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형님.”차성호가 비장한 표정으로 응답했다.”호위당 멤버들, 다 들었지? 호텔을 이 잡듯이 뒤져서라도 한지훈이라는 놈을 찾아내! 발견하는 즉시 사지를 분질러서 큰 형님 앞으로 끌고 오는 거야!”조원용은 옆에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청용파 수장인 그가 손바닥 만치 작은 오군에서 수모를 당할 수는 없었다.여기서 물러서면 앞으로 세력을 넓히는데 크게 방해가 될 것이다.정도현의 비웃음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그런데 이때, 뒤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조회장, 내가 그렇게 알아듣게 설명했는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별실을 나와 도설현을 집까지 데려다주려던 한지훈이 로비에서 들리는 아우성을 듣고 다시 돌아온 것이다.와봤더니 조직 폭력배들이 호텔 직원과 손님들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게 아닌가!그 광경을 목격한 한지훈은 깊은 분노를 느꼈다.자신을 찾는다고 무고한 시민을 괴롭히는 모습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소리를 들은 조원용과 차성호가 고개를 돌리자 살기로 번뜩이는 눈빛이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한지훈의 옆에는 천사 같은 외모의 도설현까지 서 있어서 더 이목을 끌었다.이 남자란 말인가?차성호는 인상을 확 구기며 속으로 경악했다.상대는 수십 명의 조폭들을 보고도 전혀 두렵거나 긴장한 기색이 없었다.도설현은 긴장된 눈빛으로 한지훈의 등만 바라보고 있었다.다가오는 한지훈을 발견한 조원용이 험악하게 인상을 쓰며 냉소를 지었다.“의리 하나는 기가 막힌 녀석이군! 도망치지 않은 건 칭찬할만해. 하지만 살아서 여길 나가는 건 힘들 거야.”한지훈은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이런 오합지졸들을 데리고 나를 잡겠다고?”“이 오만방자한 녀석! 지금 네 앞에 있는 게 누군지 알고 그딴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발끈한 차성호가 한지훈을 손가락질하며 고함쳤다.“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우리 형님한테 납작 엎드려서 사과드려! 그러지 않으면 너 때문에 이 호텔에 있는 모두가 피해를 입게 될 거야!”차성호가 느끼기에 눈앞의
그들은 잔뜩 얼어붙은 얼굴로 침만 꿀꺽 삼켰다.그들 중에는 한지훈이 언제 침을 발사했는지 보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차성호의 눈빛도 흔들렸다. 상대는 일반인이 아닌 무공 실력을 갖춘 놈이었다. 조금 전 은침을 발사한 순간에 그의 몸에서 풍기던 무시무시한 기운을 잊을 수 없었다.그는 그제야 오늘 만난 자가 범상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인정했다.호위당 멤버들은 뒤늦게 은침을 발견하고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은침을 발사해서 사람을 죽인다고?“저거 완전 미친 놈이네! 지금 우리 앞에서 우리 사람을 죽인 거야?”경악도 잠시, 호위당 엘리트들의 두 눈이 분노로 잠식되었다.그들은 고함을 지르며 칼과 몽둥이를 챙기고 죽은 형제의 복수를 하려고 달려들었다.“그만!”갑자기 울린 조원용의 목소리에 호위당 멤버들이 걸음을 멈추었다. 하지만 그들의 몸에서 풍기는 분노의 기운까지 억압하지는 못했다.조원용은 험악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냉소를 지었다.죽은 부하 따위는 이제 안중에도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청용파의 위용을 떨어뜨릴 수는 없었다.그는 음산한 얼굴로 한지훈을 바라보며 말했다.“네 실력은 잘 봤다. 은침으로 사람을 죽인다라. 영화에서만 봤었는데 현실에서 이걸 보게 될 줄은 몰랐군. 널 고용한 자가 누구냐? 내가 두 배의 연봉을 줄 테니 내 밑으로 들어오는 건 어때?”조원용은 한지훈의 배후에 청용파를 견제하려는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했다. 청용파가 동해시에서 독재한지 벌써 수십 년이니 그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세력들이 많았다.게다가 파벌 내부에서는 지금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었기에 조원용은 자신을 견제하려는 세력들에 대해 어느 때보다 민감하게 반응했다.한지훈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난 누구의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야.”“오만한 녀석!”차성호가 발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건방진 네놈에게 우리 호위당의 위력을 보여주지! 이따가 후회나 하지 마!”“형님, 말씀 잘하셨습니다!”“성호 형님이 나서면 저 자식은 죽은 목슴이죠!”차성
