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함은 실의에 빠졌다.‘만약 그때 내가 있었다면 아마 도울 수 있었을 거야.’‘하지만 지금은 채연이 혼자서 그 모든 것을 감당해야 했어.’“이장님,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세요?” 성연은 지금 마음이 괴로운 그래함은 말을 하고 싶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래서 성연은 아예 자신이 묻는 걸 도와주기로 했다.이장은 그때를 회상하는 것처럼 바로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일로 이곳에서는 아주 큰 소란이 일어났어. 채연이 아버지 병이 위중해서 치료비를 마련하려고, 채연이를 시집보내려는 것 같았어. 아마도 옆에 있는 읍내로 시집갔을 거야. 우리 이 지역에서는 그나마 옆의 읍내에 돈이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유채연이 이미 시집갔다는 말을 듣자, 성연의 표정이 변하면서 무의식적으로 그래함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최악의 결과라고 생각했다.성연이 힐끗 보니 과연 그래함은 완전히 멍한 모습이었다.성연이 이장에게 말했다.“이장님, 오늘 이런 소식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이장은 쾌활하게 웃으며 말했다.“괜찮아, 내가 아는 건 얘기했지만 나도 모르는 건 어쩔 수가 없어.”“고맙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한 성연이 그래함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지금 그래함은 이곳에 온 이후로 표정이 아주 이상했다.성연은 그래함이 소식을 알아보는 걸 이미 기대하지 않았다.‘결국, 사형의 모습을 보니 충격이 꽤 커 보여.’“사형, 우리 찾으러 갈까요?” 성연이 그래함을 보고 물었다.그래함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찾으러 가야지.”‘이런 소식을 듣고도 사형은 채연 언니를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어.’‘직접 보기 전에는 단념하지 않을 거야.’‘외국에 있을 때는 채연 언니를 생각하면서 사형이 지금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지.’‘이제 와서 이토록 잔혹한 소식을 전해야 하다니.’‘채연 언니가 직접 자신에게 말하지 않는 한 사형은 믿지 않을 거야.’“알았어요, 내가 사람을 시켜서 조사하게 할게요.” 성연은 그래도 그래함의 결정을 존중해야
성연은 이 소식을 무진에게 알려준 뒤, 유채연의 행방을 조사해 달라고 했다.자신과 그래함을 보호하기 위해서 무진이 사람을 보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래서 아예 무진에게 이 일을 맡긴 것이다.‘무진 씨의 인맥은 절대 나보다 뒤지지 않아.’“사형, 안심하고 기다리세요. 무진 씨가 이미 사람을 보냈으니 곧 결과가 나올 거예요.”그래함이 너무 조급해할까 봐 성연이 옆에서 위로했다.“내 일 때문에 너희에게 폐를 끼쳤구나.”여기에는 그래함의 인맥이 없기에 그래함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어쨌든 성연과 무진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사형, 나한테 뭘 사양해요? 사람을 찾는 것뿐이니까 사형도 마음에 두지 마세요.” 성연은 결코 이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이 일에 비하면 그래함이 이전에 자신을 위해 한 일이 훨씬 더 많았다.두 사람은 여기에서 하룻밤을 묵었다.무진의 수하는 적지 않은 관계를 동원한 뒤에야 어렵사리 유채연의 행방을 찾을 수 있었다.이튿날, 이 소식을 접한 성연이 바로 그래함에게 알려주었다.“사형, 찾았어요. 정말 이웃한 읍내에 살고 있대요.그래함은 그 소식을 반겼지만 이웃한 읍내라는 말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어떤 것 같아? 채연이가... 정말 결혼했을까?”성연은 고개를 저었다.“그 사람들은 위치만 알아내고 다른 건 자세히 조사하지 못했어요. 사형, 왜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세요? 같이 가서 채연 언니를 만나면 모든 걸 알게 될 거예요.”그래함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네 말이 맞아.”성연과 그래함은 함께 유채연이 있는 곳으로 출발했다.이웃 읍내의 한 슈퍼마켓 입구.”성연과 그래함이 한 여자를 만났다.여자는 성숙하면서도 소박한 옷차림인데 아가씨가 아닌 건 분명해 보였다.슈퍼마켓은 장사가 아주 잘 돼서 여자는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도와주는 사람도 없이 모든 일을 혼자서 하고 있었다. 여자의 얼굴은 예쁘지만 안색은 그다지 좋지 않아서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처럼 보였다. 예전의 활발했던 모습
