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198화

Author: 류한나
곽승재도 예전에 자신을 몇 번 보호해준 적이 있고 어젯밤에도 자신을 도와주려다가 습격당할 뻔했다.

그리고 곽승재가 진짜 다쳐서 그것을 빌미로 삼고 이혼을 미룬다면 고은서는 더 난처한 상황에 부닥쳤을 것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고은서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육현석이 병실에 들어왔다.

“형수님, 형이 검사를 다 받았어요. 형수님을 온밤 간호하느라 한숨도 자지 못해서 저의 병실에서 좀 쉬라고 했어요.”

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형이 허리 근육을 심하게 다쳤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병원에 며칠 동안 입원해서 휴식을 취하는 게 좋다고 하셨는데 형이 입원할 시간이 안 나서 어혈을 완화하는데 좋은 약만 조금 처방받았어요. 매일 잊지 않고 발라야 한대요.”

고은서는 육현석이 자기더러 곽승재에게 약을 발라주라고 부탁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녀는 피식 웃더니 자신의 어깨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를 어쩜 좋아요? 안타깝게도 저는 어깨를 다쳐서 힘을 쓰지 못해요. 약 바르는 일은 제가 어떻게 도와줄 방법이 없네요.”

전생에 고은서는 곽승재에게 밀려서 척추를 다친 적이 있는데 보름이나 입원했었다.

그에 비하면 지금 곽승재의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육현석은 말길을 돌렸다.

“형수님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는 아니에요. 형의 상처는 허리에 있어서 형이 스스로 약을 바를 수 있어요. 근데 형수님의 상처는 어깨에 있어서 약을 바르기 힘들지 않으세요? 형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은데...”

고은서는 단칼에 거절했다.

“아니요. 내일 아줌마가 오기로 했어요. 저는 아줌마한테 부탁하면 돼요.”

육현석은 멈칫하더니 갑자기 고은서에게 사과했다.

“제가 전에 형수님에게 했던 막말은 다 제가 입이 가벼워서 헛소리를 제친 거니까 절대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고은서는 육현석의 말을 마음에 담아둘 여지가 없었다.

육현석이 고은서를 무시했던 것은 곽승재가 그녀를 거들떠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곽승재의 형제나 친구들이 자신을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고은서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어게인, 비긴   제199화

    “너 박지연 씨를 만나고 싶어서 그러는 거지?”곽승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근데 지연 씨 이미 결혼하셨어.”속셈을 들켜버린 육현석은 화를 내지 않았지만 풀이 조금 죽었다.“왜 한창 젊은 나이에 다들 일찍 결혼하는 거지? 형수님은 예외지만, 형수님은 형을 너무 사랑해서 결혼했을 거야.”육현석이 얼른 말을 덧붙이자 곽승재는 또 웃었다.“박지연 씨의 남편은 큰 병원의 주치의이야. 그럼 박지연 씨는 사업에 성공하고 듬직한 사람을 좋아한다는 거 아니겠어. 너에게 기회가 있었다 해도 박지연 씨는 널 좋아하지 않았을 거니까 꿈 깨.”육현석은 어이가 없었다.‘형도 뒤끝이 장난 아니네. 역시 두 사람 부부 아니라 할까 봐. 뒤끝이 긴 것도 똑같아.’육현석은 두 사람에게서 이중으로 상처를 받았다.이튿날 아침, 박지연은 고은서를 위해 준비한 죽을 들고 병원에 도착했다.“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너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큰 술병을 몸으로 막은 거야!”고은서를 보자마자 박지연은 투덜거렸다.“네 목숨을 걸고 승재 씨를 구했으면서 승재 씨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았다는 말이 나와? 누가 믿냐?”고은서는 한숨을 쉬었다. 누구라도 이 소식을 알고 나면 박지연처럼 더는 자신을 믿지 않을 게 분명했다.‘사람은 역시나 바보 같은 짓을 벌이면 안 돼. 아니면 이렇게 문제가 끊이질 않아.’“다친 걸 봐서 그만 말하면 안 돼? 나도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고 있어.”고은서가 용서를 빌었다.박지연은 고은서의 볼을 꼬집으며 말했다.“네가 그토록 위험을 무릅쓰고 곽승재 씨를 지켰다는 것은 아직도 그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거 아니야? 내가 볼 때 차라리 이혼을 관둬. 승재 씨는 몸매 좋지, 얼굴도 잘생겼지, 게다가 유명한 GS 그룹의 대표잖아. 어디 가서 이렇게 돈 많고 잘생긴 남편을 찾아. 그리고 싸움할 때도 아주 멋있더라. 지금 곽승재 씨도 너를 많이 신경 쓰는 것 같던데, 그냥 그렇게 같이 지내.”“너에게 중재인의 소질이 있는 건 처음 알았네.”고은서는 박지연을

