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성연은 여운을 남긴 채 먼저 공격을 멈추었다.고수들의 겨룸이었기에 무진 역시 두 말할 필요없이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그러나 미간을 찌푸린 채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도대체 어떤 자가 저쪽에 있는지 알아보려 역추적을 시도했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줄곧 곁에서 지켜보던 손건호 또한 이상하다고 느꼈다. ‘우리 보스의 능력이야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는데 말이지.’‘보스와 이 정도까지 싸울 수 있는 사람이라면 손에 꼽을 정도일 텐데. 상대방은 분명 이 분야의 고수야.’손건호가 따뜻한 물 한 잔을 따라와 무진에게 건네주었다.물잔을 받은 무진이 가볍게 한 모금 마셨다. 저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책상 위를 탁탁 두드렸다. 이건 무진이 생각에 잠길 때 나오는 동작이다.분명 무진은 지금 상대방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보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손건호는 쓸데없이 한마디 물었다.“저쪽에서 단순히 놀러 온 건지, 아니면 정말 목적을 가지고 온 건지 생각하고 있었어.”시스템이 처음 공격당했을 때 기밀 서류들을 중심으로 방화벽을 세워 보호했다.파일들을 잠시 다른 보안시스템으로 옮기기도 했다.처음 그 사람은 아마 기밀서류들을 겨냥해 공격해 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자신이 새로 구축한 보안시스템을 공격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그래서일까, 상대방은 기밀서류보다 자신과 겨루는 걸 더 원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놀아요?” 손건혼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저도 모르게 입가에 힘을 주었다.‘WS그룹의 최고 보안팀을 허둥지둥하게 만들 정도의 해커가 그냥 놀러 온 것이라고?’‘그런 고수들의 생각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어. 항상 지들 맘대로지.’“단지 추측일 뿐, 확실하지 않아. 최근 프로그램 쪽은 반드시 주의해서 살펴 봐. 그리고 가능한 빨리 더 강력한 보안시스템을 구축하게 해. 쉽게 들어오지 못하게.” 무진은 피곤한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렸다.WS그룹의 내부 네트워크와 자신의 컴퓨터 시스템을
성연이 노트북을 덮었다. ‘스카이아이 시스템’을 되찾기가 그리 쉽지 않을 거라는 건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하지만 저쪽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테니 아직 여유가 좀 있는 셈.지금 당장 강무진 앞에 가서 ‘스카이아이 시스템’은 내 것이라고 대놓고 말할 수도 없고.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소리소문 없이 ‘스카이아이 시스템’찾은 뒤에 바로 챙겨서 사라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강무진 쪽의 사람들 역시 성연이 생각했던 것처럼 만만치가 않았다.어쨌든,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반드시 ‘스카이아이 시스템’을 되찾아야 한다는 결심은 변함없었다. 원래 내 것이었으니까.하물며 강무진 쪽은 우리 조직의 어지러운 상황을 틈타 ‘스카이아이 시스템’을 가져간 것 아닌가. 게다가 돈도 지불하지 않은 채로.당연히 자신이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성연. 