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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당신 뭐야! 이거 안 놔! 아프잖아!”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치던 강희연이지만 고개를 돌려 한지훈과 눈을 마주친 순간, 벼락에라도 맞은 듯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뭐야, 이 남자... 이 눈빛... 정말 사람이 맞긴 해?’

한지훈의 온몸에서 풍기는 무거운 살기가 그녀를 삼켜버릴 듯해 숨이 턱 막혔다.

겁에 질린 강희연이 마른 침을 꿀꺽 삼킨 순간, 한지훈은 거칠게 그녀의 손을 놓아버렸고 그 충격에 강희연은 비틀거리다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그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린 강우연 역시 그대로 한지훈의 품에 쓰러지고 말았다.

강우연을 꼭 끌어안은 한지훈이 다급하게 물었다.

“우연아, 정신 좀 차려봐. 우연아!”

한지훈의 품에 안긴 강우연은 쇼크가 온 건지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상처에서 흐른 피로 붉게 물든 이마와 어깨, 그리고 벌써 감염이 시작된 건지 불덩이처럼 타오르는 이마...

한지훈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젠장...”

마음속 걱정과 다급함은 곧바로 방금 전 강우연에게 물을 끼얹고 모욕의 말을 던지던 강희연에게로 향했다. 한지훈이 바로 일어서 그녀를 응징하려던 그때, 강우연의 희고 가는 손가락이 그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숨소리처럼 미약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안 돼요. 그만... 이제 그만해요. 나 이만 돌아가고 싶어요. 우리 고운이 얼굴도 얼른 보고 싶고요. 그러니까 우리 이제 집에 가요, 네?”

강우연의 진심어린 말에 한지훈도 분노를 억눌렀다.

“그래, 우리 집에 가자.”

동시에 강우연을 번쩍 안아든 한지훈이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기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강희연이 찢어질 듯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거기서! 감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네가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는 그런 곳인 줄 알아! 당장 잡아! 잡으라고!”

강희연의 외침에 집을 지키던 경호원들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하지만 한지훈의 차가운 눈빛을 마주한 순간 거구의 장정들 역시 그 자리에 얼어붙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의 앞을 막아선 남자가 끔찍한 염라대왕처럼 느껴지며 끝없는 두려움이 그들의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내 앞을 막는 자는 그게 누구든 죽인다. 살고 싶으면 까불지 말고 꺼지는 게 좋을 거야.”

한편, 한지훈의 팔을 꽉 움겨쥔 채 눈을 감은 강우연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피어올랐다.

5년만에 처음 느껴보는 호의에 마음속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그녀는 힘겹게 눈을 떠 한지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한없이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 얼굴을 바라보던 강우연은 어렴풋이 앞으로 무슨 일이든 그녀를 안은 이 남자와 함께 하게 되리라는 걸 확신이 어렴풋이 밀려왔다.

겁에 질린 경호원들은 그저 움찔거릴 뿐,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그렇게 강우연과 한지훈은 여유롭게 차에 탑승해 순식간에 저택을 떠났다.

백미러로 빠르게 멀어져가는 저택을 힐끗 바라보던 한지훈이 이를 악물었다.

‘오늘 우연이 덕분에 살아남은 줄 알아. 성질 같아선 정말 다 엎어버리고 싶은데 참고 또 참는 거니까...’

한편, 한지훈이 저택을 떠나고 한참이 지나서야 강희연을 비롯한 경호원들은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가장 먼저 상황을 인지한 강희연이 맨발로 뛰쳐나와 멀어져가는 지프차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강우연! 이 천박한 계집애! 감히 저딴 남자를 집으로 데리고 와! 두고 봐! 내가 너 죽여버릴 거니까 두고 보라고!”

있는 기운 없는 기운 다 부어넣은 강희연은 문득 한지훈의 정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까 그 남자...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어디서 봤더라?’

같은 시각, 한지훈과 강우연은 낭월 산장에 도착했다. 곧이어 의료진들의 치료가 이어지고 상처 처리에 진통제가 들어가자 고통으로 일그러진 강우연의 얼굴이 그제야 조금 편안해졌다.

뭐가 그렇게 불안한 지 어린 아이처럼 잔뜩 웅크린 채 잠이 든 강우연을 보고 있자니 한지훈의 눈시울이 저도 모르게 붉어졌다.

5년 전 마지막으로 봤던 강우연은 한없이 착하고 친절했지만 눈빛과 몸짓에서 당당함과 결연함이 느껴지던 여자였다.

그런데...

그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기에 이렇게까지 두려움에 떠는 걸까 싶어 또다시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우연아, 이제 내가 돌아왔으니까 앞으로 그 누구도 너랑 우리 고운이 괴롭힐 수 없을 거야. 내가 목숨 걸고 너희 두 사람 지킬 거니까.”

