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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린 굿나잇
엇갈린 굿나잇
Autor: 찹쌀떡

제1화

Autor: 찹쌀떡
10시 59분, 정인우가 정확히 시간을 맞춰 욕실에서 나왔다. 나는 그런 정인우에게 휴대폰을 건넸다.

갓 씻고 나온 탓에 머리에서 물기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태연하게 화면을 보더니 휴대폰을 받아 들었다.

“남의 폰은 왜 봐?”

“울리길래.”

“채연이는 며칠간 우리 집에 와서 고양이 밥만 챙겨줬을 뿐이야. 힘들어서 잠깐 침대에 누웠던 거겠지.”

“힘들다고 우리 부부 침대에 누웠다고?”

정인우는 목욕 가운 끈을 단단히 조이며 잠시 침묵했다.

“그럼 침대가 누워 자라고 있는 거지 왜 있는데?”

그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곤 휴대폰을 챙겨 테라스로 나갔다.

그날 밤, 정인우는 그 일에 대해 다시는 언급하지 않았다.

잠자리에 들자 그는 내 쪽을 등진 채 이불을 자기 몸쪽으로 홱 끌어당겼다.

나는 어둠 속에서 그의 뒤통수를 가만히 응시했다.

머지않아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몸을 뒤척이며 차마 잠 못 이루는 밤을 홀로 지새웠다.

집으로 돌아온 건 다음 날 오후였다.

정인우는 들어오자마자 현관에 캐리어를 툭 던져두더니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겼다며 밖으로 나갔다.

나는 홀로 안방으로 들어와 침대 곁에 한참을 서 있었다.

침대 시트가 회색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내가 샀던 그 하얀색이 아니었다.

원래 쓰던 시트는 옷장 가장 구석에 뭉쳐진 채 처박혔다.

그녀가 내 잠옷을 입고 내 침대에 누워 시트까지 더럽혔다는 사실이 피부로 와닿았다.

냉장고를 열자 낯선 쿠키 상자 하나가 보였다. 반찬통들이 정갈하게 줄 맞춰 정리된 그 곁에 연분홍색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오빠가 제일 좋아하는 크랜베리 맛이야.]

식기 건조대에는 분홍색 금테가 둘러진 식기 세트가 놓여 있었다.

또한 컵 받침에는 [채연 전용]이라는 문구와 함께 한 땀 한 땀 자수가 놓여 있었다. 내가 쓰던 하얀 식기들은 맨 안쪽으로 밀려났고 접시 위에는 뽀얗게 먼지가 내려앉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접시 테두리 한쪽이 깨져버렸다.

결혼 첫해에 네 개를 한 세트로 샀던 접시인데 이제 멀쩡한 건 세 개뿐이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하나하나 카메라에 담았다.

저녁이 되어 정인우가 돌아왔을 때, 나는 사진을 한 장씩 넘기며 그에게 보여주었다.

정인우는 화면을 힐끗 보더니 휴대폰을 내 쪽으로 툭 밀어 넣었다.

“이런 건 나도 몰랐어.”

“침대 시트는?”

“그건 너무 미끄럽다고 잘 때 불편하다고 해서 바꾼 걸 거야.”

“그 여자가 불편해해? 우리 침대인데?”

순간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채연이가 혼자라서 가엾잖아. 네가 좀 이해해주면 안 돼? 의사 선생님이 그러는데 채연이 요즘 감정 기복이 심하대. 무슨 일이라도 날까 봐 걱정돼서 그러는 거야 나도. 제발 날 봐서라도 그냥 좀 넘어가 주면 안 돼?”

말을 마치고 정인우는 휴대폰을 들고 다시 발코니로 향했다.

이채연이 가엾기에 내가 이해해줘야 하고, 그녀가 감정 기복이 심하면 내가 양보해줘야 한다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은 내 몫이고 가여운 건 이채연 몫이었구나, 이 남자에겐...

나는 씁쓸한 마음을 안고 말없이 객실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11시 정각, 발코니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내 정인우가 낮게 웃으며 속삭이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오늘 즐거웠어?”

“그래, 나도 보고 싶어.”

3분,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이었다.

이내 발코니 문이 닫히고 발소리가 객실 문 앞까지 이어졌다.