그래함은 피하지 않고 바로 유채연의 눈을 바라보았다.그 순간 그래함의 눈빛에는 무한한 온화함이 넘쳐흘렀다.오기 전에는 많은 생각을 했다.하지만 앞에 있는 유채연은 자신이 상상했던 모습과는 달랐다.하지만 그래함은 여전히 유채연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그래함의 얼굴을 보자 유채연의 눈빛도 순간 반짝였다하지만 이내 당황하면서 눈길을 돌렸다.“무, 무슨 술을 원하세요? 맥주, 아니면 포도주?” 유채연의 목소리는 더듬거리면서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유채연도 분명히 그래함을 알아보았다.그런데 이런 낭패한 상황이라니.하지만 고된 삶에 일찌감치 무감각해진 유채연의 가슴은 잠시 두근거렸지만 곧 잠잠해졌다.그래도 생각마저 억누를 수는 없었다.‘그래함이 왜 여기에 있지?’‘설마 나를 찾으러 온 걸까?’‘하지만 그래함이 입은 화려한 옷은 이곳의 모든 것과 어울리지 않아.’‘내가 또 뭐 볼 게 있다고 나를 찾아왔을까?’예전의 유채연은 이런 자신감이 있을지도 모른다.그러나 지금의 그녀에게는 자부심은 조금도 남지 않았다.술을 가지러 가는 유채연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유채연의 목소리를 듣자 그래함은 안도감을 느꼈다.조금도 피하지 않고 유채연의 움직임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아무 거나 당신이 괜찮다고 생각한 거면 돼.”결국 그래함의 목적은 술을 사는 것이 아니라 유채연을 보기 위해서다.다만, 이런 유채연의 모습을 볼 줄은 몰랐다.하지만 그래도 유채연을 볼 수 있어서 다소나마 마음을 놓을 수는 있었다.유채연은 안쪽의 상자에서 술을 꺼낸 뒤 그래함에게 건네주었다.“나도 무슨 술이 좋은지 모르지만, 모두 많이 사는 술이니까 아마 괜찮을 거예요.”유채연이 내민 맥주를 본 그래함은 유채연의 손이 아니라 눈을 바라보았다.유채연은 그 눈길이 그다지 편안하지 않았다.“술을 살 거예요?”“술은 물론 살 거야. 하지만 당신은 정말 내가 왜 왔는지 모르겠어?” 그래함은 약간 화가 났다.유채연이 지금도 자신을 모르는 척하고 있기
줄곧 말없이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성연은 마음이 정말 괴로웠다.유채연이 도대체 지금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정말 상상할 수가 없었다.‘저 남자가 혹시 채연 언니의 남편일까?’‘그러나 그렇게 늙어 보이는데 채연 언니하고 전혀 어울리지 않아.’참을 수가 없게 된 성연은 유채연에게 다가가면서 곧장 소리쳤다.“채연 언니, 저 성연이예요.”그 말을 들은 유채연은 완전히 멍해졌다. 먼저 성연을 보고는 다시 그래함을 바라보았다.그리고 잠시 생각하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는 깜짝 놀랐다.유채연을 잘 아는 것처럼 부르자, 중년 남자는 성연과 그래함을 경계하듯이 보면서 유채연에게 화를 냈다.“저 사람들은 누구야!”마치 성연과 그래함에게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 것처럼 아주 흉악한 목소리였다.‘채연 언니가 이런 사람의 수중에서 어떻게 잘 지내겠어. 생각할 필요도 없어.’유채연은 중년 남자에게 천성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남자에게 얼른 대답했다. “고향 친구예요. 이 사람들은 제 고향 친구들이에요.”그 말을 들은 중년 남자는 표정이 좀 누그러졌지만 성연과 그래함을 힐끗 보기만 했다.“고향 친구라니, 너한테 어떻게 이렇게 돈 많은 고향 친구가 온 거야?”남자는 그 말을 별로 믿는 것 같지 않았다.‘유씨 집안이 얼마나 비참했는지 내가 몰라?’‘그때는 아무도 없었는데 누가 또 유채연을 기억하겠어?’“정말 내 고향 친구들이에요.” 남자가 무슨 심한 말이라도 할까 봐 유채연은 애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남자는 성연과 그래함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그러나 유채연의 모습을 보고는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유유히 흔들의자에 누워서 TV를 보는 걸 가장 좋아했다.마치 남자가 마음대로 부리는 하인처럼 더럽고 힘든 일은 유채연이 모두 맡아서 했다.반면에 이렇게 큰 남자는 그저 앉아서 TV만 보고 있었다.이 장면을 본 성연은 주먹을 꽉 쥘 수밖에 없었다.성연도 예전에 다른 사람한테서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하지
