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 되자 성연의 열이 많이 떨어졌다. 대신 땀으로 온몸이 끈적였다.성연이 눈을 떠 보니 벌써 아침이었다.머리는 여전히 어지러웠지만, 침대 옆에서 자고 있는 무진을 보니 마음이 따뜻해졌다.보아하니 무진이 밤새도록 자신을 간호한 것 같았다.성연은 옆으로 돌아 무진의 팔을 두드렸다.“무진 씨, 무진 씨.”옅은 잠에 들었던 무진이 바로 일어났다.그는 자신 앞에 있는 성연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그녀의 이마를 만졌다.이마의 온도가 정상으로 돌아오고 더 이상 열이 나지 않는 것을 확인한 무진은 그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무진이 성연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말했다.“다음부터는 그렇게 늦게까지 공부하지 마.”“제 몸이 이렇게 약해졌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예전엔 소도 때려잡을 만큼 건강했는데, 그러고보니 아픈 지도 오랜만이네요.”성연이 한숨을 쉬었다.정말 평소에 너무 열심히 일한 것 같았다.“넌 만화 속 영웅이 아니야. 당연히 아플 때가 있지.”무진은 그런 그녀의 말을 듣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침대로 가서 주무세요. 무진 씨가 저보다 더 몸이 안 좋잖아요. 무진 씨까지 아프면 어떡해요?”성연은 밤새 찬 바람을 쐰 무진의 몸을 생각하며 미안함을 느꼈다.“괜찮아.”무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가 집사에게 성연이 먹을 죽을 달라고 부탁했다.이미 죽을 준비해서 성연이 먹기 편하게끔 식히고 있었다.죽이 성연이 가까이 있는 테이블 위에 놓였다.성연은 간단히 세수를 했지만, 그래도 몸이 끈적했다. 불편해서 목욕을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아직도 미열이 남아있어 당분간은 몸을 사용하지 않는 게 좋았다.그녀는 화장실로 가 옷을 갈아입고 죽을 먹었다.식사 후, 성연은 훨씬 몸이 가벼워졌다. 안색도 연분홍 빛으로 돌아왔다.몸이 괜찮아진 걸 느낀 성연은 위층으로 올라가 책가방을 싸며 학교에 갈 준비를 했다.현관문으로 가는 성연을 본 무진이 말렸다.“송성연, 어디 가?”성연은 어깨에 책가방을 흔들며 말했다.“이러고 어디 가겠
그렇게 이틀을 성연은 집에서 쉬었다.그래서 그런지 성연의 몸은 완전히 회복되었다.어쨌든 그녀 자신도 의술인으로서 어떤 약을 먹어야 하는지,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안금여와 강운경도 병 문안을 왔다.또 오면서 몸에 좋은 많은 것들을 챙겨 왔다.안금여는 성연을 보자마자 인사를 하며 물었다.“성연아, 왜 몸이 안 좋아? 무진이가 널 잘 돌 봐주지 않았어?”“할머니, 전 괜찮아요. 제 부주의예요.”성연은 걱정스러운 안금여의 목소리에 진심어린 미소를 띠었다.예전에는 외할머니가 걱정할까 봐 감히 알리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았던 적이 있었다.‘아플 때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이 느낌 정말 좋아. 마음이 따뜻해져.’적어도 성연은 이 느낌을 좋아했다.“다음부턴 조심해. 몸이 많이 불편하지?”안금여는 걱정 어린 목소리로 성연의 손을 꼭 잡았다.마치 그녀가 아픈 사람인 것 같았다.강운경도 이때 다가와 말했다.“고모부가 해외에서 사온 비타민이야 체력이 떨어질 때 먹으면 효과가 좋대. 한번 먹어봐.”그녀는 상자 여러 개를 들고 성연의 앞에 놓았다.안금여도 이에 동의하며 웃었다.“이건 할머니가 백화점에서 직접 골라온 것들이야. 다 네 나이에 맞는 비타민이야.”성연은 테이블 위에 수북이 쌓인 박스들을 바라봤다.‘이건 좀 과한 것 같은데.’성연은 힘없이 말했다.“고모, 할머니, 그냥 열이 났을 뿐이에요.”비교적 젊고 회복력이 빠르기에 이런 것들을 먹지 않더라도 금방 회복할 수 있었다.세 가지의 비타민.일부 비타민은 복용할 수 없었다.하지만 안금여와 강운경은 좋은 걸 먹을 생각에 좋다는 건 뭐든 사 왔었다.“이번엔 열만 났지만, 건강을 신경 쓰지 않으면 앞으로 더 심각한 병에 걸릴 수도 있어. 젊어도 건강은 챙겨야 해.”안금여는 진지하게 말했다.“무진이를 만나기 전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이렇게 병에 다 걸리고…….”안금여는 한숨을 쉬었다.강운경이 입을 열었다.“너 같은 젊은 애들은 시간이 있을 때 운동을 좀 더
