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염한 여자가 눈앞에서 자꾸 어슬렁거리고 있으니 한지훈은 코끝이 간지러운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기가 자꾸만 후각을 자극했다.대충 얼굴을 수습한 뒤에 한이연은 머리를 만지기 시작했다. 역시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답게 30분도 안 되어 꽤 괜찮은 스타일링이 완성되었다. 평소의 모습이랑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동화책에서 금방 걸어 나온 왕자님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의 모습이었다.원래도 미남이었지만 평소에 관리에 신경 쓰지 않아서 조금 날카로운 인상이었는데 아티스트의 손을 거쳐 부드러운 이미지가 완성되었다.“우연이가 남자 보는 눈이 있네요. 정말 멋져요.”한이연은 팔짱을 끼고는 한지훈의 뒤에 서서 흐뭇한 얼굴로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며 말했다.“칭찬 고마워요. 본판이 좋아서 그래요.”“아이고… 말이나 못하면. 의상실은 저쪽이에요. 제가 같이 들어가서 어울리는 옷 몇 벌 골라드릴게요.”한이연은 그의 어깨를 툭 치고는 앞장서서 의상실로 향했다.한지훈은 그녀의 뒤를 따르며 뒷모습을 빤히 주시했다. 마음속에서 잔물결이 일고 있었다. 아무리 그라도 이 여자의 매력을 완전히 거부할 수 없었다.커다란 의상실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유명 브랜드 의류가 걸려 있었다. 대부분이 해외 장인들이 수제작으로 만든 한정판 작품이었다. 아무거나 집어도 일반인의 일년 수입에 맞먹을 가격이었다.사실 한이연은 아무나 자신의 의상실에 들이지 않았다. 이 안에 있는 옷들은 그녀가 직접 애정하는 소장품들로 그 가치가 천문학적 숫자였다. 정말 친한 단골손님을 제외하고는 의상실에 들어온 손님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하지만 한지훈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이건 어때요? 한번 입어봐요.”한이연은 무심하게 셔츠 하나를 골라 한지훈에게 건네며 말했다.“사이즈는 알아요?”“내 눈을 믿어요. 한번 보면 사이즈를 알거든요.”그녀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했다.“그래요? 그런 점은 저와 같네요.”한지훈이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옷을
오랜 시간 훈련을 통해 단련된 한지훈의 몸매는 균형 잡힌 근육을 유지하고 있었다. 우락부락한 근육은 아니지만 한지훈만의 독특한 매력이 풍겼다.물론 그건 세상물정 모르는 여자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한이연은 그의 몸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왜 없지? 주군의 정보가 틀렸나?’그녀의 표정을 빤히 쳐다보던 한지훈이 웃으며 말했다.“계속 이렇게 서 있게 할 거예요? 설마 내 몸매 보고 반한 건 아니죠?”한이연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다른 셔츠를 그에게 건넸다.“이거로 갈아입어요. 이게 더 어울릴 것 같네요.”“네? 좀 너무하네요.”한지훈은 싱긋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내 몸까지 보여드렸는데 한이연 씨도 뭔가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요?”한이연은 미간을 찌푸리고 싸늘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되물었다.“지금 장난이시죠?”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빛이 불안으로 흔들렸다.“뭔가 오해했나 보네요.”한지훈이 웃으며 말했다.“장난 아닌데요?”한지훈은 그녀에게로 성큼 다가서서 그녀를 벽으로 밀치고는 갑자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내가 너랑 장난하는 거로 보여?”한이연은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들었다. 사내에게서는 조금 전까지 볼 수 없었던 위압감이 풍겼다.설마 들킨 걸까?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고 숨 막히는 정적이 잠깐 흘렀다.점점 의상실 분위기는 뜨겁게 변해갔고 한이연은 점점 호흡이 가빠지고 있었다. 가쁜 호흡이 그녀가 속으로 당황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한지훈은 그녀가 말이 없자 손을 뻗어 그녀의 하얀 목을 만지다가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가슴 가까이로 손이 내려가자 한이연의 몸이 뻣뻣하게 굳더니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여기 수시로 사람이 드나드는 곳이에요. 경고하는데 이상한 짓 하지 말아요!”한지훈은 당황한 여자를 차갑게 바라보다가 웃으며 말했다.“그래? 그렇다면 나도 경고 하나 하지. 여기서 내가 너한테 무슨 짓을 해도 아무도 날 막지 못해. 못 믿겠