성연이 책상에 엎드려 무슨 말을 하려던 순간,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렸다.성연이 의자에서 일어섰다.“나 먼저 갈게. 내가 여기 있는 걸 보이면 곤란해.”이 학교 학생들은 하루 종일 할 일 없이 빈둥거리며 도대체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지난번 스캔들 때문에 보건실에 오려면 이제 몰래 와야 할 상황이다.안 그랬다가는 또 누군가 보고 어떤 소문을 퍼트릴지 모른다.“뭐가 곤란해요? 누군 아플 때 없어요? 이 보건실의 존재 이유는 아픈 사람이 오는 거예요.” 서한기는 대수롭지않게 생각했다.어차피 그야 성연과 한 편이니 경고를 받더라도 신경 쓸 게 없다.“나는 다르지. 만약 네가 그만두기라도 하면 누가 여기서 나를 도와?” 보건실 교사라는 서한기의 신분은 성연이 학교에서 운신하기에 매우 편리했다.서한기가 학교 내에 있으며 많은 도움을 주고 있었다. 평소 서한기에게 타박도 주고 질책도 했지만 여전히 믿을만한 수하였다.“만약 이 신분이 안 되면, 다른 신분으로 바꿀 수도 있지요. 보스를 여기 혼자 두지 않을 겁니다.”서한기는 짐짓 다정한 투로 말했다.그의 말투와 눈빛을 보던 성연이
늦은 오후, 학교 정규 수업이 끝난 후.성연은 자리에서 가방을 정리했다.교문을 나서기 전, 학교 안의 매점에 가서 밀크티 한 잔을 샀다.이전 밀크티 가게에서 일하던 그 여자 알바생이다.성연을 알아본 알바생이 반가워했다.“한동안 안보이더니 오랫만이네요. 요즘 잘 지내고 있어요?”알바생이 자신을 기억하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성연이 지나치게 반가워하는 말을 듣고 어색한 듯이 대답했다.“네 잘 지냈어요.”“알고 있었어요? 전에 게시판에 올라왔던 학생 사건, 엄청난 반전이었잖아요. 그때 게시판에서 난리가 났어요. 모두 학생을 오해했었는데……. 나도 학생 위해서 해명글 올리고 그랬었어요.” 알바생이 신난 목소리로 떠들었다.“고마워요. 하지만 다음부터는 그럴 필요 없어요. 굳이 말하지 않아도 깨끗한 자는 깨끗하고 더러운 자는 더럽다는 말도 있잖아요.”성연이 담담하게 말했다.그녀는 결코 이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어떤 댓글도 그녀에게 타격을 줄 수는 없었다.“어쩐지 그래서 학생이 그렇게 침착했구나. 이 일은 정말 내가 한 일이 아니었네. 그래도 학생한테 사과하고 싶었어요.” 알바생은 집에 돌아간 뒤 생각하니 더 미안함을 느꼈다.무고한 사람을 오해했으니 한 두 마디 사과로는 부족할 것 같았다.계속 성연이 다시 오기를 기다렸다. 다시 사과하고 싶었지만 성연은 오지 않았다.그래서 며칠간 실의에 젖어 있기도 했다.“이미 다 지난 일이에요. 특별히 제게 사과할 필요 없어요. 사과는 전에 이미 받았잖아요.”이 알바생의 순수함을 느낄 수 있었다.“저기 그런데 최대한 빨리 만들어 줄 수 있어요? 좀 급해서요.” 성연은 10분 미리 와서 밀크티 한 잔 사고 바로 돌아갈 생각이었다.예기치 못하게 이 알바생에게 붙들려 수다를 떨게 된 참.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무진의 운전기사가 지금쯤이면 벌써 도착했을 것이다.이 알바생이 신난게 말하는 통에 자신이 여기에 온 목적도 잊어버릴 뻔했다.알바생이 미안하다는 듯이 웃었다. “미안해요, 반가운
확실히 진미선이 성연에게 한 말이 맞았다.그때 진미선은 성연과 영원히 만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었다.그런데 성연이 그런 재벌가에 시집을 갈 줄 누가 알았겠는가?진미선의 얼굴이 좀 어색하게 굳었다. 딸에게 이런 핀잔을 들으니 체면이 서지 않았다.이때 진미선의 뒤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바로 진미선의 남편, 왕대관이다.성연과 진미선 사이의 자세한 내막은 몰라도 이 두 모녀의 관계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은 왕대관 역시 짐작할 수 있었다.하지만 자신의 딸이 아니니 좀더 여유 있게 대할 수 있었다.어린 아가씨지만 비위를 잘 맞춰 줄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강씨 집안,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꿈의 대상 아닌가.