주말.안금여가 엠파이어 하우스로 왔다.안금여를 보고 좀 의아해진 성연이 물었다.“할머님,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세요?”안금여가 말했다.“성연아, 너 주말에 별일 없지? 나랑 같이 쇼핑도 하고 바람 쐬러 나가자.”성연이 온종일 집에만 있는 게 친구도 없는 것 같아 보여 안금여는 늘 마음이 안 좋았었다.“네, 별일 없어요, 할머니. 옷 갈아입고 올 테니 잠시 기다려 주세요.” 어른과 함께 쇼핑을 해 본 적이 없는 성연이지만 안금여와 같이 나가서 쇼핑하며 구경하는 것도 분명 즐겁겠다 싶었다.이제 수학경시대회의 문제 유형은 거진 파악한 셈이었다.그래서 별로 긴장되지 않았다.옷을 갈아입은 성연은 안금여를 따라 백화점으로 갔다.뒷좌석에 앉아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가 어느새 백화점에 도착해 있었다.차에서 내리니 백화점 앞에서 이미 기다리고 있는 강운경이 보였다.“고모님.” 성연은 다정하게 운경을 불렀다.“성연아, 엄마, 오셨어요? 가요, 들어가서 둘러봐요.” 잠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회사에 들른 운경은 일을 끝낸 후 다시 백화점으로 와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던 터였다.세 사람은 함께 백화점 안으로 들어갔다.这一个大商场,全部都是奢侈品。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화려한 백화점 명품관.강운경과 안금여는 이곳의 단골 고객인 듯.어디를 가든 모두가 아주 공손한 태도로 맞이했다.한 여성복 매장에 들어간 운경이 성연을 위해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한 벌을 집어 들고 성연 앞에 대어 보며 말했다.“성연아, 맞는지 가서 한 번 입어 볼래?”상큼하고 사랑스러운 느낌의 핑크 빛 원피스였다.허리 뒷부분에 리본 모양의 장식이 달려 있어 성연이 보기엔 좀 유치했다.그러나 운경의 호의를 거절하지 못한 성연은 피팅 룸으로 들어가 갈아입고 나왔다.하얀 피부와 또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성연이 입으니 애니메이션 속 아름다운 소녀 같았다.안금여가 옆에서 칭찬했다.“우리 성연이 정말 예쁘네. 이 옷 잘 어울린다.”운경도 만족스럽
‘가만, 강진성과 송아연이 어떻게 같이 어울리는 거지?’성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 핑계로 대고 나왔다.그리고 두 사람을 따라갔다.그리고 두 사람이 송아연과 강진성이 맞다는 사실을 확인했다.송아연을 데리고 다니며 강진성은 그녀를 위해 적지 않은 명품 물건들을 쇼핑했다.두 사람의 손에는 꽤나 많은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송아연은 강진성의 팔짱을 다정하게 끼고 있었다.쥬얼리 매장을 지나던 송아연이 달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진성 씨, 좀 봐요, 저 팔찌 너무 예쁘다.”눈을 들어 쇼윈도우에 진연 된 팔찌를 슬쩍 본 강진성이 물었다.“음, 괜찮은데? 갖고 싶어, 베이비?”강진성의 ‘베이비’ 호칭에 송아연이 부끄러워 죽겠다는 척을 했다.송아연이 얼굴을 붉히며 애교를 부렸다.“내가 갖고 싶은 게 아니라……. 그저 엄마에게 저런 팔찌를 선물하면 무척 좋아하실 거란 생각을 했을 뿐이에요.”“우리 베이비는 보배는 정말 효녀야. 들어가서 보자.” 그런 송아연이 사랑스럽다는 듯이 강진성의 얼굴은 부드러운 미소로 가득했다.하지만 웃음이 번지지 않은 그의 눈은 서늘하기만 할 뿐이다.