그녀는 두려운 감정이 앞섰다.사실 탈의실에 들어선 순간부터 한지훈은 수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수상함은 어느새 확신으로 변했다.“나한테 뭔가를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해?”한지훈은 냉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만약 너에게 날 쓰러뜨릴 능력이 있었다면 진작에 움직였을 거야. 지금처럼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겠지. 네가 누군지, 목적이 뭔지 말해. 어쩌면 우연이 얼굴을 봐서 널 살려줄 수도 있으니까.”한이연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고민에 잠겼다.“내 인내심을 시험하려 하지 마.”한지훈은 손끝으로 단추를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한이연은 당황해서 점점 몸이 떨려오고 눈앞이 어질ㅓ웠다.“이제 말해. 넌 누구고 왜 여기로 온 거지?”한지훈이 차갑게 말했다.“아니면 나한테서 뭔가를 찾고 있었던 건가?”한이연은 여전히 답이 없었다.그녀가 이런 상황에서도 버티고 입을 다물 거라 예상하지 못했기에 한지훈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정말 자백을 거부할 거야?”물론 그녀가 무슨 짓을 할까 봐 걱정되는 건 아니었다. 한이연 정도는 얼마든지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침묵을 선택했다면 날 탓하지 마.”말을 마친 그는 한손으로 한이연의 옷깃을 잡고 잡아당겼다.순식간에 단추가 뜯겨져 나가고 하얀 가슴이 그의 눈앞에 드러났다.참으로 완벽한 몸매였다.한이연은 수치심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손으로 앞을 가리려 했다. 하지만 한지훈은 매정하게 그 손을 잡아 뒤로 고정했다.그녀의 얼굴이 분노로 뻘겋게 물들었다. 하지만 그 모습마저도 매력적이었다.“망할 자식!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알기나 해?”어깨가 젖혀지면서 여자의 육감적인 몸매가 그대로 남자의 앞에 드러났다.그녀는 나가기만 하면 이 파렴치한 남자를 찢어 죽이겠다고 다짐했다.살면서 이런 굴욕은 처음이었다.“지금 나 협박하는 거야? 지금 상황에 할 말은 아니지 않나?”한지훈은 차가운 냉기를 풀풀 풍기며 그녀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사실 난 아주 관대한 사람이야. 귀찮은 건 딱 질색이라고. 상대
한지훈이 싸늘하게 웃으며 손을 허공에 올리자 놀란 그녀는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한이연은 거친 숨을 토하며 긴장한 눈으로 한지훈을 바라보았다.“왜? 겁이 나?”한지훈은 냉랭한 표정으로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나한테 목적을 가지고 접근했을 때 이런 결과도 예상했었어야지. 젊은 남녀가 같은 공간에서 서로 불붙는 건 당연하잖아? 내가 무슨 짓을 할 거라는 생각은 아예 안 한 건가? 넌 남자들이 다 좋아하는 몸매를 가졌어. 그런 몸으로 대놓고 날 유혹했다면 무언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얘기겠지.”“내 생각에 두 가지 가능성이 있어. 첫째, 나한테 뭔가 원하는 것이 있다. 둘째, 넌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일부러 나한테 접근한 거야. 내 말이 틀려?”한이연은 움찔하며 경악한 눈으로 한지훈을 바라보았다.그의 예상은 정확했다.한지훈은 흥미롭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물론 또 다른 가능성도 없지는 않아. 내 얼굴 보고 반해서 날 소유하고 싶어서 일부러 유혹했거나. 정말 그런 거라면 꿈 깨. 난 헤픈 사람도 아니고 내 아내도 이런 걸 바라지는 않을 테니까.”그 말을 들은 한이연은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어찌 이렇게 건방진 자식이 다 있지?사람이 어쩜 이렇게 뻔뻔할까?한지훈은 허공에 멈춘 손을 힐끗 보고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솔직히 같은 공간에 너무 오래 있다 보니까 나도 참기 힘든 것 같아. 넌 어떻게 생각해?”한이연은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며 싸늘하게 말했다.“나 건드리지 마! 허튼 수작 부렸다가는 평생 후회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그 말을 하는 사이에 이미 한지훈의 손가락이 그녀의 목까지 닿았다. 한이연은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질끈 깨물고 눈을 감았다. 온몸을 떠는 모습이 뭔가 고민이 많아 보였다.한이연은 지금 이 순간이 후회스러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직접 나서는 것이 아니었다.왜 하필이면 직접 나선다고 해서 이런 상황을 만든 걸까? 이러다가 주군의 계획마저 다 들통나면 어떻게 되는 걸까?그녀는 상
