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훈이 마지막에 남긴 한 마디는 충분히 위협적이고 강렬했다.한참 지난 뒤, 길시아는 뭔가 떠오른 듯 재빨리 바닥에 쓰러져 있는 진우철에게 다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우철 씨, 괜찮아요? 미안해요. 다 제 탓이에요…”팍!진우철은 길시아의 뺨을 힘껏 내리치더니 악독한 얼굴로 욕설을 퍼부었다.“나쁜 년! 우리 진 씨 가문에서 절대 오늘 이 일을 쉽게 넘어가지 않을 거야!”말을 끝낸 진우철은 자신의 손목을 움켜쥔 채, 사람들을 거느리고 떠났고 길시아는 바닥에 주저앉아 고통스럽게 바닥을 내리치며 오열하기 시작했다.“아악! 한지훈! 한지훈! 죽여버릴 거야!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네가 내 모든 걸 망쳤어! 죽여버릴 거야!”밤 사이에 한 씨 가문의 망나니 한지훈이 길시아의 약혼식을 망쳤다는 소식이 S 도시의 상류층에 쫙 퍼졌고 사람들은 한지훈의 신분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그러다가 결국, 누가 퍼트린 소문인지는 모르지만, 한지훈이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실력으로 열정만 가지고 돌아왔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고 S 도시의 상류층 가문들은 한지훈을 더욱 얕잡아 보게 되었다.또한 사람들은 5년 전에 사라진 망나니 하나조차 처리하지 못한 길 씨 가문에 대해서도 실망하고 S 도시의 체면에 흠집을 냈다고 언짢아 했다. 마침 그날 밤, H 시 진 씨 가문에서 길 씨 가문과의 혼약을 취소한다고 정식으로 발표했다.이 일은 어마어마한 파장을 일으켰으며 길 씨 가문과 비즈니스 합작을 이어가고 있던 기업들마저 급하게 계약을 해지했다.하지만 정작 이번 일의 주인공인 한지훈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는 낭월 산장에서 깨어난 강우연의 곁을 지켰으며 곽 명의가 만든 보신탕을 들고 와서 조심스럽게 강우연에게 먹여주었다.강우연은 행복에 가득 찬 얼굴로 한지훈을 보며 눈앞의 이 남자가 주는 든든함에 푹 빠져 있었다.“아 맞다. 지훈 씨, 고운이 눈 진짜 고칠 수 있어요?”강우연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고 어느새 붉어진 눈시울에는 기대와 긴장으로 가득했으며 고운이가
강우연이 한지훈의 팔을 잡아당겼다.“얼른 말해 줘요. 초대장은 어디서 받은 거예요? 누가 준 건데요? 설마 할아버지예요?”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에 한지훈이 피식 웃었다.“강희연이 직원 편에 보냈던데?”“언니가요? 언니가 왜...”강우연은 실망스러우면서도 의아했다.강희연이라면 누구보다 그녀를 증오하는 사람인데 왜 굳이 초대장까지 보낸 걸가?“강희연 그 여자는 널 싫어할지 모르겠지만 할아버지는 널 아예 내치지 못하시는 게 아닐까? 괜한 걱정하지 마. 초대장도 받았겠다 내일 같이 가자. 너희 가족들한테 할 얘기도 있고.”“같이 가주겠다고요? 정말... 괜찮을까요? 할아버지는 지훈 씨 싫어하시잖아요. 내일 좋은 날인데 할아버지가 화라도 내시면...”강우연의 목소리가 모기 소리가 되어 사라졌다.이에 한지훈이 다정하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괜찮아. 너 아직 다친 데도 다 안 나았고 내가 같이 가고 싶어서 그래.”잠깐 고민하던 강우연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그래.”하지만 그럼에도 강우연의 두려움은 딱히 가시지 않았다.지금까지 가족들에게 남자친구 한 번 소개해 준 적 없는 그녀이다.게다가 상대는 한지훈. 5년 전, 한지훈 때문에 강우연과 그 가족들이 당한 수모가 있으니 분명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그리고 한지훈 때문에 지난 5년간 미혼모로 살면서 당했던 모욕과 조롱들까지.솔직히 5년내내 강우연은 한지훈을 원망해 왔었다.하지만 한지훈이 나타난 그 순간, 원망과 증오는 놀랍게도 연기처럼 사라져버렸으니 참 사람 감정이라는 게 덧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한동안 강우연과 시간을 가진 한지훈은 딸 방으로 향했다.창가에 서서 턱을 괸 채 햇살을 쬐고 있는 한고운의 모습은 동화속 백설공주가 현실세계로 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아빠 왔다.”“아빠!”그의 목소리에 쪼르르 달려온 한고운이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딸을 번쩍 안아든 한지훈이 작은 코를 살짝 잡아당겼다.“내일 할아버지 생신이셔. 엄마랑 파티에
