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봉투를 열자 안에서 사진 몇 장이 나왔다.그냥 뒷모습만 찍힌 사진 몇 장이다.성연에 대해서라면 누구보다 익숙한 무진이다. 사진 속에 보이는 뒷모습이 성연의 것이라는 걸 한눈에도 알 수 있었다.그리고 이번에 찍힌 곳은 다른 장소가 아니었다.주변에 아무도 없이 오직 성연 혼자였다. 그리고 가고 있는 곳은 병원.‘뭘 말하려고 이 사진들을 자신에게 보낸 거지?’ 무진의 태도는 알기 어려웠다.그러나 사진을 보낸 사람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단순히 사진 몇 장을 엠파이어 하우스 차고에 갖다 둔 게 아니다.무진은 서류봉투를 살펴보았다.이번에는 사진뿐만 아니라 A4 용지 몇 장이 반으로 접힌 채 사진 뒤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종이를 펼쳐본 무진은 순간 멍했다. 성연의 이름이 적인 병원 기록이었다.정확히 말하면, 초음파 검사 결과지로 아래에 성연이 임신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이런 적은 처음 경험해 보지만, 이 글자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이다.분명 하나 하나 다 알고 있는 글자들이다.그러나 같이 연결한 글자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이 병원 기록으로 인해 무진은 정신이 멍해졌고, 이 근거 없는 임신 결과지에 혼란스러운 마음이 들었다.‘도대체 이 기록을 어디서 받은 거지?’‘그리고 이름이 뭐? 송성연?’‘설마 성연이 정말 임신했다고?’이 가정은 바로 무진에 의해 지워졌다.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믿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병원 기록이 이렇게 있으니까.하지만 송성연이다.성연은 행실이 문란한 아이가 아니다. 만약 어린 나이에 임신을 했었다면 지금까지 기다리지 않았을 것이다.생각을 할수록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결국 무진은 고개를 저었다.성연에게 이런 일이 있기는 절대 불가능하다.검사 기록지 아래에 병원 마크가 보였다. 어느 병원에서 나온 것인지 조사해 보면 알게 될 터.바로 그때 회사로 돌아온 비서 손건호가 무진이 아직 회사에 있다는 것을 알고 대표실로 들어왔다.사무실에 데스크 앞에 앉은 무진
저녁에 무진이 집에 도착했을 때, 성연도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성연은 지금 할머니 안금여를 위해 최상의 약재들만 넣어서 보양탕을 끓이고 있다.비록 안금여가 다치지 않았고 검사에 문제가 없는 걸로 나왔지만, 성연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놀랐을 두 사람의 몸을 보양시켜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종일 끓이고 있는 중이다.언제 먹어도 상관없는 약재들로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주어 자주 먹으면 건강에 많은 도움을 준다.또 엠파이어 하우스 창고에서 꺼내 온 것들이라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약재들이었다.무진은 바삐 움직이는 성연의 모습을 지켜보며 이내 입꼬리를 위로 당겨 올렸다. 그러나 자조적으로 보이는 웃음은 억지로 만들어 낸 게 분명했다. 진짜 웃음이 나올 리가 없다.‘손건호의 말처럼 성연이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지.’무진도 마음속으로 성연을 믿고 있다.그 자리에 서서 성연을 잠시 바라보던 무진은 성연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몸을 돌려 위층으로 향했다.그러나 성연은 예민한 감각으로 무진의 알아채고 고개를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뒤에 서 있던 무진이 몸을 돌리는 게 보였다.성연은 보양탕을 약한 불로 조절한 후에 손을 닦으며 무진에게 다가갔다.“집에 왔다고 왜 말하지 않았어요?”성연을 보자 무진의 표정이 금세 부드러워지며,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 되었다.