한지훈은 옆에 있던 옷걸이에서 셔츠 하나를 집어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걸쳐주었다.물론 그 과정에서 피부가 닿는 것은 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겁에 질린 한이연은 그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곧이어 한지훈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가서 문을 열어. 우연이 오해하면 곤란하니까.”말을 마친 그는 곧장 뒤돌아서 한이연과 거리를 두었다. 다시 노크소리가 들리자 한이연은 감정을 추스르고 다가가서 문을 열었다.강이연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한이연을 보고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이연아,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한이연은 아직도 화끈거리는 얼굴을 매만지며 조금 전 한지훈과 대치하고 있던 상황을 떠올리며 분을 삭혔다.“그래? 의상실이 좀 더웠나 봐.”그녀는 어색한 얼굴로 변명했다. 어쩐 일인지 조금 전 한지훈의 만행을 강우연에게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난 별로 안 더운데? 어쩌면 단 둘이 같은 공간에 있으려니까 이연 씨가 쑥스러워서 얼굴이 빨개졌나 봐. 내가 좀 잘생겼잖아?”이때 소파에서 일어선 한지훈이 피식거리며 말했다.강우연이 고개를 들자 이미 세미정장으로 갈아입은 한지훈이 보였다.하얀색 셔츠에 검은색 외투는 그의 귀티 나는 분위기를 더욱 강조했고 심플한 디자인의 브로치로 포인트를 주어 따분함을 덜었다.화려하지는 않지만 심플함과 우아함이 돋보이는 차림이었다. 한이연이 골라준 옷은 마치 그를 위해 제작한 것처럼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강우연뿐이 아니라 한이연마저도 그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홀린 듯 바라보았다.하지만 조금 전 그가 했던 만행을 생각하면 화가 치밀며 이가 갈렸다.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눈을 부릅뜨며 한지훈을 쏘아보았다.“시간 다 돼가는 것 같으니까 이제 가자.”강우연은 시간을 확인하고는 앞장서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한지훈은 강우연이 다 내려간 뒤에 한이연의 등 뒤에 바짝 붙어서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네가 누구든, 네 배후에 누가 있든, 그리고 목적이 뭐든 우연이는 건드리지 마. 네가 매력적인 미
비즈니스 파티에는 우연그룹의 고위임원들을 제외하고도 강중의 유명 기업 인사들과 지방 대기업 오너들까지 초대되었다.강우연과 한지훈은 조금 더 일찍 행사장에 도착했다. 호텔 입구에서 그들은 의학협회의 이 회장을 만났다.그는 여성 파트너와 동행했는데 강우연이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자마자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정말 왔네요? 안 올 줄 알았는데 말이죠.”고개를 돌린 강우연은 이 회장의 얄미운 얼굴을 보고 싸늘한 미소를 짓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강우연을 먼저 들여보낸 한지훈이 어깨를 툭 치자 이 회장은 겁이 나서 황급히 피하며 물었다.“뭐… 뭐 하자는 거지?”한지훈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경고하듯 말했다.“이 회장님, 조용히 지내다 돌아가시는 게 좋을 겁니다. 내가 누군지는 이 회장님이 더 잘 알 거예요. 지난번 경고, 장난 아니었습니다.”“당신이 북양왕이라는 거 알아. 하지만 우리 의학협회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고! 우리의 배후에는 약왕파가 있어. 네가 아무리 잘나도 나한테 존대를 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지. 오늘 저녁에 네 콧대를 꺾어줄 분이 도착하실 거야!”이 회장은 어젯밤 일만 떠올리면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하지만 오늘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한지훈이 정말로 사람들 앞에서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한지훈은 눈썹을 꿈틀하며 냉소를 지었다.“대체 무슨 자격으로 내 앞에서 그런 건방진 소리를 지껄이는 거지? 당신, 죽고 싶어?”이 회장은 욕설을 퍼부으며 뒤로 뒷걸음질쳤다.“두고 봐. 오늘 넌 제대로 망신당하게 될 거야.”말을 마친 그는 파트너와 함께 파티홀로 들어갔다.한지훈은 도망치듯이 현장을 떠나는 이 회장의 뒷모습을 보고는 못 말린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연회가 정식으로 시작되고 따분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한지훈은 조용히 강우연의 곁을 지켰다.오늘 초대된 사람들은 전부 의학 업계에서 한 자리 차지한 인물들이었다. 강중과 다른 도시의 의학 업계의 유명 인사들은 전부 이곳에 모였다.