강진성의 눈빛을 읽지 못한 송아연이 그를 끌고 쥬얼리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매장 안에 들어선 아연은 정교한 세공의 보석들에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강진성과 같이 다니며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보고 알게 되었다.한 차례 시야가 확 넓어졌다고 할까.매장 한쪽에 마련된 소파에 앉자마자 아연이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여기서 가장 비싼 팔찌를 보여줘요.”무의식 중에 직원이 강진성 쪽을 쳐다보자 강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직원은 즉시 몸을 돌려 들어가 팔찌를 꺼내 왔다.팔찌를 보던 아연은 자신이 너무 속을 드러내 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강진성을 바라보며 바로 토끼 같은 모습으로 변신했다.“진성 씨, 제가 좀 비싼 팔찌를 사도 괜찮겠죠? 아무튼 강씨 집안 도련님인 당신 체면을 깍을 순 없잖아요.” 아연이 아주 친근한 음성으
두 사람이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본 성연은 분명 좋은 일이 아님을 짐작했다.눈살을 찌푸린 성연은 아무런 기척도 내지 않고 커피숍으로 돌아갔다. 섣부른 행동으로 저들의 경계심을 사지 않도록.데리러 온 무진은 먼저 안금여와 운경을 강씨 고택까지 모시고 갔다.그리고 다 같이 고택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식사하는 내내 안금여는 성연에게 이것저것 음식들을 집어 주었다.“성연아, 좀 더 먹어. 네 몸을 좀 봐, 얼마나 말랐는지.”성연은 그들이 진심으로 자신에게 잘해 준다는 것을 알았다.그래서 거절하지 않고 그릇에 있는 것을 남김없이 먹었다.운경은 무진과 대화중이었다.“내가 골라준 스커트들을 성연이 입는 걸 네가 꼭 지켜봐야 해. 젊은 아가씨는 아가씨의 모습이 있어야지. 하루 종일 교복만 입어서야 되겠니?”“성연이 좋아하면 됐죠, 뭐.” 무진은 운경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은 채 성연의 역성을 들었다.“쯧쯧, 얘 좀 봐. 와이프가 생기더니 고모는 아예 안중에도 없네.” 운경이 무진을 놀렸다.자신의 조카는 예전부터 한결같이 냉담한 성격으로 무엇에도 심드렁한 모습이었다.그런데 성연에게 이처럼 잘해 주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애초에 자신의 엄마 안금여가 이런 혼사를 결정했을 때, 무진의 저 성격에 한바탕 비극으로 끝나리라 예상했던 게 사실.그러니 저 두 사람이 저토록 잘 지내리라 상상이나 했을까?하지만 송성연 저 아이는 확실히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만했다.“무슨.” 무진이 입으로는 반박의 말을 했지만 눈으로는 전혀 부인하지 않았다.운경이 성연 쪽을 바라보았다.비록 운경은 아무 말도 않았지만 성연은 뺨이 계속 뜨겁게 느껴졌다.성연이 뺨의 열기를 참으며 대답했다.“고모님, 걱정 마세요. 사 주신 옷들 정말 예뻐요. 꼭 입을게요.”“그럼 됐어.” 부끄러워하는 성연을 본 운경은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다.성연과 무진은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들의 거처로 돌아왔다.“오늘 재미있었어?”무진이 물었다.조수석에 앉아 있던 성연이 눈에