유채연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그 남자를 한 번 보고는 말했다.“아니야, 나는 단지 여기에서 거들어줄 뿐이야.”말을 하면서 유채연의 눈빛은 다른 곳을 향했다.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지만, 유채연은 감히 그래함을 마주보지 못했다.그러나 자신과 중년 남자의 모습을 보면서 그래함이 어떤 느낌이었는지는 몰랐다.일찍이 풋풋하던 시절 마음에 두었던 여자가 이렇게 변했기에, 그야말로 더없이 가슴이 아팠다.그러나 그래함은 이런 유채연을 보면서, 마치 자신들이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또 낯설게 느껴졌다.그래함도 마음속의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성연과 그래함이 이곳에 나타나자 유채연의 마음도 복잡했다.아까는 왜 그런지 몰랐지만, 지금은 두 사람이 자신을 찾으러 왔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고개를 든 유채연이 그래함을 향해 작은 소리로 물었다.“그래함, 정말 술을 살 거야?”지금의 유채연은 이미 더 이상 어떤 망상도 할 수 없었다.그래함은 고개를 젓더니 남자 앞으로 다가갔다.그는 두말하지 않고 바로 돈다발을 하나 꺼내서 앞에 있는 남자에게 건네주었다.“제가 일이 있어서 유채연 씨를 찾는데, 이 돈을 드리겠습니다.”방금 전에 본 모습을 통해서, 그래함은 이 남자가 돈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판단했다.‘지금 채연이 입장도 명확해.’‘만약 이 남자가 풀어주지 않으면, 채연이는 틀림없이 나와 함께 가지 않을 거야.’그래서 미리 준비한 현금을 꺼낸 것이다.원래 그래함은 유채연을 찾는데 도우려고 돈을 찾았는데, 마침 지금 쓸모가 있게 되었다.과연 이 돈을 본 남자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더니, 유채연을 향해 부드럽게 말했다.“괜찮아. 가서 얘기해.”성연이 유채연을 바라보며 말했다.“채연 언니, 우리 가요.”말을 하면서 성연은 바로 유채연의 손을 잡고 나갔다.그래함이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너희들 일부러 나를 찾아온 거야?” 유채연은 가게에서 멀리 떨어진 뒤에야 비로소 물었다.“맞아요, 우리가 온 목적
그래함과 유채연은 앞에 놓인 밀크티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유채연의 눈빛은 이미 이전처럼 빛나지 않고 유난히 어두웠다.그래함은 그녀를 보면서 가슴속에 가득 찬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자신이 유채연을 아프게 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면서, 자신이 듣고 싶지 않은 결과를 듣게 될까 봐 걱정했다.두 사람이 그렇게 앉아 있자 분위기가 좀 어색했다.결국 역시 성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채연 언니, 그동안 언니는 어떻게 된 거예요? 그 중년 남자는 누구에요? 언니 남편이에요?”사실 그때 일이 터졌을 때 유채연이 그들 중 한 사람에게 구조를 요청했다면, 일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지금은 이미 지나간 뒤라서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한숨을 쉰 유채연은 성연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않고 물었다.“너하고 그래함의 모습을 보니까 잘 지내고 있겠지? 두 사람이 함께 하는 거야?”성연은 뜻밖에도 유채연이 이런 오해를 할 줄은 몰랐다.그래서 얼른 설명했다.“언니, 어떻게 그렇게 생각했어요? 나하고 그래함 사형이 어떻게 함께 하겠어요?”성연은 그런 누명을 쓰고 싶지 않았다.지금 그래함과 유채연의 관계는 한창 긴장될 때였다.“아니라고?” 유채연이 별다른 감정 없이 중얼거렸다.성연은 그래함과 유채연 사이의 분위기를 알 수 없었다.그래함에게 말을 하라고 눈짓으로 암시했다.그래함도 지금은 자신이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러나 유채연을 보자 그래함의 마음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채연 언니, 여기 다른 맛있는 건 있어요?” 성연이 자신의 배를 문지르면서 말했다.아침에 그래함과 함께 유채연을 보러 달려오느라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유채연은 성연의 모습을 보자 웃음을 참지 못했다.“성연아, 배고프니?”성연은 다소 난처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성연도 사실 그러고 싶지는 않았지만 여기 밀크티는 맛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바로 설탕만 잔뜩 들어 있어서 성연은 당연히 그