“아빠, 그만 좀 해! 얼굴 닳겠어!”얼굴을 찡그리는 한고운의 투정도 귀여워 한지훈의 입꼬리는 어느새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행복한 미소를 머금은 채 한고운의 방을 나서는 그를 발견한 용일 역시 흐뭇한 표정을 지어보였다.“왜 실실거려?”“아, 죄송합니다.”저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는 걸 인지한 용일이 바로 항상 보던 포커페이스로 표정을 가다듬었다.“형님께서 이렇게 웃으시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아서요.”이에 한지훈은 다시 씨익 웃어 보였다.“그래?”‘하긴 전에는 웃을 일도, 웃을 생각도 없었지.’“참, 내일 우연이 할아버지 생신이래. 우리도 파티에 초대받았으니까 선물 좀 준비해 줘. 사람들이 우리 우연이 절대 무시 못하게 최고의 선물로.”한지훈의 말에 용일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어느 정도 선물이면 될까요?”“네가 알아서 해. 그냥...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 우리 우연이가 주인공이 될 정도의 선물이면 될 것 같아. 그 사람들이 우리 우연이를 내쫓은 거 후회하게 만들 거야. 제발 다시 돌아와달라고 애원하게 만들 거야.”집에서 쫓겨나고 힘들게 살았을 그녀를 생각하니 어느새 한지훈의 입가에 걸렸던 미소가 사라졌다.‘두고 봐...’로열 호텔.오늘 강준상의 생일 잔치는 로열 호텔에서도 가장 럭셔리한 파티홀을 장소로 잡았고 S시의 유명 인사들이 온갖 진귀한 선물들을 들고 참석했다.하지만 강우연과 한지훈이 파티홀에 모습을 드러내자 손님들은 물론이고 가족들까지 그들을 향해 수군대며 조롱의 눈길을 보내왔다.강유리는 남자 때문에 내쫓긴 데다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킨 강씨 집안의 죄인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게다가 남자 때문에 그 망신을 당해 놓고 또 남자와 함께 오다니.“쟤 우연이 아니니? 저 옆에 있는 남자는 또 누구래?”“어르신께서 마음을 돌리신 건가? 쟤한테 초대장을 다 보내시고...”“그래봤자 이미 쫓겨난 애야. 어르신도 나이가 드시니 마음이 약해지신 거지.”“그런데... 저 남자 왠지 낯이 익은데. 한지훈... 아니야? 그 한씨
그리고 한지훈의 품에 안긴 한고운과 한지훈을 번갈아 바라보던 강신이 불만스레 물었다.“이 남자는 또 누구야? 왜? 여자 혼자 애 키우려니 좀 벅찼나 보지? 시커먼 때깔 보니까 대충 공사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는 사람인 것 같은데... 누나도 저 애도 이제 우리 집안 사람 아니야. 그러니까 당장 꺼져.”악담만 잔뜩 내뱉은 채 돌아서려던 강신이 다시 홱 고개를 돌렸다.“허, 누나 설마 돈 떨어진 거야? 설마 구걸하려고 온 건 아니지? 미안한데... 누나한테 줄 돈은 한 푼도 없어. 몰래라도 누나 돕는 사람 역시 내쫓아버릴 거라고 할아버지가 말씀하셨거든.”이복동생이긴 하지만 그래도 가족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나 가시돋친 반응에 강유리는 실망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나... 초대장 받아서 온 거야. 할아버지가 초대해 주셔서 온 거라고...”이와 동시에 강우연이 가방에서 초대장을 꺼내 강신에게 건네주었다.하지만 초대장을 홱 빼앗은 강신은 바로 그것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됐고! 초대장을 어디서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누나는 여기 올 자격없어. 그러니까 말로 할 때 누나 발로 나가. 경비 부르기 전에 당장 꺼지라고!”“이걸... 이걸 찢으면 어떡해. 이거 할아버지께서 주신 거란 말이야...”바닥에 주저앉은 강우연이 다급하게 초대장 조각을 줍기 시작했다.다른 사람에게는 그저 평범한 종이쪼가리일 테지만 강우연에겐 의미가 남달랐다.5년만에 처음 가족 행사에 초대받는 자리, 이제 드디어 그녀를 용서해 주는 건가 싶어서 기뻤고 이 초대장이 강우연에게는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 희망의 끈이나 마찬가지였다.그런데 그 희망이 산산조각 나버리다니...한편, 어두운 표정의 한지훈이 바닥에 엎어진 채 종이 조각을 주워모으는 강우연을 일으켜세웠다.하지만 강우연은 그의 손길을 힘껏 뿌리쳤다.“이거 놔요. 할아버지가... 할아버지가 주신 초대장이란 말이에요...”“나도 알아.”그리고 고개를 돌린 한지훈이 여전히 건방진 표정의 강신을 향해 말했
‘하, 왜 이렇게 착한 거야...’착하다 못해 무르기까지 한 강우연을 힐끗 바라보던 한지훈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결국 손에 힘을 풀어주었다.그러자 덜렁거리는 손목을 움켜잡은 강신이 바로 펄쩍 뛰더니 강우연과 한지훈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강우연! 하, 어디서 남자를 만나도 저런 깡패 같은 자식을... 그래. 안 가겠다 이거지? 여기서 딱 기다려.”말을 마친 강신이 부랴부랴 자리를 뜨고 소란에 시선이 쏠리기 시작했다.“저 남자는 누구야? 세상에... 지금 신이 때린 거 맞지?”“하, 신이가 얼마나 독한 애인데... 유리 쟤는 어쩜 남자를 만나도 저딴 애를 만나니?”“그런데 아까 저 남자... 여자애가 자기 딸이라고 하지 않았었나? 설마... 저 자식이 바로 5년 전 그...”누군가의 목소리에 하객들의 술렁거림은 더 커져만 갔다.5년 전, 길시아의 집안에서 거금을 들여 소문이 퍼져나가는 걸 막은 뒤로 한지훈에게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어찌나 울었는지 어느새 눈시울이 빨개진 강우연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지훈 씨, 괜찮겠죠? 신이는 워낙 자존심이 강한 애라... 아까 사람들 앞에서 그 망신을 당했으니 분명 복수하려고 들 거예요. 우리... 