어쩌면 단순히 한지훈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일 수도 있었다.오허청은 아직 병원에서 요양 중이라 불참했다.“이 회장님, 반가워요.”황학용은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대범하게 인사를 받았다.그러고는 이 회장이 건넨 잔을 받아들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저에게 소개할 사람이 있다고 하셨는데 도착하셨나요?”“네. 저쪽입니다.”이 회장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한지훈과 강우연이 있는 쪽을 가리켰다.“저기 보세요. 저 녀석입니다. 저 녀석이 오씨 어르신을 때려 병원으로 보낸 한지훈이라는 놈입니다. 북양왕으로 불리는 놈이지요.”황학용은 이 회장이 가리킨 방향을 힐끗 바라보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한지훈이 아닌 그 옆에 있는 강우연이었다.그는 이처럼 아름다운 여인은 처음이었다. 약왕파에도 미인은 많지만 강우연과 비길 수는 없었다.강중 같은 작은 도시에 이런 미인이 존재한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소종주, 저놈이 한지훈이에요. 어제 오씨 어르신을 때려서 병원으로 보내고는 오늘 멀쩡히 파티에 참석했네요. 혼 좀 내줘야 하지 않겠어요?”이 회장은 증오로 가득 찬 눈빛으로 한지훈을 노려보며 황학용을 꼬드겼다.약왕파의 실세인 황학용이 있으니 두려울 것이 없었다.황학용은 약왕파 청년 세대의 엘리트라고 불리는 인물이었고 신분과 지위도 동년배들을 훨씬 능가했다.황학용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강우연에게서 시선을 돌려 웃고 있는 한지훈을 바라보았다.영시종을 멸하고 오허청을 병원에 보낸 인물이 정녕 저 녀석이란 말인가!‘북양왕? 아주 대단한 놈이네!’그는 용국에 이름을 알린 북양왕이 대체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졌는지 궁금해졌다.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황학용은 여전히 담담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이 회장과 같이 온 파트너는 황학용의 얼굴에서 홀린 듯, 시선을 떼지 못했다.이 남자야말로 그녀가 원하던 이상형이었다.다시 이 회장을 바라보니 거부감만 들었다.그녀는 이때다 싶어 다가가서 황학용의 팔짱을 끼고는 풍만한 가슴으로 그의 팔을 지그시 누르
물론 이 회장이 여기 오기 전에 미리 당부한 것도 있었다. 이 회장은 흐뭇한 눈길로 파트너를 바라보았다.황학용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느긋한 말투로 말했다.“약왕파를 위협하는 존재가 있었다니. 처음 듣는 일이네요. 재밌네.”이 회장은 긴장한 얼굴로 황학용의 눈치를 살폈다. 그의 목적은 아주 간단했다. 약왕파를 끌어들여 한지훈의 콧대를 눌러주는 일이었다.그리고 눈치 빠른 그는 황학용이 강우연에게 깊은 관심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재빨리 캐치했다.“소종주님, 가서 인사나 건넬까요?”이 회장이 작은 소리로 그에게 물었다.황학용은 잔을 든 채로 한지훈에게 다가갔다.그는 여유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한지훈의 앞으로 다가가서 섰다.한지훈도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황학용을 발견했다.오늘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상계의 엘리트들이었기에 한눈에 황학용을 알아본 사람도 적지 않았다.그들의 시선이 한지훈에게로 쏠렸다.황학용은 담담한 얼굴로 한지훈을 바라보고 있었고 한지훈은 그의 눈빛에서 불쾌감을 느꼈다.황학용은 먼저 우호적으로 한지훈에게 손을 내밀며 인사를 건넸다.“이렇게 만나게 돼서 반가워요. 황학용이라고 합니다.”한지훈이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약왕파 사람입니까?”그 질문에 황학용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습니다.”“뭐가 기뻐서 이렇게 웃고 있는 거지요?”한지훈이 되물었다.그 말을 들은 황학용은 잠시 당황했고 뒤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이 회장도 마찬가지였다.어색한 침묵이 잠깐 흘렀다. 한지훈이 대놓고 면박을 주는 통에 황학용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는 어색한 미소를 짓고는 다시 우아한 말투로 말했다.“한 선생은 농담도 잘하시네요. 지난번에 오씨 어르신 일은 얘기 들었습니다. 그쪽에서 먼저 잘못을 했고 저는 한 선생과 강우연 씨에게 사과하러 온 겁니다.”황학용이 이 정도로 대범하게 나올 줄 몰랐던 한지훈은 인상을 썼다.물론 그의 말을 믿는 것은 아니었다.하지만 주변 사람들을 속이기에는 충분했다. 그들은 너도나도 경외심 가득한
이 둘과 비교하면, 기자인 그녀는 마치 한 줌 모래처럼 미미한 존재였다.임설의 얼굴에 두려움이 떠오르자, 유 씨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설아, 사실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지금의 용국은 이미 몇 년 전의 용국이 아니야. 너도 알겠지만, 내 뒤에는 오대 명산이 있단 말이지.”“우리 오대 명산이 널 지지하는데, 뭐가 두려운 것이냐? 설령 용국 조정이라도 감히 우리를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그날의 대화는 줄곧 내가 한 말이었으니 잡으려면 나를 잡는 거지, 널 잡을 일은 없다.”임설은 그 말을 듣고 다소 안심한 듯 보였으나, 여전히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지만…… 유 씨 어르신, 그건 전부 어르신의 추측일 뿐이에요. 우리 손엔 아무 증거도 없잖아요!”“증거? 증거가 그렇게 중요해?”유 씨 노인은 냉소하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무종 전체가 내 말에 동의한다면, 그게 바로 증거지!”