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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Aвтор: 이제리
최소택은 온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화가 잔뜩 난 채 생트집을 잡으려는 모양이었다.

다시 그의 뒤를 보니, 온모가 겁에 질린 얼굴로 입을 벌려 ‘하지 마’라고 했다. 하지만 최소택을 제지하는 행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온모와 눈을 마주쳤을 때, 그녀는 만족스러운 눈빛이었다.

최소택이 자신을 위해 쉽게 나서는 것에 대해 아주 만족스러운 듯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최소택이 온사의 근처까지 다가오자, 예단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섯째야, 막내야, 길시가 다 되었는데 얼른 와서 성년식 준비를 하지 않고 무엇 하느냐.”

온사는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예단 위에는 단정하게 푸른색 도포를 입은 중년 남자가 맨 앞에 앉아 차가운 얼굴로 그녀들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 진국공 온권승이었다.

아무리 최소택이 그녀를 괴롭히려고 했지만, 이때는 그저 잠시 물러나 있어야 했다.

온사는 얼굴색도 변하지 않고 예단으로 올라갔다.

온모는 예단으로 올라가니 보조개가 들어가 꽃이 핀 듯 예쁜 얼굴로 그녀에게 팔짱을 끼며 친한 척을 했다.

“언니, 옷 꿰매는 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아버지께서 얼마나 오래 기다리셨는데.”

“옷을 꿰매?”

온권승은 온사를 흘끗 보았다.

온사가 말을 하기도 전에 온모는 못 참겠다는 듯 온사가 관복을 잘라버린 일에 대해 얘기하더니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휴, 역시 제가 아직 철이 없어서 그런가 봐요. 둘째 오라버니를 잘 타일렀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언니도 화가 나서 관복을 잘라버리지 않았을 거예요.”

짜증 나 죽겠다. 굳이 이 일로 그녀를 난감하게 해야 했는가?

온사는 이때 한 마디도 하고 싶지 않았다.

몇 초간 온권승이 그녀를 쳐다보도록 내버려뒀지만 짜증이 났다.

“도대체 성년식은 시작하긴 하는 건가요? 아버지랑 막내가 제가 온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제가 알아서 꺼져 드릴게요. 그럴까요?”

온사는 생각지도 못한 폭력적인 말과 함께 짜증 가득한 얼굴로 예쁜 눈썹을 잔뜩 찡그렸다.

이 말을 들은 온모도 순간 멍해졌다.

온사가 이렇게 대담한 행동을 할 줄 상상도 못했다. 언제부터 아버지한테 이런 식으로 말을 했지?

아버지가 진짜 쫓아낼까 봐 무섭지도 않은가?

하지만 온사는 정말 두렵지 않았다.

명나라 모든 여인들에게 성년식은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의식 중 하나였다.

그래서 모든 여인들은 성년이 되는 날을 아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마 전생의 성년식이 온사에게 잊을 수 없는 굴욕을 남겨주었기 때문인지, 예단에 올라서자 마음속 깊은 곳에서 계속 뭐라 말할 수 없는 거부감과 조급함이 느껴졌다.

“필요 없다. 계속 진행하거라.”

온권승은 시선을 거두고 담담히 말했다.

“관복도 없으니 그냥 이렇게 시작하게나. 스스로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니.”

그는 온사가 꺼지겠다고 한 말이 진짜 그런 것이 아니라 그저 도망치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감히 대담하게 그의 앞에서 건방지게 행동했으니, 제대로 벌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 스스로 고생 좀 하고, 체면을 좀 구겨야 나중에도 말을 잘 들을 것이다.

온권승은 이렇게 생각하며 계속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간단한 연설을 통해 손님들에게 감사를 표한 뒤 성년식의 시작을 알렸다.

진국공 부인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온씨 가문에 어머니가 없었기 때문에 온사의 고모, 즉 온권승의 여동생 온아려가 그녀들에게 두관을 씌워주었다.

“아이고, 우리 온모 예쁜 것 좀 봐. 성년식이 끝나면 좋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찾아와서 구혼을 하려나.”

“그저 우리 소택이가 정혼을 일찍 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네. 그것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좋은 복을 다른 사람한테 넘겨주지 않았을 텐데.”

온아려는 뼈가 있는 말을 하고 빙긋 웃으며 온모의 작은 손을 잡고 혼잣말을 했다. 옆에 있던 온사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아래에 있던 사람이 들으면 누가 이 말의 뜻을 모르겠는가?

온아려의 아들이 누구던가?

바로 충용후 저택의 최소택이다.

모두가 잘 알듯, 최소택과 온사는 어렸을 때부터 가장 친한 친구였고, 몇 년 전 이미 정혼을 했다.

온아려가 말한 정혼을 일찍 했다는 얘기는 온사를 가리키며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예전엔 온사가 이렇게 악독한 줄 몰랐다는 거지.”

