니 굳이 이혼까지 갈 필요가 없다는 거지.”‘알겠다. 이 형 이혼하기 싫은 거 맞네.’“이혼해도 다른 사람이랑 재혼할 생각 안 해봤다는 거지?”육현석이 묻자 곽승재는 언짢은 태도로 말했다.“한번 다녀왔으면 됐지, 결혼해서 좋을 게 뭐가 있다고 다시 하겠어!”‘다행이다. 형이 형수님에 대한 감정을 잘 모르지만, 마음속에 다른 여자를 품고 있는 건 아니네.’육현석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형, 이혼하기 싫으면 형수님의 마음을 어떻게 되돌릴지 생각 좀 해 봐. 여자들은 아주 감성적이어서, 한 가지 일로 한 사람을 사랑할 수도 있지만, 마찬가지로 한 가지 일로 실망해서 한 사람에 대한 마음을 바로 접을 수도 있어.”“실망할 게 뭐가 있어!”곽승재는 육현석의 자만한 말투에 기분이 언짢아졌다.어제까지만 해도 고은서는 곽승재를 생각해서 단은숙에게 그가 매운 걸 안 먹는다고 일깨워 주었다.그리고 고은서가 고은혜와 화장실에 말다툼할 때도 그녀는 곽승재가 다른 남자와 비교할 수 없는 존재라고 한입 말했었다.곽승재는 무심코 자신의 옷깃과 넥타이를 정리하는 척하면서 아주 정교한 넥타이핀을 보였다.“이 핀은 은서가 어제 나에게 선물한 거야. 나한테 감정이 없는데 왜 이런 걸 선물해줘?”육현석은 넥타이핀을 관찰하더니 의혹을 제기했다.“이 핀, 형수님의 취향이 아닌 것 같은데?”“네가 은서한테서 선물을 받아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은서의 취향을 알아

  • 어게인, 비긴   제165화

    “은서가 기분 나쁠 게 뭐 있어?”곽승재가 화를 내며 말했다.“은서가 곽씨 사모님의 신분으로 명운의 책임자를 들여보내서 그렇게 심각한 사고를 냈는데도 아무런 수습도 하지 않고 계속 술을 마시고 뉴스를 만들어 자기 소주를 광고했잖아. 내가 이 일로 은서를 탓하지도 않았고, 은서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뒀는데 여기서 뭘 더 해명해야 하는데!”육현석은 중점을 콕 집어냈다.“형수님이 뭘 했든 형이 상관하지 않고 다른 여자를 안고 나간 건 사실이지?”곽승재는 육현석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시급한 상황이라 은서를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건 사실이야. 근데 은서는 다친 곳도 없었잖아. 그런 사람을 알아서 집 가게 내버려 둔 게 뭐가 잘못됐다는 거야?”“...”육현석은 마음속으로 한숨을 쉬었다.‘형의 이런 사고방식으로 어떻게 형수님의 마음을 되돌릴 건지... 갈 길이 너무 멀다.’“형, 형수님도 여자잖아. 연회에서 뜻밖의 사고가 생겼는데 아무리 다치지 않았다 해도 마음속으로 두려워했을 거야. 홀로 연회장에 남겨진 형수님의 기분이 어땠을지 생각해 본 적 있어? 당시 연회장에 얼마나 많은 GS 그룹 직원과 사업상의 파트너가 있었는데, 그들이 홀로 남겨진 곽씨 사모님을 비웃을 거란 생각은 안 해봤어?”이 말을 듣자 곽승재는 이맛살을 찌푸렸다.그는 곽씨 사모님의 술주정이라는 인기 검색어에서 고은서가 댄스 플로어에 서 있던 사진이 떠올랐다. 고은서의 작은 얼굴에는 쓸쓸함이 가득했고, 커다란 눈동자는 빛을 잃은 채 사람들 속에 홀로 덩그러니 서 있었다.게시물의 내용도 많이 지나쳤다. 무슨 외면당했네, 결혼은 억지로 끼워 맞춘 거네, 혼인에 금이 갔네 등이었다.그 당시 곽승재는 명운과 관련된 인기 검색어가 잇따라 올라오는 것을 보고 앞의 기사도 고은서가 계획한 내용이라고 생각했었다.근데 만약 그 술주정이라는 검색어가 고은서의 작품이 아니었다면, 그때 그녀는 정말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비웃음을 받았을 거라는 것을 곽승재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이렇게