비록 천릉자가 대량산에서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지만, 한지훈의 명예를 실추시키기만 한다면 국왕은 가장 중요한 의지를 잃게 된다.바로 이때, 국왕의 자리를 노린다면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이때, 산성시.산중에 위치한 호화로운 별장에서, 검은색 양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젊은 여인에게 말했다.“선아, 며칠 전 장 도령께서 놀란 일이 있었단다.”“우리 천산 장씨 가문과는 대대로 교류가 깊었지. 어떤 의미에서든, 넌 가서 한 번은 그를 봐야 하지 않겠니?”“그리고 네 신분도 좀 자각해야 해. 진씨 가문의 큰 아가씨가 어찌 그리 속된 백성들처럼 옥기점 같은 데서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냐!”이 중년 남자의 이름은 진천국, 산성 진씨 가문의 가주였다!진천국이라는 이름은 산성 전체에서 거의 군왕이나 다름없는 존재다.특히 영기가 되돌아온 이후, 진천국의 사문은 현재 산성 최대의 종문인 천앙종이었다!게다가 진씨 가문은 지금 천산 장씨 가문과 우호 관계를 다져가며, 혼인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만일 혼인이 성사된다면, 진씨 가문은
사실, 한지훈이 산에 들어서는 길목에서 이미 유 씨 노인의 말을 다 듣고 있었다.오대명산과 무종 사람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어찌 한지훈이 모를 수 있을까!최근 이 시기 동안 천릉자의 기세가 드높다는 건, 곧 오대명산이 천릉자를 내세워 한지훈이 용국에 세운 공적을 지우려는 의도임을 뜻한다.게다가 이 기회에 국왕의 지위마저 위협하려는 것이었다.개인의 영예나 치욕 따위는 한지훈에게는 이미 중요하지 않았지만, 누구든 국왕의 권위를 흔드는 일만큼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오대명산의 계략을 깰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천릉자의 기세가 가장 드높을 때 정면으로 한방 먹이는 것이었다!그리고, 천릉자가 살해당한 사건은 과연 큰 파장을 일으켰다!그 전에 오대명산은 이 일을 공개적으로 보도하게 하려고 수많은 언론 기자들을 초청했다.하지만 정작 결과는, 제 발등을 찍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현장에 와 있던 언론사 수가 너무 많았고, 모두가 생중계로 현장을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게다가 수많은 인플루언서들까지 합류하며 정보를 봉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이 사건은 마치 다리가 달린 듯, 하룻밤 사이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흥! 정말 웃기는군. 그 따위가 어찌 한지훈과 견줄 수 있단 말인가? 한지훈보다 깨달음이 뛰어나다고? 타고난 자질이 낫다고? 결국 누가 죽였는지도 모른 채 죽어버렸잖아!”“흥, 내 보기엔 그냥 날뛰는 광대였을 뿐이지!”“날뛰는 광대? 그래도 광대는 멀쩡한 머리를 잃진 않겠지! 하하하…”온라인에서는 조롱이 난무했고, 항산의 사람들은 아예 모습을 드러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한순간에 오대명산의 기세는 급격히 꺾이고 말았다.그 뒤 한 달 동안, 모든 이들의 화제는 이 사건에 쏠렸다.오직 한지훈만이 조용히 천생서문에 기록된 내용을 따라 진지하게 약제를 조합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그에게는 강우연이 천신계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이런 화제들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게다가 천하 정세는 이미 크게 변하고 있었고,
그들은 누군가가 도중에 강탈할 거라는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장령풍이 자소화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는 약속대로 천릉자에게 져주지 않을 가봐 걱정됐다. “여러분, 드디어 가장 관건적인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과연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됐을지 함께 알아봅시다!”한 인터넷 BJ는 생방송을 켜고는 팬들을 향해 말했다. 그렇게 시간은 1분 1초가 흘렀고, 모두들 손꼽아 승패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산 길에서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걸어 나왔다. 다만, 천릉자와 장령풍 두 사람의 종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설마 사고라도 난 건 아니겠죠? 장 사부님이랑 천릉자 사부님은 왜 여태까지도 나오지 않는 거죠?”임설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사실 또 다른 가능성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두 사람이 너무 격렬하게 싸운 나머지 모두 중상을 입어 전혀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지는 않을 거야. 필경 모두 동문 사람이기에 두 사람이 한판 붙게 된다 하더라도 반드시 어느 정도 여지를 남겨둘 거야!”유 씨 어르신은 확신에 가득 찬 말투로 말했다. 알다시피 이번 대결은 5대 명산이 함께 손을 잡고 벌인 판이다. 게다가 천산 장 씨 집안도 이 계획에 얽혀있었기에, 절대 어떠한 실수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주위에는 또 수많은 고수들이 지켜보고 있을 텐데, 의외의 사고란 발생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유 씨 어르신의 말이 떨어지기도 바쁘게, 산길에서는 어두운 안색의 항산 제자 4명이 단대 하나를 들고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이내 카메라들은 일제히 그 단대에 초점을 뒀고, 모든 기자들은 순간 숨을 죽였다. 단대 위에는 머리 없는 시체 한 구가 누워 있었고 옆에는 웬 동그란 물건이 놓여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서야,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바로 천릉자의 머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른 한편, 몇 명의 장 씨 집안 자제들 역시 단대 하나를 들고는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장령풍
