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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7화

Author: 류한나
이어 하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곽 회장님께서 돌아오셨습니다.”

고은서는 눈살을 찌푸렸다.

‘곽현수가 여긴 어쩐 일로 온 거지?’

그녀는 본가에서 곽현수와 마주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그저 서연정과 사이가 안 좋아서 본가로 안 오나 하고 생각했는데 오늘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언니, 우리 사진 찍자.”

곽승연이 좋아하며 그녀를 불렀다.

고은서는 곽승연의 기분을 망치지 않기 위해 웃으면서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반 시간 후, 서연정이 곽승연에게 먹일 약과 물을 들고 정원으로 찾아왔다.

곽승연은 별다른 불만 없이 약을 먹고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은 채 기뻐하며 고은서한테 함께 숨바꼭질을 놀자고 졸랐다.

고은서는 곽승연이 이리도 유치한 유희를 놀자고 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필경 그녀에게 있어서는 초등학교 때까지만 놀던 유희였으니까 말이다.

“집에 있는 하인들이 승연이를 어린아이로 대하면서 함께 숨바꼭질을 한 적이 있는데 아마 재미를 들인 모양이야.”

서연정이 대신 설명해줬다.

고은서는 곽승연과 놀아주고 싶었지만 그보다 곽현수와 마주치면서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생각을 알아차린 서연정이 나긋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승연이 아빠는 어머니한테 불리워 가서 마주칠 일 없을 거야.”

고은서는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

본가 안으로 돌아갔을 때 서연정 말대로 곽현수와 전미자가 보이지 않았다.

곽승연이 평소에 이 층에서 지내면서 이 층과 삼 층에서 많이 놀곤 해서 고은서는 그녀를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숨바꼭질을 할 방과 범위를 정한 다음 그들은 함께 게임을 할 하인 몇 명을 더 불렀다.

“승연이를 너무 얕보지 마. 사람 찾는데 엄청 능해.”

게임 시작 전에 서연정이 고은서에게 미리 말해줬다.

고은서는 처음에 서연정의 말을 별로 새겨듣지 않았는데 곽승연한테 여러 번 잡힌 이후로 서연정이 그냥 해본 소리가 아니었다는 걸 믿게 되었다.

승부욕이 생긴 고은서는 이번엔 확실하게 꽁꽁 숨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층에 있는 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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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게인, 비긴   제1156화

    고은서는 은근한 속내가 있었다. 낯선 타국에서 사이가 가까워지기 쉬우니 고은혜와 유성준이 함께 출장 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한편 MQ의 조향사들과 다양한 향료 배합 비율과 조합 방식을 논의했다. 각자 아이디어를 마음껏 구현해 보라는 고은서의 격려에 팀원들은 창의적인 시도를 이어갔고, 그중에서 최상의 조합을 추려내기로 했다.그렇게 하루가 훌쩍 지나가고, 고은서가 어깨를 주무르며 작업실을 나설 때 마침 회사에 나온 단은숙과 마주쳤다.단은숙은 저녁 식사를 같이하자며 그녀의 팔을 잡아끌었다.고은서는 삼촌, 숙모와 관계를 개선하려는 마음이 있던 터라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유성준의 출장으로 업무가 많아진 삼촌은 회의가 있어서 동행하지 못했고 고은서와 단은숙 둘만 갔다.그 고급 커피숍에 들어선 고은서는 모피 코트를 입고 온몸을 장신구로 치장한 부인과 올백 머리에 정장을 차려입은 평범한 외모의 남자를 보고 즉시 경계했다.“숙모, 왜 다른 사람이 있는 거죠?”단은숙은 손을 내저으며 설명했다.“저 부인을 너도 만난 적 있어. 남편이 해성에서 탄탄한 재력가야. 아들은 유학파에, 외모도, 능력도 출중해. 생각도 깨어 있어서 돌싱도 괜찮다고 하길래 한번 보라고 데려온 거야.”‘숙모가 나를 소개팅시키려고 데려온 거였어?’고은서는 어이없었다.“숙모, 저는 소개팅이 필요 없어요. 당장 결혼할 생각도 없고요.”“아이고, 숙모도 네 마음을 알아. 하지만 어쨌든 옆에 누군가 있긴 있어야 하잖아?”“승재랑은 재결합할 마음이 없고, 시후는 해외로 떠났고, 송민준도 마음에 안 든다며. 마침 조건 좋은 사람이 있길래 만나라도 보라고.”“연인이 아니더라도 친구는 될 수 있잖아.”단은숙은 열정이 대단했다.“저는 정말 필요 없어요. 아니면 남겼다가 은혜한테 소개해 주실래요?”나만 죽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에 고은서가 제안했다.자기가 숙모의 잔소리를 듣는 것보다 고은혜가 당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은혜 그 계집애는 출국했잖아. 그리고 네가 두 살 더 많