강우연의 볼을 살짝 어루만진 한지훈이 거실을 나섰다.

이때 용삼이 조심스레 다가와 말을 건넸다.

“사령관님, 김태우는 비밀의 방에 가둬두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이에 방금 전 애틋한 눈으로 강우연을 바라보던 그 남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무서운 표정으로 변한 한지훈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사지의 힘줄이 끊어진 김태우는 말 그대로 더 이상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온몸에 엉겨붙은 피, 상처에서 풍겨오는 악취, 출혈과다로 쇼크가 시작된 건지 움찔거리는 꼴이 마치 덫에 잡힌 짐승과도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의 입에서는 한지훈을 향한 저주를 뱉어내고 있었다.

“이 개자식들!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딴 짓을. 우리 아버지가 너희들을 가만히 내버려둘 것 같아! 사지를 찢어 들개 먹이로 던져버릴 거야! 무덤 하나 없이 처참하게 죽어버릴 거라고!”

하지만 끔찍한 저주의 말에도 한지훈의 표정은 덤덤하기만 했다.

“남의 귀한 딸을 죽이려고 했었지? 그딴 짓을 저지르고도 무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야? 고통스럽지? 하지만 이제 겨우 시작이야. 우리 고운이가... 그 작은 몸으로 견뎌냈을 고통들 내가 전부 돌려줄 거니까 각오해.”

그리고 고개를 돌려 용삼에게 분부했다.

“신의님께 부탁드려서 최고의 약을 쓰라고 해. 상처가 아물면 다시 찌를 거야. 고운이랑 우연이가 느꼈던 고통... 이 한번으로 끝낼 순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잠시 후, 도착한 하시윤이 김태우에게 약을 발라주자 상처는 신기하게도 바로 아물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이어 한지훈의 비수가 다시 김태우의 팔과 다리를 꿰뚫었다.

“으아아악!”

도저히 사람의 것이라 믿기지 않는 처참한 비명이 산장을 가득채웠다.

“이 악마 같은 자식!”

지옥이 정말 있다면 이런 곳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극심한 고통, 지금까지 건방진 태도로 일관하던 김태우가 드디어 애원하기 시작했다.

“내... 내가 잘못했어. 내가 잘못했으니까 제발 살려줘.”

하지만 그의 애원에 한지훈은 대답 조차 하지 않았고... 용삼은 명령대로 치료를 하고 다시 상처를 내는 작업을 반복했다.

“으아악! 죽여! 차라리 죽이라고!”

김태우가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차라리 정신을 잃었으면, 아니 차라리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통은 끝없이 그의 신경을 자극했다.

그리고 하시윤의 깔끔한 집도하에 한지훈은 김태우의 몸에서 뼈 네 개를 꺼냈다.

“그 사고로 우리 딸 뼈가 네 대나 부러졌다지... 그 대가라고 생각해.”

이를 악문 한지훈이 다시 응징을 이어가려던 그때, 용육이 지하실로 들어왔다.

“사령관님, 송호문 청장이 만남을 요청해 왔는데요.”

송호문? 경찰청 청장이라고 했었나?

미간을 찌푸리던 한지훈이 대답했다,

“들어오라고 해.”

한편, 저택에 발을 들인 송호문은 물씬 느껴지는 피비린내에 한번, 안내를 받아 도착한 지하실에 널브러져 있는 김태우의 처참한 몰골에 두 번 움찔하고 만다.

‘저 사람은... 김태우? 금조그룹 회장 외동아들이잖아. 세상에...’

걱정스러운 마음에 송호문이 한 마디 건넸다.

“아...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을까요? 김태우 아버지 김정필은 S시를 꽉 잡고 있는 인물입니다. 재계는 물론이고 조폭들과도 연관이 아주 깊죠.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 이런 꼴을 당한 걸 알면... 절대 곱게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 경고에도 한지훈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니, 차가운 얼굴로 돌아선 한지훈이 송호문의 모습을 쭉 훑어보았다.

“뭡니까? 지금 저 자식 편이라도 드는 겁니까?”

쿵!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에 송호문은 아차 싶은 마음에 다급하게 해명했다.

“아, 아닙니다. 전 그저 한 선생님이 걱정돼서요. 겨우 이 정도 병력으로 금조그룹과 연관된 조폭들을 상대할 수 있을지... 게다가...”

“걱정은 고맙습니다만 금조그룹 같은 기업이 트럭째로 덤벼도 두렵지 않습니다.”

이 말을 마지막으로 한지훈은 단호하게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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