  • 어게인, 비긴   제166화

    “어젯밤, 곽승재 씨가 누나를 데리고 나가서 난감하게 하지는 않았죠?”주인혁이 물었다.고은서는 어젯밤에 곽승재가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을 안고 나갔다는 것을 생각하니 조금 머쓱해서 말했다.“네, 아무 일 없었어요.”“그럼 다행이네요.”이렇게 말하고서 주인혁은 더 말하지 않았다.고은서는 주인혁이 곧 다가올 첫 시합을 앞두고 긴장하는 줄 알고 웃는 얼굴로 격려의 말을 몇 마디 전했다.그러나 뜻밖에도 주인혁은 아주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누나, 비록 제가 지금은 누나에게 도움이 될 수 없지만, 누나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다 지지해요.”고은서는 주인혁이 자신을 관심하고 있다는 걸 알고 마음이 따뜻해졌다.“인혁 씨, 걱정하지 마세요. 저의 일은 제가 알아서 잘 처리할 수 있으니까, 인혁 씨는 시합에만 집중하세요.”전화를 끊고 고은서는 복싱관에 도착하여 복싱 훈련과 주인혁이 가르쳐준 호신술을 한동안 연습했다.지금 고은서의 주먹은 더는 예전처럼 나른하지 않고 힘이 좀 강해졌다. 코치도 고은서의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 칭찬할 정도로 그녀의 변화는 눈에 띄게 컸다.요즘 고은서는 잘 먹고 잘 자니까 체질이 많이 좋아진 게 확 느껴졌다. 그러나 몸무게는 여전히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고 겨우 두세 근밖에 늘어나지 않았다.‘기운이 좋아지고 얼굴색이 좋아지는 것만으로도 만족해. 조금 말라도 괜찮아.’연습을 마치고 고은서는 간단히 샤워한 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녀가 수건으로 물기를 닦으며 복싱관 밖으로 나가려고 하던 찰나, 마침 복싱관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원지훈과 딱 마주쳤다.원지훈은 트리닝 복을 입지 않은 걸 보아하니, 고은서를 찾으러 전문 이곳에 온 모양이었다.“훈련하러 왔어?”고은서가 일부러 떠본 말에 원지훈이 대답했다.“오늘 훈련 없는 날이에요. 저는 누나와 옆 카페에 가서 커피 한잔하고 싶어서 온 거예요.”고은서는 웃으며 말했다.“커피는 됐고 볼 일이 있어서 날 찾으러 온 거라면 그냥 여기서 얘기하자.”원지훈은 휴게실을 가리키며

  • 어게인, 비긴   제167화

    원지훈은 고은서의 미소를 보고 마음속으로 살짝 기뻐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애써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다.“누나, 저는 은혜 씨를 진심으로 좋아해요. 누나도 동생인 은혜 씨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거 아닌가요?”고은서는 원지훈의 번지르르한 말에 토할 것 같았지만, 그의 두꺼운 낯가죽을 비웃지도 않고, 그더러 자기 신세를 제대로 알라고 충고하지도 않고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지훈 씨, 이미 나의 혼인 상황을 잘 알고 있다면 내가 남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알겠네?”‘이럴 때는 어쩔 수 없이 곽승재를 방패막이로 써야 하네.’“그 누구도 남편에 대한 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어.”고은서가 덧붙여 말했다.원지훈은 이 말을 듣고 더 말하지 않았다.비록 백유미는 원지훈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고, 그더러 캐묻지 말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지훈이 스스로 검색해보지 않는다는 것은 장담할 수 없었다.원지훈은 곽승재가 고은서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은서가 자신을 이용해 곽승재에게 복수하는 동시에 고은혜에게도 상처 주려는 줄 알았다.어쨌든 원지훈은 자신이 그럴 조건이 된다고 여겼다.고은서가 또 입을 열었다.“맞는 말도 있긴 해. 나는 확실히 네가 은혜와 함께 있는 걸 보고 싶지 않아. 넌 은혜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못 돼.”이 말을 듣더니 원지훈은 얼굴색이 조금 변했다.“제가 어디가 못났는데요?”“해성에 사업하러 왔다는 사람이 일하려는 기색이 조금도 안 보이거든. 넌 그저 종일 먹고 놀기만 하면서 은혜의 주위를 맴돌고 있잖아.”고은서가 말했다.“지난번 주차장에서 너도 은혜가 승재 형부를 얼마나 숭배하는지 봤잖아. 그래서 난 은혜가 사업에 성공한 남자를 진정으로 좋아한다고 생각해.”고은서는 고의로 이 말을 꺼냈다.왜냐하면, 그녀는 전생에 단은숙에게서 고은혜의 남자친구는 집안도 좋고 사람도 잘나서 해성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약품의 대리를 맡고 투자도 받았다고 자랑하던 것이 어슴푸레 떠올랐다.이번 생에, 백유미는 아직 이