지금이라도 돌아갈까요?”하지만 싱긋 미소를 지은 한지훈은 역시나 똑같은 말로 강우연을 안심시켰다.“괜찮아. 내가 있잖아.”한바탕 소란끝에 세 식구가 드디어 좀 앉아보려던 그때 기세등등한 얼굴의 강신이 중년 남녀와 함께 다시 다가왔다.“엄마, 아빠. 이 자식이야! 이 자식이 내 팔을... 분명 강우연 쟤가 시킨 거라니까? 어떻게 좀 해봐!”강신과 함께 등장한 중년 남자는 근엄한 표정이 인상적인 사람이었고 이목구비가 언뜻 강우연과 많이 닮아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 서 있는 여자는 피부며 몸매며 장성한 아들을 두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관리가 잘 되어 있는데다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딱 봐도 부잣집 사모님 같아 보였다.“강우연! 네가 감히 여기가 어
강우연이 이렇게 놀랐으니 강학주를 비롯한 그녀의 가족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게다가 한지훈?강우연에게 못된 짓을 저질러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킨 그 썩을 자식이 아닌가?“너 미쳤어! 저 범죄자 자식 경찰에 신고는 못할망정 뭐? 남편? 저 자식 때문에 우리가 무슨 수모를 당했는지 잊은 거야? 너... 설마 지금 일부러 이러는 거니?”서경희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표정이 안 좋긴 강학주 역시 마찬가지였다.“강우연, 꼴도 보기 싫으니까 당장 꺼져. 우리 가족 중에 네 얼굴 보고 싶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으니까1”말을 마친 강학주가 돌아서려 했지만 부리나케 달려나간 강우연이 그의 바지가랑이를 잡고 애원했다.“아빠, 제발... 제발 내쫓지만 말아주세요. 제가... 제가 다 잘못했어요. 지난 5년간 단 한 번도 가족들을 잊어본 적 없어요. 그러니까... 제발...”가뜩이나 작은 그녀의 등이 더 불쌍하게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하고...그 모습을 바라보는 한지훈은 가슴이 미어질 것만 같았다.하지만 강학주는 매정하게도 딸의 손을 내쳤다.“가족? 그래. 가족이니까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마. 저 자식더러 우리 신이한테 사과하라고 해!”쿠궁!‘사과? 지훈 씨가 잘못한 게 아닌데 사과를 어떻게... 하지만 여기서 거절하면 정말 영원히 집에서 쫓겨날지도 몰라...’혼란스러운 마음에 강우연은 말없이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흥. 지금 남자 때문에 가족을 버리겠다는 거니? 좋아. 오늘부터 집은 물론이고 강운그룹이 운영하는 그 어떤 곳에도 발을 들이지 못할 거다. 앞으로 딸 하나 잃었다 생각하고 살면 그만이야!”말을 마친 강학주가 단호하게 돌아서고 서경희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강우연을 향해 비웃음을 날려주었다.“그래. 지금 그 자리가 네게 어울리는 곳이야. 기어오르지 말고 평생 그렇게 살아.”그리고 복수에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강신은 심지어 그녀에게 침을 뱉기까지 했다.“퉷, 나 참 더러워서...”“아빠! 안 돼요! 제발 저 버리지 마세요... 제발...”엄
하지만 강신은 한지훈의 사과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지 한 술 더 뜨기 시작했다.“그냥 말로 미안합니다라면 끝이야? 당장 무릎 꿇어. 그리고 내 팔 이렇게 만들었지? 너도 똑같에 만들어줄게.”이에 고개를 번쩍 든 한지훈의 눈에서 살기가 내뿜겨져 나왔다.“적당히 해...”‘뭐야? 저 눈빛은?’그 눈빛만으로도 숨이 멎는 것 같은 기분에 강신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한편, 한 기업의 총수인 강학주는 바로 뭔가 이상함을 눈치챘다.‘5년 전에 먼 발치에서 봤을 땐 분명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분위기가 아예 바뀌었잖아?’“신아, 그만! 일단 병원부터 가봐. 그리고 너희도 앉아. 경고하는데 조용히 밥만 먹고 가라. 또 소란을 일으키면 그땐 정말 가만히 안 둘 거니까.”이에 한지훈은 너무 울어 비틀거리는 강우연을 부축해 자리에 착석했다.잠시 후, 생일 파티가 시작되고 너도 나도 강준상에게 준비한 선물을 건넸다.“할아버지, 관우 씨가 어렵게 구한 백년근 인삼이에요. 앞으로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깔끔한 검은색 드레스 차림의 강희연이 정교한 상자에 담긴 인삼을 건넸다.“아이고, 이 귀한 걸. 역시 이 할아비 생각해 주는 건 우리 손녀밖에 없네.”생일을 맞이해 한복까지 곱게 차려입은 강준상이 호탕하게 웃더니 미리 준비한 봉투를 건넸다.“자, 이 할아버지가 주는 용돈이다.”이때 강희연 옆에 서 있던 남자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허리를 숙였다.“할아버님, 생신 축하드립니다. 오관우라고 합니다.”“어머? 오관우? 오찬그룹 회장 오관우? 어머, 희연이 남자 하나 잘 물었네.”“그러니까. 기업 시가 총액만 아마 500억이 넘지 않아?”“강 대표 사업에 큰 도움이 되겠어.”오관우의 자기소개에 하객들이 술렁대기 시작하고 오관우도, 강희연도 어깨가 으쓱해졌다.‘그래. 바로 이 느낌이야. 다들 나만 바라봐주는 이 느낌...’“아이고, 이 늙은이 생일이 뭐라고 여기까지. 어서 앉게.”강준상 역시 오관우를 바로 자신의 옆자리에 앉혔다.