거센 공격이 여러 번 오갔지만 차성호가 거친 숨을 몰아쉬는 사이, 그는 한지훈의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못했다.“힘들어?”한지훈이 담담한 비웃음을 머금고 그에게 물었다.“이 망할 자식이, 웃어?”분노가 폭발한 차성호는 이성을 잃고 주먹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자리에 가만히 서 있던 한지훈이 사라졌다.그리고 찰나의 순간에 차성호의 몸이 힘없이 공중을 날았다.차성호의 등 뒤에 나타난 한지훈은 그대로 다리를 들어 상대의 등을 노렸다. 차성호는 그대로 벽에 머리를 박으며 바닥으로 처박혔다.아찔한 굉음과 함께 모두가 얼빠진 얼굴로 바닥에 쓰러진 차성호를 바라보았다.차성호가 부딪혔던 자리에 미세한 금이 가 있었다.거대한 힘 앞에 모두가 경악에 빠졌다.백전백승의 노장 차성호, 총용회의 한 축을 이루는 조원용의 오른팔이 피를 흘리며 맥없이 바닥에 쓰러져 버린 모습에 무서운 정적이 흘렀다.호위당의 엘리트들은 이런 상황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했다. 상대는 자신들이 믿고 따르는 당주이자 청용파의 핵심 인물이었다.모두가 얼빠진 모습으로 한지훈과 차성호를 번갈아보았다.바닥에 쓰러진 차성호는 등 쪽에서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갈비뼈 전체가 나가버린 것 같은 고통이었다.그는 더 이상 움직일 수도 없었다.회심의 일격으로 적을 쓰러뜨리던 그가 한방에 나가떨어진 것이다.차성호에게는 손가락 까딱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과거의 찬란했던 영광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며 상실감으 전신에 퍼졌다.한지훈은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청용파 이인자 차성호에게 중상을 입혀 버린 것이다.그는 거만한 자태로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고 천천히 차성호에게로 다가갔다.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차성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그는 이 치욕을 참을 수 없었다.“역시 평범한 놈은 아니었네! 나 차성호가 저런 새파란 어린놈한테 당할 날이 오다니!”차성호는 이를 악물고 혼신의 힘을 다해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하지만!콰직!한지훈은 바로 다리를 들어
“죽어!”조원용은 뒤에서 명령만 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젊을 때는 그 역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설적 인물이었다.그의 일격이 제대로 먹혀든다면 한지훈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을 것이다.물론 한지훈은 뒤에서 달려드는 조원용을 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냉소를 터뜨렸다.“그렇게 죽고 싶다면야 어쩔 수 없지. 동해시 지하세력도 한차례 물갈이할 때가 되었어.”이빨 빠진 호랑이 주제에 감히 오군에서 황제 노릇을 하려고 들어?한지훈은 공격을 피하는 대신, 그 자리에서 공중으로 뛰어올랐다.그리고 허공에서 다리를 날려 조원용의 복부를 걷어찼다.조원용은 전신에 거대한 충격이 전해지더니 허공에서 그대로 밑으로 추락해 버렸다.이어서 창자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이 복부에서 몰려왔다.조원용이 공중에서 추락하면서 주변에 있던 부하들마저 그와 같이 바닥에 넘어져 버렸다.호위당 멤버 중 몇몇이 다가가서 그를 부축했다.하지만 조금 전까지 기세등등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는 고통스럽게 몸을 웅크린 채, 한지훈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죽여! 당장 저놈을 죽여버려!”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검은 그림자가 조원용의 앞에 나타났다. 조원용은 섬뜩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 얼굴 앞에 처음으로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한지훈은 천천히 손을 뻗어 조원용의 목을 움켜쥐고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날 죽이자고 덤빌 때는 그럴만한 실력을 갖췄어야지.”