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전인은 한지훈의 뜻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서둘러 움직였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사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중년 남성을 데리고 서재로 들어왔다.“한천왕님, 북명종 윤지성입니다. 예를 갖춰 인사드립니다!”중년 남성은 한지훈에게 깊숙이 허리를 굽히며 공손히 말했다.“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습니다. 도청전인에게 들었는데, 윤 선생께서 저와 상의할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하던데요?”한지훈은 윤지성을 바라보며 물었고, 윤지성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한 선생님, 방금 전에 장도령을 직접 처단하셨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게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한지훈은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덮으며 윤지성을 바라보았다.“장도령 그 자체야 큰 문제가 아닙니다만, 장씨 가문을 적으로 돌린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장씨 가문은 분명히 분노할 것이고, 한 선생님께서 모를 수도 있지만, 장도령에게는 비밀리에 친분이 있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자의 실력은 장도령을 훨씬 능가합니다!”“게다가 장씨 가문이 분노하면 이 사람은 반드시 한 선생님을 찾아올 겁니다. 비록 선생님께서 장도령을 이겼지만, 이 사람은 장도령보다 훨씬 까다로운 자입니다!”윤지성이 담담히 말하자, 한지훈은 미간을 약간 찌푸리며 물었다. “그게 누구란 말입니까?”그는 자신이 막 위험에서 벗어나 다시 위험에 처하는 것을 원치 않았고 매일 이렇게 사람을 상대할 시간도 있을 리 없었다. “무맹의 맹주, 단해룡입니다!”윤지성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맹의 맹주라니?!한지훈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무맹은 무종과 거의 동등한 권위를 가진 민간 조직이었다.그 맹주인 단해룡은 신비로운 인물로, 그의 행적을 본 사람은 열 명도 채 되지 않았다.게다가 그의 실력은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부 사람들은 단해룡이 이미 천신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추측했다.이런 이유로 그는 세속적인 일에 거의 개입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었다.“당신 말은, 단해룡이 직접
도청전인이 말한 천왕은 단순히 경지의 높낮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그것은 현재 한지훈이나 이전의 장도령, 그리고 무적천과 같은 인물처럼 무도와 진법을 융합하여 진정한 천왕의 위엄을 가진 거물을 뜻했다!이들 세 명이 단해룡에게 단숨에 제압당했다는 사실은 그의 실력을 간접적으로 나타냈다. 한두 명이라면 운이 작용했을 수 있지만, 세 명 모두가 순식간에 패배했다면 이는 실력으로 압도당한 것이다.“오호라?”한지훈은 눈을 가늘게 뜨고 도청전인을 바라보았다.“이 세 사람은 만약 한용 선배가 계셨다면 들어보셨을 겁니다. 강한 한 명은 두자산, 또 한 명은 진망해, 마지막 한 명은 70년 전 용국의 정상에 서 있던 강한생이라는 인물들입니다!”“이들 모두 당시 무맹 장로와 적대하여 무맹으로부터 추격을 받았던 인물들입니다. 따라서 무맹의 많은 사람들을 반격해 처치했던 강자들이었죠. 하지만 강한생이 무맹의 부맹주를 죽이면서 결국 큰 화를 초래했습니다!”“단 3일 만에, 그들의 시신은 무맹 본부 바깥의 깃대에 걸렸고, 머리에는 수은이 채워져 미라처럼 처리되었고, 지금까지도 무맹 본부의 문 앞에 높이 걸려 있습니다!”“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이 단해룡은 함부로 건드릴 상대가 아니죠. 심지어 무적천조차도 그와 적대하지 않으려 했으니까요. 이것이 왜 수십 년 동안 무신종과 무맹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평화롭게 공존해 온 이유입니다!”도청전인의 말을 듣고, 한지훈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단해룡은 정말로 강력하고 위험한 적수임이 분명했다.“즉, 무적천조차도 그를 상대로 절대적인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거군요?”한지훈이 눈살을 찌푸리며 묻자, 도청전인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적어도 그 당시에는 그랬다.하지만 지난 70년 동안, 무적천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마찬가지로 단해룡 역시 수십 년 동안 세상에서 모습을 감췄으니, 그의 현재 실력을 가늠하기는 더욱 어려웠다!“알겠습니다! 이건 선생님께 드릴 테니, 시간이 날 때 꼼꼼히 읽어보도록 하세요.”