하객들의 조롱이 날카롭게 강우연의 귀를 파고들자 땅만 내려다보며 걷던 강우연의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시간이 지나면 조금이나마 나아질 거라 생각했는데.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녀에 대한 사람들의 적대감은 여전했다.‘내가... 내가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지?’5년 동안 가족들 도움 하나 받지 않고 혼자 힘으로 고운이를 키워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났다.그리고 이 모든 건 전부 한지훈 때문이라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그와 한발 멀어졌다.‘무서워... 오늘처럼 중요한 날, 5년 전 그날처럼 또 지훈 씨 때문에 사람들의 비난을 받게 될까 봐. 또 다시 부모님에게, 할아버지에게, 다른 가족들, 친척들에게 죄인이 되어버릴까 봐...’오만가지 생각에 강우연의 머릿속에 어지러워질 때쯤, 따뜻하고 큰 손이 핏기 하나 없이 차게 식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깜짝 놀라 고개를 번쩍 들어보니 역시나, 한지훈의 맑지만 단단한 눈이 그녀를 마주보고 있었다.“걱정하지 마, 내가 있잖아.”한지훈이 나지막히 속삭였다.짧은 한 마디였지만 사랑이 뚝뚝 흘러넘치는 두 눈과 손끝에서 전달되는 따뜻한 온기가 상처투성이인 그녀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듯했다.‘그래...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모두가 날 버렸을 때 내 곁에 있어준 사람은 지훈 씨뿐이야. 이제 내 가족은 지훈 씨랑, 고운이라고.’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한지훈을 바라보던 강우연 역시 손을 꼭 잡았다.이때,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파티홀의 분위기를 더 무겁게 만들었다.“강우연? 네가 여길 어떻게... 게다가 저 자식까지. 너, 할아버지 쓰러지시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강우연이 등장하는 순간, 짐짓 마음에 안 드는 척 미간을 찌푸렸지만 사실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고 있던 강희연이었다.‘그래... 너라면 무조건 올 줄 알았어.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오늘 제대로 밟아줄게. 다시는 얼굴 들고 살지 못하도록.’‘뭐지? 지훈 씨가 분명 초대장은 언니가 보낸 거라고 했는데.’강우연
자소화의 등장 소식은, 수많은 구경꾼들을 몰려들게 하여 어느새 인산인해를 이루게 되었다. 고급 호텔은 물론이고, 웬만한 작은 여관들도 사람들로 붐볐다. 다행히 육천릉은 출발하기 전에 일찍이 호텔을 예약해 뒀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들은 아마 차 안에서 비집고 누워 밤을 보내야 했을 것이다. “한 선생님, 바로 앞에 제가 예약한 호텔이 있습니다. 저희는 오늘 밤, 여기서 묵는 거로 하죠.”육천릉은 저 멀리에 보이는 호화로운 한 호텔을 가리키며 한지훈을 향해 말했다. 한지훈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다시 보니 육천릉은 정말 세심한 사람인 것 같아, 그에 대해 약간의 호감도 가지게 되었다. 곧이어 자소화가 완전히 피어나게 되고 약효 역시 절정 상태에 이르게 될 무렵, 천릉자와 장령풍 두 사람도 대양산 기슭에 모이게 됐다. 두 사람의 등장에 이내 또 수많은 사람들이 주목하였다. 필경 두 사람은 바로 이 사건의 핵심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천릉자는, 인터넷상에서 줄곧 사기를 펼쳐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은 그를 한지훈이라 간주하고 있었다. 곧이어 천릉자가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양산시 전체의 교통이 마비되었다. 공항에 둘러서서 천릉자와 기념사진을 찍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더욱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이 상황에 천릉자는 더욱 기세등등해졌다. 그렇게 짧은 몇 킬로미터를 무려 세 시간이나 달려서야, 한지훈 일행은 비로소 망천 호텔에 도착하였다. 호텔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직원은 급히 마중 나와, 육천릉을 도와 주차를 해주고 한지훈을 데리고 함께 호텔 로비로 들어섰다. 육천릉은 일단 한지훈을 휴식 구역으로 모시고는, 그는 운전기사와 함께 직접 한지훈을 도와 체크인까지 하였다. 곧이어 육천릉이 체크인을 마치고 한지훈에게로 다가가는 순간, 몇 명의 젊은 남녀들도 문을 밀고 호텔로 들어섰다. 최신 트렌드에 맞춘 옷차림에 하나같이 당당한 기세가 가득한 젊은이들은, 한눈에 봐도 출신이 심상치 않은 부잣집 자녀들이었다. “아이고, 피곤해 죽겠네.
