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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봄가을
한편, K대 대학병원.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갑자기 병실에 들이닥치더니 한고운에게 응급처치를 취하고 있는 의료진들을 전부 내쫓아버렸다.

다급한 마음에 강우연이 목이 터져라 외쳤다.

“당신들 뭐야! 저 사람들을 왜 내쫓아! 이러다 내 딸 진짜 죽는다고!”

또각또각.

저승사자의 목소리 같은 남자의 구두굽 소리가 찰나의 정적을 꿰뚫었다.

곧이어 보디가드들이 홍해 갈라지 듯 양쪽으로 갈라지고 그 사이로 흰 정장을 입은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분명 잘생긴 얼굴이었지만 입가에 걸린 서늘한 미소가 수상한 남자였다.

“강우연, 어떻게? 내가 말한 조건은 좀 생각해 봤어? 이번 사고는 그냥 경고일 뿐이야. 내 말대로 그냥 나랑 몇 번만 만나. 네 딸 지금 바로 구해 줄 거니까.”

남자의 말을 듣던 강우연이 고개를 홱 돌렸다.

혐오와 증오가 가득한 눈으로 남자를 노려보던 강우연이 남자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부여잡았다.

“김태우! 우리 고운이 사고, 네가 낸 거야? 왜! 왜 그랬어 왜! 차라리 나한테 그러지. 왜 애꿎은 애한테 그러냐고! 우리 고운이 이제 겨우 네 살이란 말이야...”

가슴 터져라 소리치던 강우연이 결국 오열하며 작은 주먹으로 남자의 가슴을 내리쳤다.

“이게 어디에 손을 대!”

짝!

거침없이 강우연의 뺨을 날린 김태우가 그녀의 가는 팔목을 꽉 부여잡았다.

“강우연, 왜 이래? 이게 다 네가 자초한 일이잖아. 내가 그 동안 들인 돈이 얼만데. 튕기는 것도 정도껏이어야지. 딸이 있어서 나한테 관심을 안 주는 건가 싶어서 말이야. 그래서 내가 사고 냈어. 커다란 트럭이 저 조그만 애랑 부딪히는데... 어우, 내가 시킨 거지만 좀 잔인하긴 하더라.”

“으아아악! 김태우, 이 악마만도 못한 자식! 이 사이코패스, 변태 자식아! 내가 너 경찰에 신고할 거야! 내가 너 죽여버릴 거야!”

강우연은 있는 힘을 다해 악을 쓰며 김태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돌아오는 건 그의 거센 따귀뿐이었다.

그리고 강우연의 머리채를 꽉 부여잡은 김태우가 눈물로 범벅진 얼굴을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았다.

“경찰에 신고? 날 죽여? 해봐. 신고든 죽이든 해보라고. 내 말 한 마디면 네 딸 이 병원에서 당장 쫓아낼 수도 있어. 아니, S시에 그 어떤 병원도 네 딸 안 받아줄걸? 정말 그러길 바라? 그래, 차라리 그렇게 하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아비도 없이 태어난 더러운 씨, 이참에 그냥 버리고 나랑 다시 시작하자...”

강우연의 귓가에 울리는 김태우의 서늘한 목소리에 그녀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한편, 병상에 누워 얕은 숨을 몰아쉬던 한고운이 피투성이인 손을 힘겹게 들었다.

“나쁜 아저씨... 아저씨, 우리 엄마 놔줘요. 우리 아빠... 우리 아빠가 아저씨 혼내줄 거예요. 우리 아빠... 슈퍼맨이라서... 다 혼내줄 수 있어요...”

김태우에게 머리채와 턱을 붙잡힌 강우연이 겨우 고개를 돌려 훌쩍였다.

“미안해, 고운아. 엄마가 미안해...”

그녀의 눈동자에는 오직 절망과 고통뿐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강우연이 김태우의 허벅지를 끌어안으며 애원했다.

“제발... 내가 이렇게 빌 테니까 우리 딸 좀 살려줘. 이제 겨우 4살이잖아. 4살... 내 딸만 살려주면 시키는 건 뭐든 할 테니까. 제발... 우리 딸 목숨만 살려줘.”