특히 자신들 같은 작은 회사로서는 엄청난 편의를 볼 수 있는 지름길과 같으니 줄을 잘 잡아야 하는 게 당연지사.성연을 손에 쥐기만 하면 앞으로 걱정할 필요가 없을 터였다.왕대관이 성연에게 웃으며 다가갔다. 그런대로 괜찮은 태도였다. 온유한 음성으로 말했다.“성연아, 네가 우리의 뜻을 오해한 것 같아. 아저씨는 단지 너에게 밥을 사주고 싶었을 뿐이야. 어쨌든 네 어머니와 결혼했으니 모두 한 가족이라 할 수 있지 않겠니. 아직 너를 본 적이 없어서 오늘 일부러 온 거야. 가끔 이렇게 모여 밥 먹는 것도 좋을 것 같고.”“죄송합니다, 아저씨. 밥 먹으로 얼른 집에 가야 해서요.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안되겠네요.” 성연이 일부러 강씨 집안 사람을 내세웠다.그리고 입술 끝만 살짝 올린 채 왕대관을 바라보았다.“그럼 밥은 나중에 먹고 차는 어때? 잠깐이면 되는데.”강씨 집안의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걸 잘 아는 왕대관이 한 발 물러나며 커피를 같이 마시자고 성연에게 요청했다.그 말에 성연은 왕대관을 다시 쳐다보았다. ‘이 남자는 그래도 진미선이나 송종철보다는 훨씬 똑똑하네.’‘하지만 그래도 귀찮아. 조금이라도 호의를 보이면 금세 나한테 완전히 들러붙을 거야.’‘난 그렇게 어리석지 않아.’성연이 일부러 순진한 척하며 눈을 깜박
성연이 괴로운 척하며 말했다.“저를 통해 강씨 집안과 줄을 대고 싶다면 단념하세요. 강씨 집안 사람들이 저에게 잘해주는 것은 모두 표면적인 거예요. 사실, 제 약혼자는 조광증이 있어서 저 맞기도 많이 맞았어요. 그러니 저를 통해 뭔가 얻어 가실 가능성은 없어요.”‘어차피 지금 강무진도 없잖아. 이름 좀 빌려서 번거로운 일 피한다고 해서 뭐라 하진 않을 거야.’‘여기서 하는 말은 강무진도 모르잖아. 진미선과 그 남편이 강무진 앞에 가서 이런 말을 하지도 않을 테고.’“강무진 대표가 너를 때린다고? 그럴 리가?” 진미선은 전혀 믿지 않았다.표면적인 관계인데 안금여가 성연에게 그렇게 잘할 리가 없었다.성연을 대하는 강씨 집안 사람들의 태도를 보면 전혀 거짓 같지 않았다.“에이, 말하자면 길어요. 강씨 집안이 저를 위해 생일파티를 해준 것은 강무진이 나에게 손찌검 한 행동을 감추려는 거예요. 강무진이 미친 사람이라는 소문도 못 들으셨어요?” 성연이 코를 훌쩍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좀 불쌍해 보이도록.좀더 심각해 보이도록 일부러 한숨도 쉬었다.그렇지 않으면 진미선과 왕대관이 어떻게 믿겠는가?“내가 보기에 그날 강무진 대표는 아주 정상이었는데.” 왕대관도 그런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다만, 헛소문인지 사실인지 누가 알겠는가. 그래서 그냥 농담으로 치부했을 뿐이었다.그는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것만 믿었다.그러나 성연의 말에 마음이 조금씩 흔들렸다. 설마 강무진이 정말 사람을 때렸을까?“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요. 또 생일파티 시작하기 전에 강무진이 약을 먹었으니 당연히 발작하지 않은 거죠. 사람들은 다 속고 있어요. 집에 있을 때 그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지…….”성연은 자신이 말하면서도 몸서리를 쳤다. 속으로 몰래 웃었다.자기가 말하고도 아주 진짜인 듯해서 하마터면 믿을 것 같았다진미선과 왕대관의 표정을 보며 성연이 계속 말했다.“그러니까 아저씨, 저한테 기대하지 마세요. 저는 강씨 집안에서 이미 충분히 조심스럽게 살고 있습