차가운 그의 목소리에서 진한 살기가 느껴졌다.조원용의 정신이 아득해지는 사이 그는 어느새 공중을 날아 호텔 로비의 유리 진열장에 처박혔다.쨍그랑!유리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무수히 많은 유리파편들이 조원용의 몸 위로 우수수 떨어졌다.조원용은 다리에서 우두둑 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처참한 비명을 내질렀다.“악! 내 다리!”현장에 있던 모두가 뼈 부러지는 생생한 소리를 들었다.진열장에 곱게 진열되었던 돌조각상이 떨어져 조원용의 다리를 깔아뭉갠 것이다. 조원용이 벗어나려고 발버둥쳤지만 아무 소용없었다.그렇게 한지훈은 순식간에
조원용은 아픔을 참으며 고함을 질렀다.“저놈 목을 따는 녀석에게 청용파 회장 자리를 주겠다!”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지훈은 칼을 주워들고 달려가서 조원용의 팔목을 향해 휘둘렀다.“악!”조원용의 손목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그의 온몸을 적셨다.절단된 손이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극심한 고통에 조원용은 거의 기절 직전이었다.“상황 파악도 못하고 시끄럽게 떠들기는!”한지훈이 싸늘한 눈빛으로 조원용을 바라보며 말했다.“날 죽이려고 덤볐으면 너희도 죽을 각오를 했어야지!”한지훈은 홀로 로비에 우뚝 서서 호위당 수십 명의 엘리트들을 향해 천천히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극도의 긴장감에 당황한 조폭들이 점점 뒤로 뒷걸음질쳤다.혼자의 힘으로 호위당의 모든 인원을 제압한 것이다.“대표님, 언제면 도착한대요?”한지훈이 목청을 높여 도설현에게 물었다.“곧 올 거예요.”모든 광경을 목격한 도설현이 얼이 빠진 얼굴로 대답했다.그 말을 끝으로 호텔 입구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리더니 십여 대의 경찰차가 호텔을 포위했다.“너희는 이미 포위되었다. 반항을 멈추고 밖으로 나와서 자수해!”밖에서 강력반 반장이 확성기에 대고 소리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실탄을 장전한 무장 군인들이 순식간에 달려들어와 호위당 조폭들을 제압했다.차가운 인상을 가진 남자가 총을 들고 경찰들을 지휘하며 조폭들을 제압했다. 현장이 대충 마무리되자 그는 총을 거두고 도설현에게 다가가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설현아, 괜찮아?”도설현은 남자와 거리감을 유지한 채, 담담히 대답했다.“괜찮아. 지훈 씨 덕분에 난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어.”그 말을 들은 남자가 한지훈을 돌아보더니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반가워요. 서하 경찰서 강력계 팀장 오해진입니다.”한지훈도 미소를 지으며 예의 바르게 악수를 청했다.“한지훈입니다.”강력계 팀장이라는 남자는 곧바로 한지훈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도설현에게 다가서며 말했다.“어쩌다가 동해 지하세력과 엮이게 된 거야?”걱정이 가득 담긴 말
“요트 파티요? 죄송하지만 우린 사양하겠습니다.”한지훈이 싸늘하게 대답했다.강우연도 눈치를 보며 말했다.“천엽 씨, 시간도 늦었고 우린 가지 않을게요.”양천엽의 얼굴이 살짝 굳나 싶더니 이내 웃으며 말했다.“우연 씨, 이번 파티에는 오군의 재벌가 자제들과 유명 기업인들이 대량 참석할 거예요. 앞으로 우연 씨 사업에 도움이 될 인맥들인데 정말 안 가실 거예요?”그 말을 들은 강우연이 잠시 주저했다.파티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인맥을 넓히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한지훈에게 애원의 눈빛을 보냈다.한지훈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당신이 가고 싶으면 나도 같이 가지 뭐.”양천엽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지만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재빨리 표정을 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 볼게요. 저녁 일곱 시에 부두에서 봐요.”그 말을 끝으로 양천엽이 돌아가고 거실에는 강우연과 한지훈만 남게 되었다.자리에서 일어선 강우연은 한지훈에게 다가가서 그의 팔짱을 끼며 부드럽게 말했다.“미안해요, 여보. 오늘 파티만 같이 참석하고 앞으로는 양천엽 씨를 따로 만날 일 없을 거예요. 기분 나쁜 거 아니죠?”한지훈은 큰 눈을 깜빡이며 애교를 부리는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그래. 