  • 어게인, 비긴   제168화

    민시후는 건들건들한 말투로 대답했다.“왜? 곽승재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접으니까 나에게 관심이 생기기 시작해?”고은서는 어이가 없어 허공에 대고 눈을 희번덕거렸다.‘방금 뻔뻔한 남자를 한 명 보냈는데, 여기에도 그런 사람 한 명 더 있네.’“걱정하지 마. 나 남자한테 관심 끊었어. 특히 너처럼 뻔뻔하고 자신감 넘치는 남자는 딱 질색이야.”“어구. 말투가 살벌한데?”“너랑 말장난할 시간 없어. 볼일이 있어서 전화한 거야.”“내 사무실로 와.”고은서는 익숙한 길로 민시후의 사무실에 도착했다.민시후는 여전히 껄렁껄렁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긴 다리를 책상 위에 얹은 채 핸드폰을 들고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익숙한 노랫소리가 들려 고은서는 민시후의 곁으로 걸어가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민시후는 고은서의 드럼 치는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고은서는 고의로 조금 전에 민시후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되돌려줬다.“민 도련님, 사무실에서 혼자 내 동영상을 보고 있었어? 설마 나한테 관심 있는 거 아니지?”이 말을 듣자 민시후는 조금도 화내지 않고 심지어 흥미진진하게 말했다.“사실 난 네가 곽 대표와 이혼하고 나랑 같이 있겠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 있어. 어쨌든 넌 지금 무력도 좀 있잖아.”고은서가 말했다.“고맙긴 한데 난 널 받아들일 수 없어.”민시후가 물었다.“내가 곽 대표보다 못한 게 뭐가 있는데?”고은서가 대답했다.“너무 뻔뻔해서 싫어.”“나중에 너도 깨닫게 될 거야. 이게 내 장점이라는 것을.”민시후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말했다.“말해 봐. 무슨 일로 이렇게 급하게 날 찾아온 건데?”고은서는 핸드폰을 꺼내 그 안에서 자료 하나를 찾아냈다.“이 자료 한번 봐. 눈에 익지 않아?”민시후는 자료를 힐끗 보고 말했다.“이건 곽 대표가 투자하던 그 약물 연구소 아니야?”고은서가 물었다.“너 예전에 일부러 날 데리고 승재 씨와 관계자가 밥 먹는 자리에 나가서 난동을 부렸던 건 이 프로젝트에 관심 있어서 그랬던 거 아니야

  • 어게인, 비긴   제169화

    민시후는 고은서의 계획을 듣고 반대하지 않았다.“왜 이유 없이 이런 계획을 세웠는데? 그 사람에게 원한이라도 있어?”고은서는 대답하지 않고 도리어 물었다.“아무 이유 없이 한 사람이 싫으면 안 돼?”민시후는 고은서를 잠깐 주시하더니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당연히 되지. 게다가 이 계획이 아주 마음에 들어. 네가 밑밥을 깔지 않고 나에게 도움을 청했어도 대답했을 거야.”고은서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그럼 민 도련님의 관대한 마음에 감사드리며, 저는 이만 기획안을 작성하러 들어가 볼게...”“잠깐만, 나 요구할 게 하나 있어.”민시후가 고은서를 불러 세우자 고은서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무슨 요구?”민시후는 살짝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반응이 왜 그래? 내가 설마 진짜로 너에게 관심이 있겠어! 일이 끝나면 드럼 치는 거 한번 보여줘.”“거절해도 돼?”“안 돼.”민시후는 퉁명스럽게 말했다.“고은서 씨, 나 바보 아니거든. 당신은 나에게 두 가지 일을 부탁했으면서, 내 작은 부탁 하나도 못 들어줘?”“...”지금 민시후의 처지에서 볼 때 허 교수의 프로젝트는 확실히 안전한 투자 항목이 아니고, 고은서도 당분간은 제대로 설명할 수 없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그러자.”‘드럼을 한 토막 치는 게 뭐 큰 대수라고. 한다면 하는 거지.’...곽승재는 특별히 저녁 시간을 골라 집에 돌아왔지만, 집안에서 고은서의 그림자를 보지 못했다.이미숙은 곽승재에게 알렸다.“도련님, 사모님께서 점심을 드시고 나간 후로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곽승재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고은서는 요즘 밖에 나가는 날이 점점 많아진 것 같았다.예전에 곽승재가 언제 집에 돌아오든 고은서는 음식을 갖추고 그를 기다렸다.그러나 지금 고은서는 곽승재보다 더 늦게 들어왔다.“도련님, 오늘 사모님께서 일어나셔서 저에게 잠옷에 관해 물었습니다.”이미숙은 낮은 소리로 말했다.곽승재는 안색이 변하지 않은 채 말했다.“알겠어요.”그는 머릿속