내내 복잡해 보이던 표정이 바로 사라졌다.무진이 성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너 바쁜 것 보고 일부러 안 불렀어. 공부하기도 힘들텐데 이렇게 힘들게 하지 않아도 돼. 고택에도 주방이 있으니 조리법만 전해줘도 돼.”고3 수능을 앞둔 성연인 요즘 거의 매일 시험이 있었다.타고난 실력을 가진 성연이라 해도 기본적인 학습과 복습을 해주어야 했다. 그런데 하루 종일 이런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으니 무진의 마음이 아팠다.안금여와 강운경을 돌보는 사람들은 많지만 정작 성연을 돌보는 사람은 없었다.자신은 평소에 회사 일로 바쁘고, 성연이 철이 들어 어른스러웠다. 그래서 성연의 감정을 신
무진이 위층의 서재로 올라가서 서류들을 처리했다.하루에 다 끝내기 힘들 정도의 일들이, 다 보기 힘들만큼 서류들이 날마다 무진의 앞에 쌓였다. 회사의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이 무진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성연의 일로 하루 종일 신경 쓰다 이제야 올라온 공문을 보며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서재에서 서류들을 보던 중에 비서 손건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무진이 바로 전화를 받으며 물었다. “결과는?”무진의 말투에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마음으로는 성연을 믿고 있었지만 혹시라도 나쁜 결과를 얻게 될까 겁나기도 했다.자신에게 성연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당황스럽고 두려웠다.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일이 아니기를 바랬다.손건호가 무진에게 보고했다.“작은 사모님이 그 병원에 가신 건 확실합니다.”여기까지 들으며 무진은 마음이 불안해졌다. 계속해서 손건호의 음성이 들렸다.“하지만 작은 사모님은 위장약을 타러 가셨습니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강진성이 가져온 인삼을 사모님이 드시고 탈이 나서 병원에 가신 겁니다. 당시 집사님이 사모님과 동행했고요.”집사가 동행한 이상 아무 일도 없었을 게 확실했다.하루 종일 무거웠던 무진의 마음이 손 비서의 보고에 금세 가벼워졌다.애초에 말이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자신의 판단도 옳았다. 이 사진과 기록지를 보낸 이는 도대체 머리가 있기나 한지 모르겠다.‘그냥 조금만 조사해봐도 바로 알 수 있는 것을 내가 진짜 믿으리라 생각한 걸까?’‘이런 별거 아닌 걸로 날 속이겠다고?’잠시 고민하던 무진은 결국 이 일을 성연에게 말하기로 결정했다.손건호에게 몰래 조사하라고 지시만 한 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가족들이야 성연의 성품을 알고 믿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으니까.사람들은 항상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고 판단한다.이 일은 무진의 명성과도 관계된 것이다.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을 때, 당연히 자신은 성연을 보호해야 한다.이런 일들이
“계속 이런 일이 생기다 보면 너에게 안 좋을까 봐 걱정이야. 너에게 경호원 두 명을 붙여 밀착 경호를 하게 할 생각인데, 어때?” 무진은 이 일이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다고 생각했다.무엇보다 성연과 관련된 일인만큼 절대 허투루 처리해서는 안 된다.성연에게 발생할 지도 모르는 모든 의외의 상황들을 근절시킬 것이다.성연이 고개를 저었다.“그럴 필요 없어요. 이 사람은 단지 우리 두 사람을 이간질하려는 거예요. 나에게 아무 짓도 못할 거예요.”비록 무진 앞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최근 일어난 일련의 일들로 성연은 엄청난 분노를 느꼈다.‘미친…….’