그러나 한지훈은 장령풍을 투명 인간 취급한 체 눈 깜짝할 사이에 숲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한지훈이 멀어질 때까지, 장령풍은 여전히 깊은 공포 속에 빠져 있었다. 사실 천릉자는 실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방금 그와의 정면승부에서, 그는 천릉자의 털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두 사람의 실력은 그야말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천릉자의 촘촘한 검망을 깨뜨려 그의 머리를 아작 낸다는 건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최선을 다해봤자 기껏해야 천릉자에게 상처만 입힐 거라 확신했다. 천릉자를 죽이는 건 하늘의 별 따기보다도 더욱 어려웠다. 모두들 알다시피 검망 아래에서는, 수천 갈래의 검의 습격을 마주해야 했다. 그 검망을 피해 사람을 죽이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그 검방을 피하는 것조차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설사 2성 천신계 강자라 하더라도 밀집된 검망을 마주하게 되면,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게 되고 더욱이는 천릉자를 사지로 몰아넣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지훈은? 오직 나뭇잎 하나만으로, 마치 어린애 장난처럼 닥치는 대로 나뭇잎을 던져 천릉자의 머리를 아작 냈다. 지금 이 순간, 산 전체는 비할 데 없이 조용했다. 한지훈이 멀어질 때까지 장령풍은 줄곧 조용히 땅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고 있었다. 그는 심지어 감히 고개 한번 들어 앞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그렇게 30분이 흐르고 나서야 장령풍은 고개를 살짝 들었다. 한지훈의 자취가 더 이상 보이지 않자, 그는 비로소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익숙한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장령풍, 오늘 벌어진 일을 소문내면 장 씨 집안은 멸망하게 되는 줄 알아!”“네... 저는... 아무것도 못 본겁니다!”크게 놀란 장령풍은 벌벌 떨었다. 한지훈의 경고는 그에게 있어서 성지였다. 한지훈은 뱉은 말은 무조건 지키는 사람이라는 걸,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유럽은 용경과는 80리 정도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오직 용국을 위해 복수
게다가 사방에서 한지훈을 헐뜯고 있는 발언들에 대해, 장령풍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한지훈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몇몇 명산 모두가 그의 적이었다. 그렇기에 한지훈이 남의 도움을 받았다는 얘기 자체는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역외 강자조차도 흔들 수 없는 거물을, 누가 감히 건드리려 하겠는가? 그러나 옆에 있던 천릉자는, 장령풍의 표정 변화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한지훈의 정체가 뭐든, 자신이 쟁취해야 할 성과를 이대로 빼앗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내 그는 장령풍과 상의도 하지 않고 바로 손을 들었다. 곧이어 그물처럼 촘촘한 검망이 한지훈의 정수리 위에 펼쳐졌다. 그는 단 한 방에 한지훈을 산산조각 내어,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을 건드리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줄 작정이었다. 온 하늘을 덮은 검망에도, 한지훈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닥치는 대로 나뭇가지에서 잎사귀 하나를 따냈다. 그러고 나서는 천릉자가 서있는 쪽으로 잎사귀를 가볍게 던졌다, 곧장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잎사귀에, 제대로 화가 난 천릉자는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 잎사귀로 사람을 다치게 하는 건, 무종 모든 종사들의 장기였다. 그러나 종사계의 실력은, 그저 전신계와 같을 뿐이었다. 그런데 일성 천신계 고수인 자신이 뜻밖에도 전신계 같은 땅강아지한테 무시당하게 될 줄이야? 생각할수록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른 천릉자는 곧바로 또 하나의 검망을 휘두르며 사악한 웃음을 보였다. “네 이 녀석, 천신계 강자를 상대로 도전장을 내밀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오늘 내가 제대로 보여주마!”“죽어!”지금 이 순간, 천릉자는 이미 한지훈을 죽은 사람으로 취급했다.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눈 깜짝할 사이에 한지훈은 산산조각 나게 될 것이다. 예상치 못한 눈앞의 상황에 장령풍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전에 이미 한지훈의 전력을 직접 목격했었다. 모든 전투에서, 한지훈은 오릉군 가시를 던졌었다.