  • 어게인, 비긴   제1155화

    이 말을 들은 고은서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여시은이 갑자기 별장을 얻은 이유가 뭐지?”“아직 구체적으로 뭐 하는지 알아내지 못했어. 별장은 면적이 클 뿐만 아니라 철통 보안으로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고 있어.”“하지만 별장에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 건 확실해. 매일 대량의 식재료를 주문하고 생활 쓰레기도 많이 배출하고 있어.”고은서는 미간이 더 찌푸려졌다.“언제부터였어?”“꽤 오래됐어.”“여시은은 내가 은밀히 조사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아. 직접 관여하지 않고 대리인을 통해 모든 일을 처리하고 있어.”이번에 그의 부하들이 이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도 여시은이 어제 그 별장에 갔기 때문이라고 한다.고은서는 어렴풋이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여시은이 몰래 별장에 그렇게 많은 사람을 숨겨둔 건 분명 큰 계획이 있어서일 거야. 나를 노리고 있을 가능성이 커.”여시은은 지난번 리셉션에서 큰 수모를 당했고, 그 후에 꾸민 고육지책도 고은서에게 실질적 타격을 주지 못했으니 가만히 있을 리 없다.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두 사람은 재빨리 올라탔다.엘리베이터에 사람이 많아 두 사람은 잠시 대화를 멈추었다.곽승재는 고은서가 밀리지 않도록 몸으로 막아주었다.얘기가 끝나지 않았기에 고은서는 기사에게 대기하라고 지시한 후, 곽승재와 함께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차에 탄 후, 곽승재가 위안의 말을 건넸다.“조급해하지 마. 너를 노린 것이 아닐 수도 있어. 목적이 뭔지 내가 다시 조사해 볼게.”고은서는 여시은의 표적이 십중팔구는 자신일 것임을 알고 있었다. 곽승재도 이 사실을 알면서 그저 위로하는 것이다.‘여시은이 도대체 뭘 하려는 거지?’여시은의 예흥 투자은행은 개업 리셉션을 다시 열지 않고 직접 운영에 들어갔고, 현재까지 고은서와 자원이나 프로젝트를 두고 경쟁하지도 않았다. 고은서는 그녀가 무슨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손문호 쪽은 별다른 이상이 없어?”곽승재가 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손문호가 경마장과 정월

