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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위독한 태상황

원경능은 현실과 꿈이 구분되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달달 떨리는 손으로 약상자를 침대 밑에 밀어 넣었다. 그런데 그 순간, 침대 밑에서 약상자가 사라져버렸다.

원경능은 삼 초 동안 숨을 내쉴 수가 없었다. 손을 뻗어 침대 밑을 더듬어보았지만 정말 아무것도 없다.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천천히 침대위로 올라가 숨을 거칠게 몰아 쉬었다.

최근에 발생한 사건들은 그녀가 정상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 그녀의 모든 지식을 동원해도 도무지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인간은 미지의 일에 공포를 느끼기 마련, 원경능은 정말 두려움을 느꼈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원경능은 고개를 들기도 전에, 냉기가 주위를 맴돌고 있음을 직감하였다. 두피로부터 고통이 느껴지더니, 그녀는 침대에서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졌다.

“본왕 앞에서 죽은 척하는 것이냐? 지금 당장 죽던지, 아니면 기어 일어나서 본왕과 함께 궁으로 가야 한다.”

차가운 목소리가 그녀의 머리꼭대기에서 울려 퍼졌다. 초왕은 다시 원경능을 거칠게 뒤집었다. 등이 바닥에 닿자 그녀는 고통에 온몸을 떨었다. 그러고는 곧장 억센 남자의 손이 그녀의 턱을 잡았다. 턱을 으스러뜨릴 것 같은 힘이었다.

원경능의 고통스러운 눈빛이 초왕의 광기 어린 눈에 들어오자 냉혹하고도 난폭한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혐오와 멸시가 짙게 드리워졌다.

“본왕이 경고하는데, 다른 수작 부릴 생각은 하지 말거라. 만일 또 태후마마 앞에서 허튼 소리를 지껄인다면 너를 살려 두지 않을 것이다.”

원경능은 너무도 아픈 나머지 화가 치밀었다. 그들에게는 인간의 목숨이 이렇게나 하찮은 것인가? 심한 부상을 입었는데도 도무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원경능은 젖 먹던 힘까지 모아 우문호의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무릎으로 몸을 지탱한 뒤 머리로 있는 힘껏 그의 얼굴을 들이받았다. 죽기 전 마지막 일격과도 같은 행동이었다.

우문호는 원경능이 반격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더더욱 머리로 들이 받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는지라 피하지 못했다. 원경능의 일격에 그는 눈앞이 어질하면서 한동안 머리가 띵했다.

원경능은 기절하기 직전이었으나 이를 악물고 억지로 버텼다. 우문호가 정신을 되찾기 전에 무릎으로 그의 손등을 깔았다. 원경능 입가에서 새빨간 피가 흘러 우문호의 얼굴에 뚝뚝 떨어졌다. 그녀는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미친듯이 외쳤다.

“사람을 너무 막다른 곳까지 몰아넣지 마세요. 사람을 업신여겨도 분수가 있지요!”

우문호는 정신을 차리고 그녀의 뺨을 갈겼다. 원경능은 고개가 꺾이는 동시에 눈앞이 새까매졌다. 이때 어렴풋하게 기씨 어멈이 빠른 걸음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왕야, 용서해주십시오!”

그러나 우문호는 또 한번 뺨을 갈겼고 마침내 격분한 상태에서 벗어났다. 그리고는 원경능 등에 있는 핏자국을 발견하였다. 우문호는 싸늘하게 말했다.

“상처를 처치하고 의복을 갈아 입히거라. 상처를 꽉 조여 매고 자금탕(紫金汤)을 먹여, 반나절은 버틸 수 있게 말이다.”

원경능은 그의 금실로 수놓은 검은색 비단 신발이 한발자국씩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온몸에 억지로 꽉 주고 있던 힘을 서서히 풀었다.

기씨 어멈과 녹아는 원경능에게 다가가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두 사람 모두 아무 말 않고 그녀가 침상에 엎드릴 수 있도록 부축하였다. 원경능의 옷을 가위로 자른 두 사람은 모두 질겁했다. 녹아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인정사정없이 곤장 서른 대를 때렸네요……”

“빨리 뜨거운 물과 약 가루를 가져다오. 자금탕도 끓여야 한다!”

기씨 어멈은 침착하게 분부하였다. 원경능은 온몸이 욱신거렸다. 특히 옷을 자른 뒤 상처와 붙어있던 속옷을 천천히 떼어낼 때, 그녀는 온몸이 떨려왔다.

그러나 원경능은 신음 한번 내지 않았다. 목구멍은 타는 듯이 말라왔고 단 한 마디도 내뱉을 수 없었다. 상처를 처치하고 핏물을 닦아낸 후 약 가루를 발랐다. 원경능은 이 모든 것을 묵묵히 참았다.

마치 악몽을 꾸는 것 같았다.

깨어나면 곧 괜찮을 것이다.

녹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멈, 정말 자금탕을 마시게 할건가요?”

“마셔야지, 마시지 않는다면 목숨조차 부지할 수 없을 것이야.”

기씨 어멈은 대답하고 나서 탄식하였다.

“하지만 자금탕은….”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빨리 왕비를 일으켜라.”

원경능은 종이 인형처럼 녹아의 부축을 받아 몸을 일으켰다. 입안에 따뜻하고 아주 쓴 맛의 액체가 흘러 들었다. 하지만 삼킬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왕비, 마십시오. 마시면 괜찮아 지실 겁니다.”

기씨 어멈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원경능은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급급했으므로 억지로 단숨에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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