단해룡을 찾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장씨 가문의 집사조차도 여러 관계를 거쳐야 그의 소식을 조금이나마 알아낼 수 있었다.몇몇 명산대천을 찾은 끝에야 마침내 망월봉에서 단해룡을 발견할 수 있었다.이때 단해룡은 비록 백 살 가까운 나이였으나, 겉모습은 여전히 마흔 살 정도의 중년으로 보였다.검은 머리카락은 허리까지 길게 늘어졌고, 새하얀 연마복은 먼지 하나 묻지 않아 고결함을 풍겼다.뒤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단해룡은 천천히 눈을 뜨며, 종소리 같은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장천풍인가?”“단 선생님, 과연 귀가 밝으십니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제 발소리를 기억하시다니요!”장씨 가문의 집사 장천풍은 멀찍이 단해룡에게 두 손을 모아 예를 표했다.“장 형이라면 바쁜 사람일 텐데, 어찌하여 이 산골까지 나를 찾아온 것이오?”단해룡은 여전히 앉은 자세를 유지하며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단 선생님, 한 가지 부탁드릴 일이 있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장천풍은 한 손을 등 뒤로 하며 단해룡에게 말했다.“오? 무슨 일이오?”단해룡은 약간의 의구심을 띤 채로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장씨 가문은 용국에서 손꼽히는 명문으로, 심지어 국왕조차도 장씨 가문의 체면을 고려해야 할 정도였다.그런 장씨 가문이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할 필요가 있다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단 선생님, 하루 전에 장도령이 한지훈에게 참혹하게 살해당했습니다. 우리 장씨 가문은 비록 그 어린 녀석을 두려워하지는 않지만, 천신계의 금령은 단 선생도 아시다시피 절대 어길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런 일에는 우리 장씨 가문의 원로들이 직접 나설 수 없습니다!”장천풍은 장도령이 왜 죽임을 당했는지를 간략히 설명했고, 단해룡은 이야기를 다 들은 후 시큰둥한 미소를 지었다.한지훈이라는 이름은 몹시 생소했고, 그는 수년간 망월봉에서 고독한 수련에 몰두했다.하지만 그는 천신 경지만 남겨두고 있었고, 이 한 걸음을 돌파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따라서 단해룡은 이미 무맹에 맹
단해룡의 나이에 설령 천산 대전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하더라도 그의 뜻대로 되기는 어려웠다. “저희 장 씨 집안과 천산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단 선생도 잘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 말 한마디만 잘해주시면 천산은 필연코 장 씨 집안의 체면을 세워 줄 것입니다! 그러니 단 선생님, 한 번만 눈 감아주시면 얼마든지 소원대로...”장천풍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아!”단해룡은 두 눈을 가늘게 뜬 채 큰 소리로 단호하게 외쳤다. “한지훈의 목숨을 바쳐 얼마든지 천산을 참배할 수 있다면 나야 흔쾌히 받아주지! 얼른 돌아가서 장 씨 어르신에게 전해, 장도령과의 친분을 봐서라도 반드시 이 원수를 갚을 거라고!”그 말에 장천풍은 차가운 눈빛으로 단해룡을 힐끗 보았다. 만약 천산의 입문 기회를 언급하지 않았다면 단해룡은 진작에 이 위험한 다리를 건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내심 이 상황이 언짢았지만 얼굴에 드러내지는 않았다. 이내 장천풍은 주먹을 꽉 주고는 살짝 웃으며 단해룡을 향해 말했다. “단 선생님, 장 씨 집안을 대표하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말을 마치고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떠나가는 장천풍의 뒷모습을 보면서 단해룡도 내심 꿍꿍이를 하였다. 만약 정말 장천풍의 말이 사실이라면 한지훈은 정말 무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단해룡은 장도령의 실력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온 천하에 그와 맞붙을 수 있는 사람 자체가 얼마 없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깊은 생각에 잠긴 단해룡은 성큼성큼 산 아래로 걸어갔다. 그렇게 반나절도 안 되어 단해룡은 무맹 본부의 대문 앞에 다다르게 됐다. 갑작스러운 단해룡의 등장에 무맹 장로 몇 명이 급히 달려와 맞이했다. 노 씨 어르신은 털썩하는 소리와 함께 단해룡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맹주님!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저... 저희 그동안 정말 비참하게 괴롭힘을 당해왔습니다!”노 씨 어르신은 울음을 터뜨렸고, 한지훈에게 따귀를 맞게 된 것부터 무릎 꿇은 사실까지 모두 털어놓았