  • 어게인, 비긴   제200화

    박지연의 이름을 들어서인지 온 닥터는 고개를 들어 고은서가 아닌 박지연을 한번 쳐다보았다.박지연의 눈동자는 순간 초롱초롱해지더니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그러나 온닥터는 박지연과 인사하지 않고 그녀를 한 번 쳐다보고는 시선을 돌려 두 사람을 지나쳐 의사들과 앞으로 걸어갔다.박지연의 미소는 선명하게 사그라들었다.고은서는 의아해서 물었다.“네 남편 왜 너와 인사 안 해? 어젯밤에 클럽 간 것 때문에 화났어?”박지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우리 남편 어젯밤에 수술이 잡혀 있어서 집에 돌아오지 않았어. 내가 나간 걸 모를 거야.”“그럼 왜 너를 모르는 사람 취급하는데?”박지연이 말했다.“오늘, 이 병원에 교류하러 온다고 했어. 주변에 그렇게 많은 동료가 있는데 나랑 인사하면 또 한바탕 자기소개해야 할 거 아니야. 시간을 낭비하기 싫었나 보지.”“널 쭉 이렇게 대했던 거야?”고은서가 묻자 박지연은 웃으며 말했다.“그런 건 아니야. 그 사람도 자기가 해야 할 일은 다 하고 있고 날 충분히 존중해줘. 난 이 잘생긴 얼굴을 매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해.”고은서는 어이가 없었다.‘이런 게 바로 유유상종이라는 건가...’사랑에 눈이 먼 고은서 옆에 똑같이 사랑에 눈이 먼 박지연이 있었다.두 사람이 정원에서 한참 산책하고 있을 때 간호사가 와서 고은서에게 재검사받을 시간이 되었다고 귀띔했다.병실에 돌아가자 고은서를 찾으러 온 육현석은 박지연을 보더니 친근하게 인사를 건넸다.“지연 씨, 안녕하세요.”박지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마의 상처는 괜찮으시죠?”육현석이 대답했다.“네. 제가 항상 건강한데 어제는 단순한 사고였어요.”두 사람이 편하게 대화하는 것을 보고, 고은서가 입을 열었다.“지연아, 현석 씨랑 얘기 좀 하고 있어. 나 검사받고 올게.”“형수님, 형이 회사에 처리해야 할 일이 좀 있어서 이른 아침에 회사에 갔어요. 좀 있다가 와서 형수님을 데리고 퇴원할 거예요.”육현석이 대신 전달했다.“이것 봐. 승

  • 어게인, 비긴   제201화

    고은서는 곽승재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어젯밤에 허리를 다친 게 아니라 머리를 다친 거 아니야? 말이 그렇다는 거지.’고은서는 이토록 지루한 문제를 상대하기 귀찮아서 곽승재를 무시하고 병실로 들어갔다.곽승재도 뒤늦게 자신이 너무 예민하게 반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은서가 별생각 없이 뱉은 말이었는데, 곽승재가 그렇게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두었을 줄이야?곽승재는 자신의 이 행위를 어젯밤에 제대로 휴식하지 못한 탓으로 돌렸다.병실 안에서, 박지연과 육현석은 사이좋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고은서가 병실에 들어갈 때 두 사람은 마침 카톡을 추가하고 있었다.“검사 다 받았어?”고은서를 보자마자 박지연은 부리나케 그녀를 병실 화장실로 끌고 가서 문까지 잠갔다.“왜 이렇게 비밀스럽게 행동해?”고은서가 물었다.박지연은 나지막한 소리로 흥분하며 물었다.“현석 씨한테 들었어. 승재 씨 입술의 상처 네가 물어서 생긴 거라며?”박지연이 묻지 않았더라면 고은서는 이 일을 벌써 잊었을 것이었다.오늘 곽승재의 입술은 많이 좋아진 것 같았다.‘현석 씨도 참 세심해. 그걸 다 발견하다니.’“사실 나도 어젯밤에 승재 씨의 입술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깊이 파고들 겨를이 없었어. 근데 현석 씨도 나와 같은 의문이 들어서 어젯밤 병실에서 승재 씨를 떠봤다고 하더라고.”박지연은 말하면서 감탄을 자아냈다.“너의 목 뒤에 승재 씨가 남긴 키스 자국이 있고, 넌 승재 씨의 입술을 깨물었고. 보아하니 두 사람 엄청 치열하게 사네.”치열하기는 개뿔.고은서는 박지연을 반박하려다 갑자기 무언가 떠올랐다.“내 목 뒤에 키스 자국이 있다는 거, 너 설마 현석 씨한테 말했어?”이 말이 육현석의 귀에 들어갔다면 아마 곽승재의 귀에도 곧 전해질 것이었다.만약 그 키스 자국이 곽승재가 남긴 게 아니었다면, 그에게 빌미 잡힐 게 뻔했다.“가십은 다른 사람이랑 공유해야 제맛이지. 아니면 무슨 재미로 그걸 수집해.”박지연은 당당하게 말했다.“두 사람 서로 안 지 몇 시간이나 되었

