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저 녀석이 너무 오만하고 세상을 몰라서 그래. 됐어. 우리도 얼른 가자. 일단 이홍만부터 어떻게든 대처할 방법을 생각해야 해.”김미원이 진지하게 말하자 류서연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천우 씨, 먼저 갈게요! 이홍만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그래요. 잘 가요.”예천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가 도움을 거절하는데 억지로 도와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그래도 정말 필요하다면 언제든 나설 생각이었고 무엇보다 이런 착한 여자가 쓰레기 같은 인간에게 망가지는 건 도저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그리고 저 무조건 이홍만을 거절할 거예요. 절대 타협하지 않아요. 그런데 이홍만이 저를 찾아냈던 것처럼 언젠가 천우 씨한테도 보복할 수 있으니까 꼭 조심해요. 알겠죠?”류서연은 떠나기 전 다시 한번 당부하자 예천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그러면 제 번호라도 받아 두지 그래요?”류서연은 잠시 멈칫하더니 바로 고개를 끄덕이고 예천우가 말해 준 번호를 휴대폰에 눌러 바로 전화를 걸었다.“이게 제 번호에요. 만약 이홍만이 천우 씨한테 무슨 짓을 하려고 하면 꼭 연락해요. 제가 할 수 있는 한 힘껏 도울게.”“그럴 일 없어요. 걔가 감히 나한테 손도 못 댈 거예요. 오히려 서연 씨야말로 혹시라도 진짜 감당 안 되는 상황이 오면 바로 연락해요. 이홍만 따위는 전 눈곱만큼도 신경 안 써요.”예천우가 당당하게 말했다.“정말 무식한 자식이야!”김미원은 예천우의 말을 듣고 속이 터지는 듯했다.‘이 녀석은 자기가 지금 누구를 상대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이렇게 건방지게 굴고 있어...’“네. 알겠어요.”류서연은 더 이상 김미원이 예천우에게 뭐라고 하는 걸 원치 않았기에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하지만 내심으로는 예천우의 자신감이 그저 허세라고 생각할 뿐 그 말에 전혀 신뢰를 두지 않았다.두 사람이 멀어지는 걸 바라보며 예천우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뭐 어차피 이홍만이 하루 정도는
“예천우 씨였군요!”류서연은 상대가 누구인지 제대로 확인하자 반가움이 얼굴에 번져 나왔다.“그래요. 접니다. 서연 씨는 이렇게 급하게 어디 가는 길인가요?”예천우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저, 그게...”류서연은 순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망설이다가 옆에 서 있는 진가인을 보았다. 너무 예쁜 여자라서 저절로 물었다.“혹시 이분은?”“제 동생입니다. 진가인이라고 해요.”예천우는 담담하게 대답했고 진가인은 그 말을 듣고 표정이 미묘하게 시무룩해졌다.“아, 동생이셨군요. 안녕하세요!”류서연은 밝게 인사하며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에서 작은 기쁨이 피어나는 걸 느꼈다.정작 본인도 그 이유를 잘 몰랐지만 진가인도 예의를 지켜 조용히 인사를 건넸다.“안녕하세요.”인사를 마치자마자 류서연이 곧장 물었다.“혹시 식사는 하셨어요? 아직 안 드셨으면 제가 한턱 낼게요. 전에 도와주셨던 걸 꼭 보답하고 싶어서요.”“괜찮아요. 저희는 이미 먹었어요.”예천우가 부드럽게 대답했다.그때 김미원이 다급히 뒤따라오며 서연을 불렀다.“서연아,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빨리 선글라스랑 마스크 써!”류서연 정도의 유명세면 어디서든 금방 들킬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한 번이라도 얼굴이 알려지면 귀찮은 일들이 따라오기 마련이었다.류서연은 순순히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챙겨 썼다.김미원은 이때 비로소 예천우와 진가인을 흘끗 보았다.두 사람 다 범상치 않은 외모였지만 공공연히 아는 사이는 아니었기에 인사만 가볍게 하고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류서연이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쓴 뒤 다시 물었다.“그럼 지금 어디 가세요? 필요하면 제가 차 태워드릴게요.”“아니에요. 저희도 차 가지고 왔어요.”예천우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오히려 서연 씨야말로 아까는 왜 그렇게 급하게 뛰어나오던 거예요?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아... 