송씨 집안.아연은 선물 받은 쇼핑백들을 한가득 들고 집으로 귀가했다. 행복한 표정을 지은 채.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현관에 들어서는 그녀의 표정과 인사에서 그 기색이 남김없이 드러났다.송종철이 물었다.“너 이 물건들은 다 뭐냐?”현재 점점 더 안 좋은 송씨 집안의 형편에 아연에게 이런 사치품들을 사줄 돈이 없었다.아연이 가져온 물건들은 적게 잡아도 수 억은 되어 보였다.송종철은 아연이 무슨 부정한 짓이라도 저지른 게 아닌 가 걱정되었다.아연이 곧장 자랑했다.“당연히 강진성이 나에게 준 것들이죠.”턱을 치켜들며 말하는 아연의 어투가 상당히 교만스러웠다.임수정이 즉시 옆에서 아연을 치켜세웠다.“우리 아연이 정말 대단해. 역시 내 딸이야. 얼굴이 예쁘니 쉽게 사랑받는 게지.”하지만 조금은 더 이성적인 송종철이 의심스럽다는 듯이 물었다.“강진성이 정말 너를 마음에 들어 하는 거냐?”어찌 되었든 강씨 집안은 진짜 명문재벌의 가문이다.자기 아버지에게서 의심의 말을 들은 아연이 바로 불만스럽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아빠, 방금 그 말 무슨 뜻이에요? 강무진도 송성연을 마음에 들어 하는데, 그럼 내가 송성연 보다 못하다는 말이에요?”송종철 또한 잠시 생각해 보니, 아연의 말이 옳았다.성연은 시골에서 올라온 계집애에 불과했다.하지만 자신들이 성심으로 키운 아연은 가야금, 바둑, 서화까지 두루 익혔다.‘성연이 보다 훨씬 낫네.’‘성연이처럼 촌스럽고 천박한 아이가 어떻게 강무진의 호감을 산 거지?’‘아무리 그래도 성연이 강무진 그리고 강씨 집안 사람들 마음에 들었다는 게 정말 이상하지 않나?’이렇게 생각하면 강진성이 아연에게 반한 것도 매우 정상적인 일인 셈이다.송종철이 아연에게 말했다.“진짜 그런 거라면 좀 더 바짝 달라붙어. 성연이 그 백여우는 절대 우리 집안 편을 들지 않을 테니.”이제 의지할 데라고는 송아연, 자신의 어린 딸뿐이다.아연일 키우는데 쓴 그 많은 돈이 아깝지 않았다.아연인 그래도 좀 쓸모가 있어 보인다.“
송아연은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송종철가 임수정의 대화는 그녀의 허영심을 더 부풀렸다.조만간 송성연을 눌러 버릴 거라고 아연은 속으로 생각했다.강진성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간에 강무진에 대해 모두 들었다.겉만 멀쩡해 보이는 병신과 다름없는 몸은 언제 죽을지도 모를 정도로 나쁘다고 하니.그때면 강씨 집안의 주인도 바뀔 테고.강무진이 죽으면 송성연의 뒷배도 사라지는 게 아닌가.송성연을 마음껏 괴롭혀도 감히 딴소리를 하는 사람도 없을 테지.그런 아름다운 미래를 상상하는 아연의 입꼬리가 올라가 내려올 줄을 몰랐다.그러니 강진성을 붙들고 놓지 않는 것이 현명한 행동일 것이다.아연이 옆에 놓아둔 쇼핑 가방을 흘깃 쳐다보았다.그리고 쇼핑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임수정에게 건넸다.“엄마, 이건 진성 씨가 엄마한테 드리는 선물이에요.”과분한 선물을 받은 임수정은 약간 얼떨떨한 기분이었다.“강진성이 왜 나에게 선물을 사주는 거야? 아연아, 너는 조금 전까지 강진성이랑 함께 있었잖니? 선물 좀 그만 받아. 안 그러면 사람들은 네가 돈에 넘어간 거라 생각할 거야.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줘야 해.”물론 애초 자신들의 목적이 강씨 집안의 지위였기는 하지만 말이다.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역시 좀 그럴 듯하게 포장하는 게 좋을 터.생각해 보니 재벌들은 역시 이런 것들을 좋아하지 않았다.“엄마, 어차피 강씨 집안은 돈 많아. 강진성도 나를 위해 흔쾌히 돈을 쓰는 데 뭐. 그 사람은 전혀 신경 안 쓸 거야.” 아연이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임수정을 재촉했다.“엄마, 어서 열어봐.”정교한 쥬얼리 박스를 본 임수정도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바로 열었다.송종철의 회사 사정이 안 좋은 덕분에 임수정은 보석을 새로 구입한 지도 이미 오래되었다.이건 자기 딸이 자신에게 준 것이었다.곧장 쥬얼리 박스를 열어보니 안에는 빛깔 영롱한 팔찌가 놓여 있었다.곧바로 집어 든 임수정이 팔목에 찼다.“손목에 잘 어울리는데?”임수정이 아주
