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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화 : 이규현(2)

Author: 기봉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6 19:06:52

채영의 몸이 문에서 천천히 무너지듯 기울었다.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쓰러지기 직전 그녀를 부축했다.

그녀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평소 반듯하던 머리칼도 조금 흐트러져 있었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늘 나보다 먼저 일어나 머리카락 한 올까지 정돈하던 사람이었다.

채영은 술을 마셔도 늘 적당한 선에서 멈췄다.

와인 반병. 혹은 위스키 두세 잔 정도.

술에 취한 나를 데리고 돌아온 건 언제나 채영이었다.

도색을 이어가며 마지막 말을 몇 번이나 되새겼다.

고마웠다고, 사랑했다고.

이제는 내 힘으로 살아가 보겠다고.

그런데 채영을 마주하자, 말이 나오지 않았다.

손에 감긴 붕대가 보였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작업하고 있었구나.”

딸꾹질이 이어졌다.

나는 눈을 깜빡였다.

채영의 입에서 딸꾹질 소리를 듣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그 순간, 유진의 말이 떠올랐다.

ㅡ꼴 보기 싫으니까 둘 다 꺼지래요.

그래. 지금 눈앞의 모습이 유진이 했던 말의 방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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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자친구의 조카를 사랑했다.   76화 : 정원 밖으로. 정원 안으로

    76화 : 정원 밖으로. 정원 안으로유진에게서는 끝내 연락이 오지 않았다.나는 모텔 침대 끝에 걸터앉은 채 휴대폰 화면만 내려다보고 있었다.아무 메시지도 없었다.전화도 없었다.시간만 계속 지나가고 있었다.좁은 모텔방 안은 싸구려 방향제 냄새로 가득했다.분홍빛 형광등은 이질적이었다.그래, 채영의 집과는 전혀 다른 공간이었다.난 스스로를 계속 납득시키고 있었다.괜찮다.잠깐 꼬인 것뿐이다.유진 씨도 지금 정신이 없을 거다.곧 연락이 올 거다.나는 그렇게 계속 스스로를 설득했다.침대 옆에 내려뒀던 피규어 상자를 천천히 끌어왔다.불안했다.상자를 열었다.아직 덜 마른 도료 냄새가 희미하게 올라왔다.나는 조심스럽게 피규어를 꺼내 모텔 방 안 작은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도색이 번져 있었다.정말 조금. 하지만 분명히 번져 있었다.“…하.”상자 안에서 흔들리며 묻어난 거였다.나는 급하게 수정 도구를 찾으려다 멈췄다.없다.지금 이곳은 작업실이 아니다.조명도 도구도 없다.수정할 수 없었다.나는 한동안 피규어만 멍하니 바라봤다.“…유진 씨.”입술 사이로 작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그 순간이었다.후회가 스쳤다.ㅡ가서 완성해요.“그냥 그때 바로 떠날걸.”채영을 향해, 그녀를 향해 외치기 전에,유진 씨 손을 잡고 바로 나왔어야 했다.입술을 천천히 깨물었다.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아니, 그래도 의미는 있었잖아.”한 번은 이겼다.적어도 마지막 순간 채영을 내려다봤다.그 기억 하나만으로도 이 답답함 속에서 숨이 쉬어지는 기분이었다.나는 다시 휴대폰 화면을 켰다.여전히 연락은 없었다.“회사에 출근했다고… 왜…”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유진 씨가 왜 다시 회사에 갔지.”왜.머릿속이 점점 더 복잡하게 엉키기 시작했다.나는 얼굴을 쓸어내리다가 문득 주머니 안쪽에 손을 넣었다.딱딱한 종이 감촉이 손끝에 걸렸다.사채업자 명함이었다.나는 멍하니 그걸 내려다봤다.그리고 불현듯 어떤 생각 하나가 머릿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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