풀이 죽은 성연이 무진을 따라 차에 올라탔다.차에 탄 후 성연이 변명을 시도했다.“아저씨도 생각보다 똑똑하니까 저 사람들이 왜 나를 찾는지는 잘 알겠죠? 나는 일부러 그렇게 말한 거예요. 그래야 저 사람들을 따돌릴 수 있다고요.”“그래?” 무진의 말투는 밋밋했지만 표정은 어두웠다.성연은 지금의 강무진이 어느 때보다 무섭다고 느꼈다.무진과 같은 공간에서 지낸지 오래 됐지만 지금은 숨이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당연하죠. 아저씨도 내 말이 맞다는 걸 믿는게 중요하죠. 그리고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잖아요 아저씨가 날 안 때린다는 걸. 그러면 됐잖아요.” 성연이 ‘헤헤’ 웃으며 일을 대충 얼버무리려 했다. 무진이 오늘 보여주는 모습은 정말 무서웠다. 성연도 조심해야 할 것 같다.물론 무진이 자신을 때릴 거라 겁내는 게 아니다. 다른 게 걱정되는 것이다.“그래서 너는 날 그렇게 이상한 놈으로 만든거야?” 차가운 얼굴로 내뱉는 무진의 음성에 배인 것은 분노가 확실했다.성연이 마음속으로 생각했다.‘강무진도 이런 것들을 신경 써?’‘강상철과 강상규가 그렇게 오랫동안 가짜 소식을 퍼뜨리며 그를 미치광이로 몰았는데도 따지지 않았잖아?’‘어차피 그닥 좋은 소리도 못 들으면서 내가 몇 마디 한 게 어때서?’‘강무진, 지금 일부러 트집을 잡는 게 분명해.’마음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는 성연이지만 절대 입으로는 이렇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할 수 없이 말했다.“이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에요. 아저씨도 저 사람들이 와서 자기를 귀찮게 하는 건 싫잖아요?”처음으로 사람을 험담하다가 들키니 성연도 어쩔 수 없었다.“그냥 거절하면 되잖아? 아니면 네 눈에는 내가 정말 너에게 손찌검을 할 거라고 보이는 거야?” 강무진도 이 아이와 따지려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방금 자신을 정말 그런 사람인 것처럼 생생하게 말하는 게 무척 거슬렸을 뿐.“아니요. 아저씨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왜 모르겠어요?” 성연이 아첨하기 시작했다.무진이 가볍게 웃었다.그리고
성연으로부터 거절을 당한 진미선과 왕대관은 집에 돌아가 이 일에 대해 의논했다.“성영의 태도는 당신도 보았지만, 전혀 나를 상대하려 하지 않아요. 분명히 내가 자기를 원하지 않았던 일을 원망하고 있을 거예요.” 자신이 직접 성연을 키운 게 아니었다.자연 성연에 대한 애정도 그리 깊지 않았다.기껏해야 혈연관계가 있다는 것 뿐.자신에 대한 성연의 태도에 대해 진미선은 그저 교양이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할 뿐이다.이미 속으로 성연을 수백 번이나 욕을 한 상태였다.‘양심도 없는 것. 외할머니가 저를 키워줬는데 정말 양심도 없이.’‘이제 인생이 풀렸다고 친 엄마도 만나고 싶지 않아 하는 것 좀 봐.’진미선은 다만 속으로만 생각했다. 남편 왕대관 앞에서는 완벽한 아내의 이미지를 유지해야 하니까.예전 전남편 송종철 쪽에서 성연을 돌볼 거라고 다짐했기 때문에 왕대관은 안심할 수 있었다.어차피 왕대관 자신도 진미선이 아이를 데리고 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그러나 자신이 이렇게 말해야 지금의 남편 왕대관의 마음에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을 테다.왕대관도 진미선이 성연에게 몰래 돈을 준 사실은 몰랐다.성연이 진미선에게 나중에 서로 모르는 척하자고 한 것에 대해 왕대관은 믿지 않았다. 단지 성연의 일시적인 볼멘소리일 뿐이라고 생각했다.“딸이 당신을 원망하는 게 정상이야. 당신이 딸에게 좀더 좋은 말을 해줘. 언젠가는 딸의 태도가 좋게 바뀔 거야.” 왕대관은 이런 좋은 기회를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그런데, 성연이 정말 우리를 도울 수 있을까?” 진미선은 성연의 변화가 정말 크다고 느꼈다.예전에도 말을 잘 듣지 않던 아이였는데, 지금은 말할 것도 없다.아마 성연은 엄마인 자신의 체면을 세워주려 하지 않을 것이다.“당신은 친엄마잖아. 아이들은 모두 엄마의 사랑이 필요해. 지금 당분간은 화를 낼 테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당신의 태도를 보면서 서서히 좋아질 거야.”왕대관도 애초에 진미선의 아름다운 외모가 마음에 들었다. 결혼한 후에야 진미