해이해진 나머지 미행당하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자신에게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자신의 능력으로 몰랐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아니면 미행한 그 놈이 원래 엄청난 고수라는 말이다.역시 안일한 환경에 너무 오래 머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렇지 않으면 기본적인 경계심마저 무너질 터였다.“만약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말만 해. 그리고 무슨 일이 있으면 꼭 나한테 말하고. 절대 숨기지 마.” 무진은 역시 성연에게 강제로 사람을 붙이지 않았다.성연은 똑똑하고 주관이 뚜렷하기에 참견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알았어요.” 성연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이 일은 자신이 직접 처리할 생각이다.영문도 모른 채 표적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속에서 불이 났다.배후에서 이 계략을 꾸민 당사자를 꼭 찾아내야 했다.성연의 표정이 어둡게 가라앉았다.무진이 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일단 화를 거둬. 우린 모두 너를 믿어. 바로 이번 일의 범인이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는 뜻이야. 그러니 화를 내며 네 몸을 상하게 하지 마.”“늘 단정하게 행동했기 때문에 당연히 아무 것도 겁나지 않아요. 하지만 내게 이런 구정물을 끼얹은 만큼 절대 간단하게 넘어가지 않을 거예요.”성연이 이를 악문 채 말을 꺼냈다.이 일로 성연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 수 있었다.“기억해, 언제든 자기자신을 가지고 모험할 생각은 하지
엠파이어 하우스 쪽에서 아무런 기척이 없자, 강진성은 송아연을 불렀다.송아연은 두 사람이 자주 만나던 클럽에 왔다.강진성이 미간을 찌푸리며 다그쳤다.“네 방법대로 해서 되겠어? 초음파 검사지까지 줬는데 강무진이 아직 믿질 않아. 다른 것을 주면 강무진이 믿을 거라고 생각해?”애초에 송아연이 낸 생각에 동조해서 같이 작당을 해서는 안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지금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자신이 예상한 상황도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송아연이 강진성을 위로하며 말했다.“진짜 볼만한 연극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는 걸요!”지금의 상황은 송아연이 미리 예상했던 일이다.송성연을 그토록 아끼는 강무진과 안금여인데, 몇 마디 말로 그들 사이를 이간질할 수 있을 리가.하여튼 송성연이 무슨 방법으로 강씨 집안 사람들을 구슬린 건지 모르겠다.사람 마음을 홀리는 데 가장 능한 여우를 이런 간단한 방법으로 잡을 수는 없을 터였다.그러나 강진성은 송아연의 말을 별로 믿지 않았다.“언제나 말은 그렇게 말하는데 도대체 효과를 볼 수 있기는 한 거야?”강진성은 송아연이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이제껏 필요한 사람과 돈을 지원했음에도 성과를 얻지 못했는데 어떻게 조급하지 않 있겠는가.셋째 일가에서는 이번 일로 큰 소란이 일어나길 기다리고 있었다.실패하면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진성 씨, 진성 씨가 원하는 결과를 꼭 얻을 거예요. 서두르면 되는 일도 없다는 걸 잘 아실 거예요. 이 일은 역시 천천히 진행해야 해요.”송아연의 마음속엔 자신만의 계획이 들어 있었다.자세한 내용은 강진성에게 말한다 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목적만 이룰 수 있다면 이런 과정들에 신경 쓸 필요가 뭐란 말인가.강진성은 하마터면 송아연의 말에 기가 막혀 웃음이 나오려 했다.“너 참 말 잘한다? 지금 바로 말해 봐. 도대체 언제 내가 요구한 것들을 얻을 수 있는지. 쓸데없는 소리 지껄일 생각 말고!”“진성 씨, 저를 한 번