당신도 회사를 위해서라는 거 알아. 그 정도는 나도 이해해.”그제서야 강우연의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피어났다.저녁 여섯 시, 한지훈은 오토바이에 강우연을 싣고 시간 맞춰서 양천엽과 약속한 성해 부두로 향했다.오늘의 강우연은 등 절반이 드러나는 검은색 롱드레스에 머리를 위로 올리고 공들여서 메이크업까지 했다. 평소에도 예쁘지만 신경 써서 치장한 그녀의 모습은 어디를 가든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반면 한지훈은 여전히 평범한 캐주얼 티셔츠와 청바치에 운동화 차림이었다.강우연과는 너무 대조되는 모습에 뭇 남자들의 짜증을 유발했다.부두에 도착한 한지훈이 오토바이를 주차하는데 등 뒤에서 스포츠카의 요란
그 모습을 본 양천엽의 눈가에는 싸늘한 기운이 스치고 지나갔다.“그래요, 알겠어요. 들어가요. 제가 다른 친구들을 소개해 줄게요.”말을 마친 양천엽은 강우연 부부를 이끌고 재벌가 자제들 앞으로 왔다.“이 두 분은 지난번에 얘기했던 강우연 씨랑 한지훈 씨예요.”양천엽이 덤덤한 얼굴로 그들을 소개했다.재벌 자제들은 눈앞의 한지훈과 강우연을 아래위로 훑어보고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분위기가 순식간에 어색해진 가운데, 재벌가 도련님들이 강우연에게 관심을 보였다.“우연 씨, 안녕하세요. 한성우라고 합니다. 이화그룹 한국진 회장님이 저희 아버지세요.”“황호명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스포츠카 정비 센터를 운영하고 있어요.”“조준서입니다. 자그마한 증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그들은 너도나도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며 강우연에게 명함을 내밀었다.강우연의 미모에 반해 정신을 못 차리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살면서 수많은 미녀들을 만나봤지만 강우연처럼 순수하게 아름다운 여자는 처음이었다.청순한 외모와 글래머러스한 몸매, 그리고 단아한 분위기는 그들이 술집에서 만났던 여자들과는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진한 화장에 온몸에 명품을 두른 재벌가 아가씨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미모였다.오히려 그녀들이 강우연의 청순한 미모에 밀릴 정도였다.강우연은 살짝 상기된 얼굴로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명함을 받아 챙겼다.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재벌가 공주님들이 불쾌한 기색을 지었다.분명 오늘 밤 주인공은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정성 들여 치장하고 왔는데 어디서 나타난 신분도 불분명한 여자가 남자들의 관심을 모두 앗아가니 기분이 좋을 리 만무했다.입고 있는 옷을 보자 더 불쾌감이 치밀었다. 듣보잡 브랜드의 드레스에 들고 있는 핸드백도 동대문 제품이었다.그들이 들고 있는 명품백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행색이었다.“양천엽 씨, 친구를 데려온다고 하더니 어디서 서민을 데려왔어요?”큰 키에 도도한 인상을 한 여자가 팔짱을 끼며 싸늘하게 말했다.그녀는 자신의 미모에
강우연이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죄송하지만 저랑 남편은 사랑해서 한 결혼이에요. 우리 사이 좋아요.”말을 마친 그녀는 고개를 돌려 양천엽에게 말했다.“우린 그만 돌아갈게요.”말을 마친 그녀는 표정이 음침하게 굳은 한지훈의 팔을 잡아끌었다.조급해진 양천엽이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우연 씨, 저 친구들 그냥 농담한 거예요. 오랜만에 나온 건데 이렇게 가면 내가 뭐가 돼요.”“하지만 저 사람들이 저랑 제 남편한테 심한 말을 했잖아요.”강우연이 불쾌한 기색으로 말했다.그녀는 대놓고 한지훈을 무시하는 그들의 언행이 아주 불편했다.양천엽이 다급히 사과했다.“미안해요. 내가 대신 사과할게요. 평소에도 저러고 놀아요. 내가 잘 얘기할 테니까 걱정 말아요.”강우연이 굳은 얼굴로 눈치를 살피자 한지훈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어차피 여기까지 왔는데 좀만 더 놀다 가자.”그렇게 그들은 양천엽과 다른 재벌가 자제들을 따라 호화 요트에 올라갔다.그들이 배에 오르자 양천엽의 얼굴이 음산하게 빛났다.그는 이 틈을 타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요트에 올랐으니까 다들 준비하세요.”“걱정 마세요, 양 대표님. 우리 애들 일 하나는 기가 막혀요. 바다로 나가면 애들 시켜서 보트로 요트에 접근할게요. 그리고 대표님은 적당한 때에 나서서 미인을 구한 영웅이 되는 거죠.”