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옥지는 이 상황에 온사를 찾아가서 매를 벌고 싶지 않았다. 두 호위가 중상을 입은 마당에 억지로 온사를 만나려 한다면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그래서 온옥지는 바로 중상을 입은 호위들을 데리고 철수했다.창주성에 갈 수는 없었다. 흑기군이 영지를 성문 안팎에 세웠는데 죽으러 들어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무능한 것들!”마차 안에서 온옥지가 욕설을 퍼부었다.마차 밖에 있는 두 호위는 침묵을 지켰다. 꼬박 이틀이 걸렸는데 도망친 부상자 한명 따라잡지 못하고 용골련이 온사의 손에 넘어갔으니 욕을 먹는 게 당연했다.온옥지는 음침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두 호위가 중상을 입은 상황에 무사히 용골련을 가져오려면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어떻게 하면 흑기군의 비호를 받으며 신변에 막강한 그림자 호위까지 있는 온사를 상대할 수 있을까?한편, 온옥지가 용골련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사이, 추월은 중상을 입은 문오를 온사의 앞으로 데려갔다.다른 의원들은 성내에서 백성들 진료를 보고 있었기에 문오를 살펴줄 사람이 없었다. 온사는 재빨리 문오가 입은 상처부터 확인하고 붕대를 감았다.치료가 끝난 후, 문오는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은 꼴이 되었다. 검상 이외에도 심각한 낙상의 흔적도 보였다.가장 골치가 아픈 건 내장 출혈이었는데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미 오는 길에 죽었을 것이다.온사는 자신이 가진 희귀 약재와 령수를 결합해 겨우 위태로운 그의 목숨을 붙여 놓았다.“성녀… 전하?”눈을 뜬 문오는 눈앞에 있는 온사를 보고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성녀 전하! 약재… 약재는!”“조급해할 것 없어요. 이걸 찾는 거죠?”온사는 혹여 상처라도 벌어질까 일어나려는 그를 도로 눕힌 후, 추월의 손에서 용골련을 받아 그에게 보여주었다.용골련이 무사히 온사의 손에 전달된 것을 확인한 문오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예… 바로 그것입니다! 성녀 전하께 전달되었으면 되었습니다… 정말… 천만다행입니다!”이제 아이들과 약속한 일을 무사히 완수했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었다.
대명왕조에서 흑기군에게 명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황제 폐하와 섭정왕뿐이었다.두 분을 제외하고 태후를 포함해 아무도 함부로 그들에게 명을 내릴 수 없었다.다른 사람들은 귀족이든 백성이든 흑기군에게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진국공인 온권승이 오더라도 함부로 명을 내릴 수 없는데 하물며 그의 아들인 온옥지는 더더욱 그럴 수 없었다.온옥지의 호위는 흑기군을 함부로 건들면 안 된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그래서 문오가 군영으로 달려올 때 어떻게든 잡으려고 했으나 아쉽게 놓치고 말았다. 그가 귀한 용골련을 꺼내 흑기군에게 건네는 것을 보고 큰일 났다는 생각에 다시 돌려받으려고 무례를 무릅쓰고 소리쳤던 것이다.“저희는 흑기군 군영에 침입할 생각이 없습니다. 단지 저 도둑놈이 저희 공자의 약재를 훔치고 도망가 버려서 쫓아온 것입니다. 약재는 이만 돌려주십시오. 그건 저희 공자의 목숨이 달린 약재이니 필히 큰 답례로 보답할 것입니다.”그 호위는 마지막에 한마디 덧붙였다.“참, 우리 공자는 진국공부의 넷째 공자님이십니다.”진국공가의 이름을 대면 적어도 모른 체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였다.그러나 흑기군은 달랐다.어차피 그들이 모시는 왕야와 진국공은 앙숙이었다. 만약 호위가 진국공가 출신임을 밝히지 않았더라면 돌려줬을 수도 있었다.그러나 흑기군 소대장은 무표정한 얼굴로 싸늘하게 대꾸했다.“이 약재가 너희 공자의 물건이라는 것을 어찌 증명하지? 너희의 말만 듣고 이 사람이 소중히 내게 건넨 물건을 바치란 말이냐? 강도가 따로없구나!”분명 사내는 쓰러지기 전에 꼭 성녀 전하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고 진국공가와 성녀 전하 사이에 원한이 깊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그러니 그들이 약재를 넘길 일은 없었다.마침 이때, 흑기군 소대장 앞으로 추월이 다가갔다.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바닥에 쓰러진 문오를 가리키며 말했다.“성녀께서 이 사람을 보고자 하십니다.”흑기군 소대장은 곧장 용골련을 추월에게 건네며 말했다.“이 사람이 가져온 약재인데 꼭 성녀 전