“이것도 이미 아주 좋은데요. 나와 그래함 사형은 음식을 가리지 않아요.”성연이 앞의 음식을 보자 아주 먹음직했다.한 입 맛본 성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언니, 정말 맛있어요.”“입맛에 맞으면 많이 먹어.” 성연의 반짝이는 눈빛을 보자 유채연도 예전의 느낌을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었다.유채연은 성연이 부러웠다.‘누군가 정성껏 보호해서, 이렇게 순진하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모습이겠지?’‘그러나 지금의 내 모습은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그래함도 먹기 시작했고, 두 사람은 아주 빨리 음식을 다 해치웠다.유채연이 치우려고 했지만, 성연이 하지 못하게 하고 자신이 뒷정리를 했다.“나하고 성연이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가 아니야. 성연이에게는 나보다 더 대단한 약혼자가 있어. 하지만 아마 너도 그 사람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을 테니까, 누군지는 말하지 않을게.”음식을 다 치우고 난 뒤에 그래함이 유유히 입을 열었다.멍하니 있던 유채연은 그래함이 방금 얘기했던 화제를 계속 말하고 있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그리고 다소 의아한 생각이 들어서 중얼거렸다.“너희 둘이 함께 사는 게 아니야? 그건 정말 너무 아쉬운데. 예전에 너희들 감정도 아주 좋아서 두 사람이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성연은 이제 곧 결혼할 사람이다.게다가 그래함이 정말 좋아하는 사람은 유채연이다.유채연이 이렇게 말하자 성연도 좀 쑥스러운 생각이 들었다.성연의 얼굴이 더 붉어지면서 말했다.“언니, 그렇게 얘기하지 마세요. 사형은 오로지 언니를 찾으러 왔어요.”그래함도 이제서야 반응한 듯이 감정이 다소 격해졌다.“채연아, 너는 분명히 잘 지내지 못했겠지?”자신이 없는 동안 자신의 여자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그래함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이전의 일을 언급하자 유채연이 갑자기 또 침묵했다.때때로 유채연도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하룻밤 사이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이제서야 조금씩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그러나 그래함과 성연을 보
이렇게 손을 잡히자, 바로 얼굴이 빨개진 유채연이 손을 빼려고 했지만 손을 빼낼 수가 없었다.당황한 유채연이 황급히 말했다.“얘기할 테니까 손을 놔줘.”성연도 그래함의 행동을 보고 믿을 수가 없었다.‘평소에 어떤 일을 하든 사형은 아주 침착해.’‘지금 채연 언니의 모습을 보고 통제력을 잃은 거야.’‘얼마나 좋아하면 저럴까!’하지만 다행히도 그들은 유채연을 찾았고 마침내 좋은 소식이 있었다.그것은 바로 유채연이 여전히 독신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이다. 그래함은 유채연의 손을 쓰다듬으면서 여전히 아쉬워하며 놓지 못했다.그래함은 지금 자신이 이미 이성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전부 본능에 의지해서 행동하는 것이다.“빨리 놔줘.” 유채연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사람들 앞인 데다가 이곳에는 아는 사람들도 많았다.그래함이 이럴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그러나 유채연은 자신은 이제 그래함에게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지금 내 앞에 있는 그래함은 이렇게 뛰어난 모습인데, 내가 무슨 덕이 있겠어?’손을 꼭 붙잡고 놓지 않는 그래함의 모습을 보면서, 성연은 치한의 행동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성연이 이마에 손을 짚고 말했다.“사형, 먼저 손을 놓고 그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한번 들어봐요.”성연의 말을 듣자, 비로소 자기가 추태를 부렸다는 걸 깨달은 그래함도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미안해.”유채연이 얼른 손을 집어넣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괜찮아.”“언니, 언니 집에 어떻게 그런 일이 생겼어요?” 성연은 여전히 몹시 궁금했다.‘지금 채연 언니는 외삼촌과 함께 살고 있지만, 아마 결혼하지 않았을 거야.’유채연의 눈에서 슬픔이 묻어났다.“그때 나는 하마터면 시집갈 뻔했어. 그러나 어머니가 갑자기 병으로 쓰러져서 많은 병원비가 들게 되자 상대방에서 원하지 않았어.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너무 무리하게 일했던 아버지도 결국 과로로 말미암아 병이 나셨어. 아버지를 여러 해 동안 보살폈지만 결국 돌아가셨어. 나