“네! 알겠습니다!”노 씨 어르신의 얼굴에는 화색이 드러났다. 한지훈은 이번만큼은 피해 가기 어려울 거라 확신했다. 설령 참석하든 안 하든 필연코 사신의 큰 화를 불러올 거라 생각했다. 흔쾌히 자리에 참석하게 되면, 그는 결국 무맹 종문의 수많은 강자들에게 의해 포위당하게 된다. 천신과도 같은 강자를 마주하게 되면, 한지훈은 감히 쉽게 저항하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천신계 강자들은 침 한번 뱉는 것만으로도 한지훈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반대로 만약 한지훈이 참석하지 않는다면, 무맹에게는 맹주를 불경하게 대했다는 구실이 하나 생겨 단해룡이 종문 문주들을 거느리고 직접 한 씨 집안으로 향하여 죄를 물을 수도 있었다. 때가 되면 국왕도 한지훈의 목숨을 보장할 수는 없게 된다. 이 생각에 노 씨 어르신은 밖으로 나가면서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지금은 정보화 시대이기에, 무맹은 손가락 하나로 세계 각지에 바로 초청장을 보낼 수가 있다. 그날 오후, 무종 대장로는 단해룡의 초청장을 받게 되었다. 심지어 그는 열어보지 않고도, 단해룡의 의도를 알아맞힐 수 있었다. “큰일 났네! 이 사람이 왜 갑자기 관문을 벗어난 거지? 은거하러 갔다고 하지 않았어? 어떡하지!”대장로는 초대장을 손에 쥔 채 왔다 갔다 하며 주위를 서성거렸다. “대장로님, 무종의 권위를 동원해서라도 이번 성회는 취소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이때 옆에 있던 삼장로가 일어나 말했다. “취소?”그 말에 대장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 단해룡이 어떤 성질머리를 갖고 있는지 잘 알고 있잖아. 만약 우리가 감히 막무가내로 권력을 행사한다면, 그는 결국 국왕과 사당의 대립면에 서게 될 거라고!”“상대는 결코 무적천이나 장도령과는 달라. 무맹은 매우 강한 실력을 가지고 있어. 게다가 그 자신 또한 장도령보다도 약하지 않은 실력을 지니고 있어. 그는 자신이 강한 걸 잘 알기에 이렇게 제멋대로 일을 벌이는 거야!”“만약 정말 우리가 나선다면 나한테 일이 불리
한편 그 시각, 한지훈은 강우연에게 간단한 진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미 며칠 간의 연습을 거쳐 강우연은 이미 일부 간단한 진법을 자신의 무도와 함께 섞을 수 있게 되었다. 전력으로 따지면 일성준 사령관에 버금가는 정도였다. “진법의 위력이 이렇게나 클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가볍게 한 번 주먹을 휘두른 강우연은 감개무량한 듯 말했다. “진법은 사실 무도의 증폭기라고 할 수 있어. 공기 중 저항력을 낮출 수 있기에 진법의 주먹은 정상적인 상황에서보다도 더욱 큰 힘을 발휘하여 파괴력도 더 강해!”한지훈은 강우연에게 설명을 해주었다.바로 이때, 뒷 화원의 문어귀에 도착한 도청 전인이 한지훈을 향해 살짝 손을 흔들었다. 한지훈은 평소와는 다른 도청 전인의 표정에 잠시 망설이다가 강우연에게 한마디 하였다. “우연아, 일단 계속 여기서 연습하고 있어. 나 잠시 나갔다가 바로 돌아올게!”이내 한지훈은 성큼성큼 문어귀에 다가와 낮은 소리로 도청 전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주상, 보십시오. 무맹이 보낸 초청장입니다. 내용만 보면 그저 단해룡이 단순히 관문을 나선 것 같은데, 실상은 주상님을 모해하려는 것 같습니다!”도청 전인은 초대장을 한지훈의 손에 건네며 한숨을 쉬었다. 초대장을 힐끗 훑은 한지훈은 내심 감탄하게 됐다. 단해룡은 그야말로 교활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무맹을 오늘의 최정상까지 발전시킬 수는 없으니. “그래, 알겠어. 3일 후에 난 창령산으로 갈 거야. 때가 되면 넌 무조건 집을 잘 지키고 있어야 해. 혹여 무맹이 강중으로 사람을 보낼 수도 있으니!”한지훈이 차갑게 말했다. “주상, 제가 보기에는 저희에게 또 다른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국왕에게 도움을 청하여 잠시 천자각이나 용화전에서 지내도 되고요. 단해룡이 아무리 능력이 강하고 지위가 높다 해도 감히 천자각까지 가서 소란을 피울 리가 있을까요?”도청 전인은 한껏 걱정하는 말투로 말했다. 창령산으로 간다는 건? 그건 곧 스스로
“대장로님, 그 호의는 마음으로만 받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유럽 무도 학원의 일은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만약 그전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제가 어떻게 감히 마음 놓고 만리 밖에 있는 유럽까지 갈 수가 있겠습니까?”“만약 유럽 무도 학원이 점점 강대해진다면 저희 용국에 반드시 큰 환난이 찾아올 것입니다.” 한지훈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장로는 내심 저도 모르게 감동했다. 설사 생사의 고비에 이르게 되더라도 한지훈은 여전히 진심으로 이 나라를 걱정하고 있었다. “한지훈, 용국이 그동안 너에게 빚진 것이 너무 많아. 우리 무종이 나서서 돕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무종과 무맹은 항상 상부상조하는 사이야. 예로부터 무종은 사당을 휩쓸고, 무맹은 강호를 제패하고 있지!”“하지만 안심해, 내가 내 목숨을 거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너를 지킬 거야!”장로가 이를 갈며 말했다. 그러자 한지훈은 감격에 겨운 채 입을 열었다. “대장로님, 그런 마음을 보여주신 것만으로도 저는 만족합니다. 