강무진은 귀국하자마자운영관리 소홀을 이유로 강상철 소관의 지사 두 곳을 회수해버렸다. 모두 수익이 높은 지사들이다.지사 두 곳을 거둬 들이며 강상철의 오른손을 끊은 셈이다.그러면서 강상철의 자금 대부분이 끊겼다.화가 난 강상철의 얼굴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다.하지만 더 이상 어쩔 방법이 없었다.강무진의 이번 출국으로 강상철의 손실이 도리어 막심했다. 처음에는 강무진의 부상이 심각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까지 팔팔하게 살아 있지 않은가.이미 당했다는 걸 어떻게 모를 수 있었는지.시퍼런 얼굴로 소파에 앉아 있던 강상철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강무진 이 놈, 절대 얕봐서는 안될 놈이야. 몸이 온전하지 않은 게 뭔 대수야. 결국 강씨 집안 피가 그 손에 흐르고 있으니 웬만한 실력자들 보다 낫다.”여태껏 강무진을 무시했었다.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야 강무진이 별볼일 없는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자신들을 이런 식으로 속여 넘기다니.“강무진이 어떻게 관청에 안 걸릴 수가 있지?”강일헌 또한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학교에 다닐 때도 가족이라는 이유로 늘 강무진과 비교당하며 패배감을 느껴야 했다.실적도 강무진 보다 못하고, 업무 능력도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다.현재 주주들의 저울추는 점차 강무진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오직 이익만 바라보는 늙은 여우들은 자연히 무진 쪽에 좀 더 기울어 있었다.비록 지금 강무진의 몸이 좀 약하다지만 바로 눈 앞에서 그 능력을 본 것이다.그러니 그들이 또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누가 돈 앞을 모른 척하겠는가?“할아버지,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강일헌은 지금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지난번 해외에서의 실패로 그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지금은 무엇도 할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특히 회사 사람들 모두 자신이 강무진 보다 못하다고 말할 때면 말이다.강일헌은 더욱 자신이 없었다.주눅이 든 강일헌의 모습에 강상철은 화가 치밀었다.“제발 좀 제대로 할 수 없겠니? 네가 무진이 놈
‘그런 예민주가 이렇게 몰락할 줄 누가 알았겠어?’‘결국 5년 동안이나 무진 씨 애인 노릇에 만족해 있었다니!’‘심지어는 오늘 같은 이런 악랄한 짓까지 저지를 정도가 되었으니. 스승님이 아시면 얼마나 섭섭하시겠어.’“송성연, 너 지금 미쳤어! 완전히 미쳤어!”예민주가 언제 이런 억울한 일을 당했을까? 연거푸 따귀를 맞은 데다가, 지금은 또 성연의 냉소와 신랄한 조롱을 들어야 했다.큰 소리로 호통을 치는 예민주의 눈빛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원래의 정돈된 헤어 스타일과 잘 차려 입은 옷차림은 이미 엉망이 되어 있었다.온몸에 지금 낭패한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회의실. 두 시간의 긴 회의가 마침내 끝났다. 무진이 회의실을 나서자마자 당황한 표정의 손건호가 휴대전화를 들고 다가왔다.무진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짜증스러운 표정이었다.‘평소라면 손건호가 절대 이렇게 침착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텐데...’“보스, 예민주 씨가 맞았습니다!”사람들이 모두 나가자 손건호가 급히 보고했다.“뭐라고?” 무진이 되물었다.“보스, 빨리 사무실로 가 보십시오.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습니다.”방금 회의가 끝나갈 때, 손건호는 자료를 찾으러 먼저 회의실에서 나왔다.뜻밖에도 부리나케 달려온 비서실의 비서가 이 일을 알려주었다.무진의 눈동자가 어두워지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왜 아무도 막지 않았어?”