정말 말도 마세요.”류서연은 한숨 섞인 얼굴로 털어놓기 시작했다.“아까 비행기에서 그 남자 있잖아요. 그 사람이 또 찾아와서 절 협박하고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이홍만은 무표정하게 입을 열었다.“류서연 씨, 생각은 정리됐나요? 제 여자 친구가 되겠다고만 하면 제가 가진 모든 인맥과 자원을 쏟아부어 서연 씨를 톱스타로 만들어 줄게요. 서연 씨가 원한다면 음악계뿐 아니라 영화계까지 이번 황 감독 작품의 여주인공 자리도 무조건 따낼 수 있게 해줄 수 있어요.”이홍만이 가진 힘과 류서연이 가진 재능만 합쳐지면 못 해낼 일이 없었다.이홍만이 보기에는 류서연이 딱 한 가지 부족한 건 제대로 키워줄 대형 기획사가 없는 점이었다.‘그런데 이 여자는 세상 물정도 모르고 3년 계약 끝나자마자 듣도 보도 못한 작은 회사에 들어간다니... 이 좋은 재능과 기회를 혼자 다 버릴 셈인가?’이홍만은 속으로 혀를 찼다.‘심지어 전 소속사도 멍청하다 못해 3년짜리 단기 계약을 받아주다니.’사실 류서연은 더 고민할 것도 없었다.아까 이홍만이 화장실 다녀올 때 김미원에게 분명히 말했다.“난 이런 일로 절대 흔들리지 않을 거니까 언니도 더는 강요하지 마.”그만큼 그녀의 뜻은 단호하고 분명했다.만약 그럴 생각이었으면 애초에 피천 엔터에 들어올 리도 없었다.그녀가 그 작은 신생 기획사에 들어간 건 오로지 더 자유롭고 안전한 환경에서 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류서연이 침묵하자 이홍만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이제껏 그가 눈여겨본 여자들은 반드시 자기 여자로 만들 수 있었기에 자신감도 넘쳤다.“가만이 있어보니... 별로 제 제안이 마음에 안 드나 보네요?”이홍만이 낮은 목소리로 쏘아붙이자 류서연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제가 싫어서가 아니에요. 저한테는 이미 남자 친구가 있습니다. 아까 비행기에서도 보셨잖아요.”“남자친구라고요? 지금껏 서연 씨가 누구랑 사귄다는 소문 한 번도 못 들었는데요? 그 남자 이름이 뭔데요?”이홍만은 전혀 믿지 못하겠다는 투로 물었다.특히 비행기에서 봤던 그 남자는 내릴 때 혼자 따로 가버리는 걸 직접 봤기 때문에 더 의심스러웠다.“제 남자 친구는 연예계 쪽 사람이 아니라 말해도
“닥쳐. 도련님께서 너보고 당장 나가라고 했잖아!”담양은 단박에 진가인이 김서윤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단번에 눈치챘다. 바로 그녀의 뺨을 세차게 한 번 후려치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선우야, 뭐 하고 있어? 당장 이년을 데리고 나가. 절대 가인 씨랑 도련님 앞에서 얼씬도 못 하게 해.”“알겠어!”홍선우는 눈치껏 더 미적거릴 것도 없이 아들과 함께 서둘러 김서윤을 질질 끌다시피 밖으로 내보냈다.겨우 이 분위기를 정리해 겨우 다시 잡은 국면인데 김서윤이라는 여자가 또 일을 망치게 둘 수는 없었다.문제가 싹 정리되자 담양이 예천우와 진가인을 향해 정중히 인사했다.“도련님, 가인 씨, 더 필요한 일 없으시면 전 먼저 나가보겠습니다.”“그래. 할 일 마저 해. 내가 부탁한 일은 절대로 실수 없이 잘 처리해.”예천우는 단호하게 당부했다.이번에 온 이유 자체가 임연 그룹 일 때문이니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도련님, 반드시 잘 처리하겠습니다.”담양은 약속하듯 고개를 숙이고는 조용히 자리를 떴다.복도에 조금 나와 보니 멀리서 봐도 김서윤의 얼굴은 이미 퉁퉁 붓고 난장판이 된 걸 한눈에 볼 수 있었다.사실 홍선우는 식당 오기 전부터 김서윤을 한차례 혼쭐내놓았고 아들까지 같이 실컷 두들겨놨던 터였다.“됐어. 여기서는 더 이상 손대지 마.”담양이 다가가 냉정하게 제지했다.“알았어. 그러면 돌아가서 혼낼게.”홍선우가 황급히 대답했다.“잠깐.”담양은 고개를 돌려 김서윤을 바라보았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김서윤이지? 앞으로 홍선우와 홍정수 그리고 우리 일에 끼어들지 마. 특히 가인 씨 주변에는 얼씬도 하지 말고 내 앞에 다시 나타나지도 마. 지킬 수 있겠어?”김서윤은 눈물을 글썽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성화 그룹만 해도 두렵고 담 대표는 전설 같은 존재인데 그 뒤에 예천우까지 있으니 다시는 넘볼 엄두도 못 냈다.“그래. 이번만은 넘어가 줄 테니 꼭 약속 지켜. 안 그러면 우리가 어떤 사람들