하지만 사당에는 대장로님이 절대 자리를 비워서는 안 됩니다. 그에 비해 전 그저 한가한 사람이니 있으니 마나 한 존재죠!”이내 한지훈은 차 한 잔을 따르고 대장로의 앞에 건네주었다. “아이고!”대장로는 사실 하고 싶은 말이 가득했지만 지금 이 순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한지훈을 마주한 장로들은, 심지어 자신의 추태를 부끄러워하기도 했다. “그럼 이렇게 하지. 내가 먼저 창령산에 가서 상황을 보고 있을게. 때가 되면 우리는 창령산에서 합류하자고!”말을 마치자마자 대장로는 찻잔을 들고는 단숨에 원샷했다. 곧이어 대장로가 떠난 후, 한지훈은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최대한 마음을 안정시켰다. 이 상황에 만약 한지훈이 조금도 긴장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분명 거짓말이다. 무맹을 상대로 한지훈은 그저 혼자일 뿐이었다. 이것은 용담 호혈에 깊이 들어가는 것 못지않은 위험한 일이었다. 이날 오후, 무맹이 곧 천하 무종 성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이 여러 매체에
설령 약왕파가 중립을 원한다고 해도 과연 무맹이 허락할까? 더욱이는 한지훈이 받아들이긴 할까? 이 일은 흑백 둘 중 무조건 하나만을 선택해야 했다. “그래, 중립!”황약사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비록 그동안 한지훈이 운 좋게 생사의 갈림길에서 살아 돌아왔지만 이번만큼은 죽음을 피하기 어려울 거야. 만약 변수가 없다면, 한지훈은 반드시 죽게 될 거라고!”“이렇게나 위험한 국면에 우리의 미래를 걸 수는 없어. 중립이 비록 쉽지 않긴 하지만, 무조건 불가능한 건 아니야. 하지만 난 절대 한지훈을 비방하려는 것도 아니야. 누가 이기든지 막론하고 우린 결코 나서지 않겠다는 거지. 이게 바로 중립의 뜻이야!”“우린 무맹의 미움도 사서는 안 되지만, 한지훈의 미움도 사서는 안 돼. 알겠어?”황약사의 말에 사람들은 서로 난감한 듯 눈빛을 주고받았다. 황약사는 뜻밖에도 단언했다. 만약 의외의 변수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한지훈이 반드시 죽게 될 거라니! “문주 님, 그 말씀은 한지훈이 필연코 단해룡한테 당하게 될 거라는 말씀인 겁니까? 하지만 이 영상 좀 보세요...”대장로는 방금 그 동영상을 황약사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이딴 건 중요하지 않아!”그러나 황약사는 차갑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무맹 대회야말로 단해룡의 홈구장이야. 그가 동원할 수 있는 인력은 매우 많은 반면, 한지훈은 오로지 홀몸으로 싸워야 돼!”“천하의 모든 무종들이 모이게 될 텐데, 한지훈의 몸이 철이라 해도 혼자서 그 장정들을 어떻게 대처하냐고!”“이젠 어쩔 수 없어. 지금으로서는 용각도 국왕도 심지어 무종들도 포함해서 그 누구도 한지훈을 구해낼 수 없어. 다만 무적천이 참석할지는 아직 미지수야!”“만약 무적천 또한 초청을 받고 참석하게 된다면, 한지훈은 구사일생할 가능성이 있지!”황약사는 서성거리며 말했다. 사실 한지훈의 사활은 그와는 무관하다. 그러나 이번 일은 그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약왕파의 이익을 고려하면 한지훈과 대립면에 서야만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지만
“미안하지만, 정말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한지훈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그건 의도적으로 체면을 구기려는 것도 아니었고, 정말로 진천국이라는 인물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한지훈이 귀담아들을 만한 사람이라면, 최소한 오대명산의 각 원장 정도는 되어야 했다.그 외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름조차 들을 필요가 없었다.국제적으로 유명한 인물이라 해도, 한지훈 앞에 오면 누구 하나 예를 갖추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심지어 국가 원수들조차도 한지훈은 이름을 외울지 말지 고민할 정도였다.전 세계에 백여 개국이 있는데, 한지훈이 언제 그들 이름을 다 외우겠는가?한지훈의 경지에 이르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덧없게 느껴지며, 신분이나 지위 따위는 그저 덧없는 한때일 뿐이었다.“당신이 지금 누구와 얘기하는 줄 아는 거요?!”옆에 있던 소 씨 노인은 즉시 분노에 차서 책상을 치며 차갑게 소리쳤다.진천국은 산성에서 손꼽히는 인물인데, 한지훈이 그런 인물을 모른다고 하다니?이건 노골적으로 진천국의 체면을 짓밟는 행위였다!하지만 소 씨 노인이 말끝을 맺기도 전에, 진천국이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젊은이, 나도 젊었을 땐 거만하긴 마찬가지였지. 하지만 세상을 우습게 보면 안 돼.”진천국은 상위자의 태도로 차갑게 훈계했다.“용건이 뭡니까?”한지훈은 진천국을 전혀 상대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한지훈이 이렇게 직설적으로 나오자, 진천국은 속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한지훈이 거만하긴 했지만, 그만큼 기개가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그럼 나도 본론부터 말하지. 처음엔 당신이 그냥 작은 가게 주인인 줄만 알았는데, 아까 당신의 태도에서 뭔가 좀 특별함을 느꼈소.”“하지만 나씨 가문에서 어떤 이득을 줬든 간에, 당신 따위가 우리 진씨 가문의 일을 망칠 순 없소. 내 딸도 당신 같은 사람이 넘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오!”“그러니 우리 서로 체면 구기지 않으려면, 하나의 제안을 제시하지. 지금 당장 가능한 한 멀리 떠나시오, 그리고 다시는