그는 잠시 문밖에 서 있다가 서서히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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Último capítulo

  • 엇갈린 굿나잇   제10화

    3년이 지났다.나는 바닷가 근처 도시에 자리를 잡았고 스튜디오도 이곳으로 옮겼다.규모는 아담하지만 일은 꾸준히 들어오는 편이었다.혼자 사는 집에는 뚱뚱한 치즈냥이 한 마리를 들였다. 어찌나 살이 쪘는지 걸을 때마다 배가 바닥에 닿을락 말락 했다.주말이면 바닷가를 따라 산책하러 나갔다.모래사장에는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부들, 손을 꼭 맞잡은 연인들로 가득 찼다.나는 신발을 벗고 맨발로 고운 모래를 밟았다.파도가 밀려와 발등을 덮을 때면 차가운 감촉이 전해졌고 물이 빠져나갈 땐 발밑의 모래까지 함께 휩쓸려 내려갔다.그 이후로 나는 다시 연애를 하지 않았다.누군가를 잊지 못해서가 아니라 혼자인 삶이 너무 좋아서였다.집안 물건들은 내가 둔 위치 그대로였고 설거지한 그릇들은 내가 원하는 자리에 정리해두었다. 주말이면 마음껏 늦잠을 자는 것도 너무 좋았다.가끔 친구들이 누군가를 소개해 주려고 하면 단호하게 거절했다.아직도 미련이 남은 거냐고 묻는 친구에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그런 게 아니라 단지 내 시간을 더 이상 남에게 나누어주고 싶지 않아.”얼마 전, 예전 직장 동료가 이곳으로 찾아와 함께 밥을 먹었다.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그녀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췄다.“너 정인우 기억나?”나는 생선 살을 한 점 입에 물며 무심하게 물었다.“그 사람은 왜?”“나중에 결국 이채연이랑 다시 합쳤대. 그런데 매일같이 싸운다더라. 여자는 몇 번이나 자살 소동을 피우고 그 사람 회사도 문제가 생겨서 요즘 형편이 꽤 안 좋은가 봐.”나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그래.”동료가 젓가락을 허공에 든 채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겨우 그게 다야?”“그럼 내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그녀가 고개를 저었다.“너 정말 다 내려놨구나.”“진작 다 잊었어.”밤이 되어 집에 돌아오니 고양이가 창틀에서 배를 훤히 드러낸 채 네 발을 동그랗게 말고 자고 있었다.휴대폰을 확인하니 어느덧 밤 11시였다.문득 예전의 습관 하나가 떠

  • 엇갈린 굿나잇   제9화

    두 달이 또 흘렀다.그날 저녁 무렵 스튜디오를 나설 때,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막 어둑해지고 거리에 가로등도 켜지지 않았다.문가에 누군가 서 있었는데 이채연이었다.몰라보게 야윈 그녀, 광대뼈가 도드라졌고 눈가는 퀭하게 파여 있었다.지퍼를 끝까지 올린 하얀색 패딩 점퍼 속으로 턱을 깊숙이 파묻은 이채연은 예전의 그 화려하고 세련된 모습과 아예 딴판이었다.나를 보자마자 그녀의 눈이 순식간에 붉어지더니 이내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언니.”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언니, 제발 부탁이에요. 다시 돌아가 주세요. 오빠가 지금 아무도 안 만나고 있어요. 저까지 쫓아냈단 말이에요. 나보고 다시는 나타나지 말라면서 자기가 가진 모든 걸 다 줬어요. 오빠는 진짜로 언니를 사랑해요. 제발 돌아가 주면 안 될까요?”이채연은 숨이 넘어갈 듯 울었다. 턱 끝에 매달린 눈물 한 방울이 희미한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그녀가 내 소매를 붙잡으려 손을 뻗었다. 닿은 손가락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손톱은 짧게 깎여 있었다.“다 말했어요? 다 했으면 이만 갈게요.”“언니, 어쩜 그렇게 모질게 굴 수 있어요?”나는 소매를 거칠게 빼냈다.“이채연 씨, 예전부터 인우 갖고 싶어 했잖아요. 이제 줄게요. 실컷 가지세요.”말이 채 끝나기도 전, 차 한 대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도로변에 멈춰 섰다.안에서 뛰쳐나온 정인우의 표정은 분노가 아닌 공포였다.눈을 부릅뜬 채 동공이 잘게 떨렸고 입술은 걷잡을 수 없이 떨렸다.그는 내 앞까지 달려와 이채연이 서 있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그리고 그녀가 나를 향해 손을 뻗고 있는 것을 보자마자 그대로 거칠게 밀쳐버렸다.그녀가 뒤로 넘어지며 계단 모서리에 뒤통수를 세게 부딪쳤고 둔탁한 소리가 났다.머리카락 사이로 배어 나온 피가 귀를 타고 흘러내려 하얀 패딩 어깨 위로 툭툭 떨어졌다. 붉은 얼룩이 순식간에 번져 나갔다.하지만 정인우는 그런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유리야, 나 쟤랑 이제 아무 사이도 아니야. 제발 믿어줘.”