  • 어게인, 비긴   제1154화

    박지연이 고개를 돌려 보니 온승준이 음식도 먹지 않고 나와 있었다.그 역시 두 사람을 보고 마치 무언가에 맞은 듯 슬픈 표정으로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가자.”박지연이 육현석의 팔을 잡아당기자, 육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차에 오른 박지연은 방금 온승준과 우연히 마주쳤던 일을 털어놓았다.육현석은 그녀를 품에 안으며 말했다.“나한테 설명할 필요 없어. 그저 네가 마음이 흔들릴까 봐 걱정될 뿐이야. 온 선생님은 아직도 널 사랑하는 게 분명해.”박지연은 육현석을 흘겨보며 말했다.“아내랑 아이까지 있는 사람이야. 그런 말로 사람을 짜증 나게 할 거야?”육현석은 박지연을 더 꽉 끌어안으며 중얼거렸다.“그럼 나만 사랑한다고 말해줘. 그래야 걱정하지 않을 것 같아.”박지연은 어이없어 얼굴을 돌렸다....그날 밤, 박지연은 고은서와 영상통화를 하던 중 곽승재가 옆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곽승재는 요 며칠 바빠서 이미숙에게 맡겼던 애완묘 퀸을 데리러 온 것이었다.박지연이 온승준과 마주친 일을 말하고 있을 때 육현석이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았다.“지연아, 국이 다 됐어. 같이 좀 먹을래?”“와, 현석 씨는 너무 완벽한 거 아니야? 다정한 데다 요리까지 잘하다니. 다른 남자들은 어떻게 하라고?”육현석은 고은서의 장난을 무시한 채, 뒤에 있는 곽승재를 향해 잘난척했다.“형, 들었어? 은서도 내 실력을 인정했어.”곽승재는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다가와 영상통화를 끊어버렸다.“쓸데없이 칭찬하지 마. 곧바로 기고만장해져.”“...”이튿날 아침, 고은서가 일어나니 이미숙이 아침을 준비해 놓았는데 죽, 밑반찬, 우유는 물론 샌드위치까지 있었다.샌드위치는 야채와 햄이 삐뚤게 놓여 모양새가 영 허술했고, 계란후라이는 심지어 가장자리가 살짝 탄 게 보였다.고은서가 일어나는 소리를 듣고 이미숙이 다이닝룸으로 왔다.이미숙은 샌드위치를 지켜보는 그녀에게 말했다.“평소에 한식 아침만 차리다 보니 샌드위치를 예쁘게 만들지 못했네요. 그래도 맛은 괜찮

  • 어게인, 비긴   제1153화

    고은서는 목소리의 주인이 온 닥터 온승준이라는 걸 알아챘다.‘해외에서 돌아온 건가?’“은서야,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박지연이 급히 전화를 끊었다.눈앞에 있는 남자는 한층 수척해진 몰골에 피부도 그을어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온 선생님이 어떻게 여기...”박지연이 의외라는 듯 물었다.예전의 오만함은 온데간데없고, 오히려 초췌하고 무덤덤한 얼굴이었다.“세미나가 끝나고 배가 고파서... 옛날에 네가 이 집 볶음요리가 맛있다고 했던 게 기억나서 왔어. 여기서 너를 만날 줄은 몰랐네.”온승준의 쉰 목소리가 공중에 맴돌았다.“너도 아직 저녁 안 먹었어? 같이 먹을래?”한때 사랑했던 남자가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니 박지연은 가슴이 먹먹했다.그래서 냉담한 태도를 취하지 못하고 평범한 친구처럼 대했다.“아니, 난 먹었어. 육현석이 출장 갔다가 막 돌아왔는데, 밥을 먹지 않았다고 해서 포장해 가려고.”온승준은 박지연이 이렇게 당당하게 육현석을 언급할 줄은 몰랐다. 무덤덤하던 마음 한구석이 시큰거리기 시작했다.“지연아, 요즘 잘 지내?”박지연은 일부러 그의 어두운 표정을 외면하며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난 항상 좋지. 온 선생님은? 언제 해성에 돌아온 거야?”“며칠 됐어. 자질구레한 일들이 많아서 주변 동료나 친구들에게 연락하지 못했어.”온승준은 박지연의 직장인 옷차림을 보고 물었다.“지연아, 너 병원 그만뒀다며? 지금 하는 일은 힘들지 않아?”박지연이 고개를 끄덕였다.“괜찮아. 모르는 게 많지만 경험 많은 동료들 덕분에 천천히 배우면서 일하고 있어.”온승준은 대화를 이끌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특히 새로운 연인이 생긴 전처와의 대화를 어떻게 자연스럽게 풀어갈지는 더욱 몰랐다.하지만 이대로 대화를 끝내기는 아쉬웠는지, 서툴게나마 관심을 표시했다.“지연아, 너무 힘들게 일하지 말고 쉬어가면서 해.”박지연은 그의 어색함을 눈치채고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은서가 투자하라고 해서 나도 의료 미용 기관의 주주가 됐어. 내 돈 벌려고 하는