  • 어게인, 비긴   제202화

    곽승재는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은서의 커다란 두 눈에서 가십거리에 대한 갈망의 눈빛이 초롱초롱한 것을 보더니, 그는 덤덤하게 대답했다.“현석이도 알고 있어. 너무 지나친 행동은 하지 않을 거야. 현석이는 자신의 감정을 스스럼없이 표현할 뿐이야.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걔도 어려움을 알고 물러서게 될 거야.”이 말을 들은 후, 고은서는 의외로 실망에 찬 표정을 지었다.“현석 씨더러 며칠 더 견지하라고 하면 안 될까?”곽승재는 수상쩍은 눈으로 고은서를 바라보았다.육현석이 며칠 더 견지하다 보면 박지연의 남편이 이 일을 알아차려 긴장감이 생겨 박지연에게 관심을 더 줄지도 모른다.하지만 고은서는 이 사실을 곽승재에게 알려줄 수 없었다.이에 고은서는 말했다.“당신과는 제대로 얘기할 수 없어.”“...”기사는 고은서를 예원 별장에 데려다주었다.고은서가 차에서 내리기 전, 곽승재는 담담하게 얘기했다.“저녁에 내가 돌아와서 당신 어깨에 약 발라줄게. 아주머니한테 부탁드리지 마.”어젯밤에 육현석도 한번 얘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고은서는 여전히 거절하였다.“괜찮아. 아줌마한테 부탁하면 돼.”곽승재는 희로애락을 드러내지 않고 말했다.“내 허리도 다쳐서 어혈을 풀어줘야 하잖아. 먼저 당신 갖고 연습 좀 해보려고.”이에 고은서는 대답했다.“차라리 당신 입을 꿰매면 우리 두 사람의 상처가 더 빨리 났는데 도움이 될 거야.”말을 마친 뒤, 고은서는 고개도 안 돌리고 가버렸다.곽승재는 미간을 찌푸렸다.‘왜 은서의 반응은 내가 예상했던 거랑 다르지?’곽승재는 육현석처럼 불쌍해 보이는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그래서 말이 되는 다른 이유를 둘러댔지만, 고은서는 조금도 고맙게 여기지 않았다.‘여자란 참말로 귀찮고 속을 알기 어려운 존재야.’오후, 고은서가 마침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민시후의 메시지를 받았다.[물고기가 미끼를 물었어.]고은서는 정신이 바짝 들었다.[낚을 수 있겠어?][조급해하지

  • 어게인, 비긴   제203화

    말을 마친 뒤, 고은서가 떠나려고 할 때, 뒤에서 민시후의 사악한 소리가 울렸다.“미끼는 이미 내다 던졌는데 그물을 걷지 않을 거야?”고은서는 발걸음을 멈칫하더니 이를 악물며 말했다.“민시후, 너 나한테 메시지를 보낼 때부터 이미 함정을 파 둔 거지?”민시후는 무심한 듯 대답했다.“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야지. 우리는 서로 원하는 이득을 취하는 거지.”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송민아는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사람처럼, 일어서서 그들한테 다가왔다.“시후 오빠, 저쪽으로 가서 앉아줄 수 있어요? 저 은서 씨랑 단둘이 얘기 좀 하고 싶어요.”이 말을 들은 민시후는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물었다.“너 은서한테 무슨 말을 하려고? 경고하는데 네가 은서를 괴롭히면 아무리 네 오빠가 나선다고 해도 난 절대로 널 가만 두지 않을 거야.”송민아의 정교한 얼굴에는 일말의 슬픔이 서렸다.“걱정하지 마세요. 오빠가 여기에 있는데 제가 어떻게 감히 은서 씨를 괴롭히겠어요.”“아마 해라고 해도 못 할 거야.”민시후는 콧방귀를 뀌고는 표정이 확 변하더니 다정하게 고은서를 보면서 말했다.“무서워하지 마. 난 저쪽에 있을 테니 무슨 일이 생기면 얼마든지 날 불러.”고은서는 민시후를 한 눈 노려보고는 상대하기도 귀찮았다.민시후가 연신 뒤돌아보며 자리를 뜬 후, 송민아는 크게 숨을 한 모금 들이마시고 말했다.“은서 씨, 또 보네요.”송미아의 눈빛은 전보다 많이 굳건해졌다. 마치 무슨 사실을 받아들이기라도 한 것처럼.고은서는 도저히 어린 아가씨가 상심하고 슬퍼하는 꼴을 못 봐주겠기에 직설적으로 얘기했다.“민아 씨, 조금 전 민시후가 헛소리한 거예요.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그리고 지난번에 제가 민아 씨한테 거짓말했어요. 민시후는 저를 하나도 안 좋아해요. 오늘도 저는 저 사람의 협박을 받고 온 거예요. 민아 씨가 민시후를 좋아하는 거면 걱정하지 말고 대담하게 추구하세요. 저는 절대로 두 사람 사랑의 걸림돌이 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민아

  • 어게인, 비긴   제204화

    다급하면서 애교가 섞인 ‘여보’라는 두 글자가 귀에 전해질 때, 곽승재는 자기가 전화를 잘못 건 줄 알았다.그는 핸드폰을 들어 통화 상대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보았는데 고은서가 맞았다.하지만 요새 고은서는 줄곧 그에게 소외와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었다. 이렇게 갑자기 열정적으로 나오는 건 아마도 빠져나가기 어려운 골칫거리에 엮인 것 같았다.“당신 지금 어디야?”곽승재는 바로 확실하게 물었다.고은서는 곽승재에게 식당의 위치를 알려주었다.그는 고은서가 지금 누구랑 같이 있는지, 왜 그곳에 갔는지는 묻지도 않고 바로 말했다.“내가 데리러 갈게.”전화를 끊은 뒤 고은서는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송민아는 너무 귀찮게 굴고 민시후는 뒤통수 때리기 전문이었다.고은서는 그들의 사랑싸움에 엮이고 싶지 않았다.바로 그때 곽승재의 전화가 아주 타이밍 좋게 걸려 온 것이었다.“민아 씨, 저는 당신에게 아무것도 가르쳐줄 수 없어요.”고은서는 정색하며 말했다.“제가 한 말들은 다 사실이에요. 민시후는 저를 좋아하지도 않고 저를 좋아할 리도 없어요. 민아 씨는 아직 어리고 예쁜 데다가 집안도 꽤 좋아 보이는데 민시후라는 나무에 목을 매 죽을 필요는 없잖아요.”환생하고 난 뒤로부터 고은서는 사람들에게 너무 사랑에 목을 매지 말라고 설득했다.인생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도 많았기에 온종일 남자의 주위만 맴도는 건 아주 어리석은 짓이었다.게다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남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하지만 고은서가 좋은 마음으로 건넨 충고는 송민아의 고마움을 받지 못했을뿐더러 그녀의 얼굴에는 ‘역시’라는 표정이 역력했다.“은서 씨,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해요. 제가 당신의 설교를 들을 필요까지는 없어요.”송민아는 조금 화가 났다.“제가 진심으로 은서 씨한테 가르침을 청하는데 은서 씨는 어떻게 빈말로 저를 대충 얼버무릴 수가 있어요? 제가 말했었잖아요. 저는 시후 오빠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요. 이번에 제가 돌아갔을 때, 오빠 아버님도 명