온갖 옥기들이 진열된 이 옥기 상점은, 얼핏 보기엔 평범한 옥들뿐이었고 그 흔한 최상급 옥도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이렇게 별 볼 일 없는 가게를 지키며 겨우 연명하고 있는 사람이 대체 무슨 대단한 배경이 있겠는가?한눈에 보기에도 이 가게의 주인은 겨우 입에 풀칠하며 살아가는 밑바닥 인생일 터였다!어차피 영기가 되돌아온 이후, 조금이라도 배경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각 대종문에 의탁했고, 일부는 오대 명산의 외부 제자가 되기도 했다.장사를 한다 해도 영기 회복 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게 됐다.그런데 지금까지도 이런 이름 없는 작은 가게를 지키고 있다는 건, 딱 하나를 의미했다. 이 가게 주인은 아무런 배경도 의지도 없는 인물이라는 것이다!얼마 지나지 않아, 한지훈이 뒷마당에서 현관으로 나왔다.한지훈이 소박한 옷차림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진천국의 미간은 더 깊이 찌푸려졌다.한지훈의 옷차림만 보고도, 진천국은 그에 대한 인상이 한두 단계 더 추락했다.“휴, 저 사람은 너무 평범해 보이지 않소! 요즘엔 병왕계에 오른 사람도 널렸는데, 저런 사람은 정말 보기 드문 케이스지요!”진천국은 한숨을 쉬며 소 씨 노인에게 말했고, 소 씨 노인도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물론 영기 회복 이후에도 세계 각국에는 여전히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존재하긴 했지만, 용국은 유독 달랐다. 용국은 기운을 품은 나라였기에, 용국 대지 전체가 거대한 변화를 겪은 것이다!심지어 일반 백성이라도 체력이 조금만 받쳐주면, 저절로 병왕계로 돌파하는 것이 가능해졌다.즉, 용국의 거리에서 젊은이 하나를 아무나 붙잡는다 해도, 무종에 입문했든 아니든 최소한 병왕계의 실력은 가지고 있었다!그런데 한지훈은 어쩐지, 완전한 일반인인 것 아닌가?그때, 한 젊은 여자 직원이 조심스레 진천국 쪽을 흘끗 바라보았다.진천국이 처음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부터 그녀는 이 두 사람이 결코 선량한 손님이 아니라고 느꼈다.이 사람들이 한지훈에게 조금이라도 해를 끼치려 한다면, 그녀는 분
진천국은 바로 이러한 고려 끝에, 갑작스럽게 이 일에 진지하게 대응하게 된 것이었다.“음, 진 씨 형님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진씨 가문이 부흥한다면 손해를 보는 건 나씨 가문일 테니까요. 하지만 제 생각엔 그 옥기점 사장은 나계홍 손에 놀아나는 한낱 졸개에 불과할 겁니다!”“만약 진 씨 형님께서 부적절하다고 느끼시면, 저는 형님과 함께 그놈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소 씨 노인이 냉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가 보기엔, 그 작은 옥기점 사장은 분명 나씨 가문 쪽에서 무언가를 받아먹고, 나씨 가문 사람들과 짜고 이 한바탕 연극을 벌이고 있는 것뿐이었다. 단지, 진씨 가문과 장씨 가문의 혼인을 방해하기 위해서 말이다!“좋습니다. 장씨 가문 쪽에서도 이미 사람을 보내 소식을 전해왔고, 장 도련님이 선이를 꽤 마음에 들어 한다더군요. 지금 모든 준비는 끝났고, 이제 바람만 불어주면 됩니다. 이 중요한 시점에 절대로 어떤 변수도 생기게 해선 안 돼요!”진천국은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나계홍이란 자는, 워낙 생각이 치밀해서 아무나 선택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설령 위장이라 해도, 나계홍이 그렇게 쉽게 누군가에게 예를 갖추는 성격은 아니잖습니까.”“그러니 저희가 만일을 대비해서 준비를 또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소 씨 노인이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고, 이에 진천국은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말했다.“그럴 필요 없습니다. 저는 줄곧 그 사람을 몰래 감시하게 해왔고, 지금까지의 결과를 보면 적어도 그가 오대명산과는 전혀 연관이 없다는 건 확실합니다.”“설령 자잘한 종문들과 조금 교류가 있다 해도, 우리 진씨 가문은 그런 것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요.”“더군다나, 장씨 가문을 감히 거스를 수 있는 종문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장령풍은 단순히 장씨 가문의 재능 있는 젊은이일 뿐만 아니라, 믿을 만한 정보에 따르면 장령풍은 반보 인왕계 강자의 자손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장도령이 사망한 뒤, 장씨 가문이 장령풍을 온 힘을 다해 양성하고