낙천기가 차갑게 웃어 보였다. 사실 이 모든 건 그의 계략이 아니라, 오히려 오대 명산이 뒤에서 조종한 일이었다.심지어 이번 일에는 무신종의 그림자까지 얽혀 있었다!그들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단 하나, 용국 백성들의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한지훈의 이미지를 깎아내리기 위함이었다.영웅이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만들어야만, 무종이 국왕을 끌어내리고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희망이 생기기 때문이다!그가 보기엔, 설령 한지훈이 아직 살아 있다 한들 뭐 어쩌겠는가?지금의 오대 명산에는 고수들이 즐비하고, 심지어 그의 사부 천릉자 또한 이미 한지훈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한지훈이 다시 무슨 큰바람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그는 손짓으로 주변의 젊은 남녀들을 물러가게 한 뒤, 곧바로 전화를 꺼내 천릉자에게 걸었다.신호음이 들리자마자, 그는 아부하는 목소리로 말했다.“사부님, 이미 지시하신 대로 전부 준비해 두었습니다. 기자들도 저희 쪽 인물로 배치했습니다.”“다만 한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이번 일은 한지훈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데, 굳이 그를 끌어들이는 것이 혹여 한지훈의 지지자들을 자극해 반발을 사지는 않을까요?”실제로 요 몇 년간, 한지훈이라는 이름은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게다가 이번 천릉자와 장령풍이 벌이는 자소화 쟁탈전은 전혀 한지훈과 관계가 없었다.이 시점에서 한지훈의 이름을 다시 언급한다는 건 오히려 그의 존재를 사람들 뇌리에 더 강하게 새기는 게 아닐까?“흥!”천릉자의 콧소리가 전화를 타고 전해졌다.“이 안의 현묘한 계책을 네 놈이 어찌 알겠느냐?”“한지훈의 이름을 다시 꺼내는 이유는, 바로 사람들이 기억해 내게 하기 위함이다. 단지 일성 준천신 경지에 머물러 있는 자에 불과했다는 것을 말이다!”“그래야만 그의 위상을 점차 약화시켜, 민심 속 신망을 걷어낼 수 있지!”“게다가, 넌 아직도 한지훈이 용국 사람들의 마음속에 어떤 존재인지 모르는구나. 예전의 한씨공관은 지금도 군대에서 특별히
사실 한지훈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 두 가지 진법은 통달하고 있었다.비교하자면 장씨 가문의 삼절진이 더욱 오묘하고 무궁무진했다.하지만, 둘 중 누구라 해도 한지훈 앞에서는 감히 견줄 수조차 없었다!비록 똑같이 일성 준천신계 강자라 해도, 그 내실은 하늘과 땅 차이였기 때문이다.한지훈이 그동안 더 이상 돌파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기초를 더욱 단단히 다지기 위함이었다!한지훈 일행이 대양산에 도착했을 때, 이곳은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게다가 많은 언론 매체들 역시 정보를 입수하고는 가장 먼저 최고의 촬영 위치를 선점하며, 이 천하제일의 대결을 기다리고 있었다.대양산에서 15리 떨어진 곳부터는 이미 각 대명산이 구역을 나눠 금지구역으로 설정해 버렸다.일반인은 산기슭 근처조차 접근할 자격조차 없었다!그리고 여러 명산의 제자들 역시 모두 구경을 위해 몰려들었다.그중에는 자신의 제자들을 데리고 경험을 쌓게 하려는 거물급 인사들도 있었다.이런 명산 제자들 앞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감히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했다.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는 본인뿐 아니라 가족에게까지 재앙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한 선생님, 제 생각에는 저희도 여기까지만 가죠. 더 이상 안쪽으로 들어가면 안 됩니다! 제 먼 친척 중 한 명이 명산 제자를 한 번 잘못 봤다가, 결국 그쪽 사람들에게 가문 전체가 몰살당했어요!”육천릉이 조심스럽게 말했다.그 친척도 나름 지역에서 이름난 인물이었지만, 단지 그 사소한 실수 하나로 인해 온 가족이 목숨을 잃고 만 것이다. “오? 그 후 어떻게 됐습니까? 설마 명산 제자라고 해서 사람을 함부로 죽여도 되는 겁니까?”한지훈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이 몇 년간, 한지훈은 줄곧 은거하며 세상의 일에 무관심하게 지냈다.하지만 지금의 명산 제자들이 이토록 오만방자하게 굴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하…… 그 뒤야 뭐 있겠습니까. 그냥 아무 핑계 하나 대더니, 무슨 문파간 원한이었다나 뭐라나…… 그러더니 결국 흐지부지됐죠.”