“오빠, 아빠가 정말, 정말로 우리를 안 받아들일까? 우리가 방금 아빠를 찾았는데.”작은 얼굴에 슬픔을 가득 담은 채, 사진은 간절한 시선으로 오빠를 바라보았다.예민주는 지금 자신의 말을 자화자찬하며 한껏 득의양양한 표정이었다.팔짱을 낀 채 아이들을 내려다보는 눈빛에는 승자의 기운이 가득했다.잠시 후 자신에게 벌어질 참상을 알았다면 절대 그러지 못했겠지만...대표 집무실 바깥.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성연은 결연한 눈빛으로 대표실을 향해 다가갔다.쾅-단숨에 집무실 문 앞에 선 성연은 아무런 노크도 없이 바로 방문을 열었다.“너 이 새끼, 정말...”아이 앞에서 거침없이 내뱉는 예민주의 말이 성연의 귀에 몹시 거슬렸다.“예민주, 뭐 하는 거야!”자신의 아이들이 눈물 자국이 가득한 채 구석에서 서로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자, 엄마의 본능이 단숨에 뿜어져 나왔다.“내 애들에게 무슨 짓을 했어!”단숨에 앞으로 나아간 성연은 두 손으로 예민주의 멱살을 움켜쥐었다.한 손으로 멱살을 쥔 채 다른 한 손으로는 바로 예민주의 따귀를 때렸다.“네가 뭔데 내 아이를 혼을 내? 너는 그럴 자격이 없어!”성연의 차가운 눈빛은 분노로 활활 타올랐다. 온몸의 분노가 곧 폭발할 듯이!잇달아 따귀를 때렸지만 때리는 소리는 오히려 점점 더 커져갔다.“엄마!” 성연이 다시 손을 들고 예민주의 뺨을 때리려고 할 때, 문득 익숙한 여린 목소리가 들렸다.순간 성연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잠시 멈칫하던 성연은 계속 두드려 맞느라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간 예민주를 밀쳐낸 뒤 딸아이를 품에 안았다.“아가, 엄마가 늦게 와서 미안해.”성연은 두 손으로 사진을 꼭 껴안은 채 자책했다. 지금 마음속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방금 전 예민주를 때릴 때의 그 무시무시한 기세도 모두 사라졌다.슬퍼하는 성연을 보면서, 사무는 두 주먹을 꼭 쥔 채 여전히 경계심이 가득한 모습이었다.그러나 엄마가 온 뒤에는 그래도 많이 풀어진 모습이었다. 자신이 든든한 후원자가 있기에.성연이
사진은 눈앞의 이 여자가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고, 절대로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원래 예민주의 말은 걸러서 생각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역시 어린아이였다.“오빠, 우리 아빠가 정말 우리를 이렇게 싫어해?”눈물이 그렁그렁한 여동생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당신은 어른이면서 어떻게 이렇게 어린아이와 말다툼을 하는 겁니까? 당신이 뭔데, 여기서 우리 아버지를 대신해서 결정을 내리는 겁니까?”지금 예민주 때문에 완전히 분통이 터진 사무는, 온몸에 철갑을 두른 듯한 기세로 똑바로 예민주를 노려보았다.사무의 눈빛에 대해서 예민주는 처음부터 아주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다.‘매번 저 자식의 눈을 볼 때마다, 정말 무진 오빠의 눈빛과 너무나도 닮았어. 무진 오빠하고 그야말로 판박이야.’사무가 거기에 서 있을 때는 그야말로 무진의 축소판이었다. 무진의 모습뿐만 아니라 행동 하나하나에도 성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몇 번 사무 저 새끼와 눈이 마주쳤을 때도 정말 아이러니했어.’‘처음 만났을 때 빨리 도망칠 걸. 정말 후회가 되네.’‘5년 전에 분명히 전혀 상관이 없는 사이가 됐는데, 왜 두 사람 사이에 애가 있는 거야?’‘송성연은 왜 이 두 아이를 낳았지? 무진 씨에게 이미 버림받았는데, 해외에서 편하게 지내면 얼마나 좋아?’‘그 여자의 능력이라면 낯선 나라에서도 여전히 잘 지낼 수 있어.’‘왜 운성시에 미련이 남은 거야?’“나를 보지 말고 고개를 돌려!” 결국 예민주는 참을 수가 없었다.사무는 아직 그런 내막을 잘 몰랐기 때문에 여전히 분노한 상태였다.“내 여동생에게 사과하세요!”“이 새끼, 너 지금 나한테 농담하는 거야?”예민주는 태연한 표정으로 사무를 조롱했다.“아무도 원하지 않는 사생아 주제에, 아직도 여기서 나한테 이렇게 날뛰다니!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것 아니야?”“이 못된 아줌마!”사진은 지금 지쳤지만 이 여자와 오빠가 이렇게 싸우는 소리를 듣자, 화가 나서 큰 소리로 따라서 외쳤다.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