“자기 여동생한테까지 질투를 하다니, 마음이 정말 옹졸하구나.”

“예전에는 집에서 횡포를 부리며 막내 아가씨를 자주 괴롭히고, 물에 빠뜨린 적도 있다고 들었소.”

“어린 나이에 아주 악독하네!”

“이제라도 진면모를 알았으니, 충용후 저택 사람들은 다들 후회하겠어.”

“그렇겠지, 방금 충용후 부인이 한 말 못 들었소? 이제 애초에 온사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그저 진작 파혼하지 않은 것이 한스럽겠지.”

“……”

온모는 수줍고 민망하다는 듯 말했다.

“고모, 그런 말씀 마세요. 사실 저는 계속 소택 오라버니를 친 오라버니처럼 대했는 걸요. 비록 제멋대로이긴 하지만 언니도 계속 소택 오라버니 좋아하고 있었어요. 언니가 소택 오라버니를 위해 자신을 바꾸려 할 것이니, 이제 앞으로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예요.”

듣고 있자니, 아주 이해심이 깊기도 하다.

“다섯째야 네 동생이 하는 말 좀 들어보거라. 얼마나 착한 아이더냐? 넌 매일 집에서 할 일 없으면 동생한테 좀 배워보지 그러느냐?”

온아려의 말에 온사의 마음에는 충격이 일었다.

온아려는 분명 사람들 앞에서 그녀를 괴롭히고 싶어 했다.

하지만 온사는 그저 재밌었다.

“됐네, 시간 낭비하지 말게.”

온권승은 온아려가 불만스러워하는 것을 깨달았지만 너무 지나친 행동을 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늘 오신 손님이 많은데, 진국공 저택의 체면을 구길 수는 없었다.

그래도 온아려는 어떤 것이 중요하고 아닌지 조금은 구분할 줄 알아서,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말을 안 했을 뿐이지, 성년식이 진행되는 동안 한 작은 행동들은 적지 않았다.

두관을 씌워주는 순서도 원래 규율에 따르면 온사의 머리를 먼저 빗겨주고 두관을 씌워준 뒤, 온모에게 해주었어야 했다.

하지만 온아려는 온사를 좋아하지 않아 온모의 머리를 먼저 빗겨주고 두관을 씌워주었다.

축사를 읽는 동안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고, 축사 몇십 문장을 읽는 내내 사랑이 가득한 말투였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온모가 자신의 친 딸, 아니, 진짜 아들 며느리라도 되는 줄 알 것이다.

온사의 차례가 되니 완전히 다른 태도였다.

냉담함을 감출 수 없었고, 축사마저 대충 아무렇게나 지어내 ‘평안하고 즐겁게’라며 간단하게 끝내버렸다.

아래에 있던 손님들도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누가 이렇게 악독한 사람을 축복하고 싶겠는가?

“두관 수여식은 마무리하겠습니다. 성년은 방으로 돌아가 관복을 착용하고……”

“관복이 없으니 그냥 넘어가고 다음 차례부터 계속하게나.”

온권승은 차가운 말투로 낭독 인사를 잘랐다.

낭독하던 사람은 순간 멍해졌지만 결국 눈치껏 진국공의 말을 따르며 관복을 갈아입는 관복례를 건너뛰고 바로 다음 차례로 넘어가 화복례를 시작했다.

오늘 진국공의 식을 위해 많은 손님이 왔다.

그중에는 윗사람 몇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고위 관리들도 있었다.

직접 오지는 않았지만, 가족을 보내 화복례에 그녀들에게 축복을 위한 꽃 한 송이라도 보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래에서 손에 꽃을 들고 있던 많은 사람들 중 아무도 일어서지 않았다.

그들은 토론을 하고 있었다.

“왜 관복을 갈아입으라고 하지 않지?”

“진국공 말씀 못 들었어? 아가씨들 관복을 준비하지 않았다는데 어떻게 갈아입어?”

“준비를 안 하긴, 내가 듣기로는 하루 전에 막내 아가씨 관복을 다섯째 아가씨가 망가뜨렸대.”

“역시 그랬구먼!”

“다섯째 아가씨 진짜 악랄하네, 이렇게 중요한 날 자기 동생의 관복을 망가뜨리다니.”

“그럼 다섯째 아가씨는 왜 관복을 입지 않으셨지?”

“말할 필요도 없지. 분명 진국공 어르신이 벌을 주신 거야.”

“진짜 너무하다. 이런 사람한테는 축복 꽃을 줄 가치도 없어!”

“여러분, 드리려면 다들 다섯째 아가씨 말고 막내 아가씨께 드립시다.”

“그럽시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화를 내며 성년을 축복하기 위해 손에 들고 있던 꽃을 모두 온모의 앞에 올려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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