  • 어게인, 비긴   제1152화

    OBT는 보름 정도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첫날 데이터가 예상보다 좋아 사기가 진작되면서 팀 전체 분위기가 고조돼 있었다.고은서는 축하의 뜻으로 팀원들에게 저녁을 사줬다.개발팀은 계속해서 서버 유지 및 최적화 작업을 진행해야 했기에 간단한 축하 파티로 대신했다. 고은서는 게임이 공식 출시될 때는 레스토랑을 통째로 빌려 3일 동안 밤낮으로 마음껏 즐기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팀원들은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고은서가 라이트문 아파트에 돌아왔을 때, 박지연에게서 전화가 왔다.OBT 결과를 이미 알고 있는 그녀는 오늘 부서장들과 회의가 있어서 직접 축하하러 가지 못하고, 정식으로 축하 파티를 할 때 반드시 참석하겠다고 했다.의료 미용 기관 인수 절차가 완전히 종료된 후, 박지연은 사직하고 기관에 들어가 일하게 됐다. 배워야 할 것도, 처리해야 할 것도 많아서 하루 24시간이 부족했다.하지만 박지연은 이런 바쁜 일상을 즐겼고, 사람들이 왜 일중독에 빠지는지 알 것 같다고 했다. 통장 잔고가 늘어나는 느낌이 너무 좋고 뿌듯하기 때문이라고.그녀는 여성 CEO가 되는 것이 무척 즐거운 일이라는 생각을 처음 했다. 심지어 도아름을 롤모델로 삼겠다고 말해서 깜짝 놀란 육현석이 급히 그녀를 말렸다. 돈 버는 건 좋지만, 적당히 쉬기도 하고 삶을 즐길 시간도 있어야 한다고.육현석은 심지어 고은서에게 SOS를 쳤다. 제발 직원을 더 뽑아서 박지연의 업무를 분담해달라고. 그는 박지연이 일중독에 빠지면 남자친구인 자기가 뒷전으로 밀릴까 봐 걱정했다.고은서는 시간을 확인한 후 박지연을 재촉했다.“얼른 퇴근해. 육현석이 또 나를 찾아와서 너랑 같이 있을 시간이 없다고 하소연하겠어.”“알았어. 맛있는 거 포장해서 들어갈 참이었어.”박지연이 갑자기 물었다.“은서야, 송민준이 요즘도 너한테 꽃다발과 선물을 보내니?”지난번에 분명히 거절했는데 송민준의 공세는 오히려 더 거세졌다. 물러나기는커녕 수시로 꽃다발과 선물을 보내는 바람에 유일 투자은행 직원들은 이제 모두 송민준이 그

  • 어게인, 비긴   제1151화

    ‘이 사람이 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 호감을 표시했다가, 낙담했다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진짜 나한테 푹 빠진 줄 알겠어.’“민아는 내가 민시후처럼 속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데, 이건 나도 인정해. 너희보다 나이도 몇 살 더 많고, 원래 감정 표현에 서툴러서 그래.”송민준은 여전히 어딘가 허전한 표정이었다.“근데 시후가 너랑 더 잘 맞는다는 생각은 안 들어. 우리 부모님도 만나봤잖아. 깨어 있는 분들이라 조건 같은 걸 전혀 따지지 않아.”“나는 스캔들도, 잊지 못한 첫사랑도 없어. 주위에 여자들이 맴돌아도 관심이 없고, 너무 일만 미친 듯이 하다 보니 바쁠 때가 많다는 거 빼고는 결점이 없어.”송민준은 고은서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나는 네가 하는 일에 간섭하지 않을 거고 너의 생활 방식도 존중할 거야. 스스로 최고의 동반자라고 생각하는데, 선입견 없이 나를 볼 수는 없을까?”“...”고은서는 송민준이 이렇게까지 진지해질 줄은 생각지 못했다.‘어떻게 된 거지? 입장을 분명히 밝혔는데, 왜 포기하지 않고 계속 물고 늘어지는 거지? 내가 이 사람을 경계하는 것이 단순히 선입견 때문일까?’하지만 설령 오해라 해도 송민준은 그녀가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었다.고은서가 가볍게 헛기침했다.“민준 오빠, 전에도 말했듯이 오빠는 조건도 좋고 멋진 사람인데 나랑은 진짜 안 맞아. 지난번에 약속했잖아. 예전처럼 편한 사이로 지내고 어색한 얘기는 꺼내지 않기로.”송민준이 잔을 들고 술을 한 모금 마시더니 솔직하게 말했다.“너를 겁주고 싶지 않아서 그랬어. 천천히 가까워지면 기회가 생길 거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네가 시후 일에 이렇게 신경 쓰는 것을 보고 더 기다릴 자신이 없어졌어.”고은서는 냉철한 이미지인 송민준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저렇게 감정 표현을 잘하는 사람이 아닌데. 우리 사이에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이유는 지난번에 물어봤기 때문에 같은 질문을 반복하지 않았다.고은