말을 마친 강우연이 바닥에 머리를 내리찧었다.

곧 이마에 붉은 피가 새어나오기 시작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딸을 구할 수만 있다면 이 정도 고통쯤은 충분히 견딜 수 있었으니까.

무표정한 얼굴로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김태우가 허리를 숙였다.

큰 손으로 눈물과 피로 얼룩진 강우연의 얼굴을 든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게. 결국 이렇게 될 거 왜 그렇게 튕겼어. 나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고. 이것 봐. 예쁜 얼굴 다 상하고. 나 너무 속상해, 우연아.”

그리고 주머니에서 실크 손수건을 꺼낸 그가 강우연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분명 부드러운 손길이었음에도 차가운 그의 손가락이 스칠 때마다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강우연은 살짝 움찔거릴 뿐, 차마 피할 순 없었다.

이 남자의 말 한 마디에 인생의 전부인 딸의 목숨이 걸려있으니까.

“됐다. 10분 줄게. 화장 좀 하고 내려와.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명심해. 지금부터 네 딸의 목숨줄은 내가 쥐고 있는 거야. 현명한 선택... 하길 바랄게?”

그리고 음침한 미소와 함께 그녀의 귓가에 이렇게 속삭였다.

“어떡하지? 벌써 네가 가지고 싶어서 미치겠는데? 강우연, 넌 내 거야. 절대 도망칠 수 없어.”

이 말을 마지막으로 응급실을 나선 김태우가 부하들에게 말했다.

“우연이가 나와도 의료진들은 들여보내지 마. 아비가 누군지도 모르는 더러운 씨까지 받아줄 생각은 없어. 쟤는 오늘 무조건 죽어야 하는 거야. 알겠어?”

“알겠습니다!”

한편, 병실에 덩그러니 남은 강우연이 기다시피 침대쪽으로 다가갔다.

한고운의 작은 손을 꼭 잡은 강우연이 아이의 눈가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고운아, 울지 마. 엄마 여기 있어.”

“엄마, 나 너무 아파. 아빠는... 아빠는 언제 오는 거야? 저런 나쁜 아저씨랑 결혼하면 안 돼...”

아이의 맑은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미어질 듯했지만 강우연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아이의 이마에 쪽 입을 맞추었다.

터져나오는 흐느낌이 들리지 않게 입을 꽉 틀어막았지만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막을 길은 없었다.

“그런 거 아니야. 엄마 잠깐 나갔다가 들어올게. 자, 엄마 휴대폰. 이게 아빠 번호니까... 아빠 보고 싶으면 여기에 전화해. 알겠지? 우리 고운이 씩씩하니까 아빠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지?”

말을 마친 강우연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애써 옮겨 화장실로 향했다.

대충 파우치에서 꺼낸 화장품으로 메이크업을 하고 있자니 허탈함이 밀려왔다.

‘딸은 지금 죽네 사네 하고 있는데 엄마라는 사람이... 지금 뭐 하는 짓인지...’

하지만 또 엄마기에 지푸라기라도 붙잡아야 했다.

화장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빨갛게 부운 눈, 그럼에도 아름답고 청초한 얼굴.

거울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던 강우연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짝짝 두드렸다.

‘정신차려, 강우연. 지금은 울고 있을 때가 아니야.’

그리고 방금 전 병실에서 챙긴 과도를 만지작거렸다.

병동을 나서 주차장으로 내려오니 번쩍이는 벤츠가 그녀를 맞이했다.

과도가 든 백을 더 꽉 움켜쥐곤 결연한 얼굴로 차에 올랐다.

“출발해.”

시가를 문 김태우의 얼굴에 의기양양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같은 시각, 응급실 앞.

요동치는 바이탈에 응급실로 들어가려는 의료진들의 앞을 부하들이 다시 막아섰다.

“김태우 대표님 명령입니다.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없으니 물러나세요. 괜히 피 보고 싶지 않으면.”

“아무리 그래도 환자를...”

“지금 저 환자 당장 응급 수술 들어가야 합니다. 안 그럼 죽는다고요!”