최근 몇 년간 영기가 회복되면서, 몇몇 명산들은 그야말로 제자들이 넘쳐날 정도로 번창했다.그 안에서도, 하늘이 내린 듯한 재능을 지닌 자들도 드물지 않았다.그중에서도 천릉자는 항산에서 최근 몇 년 사이에 새로 받아들인 제자였지만, 그의 성장 속도는 말 그대로 공포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였다! 불과 3~4년 만에, 병왕계의 풋내기에서 항산의 젊은 세대 중 유일하게 천신계 경지에 도달한 자로 우뚝 선 것이다!“사실 그렇게 단정 지을 수는 없어. 한지훈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천릉자와는 비교가 안 되지. 걔는 고작 3년 조금 넘는 시간 안에 병왕계 경지에서 일성 준천신까지 올라갔으니까!”“그래, 저런 성장 속도만 보면 한지훈도 감히 따라갈 수 없지!”“예전에 한지훈이 천신계 경지에 도달하는 데 거의 10년 가까이 걸렸잖아!”이때, 양령아도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며, 사람들의 댓글을 하나하나 읽고 있었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마침내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쟤네가 뭔데 한지훈이랑 비교를 해?!”“당시에 지구는 아직 영기가 복원되지도 않았어! 그런 환경에선 3년이 아니라 300년을 줘도 천신계는 불가능했다고!”흑병대의 정예였던 양령아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그 시절에는 사령관 경지 하나만 도달해도 어마어마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는 것을!지금의 사령관 경지 강자들에겐 그 고통이 뭔지도 느껴보지 못한 허울뿐이었다.하물며 천신계 경지라니?“흥, 내 생각엔 한지훈도 이미 오래전에 미래를 내다봤기 때문에 은거를 선택한 거야!”“은거라기보단, 도망친 거겠지. 그때 걔는 명산들과 생사를 걸 정도의 원한이 있었으니까!”이런 비아냥이 양령아의 댓글 아래 붙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더 이상 한지훈을 언급하지 않았다.대신 화제는 바로 장씨 가문의 장령풍으로 옮겨갔다.왜냐하면, 이번에 그들이 노리는 것은 바로 자소화였고, 이걸 손에 넣는 자는 단시간 내에 이성 현급 천신계 경지로 돌파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장씨 가문은 항상 명산들 사이에서 거리를
각 대명산과 무신종에서 탐내는 보물을 어찌 평범한 사람들이 쉽게 손에 넣을 수 있겠는가?!설령 대명산과 무신종 같은 초대형 세력이랄지라도 경계를 늦출 수는 없다.한순간의 방심으로, 단 한 송이 자소화 때문에 양대 세력 간 대규모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육천릉이 보기에, 비록 한지훈의 실력이 각 세력에서 정성껏 길러낸 젊은 세대들에 미치진 못해도, 자신들과 같은 사람들이 감히 짐작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혹여 운이 좋아서 한몫 챙기게 된다면 얼마나 기쁜 일이겠는가?!설령 얻지 못하더라도, 마음속 깊이 감사를 품게 될 것이다.그때 나씨 가문이 약재 방면의 몫을 자기 가문에 더 많이 나눠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음, 알겠습니다. 우선 먼저 돌아가세요, 필요하면 제가 사람을 보내 부르겠습니다.”한지훈은 미묘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 자소화만큼은, 반드시 손에 넣고야 말리라!누가 탐내든, 한지훈은 결코 이 꽃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좋습니다, 한 선생님. 준비되시면 언제든 연락만 주세요. 제가 직접 모시러 가겠습니다!”육천릉은 정중하게 고개 숙이며 물러갔다.육천릉이 멀어지자, 앞마당 옥기 상점의 한 점원이 한지훈을 힐끔 바라보며 말했다.“한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보통 사람은 아니신 것 같네요?”한지훈은 그를 흘긋 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나도 너랑 똑같은 평범한 용국 국민일 뿐이야.”“한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한 씨이시고, 나 대표님조차 선생님께 그렇게 공손한 걸 보면… 설마 그분은 아니시겠죠?”점원은 조용히 물었다.그가 말한 '그분'이란, 물론 세계에 명성을 떨쳤던 북양왕 한지훈을 가리킨 것이다!한지훈이 은거한 뒤로, 수많은 이들이 그의 행방을 추측해 왔다.조정에서도 끊임없이 한지훈을 찾고 있지만, 누구도 그의 실체를 본 사람은 없었다.“말했잖아, 나도 너처럼 평범한 사람이야. 북양왕이 어떻게 이런 작은 가게에서 일하겠니?”한지훈은 담담히 설명했다.“그래도 제 눈에 선생님은 평범해 보이지