  • 어게인, 비긴   제1150화

    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별일 없어. 그냥 한잔하고 싶어서.”“합석해도 될까?”송민준이 매너 있게 물었다.고은서는 담담한 말투로 대답했다.“편할 대로.”송민준은 그녀의 태도를 개의치 않고 자연스럽게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너는 왜 여기 있어?”송민준은 원래 사업 파트너와 여기서 미팅하기로 했는데, 상대방이 약속을 어겼으며 우연히 그녀를 보게 됐다고 설명했다.송민준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세련된 얼굴에 완벽히 통제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고은서는 그의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 없었다.어차피 왔으니 이 기회에 그가 무슨 목적으로 접근하는지 알아보기로 했다.“한잔할래?”고은서의 권유에 송민준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영광이야.”웨이터를 불러 술을 주문한 후, 고은서는 송민준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서로 잔을 부딪친 후, 고은서는 홀짝 한 모금 마셨다.“은서야, 아직도 민시후의 상태를 걱정하고 있니?”모든 사람이 이 문제를 묻는 것 같다. 고은서는 사실대로 말했다.“민시후가 나 때문에 그렇게 됐으니 당연히 걱정할 수밖에 없잖아.”이 대답에 송민준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은서야, 민시후가 회복돼서 귀국하면 다시 받아줄 거야?”송민준이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송민아와 박지연도 비슷한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항상 분수를 지키는 송민준도 이런 사적인 질문을 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미안해. 엊그제 민아가 했던 말이 마음에 걸려서 실례를 무릅쓰고 물어봤어.”송민준은 그녀의 마음을 읽은 듯 급히 사과했다.엊그제 사무실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길래 개의치 않는 줄 알았는데, 이제 와서 이 얘기를 꺼낼 줄은 몰랐다.고은서는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너도 실례라고 생각한다면 대답하지 않아도 될까?”“물론이지. 내가 선을 넘었어.”송민준은 아주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내가 너에게 호감을 품고 있다는 걸 알면, 시후가 나를 더 싫어하겠다.”“더?”고은서가 의문을 표시했다.“민시후가 사고를 당하