의사와 간호사들이 소리쳤지만 남자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남자들의 허리춤에 번뜩이는 칼을 보고 있자니 차마 앞으로 다가갈 용기도 나지 않고.

다들 응급실의 작은 창문으로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한 작은 소녀를 안타깝게 바라볼 뿐이었다.

한편, 병실에 누워있는 한고운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 한지훈의 번호를 눌렀다.

“아빠... 나 너무 아파... 언제 오는 거야? 엄마가... 나쁜 아저씨한테 잡혀갔단 말이야. 나 너무 힘들어... 더는 못 버틸 것 같다고...”

이때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부하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응급실로 들어오더니 휴대폰을 그대로 박살내버렸다.

“야, 이딴 장난 안 먹히니까 포기해.”

그리고 한고운의 마지막 숨결을 지켜주던 산소마스크까지 떼어내버렸다.

“안 돼... 아빠... 아빠.... 흑흑...”

아빠의 이름만을 부르던 한고운의 입에서 시뻘건 피가 흐르고... 쌕쌕 힘겹게 쉬던 숨소리마저 점점 미약해지기 시작했다.

“아빠, 아빠 얼굴 꼭 보고 싶었는데. 엄마가... 아빠는 슈퍼맨이라고 했단 말이야.”

정신이 아득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한고운은 아빠를 부르고 또 불렀다.

밖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의료진들은 결국 고개를 돌려버렸다.

‘아버지란 사람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아니지... 그 사람이 온다 해도 뭐가 달라지겠어. 상대가 김태우 대표인데.’

쿠르릉.

그 순간, 병원 건물이 살짝 흔들리기 시작했다.

혹시 지진이라도 난 건가 싶어 사람들이 건물을 뛰쳐나가고 응급실 의료진들도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장면은 가히 놀라웠다.

뉴스에서 잠깐씩 봤던 최첨단 전투기가 병원 주차장에 댄 차들을 전부 밀어버리며 강제 착륙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청룡 무늬가 그려진 군복을 입은 훤칠한 남자가 전투기에서 내리더니 무서운 기세로 병원에 들어섰다.

신룡전 8대 용장 역시 그의 뒤를 따랐다.

“고운아, 아빠. 아빠 왔어!”

다음 순간, 응급실 문 앞에 선 한지훈의 눈에 온몸이 피투성이인 여자아이의 모습이 들어왔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었지만 천륜으로 엮여있어서일까.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아, 저 아이가 내 딸이구나.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지금 당장 숨이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은 창백한 낯빛에 한지훈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빠? 아빠 맞아? 슈퍼맨 아빠가... 진짜 와준 거야?”

기적이 일어난 건지, 거의 숨이 멎어가던 한고운이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올렸다.

그리고 낯설지만 익숙한 한지훈을 바라보며 드디어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웃을 때 귀엽게 파이는 보조개, 누가 봐도 한지훈의 딸이었다.

“고운아, 아빠... 아빠 왔어.”

“엄마가 그랬어. 아빠는 슈퍼맨이라고. 어떻게든 나 보러 올 거라고. 이제 나한테도 아빠가 생긴 거네? 다행이다...”

이 말을 마지막으로 한고운의 눈이 스르륵 감기고...

“삐이...”

심전도 기계가 절망적인 소리를 내뿜었다.

“안 돼. 고운아, 정신 좀 차려봐. 안 돼!!”

안타까운 광경에 의료진들도 어느새 오열하기 시작했다.

‘대화를 들어보니 아빠를 처음 만난 모양인데 제대로 안겨보지 못하고 이렇게 죽는 거야? 저 어린 게 뭘 잘못했다고...’

“으아아악!”

이성을 잃은 한지훈이 그의 앞을 가로막은 부하들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퍽퍽퍽!”

단 세 번의 펀치에 뒤로 튕겨져나간 부하들은 그대로 창문을 뚫고 추락했다.

응급실로 달려들어간 한지훈이 딸의 이마를 끝없이 쓰다듬었다.