진선은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 들어선 이가 소 씨 노인임을 확인했다. 그녀는 이어질 상황을 짐작하며 아버지와 소 씨 노인이 또다시 자신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끝없는 잔소리를 늘어놓을 것을 예감했다.그래서 그녀는 황급히 말을 꺼냈다. “아빠, 옥기점에 아직 끝내지 못한 일이 많아요. 전 먼저 갈게요!”진선은 말을 마치고는 바로 뒤돌아 나가 버렸고, 진천국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사실, 지난 반년 동안 그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진선과 장령풍의 혼인을 성사시키려 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진선은 장씨 가문의 이 절세 천재에게 전혀 호감을 보이지 않았다.진천국이 아무리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설득해도, 진선은 전혀 꿈쩍하지 않았다.사실 진씨 가문 역시 무도 세가였다.수십 년 전, 용국의 무종이 조정의 억압을 받으면서 진씨 가문은 무도를 버리고 상업으로 전환한 것이다.그러나 영기가 부활하고, 역외의 강자들이 속속 돌아오면서 세상은 다시 수백 년 전 무종이 독주하던 시대로 회귀하는 듯한 기세였다.이에 진천국은 다시 무종 문파에 의지해보려는 생각을 품었다.하지만 오대 명산이나 장씨 가문 외의 다른 무종 문파들은 그에 비해 전혀 쓸모가 없었다.게다가 진씨 가문 조상 대에 이미 장씨 가문과 인연이 있었기에, 장씨 가문에 기대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선택이었다!진선이 고개를 끄덕이기만 해도, 진씨 가문은 장씨 가문의 위세를 빌어 재기할 수 있다.그때가 되면 진씨 가문은 틀림없이 비상하여, 더는 이 산성 같은 촌구석에서 연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소 씨 어르신, 사실 지난 1년 동안 선이는 한 옥기점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제가 알기로는 그 옥기점의 주인에게 약간의 감정이 있는 듯합니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진천국은 평소 소 씨 노인과 허물없이 대화하곤 했기에, 이 일 역시 숨김없이 털어놓았다.사실 이 일이 장씨 가문과 관련이 없더라도, 그는 체면이 깎여 몹시 불쾌했다.무엇보다 그 옥기점의 사장은 이미 아내와
이 둘과 비교하면, 기자인 그녀는 마치 한 줌 모래처럼 미미한 존재였다.임설의 얼굴에 두려움이 떠오르자, 유 씨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설아, 사실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지금의 용국은 이미 몇 년 전의 용국이 아니야. 너도 알겠지만, 내 뒤에는 오대 명산이 있단 말이지.”“우리 오대 명산이 널 지지하는데, 뭐가 두려운 것이냐? 설령 용국 조정이라도 감히 우리를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그날의 대화는 줄곧 내가 한 말이었으니 잡으려면 나를 잡는 거지, 널 잡을 일은 없다.”임설은 그 말을 듣고 다소 안심한 듯 보였으나, 여전히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지만…… 유 씨 어르신, 그건 전부 어르신의 추측일 뿐이에요. 우리 손엔 아무 증거도 없잖아요!”“증거? 증거가 그렇게 중요해?”유 씨 노인은 냉소하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무종 전체가 내 말에 동의한다면, 그게 바로 증거지!”비록 천릉자가 대량산에서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지만, 한지훈의 명예를 실추시키기만 한다면 국왕은 가장 중요한 의지를 잃게 된다.바로 이때, 국왕의 자리를 노린다면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이때, 산성시.산중에 위치한 호화로운 별장에서, 검은색 양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젊은 여인에게 말했다.“선아, 며칠 전 장 도령께서 놀란 일이 있었단다.”“우리 천산 장씨 가문과는 대대로 교류가 깊었지. 어떤 의미에서든, 넌 가서 한 번은 그를 봐야 하지 않겠니?”“그리고 네 신분도 좀 자각해야 해. 진씨 가문의 큰 아가씨가 어찌 그리 속된 백성들처럼 옥기점 같은 데서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냐!”이 중년 남자의 이름은 진천국, 산성 진씨 가문의 가주였다!진천국이라는 이름은 산성 전체에서 거의 군왕이나 다름없는 존재다.특히 영기가 되돌아온 이후, 진천국의 사문은 현재 산성 최대의 종문인 천앙종이었다!게다가 진씨 가문은 지금 천산 장씨 가문과 우호 관계를 다져가며, 혼인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만일 혼인이 성사된다면, 진씨 가문은