육천릉은 한지훈이 이 일에 관심을 보이자 재빨리 웃으며 말했다.“맞습니다. 제가 보낸 사람들이 어젯밤에 사진을 한 장 보내왔습니다!”그 말과 함께, 그는 서둘러 사진 한 장을 꺼내 한지훈에게 내밀었다.사진은 다소 멀리서 촬영된 탓에 꽤 흐릿했지만, 천생서문에 기록된 묘사와는 놀랍도록 잘 들어맞았다.여섯 장의 꽃잎은 각기 다른 색을 띠고 있었고, 꽃술 한가운데엔 보랏빛 꽃봉오리 하나가 있어 매우 이상하게 보였다! 사실, 영기가 되돌아온 이후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었다.보통 사람의 수명이 이십 년 이상 늘어난 것은 물론, 어떤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일성 병왕의 전력을 지닌 채 태어나기도 했다.이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무도가 성행하게 되었고, 그 성장 속도 또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라졌다.어떤 종문들은 전투력을 빠르게 끌어올릴 수 있는 약까지 제조해 판매하고 있었으며, 일부 국가는 무인으로 구성된 특수 군대를 조직하여 국력을 강화하고자 했다.용국 또한 이런 군대를 조직하였지만, 현재는 어느 국가도 감히 용국의 세계적 지위에 도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실정이었다.따라서 용국의 군대는 주로 무력의 상징으로 기능할 뿐이었다.하지만 자소화라는 이 기이한 꽃의 효능을 제대로 아는 자는 극히 드물었다.한지훈은 예전에 한 야외 생존 프로그램을 보다가, 참가자가 이 자소화를 독초로 착각하고 꺾어 버리는 장면을 직접 본 적이 있었다.당시 그는 속으로 얼마나 애가 탔던지!영기가 되살아난 지금, 이와 같은 신기한 꽃과 약초는 앞으로도 점점 많아질 것이 분명했다.특히 외국과는 달리, 용국의 오대 명산에서는 자소화의 효과에 대해 비교적 잘 알려져 있었다.그 때문에 대량산은 단시간 내에 수많은 종문에 의해 금지 구역으로 지정되었고, 일반인은 근처에도 접근할 수 없게 되었다.그래서 육천릉이 보낸 자들도 멀리서 겨우 이 한 장의 흐릿한 사진을 찍어온 것이 전부였다.“보아하니, 이 자소화를 노리는 이들이 꽤 많겠군.”한지훈
수년 후.산성시의 옥기 상점 안, 장발의 사내가 한 쌍의 남매에게 무공을 가르치고 있었다.소년은 얼굴에 앳된 기색이 역력했지만, 손짓 하나 발짓 하나 모두 본받을 만한 기세를 품고 있었고, 소녀는 더욱이 품새 하나하나에 눈에 띄는 기세와 무형의 위압이 서려 있었다.“여보, 애들 좀 쉬게 하지 그래요? 조금 있다가 도청도 불러서 다 같이 캠핑 가요, 어때요?”강우연은 캠핑에 쓸 텐트와 조리 도구를 챙기며 미소를 지은 채 물었다.한지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멀리 보이는 산을 바라보았다.어느새 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한지훈은 줄곧 이곳에 은거하며, 한편으로는 천생서문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또 한편으로는 세상의 큰 흐름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지금까지도 제법 많은 역외 강자들이 돌아왔지만, 한지훈이 정한 세계의 판도를 감히 뒤흔드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지금, 전 세계에서 유일한 연합국 상임이사 자리는 바로 용국이 차지하고 있었고, 세계의 운영 방식조차 모두 용국의 입김 아래에 놓여 있었다.하지만 이 모든 것은 세속적인 겉모습에 불과했다.실은 세계 각국은 물론, 용국 내부조차도 암류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한지훈은 아직 대세가 변화하기 전에는 지나치게 과시하고 싶지 않았고, 자신의 정체 역시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지금 그는 그저 이 옥기 상점의 사장일 뿐이었고, 강우연은 그저 옥기 상점의 사모였다.비록 나씨 집안에서 종종 사람을 보내 한지훈을 문안하며, 집안 후손들을 수련시키러 보내곤 했지만, 모두 한지훈의 비밀을 철저히 지켜주고 있었다.신룡전의 삼대 용존 역시 지금은 모두 이성 천신계의 실력을 갖추게 되었고, 정작 한지훈 자신은 아직도 일성 준천신계에 머물러 있었다.하지만 그것은 한지훈이 돌파할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천신계에 진입한 후 그는 이 경지에 들어선 자에게는 경지 그 자체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진정 중요한 것은 진법에 대한 이해와 운용이었다.이것이 바로 그가 상위 경지를 거슬
