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정왕이 이렇게까지 지원해 주는데 온사가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그녀는 손을 번쩍 들고 주저없이 내리쳤다.짝!그녀는 절대 온옥지가 병약하다고 해서 봐줄 생각이 없었다.얼굴에서 얼얼한 통증이 퍼지자 온옥지는 눈앞이 캄캄하고 어지러워졌다.그는 갑자기 구토가 올라올 것 같았다.현기증 때문이 아니라 수치심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온옥지는 할 수만 있다면 자기가 당한만큼 온사에게 돌려주고 싶었지만 지금 상태로는 불가능했다.“이제 됐지?”그는 싸늘한 눈빛으로 온사를 응시하며 물었다.그는 이게 끝일 거라 생각했지만 온사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 아직 안 끝났어.”말을 마친 그녀는 다시 손을 번쩍 들었다.짝! 짝! 짝!그렇게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온옥지는 얼굴이 묵사발이 되도록 따귀를 맞았다.이미 정신이 혼미해진 그의 입가에서 피가 스며나오기 시작했다.온권승이 옆에서 제지하지 않았다면 아마 몇 대는 더 맞았을 것이다.“그만!”앞으로 나선 온권승은 손을 뻗어 온옥지를 감싸며 분노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러다 애 죽어!”어쨌거나 온사는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했다.전생에 그녀의 얼굴을 망가뜨린 사람이 온옥지였다.온모가 언니보다 예쁘지 않아서 속상하다고 한 온모의 한마디 때문에 온옥지는 직접 제작한 독약을 그녀의 얼굴에 뿌렸다.살갗이 타들어가는 고통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했다.아마 온사는 그 느낌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나중에 경성에 추한 못난이라고 소문을 퍼뜨린 사람도 온옥지였다.그는 목적을 달성했고 그 소문을 접한 온모는 친히 그녀의 얼굴을 보러 왔다.온사는 그날 활짝 웃고 있던 온모와 온옥지의 얼굴을 지금껏 기억하고 있었다.전생을 떠올리니 참을 수 없는 갑갑함과 분노가 치밀었다.그녀는 손끝으로 온옥지의 얼굴을 툭툭 건드리며 불쾌한 어투로 물었다.“왜 안 웃지? 매가 부족했어?”‘이건 대체 무슨 소리야?’온옥지는 부아가 치밀었다. 이렇게 처맞고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참
“지금 이 나를 협박하는 것이냐?”온권승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날카로운 말투로 그녀에게 물었다.“물론이죠.”온사는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비록 온권승은 모르겠지만 온모의 목숨은 이미 그녀의 손에 쥐고 있었다.“아버지!”아니나다를까, 온모의 안색이 급변하더니 다급히 온권승의 옷깃을 잡았다.“그만하세요, 아버지. 모든 건 제 잘못이에요. 다 제가 부덕해서 벌어진 일이에요!”조금 전까지 의기양양하던 온모는 뒤늦게 자신의 목숨이 온사의 손에 저당잡혔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그녀는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걸, 후회막급이었다.‘망할 년! 또 협박이야?’온모는 이가 갈렸지만 지금으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오늘이 약속한 기한의 마지막 날이고 오늘도 해독제를 못 받으면 기다리는 건 죽음뿐이었다.온모는 죽음이 두려웠기에 감히 도박을 할 수 없었다.그랬기에 오늘 무슨 일이 있더라도 온사가 화풀이하는데 방해를 할 수 없었다.생각을 마친 온모는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셋째 오라버니, 넷째 오라버니, 제가 말실수를 해서 오라버니들에게까지 피해를 끼친 것 같아요. 더 이상 소란을 만들면 가문에도 위기가 찾아올 테니 만약 오라버니들께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면 제가 오라버니들을 대신해 벌을 받을게요.”말을 마친 온모는 앞으로 나서며 마치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는 듯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그 모습을 본 온자월은 인상을 확 찌푸렸다.사내의 손에 덜미를 잡힌 온옥지도 이를 갈며 말했다.“아… 안 돼. 막내 넌 안 그래도 얼굴에 상처를 입었는데… 또 맞으면 상처만 더 심해질 거야.”“넷째 말이 맞아. 넌 우리들의 동생이고 말실수를 했다고 하더라도 벌은 우리가 대신 받아야지.”말은 그렇게 해도 둘 중 누구도 온모가 말실수를 했다고 생각지 않았다.그들 입장에서는 모든 게 사실이고 시기심 많은 온모가 괜한 분풀이를 한다고 생각했다.온옥지와 온자월 둘 다 같은 생각이었다.그들은 심지어 자신들이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온옥지가 일부러 거짓말