  • 어게인, 비긴   제205화

    아마도 곽승재는 조금 전 민시후가 고은서를 가로막은 장면을 본 것 같았다.고은서는 곽승재에게 설명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찌 됐든 곽승재와 백유미의 관계는 그들보다 더 친했다.‘승재도 설명을 안 하는데 내가 왜 그에게 설명해야 해?’“출발해 주세요.”고은서가 기사에게 말했다.기사는 고개를 돌려 곽승재를 보면서 그의 뜻을 기다렸다.곽승재는 눈길을 거두고는 기사에게 출발하라고 눈짓했다.그러고는 고은서에게 물었다.“당신 또 민시후 만나러 왔어?”“왜 말을 그렇게 시큰거리게 해?”고은서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당신이 민시후랑 사이가 안 좋은 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내가 그 사람을 만나면 안 돼?”곽승재는 한 소리를 먹었다.“고은서, 당신 나랑 좋은 말로 얘기하면 안 돼?”“미안한데 난 뒤끝이 좀 긴 편이라 당신한테 좋은 말로 못 하겠는 걸 어떡해.”역시 전화에서 들은 그런 애교는 다시 나타날 수 없었다.곽승재는 이 일로 더는 고은서와 싸우지 않았다. 그는 말길을 돌려 물었다.“방금 무슨 일이 있었어? 민시후가 당신을 난처하게 했어?”어찌 됐든 방금 곽승재가 때맞춰 고은서를 곤경에서 구해준 건 사실이었다.고은서는 더는 곽승재에게 원망스러운 말투로 말하지 않았다.“아주 작은 일이야. 난처하게 군 것까지는 아니야.”민시후가 꿍꿍이를 갖고 고의로 고은서를 불러낸 것은 맞았지만, 그의 손에는 아직 고은서가 원하는 물건이 있었기에 그녀는 이 일로 민시후랑 뒤틀어지면 안 되었다.“당신이 나한테 전화한 건 무슨 일이야?”고은서는 이제 생각이 나서 되물었다.곽승재는 고은서가 사실을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챘다.그는 고은서가 말하고 싶지 않으면 아무리 자기가 캐묻는다고 해도 절대 말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곽승재는 마음이 조금 거북한 것을 뒤로하고 고은서에게 물었다.“당신 어깨는 어때? 조금 전에 힘을 세게 쓰지는 않았지?”“괜찮아.”고은서는 차조차도 몰지 않았다.지금 그녀는 목숨을 엄청나게 아꼈기에 의사의 말

  • 어게인, 비긴   제206화

    고은서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 일도 걱정할 필요 없어. 아버님 앞에선 절대 이혼 얘기를 하지 않을 거야. 이혼 증서가 있어도 되도록 남들 모르게 숨기고 있을게.”곽승재는 고은서의 배려에 전혀 기쁘지 않았다.“지금 저택으로 가.”곽승재는 명령하듯이 말했다.“뭐라는 거야? 내가 안 가겠다고 했잖아.”고은서는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아직 이혼한 건 아니니까 내 아내의 의무는 다해야 하지 않겠어?”그가 대답했다.고은서가 아무렇지 않게 민시후를 만나러 오면서도 자신과 함께 저택으로 가는 걸 싫다고 하는 점이 정말 그를 빡치게 했다.고은서는 그의 강경한 태도를 보고 더 이상 그와 따지고 싶지 않았다.호원 저택은 이 구역 황금 지대에 위치한 규모가 꽤 큰 3층 고딕 스타일의 건물로 무려 앞뒤로 정원과 잔디 마당이 있었다.고은서는 곽승재의 아내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엔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곽승재는 대학 졸업 후 이곳을 떠나 자기 집에서 혼자 살았고, 결혼 후에는 예원 별장을 사들여 자기 새 거처로 정했다.지금 그의 부모님도 저택에 계시지 않고 할머니도 본가에 살고 있어 고은서는 이곳에 올 필요가 없었다.그러나 그의 부모님의 거처가 너무 궁금해 곽승재에게 한번 부탁한 적이 있다.“오빠, 나랑 함께 저택으로 가지 않을래? 오빠의 아내로서 부모님 댁에 한 번쯤은 인사하러 가봐야 하지 않겠어?”곽승재는 그녀의 말을 듣더니 차갑게 대답했다.“내 부모님은 국내에 안 계셔. 갈 필요 없어.”고은서는 매우 실망했지만 괜히 그를 불쾌하게 한 것 같아 그 후부터 이 일을 다시 꺼내지 않았다.하지만 이혼을 앞두고 곽승재가 직접 그녀를 데리고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운전사가 차를 대자 대문 앞에 있던 하인이 공손하게 마중했다.“오셨습니까, 도련님.”하지만 그의 뒤에 서 있는 금시 초면인 고은서를 보고 그녀는 잠시 멈칫했다.그러자 곽승재는 자연스럽게 고은서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고은서야.”이 이름을 듣자 하인은 곧바로 인