이해득실을 따져보니 진미선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시골에 있을 때 성연에게 그렇게 말한 것을 후회했다.생각해 보면, 성연은 얼굴이 예쁜 편이다. 아마도 얄팍한 강씨 집안 도련님은 성연의 얼굴만 보고 좋아 하는 것은 아닐까?예전에 성연을 내팽개치고 나 몰라라 할 때는 언젠가 성연에게 기대어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게 될 날이 올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당신 그런 불편한 얼굴 하지 마. 저렇게 대단한 사위가 생겼는데 앞으로 부귀영화를 누릴 생각을 해야지?” 왕대관은 진미선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손을 어루만지며 위로했다.“말이야 쉽죠. 그렇게 하는게 얼마나 어려운데요?” 진미선의 말투가 좀 삐딱하다.“천천히 해. 어차피 당신의 딸이잖아. 조급해 하지 말고. 강씨 집안의 그 많은 돈을 우리도 좀 챙기자고.”진미선의 손을 어루만지는 왕대관의 마음에 욕망이 자라기 시작했다.진미선은 아주 젊었을 때 아이를 낳고 지금은 잘 회복되어 아이를 낳은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손을 더듬던 왕대관은 갑자기 몸이 동하며 흥분감을 느끼기 시작했다.몸에 열이 오르기 시작한 진미선이 왕대관의 목을 껴안았다.두 사람이 막 키스하려고 할 때,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세게 열렸다.그리고 날카로운 음성이 들렸다.“지금 시간이 몇 신데 아직 밥도 안 차리고 뭐하는 게야. 나를 굶겨 죽이려는 거냐? 시커먼 마음으로 우리 집안에 들어온 걸 진작 알고 있었지만, 이제야 본심을 드러내는 구나?”들어온 사람은 바로 왕대관의 어머니였다.진미선과 왕대관 둘다 표정이 구겨졌다.막 아내와 즐기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사람이 들어오니 들끓던 흥분이 싹 사라져버렸다.“어머니, 뭐 하십니까?” 자연 왕대관에게서 차가운 음성이 나왔다.자기 아들의 말투가 좋지 않자 왕대관 어머니는 또 다시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아이고, 여자가 바로 화근이야. 봐봐, 아들마저 엄마를 몰라보게 만드는구나!”어릴 때부터 학교에 다닐 때까지 혼자 힘들게 키워
‘그런 예민주가 이렇게 몰락할 줄 누가 알았겠어?’‘결국 5년 동안이나 무진 씨 애인 노릇에 만족해 있었다니!’‘심지어는 오늘 같은 이런 악랄한 짓까지 저지를 정도가 되었으니. 스승님이 아시면 얼마나 섭섭하시겠어.’“송성연, 너 지금 미쳤어! 완전히 미쳤어!”예민주가 언제 이런 억울한 일을 당했을까? 연거푸 따귀를 맞은 데다가, 지금은 또 성연의 냉소와 신랄한 조롱을 들어야 했다.큰 소리로 호통을 치는 예민주의 눈빛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원래의 정돈된 헤어 스타일과 잘 차려 입은 옷차림은 이미 엉망이 되어 있었다.온몸에 지금 낭패한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회의실. 두 시간의 긴 회의가 마침내 끝났다. 무진이 회의실을 나서자마자 당황한 표정의 손건호가 휴대전화를 들고 다가왔다.무진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짜증스러운 표정이었다.‘평소라면 손건호가 절대 이렇게 침착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텐데...’“보스, 예민주 씨가 맞았습니다!”사람들이 모두 나가자 손건호가 급히 보고했다.“뭐라고?” 무진이 되물었다.“보스, 빨리 사무실로 가 보십시오.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습니다.”방금 회의가 끝나갈 때, 손건호는 자료를 찾으러 먼저 회의실에서 나왔다.뜻밖에도 부리나케 달려온 비서실의 비서가 이 일을 알려주었다.무진의 눈동자가 어두워지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왜 아무도 막지 않았어?”