수화기 너머로 남자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양천엽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일이 성사되면 바로 돈을 입금하죠.”말을 마친 그는 전화를 끊고 길게 심호흡한 뒤, 사람들의 뒤를 따라갔다.그런데 등 뒤에서 갑자기 싸늘한 기운이 느껴졌다.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온 건지, 한지훈이 팔짱을 끼고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한지훈 씨? 왜 여기 있어요?”당황한 양천엽이 시선을 회피하며 물었다.한지훈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다가 서서히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양 대표님, 조금 전에 누구랑 통화했어요?”“아, 회사 일 때문에 전화한 거예요.”양천엽
이 둘과 비교하면, 기자인 그녀는 마치 한 줌 모래처럼 미미한 존재였다.임설의 얼굴에 두려움이 떠오르자, 유 씨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설아, 사실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지금의 용국은 이미 몇 년 전의 용국이 아니야. 너도 알겠지만, 내 뒤에는 오대 명산이 있단 말이지.”“우리 오대 명산이 널 지지하는데, 뭐가 두려운 것이냐? 설령 용국 조정이라도 감히 우리를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그날의 대화는 줄곧 내가 한 말이었으니 잡으려면 나를 잡는 거지, 널 잡을 일은 없다.”임설은 그 말을 듣고 다소 안심한 듯 보였으나, 여전히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지만…… 유 씨 어르신, 그건 전부 어르신의 추측일 뿐이에요. 우리 손엔 아무 증거도 없잖아요!”“증거? 증거가 그렇게 중요해?”유 씨 노인은 냉소하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무종 전체가 내 말에 동의한다면, 그게 바로 증거지!”비록 천릉자가 대량산에서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지만, 한지훈의 명예를 실추시키기만 한다면 국왕은 가장 중요한 의지를 잃게 된다.바로 이때, 국왕의 자리를 노린다면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이때, 산성시.산중에 위치한 호화로운 별장에서, 검은색 양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젊은 여인에게 말했다.“선아, 며칠 전 장 도령께서 놀란 일이 있었단다.”“우리 천산 장씨 가문과는 대대로 교류가 깊었지. 어떤 의미에서든, 넌 가서 한 번은 그를 봐야 하지 않겠니?”“그리고 네 신분도 좀 자각해야 해. 진씨 가문의 큰 아가씨가 어찌 그리 속된 백성들처럼 옥기점 같은 데서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냐!”이 중년 남자의 이름은 진천국, 산성 진씨 가문의 가주였다!진천국이라는 이름은 산성 전체에서 거의 군왕이나 다름없는 존재다.특히 영기가 되돌아온 이후, 진천국의 사문은 현재 산성 최대의 종문인 천앙종이었다!게다가 진씨 가문은 지금 천산 장씨 가문과 우호 관계를 다져가며, 혼인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만일 혼인이 성사된다면, 진씨 가문은
사실, 한지훈이 산에 들어서는 길목에서 이미 유 씨 노인의 말을 다 듣고 있었다.오대명산과 무종 사람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어찌 한지훈이 모를 수 있을까!최근 이 시기 동안 천릉자의 기세가 드높다는 건, 곧 오대명산이 천릉자를 내세워 한지훈이 용국에 세운 공적을 지우려는 의도임을 뜻한다.게다가 이 기회에 국왕의 지위마저 위협하려는 것이었다.개인의 영예나 치욕 따위는 한지훈에게는 이미 중요하지 않았지만, 누구든 국왕의 권위를 흔드는 일만큼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오대명산의 계략을 깰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천릉자의 기세가 가장 드높을 때 정면으로 한방 먹이는 것이었다!그리고, 천릉자가 살해당한 사건은 과연 큰 파장을 일으켰다!그 전에 오대명산은 이 일을 공개적으로 보도하게 하려고 수많은 언론 기자들을 초청했다.하지만 정작 결과는, 제 발등을 찍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현장에 와 있던 언론사 수가 너무 많았고, 모두가 생중계로 현장을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게다가 수많은 인플루언서들까지 합류하며 정보를 봉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이 사건은 마치 다리가 달린 듯, 하룻밤 사이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흥! 