온사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답했다.“잘됐구나. 마침 혼내주고 싶은 인간이 더 있었거든.”사내는 진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전하.”말을 마친 그는 온사의 옆을 떠나 성큼성큼 사람들에게로 다가갔다.사람들은 그가 걸어오는 모습을 보자 지레 가슴이 철렁했다.온사의 코앞까지 다가와 윽박지르던 온자월, 그리고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충용 후작, 진국공부의 호위들, 온옥지와 온모 일행까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분분히 뒤로 물러섰다.그러자 바닥에 엎드려 꼼짝도 못하고 있는 온옥지는 무방비 상태로 사내에게 노출되었다.사내는 그의 앞으로 다가가서 걸음을 멈추었다.“뭐… 뭐 하려는 거야?”온옥지는 이를 악물고 눈앞에 있는 호위를 바라보며 말했다.“난 진국공의 넷째 아들… 악!”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내는 그의 멱살을 잡고 들어올리더니 그대로 질질 끌고 온사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이거 놔, 이거 안 놔?”“아버지… 저 좀 살려주세요! 큰 형님! 셋째 형님… 저 좀 살려주세요!”온옥지는 질질 끌려가며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비명을 질렀다.“멈춰! 당장 멈춰!”놀란 온권승이 황급히 소리쳤다. 그는 자신의 저택에서 이렇게까지 대놓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자가 나타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게다가 폭력을 휘두른 상대가 그의 두 아들이라니, 참을 수 없는 화가 치밀었다.비록 사고만 쳐대는 아들들이 괘씸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들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장남인 온장온은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온사가 준 설련화를 먹고 조금 나아지긴 했어도 그건 일시적인 구급 처방이지 근본을 치료할 수는 없었다.해독제를 찾지 못한다면 온장온은 두 달을 못 넘길 수도 있었다.그러니 그는 미리 대비책을 생각해 두어야 했다.예전의 진국공가라면 후계자 걱정을 할 필요 없겠지만 지금은 장남이 중독되고 차남은 행방불명이 되었다.남은 두 아들이 비록 어리석고 한심하기는 해도 한명은 건강하고 한명은 비록 반신불수가 되었지만 그래
온권승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지난번에 이런 식으로 그를 도발했던 자는 섭정왕 북진연이었다.두 사람이 가깝게 지내더니 온사의 몸짓, 표정, 말하는 어투 하나하나 점점 북진연을 닮아가고 있었다.온권승이 뭐라고 하려는데 온자월이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온사! 건방도 정도껏 떨어야지!”온옥지를 부축해서 일으킨 온자월은 치미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온사의 앞으로 달려가서 으르렁거렸다.“너도 한때는 진국공가의 딸이었다는 것을 잊지 마. 감히 그런 말로 우릴 협박하다니, 나중에 벌받을까 두렵지도 않니?”“무례하다!”옆에 있던 충용 후작이 고성을 지르며 다가와서 온자월과 온사 사이를 가로막았다.그는 싸늘한 시선으로 온자월을 바라보며 말했다.“감히 성녀 전하의 존함을 입에 담다니! 이는 성녀 전하에 대한 불경이다. 진국공부는 성녀 전하와 폐하, 그리고 황실은 안중에도 없구나!”“맞습니다! 온자월, 온옥지는 관직도 없는 것들이 감히 성녀 전하 앞에서 그런 불경한 발언을 하다니! 참으로 무례합니다!”용기를 얻은 최소택도 고개를 번쩍 들고 온자월 형제를 비난하기 시작했다.“닥쳐!”온자월은 매섭게 그를 쏘아보고는 온사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내가 방금 한 말이 틀렸어? 너도 온씨 성을 가졌잖아? 네 몸에도 우리 가문 피가 흐르고 있잖아!”그 말을 들은 온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녀는 계단을 내려가 온자월의 앞으로 다가갔다.그 순간 늘 온사를 무시하던 온자월이라도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위압감을 무시할 수 없었다.‘어린 계집 주제에 뭐가 두렵다고… 내 착각일 거야….’짝!온사는 주저없이 손을 들어 온자월의 따귀를 때렸다.살갗이 부딪치는 아찔한 소리가 대청에 울렸다.온자월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가고 뺨에 뻘건 손자국이 났다. 그가 씩씩거리며 고개를 돌렸을 때, 이미 그의 뺨은 뻘겋게 부어 있었다.“이게 죽으려고!”그러나 그의 주먹이 온사에게 닿기도 전에 거대한 힘이 그의 등 뒤에서 전해지더니 그는 그대로 의자에 몸을 부딪치며 바닥
