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MELDEN67장줄리안의 시점"음... 당신은 내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어," 방 안의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도 내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다."내가 왜 네 뜻대로 움직여야 하지?" 알렉스가 반발하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알렉스가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한 화염 속에서 구조된 지 사흘이 지났고, 오늘이 그와 마주하는 첫날이었다. 마커스는 그가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바로 내 저택으로 옮겨놓았다. 침대 모퉁이에 묶여 있는 그의 모습은 통쾌하면서도 묘한 불안감을 주었다. 그는 위태로워 보였지만, 그 눈빛 속의 불꽃만큼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사실 선택의 여유는 없어," 내가 몸을 바짝 기울이며 받아쳤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하든가, 아니면 경찰에 넘기든가." 내 어조에는 조금의 여지도 없었다. 그 결연함이 짙은 안개처럼 방안을 무겁게 짓눌렀다."내가 뭘 해야 하는지 말해주지도 않잖아,"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그가 침을 뱉듯 쏘아붙였다. "설령 말해준다고 해도 너랑 손은 안 잡아. 네가 내가 사랑하는 여자를 가로채 갔으니까."나도 모르게 그의 얼굴을 주먹으로 정면으로 가격했다. 코피가 터져 나와 핏방울이 침대 시트 위로 기괴한 무늬처럼 흩어졌다. "너는 그 애를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 이 개자식아," 주먹을 꽉 쥐며 으르렁거렸다. "넌 그 애를 쓰레기처럼 다루었어. 그런 여자를 옆에 두고도 바람을 피울 감히 엄두를 냈지."그는 더러운 소매로 얼굴의 피를 닦아내며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손을 묶어두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였다. "우리 둘 사이에 뭐가 다르지? 넌 그 애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믿어주지 않았잖아. 잠깐—너 정말 그 애를 사랑하긴 하냐? 너희 결혼 계약 결혼이라고 들었는데." 그의 비웃음이 벽에 부딪혀 메아리쳤고, 내 피를 끓어오르게 만드는 조롱 섞인 소리였다.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이번에는 더 세게 그의 턱을 가격했고, 주먹 뼈가 턱뼈에 부딪히는 묵직한 소리가 났다. "닥쳐!" 심장이 터질 듯 뛰며 소리쳤다. "이게 게임으로 보이냐? 네가 저
66장소피의 시점"어디 가, 소프?" 이사벨라의 목소리가 내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병원 가는 길은 저쪽이 아니잖아.""쉿!" 나는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대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저 초록색 풀숲 뒤에 줄리안이 있어." 그를 다시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심장이 쿵쾅거렸다.다시 몸을 돌려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움직이려 했지만, 내 구두 굽 소리는 원망스러울 정도로 요란했다."소프, 대체 뭐 하는 거야?" 이사벨라가 내 앞을 가로막으며 시야를 가로막았다.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미간을 찌푸린 채였다. "줄리안이 여기에 있을 리가 없잖아? 임신 호르몬 때문에 환각이라도 보는 거 아니야?""내가 맞는지 틀린지 확인이라도 해보게 해줘," 나는 거의 속삭이듯 고집을 부렸다. "틀림없이 그 사람이었어. 날 보러 여기에 온 게 분명해." 내 확신은 위태로운 실낱같았지만, 나는 그 실낱을 악착같이 붙잡았다.이사벨라의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졌지만 걱정은 여전했다. "정말 줄리안이 너를 보러 왔다면 숨어 있었겠니? 여긴 없어, 소프. 이제 그만 잊어."그녀의 말이 맞다는 걸 알았지만, 줄리안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떠나지 않았다. 그의 눈빛에서 전해지던 온기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분명히 보았다—그는 다른 남자, 아마도 마커스였을 그와 함께 거기 있었다. 우리가 스치듯 눈이 마주쳤고, 그가 재빨리 상대 남자를 풀숲 뒤로 끌어당겼던 것이다."확인만 해볼게, 이사벨라," 내 안에 오기가 치밀어 올랐다."알았어, 마음대로 해," 마지못해 그녀가 비켜서며 말했다.쿵쾅거리는 심장을 움켜쥔 채 풀숲으로 다가갔다. 몸을 앞으로 숙여 줄리안의 흔적을 찾으려 눈을 가늘게 떴지만, 보이는 것은 텅 빈 공간뿐이었다—그의 흔적도,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더 가까이 다가사 그림자 속을 들여다보았지만 풀숲은 잠잠했다. 확실히 숨어 있었던 반대쪽으로 돌아가 보았지만, 그곳에도 아무것도 없었다—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뿐이었다.정말 임신 호르몬이 내 머릿속을 장난친 것일까