어쨌거나 북진연이 그녀가 궁금했던 의문이 답을 다 가져왔기에 온사는 굳이 밀실로 가지 않았다.지금은 범숙취의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이 모든 게 그의 잘못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전에 온모에게 당한 게 있으니 대하는 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다음 날, 온사는 영기로 창주성 앓고 있는 백성들의 고통을 줄여주고자, 축원 의식을 준비했다.그런데 성루로 올라가자마자 성문 밖에 보낸 독충들에게서 신호가 왔다.누군가가 창주성에 접근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게다가 한 명이 아니라 뒤에 따라오는 마차도 있다고 했다.게다가 마차에 탄 자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는 사람을 쫓고 있는 듯하다고 했다.“마차에 탄 사람이 온옥지라고?”독충들은 익숙한 기운을 발견하고 즉시 온사에게 알렸다.온사는 잠깐 고민하다가 추월을 불렀다.“추월, 성문 앞으로 가서 사람을 데려와.”“예, 사태!”추월은 곧장 성문으로 출발했다. 온옥지를 태운 마차와 쫓기는 자는 이미 흑기군 군영 근처에 도달했다.순찰을 돌던 흑기군이 그들을 막았다.“멈추시오! 이곳은 흑기군 주둔지이니 돌아가시오!”흑기군은 도로 양측에 막사를 치고 있고 성문으로 통하는 도로는 열려 있었기에 백성들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었다.그러나 그들은 창주성으로 가는 게 아니라 곧장 흑기군 군영으로 쳐들어왔다.맨 앞에서 달리는 사내는 온몸이 피투성이라, 흑기군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성녀… 전하… 소인은 꼭 성녀 전하를… 뵈어야 합니다! 제발… 전달 좀 부탁드립니다….”이틀 사이에 문오는 겨우 숨만 붙어 있는 상태였다. 그는 온옥지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성설성에서 이곳까지 필사적으로 달려왔던 것이다.절벽에서 떨어진 부상에 오면서 다친 부상들까지 온몸이 성한 데가 없었다.몇번이나 온옥지에게 잡힐 뻔했는데 겨우 앞에 흑기군 막사가 보여서 달려온 거였다. 이는 그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군영에 침입한 죄로 죽는다고 해도 상관없었다.죽더라도 절대 그것을 망나니에게 넘길 수 없었다.문오는 품에 고이 간직
온사는 그 말을 듣고 헛웃음이 나왔다.이복동생인 범숙취가 자신과 같은 날 태어났다니.이게 과연 우연일까?범숙취가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두 사람 중에 출생의 비밀이 있다는 걸까?온사는 갑자기 사실 자신은 난산이 아니라 예정한 날자보다 일찍 태어났다는 사실을 떠올렸다.그리고 출산 후에 어머니는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셨다.사람들은 어머니가 병을 앓다가 돌아가셨다고 믿었지만 온사는 줄곧 누군가가 어머니를 시해하였다고 확신했다.처음에는 온모의 생모인 백초유가 한 짓이라고 생각했는데 만약 범인이 백초유가 아니라면?어쩌면 어머니를 독해한 사람은 백초유뿐이 아니라 또 다른 범인이 있을 수도 있었다.범숙취의 어미도 수상하고 온권승은 더 수상했다.둘 다 백초유의 공범일 수도 있고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온권승에게 접근한 것일 수도 있었다.온사는 만약 범숙취가 자신과 같은 날 태어난 게 사실이라면 우연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인위적으로 만든 우연이었을 수도 있었다.어쩌면 목적은 하나, 아이를 바꿔치기했을 수도 있었다.그런 생각이 들자 온사는 가슴이 쿵쾅거리며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그 순간 그녀는 자신의 정체에 대해서도 의심이 갔다.만약 그녀의 추측이 맞다면… 바꿔치기가 성공했을까?만약 성공했다면 나는 누구일까?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북진연은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제야 온사는 잠시 나갔던 넋이 돌아오는 듯했다.그녀는 고개를 들고 당장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북진연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북진연도 마음이 아팠다.그는 당장 그녀를 안아주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겁낼 것 없어. 지금은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자신을 의심하지도 마. 네가 온사이고 란자군의 딸이야. 이건 의심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야.”사실 북진연도 온사와 같은 의심을 했었다.온사의 과거를 알기에 그녀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리며 넋이 나간 순간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그러나 방관자인 그는 온사보다