  • 어게인, 비긴   제170화

    ‘이 사람 문제 있는 거 아니야? 예전에 내가 일부러 민소매를 입고 그의 앞에서 얼쩡거릴 때는 쳐다보지도 않더니, 지금 내 허리를 살짝 부추기였다고 이렇게 뜨거운 눈빛을 발사하다니.’고은서는 생각할수록 화가 나서 곽승재의 손을 뿌리치려 했다. 그러나 곽승재는 그녀의 생각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품속의 사람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너 뭐 하는 거야!”고은서가 화를 내자, 곽승재는 표정을 드러내지 않고 말했다.“지난번 GS 그룹의 파티에서 내가 먼저 떠나가서 네가 기분이 안 좋았어?”지금 두 사람의 자세는 아주 애매하고 이상했다.고은서는 곽승재의 손을 애써 치우며 말했다.“먼저 날 놔줘!”곽승재는 여전히 그녀를 끌어안고서 말했다.“내가 묻는 말에 먼저 대답해.”곽승재가 자기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걸 보고, 고은서는 냉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 적 없어. 이제 됐어?” 고은서의 말투는 매우 차가웠고 눈빛에는 귀찮은 기색이 분명했다.분명 집 문을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활짝 웃고 있었다.곽승재는 짜증이 치밀어올라 고은서를 놓아주고 냉랭하게 말했다.“고은서, 다시 생각해 봐. 네가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면 지금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내가 기분이 나빴든 말든, 그게 너에게 중요하기나 해?”고은서는 호통치며 말했다.“너 요새 너무 한가해서 병났어? 그게 언제 일인데 왜 인제 와서 갑자기 내 기분을 묻고 난리야? 날 곤란하게 하는 게 그렇게 재밌어?”시간이 아무리 오래 지났다 해도 설명하고 넘어가야 할 건 설명해야 한다. 이는 곽승재가 육현석에서 받은 충고였다.곽승재는 얇은 입술을 살짝 오므리고는 차가운 말투를 조금 줄이고 말했다.“그날 밤, 이런저런 일을 급하게 처리하느라 널 미처 돌보지 못했어. 내가 생각이 짧았던 거 같아. 할머니께서 네가 줄곧 운호에 가서 온천욕을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이번 주 토요일 우리 회사에서 마침 그곳에서 단체워크숍을 진행해. 같이 가지 않을래?”이건 곽승재가 처음으로 성실한 태도로 고은서에게

Latest chapter

  • 어게인, 비긴   제1112화

    의사가 여재훈의 상처를 처치하는 사이, 고은서의 휴대폰이 울렸다.번호를 보니 곽승재였다.고은서는 여재훈에게 말하고 복도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은서야, 너 사고를 당했다며? 너와 여 대표님이 모두 다쳤다고?”곽승재가 다급히 물었다.임신 오해 사건 이후, 두 사람이 모든 것을 터놓고 얘기한 뒤로 그녀를 몰래 보호하던 인원을 철수한 상태였다.하지만 운전기사는 여전히 주민기가 배치한 인원이어서 고은서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알 수 있었다.고은서는 어디서 들었는지 캐묻지 않았다.“괜찮아. 마재경이 갑자기 유일 투자은행 주차장에서 나를 습격했어. 여재훈 씨가 막아주다가 팔을 다치셨고.”“나는 지금 출장 중이라 경찰서 쪽에 다른 사람을 보냈어.”곽승재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바로 해성으로 돌아갈게.”고은서는 급히 돌아올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여긴 별일 없으니까 일에 집중해. 여재훈 씨의 상처 처치가 끝나면 경찰서로 가서 마재경을 만날 거야.”“이쪽 일은 거의 마무리됐어. 내가 돌아가면 같이 경찰서에 가자.”곽승재는 설명을 이어갔다.“지난번 마재경이 다쳤을 때 병원을 방문해 더 이상 협조가 필요 없다고 통보하고 충분한 보상금도 지급했어.”“다시는 네 앞에 나타나 존재감을 과시하지 말라고 몇 번 경고했는데 갑자기 나타난 걸 보면 배후에 조종자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워.”곽승재는 차분한 목소리로 분석을 이어갔고, 고은서도 어느 정도 수긍했다.따져보면, 마재경은 돈 때문에 곽승재와 손잡은 것이고 그녀와 깊은 원한이 없었다.협력 관계가 끝났으면 적당한 선에서 물러나야 정상이지, 이렇게 위험한 방식으로 그녀에게 복수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하지만 마재경이 진심으로 곽승재를 좋아하게 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천천히 사랑을 키워나가고 싶었는데 곽승재가 갑자기 관계를 끊자고 하니 그 분노를 고은서에게 쏟아냈을 수도 있다.고은서가 이 가능성을 말하려는 순간, 간호사가 문을 열고 나오더니 안에 있는 환자분의 부탁이라며 그녀의 상처