65장줄리안의 시점"상태는 어떻습니까?" 피닉스(Phoenix) 박사가 알렉스의 병실에서 나오는 것을 보며 내가 물었다. 나는 지난 30분 동안 대기실에서 박사가 알렉스를 돌보는 동안 초조하게 기다리던 참이었다."어제보다는 훨씬 안정되었습니다," 피닉스 박사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우려가 묻어났다. "최선을 다하긴 했지만 여전히 조금은 위독한 상태입니다. 다행히 응급 조치가 빨라서 목숨은 건졌지만, 몸 특히 팔과 다리에 화상이 좀 남아 있습니다. 계속해서 경과를 면밀히 지켜보겠습니다.""언제쯤 깨어날까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알기 위해 내가 다그쳤다."24시간 이내에 의식을 회복할 겁니다," 박사가 대답하며 시선을 조금 누그러뜨렸다."볼 수 있을까요?" 내가 물었다."물론입니다," 피닉스 박사가 문 쪽을 비켜서며 들여보내 주었다."감사합니다," 목소리를 거의 낮춘 채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병실 안은 소독약의 삭풍한 냄새와 기계들의 규칙적인 비어프 소리로 무거웠다. 의식을 잃은 채 누워 있는 알렉스의 모습에 감정이 복잡하게 밀려왔다. 코에는 산소 호스가 연결되어 있고, 침대 옆의 모니터들은 끊임없이 그의 생체 징후를 추적하고 있었다.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려왔다. 팔과 다리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고, 곳곳으로 붉은 살결이 비어져 나와 전날 밤 화상의 잔혹함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에는 묘한 순진함이 감돌았는데, 그것은 자신의 아내를 산 채로 태워 죽인 남자라는 현실과, 그리고 그로 인해 자신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고통받았다는 사실과 지독하게 어긋나 있었다. 분노와 깊은 연민이 뒤섞인 감정이 치솟았다. "너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 알렉스?" 머리를 흔들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차라리 저 불길 속에서 죽게 내버려뒀어야 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어쩌면 그가 없는 세상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그토록 악착같이 그를 살려내려 애썼던 그
64장줄리안의 시점1시간 전으로 돌아가는 회상"어떻게 해야 하지?" 머릿속이 핑핑 돌아가는 와중에 턱을 괸 채 내가 물었다."모르겠습니다. 그년이 30분도 채 안 되어 여기 도착하기 전에 뭔가 조치를 취하든가, 아니면 차라리 그년 손으로 직접 태우게 내버려 두든가 해야 합니다," 잭슨이 대답했다."30분은 너무 짧아! 어떻게든 그년이 여기 오는 걸 적어도 한 시간은 늦출 방법은 없어? 아니면 아예 못 오게 막을 방법은 없냐고?" 초조함이 터져 나올 듯하여 내가 다그쳤다."사장들도 아시잖습니까. 지금 다시 전화해서 오면 안 되는 빤한 핑계를 대면 그년은 단번에 눈치챌 겁니다. 그럴싸한 이유를 대더라도 의심을 거두지 않을 거예요," 잭슨의 시선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의 말이 맞았기에 나의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젠장! 왜 아무 생각도 안 나는 거지? 왜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린 거야?" 절망감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내가 중얼거렸다."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습니까?" 잭슨의 얼굴에 두려움이 서렸다."생각 좀 하게 해줘," 패닉에 빠진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빅토리아 때문에 이렇게 무력해져서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빅토리아, 맹세코 네가 이 일에 대해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빨리 생각하셔야 합니다. 벌써 5분이 지났습니다," 잭슨이 상기시켰다.문득 머릿속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스쳤다. "그년이 알렉스를 태우게 내버려 두면..." 말을 꺼내려던 나를 잭슨이 날카롭게 끊었다."뭐라고요? 그 자가 필요하다고 하셨잖습니까!"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내 말 끝까지 들어!" 내가 쏘아붙였다. "난 빅토리아를 잘 알아. 그년은 꼼꼼해서 직접 불을 지르겠다고 나설 수도 있으니, 차라리 그렇게 하도록 두자고. 내 비서한테 소화기를 가져오라고 시키면, 우리가 곧바로 그를 구해낼 수 있어.""그래, 그렇게 합시다," 그의 표정이 조심스러운 동의로 바뀌었다."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소화기를 들고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지 모르