홍선우는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예 도련님... 혹시 제 아들은...”그러자 예천우는 덤덤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난 저 녀석 목숨에는 관심 없어. 처벌도 굳이 할 생각 없어. 내 요구는 단 하나야. 네가 앞으로 매년 400억씩 빈곤한 지역 어린이 지원 사업에 투자해. 그걸 5년 동안만 꾸준히 해주면 돼. 할 수 있겠어?”홍선우는 순간 얼이 빠졌다.‘이게 끝이라고? 이 정도 요구라면 당장 지금 2,000억을 내놓으라 해도 하나도 아깝지 않을 텐데...’더구나 예천우는 돈을 한 푼도 받지 않았다.그 순간 홍선우의 마음엔 존경이 피어올랐다.‘이래서 이분이 진짜 대인배이고 나라를 움직이는 인물이구나...’예천우가 잠시 그의 표정을 살폈다.“왜. 못 하겠어?”홍선우는 화들짝 정신을 차리며 급히 말했다.“아닙니다. 당연히 하겠습니다! 이런 일이라면 5년이 아니라 10년도 할 수 있습니다. 원래도 이런 사업을 계속하고 있었으니까요.”“그러면 더 좋지.”예천우는 느긋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또 한 가지 더 있어.”“예 도련님, 무엇이든 말씀해 주세요.”홍선우는 5년이 10년으로 늘어났다는 사실조차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았다.오히려 그동안의 선행이 오늘을 구했다는 걸 실감하며 역시 세상에 좋은 일 하면 언젠가 반드시 보답받는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다독였다.“네 아들 말인데... 이제부터 잘 단속해. 가문의 힘 믿고 제멋대로 구는 버릇 계속 두면 언젠가 진짜 큰코다칠 거야.”예천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홍선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짐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예 도련님, 말씀 안 하셨어도 오늘 집에 가면 혼쭐을 낼 겁니다.이번엔 1년간 집에서 외출 금지해서 제대로 사람 만들어 놓겠습니다.”“좋아. 그 정도면 됐어. 이 일은 여기서 끝내도록 하지.”예천우는 홍선우가 들어와 보인 태도에 나름 만족했기에 더는 문제 삼지 않았다.“정말 감사합니다!”홍선우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으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예... 예 도련님께서 뭐라고 하셔?”홍선우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담양에게 물었다.그러자 담양은 냉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뭐라고 하긴. 이번에 너를 위해 변명이라도 했다가 도련님한테 바로 한 소리 들을 뻔했지. 그래도 도련님께서 마지막으로 한 번만 기회를 주시겠다고 하셨어.”“정말이야? 담 대표, 정말 고마워. 진짜 고마워...”홍선우는 감격에 겨워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성화 그룹의 2대 주주이자 실질적 총괄이었다. 가장 큰 주주는 그의 형인 홍성호였고 자산만 해도 수십조였지만 예천우 앞에서는 그런 지위가 아무 의미 없었다.“아직 좋아하기는 일러. 도련님께서 겨우 기회를 주신 거지 용서를 하신 건 아니야.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모든 게 달려 있으니 내 얼굴에 먹칠하지 않도록 해.”담양은 무겁게 말했다.“걱정하지 마. 무슨 대가라도 기꺼이 치를게.”홍선우는 힘주어 대답했다.“알겠어. 그럼 따라와.”담양이 앞장서 안으로 들어가자 홍선우가 서둘러 뒤따랐고 마지막으로 홍정수와 김서윤도 따라붙었다.곧장 룸 앞에 도착하자 담양은 문을 가볍게 두드린 뒤 세 사람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섰다.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홍선우 일행은 곧바로 예천우와 진가인을 발견했고 잽싸게 다가가 공손하게 인사했다.“예 도련님, 가인 씨, 안녕하세요!”홍정수와 김서윤도 허둥지둥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너희 둘... 당장 무릎 꿇어!”홍선우가 매섭게 소리치자 홍정수와 김서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아무 말 없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예 도련님, 제 아들이 무지해서 큰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정말 죽어 마땅한 죄를 지었습니다. 이렇게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홍선우는 허리를 깊이 숙이고 최대한 정중하게 사과했다.성화 그룹을 일구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지금까지 홍선우는 이렇게까지 낮은 자세로 누구에게 빌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하지만 예천우와 같은 인물 앞에서는 자존심이고 뭐고 아무 의미가 없었다.예천우는 별다른 말 없이 천천히 집게로 킹크랩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