  • 어게인, 비긴   제1111화

    ‘분명 넘어뜨렸는데.’고은서는 마재경이 이렇게 빨리 일어날 줄은 몰랐고, 가위를 들고 달려들 줄은 더욱 생각지 못했다.피하기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고은서는 다급한 마음에 전기충격기를 꺼내 마재경의 몸에 들이댔다.“조심해요.”고은서와 마재경이 전기충격기와 가위를 손에 들고 서로 공격하려는 순간, 우람한 체구의 남성이 황급히 달려왔다. 여재훈이었다.그는 고은서를 확 끌어당기고 마재경을 밀쳐냈다.쨍그랑! 전기충격기가 땅에 떨어지며 마재경의 몸에 닿았고, 감전된 마재경은 비명을 질렀다.잠시 비틀거리던 마재경은 눈에 핏발을 세우고 다시 가위를 휘두르며 덤벼들었다.고은서가 마재경을 걷어차려고 다리를 뻗는 순간, 여재훈이 자기 팔로 가위를 막아 그녀를 보호했다.그의 넓은 어깨는 웅대한 산처럼 든든해 보였고,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 품에 안겼을 때처럼 피난처 같은 안정감을 주었다.짝! 가위가 여재훈의 팔을 찌르며 옷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여재훈은 잽싸게 마재경을 발로 걷어찼다.“여재훈 씨, 괜찮으세요?”정신을 차린 고은서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여재훈은 평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괜찮아요.”이때 경비원 몇 명이 달려와 마재경을 제압했다.고은서는 여재훈의 팔을 살펴보았다. 재킷과 셔츠가 찢기고 기다란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고은서는 가슴이 아려와 다급히 말했다.“다치셨네요. 빨리 병원 가서 싸매야 해요.”“고은서 씨도 다쳤으니 같이 가요.”여재훈이 고은서의 쇄골 부위를 가리키며 말했다.아무 느낌도 없었는데, 여재훈의 말을 듣고 나니 쇄골 근처 어깨죽지 부위에서 얼얼한 통증이 느껴졌다.손으로 만져보니 피는 나지 않는 듯했다. 오늘 카라 없는 캐주얼 셔츠를 입은 까닭에 마재경이 가위를 휘두를 때 살짝 긁힌 듯하다.“저는 연고만 바르면 될 것 같아요. 어서 병원 가요.”고은서는 경비원에게 마재경을 경찰서에 넘기라고 말했다.그러고는 기사를 불러오고 여재훈과 함께 뒷좌석에 탔다.여재훈의 팔뚝에 번진 핏자국을 보며 고은서는

  • 어게인, 비긴   제1110화

    여재훈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제가 은서 씨를 회사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이 식사는 여재훈이 초대한 자리였으니 끝까지 책임지고 고은서를 안전하게 회사까지 돌려보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돌아가는 길에 두 사람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아 분위기가 조금 무거웠다.고은서는 여재훈이 자기 딸이 고양이를 학대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는 걸 알기에 여재훈한테 혼자 생각할 시간을 줬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유일 투자은행의 주차장에 도착했다.“은서 씨, 곽승재 씨랑 현재 무슨 사이이신가요?”여재훈이 물었다.고은서는 사실대로 답했다.“그냥 평범한 친구 사이예요.”여재훈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승재 씨는 은서 씨를 많이 신경 쓰는 것 같더군요.”연회 때 곽승재가 고은서를 적극적으로 감싸는 모습을 모두가 똑똑히 봤다.이에 대해 고은서도 부정하지 않았다.“그건 곽승재 씨의 일방적인 감정이에요. 저는 그 사람한테 이성적인 감정은 없어요.”“시은이가 승재 씨를 꽤 마음에 들어 하더라고요. 저한테도 말한 적 있어요. 그와 결혼하고 싶다고.”여재훈은 말을 이었다.“아마 시은이의 질투심도 여기서 시작된 것 같아요. 그래서 은서 씨를 해하려 했던 걸지도 모르죠. 하지만 쿠아는 시은이가 가장 아끼던 반려동물이에요. 시은이가 이유 없이 해칠 리는 없을 겁니다.”고은서는 그 말의 속뜻을 곧바로 이해했다.여재훈의 말은 여시은이 고은서를 향한 질투 때문에 공격적으로 나왔을 수는 있어도, 쿠아는 여시은이 키우는 반려동물이기에 쿠아를 해칠 사람은 아니라고 믿는다는 것 같았다.고은서는 그저 씁쓸하게 웃었다.가족이라는 필터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는 여재훈도 여시은의 본모습을 보게 될 날이 올 것이라 믿었다.고은서는 더 말해봤자 의미가 없다는 걸 알기에 여재훈한테 간단히 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차에서 내린 고은서는 어디선가 여자 하나가 스쳐 지나가는 듯한 그림자를 본 것 같았고, 공기 중에서 약간의 피비린내도 느꼈다.그녀는 주