63장빅토리아의 시점나는 잭슨과의 통화를 끊었다. 통화가 끝난 뒤에도 두 ells처럼 무겁고 짙은 여운이 공기 중에 가라앉아 있었다. 한숨을 내쉬며 핸드백을 집어 들고 밖으로 나섰다. 기대감과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이 밀려왔다. 서늘한 저녁 바람이 피부를 스치는 가운데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내 걸음걸이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운전석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만족스러운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엔진이 깨어났고, 그 소리는 잠시 동안의 위안을 주었다. 비록 잠시뿐일지라도 내가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아드레날린이 온몸을 타고 흐르는 동안 하얗게 질릴 정도로 운전대를 꽉 움켜쥐었다.휴대폰 화면에서 불길하게 반짝이는, 잭슨이 보내준 위치 좌표를 힐끗 바라보았다. 오직 하나의 목적을 품고 그곳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바로 알렉스를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서였다. 내 삶에서 완전히 영원히 사라지기 전에 그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눈에 담는 것. 그 생각에 속이 메스꺼워졌고, 분노와 뒤틀린 종결감 요동쳤다.알렉스는 오랫동안 내 옆구리에 박힌 가시 같았다. 그가 있는 곳엔 언제나 혼란만 따랐다. 그가 벌이는 판에 진절머리가 났다. 이제 그가 더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내 뒤틀린 게임에서 제 역할을 다했고, 줄리안을 손에 넣는 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내 모든 것을 쏟아부었는데, 돌아온 건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었다!소피와 그냥 내버려 둘까 하는 생각도 잠시 스쳤다. 하지만 그를 믿을 수가 없었다—그 자의 입은 언제든지, 특히 적절한 대가만 주어지면 배신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곁에 두고 욕구가 생길 때마다 내 입맛대로 부려먹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결국 쓸모는 있었지만, 신뢰라는 건 더 이상 누릴 수 없는 사치였다. 나를 파멸시킬 비밀을 그가 누설할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었다. 안 돼, 이제 그가 두 번 다시 입을 열 기회를 주지 않 확실히 매듭지을 때가 되었다.차를 몰고 달리는 동안 도시의 불빛
62장줄리안의 시점"네가 빅토리아를 폭로하는 걸 도와준다면 오직 그 조건으로만 널 용서하겠다," 머릿속이 복잡해진 와중에도 내 목소리는 흔들림 없이 차분했다. 모든 것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기꺼이 돕겠습니다, 사장님. 이번에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빅토리아를 위해 그토록 충성했는데, 그년이 나까지 죽이려 들 줄이야..." 젠킨스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고, 그가 느끼는 두려움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당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얼굴이었다."좋아… 그럼 계획대로 하자. 일단 너를 멀리 피신시킬 거야. 빅토리아를 폭로하는 데 성공한 후에 네 아내와 아이들도 그리로 합류하게 될 거다. 네 가족을 지금 당장 너와 같이 보낼 수는 없어, 의심을 살 테니까. 그렇지, 잭슨?"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어 있던 잭슨에게 내가 시선을 던졌다."맞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내에게는 이 사실을 미리 알려야 합니다. 빅토리아는 교활하니까요. 가장의 죽음이라는 소식을 듣고 가족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확인하려고 직접 찾아갈지도 모릅니다," 잭슨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밤 바로 너를 떠나보낸다," 바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심장이 쿵쾅거리는 채로 마커스의 번호를 눌렀다. 전화를 받자마자 지시했다. "비상 전용 항공편을 준비해.""어디로 말입니까, 사장님?" 마커스가 물었다."아주 멀리, 어디든 상관없어," 내가 쌀쌀맞게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사장님. 곧 준비해 두겠습니다," 그의 확답을 듣고 전화를 끊었다."정말 감사합니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젠킨스가 무릎을 꿇고 거듭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연민과 현실적인 계산이 뒤섞인 감정 속에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제 알렉스에 대한 얘기다. 그년을 납치해야겠어," 잭슨을 향해 몸을 돌리며 어조를 바꿨다."제가 처리할 수 있는 부하들이 있습니다," 잭슨이 대답하더니 방 밖으로 나가 전화를 걸었다."정말 죄송합니다, 사장님," 잭슨이 나가자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