무진이 집에 도착하자 집 안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렸다.현관문에 들어선 순간 집사의 엄한 목소리가 실내에서 들려왔다.무척 화가 난 음성의 집사가 차가운 얼굴로 질책했다.“여기 엠파이어 하우스에서는 손 버릇이 나쁜 사람은 받지 않습니다. 멀쩡한 젊은 여성이 받기에는 여기 월급이 꽤 많지 않아요? 어떻게 물건을 훔치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얼른 성실하게 자신의 업무를 인계하고 나가세요. 그렇지 않으면 내 선에서 끝낼 수 없습니다!”“집사님, 제가 잘못했어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훔친 것도 없어요.”여자 고용인이 변명을 시작했다.“내가 직접 봤는데도 거짓말을 할 생각입니까? 말하지 않았습니까? 됐습니다. 경찰에 신고하면, 경찰이 와서 처리할 겁니다.” 집사가 시퍼렇게 굳은 얼굴로 고용인을 응시했다.스스로 사람을 보는 안목이 괜찮다고 자부했고, 이 여자 고용인도 자신이 직접 가서 골랐다.언제나 얌전하니 시키는 대로 잘 따르던 이 고용인은 결코 이런 일을 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고용된 지도 얼마 안되어 이런 일이 생기다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그러니 어찌 집사가 화를 내지 않겠는가?“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여자 고용인은 잘못했다는 말만 계속 반복할 뿐, 집사에게 일의 자초지종을 말하려 하지 않았다.무진은 멀찌감치 떨어져 선 채로 단편적인 말들을 들었다. 평소 누구에게나 온유하고 친절한 모습을 보이던 집사가 이렇게 화를 내는 모습은 거의 보지 못했다.무진이 거실로 들어가며 물었다.“무슨 일입니까?” 집사가 말을 하기도 전에 여자 고용인이 쉴 새 없이 고개를 조아리며 눈물로 호소했다.“대표님, 제발 용서해 주세요. 정말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어요.”이마가 온통 푸르죽죽한 색을 띤 걸 보니 바닥에 이마라도 찧어 댄 모양이다.무진이 이마를 찌푸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무엇을 훔쳤습니까?”엠파이어 하우스의 모든 고용인들은 집사가 도맡아 관리해 왔다.고용인들의 자질도 뛰어난데다 집사가 관리를 잘 해
잠시 생각하던 성연은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침실에 두는 물건은 그리 많지 않았고, 또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귀중품도 별로 없다고 생각했기에. 만약 자신이 귀중품을 숨기겠다고 마음먹었다면 눈 앞의 여자 고용인은 절대 찾을 수 없을 것이다.집사에게 발견될 때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에 고용인이 뭔가를 찾을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성연은 추측했다.또 침실에서 성연이 귀중하게 여기는 물건이라면 노트북밖에 없었다. 하지만 노트북과 연동되어 휴대폰에서는 아무런 경고음도 울리지 않았다.그러니까 가사도우미로 고용된 저 여자는 자신의 노트북을 만지지 않았던 것이다.어쩌면 여자의 목적은 다른 데에 있을지도 모른다.고용인을 지켜보던 무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바른대로 말하세요. 그러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습니다!”무진처럼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의 몸에서 자연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은 평범한 고용인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무진의 얼굴을 보는 순간 여자 고용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벌벌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만큼 무진의 눈빛은 매서웠다.결국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여자가 입을 열었다.