무진이 왜 아무도 막지 않았냐고 물었지만, 손건호도 대답하기가 곤란했다.‘막고 싶어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지요!’ ‘대표실은 원래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게다가 사모님(!)이 갑자기 뛰어들어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전혀 대비도 하지 못했어요.’‘안에서 예민주의 비명 소리가 들려서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안에서 문을 잠궜기에 들어갈 수도 없었어요!’그러나 결국 손건호는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대표실 앞으로 다가간 무진의 귀에 울음 소리와 함께 자기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리게 되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 아이의 몸에 난 상처는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팠다.그리고 이런 상황에 직면하자, 성연은 범인이 바로 예민주라고 생각했다.‘방금 전에도 애들 앞에서 그렇게 헛소리를 지껄였어. 눈앞에 두 아이만 있는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지.’‘그런 여자가 뭘 못하겠어?’‘이 순하기만 한 두 녀석은 엉뚱한 짓을 한 적이 여태까지 한 번도 없었어.’‘충분히 사랑을 받았지만, 그걸 믿고 교만했던 적은 없었어.’‘밖에서는 더 영리하고 깜찍해서 누구나 좋아해. 척 봐도 좋아할 수밖에 없어.’‘그런데 여기에 와서 온몸에 멍이 들다니!’성연의 가슴에서 다시 분노가 폭발했다.딸아이를 가볍게 내려 놓은 성연은, 여전히 따뜻한 눈빛으로 사무를 보면서 말했다.“동생을 잘 보고 있어. 너희가 당한 억울한 일을 엄마는 절대 그냥 넘기지 않을 거야!”“엄마, 저 아줌마는 나쁜 사람이야! 엄마가 반드시 혼내줘!”여전히 품에 안긴 채, 사진은 재빨리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두 눈에 가득한 억울함을 지금 열심히 엄마에게 표현하려고 했다.“걱정 마. 엄마가 저 여자를 혼내줄게!”바로 일어선 성연이 성큼성큼 예민주 쪽으로 걸어갔다.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예민주는 성연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서한기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쳤지만, 예민주가 어떻게 훈련으로 단련된 남자의 적수가 될 수 있겠는가?“놔! 너희들 뭐 하려는 거야?”예민주의 눈빛에는 걱정과 당황한 기색이 가득했다. 불안한 마음에 가슴은 두근거리면서 발걸음마저 비틀거렸다.짝! 짝!“이건 네게 주는 교훈이자 경고야. 내 아이는 절대 네가 건드릴 수 없어!”“네가 뭔데? 무진 씨 옆에 이미 5년이나 있었지만, 아직도 내 자리를 대신하지 못했지.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겠어!”“이건 첫 번째이자 마지막 경고야! 아이들은 바로 내 마지노선이야. 네가 또 손을 대면 절대 지금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아!”성연은 목소리는 마치 서릿발 같았다. 온몸에서 뿜어내는 싸늘한 기운에 무더운 날씨조차 얼음 세상으로 변하는 듯했