무진이 왜 아무도 막지 않았냐고 물었지만, 손건호도 대답하기가 곤란했다.‘막고 싶어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지요!’ ‘대표실은 원래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게다가 사모님(!)이 갑자기 뛰어들어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전혀 대비도 하지 못했어요.’‘안에서 예민주의 비명 소리가 들려서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안에서 문을 잠궜기에 들어갈 수도 없었어요!’그러나 결국 손건호는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대표실 앞으로 다가간 무진의 귀에 울음 소리와 함께 자기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리게 되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 아이의 몸에 난 상처는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팠다.그리고 이런 상황에 직면하자, 성연은 범인이 바로 예민주라고 생각했다.‘방금 전에도 애들 앞에서 그렇게 헛소리를 지껄였어. 눈앞에 두 아이만 있는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지.’‘그런 여자가 뭘 못하겠어?’‘이 순하기만 한 두 녀석은 엉뚱한 짓을 한 적이 여태까지 한 번도 없었어.’‘충분히 사랑을 받았지만, 그걸 믿고 교만했던 적은 없었어.’‘밖에서는 더 영리하고 깜찍해서 누구나 좋아해. 척 봐도 좋아할 수밖에 없어.’‘그런데 여기에 와서 온몸에 멍이 들다니!’성연의 가슴에서 다시 분노가 폭발했다.딸아이를 가볍게 내려 놓은 성연은, 여전히 따뜻한 눈빛으로 사무를 보면서 말했다.“동생을 잘 보고 있어. 너희가 당한 억울한 일을 엄마는 절대 그냥 넘기지 않을 거야!”“엄마, 저 아줌마는 나쁜 사람이야! 엄마가 반드시 혼내줘!”여전히 품에 안긴 채, 사진은 재빨리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두 눈에 가득한 억울함을 지금 열심히 엄마에게 표현하려고 했다.“걱정 마. 엄마가 저 여자를 혼내줄게!”바로 일어선 성연이 성큼성큼 예민주 쪽으로 걸어갔다.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예민주는 성연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서한기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쳤지만, 예민주가 어떻게 훈련으로 단련된 남자의 적수가 될 수 있겠는가?“놔! 너희들 뭐 하려는 거야?”예민주의 눈빛에는 걱정과 당황한 기색이 가득했다. 불안한 마음에 가슴은 두근거리면서 발걸음마저 비틀거렸다.짝! 짝!“이건 네게 주는 교훈이자 경고야. 내 아이는 절대 네가 건드릴 수 없어!”“네가 뭔데? 무진 씨 옆에 이미 5년이나 있었지만, 아직도 내 자리를 대신하지 못했지.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겠어!”“이건 첫 번째이자 마지막 경고야! 아이들은 바로 내 마지노선이야. 네가 또 손을 대면 절대 지금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아!”성연은 목소리는 마치 서릿발 같았다. 온몸에서 뿜어내는 싸늘한 기운에 무더운 날씨조차 얼음 세상으로 변하는 듯했