사실, 한지훈이 산에 들어서는 길목에서 이미 유 씨 노인의 말을 다 듣고 있었다.오대명산과 무종 사람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어찌 한지훈이 모를 수 있을까!최근 이 시기 동안 천릉자의 기세가 드높다는 건, 곧 오대명산이 천릉자를 내세워 한지훈이 용국에 세운 공적을 지우려는 의도임을 뜻한다.게다가 이 기회에 국왕의 지위마저 위협하려는 것이었다.개인의 영예나 치욕 따위는 한지훈에게는 이미 중요하지 않았지만, 누구든 국왕의 권위를 흔드는 일만큼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오대명산의 계략을 깰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천릉자의 기세가 가장 드높을 때 정면으로 한방 먹이는 것이었다!그리고, 천릉자가 살해당한 사건은 과연 큰 파장을 일으켰다!그 전에 오대명산은 이 일을 공개적으로 보도하게 하려고 수많은 언론 기자들을 초청했다.하지만 정작 결과는, 제 발등을 찍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현장에 와 있던 언론사 수가 너무 많았고, 모두가 생중계로 현장을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게다가 수많은 인플루언서들까지 합류하며 정보를 봉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이 사건은 마치 다리가 달린 듯, 하룻밤 사이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흥! 정말 웃기는군. 그 따위가 어찌 한지훈과 견줄 수 있단 말인가? 한지훈보다 깨달음이 뛰어나다고? 타고난 자질이 낫다고? 결국 누가 죽였는지도 모른 채 죽어버렸잖아!”“흥, 내 보기엔 그냥 날뛰는 광대였을 뿐이지!”“날뛰는 광대? 그래도 광대는 멀쩡한 머리를 잃진 않겠지! 하하하…”온라인에서는 조롱이 난무했고, 항산의 사람들은 아예 모습을 드러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한순간에 오대명산의 기세는 급격히 꺾이고 말았다.그 뒤 한 달 동안, 모든 이들의 화제는 이 사건에 쏠렸다.오직 한지훈만이 조용히 천생서문에 기록된 내용을 따라 진지하게 약제를 조합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그에게는 강우연이 천신계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이런 화제들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게다가 천하 정세는 이미 크게 변하고 있었고,
그들은 누군가가 도중에 강탈할 거라는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장령풍이 자소화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는 약속대로 천릉자에게 져주지 않을 가봐 걱정됐다. “여러분, 드디어 가장 관건적인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과연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됐을지 함께 알아봅시다!”한 인터넷 BJ는 생방송을 켜고는 팬들을 향해 말했다. 그렇게 시간은 1분 1초가 흘렀고, 모두들 손꼽아 승패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산 길에서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걸어 나왔다. 다만, 천릉자와 장령풍 두 사람의 종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설마 사고라도 난 건 아니겠죠? 장 사부님이랑 천릉자 사부님은 왜 여태까지도 나오지 않는 거죠?”임설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사실 또 다른 가능성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두 사람이 너무 격렬하게 싸운 나머지 모두 중상을 입어 전혀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지는 않을 거야. 필경 모두 동문 사람이기에 두 사람이 한판 붙게 된다 하더라도 반드시 어느 정도 여지를 남겨둘 거야!”유 씨 어르신은 확신에 가득 찬 말투로 말했다. 알다시피 이번 대결은 5대 명산이 함께 손을 잡고 벌인 판이다. 게다가 천산 장 씨 집안도 이 계획에 얽혀있었기에, 절대 어떠한 실수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주위에는 또 수많은 고수들이 지켜보고 있을 텐데, 의외의 사고란 발생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유 씨 어르신의 말이 떨어지기도 바쁘게, 산길에서는 어두운 안색의 항산 제자 4명이 단대 하나를 들고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이내 카메라들은 일제히 그 단대에 초점을 뒀고, 모든 기자들은 순간 숨을 죽였다. 단대 위에는 머리 없는 시체 한 구가 누워 있었고 옆에는 웬 동그란 물건이 놓여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서야,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바로 천릉자의 머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른 한편, 몇 명의 장 씨 집안 자제들 역시 단대 하나를 들고는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장령풍