한편, 오륙 무도학원의 진법루 안에서 갑자기 하늘을 찌를 듯한 빛기둥이 솟아올랐다!그 찬란한 빛기둥은 무려 사흘 밤낮 동안 계속되었다!마침내, 진법루 전체가 우르르 무너져 내리더니, 지면 위에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심연이 나타났다.그 심연 아래에는 희미하게 푸른빛을 띠는 광막이 아른거리며 떠올랐다.많은 사람들이 이 경이로운 장면을 휴대폰에 담아냈다!이제서야 오대 명산의 고위 무인들도 어째서 그토록 오랫동안 역외 강자들이 돌아오지 않았는지 마침내 이해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바로, 지구의 영기가 이미 고갈되어 그 강대한 힘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영기의 회복은 단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며, 서서히 회복되는 과정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이 순간, 지표면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예전엔 무릎 높이밖에 자라지 않던 목초가 하룻밤 사이에 사람 키를 훌쩍 넘겼으며, 야생 동물들 또한 이전보다 몇 배는 커진 모습이었다!한 오륙 사냥꾼이 산속에서 몸무게 40킬로그램, 길이 1미터에 달하는 토끼를 사냥했다는 뉴스가 전 세계를 놀라게 했고, 미륙의 어민들이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물고기를 잡아 올렸다는 보도는 또다시 전 세계인의 신경을 자극했다!한때 드문드문했던 숲은 하룻밤 사이에 무성해졌으며, 사막에도 대규모의 오아시스가 생겨나기 시작했다.여러 명산 역시 짙은 안개에 휩싸인 채, 산봉우리들이 치솟으며 기존보다 몇 배나 웅장해졌다!이제 전 세계적으로 무공 수련 열풍이 일었다.특히 용국에서는 무종들이 세속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이전과 다른 점은, 무종들이 이제 더는 조정의 통제를 받지 않는 독립 세력이 되었다는 점이었다!용국뿐 아니라 전 세계 각국에서 무도 재판소가 설립되었고, 이 재판소는 중대한 죄를 저지른 무인들을 심판하기 위한 기관이었다!영기의 귀환과 함께, 그동안 폐관 수련에 들어갔던 무적천이 갑자기 고통스럽고 분노에 찬 포효를 내질렀다.그의 몸과 융합되지 못하고 있던 흑룡의 심장이, 이 순간 묘
모든 이들은 그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그러나 그가 나타나는 순간, 모든 이들이 경외심에 찬 시선을 드러냈다.앨러스의 긴장된 마음도, 그 순간 조금은 누그러졌다.보아하니, 고대 인디언들이 결국 움직인 모양이었다.하지만 한지훈은 허공에 떠오른 그 거대한 얼굴을 단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그저 가볍게 손을 들어 올리자, 하늘에서 눈 부신 별빛이 쏟아져 내렸다!눈 깜짝할 사이에, 미륙 전역에 퍼져 있던 앨러스 족속들이 무수한 별빛에 온몸이 꿰뚫리며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다!그들 중엔 전신계나 사령관 경지의 강자들도 많았고, 본능적으로 반항하려 했지만 천신계 강자 앞에서는 저항이란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단 한 호흡의 시간도 지나기 전에 모두가 가루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한지훈! 네… 네놈은 어째서 우리를 노리는 건가!”눈앞에서 하나둘 동족이 죽어 나가자, 앨러스의 눈동자는 충혈되어 터질 듯 부릅떴다.심지어 하늘 위에 떠 있던 그 거대한 얼굴조차 노기가 서리기 시작했다!비록 앨러스의 족속들이 죄를 저질렀다지만, 한지훈이 이때 손을 쓴 것은 그의 위엄에 대한 공공연한 도전이었다!“한지훈! 경고한다. 이 땅에서 더 이상 행패를 부리지 말아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찬란한 별빛이 다시 한 번 하늘을 덮었다!눈 깜짝할 사이에 이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허공에서 사라졌고, 이국 전체는 순식간에 피바다로 변했다.한지훈은 고개를 돌려 냉랭한 눈으로 하늘의 얼굴을 쏘아보며 말했다.“너희는 모두 죽어 마땅하다!”“그들이 인류 멸망 계획을 실행하려고 망상한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인류를 멸종시키겠다는 그들의 야망이 있다면, 먼저 그들 자신부터 사라져야겠지.”“만약 불만이 있다면 언제든 용국으로 찾아와라.”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하늘 위 거대한 얼굴이 잠시 멍해졌다.그렇다, 앨러스 족은 분명 전 인류를 죽이고, 오직 자신들의 후손만 남겨 지구를 지배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