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정인우에게는 8년째 고수해온 습관이 하나 있다. 매일 밤 11시가 되면 그는 어김없이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통화 시간은 늘 딱 3분이었다. “채연이가 불면증이 심해서 그래. 의사 선생님이 잠들기 전까지 누군가 곁에서 말을 걸어주는 게 좋다고 했어.” “근데 왜 하필 너야?” “그때 그 사고... 채연이가 나 대신 다쳤잖아. 그 아이는 내 생명의 은인이야.” 8년이라는 세월, 2900번이 넘는 3분. 이미 나 자신을 다독이며 여기까지 왔다. 마음을 넓게 먹자, 제발 그러자며 스스로를 몇 번이나 설득했는지 모른다. 결혼 3주년이 되어서야 정인우는 겨우 시간을 냈다. 우리들의 뒤늦은 신혼여행이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 밤, 정인우가 욕실에서 샤워하는 동안 나는 침대에 누워 우리가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그의 휴대폰 화면에 메시지 알림이 떴다. 이채연이 보낸 영상이었다. 화면 너머, 그녀는 우리 부부의 안방 침대에 누워 있었다. 내 잠옷을 입고, 내 베개를 벤 채로 카메라를 향해 배시시 웃으며 속삭였다. “오빠, 오늘은 딱 1분만 더 통화하면 안 돼? 너무 보고 싶어. 이제 전화할 시간까지 딱 3분 남았네.”
Ver mais3년이 지났다.나는 바닷가 근처 도시에 자리를 잡았고 스튜디오도 이곳으로 옮겼다.규모는 아담하지만 일은 꾸준히 들어오는 편이었다.혼자 사는 집에는 뚱뚱한 치즈냥이 한 마리를 들였다. 어찌나 살이 쪘는지 걸을 때마다 배가 바닥에 닿을락 말락 했다.주말이면 바닷가를 따라 산책하러 나갔다.모래사장에는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부들, 손을 꼭 맞잡은 연인들로 가득 찼다.나는 신발을 벗고 맨발로 고운 모래를 밟았다.파도가 밀려와 발등을 덮을 때면 차가운 감촉이 전해졌고 물이 빠져나갈 땐 발밑의 모래까지 함께 휩쓸려 내려갔다.그 이후로 나는 다시 연애를 하지 않았다.누군가를 잊지 못해서가 아니라 혼자인 삶이 너무 좋아서였다.집안 물건들은 내가 둔 위치 그대로였고 설거지한 그릇들은 내가 원하는 자리에 정리해두었다. 주말이면 마음껏 늦잠을 자는 것도 너무 좋았다.가끔 친구들이 누군가를 소개해 주려고 하면 단호하게 거절했다.아직도 미련이 남은 거냐고 묻는 친구에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그런 게 아니라 단지 내 시간을 더 이상 남에게 나누어주고 싶지 않아.”얼마 전, 예전 직장 동료가 이곳으로 찾아와 함께 밥을 먹었다.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그녀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췄다.“너 정인우 기억나?”나는 생선 살을 한 점 입에 물며 무심하게 물었다.“그 사람은 왜?”“나중에 결국 이채연이랑 다시 합쳤대. 그런데 매일같이 싸운다더라. 여자는 몇 번이나 자살 소동을 피우고 그 사람 회사도 문제가 생겨서 요즘 형편이 꽤 안 좋은가 봐.”나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그래.”동료가 젓가락을 허공에 든 채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겨우 그게 다야?”“그럼 내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그녀가 고개를 저었다.“너 정말 다 내려놨구나.”“진작 다 잊었어.”밤이 되어 집에 돌아오니 고양이가 창틀에서 배를 훤히 드러낸 채 네 발을 동그랗게 말고 자고 있었다.휴대폰을 확인하니 어느덧 밤 11시였다.문득 예전의 습관 하나가 떠
두 달이 또 흘렀다.그날 저녁 무렵 스튜디오를 나설 때,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막 어둑해지고 거리에 가로등도 켜지지 않았다.문가에 누군가 서 있었는데 이채연이었다.몰라보게 야윈 그녀, 광대뼈가 도드라졌고 눈가는 퀭하게 파여 있었다.지퍼를 끝까지 올린 하얀색 패딩 점퍼 속으로 턱을 깊숙이 파묻은 이채연은 예전의 그 화려하고 세련된 모습과 아예 딴판이었다.나를 보자마자 그녀의 눈이 순식간에 붉어지더니 이내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언니.”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언니, 제발 부탁이에요. 다시 돌아가 주세요. 오빠가 지금 아무도 안 만나고 있어요. 저까지 쫓아냈단 말이에요. 나보고 다시는 나타나지 말라면서 자기가 가진 모든 걸 다 줬어요. 오빠는 진짜로 언니를 사랑해요. 제발 돌아가 주면 안 될까요?”이채연은 숨이 넘어갈 듯 울었다. 턱 끝에 매달린 눈물 한 방울이 희미한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그녀가 내 소매를 붙잡으려 손을 뻗었다. 닿은 손가락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손톱은 짧게 깎여 있었다.“다 말했어요? 다 했으면 이만 갈게요.”“언니, 어쩜 그렇게 모질게 굴 수 있어요?”나는 소매를 거칠게 빼냈다.“이채연 씨, 예전부터 인우 갖고 싶어 했잖아요. 이제 줄게요. 실컷 가지세요.”말이 채 끝나기도 전, 차 한 대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도로변에 멈춰 섰다.안에서 뛰쳐나온 정인우의 표정은 분노가 아닌 공포였다.눈을 부릅뜬 채 동공이 잘게 떨렸고 입술은 걷잡을 수 없이 떨렸다.그는 내 앞까지 달려와 이채연이 서 있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그리고 그녀가 나를 향해 손을 뻗고 있는 것을 보자마자 그대로 거칠게 밀쳐버렸다.그녀가 뒤로 넘어지며 계단 모서리에 뒤통수를 세게 부딪쳤고 둔탁한 소리가 났다.머리카락 사이로 배어 나온 피가 귀를 타고 흘러내려 하얀 패딩 어깨 위로 툭툭 떨어졌다. 붉은 얼룩이 순식간에 번져 나갔다.하지만 정인우는 그런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유리야, 나 쟤랑 이제 아무 사이도 아니야. 제발 믿어줘.”