정말 웃기는군. 그 따위가 어찌 한지훈과 견줄 수 있단 말인가? 한지훈보다 깨달음이 뛰어나다고? 타고난 자질이 낫다고? 결국 누가 죽였는지도 모른 채 죽어버렸잖아!”“흥, 내 보기엔 그냥 날뛰는 광대였을 뿐이지!”“날뛰는 광대? 그래도 광대는 멀쩡한 머리를 잃진 않겠지! 하하하…”온라인에서는 조롱이 난무했고, 항산의 사람들은 아예 모습을 드러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한순간에 오대명산의 기세는 급격히 꺾이고 말았다.그 뒤 한 달 동안, 모든 이들의 화제는 이 사건에 쏠렸다.오직 한지훈만이 조용히 천생서문에 기록된 내용을 따라 진지하게 약제를 조합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그에게는 강우연이 천신계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이런 화제들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게다가 천하 정세는 이미 크게 변하고 있었고,
그들은 누군가가 도중에 강탈할 거라는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장령풍이 자소화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는 약속대로 천릉자에게 져주지 않을 가봐 걱정됐다. “여러분, 드디어 가장 관건적인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과연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됐을지 함께 알아봅시다!”한 인터넷 BJ는 생방송을 켜고는 팬들을 향해 말했다. 그렇게 시간은 1분 1초가 흘렀고, 모두들 손꼽아 승패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산 길에서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걸어 나왔다. 다만, 천릉자와 장령풍 두 사람의 종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설마 사고라도 난 건 아니겠죠? 장 사부님이랑 천릉자 사부님은 왜 여태까지도 나오지 않는 거죠?”임설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사실 또 다른 가능성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두 사람이 너무 격렬하게 싸운 나머지 모두 중상을 입어 전혀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지는 않을 거야. 필경 모두 동문 사람이기에 두 사람이 한판 붙게 된다 하더라도 반드시 어느 정도 여지를 남겨둘 거야!”유 씨 어르신은 확신에 가득 찬 말투로 말했다. 알다시피 이번 대결은 5대 명산이 함께 손을 잡고 벌인 판이다. 게다가 천산 장 씨 집안도 이 계획에 얽혀있었기에, 절대 어떠한 실수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주위에는 또 수많은 고수들이 지켜보고 있을 텐데, 의외의 사고란 발생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유 씨 어르신의 말이 떨어지기도 바쁘게, 산길에서는 어두운 안색의 항산 제자 4명이 단대 하나를 들고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이내 카메라들은 일제히 그 단대에 초점을 뒀고, 모든 기자들은 순간 숨을 죽였다. 단대 위에는 머리 없는 시체 한 구가 누워 있었고 옆에는 웬 동그란 물건이 놓여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서야,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바로 천릉자의 머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른 한편, 몇 명의 장 씨 집안 자제들 역시 단대 하나를 들고는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장령풍