그러나 한지훈은 장령풍을 투명 인간 취급한 체 눈 깜짝할 사이에 숲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한지훈이 멀어질 때까지, 장령풍은 여전히 깊은 공포 속에 빠져 있었다. 사실 천릉자는 실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방금 그와의 정면승부에서, 그는 천릉자의 털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두 사람의 실력은 그야말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천릉자의 촘촘한 검망을 깨뜨려 그의 머리를 아작 낸다는 건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최선을 다해봤자 기껏해야 천릉자에게 상처만 입힐 거라 확신했다. 천릉자를 죽이는 건 하늘의 별 따기보다도 더욱 어려웠다. 모두들 알다시피 검망 아래에서는, 수천 갈래의 검의 습격을 마주해야 했다. 그 검망을 피해 사람을 죽이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그 검방을 피하는 것조차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설사 2성 천신계 강자라 하더라도 밀집된 검망을 마주하게 되면,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게 되고 더욱이는 천릉자를 사지로 몰아넣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지훈은? 오직 나뭇잎 하나만으로, 마치 어린애 장난처럼 닥치는 대로 나뭇잎을 던져 천릉자의 머리를 아작 냈다. 지금 이 순간, 산 전체는 비할 데 없이 조용했다. 한지훈이 멀어질 때까지 장령풍은 줄곧 조용히 땅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고 있었다. 그는 심지어 감히 고개 한번 들어 앞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그렇게 30분이 흐르고 나서야 장령풍은 고개를 살짝 들었다. 한지훈의 자취가 더 이상 보이지 않자, 그는 비로소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익숙한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장령풍, 오늘 벌어진 일을 소문내면 장 씨 집안은 멸망하게 되는 줄 알아!”“네... 저는... 아무것도 못 본겁니다!”크게 놀란 장령풍은 벌벌 떨었다. 한지훈의 경고는 그에게 있어서 성지였다. 한지훈은 뱉은 말은 무조건 지키는 사람이라는 걸,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유럽은 용경과는 80리 정도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오직 용국을 위해 복수
게다가 사방에서 한지훈을 헐뜯고 있는 발언들에 대해, 장령풍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한지훈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몇몇 명산 모두가 그의 적이었다. 그렇기에 한지훈이 남의 도움을 받았다는 얘기 자체는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역외 강자조차도 흔들 수 없는 거물을, 누가 감히 건드리려 하겠는가? 그러나 옆에 있던 천릉자는, 장령풍의 표정 변화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한지훈의 정체가 뭐든, 자신이 쟁취해야 할 성과를 이대로 빼앗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내 그는 장령풍과 상의도 하지 않고 바로 손을 들었다. 곧이어 그물처럼 촘촘한 검망이 한지훈의 정수리 위에 펼쳐졌다. 그는 단 한 방에 한지훈을 산산조각 내어,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을 건드리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줄 작정이었다. 온 하늘을 덮은 검망에도, 한지훈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닥치는 대로 나뭇가지에서 잎사귀 하나를 따냈다. 그러고 나서는 천릉자가 서있는 쪽으로 잎사귀를 가볍게 던졌다, 곧장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잎사귀에, 제대로 화가 난 천릉자는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 잎사귀로 사람을 다치게 하는 건, 무종 모든 종사들의 장기였다. 그러나 종사계의 실력은, 그저 전신계와 같을 뿐이었다. 그런데 일성 천신계 고수인 자신이 뜻밖에도 전신계 같은 땅강아지한테 무시당하게 될 줄이야? 생각할수록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른 천릉자는 곧바로 또 하나의 검망을 휘두르며 사악한 웃음을 보였다. “네 이 녀석, 천신계 강자를 상대로 도전장을 내밀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오늘 내가 제대로 보여주마!”“죽어!”지금 이 순간, 천릉자는 이미 한지훈을 죽은 사람으로 취급했다.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눈 깜짝할 사이에 한지훈은 산산조각 나게 될 것이다. 예상치 못한 눈앞의 상황에 장령풍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전에 이미 한지훈의 전력을 직접 목격했었다. 모든 전투에서, 한지훈은 오릉군 가시를 던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