  • 어게인, 비긴   제1149화

    박지연의 말을 듣고 갑자기 씁쓸한 기분이 든 고은서는 자신을 비웃듯 말했다.“이미 사랑을 해봤잖아?”단지 결말이 비참했을 뿐이다.박지연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고은서를 바라보았다.“곽승재를 다시 받아주라는 뜻이 아니라 정말 새로운 사람을 만날 힘이 없다면 곽승재와 잘해보는 것도 괜찮다는 뜻이야.”“곽승재가 변한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잖아. 남자 없이도 잘살 수 있지만, 그렇다고 사랑을 포기하지는 마. 아직 젊은데, 세상에 질린 늙은이처럼 살지 말고, 누구든지 너를 행복하게 해준다면 편히 받아들여.”진지하게 말하는 박지연의 모습에 고은서는 웃음을 터뜨렸다.“너는 지금 달콤한 사랑을 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도 다 너처럼 됐으면 좋겠어?”박지연은 부끄러운 듯 고은서를 살짝 밀쳤다.“지금 진지한 얘기를 하고 있잖아.”박지연은 고은서가 기분이 안 좋은 것을 알고 특별히 도아름과 함께 이 모임을 계획한 것이었다.사실 고은서 주변에는 훌륭한 남자가 많았다. 하지만 그녀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아예 차단해 버린 듯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았다.박지연은 고은서가 다시 웃을 수 있기를 바랐다. 곽승재를 다시 받아주는 선택도 고은서가 마음의 빗장을 완전히 닫고 있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알았어. 우리 예쁜 지연이, 걱정해 줘서 고마워. 하지만 지금은 할 일이 많아서 사랑 같은 거 할 여유가 없어.”고은서는 박지연을 바라보며 말했다.“모든 일이 해결되고 사업도 안정되면 꼭 제대로 사랑을 해볼게. 됐지?”“...”얼렁뚱땅 넘기려는 것이다. 입이 닳도록 말해도 소용없다....이튿날, 고은서는 참지 못하고 민시아에게 메시지를 보내 민시후의 수술 상황을 물었다.[시아 씨, 제가 치근대는 것이 아니라 단지 친구로서 현재 민시후 건강 상태를 알고 싶어서 연락드렸어요.]얼마 지나지 않아 민시아에게서 전화가 왔다.“시아 씨.”민시아의 목소리는 매우 차가웠고, 원망도 약간 섞여 있었다.“어제 은서 씨가 전화하는 바람에 시후가 또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 어게인, 비긴   제1148화

    “여시은이 워낙 착한 척 연기를 잘하는 데다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보호막이 돼주니 사랑과 아낌을 받는 게 당연해.”박지연이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성공한, 훌륭한 남자를 평생 재혼도 안 하게 만든 여시은의 어머니는 얼마나 뛰어난 분일까? 여시은은 왜 부모님의 장점을 하나도 물려받지 못하고 이렇게 마음씨가 고약한 사람이 됐을까?”고은서는 더 이상 여시은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지연아, 왜 혼자야? 아름 언니는?”“전화를 받길래 내가 먼저 들어왔어. 저기 오네.”박지연이 앞을 향해 입을 삐죽 내밀었다.고은서가 앞으로 다가가 도아름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건넸다.명운이 증시에 상장한 후 도아름은 더욱 바빠진 모습이다. 그들이 최근에 모인 것도 박지연이 사할 때가 마지막이었다.도아름도 고은서와 박지연을 반가워했고, 둘과 함께 홀을 둘러보면서 진정한 ‘추억 여행’을 했다.식사할 때도 세 사람은 유쾌하게 대화를 나눴다. 절친들과 함께하니 고은서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식사를 마친 세 사람이 스파숍이라도 갈까 의논하던 중, 도아름이 긴급회의 통지를 받고 어쩔 수 없이 먼저 자리를 떴다.“말해봐. 무슨 일로 기분이 안 좋은 거야?”도아름이 가자, 눈치 빠른 박지연이 물었다.최근에 정말 많은 일을 겪었지만, 고은서는 복잡한 사건들은 생략한 채 민시후의 상황만 그녀에게 말했다.“민시후와 관련이 있을 줄 알았어.”“육현석한테 들었는데, 어제저녁 곽승재가 사찰에 가서 너를 데려왔다며?”“너 어제 사찰에 간 게 민시후 때문이었어?”박지연의 질문에 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민시후를 위해 뭔가 하고 싶은데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네가 그 사찰이 영험하다고 했던 게 생각나서 빌고 싶었어.”박지연이 농담처럼 흘린 사찰 이야기를 그녀가 진지하게 받아들여 반나절이나 무릎 꿇고 빌 줄이야.“은서야, 너 민시후에게 도대체 어떤 감정이야? 죄책감? 사랑? 아니면 너 자신도 구분 안 돼?”박지연의 질문에 고은서는 침묵을 지켰다. 송민아가 말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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