그로부터 또 몇 달이 흘렀다.나는 다른 도시로 거처를 옮겨 나만의 스튜디오를 열었다.방 두 개짜리 아담한 공간으로 한쪽은 사무실로 쓰고 다른 한쪽은 손님 접견실로 꾸몄다.창가에 둔 화분에서 자란 스킨답서스 잎들이 바닥에 닿을 듯 길게 늘어졌다.그날 오후, 한창 고객과 디자인 시안을 논의하던 중이었다.회의실은 2층이었고 창문은 도로를 향해 나 있었다.문이 열리고 들어온 조수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그녀가 내 곁으로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아래에 어떤 분이 무릎을 꿇고 팻말을 들고 있어요. 정인우라고 하는데... 유리 씨 남편분이라네요.”고객의 시선이 나에게 머물렀다. 나는 조수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잠시만요.”곧이어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광장 한가운데에 무릎을 꿇고 있는 정인우, 무릎 밑에 방석 하나 없이 차가운 회색 타일 위에 그대로 꿇어앉은 상태였다.손에 든 종이판 위에는 굵은 검은색 글씨가 적혀 있었다.[유리야, 내가 잘못했어. 딱 한 번만 기회를 줘.]그 주변으로 십여 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휴대폰을 들고 촬영하는 이도 있었고 웅성거리며 수군대는 이들도 있었다.나는 창가에 서서 그 광경을 2초가량 내려다보았다.“경비 불러서 내보내요.”조수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잠시 후 돌아온 조수는 그가 떠나지 않으며, 내가 직접 내려와서 만나주기 전까진 움직이지 않겠다고 버틴다고 했다.“그럼 경찰 불러요.”곧이어 경찰이 출동했다.제복을 입은 두 사람이 그의 곁에 서서 한참을 설득했지만, 이 남자는 여전히 팻말을 든 채 요지부동이었다.결국 한 경찰이 몸을 숙여 그의 팔을 잡아당긴 끝에야 간신히 일어설 수 있었다.일어서는 순간 다리가 후들거렸는지 몸이 휘청했고 곁에 있던 이들이 황급히 그를 부축했다.정인우는 고개를 돌려 내 스튜디오 창문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하지만 나는 이미 창가에 없었다.다음 날, 대학 동기에게서 전화가 왔다.“유리야, 정인우가 날 찾아왔어. 마지막으로 널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정인우에게서 두 가지 소식이 들려왔다.하나는 회사에 사표를 낸 것, 다른 하나는 이채연의 장기 간호 책임을 전문 의료팀에 넘기고 그녀를 외국으로 보냈다고 한다.이 모든 소식은 구민아에게서 전해 들었다.그녀는 전화기 너머에서 다급하게 말을 쏟아냈다.“그 사람, 회사 지분을 전부 다 넘겼대. 이채연이 떠나던 날 밤새 울었다는데 정인우는 배웅조차 안 나갔다더라. 아버지는 아들이 미쳤다고 펄펄 뛰고 어머니는 아들 친구들에게 온갖 전화를 다 돌려서 말리라고 난리였다나 봐.”나는 스튜디오 창가에 서서 유리창을 때리는 빗줄기를 내려다보았다. 빗물이 창을 타고 길게 흘러내리고 있었다.“도대체 뭘 바라고 그러는 걸까?”구민아가 물었다.그가 무엇을 바라는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는 나를 찾아왔다.그날 저녁 무렵, 스튜디오를 나서는데 정인우가 입구 계단 아래에 서 있었다.손에는 서류 봉투가 들려 있었는데 끝부분이 잔뜩 구겨졌다.정인우는 내게 봉투를 내밀었다.“이혼합의서야. 사인했어.”나는 봉투를 열어 종이 몇 장을 꺼낸 뒤 마지막 장을 펼쳤다.아니나 다를까 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검은색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쓴 글씨, 마지막 획이 길게 뻗어 나와 종이 위에 짧은 자국을 남겼다.“회사 그만뒀어?”“응.”“그 여자는?”“보냈어.”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류를 도로 봉투에 넣었다.“지금 이러는 거 내가 돌아올 거로 생각해서 그러는 건 아니지?”정인우는 잠시 망설이다 입술을 달싹였다.“아니야.”“다행이네.”봉투를 다시 건넸지만 남자는 받지 않았다.“유리야, 내가 이렇게 한 건 네가 돌아오길 바라서가 아니야. 돌아오지 않을 거란 거 알아.”“지금이라도 그렇게 결정해줘서 고마워.”“유리야...”“이제 그만해, 인우야. 넌 네 인생 살고 나도 내 인생 살고 우리 각자 앞으로 나아가는 게 좋지 않겠어?”그는 그 자리에 서서 팔을 늘어뜨렸다.불어오는 바람에 그의 스웨터 끝자락이 살짝 들썩였다.“그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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