“모두 제 방에 있어요.”여자 고용인이 계속 바닥에 주저앉아 꼼짝 하지 않자 집사가 얼른 큰 소리로 질책했다.“방에 있다고 했으니 빨리 가서 가져와야지, 왜 그리 멍하니 있습니까?”완전히 몸이 풀려버린 여자 고용인이 바닥을 짚고 간신히 일어나 비척비척 자신의 방으로 갔다.고용인들이 거주하는 곳은 본관 뒤편에 좀 떨어져 있어 집사는 다른 고용인 두 사람을 불러 따라가서 지켜보게 시켰다.여자 고용인과 사람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집사는 성연과 무진에게 사과했다.“죄송합니다, 도련님, 작은 사모님. 모두 제 잘못입니다. 제가 관리를 소홀히 한 탓에 이런 불상사가 일어났습니다.”지금까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며 딴 말을 한 적이 없는 집사이다.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고 옳은 것은 옳은 것이니까.오랜 가족 같은 집사의 사과에 성연이 얼른 나섰다.“집사님, 자책하지
자신의 방으로 갔던 여자 고용인이 돌아와서 훔쳤던 물건들을 전부 거실 카펫 위에 내려 놓았다.훔친 물건들 중에는 성연의 간식들이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 안여의가 선물한 액세서리들도 있었다. 착용하는 것을 귀찮아하는 성연이 침실에 두기만 하던 것들이다.그 밖에는 값나가는 물건들이 별로 없었다.고용인의 간이 좀 작았는지 아주 값나가는 귀중품들에는 감히 손을 대지 않았다.그런데 내려 놓은 물건들 중에 흰색 작은 봉투가 하나 보였다.분명 병원에서 처방을 받은 약 봉투였다.봉투 겉에 쓰여진 글자와 모양이 자신이 갔던 병원의 것이었다.약 봉투를 본 성연의 한 쪽 눈썹이 살짝 비틀려 올라갔다.‘저건 지난번에 병원에서 처방을 받았던 위장약 아냐?’‘저 고용인이 어째서 저것까지 몰래 가져간 거야?’돈이나 액세서리 같은 걸 훔쳤다면 이해가 된다.‘그런데 딱 봐도 별 쓸모가 없어 보이는 저 약을 훔쳐?’‘저 여자는 도대체 이 약을 몰래 가져가서 뭘 하려던 거지?’고용인이 곧 흰색 봉투를 열어 보여주었다. 그런데 안에는 성연이 생각했던 위장약이 아니라 한약 몇 첩이 들어 있었는데, 성연이 본 적 없는 것이었다.성연은 황당했다. 침실에서 가져간 물건들 중에 어떻게 저게 있을 수 있는지 정말 이상했다.무진도 까닭을 알 수는 없었으나 속으로 의심이 들었다. ‘저 고용인이 왜 약까지 훔친 거지?’“이 약은 어디서 가져온 겁니까? 당신이 이 약을 가져가서 뭘 하려고?”고개를 숙인 채 한참 아무 말도 없던 여자 고용인이 천천히 대답했다.“침대 수납장 안에 들어있던 물건들을 모두 가져 갔어요. 며칠 뒤에 들고 도망갈 생각으로.”고용인의 말을 듣던 집사는 기가 막혀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당신, 아예 귀중품을 훔쳐 달아나려고 작정하고 이곳에 들어왔군? 여기가 어딘지나 아는 거야? 물건을 훔친 뒤에 멀쩡하게 달아날 수 있을 줄 알았어?” 집사는 이 고용인이 물건을 훔치기도 전에 이미 뭔가 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러나 자신의 생각이 잘못된 것
‘그런 예민주가 이렇게 몰락할 줄 누가 알았겠어?’‘결국 5년 동안이나 무진 씨 애인 노릇에 만족해 있었다니!’‘심지어는 오늘 같은 이런 악랄한 짓까지 저지를 정도가 되었으니. 스승님이 아시면 얼마나 섭섭하시겠어.’“송성연, 너 지금 미쳤어! 완전히 미쳤어!”예민주가 언제 이런 억울한 일을 당했을까? 연거푸 따귀를 맞은 데다가, 지금은 또 성연의 냉소와 신랄한 조롱을 들어야 했다.큰 소리로 호통을 치는 예민주의 눈빛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원래의 정돈된 헤어 스타일과 잘 차려 입은 옷차림은 이미 엉망이 되어 있었다.온몸에 지금 낭패한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회의실. 두 시간의 긴 회의가 마침내 끝났다. 무진이 회의실을 나서자마자 당황한 표정의 손건호가 휴대전화를 들고 다가왔다.무진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짜증스러운 표정이었다.‘평소라면 손건호가 절대 이렇게 침착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텐데...’“보스, 예민주 씨가 맞았습니다!”