  • 어게인, 비긴   제1109화

    여재훈은 고은서를 바라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는 물었다.“시은이가 또 무슨 일을 했다는 거죠?”마침 노 사장님이 식전 반찬을 가져다주며 주문한 대표 요리도 곧 준비된다고 알렸다.고은서는 계속해서 말했다.“재훈 씨, 저희 먼저 식사부터 하고 이야기할까요?”고은서는 몹시 배가 고팠다. 만약 지금 이 이야기를 꺼내면 두 사람 모두 식사할 마음이 사라질 것 같았다.여재훈은 고은서의 제안에 동의했다.이 개인 요리 식당의 음식은 색다른 풍미가 있었고, 고은서는 배부르게 먹었다.반면, 여재훈은 거의 먹지 않았다. 마치 그는 고은서를 동반하기 위해 자리를 함께한 것처럼 보였다.식사 중에는 가끔 일상적이고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약 삼십 분 후, 고은서는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배가 너무 부르다고 말했다.아직 못다 한 이야기가 남아있지만, 여재훈은 배부른 고은서를 보며 묘한 만족감을 느꼈다.여재훈은 그녀가 배부르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뻤다.여재훈은 고은서의 찻잔에 물을 따라주며 물었다.“우리 시은이가 또 무슨 잘못을 저질렀던 거죠?”고은서는 찻물을 한 모금 마신 뒤 숨을 깊이 들이쉬고는 여시은이 고양이를 학대한 일에 대해 털어놓았다.“저번에 제가 쿠아 때문에 경찰에 신고를 했었잖아요?”고은서가 말했다.“전 정말 시은이에게 누명을 씌운 게 아니에요. 여시은이 제 눈앞에서 쿠아의 입술을 다치게 했어요. 그리고 평소에도 쿠아를 자주 괴롭혔어요.”고은서의 말을 들은 여재훈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시은이는 쿠아를 그렇게 아꼈어요. 집에서도 항상 품에 안고 다녔고, 쿠아가 뭐라도 먹고 싶어 하면 직접 손으로 먹여줬다니까요. 시은이가 어떻게 그런 짓을 했겠어요?”여재훈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물었다.“은서 씨, 혹시 오해가 있는 건 아니에요? 뭔가 착각하신 거 아닐까요?”평소 여시은은 얌전한 딸의 이미지를 잘 연기해 왔기에 여재훈은 그녀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재훈 씨가 믿기 힘든 거 알아요. 아버지 입장에서야 딸이 그

  • 어게인, 비긴   제1108화

    지난번 숙모에게 가방을 선물했을 때, 숙모가 엄청나게 기뻐했던 모습이 순간 떠올랐다.그래서 이번엔 삼촌에게도 뭔가를 사서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은서는 노 사장님에게 코담배병을 어디서 샀는지 물어봤다. 그리고 가족에게 드릴 선물로 하나 사고 싶다고 말을 덧붙였다.“이건 친구가 선물한 거라 어디서 샀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네.”노 사장님은 미안한 듯 말했다.고은서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그냥 예뻐서 한번 여쭤본 거예요. 나중에 백화점 가서 한번 골라볼게요.”“아가씨는 참 효심이 깊구먼.”노 사장님은 칭찬을 몇 마디 건넨 뒤, 주문한 메뉴를 주방으로 가져갔다.“은서 씨 아버님께서 코담배병을 좋아하시나요? 선물하시려고요?”여재훈이 부드럽게 물었다.고은서는 고개를 저었다.“전 아버지가 없어요. 삼촌께 드리려는 거예요.”여재훈은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그는 고은서를 몇 번밖에 만나지 못했기에 그녀의 가정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도 오늘 처음 들었다.“죄송합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여재훈은 곧바로 사과했다.고은서는 별일 아니라는 듯 웃었다.“괜찮아요. 저희 가족끼리도 잘 지내고 있어요.”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여재훈은 고은서의 그 미소는 어딘가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그때 여재훈의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렸다.전화번호를 확인한 그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받았다.“시은아, 왜 그래... 주사 맞는 게 당연히 좀 아프지. 하지만 주사를 안 맞으면 어떻게 낫겠어... 알겠으니깐 떼쓰지 말고, 의사 말 잘 들어.”전화를 끊고 나서 여재훈은 고은서에게 간단히 상황을 설명했다.“시은이가 아픈데 주사 맞기 싫다고 하네요.”고은서는 여시은의 이름에 반응이 컸다. 예전에 여시은에게 학대받다 죽은 쿠아가 떠올랐다. 그 기억 때문에 속이 불쾌해지고 분노가 스멀스멀 올라왔다.그녀는 말없이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여재훈은 고은서의 반감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그는 조심