온옥지는 무방비 상태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고개를 든 그는 감히 자신의 몸에 발길질을 한 호위를 분노한 눈빛으로 노려보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호위는 다시 다리를 들어 온옥지의 이마를 걷어찼고 온옥지는 그대로 중심을 잃고 바닥에 대자로 나자빠지게 되었다.분풀이를 마친 호위는 온옥지의 앞에 가서 서더니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감히 너 따위가 성녀 전하께 그런 모욕스러운 말을 하다니!”“너….”온옥지는 노발대발하며 그건 자신이 한 말이 아니라고 말하려다가 얼음장처럼 싸늘한 그의 눈빛을 마주했다.경멸과 혐오를 담은 그 눈빛은 마치 그를 벌레처럼 바라보고 있었다.순간 온옥지는 괜히 거짓말이 들통날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무례하다!”뒤늦게 정신을 차린 온권승은 그제야 벌떡 일어서며 분노한 얼굴로 호위에게 호통쳤다.“일게 호위 따위가 감히 진국공부에서 소란을 부리다니! 당장 저놈을 잡아서 끌어내!”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대청 밖에 대기하고 있던 진국공가의 호위들이 우루루 몰려왔다.위기일발의 순간, 탕 하는 소리가 대청 중앙에서 울려퍼졌다.고개를 돌리자 깨진 찻잔 파편이 진국공의 발치에 떨어져 있었다. 찻물이 튀어 진국공의 신발과 옷자락을 적셨다.온권승은 음침한 얼굴로 고개를 들고 상석에 앉은 온사를 노려보았다.온사는 느긋하게 손을 내리고는 피식 웃으며 온권승을 바라보았다.조금만 빗나갔더라면 찻잔은 온권승의 머리에 맞았을 것이다.“성녀,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진국공께선 정말 몰라서 묻습니까?”온권승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에게 물었다.“이 호위가 성녀의 사람입니까?”상대가 충용 후작가 호위들과 똑 같은 의복을 입고 있었기에 온권승이 주저없이 사람을 시켜 끌어내라고 했던 것이다.충용 후작의 호위가 진국공 가문의 넷째 공자에게 부상을 입혔다는 약점만 잡으면 그는 전세를 역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그런데 나서서 온옥지를 응징한 자가 충용 후작이 아니라 아까부터 따분한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온사의 사람이라니!“예,
그 말을 들은 온사는 눈을 질끈 감았다.‘멍청한 줄은 알았지만….’정곡을 찔린 최소택의 표정이 굳어버렸다.그 표정이 그의 마음상태를 여실히 표현해 주고 있었다.입을 다물고 있던 온자월과 온옥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분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그래요! 저 자식이 온사의 처소로 가다가 넷째한테 딱 걸렸어요!”“막내와 혼인한지 얼마되지도 않은 놈이 딴마음을 품었으니까 넷째가 화가 나서 다리를 부러뜨리라고 한 겁니다!”“예, 소택 형님이 제 입으로 인정했습니다. 저는 좋게 말리려고 했는데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오히려 제게 욕설까지 퍼부었죠.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저는 이런 언행이 진국공부와 충용 후작가의 명성에 누가 될까 봐 입단속을 하려고 독을 먹이려 한 겁니다.”온옥지는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모습은 마치 최소택에게 독을 먹이려고 한 결정이 어쩔 수 없는 부득이한 결정이라고 말하는 듯했다.그 말을 들은 최소택은 부아가 치밀어 고함을 질렀다.“허… 허튼소리! 네가 언제 나한테 좋은 말로 말렸어? 내가 언제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했어? 온모가 나랑 혼인했다고 불만을 품고 날 죽이려 한 거잖아!”온옥지의 표정은 무서우리만치 침착했다. 어제의 그 광기 어린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그는 미친 사람처럼 고함을 지르는 최소택을 한참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소택 형님, 왜 인정을 안 하세요? 저는 양가의 체면 때문에 줄곧 얘기를 안 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나눴던 대화를 굳이 제가 사람들 다 있는 곳에서 해야겠어요?”최소택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충용 후작은 온옥지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나도 좀 알고 싶구나. 내 아들이 대체 무슨 소리를 지껄였기에 진국공가와 충용 후작가의 명성을 추락시키는지 말이다.”온자월은 몰래 온옥지에게 눈빛을 보냈다.온옥지는 조용히 고개를 돌리고 상석에 있는 온사를 바라보았다.진국공가 사람들보다 훨씬 존귀한 위치로 올라간 온사를 바라보며 그는 속으로 냉소를 짓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