사람들이 모두 나가자 손건호가 급히 보고했다.“뭐라고?” 무진이 되물었다.“보스, 빨리 사무실로 가 보십시오.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습니다.”방금 회의가 끝나갈 때, 손건호는 자료를 찾으러 먼저 회의실에서 나왔다.뜻밖에도 부리나케 달려온 비서실의 비서가 이 일을 알려주었다.무진의 눈동자가 어두워지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왜 아무도 막지 않았어?”무진이 왜 아무도 막지 않았냐고 물었지만, 손건호도 대답하기가 곤란했다.‘막고 싶어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지요!’ ‘대표실은 원래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게다가 사모님(!)이 갑자기 뛰어들어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전혀 대비도 하지 못했어요.’‘안에서 예민주의 비명 소리가 들려서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안에서 문을 잠궜기에 들어갈 수도 없었어요!’그러나 결국 손건호는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대표실 앞으로 다가간 무진의 귀에 울음 소리와 함께 자기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리게 되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 아이의 몸에 난 상처는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팠다.그리고 이런 상황에 직면하자, 성연은 범인이 바로 예민주라고 생각했다.‘방금 전에도 애들 앞에서 그렇게 헛소리를 지껄였어. 눈앞에 두 아이만 있는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지.’‘그런 여자가 뭘 못하겠어?’‘이 순하기만 한 두 녀석은 엉뚱한 짓을 한 적이 여태까지 한 번도 없었어.’‘충분히 사랑을 받았지만, 그걸 믿고 교만했던 적은 없었어.’‘밖에서는 더 영리하고 깜찍해서 누구나 좋아해. 척 봐도 좋아할 수밖에 없어.’‘그런데 여기에 와서 온몸에 멍이 들다니!’성연의 가슴에서 다시 분노가 폭발했다.딸아이를 가볍게 내려 놓은 성연은, 여전히 따뜻한 눈빛으로 사무를 보면서 말했다.“동생을 잘 보고 있어. 너희가 당한 억울한 일을 엄마는 절대 그냥 넘기지 않을 거야!”“엄마, 저 아줌마는 나쁜 사람이야! 엄마가 반드시 혼내줘!”여전히 품에 안긴 채, 사진은 재빨리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두 눈에 가득한 억울함을 지금 열심히 엄마에게 표현하려고 했다.“걱정 마. 엄마가 저 여자를 혼내줄게!”바로 일어선 성연이 성큼성큼 예민주 쪽으로 걸어갔다.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예민주는 성연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서한기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쳤지만, 예민주가 어떻게 훈련으로 단련된 남자의 적수가 될 수 있겠는가?“놔! 너희들 뭐 하려는 거야?”예민주의 눈빛에는 걱정과 당황한 기색이 가득했다. 불안한 마음에 가슴은 두근거리면서 발걸음마저 비틀거렸다.짝! 짝!“이건 네게 주는 교훈이자 경고야. 내 아이는 절대 네가 건드릴 수 없어!”“네가 뭔데? 무진 씨 옆에 이미 5년이나 있었지만, 아직도 내 자리를 대신하지 못했지.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겠어!”“이건 첫 번째이자 마지막 경고야! 아이들은 바로 내 마지노선이야. 네가 또 손을 대면 절대 지금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아!”성연은 목소리는 마치 서릿발 같았다. 온몸에서 뿜어내는 싸늘한 기운에 무더운 날씨조차 얼음 세상으로 변하는 듯했