“오빠, 아빠가 정말, 정말로 우리를 안 받아들일까? 우리가 방금 아빠를 찾았는데.”작은 얼굴에 슬픔을 가득 담은 채, 사진은 간절한 시선으로 오빠를 바라보았다.예민주는 지금 자신의 말을 자화자찬하며 한껏 득의양양한 표정이었다.팔짱을 낀 채 아이들을 내려다보는 눈빛에는 승자의 기운이 가득했다.잠시 후 자신에게 벌어질 참상을 알았다면 절대 그러지 못했겠지만...대표 집무실 바깥.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성연은 결연한 눈빛으로 대표실을 향해 다가갔다.쾅-단숨에 집무실 문 앞에 선 성연은 아무런 노크도 없이 바로 방문을 열었다.“너 이 새끼, 정말...”아이 앞에서 거침없이 내뱉는 예민주의 말이 성연의 귀에 몹시 거슬렸다.“예민주, 뭐 하는 거야!”자신의 아이들이 눈물 자국이 가득한 채 구석에서 서로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자, 엄마의 본능이 단숨에 뿜어져 나왔다.“내 애들에게 무슨 짓을 했어!”단숨에 앞으로 나아간 성연은 두 손으로 예민주의 멱살을 움켜쥐었다.한 손으로 멱살을 쥔 채 다른 한 손으로는 바로 예민주의 따귀를 때렸다.“네가 뭔데 내 아이를 혼을 내? 너는 그럴 자격이 없어!”성연의 차가운 눈빛은 분노로 활활 타올랐다. 온몸의 분노가 곧 폭발할 듯이!잇달아 따귀를 때렸지만 때리는 소리는 오히려 점점 더 커져갔다.“엄마!” 성연이 다시 손을 들고 예민주의 뺨을 때리려고 할 때, 문득 익숙한 여린 목소리가 들렸다.순간 성연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잠시 멈칫하던 성연은 계속 두드려 맞느라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간 예민주를 밀쳐낸 뒤 딸아이를 품에 안았다.“아가, 엄마가 늦게 와서 미안해.”성연은 두 손으로 사진을 꼭 껴안은 채 자책했다. 지금 마음속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방금 전 예민주를 때릴 때의 그 무시무시한 기세도 모두 사라졌다.슬퍼하는 성연을 보면서, 사무는 두 주먹을 꼭 쥔 채 여전히 경계심이 가득한 모습이었다.그러나 엄마가 온 뒤에는 그래도 많이 풀어진 모습이었다. 자신이 든든한 후원자가 있기에.성연이
사진은 눈앞의 이 여자가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고, 절대로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원래 예민주의 말은 걸러서 생각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역시 어린아이였다.“오빠, 우리 아빠가 정말 우리를 이렇게 싫어해?”눈물이 그렁그렁한 여동생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당신은 어른이면서 어떻게 이렇게 어린아이와 말다툼을 하는 겁니까? 당신이 뭔데, 여기서 우리 아버지를 대신해서 결정을 내리는 겁니까?”지금 예민주 때문에 완전히 분통이 터진 사무는, 온몸에 철갑을 두른 듯한 기세로 똑바로 예민주를 노려보았다.사무의 눈빛에 대해서 예민주는 처음부터 아주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다.‘매번 저 자식의 눈을 볼 때마다, 정말 무진 오빠의 눈빛과 너무나도 닮았어. 무진 오빠하고 그야말로 판박이야.’사무가 거기에 서 있을 때는 그야말로 무진의 축소판이었다. 무진의 모습뿐만 아니라 행동 하나하나에도 성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몇 번 사무 저 새끼와 눈이 마주쳤을 때도 정말 아이러니했어.’‘처음 만났을 때 빨리 도망칠 걸. 정말 후회가 되네.’‘5년 전에 분명히 전혀 상관이 없는 사이가 됐는데, 왜 두 사람 사이에 애가 있는 거야?’‘송성연은 왜 이 두 아이를 낳았지? 무진 씨에게 이미 버림받았는데, 해외에서 편하게 지내면 얼마나 좋아?’‘그 여자의 능력이라면 낯선 나라에서도 여전히 잘 지낼 수 있어.’‘왜 운성시에 미련이 남은 거야?’“나를 보지 말고 고개를 돌려!” 결국 예민주는 참을 수가 없었다.사무는 아직 그런 내막을 잘 몰랐기 때문에 여전히 분노한 상태였다.“내 여동생에게 사과하세요!”“이 새끼, 너 지금 나한테 농담하는 거야?”예민주는 태연한 표정으로 사무를 조롱했다.“아무도 원하지 않는 사생아 주제에, 아직도 여기서 나한테 이렇게 날뛰다니!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것 아니야?”“이 못된 아줌마!”사진은 지금 지쳤지만 이 여자와 오빠가 이렇게 싸우는 소리를 듣자, 화가 나서 큰 소리로 따라서 외쳤다.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