“오빠, 아빠가 정말, 정말로 우리를 안 받아들일까? 우리가 방금 아빠를 찾았는데.”작은 얼굴에 슬픔을 가득 담은 채, 사진은 간절한 시선으로 오빠를 바라보았다.예민주는 지금 자신의 말을 자화자찬하며 한껏 득의양양한 표정이었다.팔짱을 낀 채 아이들을 내려다보는 눈빛에는 승자의 기운이 가득했다.잠시 후 자신에게 벌어질 참상을 알았다면 절대 그러지 못했겠지만...대표 집무실 바깥.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성연은 결연한 눈빛으로 대표실을 향해 다가갔다.쾅-단숨에 집무실 문 앞에 선 성연은 아무런 노크도 없이 바로 방문을 열었다.“너 이 새끼, 정말...”아이 앞에서 거침없이 내뱉는 예민주의 말이 성연의 귀에 몹시 거슬렸다.“예민주, 뭐 하는 거야!”자신의 아이들이 눈물 자국이 가득한 채 구석에서 서로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자, 엄마의 본능이 단숨에 뿜어져 나왔다.“내 애들에게 무슨 짓을 했어!”단숨에 앞으로 나아간 성연은 두 손으로 예민주의 멱살을 움켜쥐었다.한 손으로 멱살을 쥔 채 다른 한 손으로는 바로 예민주의 따귀를 때렸다.“네가 뭔데 내 아이를 혼을 내? 너는 그럴 자격이 없어!”성연의 차가운 눈빛은 분노로 활활 타올랐다. 온몸의 분노가 곧 폭발할 듯이!잇달아 따귀를 때렸지만 때리는 소리는 오히려 점점 더 커져갔다.“엄마!” 성연이 다시 손을 들고 예민주의 뺨을 때리려고 할 때, 문득 익숙한 여린 목소리가 들렸다.순간 성연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잠시 멈칫하던 성연은 계속 두드려 맞느라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간 예민주를 밀쳐낸 뒤 딸아이를 품에 안았다.“아가, 엄마가 늦게 와서 미안해.”성연은 두 손으로 사진을 꼭 껴안은 채 자책했다. 지금 마음속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방금 전 예민주를 때릴 때의 그 무시무시한 기세도 모두 사라졌다.슬퍼하는 성연을 보면서, 사무는 두 주먹을 꼭 쥔 채 여전히 경계심이 가득한 모습이었다.그러나 엄마가 온 뒤에는 그래도 많이 풀어진 모습이었다. 자신이 든든한 후원자가 있기에.성연이
사진은 눈앞의 이 여자가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고, 절대로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원래 예민주의 말은 걸러서 생각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역시 어린아이였다.“오빠, 우리 아빠가 정말 우리를 이렇게 싫어해?”눈물이 그렁그렁한 여동생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당신은 어른이면서 어떻게 이렇게 어린아이와 말다툼을 하는 겁니까? 당신이 뭔데, 여기서 우리 아버지를 대신해서 결정을 내리는 겁니까?”지금 예민주 때문에 완전히 분통이 터진 사무는, 온몸에 철갑을 두른 듯한 기세로 똑바로 예민주를 노려보았다.사무의 눈빛에 대해서 예민주는 처음부터 아주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다.‘매번 저 자식의 눈을 볼 때마다, 정말 무진 오빠의 눈빛과 너무나도 닮았어. 무진 오빠하고 그야말로 판박이야.’사무가 거기에 서 있을 때는 그야말로 무진의 축소판이었다. 무진의 모습뿐만 아니라 행동 하나하나에도 성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몇 번 사무 저 새끼와 눈이 마주쳤을 때도 정말 아이러니했어.’‘처음 만났을 때 빨리 도망칠 걸. 정말 후회가 되네.’‘5년 전에 분명히 전혀 상관이 없는 사이가 됐는데, 왜 두 사람 사이에 애가 있는 거야?’‘송성연은 왜 이 두 아이를 낳았지? 무진 씨에게 이미 버림받았는데, 해외에서 편하게 지내면 얼마나 좋아?’‘그 여자의 능력이라면 낯선 나라에서도 여전히 잘 지낼 수 있어.’‘왜 운성시에 미련이 남은 거야?’“나를 보지 말고 고개를 돌려!” 결국 예민주는 참을 수가 없었다.사무는 아직 그런 내막을 잘 몰랐기 때문에 여전히 분노한 상태였다.“내 여동생에게 사과하세요!”“이 새끼, 너 지금 나한테 농담하는 거야?”예민주는 태연한 표정으로 사무를 조롱했다.“아무도 원하지 않는 사생아 주제에, 아직도 여기서 나한테 이렇게 날뛰다니!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것 아니야?”“이 못된 아줌마!”사진은 지금 지쳤지만 이 여자와 오빠가 이렇게 싸우는 소리를 듣자, 화가 나서 큰 소리로 따라서 외쳤다.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