온사는 검을 들고 진지하게 임하는 둘의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라서 소리쳤다.“당장 그만두세요! 추월, 그만!”“이게 대체 뭐 하는 건가요?”온사의 목소리를 들은 북진연은 곧바로 싸움을 멈추고 그녀에게 성큼 다가왔다.“온사, 괜찮아?”온사는 걱정 어린 그의 얼굴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저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 왜 갑자기 싸우고 계셨던 건가요?”그녀의 신변으로 돌아온 추월은 싸늘한 눈으로 북진연을 노려보았다.북진연은 멈칫하더니 짤막하게 말했다.“별일 아니다. 네가 괜찮으면 되었어.”사실 그는 혼자 우울해하고 있을 온사를 걱정해서 위로라도 해주려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추월이 그의 앞을 가로막더니 뭐라고 해도 안 들여보내 줬던 것이다.북진연은 밖에서 온사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으니 그녀가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다급한 마음에 추월과 싸우게 되었던 것이다.다시 나타난 온사를 보고 북진연도 이성을 되찾았다.일전에 그녀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한 것을 생각하면, 추월은 뭔가 알고서 그를 막았던 게 분명했다.사정은 이해하지만 그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그가 모르는 온사의 비밀을 추월이 알고 있다니!조금 질투가 났지만 그는 온사에게 캐묻고 싶지는 않았다. 그가 물어보는 것보다는 온사가 자신을 완전히 신뢰한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털어놓게 하고 싶었다.북진연의 생각을 모르는 온사는 두 사람 다 다친 곳도 없으니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그곳에 다시 가봐야겠어요. 범숙취 그 아이가 한 말이 너무 갑작스러워서 물어보지 못한 게 많아요.”“다시 갈 필요 없어. 네가 궁금할 법한 질문은 내가 사람을 시켜 답을 얻어냈으니.”북진연이 말했다.온사는 그 말에 안도의 숨이 나왔다. 솔직히 지금은 온권승을 꼭 닮은 범숙취의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북진연도 그런 그녀의 심정을 이해하기에 사람을 시켜 범숙취를 취조하고 결과를 가지고 그녀에게 온 거였다.“범 현령에게는 숙취라는 아들이 있었던 게 확실해. 그러나 진짜 범숙취는
“백초유가 네 어미가 아니라고?”온사는 더욱 화가 치밀었다.“그럼 네 어미는 누구지?”그 질문에 범숙취는 웃음을 거두더니 바닥에 앉아 한참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제 어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그 사람이 누군지 알면 뭐가 달라지나요? 그렇게 궁금하시면 아버지를 찾아가서 물어보세요.”그는 비웃음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그 사람에게 데려가 주세요. 꼭 묻고 싶은 게 있었거든요.”온사는 그가 무슨 질문을 온권승에 하고 싶은 건지는 관심 없고 화가 나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그래. 거짓말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내 비록 불가의 길을 걷는 몸이지만 거짓말인 게 밝혀진다면 원칙을 깨더라도 널 죽여버릴 거니까.”말을 마친 온사는 뒤돌아서 밖으로 나갔다.북진연도 흑기군에게 눈짓하고는 그녀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온사!”온사는 재빨리 관저를 나와 눈길을 뚫고 막사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곧바로 옥패 공간에 진입했다.그녀는 공간 안에 둔 란자군의 무덤을 찾았다. 그런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아버지가 두 번이나 어머니를 배신했다는 말을 어떻게 꺼낼 수 있을까?어쩌면 두 번뿐이 아닐지도 모른다.“어머니, 그 자식은… 죽어 마땅한 놈이에요!”가슴에서 타오르는 분노 때문에 온사는 이성을 잃어버릴 것 같았다.옥패 공간의 영기마저 그녀의 분노에 영향을 받은 건지 그녀의 주변에서 휘몰아치기 시작했다.그러나 온사는 증오에 정신이 팔려 그것을 느낄 수 없었다. 비록 범숙취가 제 어미가 누군지 말하지는 않지만 그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똑 같은 얼굴에 비슷한 나이대, 백초유의 아들이든 누구의 아들이든 온권승이 란자군을 두번이나 배신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그는 어머니를 배신하고 란씨 가문을 배신했으며 그를 그렇게 믿고 따르던 자식들을 배신했다.전생에 그녀의 오라버니들은 사생아인 이복동생을 위해 친동생을 독해하고 배를 갈랐으니, 이 얼마나 웃긴 일인가!만약 아버지가 바깥에 둔 사생아가 한 명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