“고운아, 아빠 왔잖아. 제발 눈 좀 떠봐. 다시 한번 아빠 좀 봐줘. 응? 큭... 푸흡!”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일까? 가슴이 답답한 기분이 들더니 한지훈의 입에서도 시커먼 피가 뿜겨져나왔다.

“안 돼! 고운아, 조금만... 조금만 더 버텨. 아빠가 무슨 일 있어도 너 살릴 테니까.”

한지훈이 번쩍 아이를 안아든 순간, 김태우의 부하들로 보이는 남자들이 응급실에 쳐들어왔다.

“너희들 뭐야? 뭔데 우리 도련님이 짜신 판에 깽판을 놔. 야, 다 죽여버려!”

쿠궁!

‘저 자식들이야? 내 딸을 이렇게 만든 게?’

한지훈의 눈이 분노로 시뻘겋게 물들고 온몸에서 무시무시한 살기가 터져나왔다.

그 기운에 화창하던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들 정도였다.

“죽여... 저 자식들 전부...”

한지훈의 명령에 신룡전 8대 용장이 뛰어들고 기세 좋게 달려들던 부하들은 비명 소리 하나 내지 못한 채 쓰러진다.

“터벅터벅.”

온몸이 피투성이인 한고운을 안은 한지훈이 응급실을 나서고 그 무서운 살의,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처참한 광경에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던 의료진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방금 전 내상으로 다리에 힘이 풀린 한지훈이 털썩 주저앉고 입에서는 다시 검붉은 피가 쏟아졌다.

“사령관님!”

그를 부축하는 용일의 손을 뿌리친 한지훈이 핏발 선 눈으로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오늘부로 파용군은 S시로 주둔지를 옮긴다. 4대 용존, 호용 고수들 전부 다 불러. 어디에 있든 오늘 안에 전부 S시로 모이라고! 푸흡...!”

이 말을 마지막으로 한지훈은 정신을 잃고 만다.

정신을 잃은 순간에도 한고운을 꼭 안고 있는 모습, 한지훈의 입가에서 흘러내린 피가 이미 피로 물든 한고운의 옷을 다시 적셨다.

“사령관님!”

...

10분 후, 용일의 연락을 받은 30만 파용군이 완전 무장을 한 채 S시가 있는 동원구로 이동하고, 동시에 세계 각지에서 비밀 임무를 수행하던 4대 용존과 호용(護龍) 고수들도 S시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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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오소리
와 진짜 초딩이 써도 이것보단 잘 쓰겠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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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왕사위   제3105화

    “만약 직접적으로 말하면, 이씨 형님의 체면도 제대로 서지 못했을 겁니다. 사실 한 선생께서 내 곁에 충심으로 머문다면…… 백 년쯤 지나선, 어쩌면 출세할 수도 있겠지요.”주서진의 이 말에 이청도의 속은 거의 터지기 직전이었다.이건 명백히 주서진은 전혀 이씨 가문을 안중에 두지 않는다는 뜻이었고, 심지어 이청도 본인까지도 무시한 것이었다!말투 하나하나가, 마치 자신을 무지한 놈으로 조롱하고 있었다.“그 말인즉슨, 오늘 두 분을 뵙게 된 것만으로도 제가 무한한 영광을 입었다는 뜻입니까? 그럼 저희 이씨 가문에서 감사패라도 하나 새겨 바쳐야겠네요?”이청도의 얼굴은 이미 철판처럼 굳어 있었고, 한 손은 칼자루 위에 놓인 채 두 손은 분노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이씨 형님, 그런 말씀은 좀 지나치신 거 아닙니까?”공선 역시 얼굴을 굳히며 불쾌하게 응수했다.세 사람 모두 세가의 후계자들이었고, 서로 눈치를 보지 않는 것은 당연했으며 이씨 가문의 세력이 아무리 있다 해도, 주가와 공가 역시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내가 지나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당초에 누가 나서서 한 선생을 초청하자고 했지요? 누가 나서서, 한 선생과 함께 식사하자고 했던가요?”“지금 와서 이렇게 뒤통수를 치는 게 당신들의 본모습입니까?!”이청도의 목소리는 싸늘하게 가라앉았고, 눈빛엔 분노가 차올라 있었다.“이씨 형님도 아시다시피, 한 선생의 경지가 너무 낮은 건 사실입니다. 내가 보기에, 지금 그저 인왕 일층일 뿐인데 그런 실력으론 성역에선 아무 쓸모도 없지요.”“게다가 그는 세가 출신도 아니고, 오대 명산의 사람도 아닙니다. 우리가 굳이 그런 자를 존중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말을 좀 직설적으로 하자면, 그는 그저 하찮은 놈일 뿐입니다.”주서진도 얼굴을 찌푸리고 화를 내며 말했다. “그래요, 좋습니다. 결국, 우리가 속세에서 올라온 인간이란 이유만으로 당신들과는 어울릴 자격도 없다는 거지 않습니까!”이청도의 입술은 퍼렇게 질려 있었고, 안색은 거의 죽은