Latest chapter

  • 어게인, 비긴   제1112화

    의사가 여재훈의 상처를 처치하는 사이, 고은서의 휴대폰이 울렸다.번호를 보니 곽승재였다.고은서는 여재훈에게 말하고 복도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은서야, 너 사고를 당했다며? 너와 여 대표님이 모두 다쳤다고?”곽승재가 다급히 물었다.임신 오해 사건 이후, 두 사람이 모든 것을 터놓고 얘기한 뒤로 그녀를 몰래 보호하던 인원을 철수한 상태였다.하지만 운전기사는 여전히 주민기가 배치한 인원이어서 고은서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알 수 있었다.고은서는 어디서 들었는지 캐묻지 않았다.“괜찮아. 마재경이 갑자기 유일 투자은행 주차장에서 나를 습격했어. 여재훈 씨가 막아주다가 팔을 다치셨고.”“나는 지금 출장 중이라 경찰서 쪽에 다른 사람을 보냈어.”곽승재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바로 해성으로 돌아갈게.”고은서는 급히 돌아올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여긴 별일 없으니까 일에 집중해. 여재훈 씨의 상처 처치가 끝나면 경찰서로 가서 마재경을 만날 거야.”“이쪽 일은 거의 마무리됐어. 내가 돌아가면 같이 경찰서에 가자.”곽승재는 설명을 이어갔다.“지난번 마재경이 다쳤을 때 병원을 방문해 더 이상 협조가 필요 없다고 통보하고 충분한 보상금도 지급했어.”“다시는 네 앞에 나타나 존재감을 과시하지 말라고 몇 번 경고했는데 갑자기 나타난 걸 보면 배후에 조종자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워.”곽승재는 차분한 목소리로 분석을 이어갔고, 고은서도 어느 정도 수긍했다.따져보면, 마재경은 돈 때문에 곽승재와 손잡은 것이고 그녀와 깊은 원한이 없었다.협력 관계가 끝났으면 적당한 선에서 물러나야 정상이지, 이렇게 위험한 방식으로 그녀에게 복수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하지만 마재경이 진심으로 곽승재를 좋아하게 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천천히 사랑을 키워나가고 싶었는데 곽승재가 갑자기 관계를 끊자고 하니 그 분노를 고은서에게 쏟아냈을 수도 있다.고은서가 이 가능성을 말하려는 순간, 간호사가 문을 열고 나오더니 안에 있는 환자분의 부탁이라며 그녀의 상처

  • 어게인, 비긴   제1111화

    ‘분명 넘어뜨렸는데.’고은서는 마재경이 이렇게 빨리 일어날 줄은 몰랐고, 가위를 들고 달려들 줄은 더욱 생각지 못했다.피하기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고은서는 다급한 마음에 전기충격기를 꺼내 마재경의 몸에 들이댔다.“조심해요.”고은서와 마재경이 전기충격기와 가위를 손에 들고 서로 공격하려는 순간, 우람한 체구의 남성이 황급히 달려왔다. 여재훈이었다.그는 고은서를 확 끌어당기고 마재경을 밀쳐냈다.쨍그랑! 전기충격기가 땅에 떨어지며 마재경의 몸에 닿았고, 감전된 마재경은 비명을 질렀다.잠시 비틀거리던 마재경은 눈에 핏발을 세우고 다시 가위를 휘두르며 덤벼들었다.고은서가 마재경을 걷어차려고 다리를 뻗는 순간, 여재훈이 자기 팔로 가위를 막아 그녀를 보호했다.그의 넓은 어깨는 웅대한 산처럼 든든해 보였고,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 품에 안겼을 때처럼 피난처 같은 안정감을 주었다.짝! 가위가 여재훈의 팔을 찌르며 옷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여재훈은 잽싸게 마재경을 발로 걷어찼다.“여재훈 씨, 괜찮으세요?”정신을 차린 고은서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여재훈은 평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괜찮아요.”이때 경비원 몇 명이 달려와 마재경을 제압했다.고은서는 여재훈의 팔을 살펴보았다. 재킷과 셔츠가 찢기고 기다란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고은서는 가슴이 아려와 다급히 말했다.“다치셨네요. 빨리 병원 가서 싸매야 해요.”“고은서 씨도 다쳤으니 같이 가요.”여재훈이 고은서의 쇄골 부위를 가리키며 말했다.아무 느낌도 없었는데, 여재훈의 말을 듣고 나니 쇄골 근처 어깨죽지 부위에서 얼얼한 통증이 느껴졌다.손으로 만져보니 피는 나지 않는 듯했다. 오늘 카라 없는 캐주얼 셔츠를 입은 까닭에 마재경이 가위를 휘두를 때 살짝 긁힌 듯하다.“저는 연고만 바르면 될 것 같아요. 어서 병원 가요.”고은서는 경비원에게 마재경을 경찰서에 넘기라고 말했다.그러고는 기사를 불러오고 여재훈과 함께 뒷좌석에 탔다.여재훈의 팔뚝에 번진 핏자국을 보며 고은서는