그러나 한지훈은 장령풍을 투명 인간 취급한 체 눈 깜짝할 사이에 숲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한지훈이 멀어질 때까지, 장령풍은 여전히 깊은 공포 속에 빠져 있었다. 사실 천릉자는 실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방금 그와의 정면승부에서, 그는 천릉자의 털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두 사람의 실력은 그야말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천릉자의 촘촘한 검망을 깨뜨려 그의 머리를 아작 낸다는 건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최선을 다해봤자 기껏해야 천릉자에게 상처만 입힐 거라 확신했다. 천릉자를 죽이는 건 하늘의 별 따기보다도 더욱 어려웠다. 모두들 알다시피 검망 아래에서는, 수천 갈래의 검의 습격을 마주해야 했다. 그 검망을 피해 사람을 죽이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그 검방을 피하는 것조차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설사 2성 천신계 강자라 하더라도 밀집된 검망을 마주하게 되면,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게 되고 더욱이는 천릉자를 사지로 몰아넣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지훈은? 오직 나뭇잎 하나만으로, 마치 어린애 장난처럼 닥치는 대로 나뭇잎을 던져 천릉자의 머리를 아작 냈다. 지금 이 순간, 산 전체는 비할 데 없이 조용했다. 한지훈이 멀어질 때까지 장령풍은 줄곧 조용히 땅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고 있었다. 그는 심지어 감히 고개 한번 들어 앞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그렇게 30분이 흐르고 나서야 장령풍은 고개를 살짝 들었다. 한지훈의 자취가 더 이상 보이지 않자, 그는 비로소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익숙한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장령풍, 오늘 벌어진 일을 소문내면 장 씨 집안은 멸망하게 되는 줄 알아!”“네... 저는... 아무것도 못 본겁니다!”크게 놀란 장령풍은 벌벌 떨었다. 한지훈의 경고는 그에게 있어서 성지였다. 한지훈은 뱉은 말은 무조건 지키는 사람이라는 걸,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유럽은 용경과는 80리 정도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오직 용국을 위해 복수
게다가 사방에서 한지훈을 헐뜯고 있는 발언들에 대해, 장령풍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한지훈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몇몇 명산 모두가 그의 적이었다. 그렇기에 한지훈이 남의 도움을 받았다는 얘기 자체는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역외 강자조차도 흔들 수 없는 거물을, 누가 감히 건드리려 하겠는가? 그러나 옆에 있던 천릉자는, 장령풍의 표정 변화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한지훈의 정체가 뭐든, 자신이 쟁취해야 할 성과를 이대로 빼앗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내 그는 장령풍과 상의도 하지 않고 바로 손을 들었다. 곧이어 그물처럼 촘촘한 검망이 한지훈의 정수리 위에 펼쳐졌다. 그는 단 한 방에 한지훈을 산산조각 내어,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을 건드리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줄 작정이었다. 온 하늘을 덮은 검망에도, 한지훈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닥치는 대로 나뭇가지에서 잎사귀 하나를 따냈다. 그러고 나서는 천릉자가 서있는 쪽으로 잎사귀를 가볍게 던졌다, 곧장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잎사귀에, 제대로 화가 난 천릉자는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 잎사귀로 사람을 다치게 하는 건, 무종 모든 종사들의 장기였다. 그러나 종사계의 실력은, 그저 전신계와 같을 뿐이었다. 그런데 일성 천신계 고수인 자신이 뜻밖에도 전신계 같은 땅강아지한테 무시당하게 될 줄이야? 생각할수록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른 천릉자는 곧바로 또 하나의 검망을 휘두르며 사악한 웃음을 보였다. “네 이 녀석, 천신계 강자를 상대로 도전장을 내밀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오늘 내가 제대로 보여주마!”“죽어!”지금 이 순간, 천릉자는 이미 한지훈을 죽은 사람으로 취급했다.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눈 깜짝할 사이에 한지훈은 산산조각 나게 될 것이다. 예상치 못한 눈앞의 상황에 장령풍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전에 이미 한지훈의 전력을 직접 목격했었다. 모든 전투에서, 한지훈은 오릉군 가시를 던졌었다.