  • 용왕사위   제31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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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왕사위   제31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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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왕사위   제3102화

    주서진의 말이 끝나자, 공선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 자를 주씨 형님 곁에서 잡무나 시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높여준 겁니다. 이씨 가문 체면이 아니었다면, 주씨 형님 신발 끈 묶는 것도 아깝죠!”주서진은 그 말에 냉소를 띠며 말했다.“됐습니다. 그보단 천형을 어떻게 끌어들이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천형의 실력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었고, 성역 내에서도 명성이 자자했다.게다가 그의 전투력은 단연 성역 내 최상위급이었다.“주씨 형님, 듣자 하니 동씨 어르신께서 위씨 가문 쪽과 약간 마찰이 있었다더군요. 이건 주씨 형님께서 직접 나서셔야 할 듯합니다. 우리 모두 용국 사람인데, 결정적인 순간엔 위국도 반드시 우리 편에 설 겁니다.”공선이 무겁고 진지한 어조로 말했고, 주서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며칠 전 일에 대해선 이미 들었고, 그의 생각으로는 그저 아랫사람들끼리 일어난 사소한 충돌일 뿐 문제 될 것 없다고 판단했다.“그깟 위씨 가문의 하찮은 졸개한테 사과를 한다니, 우리 주씨 가문의 체면에 먹칠이군.”주서진은 여전히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사실 위국도는 위씨 가문에서 별로 눈에 띄지도 않는 인물이었고, 단지 성역에서의 경력이 오래되고, 또 천형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어 좀 이름을 날린 것뿐이었다.하지만 주서진은 내심 위국도를 우습게 보고 있었다.“주씨 형님, 지금은 대의를 우선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과하는 건 어디까지나 천형의 체면을 봐서 그런 것이지, 위국도 따위는 우리가 신발을 핥으라 해도 입이 더럽다며 거부하고 싶을 정도 아닙니까?”“만약 천형이 우리를 위해 움직여 준다면, 이번 오륙의 기운 쟁탈전은 우리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반면, 그가 시오도 쪽에 붙는다면, 우리에겐 커다란 위협이 되지요.”사실 공선은 전혀 진심으로 주서진을 도우려는 게 아니었다.공씨 가문 사람들은 원래부터 간사하고 교활하기로 유명했고, 그는 이미 성역 내의 구도를 꿰뚫고 있었다.성역 내에서 가장 강력한 두 세력은 바로 주씨 가문