  • 어게인, 비긴   제1107화

    여재훈의 말을 들은 고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은서는 여시은이 아픈 시기가 참으로 절묘하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밖의 여론이 여시은에게 불리해서 고은서를 만나고 싶지 않았을 뿐일 것이다.요 며칠, 인터넷에서는 여시은과 관련된 뉴스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고은서가 KK한테 도움을 요청한 것 외에도, 아마 곽승재도 뒤에서 힘을 써준 것 같았다.“원래 연회 다음 날에 시은이를 데리고 직접 사과드리려고 했는데, 며칠간 일이 좀 많아서 오늘로 미뤄졌어요.”여재훈은 이어 말했다.“오늘 아침에 갑자기 시은이가 열이 나서, 제가 혼자 찾아오게 됐습니다.”“은서 씨, 지난 일은 전부 시은이의 잘못입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여재훈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고은서는 담담하게 웃으며 대꾸했다.“재훈 씨의 사과는 저한테 너무 과분해요. 다만 저를 나쁜 사람으로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고은서가 지난번 여씨 가문에서 있었던 일을 언급하고 있다는 걸 알아챈 여재훈은 마음이 더욱 불편해져났다.“제가 도우미와 시은이의 말만 믿었네요. 시은이에게는 그 일에 대해 이미 훈계했고, 요 며칠 집에서 반성하고 있습니다.”고은서는 여시은이 그저 여재훈에게 보여주기 위해 반성하는 척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결코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여재훈은 여시은을 여전히 굳게 믿고 있었고 그녀의 이중적인 모습에도 크게 실망하지 않은 듯했다.고은서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자, 운전 중이던 여재훈도 잠시 침묵을 지켰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한적한 곳에 있는 개인 요리 식당에 도착했다.그 식당은 규모가 너무 크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는 엄청 좋았다.정원에는 다양한 희귀한 꽃들과 식물들이 놓여 있었고 작은 인공 폭포와 휴식용 테이블과 의자들도 마련되어 있었다.입구 쪽의 돌 테이블 위에는 하얀색의 통통한 고양이 두 마리가 게으르게 햇볕을 쬐고 있었다.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니 고은서의 마음이 한결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 어게인, 비긴   제1106화

    송민아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저번에 네가 너무 진지하게 말하길래, 나 진짜 겁먹었잖아.”고은서가 다시 한번 웃으며 잡담하듯 물었다.“민아야, 너 예전에 말했잖아. 너랑 네 오빠는 엄마가 다르다고. 그럼 네 아빠랑 네 오빠 엄마는 이혼하신 거야?”송민아는 사무실 밖을 슬쩍 확인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조용히 말했다.“몰래 엄마한테 물어봤는데, 우리 오빠 엄마는 아빠랑 혼인신고도 안 했대. 둘이 약혼까진 했는데, 무슨 이유인진 모르겠지만 오빠 엄마가 아빠랑 결혼하길 거절했대.”고은서는 눈썹을 찌푸렸다.‘설마 송민준의 엄마도 결혼 안 하고 그를 낳은 걸까?’지난번 고은서가 송민준과 함께 바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그가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주면서 송민준은 어릴 때부터 보호만 받고 자라서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없다고 고은서한테 말한 기억이 있다.그때 그의 말투는 평소의 부드러운 말투가 아니라 약간의 조롱 섞인 느낌이었다. 마치 그의 어린 시절이 순탄치 않았다는 듯이.‘혹시 송민준의 어머니가 결혼도 안 하고 그를 낳아서 상처를 받은 탓일까?’“은서야, 이건 진짜 너한테만 말한 거니까, 절대 우리 오빠한테 묻지 마!”송민아가 신신당부하면서 말했다.“오빠는 이 얘기를 누구한테도 한 적 없어. 분명히 신경 쓰고 있다는 거야. 우리 엄마가 말하는 데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더래.”“오빠는 혼자 살긴 해도 우리 엄마한테는 되게 예의 바른 거 있지. 나도 이 비밀 듣기 전까진 우리 둘이 같은 엄마 뱃속에서 태어난 줄 알았어.”고은서는 절대 이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도, 송민준에게 묻지도 않겠다고 약속했다.“민아야, 혹시 너희 엄마가 네 아빠의 다른 연애 상대에 대해 말한 적 있어?”고은서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참지 못하고 묻는 성격이었다.혹시라도 송민아의 어머니가 송민준 부모의 관계에 끼어든 거라면 송민아의 어머니가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그냥 어른들 옛날 연애사에 호기심이 생긴 거야. 만약 불쾌했