예민주가 무진을 보러 매일 회사에 올 수는 없는 노릇.그러나 자신이 잘 쓰는 방법을 사용해서 WS그룹에 자기 부하를 하나 심었다.매일 무진의 스케줄을 예민주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오늘 아침 전화한 사람은 두 아이가 몰래 대표실에 들어갔는데, 줄곧 대표님을 아빠라고 불렀다고 말했다.평소 기발한 행동을 해서 명문가에 시집가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다.운성 경제의 명맥을 쥐고 있는 무진과 누가 관계를 맺고 싶지 않겠는가!매일 프런트에서 자칭 ‘강무진의 아내'라고 주장하는 여자들을 몇 명이나 상대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거의 대부분은 프론트에서 차단되지.’‘그런데 오늘 대표 집무실로 직접 들어온 아이들이 있다니.’원래 예민주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머릿속에 문득 성연의 모습이 번뜩였다.‘결국 당황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황급히 회사로 달려왔는데.’‘뜻밖에도 정말 송성연과 관계가 있었어!’예민주는 다시 눈앞의 이 두 아이에게 눈길을 돌렸다.예민주의 눈빛에 음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너희들은 평소에 엄마하고 같이 있지 않니?”사진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요, 매일 엄마하고만 같이 있어요. 그래서 아빠가 보고싶어요.”아이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자, 예민주는 내친 김에 계속 캐물었다.“너희들은 이전에 줄곧 외국에 있었는데, 아빠 가족들이 너희들을 찾지 않았어?”“아빠 가족들요?” 뭔가를 눈치챈 듯, 사진이 고개를 돌려서 옆에 있는 오빠를 바라보았다. 눈빛을 교환한 두 아이는 자신들만 알 수 있는 작은 신호들을 사용했다.‘이 여자는 그냥 회사를 좀 구경하게 해 주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아!’사무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작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아주머니, 이게 잘 안 들어가는데요? 좀 도와 주실래요?”갑자기 사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에는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레고 블록을 든 채.예민주는 계속 묻고 싶었지만, 사무가 성깔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요청을
남자는 전혀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약간 쉰듯한 목소리에서는 차가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예민주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이 두 아이 귀엽지 않아요? 오히려 오빠가 그렇게 쫓아냈는데, 만약 누군가 영상이라도 찍었다면, 회사의 명성에 영향을 주지 않겠어요?”“누가 감히 우리 WS그룹을 함부로 보도할 수 있겠어?”무진의 말에는 힘찬 기세가 담겨 있었다.무진이 결코 지나치게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강경할 수 있는 것이다.무진이 이렇게 말하자 예민주는 잠시 할 말이 없었다.하지만 잠시일 뿐!다시 무진에게 다가간 예민주가 작은 소리로 무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사실 쟤들은 이 참에 오빠하고 잠시 함께 있기 위한 핑계였어요.”예민주가 다가오자, 순간 그윽한 향기가 무진의 코에 스며들었다.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린 무진이 몸을 살짝 옆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 사이에 막 좁혀졌던 거리가 다시금 벌어졌다.무진은 다른 사람의 접근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접근해서 기회를 틈타 상류층으로 오르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았다.심지어 한 번만 만나려고 머리를 쥐어짜내는 사람들도 있다.그런 사람들은 이미 습관이 되었다.매번 비서진이 쉽게 대처했지만,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은 예민주다.자신의 여자 친구인.무진의 이런 습관을 예민주도 사실 잘 알고 있다. 평소에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예민주는 절대로 이렇게 짙은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그래야 무진이 자신과 함께 있을 때, 무진이 이렇게 배척하지 않을 테니까.하지만 지금 예민주는 이 ‘금기’를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방금 무진의 동작은 지금 예민주의 눈에는 적나라한 거부이자 분명한 소외감이었다.그러나 예민주는 감히 이 억눌린 마음을 마음속에 묻어두어야 했다.겉으로는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했다.입가에 줄곧 미소를 지은 채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애들하고 얘기를 해 볼게요. 애들이 왜 대표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