  • 엇갈린 굿나잇   제8화

    그로부터 또 몇 달이 흘렀다.나는 다른 도시로 거처를 옮겨 나만의 스튜디오를 열었다.방 두 개짜리 아담한 공간으로 한쪽은 사무실로 쓰고 다른 한쪽은 손님 접견실로 꾸몄다.창가에 둔 화분에서 자란 스킨답서스 잎들이 바닥에 닿을 듯 길게 늘어졌다.그날 오후, 한창 고객과 디자인 시안을 논의하던 중이었다.회의실은 2층이었고 창문은 도로를 향해 나 있었다.문이 열리고 들어온 조수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그녀가 내 곁으로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아래에 어떤 분이 무릎을 꿇고 팻말을 들고 있어요. 정인우라고 하는데... 유리 씨 남편분이라네요.”고객의 시선이 나에게 머물렀다. 나는 조수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잠시만요.”곧이어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광장 한가운데에 무릎을 꿇고 있는 정인우, 무릎 밑에 방석 하나 없이 차가운 회색 타일 위에 그대로 꿇어앉은 상태였다.손에 든 종이판 위에는 굵은 검은색 글씨가 적혀 있었다.[유리야, 내가 잘못했어. 딱 한 번만 기회를 줘.]그 주변으로 십여 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휴대폰을 들고 촬영하는 이도 있었고 웅성거리며 수군대는 이들도 있었다.나는 창가에 서서 그 광경을 2초가량 내려다보았다.“경비 불러서 내보내요.”조수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잠시 후 돌아온 조수는 그가 떠나지 않으며, 내가 직접 내려와서 만나주기 전까진 움직이지 않겠다고 버틴다고 했다.“그럼 경찰 불러요.”곧이어 경찰이 출동했다.제복을 입은 두 사람이 그의 곁에 서서 한참을 설득했지만, 이 남자는 여전히 팻말을 든 채 요지부동이었다.결국 한 경찰이 몸을 숙여 그의 팔을 잡아당긴 끝에야 간신히 일어설 수 있었다.일어서는 순간 다리가 후들거렸는지 몸이 휘청했고 곁에 있던 이들이 황급히 그를 부축했다.정인우는 고개를 돌려 내 스튜디오 창문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하지만 나는 이미 창가에 없었다.다음 날, 대학 동기에게서 전화가 왔다.“유리야, 정인우가 날 찾아왔어. 마지막으로 널

  • 엇갈린 굿나잇   제7화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정인우에게서 두 가지 소식이 들려왔다.하나는 회사에 사표를 낸 것, 다른 하나는 이채연의 장기 간호 책임을 전문 의료팀에 넘기고 그녀를 외국으로 보냈다고 한다.이 모든 소식은 구민아에게서 전해 들었다.그녀는 전화기 너머에서 다급하게 말을 쏟아냈다.“그 사람, 회사 지분을 전부 다 넘겼대. 이채연이 떠나던 날 밤새 울었다는데 정인우는 배웅조차 안 나갔다더라. 아버지는 아들이 미쳤다고 펄펄 뛰고 어머니는 아들 친구들에게 온갖 전화를 다 돌려서 말리라고 난리였다나 봐.”나는 스튜디오 창가에 서서 유리창을 때리는 빗줄기를 내려다보았다. 빗물이 창을 타고 길게 흘러내리고 있었다.“도대체 뭘 바라고 그러는 걸까?”구민아가 물었다.그가 무엇을 바라는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는 나를 찾아왔다.그날 저녁 무렵, 스튜디오를 나서는데 정인우가 입구 계단 아래에 서 있었다.손에는 서류 봉투가 들려 있었는데 끝부분이 잔뜩 구겨졌다.정인우는 내게 봉투를 내밀었다.“이혼합의서야. 사인했어.”나는 봉투를 열어 종이 몇 장을 꺼낸 뒤 마지막 장을 펼쳤다.아니나 다를까 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검은색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쓴 글씨, 마지막 획이 길게 뻗어 나와 종이 위에 짧은 자국을 남겼다.“회사 그만뒀어?”“응.”“그 여자는?”“보냈어.”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류를 도로 봉투에 넣었다.“지금 이러는 거 내가 돌아올 거로 생각해서 그러는 건 아니지?”정인우는 잠시 망설이다 입술을 달싹였다.“아니야.”“다행이네.”봉투를 다시 건넸지만 남자는 받지 않았다.“유리야, 내가 이렇게 한 건 네가 돌아오길 바라서가 아니야. 돌아오지 않을 거란 거 알아.”“지금이라도 그렇게 결정해줘서 고마워.”“유리야...”“이제 그만해, 인우야. 넌 네 인생 살고 나도 내 인생 살고 우리 각자 앞으로 나아가는 게 좋지 않겠어?”그는 그 자리에 서서 팔을 늘어뜨렸다.불어오는 바람에 그의 스웨터 끝자락이 살짝 들썩였다.“그 사