  • 어게인, 비긴   제1110화

    여재훈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제가 은서 씨를 회사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이 식사는 여재훈이 초대한 자리였으니 끝까지 책임지고 고은서를 안전하게 회사까지 돌려보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돌아가는 길에 두 사람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아 분위기가 조금 무거웠다.고은서는 여재훈이 자기 딸이 고양이를 학대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는 걸 알기에 여재훈한테 혼자 생각할 시간을 줬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유일 투자은행의 주차장에 도착했다.“은서 씨, 곽승재 씨랑 현재 무슨 사이이신가요?”여재훈이 물었다.고은서는 사실대로 답했다.“그냥 평범한 친구 사이예요.”여재훈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승재 씨는 은서 씨를 많이 신경 쓰는 것 같더군요.”연회 때 곽승재가 고은서를 적극적으로 감싸는 모습을 모두가 똑똑히 봤다.이에 대해 고은서도 부정하지 않았다.“그건 곽승재 씨의 일방적인 감정이에요. 저는 그 사람한테 이성적인 감정은 없어요.”“시은이가 승재 씨를 꽤 마음에 들어 하더라고요. 저한테도 말한 적 있어요. 그와 결혼하고 싶다고.”여재훈은 말을 이었다.“아마 시은이의 질투심도 여기서 시작된 것 같아요. 그래서 은서 씨를 해하려 했던 걸지도 모르죠. 하지만 쿠아는 시은이가 가장 아끼던 반려동물이에요. 시은이가 이유 없이 해칠 리는 없을 겁니다.”고은서는 그 말의 속뜻을 곧바로 이해했다.여재훈의 말은 여시은이 고은서를 향한 질투 때문에 공격적으로 나왔을 수는 있어도, 쿠아는 여시은이 키우는 반려동물이기에 쿠아를 해칠 사람은 아니라고 믿는다는 것 같았다.고은서는 그저 씁쓸하게 웃었다.가족이라는 필터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는 여재훈도 여시은의 본모습을 보게 될 날이 올 것이라 믿었다.고은서는 더 말해봤자 의미가 없다는 걸 알기에 여재훈한테 간단히 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차에서 내린 고은서는 어디선가 여자 하나가 스쳐 지나가는 듯한 그림자를 본 것 같았고, 공기 중에서 약간의 피비린내도 느꼈다.그녀는 주

  • 어게인, 비긴   제1109화

    여재훈은 고은서를 바라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는 물었다.“시은이가 또 무슨 일을 했다는 거죠?”마침 노 사장님이 식전 반찬을 가져다주며 주문한 대표 요리도 곧 준비된다고 알렸다.고은서는 계속해서 말했다.“재훈 씨, 저희 먼저 식사부터 하고 이야기할까요?”고은서는 몹시 배가 고팠다. 만약 지금 이 이야기를 꺼내면 두 사람 모두 식사할 마음이 사라질 것 같았다.여재훈은 고은서의 제안에 동의했다.이 개인 요리 식당의 음식은 색다른 풍미가 있었고, 고은서는 배부르게 먹었다.반면, 여재훈은 거의 먹지 않았다. 마치 그는 고은서를 동반하기 위해 자리를 함께한 것처럼 보였다.식사 중에는 가끔 일상적이고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약 삼십 분 후, 고은서는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배가 너무 부르다고 말했다.아직 못다 한 이야기가 남아있지만, 여재훈은 배부른 고은서를 보며 묘한 만족감을 느꼈다.여재훈은 그녀가 배부르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뻤다.여재훈은 고은서의 찻잔에 물을 따라주며 물었다.“우리 시은이가 또 무슨 잘못을 저질렀던 거죠?”고은서는 찻물을 한 모금 마신 뒤 숨을 깊이 들이쉬고는 여시은이 고양이를 학대한 일에 대해 털어놓았다.“저번에 제가 쿠아 때문에 경찰에 신고를 했었잖아요?”고은서가 말했다.“전 정말 시은이에게 누명을 씌운 게 아니에요. 여시은이 제 눈앞에서 쿠아의 입술을 다치게 했어요. 그리고 평소에도 쿠아를 자주 괴롭혔어요.”고은서의 말을 들은 여재훈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시은이는 쿠아를 그렇게 아꼈어요. 집에서도 항상 품에 안고 다녔고, 쿠아가 뭐라도 먹고 싶어 하면 직접 손으로 먹여줬다니까요. 시은이가 어떻게 그런 짓을 했겠어요?”여재훈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물었다.“은서 씨, 혹시 오해가 있는 건 아니에요? 뭔가 착각하신 거 아닐까요?”평소 여시은은 얌전한 딸의 이미지를 잘 연기해 왔기에 여재훈은 그녀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재훈 씨가 믿기 힘든 거 알아요. 아버지 입장에서야 딸이 그