  • 어게인, 비긴   제1105화

    송민준의 단어 사용은 꽤 신박했다.그는 “어젯밤 그 일은, 네가 의도한 거야?”라고 물었다.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가 아니라.그러니까 송민준의 말뜻은 그가 어젯밤 일이 여시은을 고의로 함정에 빠뜨리려고 한 고은서의 계획이었음을 알고 있다는 건가?하지만 그 테라스는 비교적 한적했고 로마식 기둥이 시야를 가려 일반적으로는 사람들이 잘 알아채기 어려운 장소였다.고은서가 로비에서 넘어졌을 때 여시은은 빈 와인잔을 들고 그녀 앞에 서 있었다. 이 상황을 봤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시은이 고은서를 민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그런데 어떻게 송민준은 고은서가 여시은을 속이기 위해 고육지계를 쓴 걸 알아챈 걸까?고은서는 아예 직설적으로 물었다.“민준 오빠, 왜 그렇게 물어보는 거야? 설마 어젯밤 내가 넘어졌던 게 자작극이라고 생각한 거야?”그 말을 듣자 송민준은 웃으며 물었다.“은서야, 그런 뜻이 아니야. 난 그냥 그 농장 영상 말이야, 그걸 일부러 어젯밤 그 시점에 터뜨린 건지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알고 보니 송민준은 농장 영상을 묻고 있었던 것이다.그날 송민준의 컴퓨터에서 영상을 확인하고 난 후, 송민아가 고은서에게 이 영상을 바로 여재훈에게 전달할 거냐고 물었을 때, 고은서는 송민준을 경계해 일부러 연회 이후에 결정하겠다고 말했었다.하지만 실제로는 연회 그 자리에서 바로 그 영상을 공개해 버렸다.송민준이 의심하는 것도 정상이다.“맞아.” 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원래는 어젯밤이 지나고 여재훈 씨를 따로 찾아가려고 했는데, 그 상황에서는 여시은이 그런 행동을 할 만한 동기를 증명하려면 그걸 꺼낼 수밖에 없었어.”송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다른 뜻은 없었어.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네 선택이 맞아, 난 항상 널 지지할 거니깐.”그의 표정을 본 고은서는 확신했다. 송민준은 고은서가 아직 그를 경계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그의 성격상, 어젯밤 그녀가 계획적으로 움직였다는 것쯤은 쉽게 짐작했을 테니까. 하지만 송민준

  • 어게인, 비긴   제1104화

    박지연은 계속해서 불만을 터뜨렸다.“내가 보기엔 여시은은 태생이 못돼먹었어!”“이번에 그렇게 크게 당했으니 더더욱 널 원망할 거야. 너 조심 좀 해.”박지연이 걱정스럽게 당부했다.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각을 세우기로 마음먹었기에 여시은과 평화롭게 지낼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앞으로는 여시은을 더 철저히 경계할 것이다.“듣자 하니 곽승재가 내내 널 감싸줬다며? 너한테 점점 마음이 가는 모양이야.”박지연이 코웃음을 쳤다.어젯밤 곽승재가 고은서를 계속 도와줬던 건 사실이었다. 증거를 공개하자고 제안한것도 곽승재의 생각이었고 마지막에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줬다. 곽승재가 고은서에게 큰 도움을 준 셈이었다.하지만 고은서는 곽승재에 대한 이야기를 박지연과 깊이 나누지 않았다.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던 중 박지연이 고은서에게 뜬금없는 소문 하나를 전했다.“우리 과장님한테서 들었는데, 어제 혜린 씨가 다니는 병원에 조 여사님이 찾아가서 난리를 쳤대. 혜린 씨 남자관계가 복잡하다고, 다른 남자랑 팔짱 낀 사진까지 들고 와서 공개하면서 혜린 씨랑 그 자리에서 머리끄덩이 잡고 싸움 났대!”고은서는 지난번 소동 이후 손자를 중시하는 조수연이 한동안은 조용할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고작 며칠 만에 또 난리를 친 거였다. 조수연의 전투력은 엄청 대단했다.“아니, 그러다 혜린 씨 혹시라도 애를 지우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그래?”고은서가 물었다.박지연은 말했다.“조 여사님 말로는 혜린 씨 뱃속 애가 자기 아들 애가 아닐 수도 있다고 의심해서 혜린 씨를 끌고 가서 친자 확인하자고 했대. 그래서 둘이 몸싸움까지 벌어져서 이미지도 최악이라 혜린 씨는 한 달 정직당했어.”“혜린 씨 배속에 애가 온승준 씨 애가 아니라고? 그럼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그 집에 들어가려고 애쓰는 거야? 그냥 진짜 애 아빠랑 결혼하면 될걸...”고은서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소문엔 그 남자가 유부남에 애까지 있다고 하더라. 자세한 건 나도 몰라. 그냥 과장님이 흘린 얘기야.”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