  • 엇갈린 굿나잇   제6화

    두 달 뒤, 나는 남쪽의 작은 도시로 이사했다.디자인 일을 몇 개 따내 동업자와 함께 작은 스튜디오를 차렸고 일상은 더할 나위 없이 평온했다.매일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달걀 하나를 삶고 식빵 한 조각을 구웠다.식사를 마치고 여덟 시쯤 집을 나서 20분을 걸어 스튜디오로 출근했다.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왔고 가끔 길거리 음식을 포장해와 발코니에서 먹기도 했다.정인우가 찾아온 날, 나는 한창 건재상에서 타일을 고르고 있었다.바닥에 쪼그려 앉아 무광과 유광 타일의 절단면을 연신 만져보며 결정을 내리지 못했고 진수현이 옆에서 샘플 상자를 옮겨주고 있었다.그는 선반에서 타일을 하나씩 꺼내 카트에 차곡차곡 쌓았다.나는 그가 건네준 타일을 받아 들고 무늬를 살피다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기분 좋게 웃으며 고개를 든 순간, 이십 미터쯤 떨어진 곳에 서 있는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회색 재킷을 걸친 정인우는 지퍼도 올리지 않은 채였고 그 안의 셔츠는 잔뜩 구겨져 있었다.머리카락은 꽤 자라 앞머리가 이마를 덮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흩날렸다가 다시금 가라앉곤 했다.그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양손을 툭 떨어뜨렸다. 손을 흔들지도, 내 이름을 부르지도 않고 그저 그렇게 서 있기만 했다.나는 멍하니 굳어버렸고 진수현이 내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아는 사람이야?”“응.”나는 정인우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이쪽으로 걸어왔다.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내 앞에 멈춰 선 그는 내가 들고 있던 타일을 흘긋 보고 진수현을 훑어본 뒤 다시 내 얼굴로 시선을 고정했다.“유리야.”“왜 왔어?”“너랑 얘기 좀 하려고.”“무슨 이야기? 우린 이미 편지로 할 이야기가 다 끝났을 텐데.”문득 진수현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이분은?”나는 진수현을 힐긋 보고는 정인우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전남편.”법적으로는 아직 내 남편이었다. 이혼합의서에 서명은 했지만, 서류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니까.다만 내 마음속에서 그 결혼은 이미 끝난

  • 엇갈린 굿나잇   제5화

    나는 휴대폰 번호를 바꿨다.길가 통신사 대리점에서 새 번호를 만들었고 20분을 기다린 끝에 새 유심 카드를 손에 쥐었다.기존의 유심 카드는 가위로 두 동강 내어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새로 얻은 보금자리는 북향의 오피스텔이었다. 방 하나에 거실 하나, 창밖으론 좁은 골목길이 내다보였다.건물 아래엔 잎을 거의 다 떨군 오동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이사하던 날, 나는 택배 회사에 연락해 짐을 모두 부쳤다.짐이라곤 종이 상자 세 개와 여행 가방 하나가 전부였다.택배 기사가 상자 안에 무엇이 들었냐고 묻길래 옷과 일용품이라고 답했다.기사는 저울 위에 상자를 올리고 운송장을 출력해 붙였다.6년의 결혼 생활이 남긴 결과물은 고작 그게 전부였다.새집에 도착해서는 기사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종이 상자 세 개를 직접 옮겼다.차에서 내려 집까지 몇 번을 왕복했는지 모른다.마지막 상자를 집 안으로 들였을 때, 상자 날카로운 모서리에 손을 베이고 말았다.붉은 피가 배어 나오기에 휴지를 두어 번 감아 대충 지혈했다.짐을 뺀 뒤 며칠간 정인우한테서 37통의 메시지가 왔지만 하나도 읽지 않았다.14통의 부재중 전화는 모두 블랙리스트에 담겨 있었다.그 후엔 그도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며칠 뒤, 구민아에게서 전화가 왔다.“정인우 너희 아파트에 다녀갔어. 세 시간이나 서 있어서 경비 아저씨가 세 번씩 가서 물어봤는데 그냥 누굴 기다리는 중이라고만 했대.”나는 알겠다고 짧게 답했다.이틀 뒤, 구민아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회사 앞에서 정인우를 마주쳤어. 네가 어디 있는지 묻길래 모른다고 했지. 그러고 한참을 서 있다가 갔는데 몇 걸음 떼다 말고 돌아서서 그러더라. 너는 위가 안 좋으니 밥은 제때 챙겨 먹으래.”나는 휴대폰을 쥔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구민아는 그가 몰라보게 수척해졌다고 말했다. 살이 빠져 핼쑥해진 얼굴에 옷매무새도 엉망이었다고 한다.예전엔 정인우가 집을 나서기 전, 내가 늘 그의 옷깃을 다듬어 주곤 했다.이제 그 누구도 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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