  • 어게인, 비긴   제1108화

    지난번 숙모에게 가방을 선물했을 때, 숙모가 엄청나게 기뻐했던 모습이 순간 떠올랐다.그래서 이번엔 삼촌에게도 뭔가를 사서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은서는 노 사장님에게 코담배병을 어디서 샀는지 물어봤다. 그리고 가족에게 드릴 선물로 하나 사고 싶다고 말을 덧붙였다.“이건 친구가 선물한 거라 어디서 샀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네.”노 사장님은 미안한 듯 말했다.고은서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그냥 예뻐서 한번 여쭤본 거예요. 나중에 백화점 가서 한번 골라볼게요.”“아가씨는 참 효심이 깊구먼.”노 사장님은 칭찬을 몇 마디 건넨 뒤, 주문한 메뉴를 주방으로 가져갔다.“은서 씨 아버님께서 코담배병을 좋아하시나요? 선물하시려고요?”여재훈이 부드럽게 물었다.고은서는 고개를 저었다.“전 아버지가 없어요. 삼촌께 드리려는 거예요.”여재훈은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그는 고은서를 몇 번밖에 만나지 못했기에 그녀의 가정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도 오늘 처음 들었다.“죄송합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여재훈은 곧바로 사과했다.고은서는 별일 아니라는 듯 웃었다.“괜찮아요. 저희 가족끼리도 잘 지내고 있어요.”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여재훈은 고은서의 그 미소는 어딘가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그때 여재훈의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렸다.전화번호를 확인한 그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받았다.“시은아, 왜 그래... 주사 맞는 게 당연히 좀 아프지. 하지만 주사를 안 맞으면 어떻게 낫겠어... 알겠으니깐 떼쓰지 말고, 의사 말 잘 들어.”전화를 끊고 나서 여재훈은 고은서에게 간단히 상황을 설명했다.“시은이가 아픈데 주사 맞기 싫다고 하네요.”고은서는 여시은의 이름에 반응이 컸다. 예전에 여시은에게 학대받다 죽은 쿠아가 떠올랐다. 그 기억 때문에 속이 불쾌해지고 분노가 스멀스멀 올라왔다.그녀는 말없이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여재훈은 고은서의 반감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그는 조심

  • 어게인, 비긴   제1107화

    여재훈의 말을 들은 고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은서는 여시은이 아픈 시기가 참으로 절묘하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밖의 여론이 여시은에게 불리해서 고은서를 만나고 싶지 않았을 뿐일 것이다.요 며칠, 인터넷에서는 여시은과 관련된 뉴스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고은서가 KK한테 도움을 요청한 것 외에도, 아마 곽승재도 뒤에서 힘을 써준 것 같았다.“원래 연회 다음 날에 시은이를 데리고 직접 사과드리려고 했는데, 며칠간 일이 좀 많아서 오늘로 미뤄졌어요.”여재훈은 이어 말했다.“오늘 아침에 갑자기 시은이가 열이 나서, 제가 혼자 찾아오게 됐습니다.”“은서 씨, 지난 일은 전부 시은이의 잘못입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여재훈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고은서는 담담하게 웃으며 대꾸했다.“재훈 씨의 사과는 저한테 너무 과분해요. 다만 저를 나쁜 사람으로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고은서가 지난번 여씨 가문에서 있었던 일을 언급하고 있다는 걸 알아챈 여재훈은 마음이 더욱 불편해져났다.“제가 도우미와 시은이의 말만 믿었네요. 시은이에게는 그 일에 대해 이미 훈계했고, 요 며칠 집에서 반성하고 있습니다.”고은서는 여시은이 그저 여재훈에게 보여주기 위해 반성하는 척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결코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여재훈은 여시은을 여전히 굳게 믿고 있었고 그녀의 이중적인 모습에도 크게 실망하지 않은 듯했다.고은서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자, 운전 중이던 여재훈도 잠시 침묵을 지켰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한적한 곳에 있는 개인 요리 식당에 도착했다.그 식당은 규모가 너무 크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는 엄청 좋았다.정원에는 다양한 희귀한 꽃들과 식물들이 놓여 있었고 작은 인공 폭포와 휴식용 테이블과 의자들도 마련되어 있었다.입구 쪽의 돌 테이블 위에는 하얀색의 통통한 고양이 두 마리가 게으르게 햇볕을 쬐고 있었다.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니 고은서의 마음이 한결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 어게인, 비긴   제1106화

    송민아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저번에 네가 너무 진지하게 말하길래, 나 진짜 겁먹었잖아.”고은서가 다시 한번 웃으며 잡담하듯 물었다.“민아야, 너 예전에 말했잖아. 너랑 네 오빠는 엄마가 다르다고. 그럼 네 아빠랑 네 오빠 엄마는 이혼하신 거야?”송민아는 사무실 밖을 슬쩍 확인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조용히 말했다.“몰래 엄마한테 물어봤는데, 우리 오빠 엄마는 아빠랑 혼인신고도 안 했대. 둘이 약혼까진 했는데, 무슨 이유인진 모르겠지만 오빠 엄마가 아빠랑 결혼하길 거절했대.”고은서는 눈썹을 찌푸렸다.‘설마 송민준의 엄마도 결혼 안 하고 그를 낳은 걸까?’지난번 고은서가 송민준과 함께 바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그가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주면서 송민준은 어릴 때부터 보호만 받고 자라서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없다고 고은서한테 말한 기억이 있다.그때 그의 말투는 평소의 부드러운 말투가 아니라 약간의 조롱 섞인 느낌이었다. 마치 그의 어린 시절이 순탄치 않았다는 듯이.‘혹시 송민준의 어머니가 결혼도 안 하고 그를 낳아서 상처를 받은 탓일까?’“은서야, 이건 진짜 너한테만 말한 거니까, 절대 우리 오빠한테 묻지 마!”송민아가 신신당부하면서 말했다.“오빠는 이 얘기를 누구한테도 한 적 없어. 분명히 신경 쓰고 있다는 거야. 우리 엄마가 말하는 데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더래.”“오빠는 혼자 살긴 해도 우리 엄마한테는 되게 예의 바른 거 있지. 나도 이 비밀 듣기 전까진 우리 둘이 같은 엄마 뱃속에서 태어난 줄 알았어.”고은서는 절대 이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도, 송민준에게 묻지도 않겠다고 약속했다.“민아야, 혹시 너희 엄마가 네 아빠의 다른 연애 상대에 대해 말한 적 있어?”고은서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참지 못하고 묻는 성격이었다.혹시라도 송민아의 어머니가 송민준 부모의 관계에 끼어든 거라면 송민아의 어머니가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그냥 어른들 옛날 연애사에 호기심이 생긴 거야. 만약 불쾌했