“오빠, 아빠가 정말, 정말로 우리를 안 받아들일까? 우리가 방금 아빠를 찾았는데.”작은 얼굴에 슬픔을 가득 담은 채, 사진은 간절한 시선으로 오빠를 바라보았다.예민주는 지금 자신의 말을 자화자찬하며 한껏 득의양양한 표정이었다.팔짱을 낀 채 아이들을 내려다보는 눈빛에는 승자의 기운이 가득했다.잠시 후 자신에게 벌어질 참상을 알았다면 절대 그러지 못했겠지만...대표 집무실 바깥.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성연은 결연한 눈빛으로 대표실을 향해 다가갔다.쾅-단숨에 집무실 문 앞에 선 성연은 아무런 노크도 없이 바로 방문을 열었다.“너 이 새끼, 정말...”아이 앞에서 거침없이 내뱉는 예민주의 말이 성연의 귀에 몹시 거슬렸다.“예민주, 뭐 하는 거야!”자신의 아이들이 눈물 자국이 가득한 채 구석에서 서로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자, 엄마의 본능이 단숨에 뿜어져 나왔다.“내 애들에게 무슨 짓을 했어!”단숨에 앞으로 나아간 성연은 두 손으로 예민주의 멱살을 움켜쥐었다.한 손으로 멱살을 쥔 채 다른 한 손으로는 바로 예민주의 따귀를 때렸다.“네가 뭔데 내 아이를 혼을 내? 너는 그럴 자격이 없어!”성연의 차가운 눈빛은 분노로 활활 타올랐다. 온몸의 분노가 곧 폭발할 듯이!잇달아 따귀를 때렸지만 때리는 소리는 오히려 점점 더 커져갔다.“엄마!” 성연이 다시 손을 들고 예민주의 뺨을 때리려고 할 때, 문득 익숙한 여린 목소리가 들렸다.순간 성연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잠시 멈칫하던 성연은 계속 두드려 맞느라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간 예민주를 밀쳐낸 뒤 딸아이를 품에 안았다.“아가, 엄마가 늦게 와서 미안해.”성연은 두 손으로 사진을 꼭 껴안은 채 자책했다. 지금 마음속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방금 전 예민주를 때릴 때의 그 무시무시한 기세도 모두 사라졌다.슬퍼하는 성연을 보면서, 사무는 두 주먹을 꼭 쥔 채 여전히 경계심이 가득한 모습이었다.그러나 엄마가 온 뒤에는 그래도 많이 풀어진 모습이었다. 자신이 든든한 후원자가 있기에.성연이
사진은 눈앞의 이 여자가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고, 절대로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원래 예민주의 말은 걸러서 생각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역시 어린아이였다.“오빠, 우리 아빠가 정말 우리를 이렇게 싫어해?”눈물이 그렁그렁한 여동생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당신은 어른이면서 어떻게 이렇게 어린아이와 말다툼을 하는 겁니까? 당신이 뭔데, 여기서 우리 아버지를 대신해서 결정을 내리는 겁니까?”지금 예민주 때문에 완전히 분통이 터진 사무는, 온몸에 철갑을 두른 듯한 기세로 똑바로 예민주를 노려보았다.사무의 눈빛에 대해서 예민주는 처음부터 아주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다.‘매번 저 자식의 눈을 볼 때마다, 정말 무진 오빠의 눈빛과 너무나도 닮았어. 무진 오빠하고 그야말로 판박이야.’사무가 거기에 서 있을 때는 그야말로 무진의 축소판이었다. 무진의 모습뿐만 아니라 행동 하나하나에도 성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몇 번 사무 저 새끼와 눈이 마주쳤을 때도 정말 아이러니했어.’‘처음 만났을 때 빨리 도망칠 걸. 정말 후회가 되네.’‘5년 전에 분명히 전혀 상관이 없는 사이가 됐는데, 왜 두 사람 사이에 애가 있는 거야?’‘송성연은 왜 이 두 아이를 낳았지? 무진 씨에게 이미 버림받았는데, 해외에서 편하게 지내면 얼마나 좋아?’‘그 여자의 능력이라면 낯선 나라에서도 여전히 잘 지낼 수 있어.’‘왜 운성시에 미련이 남은 거야?’“나를 보지 말고 고개를 돌려!” 결국 예민주는 참을 수가 없었다.사무는 아직 그런 내막을 잘 몰랐기 때문에 여전히 분노한 상태였다.“내 여동생에게 사과하세요!”“이 새끼, 너 지금 나한테 농담하는 거야?”예민주는 태연한 표정으로 사무를 조롱했다.“아무도 원하지 않는 사생아 주제에, 아직도 여기서 나한테 이렇게 날뛰다니!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것 아니야?”“이 못된 아줌마!”사진은 지금 지쳤지만 이 여자와 오빠가 이렇게 싸우는 소리를 듣자, 화가 나서 큰 소리로 따라서 외쳤다.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