  • 용왕사위   제3101화

    역외의 몇 가지 소문에 대해 공선도 이미 귀동냥은 하고 있었지만, 그는 이런 하찮은 일에 대해서는 애초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미인, 그쪽은 어떻게 생각하나?”공선은 고개를 돌려 옆 소파에 앉아 있던 한 요염한 여인을 바라보며 물었다.이 여인은 공선의 측근 호위이자, 동시에 그의 첩 중 하나였다.공씨 가문 사람들은 어딜 가든 술과 고기, 미인을 곁에 두는 특이한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풍습은 공씨 가문의 시조인 공구가 한평생 유랑하며 고생만 하다가, 초나라 왕을 알현하던 자리에서조차 스스로를 떠도는 집 잃은 개와 같다고 표현했을 정도로 비참한 삶을 살았던 데서 유래한 것이다.이러한 과거 때문에, 선진 시기 공씨 가문의 후손들은 심각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그 시절 많은 세가들이 공씨 가문을 두고 망국의 신기라고 조롱하기도 했다.당시 역사 기록에 따르면 공구가 노국에 머무르면 노국이 망했고, 위국으로 가면 위국도 망했다.그가 가는 곳마다 나라가 무너졌기에 그는 늘 초라한 옷차림을 했고, 공씨 가문의 후손들은 이런 망국신기라는 이미지를 씻어내기 위해서라도, 어디를 가든 반드시 화려하게 차려입고 미인을 곁에 두며, 식탁에는 반드시 술과 고기가 올라와야 했다.그걸 먹든 말든, 심지어 그냥 버릴지라도 체면만큼은 철저히 갖춰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원칙이었다.“그 자가 무슨 쓸모가 있겠어요? 혹시 이런 거라도 할 수 있나요?”미녀의 말이 끝나자, 순간 엄청난 기운이 폭발하며 대기 중에 있던 인왕 1층 경지의 고수 하나에게 그대로 쏟아졌다.순식간 대전 안은 살기가 응집되어 서릿발처럼 일렁였고, 실내 온도마저도 급격히 냉각되었다.“아… 안 돼… 살려주세요! 제가… 제가 잘못했습니다! 세자님, 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그 인왕 1층의 고수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피투성이로 울부짖었지만 그자는 그대로 핏물로 변해버렸다.섬뜩하고, 잔혹했다.“인왕 하나 죽였다고 대단하긴 뭐가 대단하죠?”미녀는 공선의 어깨에 몸을 기대며, 요염한 목소리로 말

  • 용왕사위   제3100화

    이청도의 말이 끝나자, 주서진이 흥미롭게 물었다.“오? 이씨 형님께서 초대한 고수는 어느 명산 출신이죠? 말 좀 들려주지 않겠습니까?”역시 황족의 혈통답게 주서진은 그냥 앉아 있기만 해도 위엄이 넘쳐났고, 그의 두 눈빛은 보는 사람에게 상당한 압박감을 주고 있었다.하지만 이청도는 그런 위세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그는 담담히 이름을 입 밖에 꺼냈다.“한지훈입니다!”한지훈?!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순간적으로 모두 미간을 찌푸렸다. 이들은 이미 십여 년 전부터 성역에 들어온 인물들이었고, 가장 늦게 성역에 도착한 주서진조차도 5년 전부터 성역에 머무르고 있었다.그 사이 단 한 번도 성역을 떠난 적이 없다.그 당시 한지훈은 아직 준천신계에 불과했는데, 그런 수준의 인물은 주서진이나 공선의 눈에는 아예 들어오지도 않는 존재였다.천신계에서 인왕계로 넘어간다는 것은, 끝도 없는 세월의 단련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성역에서 인왕계 1층 정도로는 주서진 앞에서 아예 말도 꺼낼 수 없었다.“그 한지훈이라는 인물을 아마 두 분께서 들어보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이름은 아실 겁니다. 용국의 북양왕이지요!”이청도는 덤덤하게 말했다.“북양왕? 천도맹약에서 파견한 열몇 명의 역외 고수들을 죽였다는 그 인물 말입니까?”주서진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되물었다.“맞습니다, 바로 그 사람입니다.”이청도가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그 정도의 인물로는 좀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천신계야 세속에서는 전투력이 있을지 몰라도, 이 성역에서는……”말을 이어가던 주서진의 얼굴에는 벌써부터 경멸의 빛이 서리기 시작했다.세속에서 아무리 명성을 떨친다 한들, 성역에서는 모두 무의미했다.“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다릅니다. 혹시 모르실까 봐 말씀드리자면, 한지훈은 얼마 전 천산검선을 베었고, 화룡진군도 그에게 죽었습니다!”이청도는 급히 해명하듯 덧붙였다.뭐라고?!공선은 눈빛이 번뜩이며 흥미를 드러냈다.“그 말씀은, 한지훈이 불과 5년 만에 인왕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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