  • 어게인, 비긴   제1105화

    송민준의 단어 사용은 꽤 신박했다.그는 “어젯밤 그 일은, 네가 의도한 거야?”라고 물었다.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가 아니라.그러니까 송민준의 말뜻은 그가 어젯밤 일이 여시은을 고의로 함정에 빠뜨리려고 한 고은서의 계획이었음을 알고 있다는 건가?하지만 그 테라스는 비교적 한적했고 로마식 기둥이 시야를 가려 일반적으로는 사람들이 잘 알아채기 어려운 장소였다.고은서가 로비에서 넘어졌을 때 여시은은 빈 와인잔을 들고 그녀 앞에 서 있었다. 이 상황을 봤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시은이 고은서를 민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그런데 어떻게 송민준은 고은서가 여시은을 속이기 위해 고육지계를 쓴 걸 알아챈 걸까?고은서는 아예 직설적으로 물었다.“민준 오빠, 왜 그렇게 물어보는 거야? 설마 어젯밤 내가 넘어졌던 게 자작극이라고 생각한 거야?”그 말을 듣자 송민준은 웃으며 물었다.“은서야, 그런 뜻이 아니야. 난 그냥 그 농장 영상 말이야, 그걸 일부러 어젯밤 그 시점에 터뜨린 건지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알고 보니 송민준은 농장 영상을 묻고 있었던 것이다.그날 송민준의 컴퓨터에서 영상을 확인하고 난 후, 송민아가 고은서에게 이 영상을 바로 여재훈에게 전달할 거냐고 물었을 때, 고은서는 송민준을 경계해 일부러 연회 이후에 결정하겠다고 말했었다.하지만 실제로는 연회 그 자리에서 바로 그 영상을 공개해 버렸다.송민준이 의심하는 것도 정상이다.“맞아.” 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원래는 어젯밤이 지나고 여재훈 씨를 따로 찾아가려고 했는데, 그 상황에서는 여시은이 그런 행동을 할 만한 동기를 증명하려면 그걸 꺼낼 수밖에 없었어.”송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다른 뜻은 없었어.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네 선택이 맞아, 난 항상 널 지지할 거니깐.”그의 표정을 본 고은서는 확신했다. 송민준은 고은서가 아직 그를 경계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그의 성격상, 어젯밤 그녀가 계획적으로 움직였다는 것쯤은 쉽게 짐작했을 테니까. 하지만 송민준

  • 어게인, 비긴   제1104화

    박지연은 계속해서 불만을 터뜨렸다.“내가 보기엔 여시은은 태생이 못돼먹었어!”“이번에 그렇게 크게 당했으니 더더욱 널 원망할 거야. 너 조심 좀 해.”박지연이 걱정스럽게 당부했다.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각을 세우기로 마음먹었기에 여시은과 평화롭게 지낼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앞으로는 여시은을 더 철저히 경계할 것이다.“듣자 하니 곽승재가 내내 널 감싸줬다며? 너한테 점점 마음이 가는 모양이야.”박지연이 코웃음을 쳤다.어젯밤 곽승재가 고은서를 계속 도와줬던 건 사실이었다. 증거를 공개하자고 제안한것도 곽승재의 생각이었고 마지막에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줬다. 곽승재가 고은서에게 큰 도움을 준 셈이었다.하지만 고은서는 곽승재에 대한 이야기를 박지연과 깊이 나누지 않았다.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던 중 박지연이 고은서에게 뜬금없는 소문 하나를 전했다.“우리 과장님한테서 들었는데, 어제 혜린 씨가 다니는 병원에 조 여사님이 찾아가서 난리를 쳤대. 혜린 씨 남자관계가 복잡하다고, 다른 남자랑 팔짱 낀 사진까지 들고 와서 공개하면서 혜린 씨랑 그 자리에서 머리끄덩이 잡고 싸움 났대!”고은서는 지난번 소동 이후 손자를 중시하는 조수연이 한동안은 조용할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고작 며칠 만에 또 난리를 친 거였다. 조수연의 전투력은 엄청 대단했다.“아니, 그러다 혜린 씨 혹시라도 애를 지우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그래?”고은서가 물었다.박지연은 말했다.“조 여사님 말로는 혜린 씨 뱃속 애가 자기 아들 애가 아닐 수도 있다고 의심해서 혜린 씨를 끌고 가서 친자 확인하자고 했대. 그래서 둘이 몸싸움까지 벌어져서 이미지도 최악이라 혜린 씨는 한 달 정직당했어.”“혜린 씨 배속에 애가 온승준 씨 애가 아니라고? 그럼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그 집에 들어가려고 애쓰는 거야? 그냥 진짜 애 아빠랑 결혼하면 될걸...”고은서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소문엔 그 남자가 유부남에 애까지 있다고 하더라. 자세한 건 나도 몰라. 그냥 과장님이 흘린 얘기야.”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