천산 장 씨 집안과 항산 사이에는 서로 맺은 약속이 있었다. 오늘 이 자소화도 사실은 천릉자에게 주기로 내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자소화 자체는 결코 희귀하지는 않지만, 꽃이 피기 전의 자소화를 찾는 건 매우 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대다수는 사람들에게 발견되기 전에, 산속의 맹수들에 의해 먹히고는 만다. 사실 천신계 강자에게 있어, 자소화의 장점은 셀 수 없이도 많았다. 이 자소화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순조롭게 2성 현급 천신계까지 도달할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이렇게 큰 유혹 앞에서, 장령풍은 장 씨 집안과 항산의 약속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고 오로지 이 자소화를 손에 넣을 생각뿐이었다. 그의 단호한 태도에 천릉자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령풍, 작은 것을 얻으려고 큰 것을 잃으려 하지는 마. 당시 한지훈의 그 사건도 장 씨 집안이 자초한 일이었어. 네가 자소화를 손에 넣는다면, 그동안 우리가 한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게 될 거라고!”사실 전에 5대 명산, 항산 그리고 천산 장 씨 집안이 줄곧 천릉자를 치켜세운 이유는 그 배후에는 아주 큰 음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른바 불세출의 천재란 타이틀을 근본적으로 꾸며낸 것이다. 사실 천릉자는 이미 30년 전에 항산 문하에 들어선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항산은 줄곧 그를 중점 육성 대상으로 간주해오고 있었다. 그렇게 4년 만에 단번에 천신 경계를 돌파하게 된 기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가짜였지만, 그 최종 목적은 천릉자를 이용하여 한지훈을 호되게 밟는 것이었다. 그리고 방금 유 씨 어르신의 발언과 언론을 통해 한지훈은 영원히 용국의 치욕이라는 이미지로 매장하려는 속셈이었다.그러려면 이 과정에서 천릉자의 후광을 더욱 밝게 비추어야 했다. 그의 후광으로 한지훈의 공적을 덮어 그를 폄하하고 말살하는 목적을 달성하려는 계획이었다. “장 씨 집안의 계략이 뭐가 대수야? 난 지금 오직 이 자소화만 갖고 싶을 뿐이야!”장령풍은 여전히 굳은 표정
만약 이 모든 게 사실이라면, 이 내용이 보도된다면 전 세계를 뒤흔들 만한 사건이 될 것이다.필경 현재 용국은 물론, 심지어 전 세계가 모두 한지훈이 단지 일성 준 천신계의 실력으로 10여 명의 역외 강자들을 참살했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하여 전 세계는, 한지훈과 용국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만약 그 배후에 호천 창세가 손을 쓴 거라면 용국은 과연 어떻게 될까? 한지훈은 또 어떻게 될까? 과연 누가 용국을 두려워하겠는가? 아마 그 누구도 한지훈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지 않을 것이다.“됐어, 한지훈 그 반역자에 대해서는 이쯤하자. 저 두 사람의 시합이나 지켜보자고!”유 씨 어르신은 의도적으로 반역자라는 세 글자를 강조하며, 한지훈의 못된 이미지를 제대로 박았다. 한편 그 시각, 한지훈도 어느새 산꼭대기에 도착했다. 장령풍과 천릉자 두 사람은 여전히 교전을 펼치고 있었다. 게다가 보아하니 장령풍의 상황은 딱히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새하얀 도포에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장령풍은, 어느새 피범벅이 되었고 분노 가득한 두 눈동자는 천릉자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 반면 천릉자는 조금도 다치지 않고 여유롭게 한 손을 짊어진 채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듣기로는 너희 장 씨 집안 삼절진은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하다고 하던데, 오늘 보니 역시나 명실상부라 느껴지긴 하는구나. 하지만 다만 아쉬운 건, 넌 아직 제대로 불꽃이 튀지 않아 천절진의 위력은 크게 발휘하지 못하고 있어!”“앞으로 만약 10년만 더 지나게 된다면, 나중에 나의 천망 검진은 너를 더 이상 격파하기도 어렵게 될 거야. 하지만 어찌 됐든 그건 10년 후의 일이니, 오늘은 일단 이 자소화를 나한테 양보해!”이내 천릉자가 허리 굽혀 자소화를 따려는 순간, 숲속에서는 갑자기 우렁찬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오옥!”불곰보다도 몇 배나 더 큰 맹호 한 마리가 갑자기 숲에서 뛰어나오고 있었다. 순간 천릉자와 장령풍 모두 멍해졌다. 전에 5대 명산 고수들이 이미 산꼭대기를
유 씨 어르신의 말에, 임설은 끊임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기가 돌아온 후, 모든 사람들의 몸에는 큰 변화가 생겼고 저항력도 강해졌을 뿐만 신체능력도 향상되었다.그러나 마찬가지로 맹수들도 더욱 강해졌다. 만약 임설이 맹호를 상대한다면, 그건 바로 먹잇감이 되는 것이었다.당시 한지훈의 일전도 마찬가지라는 뜻이었다. 십여 명의 역외 강자들을 상대하다니, 게다가 모두 한지훈보다 한두 단계 높은 경지의 고수들이라니. 비유하자면 당시의 한지훈은 마치 현재의 임설과도 같았고, 그 십여 명의 역외 강자들은 바로 맹호 같은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들의 대결 결과는, 전혀 추측할 필요가 없이 다들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그럼 당시 그 대결이 만약 오로지 한지훈의 소행이었다면, 이건 합리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유 씨 어르신은 뒷짐을 진 채 오만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리둥절해졌다. 필경 유 씨 어르신은 화산 고수중 한 명이었기에, 그의 말은 신빙성이 아주 높았다. 게다가 진정한 무도 중인 만이 한지훈이 당시 직면한 것이 얼마나 큰 도전이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보통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유 씨 어르신은 이런 속임수에 넘어갈 리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무종이 점점 강해지게 되면서, 현재 더욱 많은 일반인들이 모든 경계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잘 알게 되었다. 천신경은 말할 것도 없고, 설령 전신계라 하더라도 작은 경계 사이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였다. 즉 천릉자는 비록 일성 준 천신의 최고 실력에 도달하긴 했지만, 그가 2성 천신계를 돌파하지 못한 이상, 2성 천신계 상대에게 있어 그는 마치 땅강아지와도 같은 존재였다. 두 사람이 동원할 수 있는 역량이 전혀 같은 수평선에 놓여있지 않는데, 어떻게 싸울 수 있겠는가? “어르신, 그 말씀은 전에 한지훈이 다른 사람의 힘을 이용하여 모든 사람들을 속여왔다는 뜻인가요?”임설이 다시 물었다. “그래. 중요한 포인트를 짚었네. 너희들 아직도
임설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 “혹시 임설이니?”바로 이때, 임설의 뒤에서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 씨 어르신?”고개를 돌린 임설은, 뒤에 선 노인을 보고는 순간 멍하니 있다가 이내 급히 열정적으로 그를 맞이했다. 그녀가 유 씨 어르신이라 부르는 이 사람은 바로, 세속에서 활동 중인 화산 강자이자 현재 무도 재판소의 부회장이기도 했다. 게다가 화산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었기에 유 씨 어르신은 세속에서도 소문이 자자했다. 매체인으로서 임설 역시 유 씨 어르신이 낯설지는 않았다. 게다가 전에 그녀는, 유 씨 어르신의 인맥을 통해 5대 명산의 3기 다큐 영화까지 제작했었다. “어르신, 어르신께서는 왜 여기 계신 거예요?”임설은 겉으로는 궁금해하는 척했지만, 사실 내심 전혀 의외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번 사건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장령풍과 천릉자 두 사람이었기에, 같은 5대 명산인 화산에서 사람을 보내지 않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난 단지 길을 가던 중 한번 와서 본 것일 뿐이야. 그나저나 이 아이들은 이젠 모두 어른이 되었는데, 이들이야말로 용국의 미래 희망이지!”유 씨 어르신은 눈을 지그시 뜨고는 산 꼭대기 쪽을 유유히 바라보았다.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 임설은 급히 보조 카메라 감독을 불러 휴대폰으로 촬영하라고 지시하였다. 이내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 유 씨 어르신 가까이에 다가갔다. “어르신, 어르신의 경험으로 봤을 때 오늘 이 자소화, 과연 어느 집안이 가져갈 거라고 예상하시나요?”필경 유 씨 어르신의 신분 지위는 꽤나 높았기에, 아마 일부 내막에 대해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5대 명산끼리의 호흡은 결코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장령풍과 천릉자가 맞붙기도 전에, 아마 암암리에 모든 준비를 마쳤을 가능성도 매우 높았다. “아이고, 그 질문은 좀 난처하네. 원칙부터 말하자면, 장 씨 집안 역사는 엄청 유구하지. 우리 용국의 많은 비진도 모두 장 씨 집안으로부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