천산 장 씨 집안과 항산 사이에는 서로 맺은 약속이 있었다. 오늘 이 자소화도 사실은 천릉자에게 주기로 내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자소화 자체는 결코 희귀하지는 않지만, 꽃이 피기 전의 자소화를 찾는 건 매우 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대다수는 사람들에게 발견되기 전에, 산속의 맹수들에 의해 먹히고는 만다. 사실 천신계 강자에게 있어, 자소화의 장점은 셀 수 없이도 많았다. 이 자소화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순조롭게 2성 현급 천신계까지 도달할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이렇게 큰 유혹 앞에서, 장령풍은 장 씨 집안과 항산의 약속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고 오로지 이 자소화를 손에 넣을 생각뿐이었다. 그의 단호한 태도에 천릉자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령풍, 작은 것을 얻으려고 큰 것을 잃으려 하지는 마. 당시 한지훈의 그 사건도 장 씨 집안이 자초한 일이었어. 네가 자소화를 손에 넣는다면, 그동안 우리가 한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게 될 거라고!”사실 전에 5대 명산, 항산 그리고 천산 장 씨 집안이 줄곧 천릉자를 치켜세운 이유는 그 배후에는 아주 큰 음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른바 불세출의 천재란 타이틀을 근본적으로 꾸며낸 것이다. 사실 천릉자는 이미 30년 전에 항산 문하에 들어선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항산은 줄곧 그를 중점 육성 대상으로 간주해오고 있었다. 그렇게 4년 만에 단번에 천신 경계를 돌파하게 된 기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가짜였지만, 그 최종 목적은 천릉자를 이용하여 한지훈을 호되게 밟는 것이었다. 그리고 방금 유 씨 어르신의 발언과 언론을 통해 한지훈은 영원히 용국의 치욕이라는 이미지로 매장하려는 속셈이었다.그러려면 이 과정에서 천릉자의 후광을 더욱 밝게 비추어야 했다. 그의 후광으로 한지훈의 공적을 덮어 그를 폄하하고 말살하는 목적을 달성하려는 계획이었다. “장 씨 집안의 계략이 뭐가 대수야? 난 지금 오직 이 자소화만 갖고 싶을 뿐이야!”장령풍은 여전히 굳은 표정
만약 이 모든 게 사실이라면, 이 내용이 보도된다면 전 세계를 뒤흔들 만한 사건이 될 것이다.필경 현재 용국은 물론, 심지어 전 세계가 모두 한지훈이 단지 일성 준 천신계의 실력으로 10여 명의 역외 강자들을 참살했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하여 전 세계는, 한지훈과 용국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만약 그 배후에 호천 창세가 손을 쓴 거라면 용국은 과연 어떻게 될까? 한지훈은 또 어떻게 될까? 과연 누가 용국을 두려워하겠는가? 아마 그 누구도 한지훈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지 않을 것이다.“됐어, 한지훈 그 반역자에 대해서는 이쯤하자. 저 두 사람의 시합이나 지켜보자고!”유 씨 어르신은 의도적으로 반역자라는 세 글자를 강조하며, 한지훈의 못된 이미지를 제대로 박았다. 한편 그 시각, 한지훈도 어느새 산꼭대기에 도착했다. 장령풍과 천릉자 두 사람은 여전히 교전을 펼치고 있었다. 게다가 보아하니 장령풍의 상황은 딱히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새하얀 도포에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장령풍은, 어느새 피범벅이 되었고 분노 가득한 두 눈동자는 천릉자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 반면 천릉자는 조금도 다치지 않고 여유롭게 한 손을 짊어진 채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듣기로는 너희 장 씨 집안 삼절진은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하다고 하던데, 오늘 보니 역시나 명실상부라 느껴지긴 하는구나. 하지만 다만 아쉬운 건, 넌 아직 제대로 불꽃이 튀지 않아 천절진의 위력은 크게 발휘하지 못하고 있어!”“앞으로 만약 10년만 더 지나게 된다면, 나중에 나의 천망 검진은 너를 더 이상 격파하기도 어렵게 될 거야. 하지만 어찌 됐든 그건 10년 후의 일이니, 오늘은 일단 이 자소화를 나한테 양보해!”이내 천릉자가 허리 굽혀 자소화를 따려는 순간, 숲속에서는 갑자기 우렁찬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오옥!”불곰보다도 몇 배나 더 큰 맹호 한 마리가 갑자기 숲에서 뛰어나오고 있었다. 순간 천릉자와 장령풍 모두 멍해졌다. 전에 5대 명산 고수들이 이미 산꼭대기를
유 씨 어르신의 말에, 임설은 끊임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기가 돌아온 후, 모든 사람들의 몸에는 큰 변화가 생겼고 저항력도 강해졌을 뿐만 신체능력도 향상되었다.그러나 마찬가지로 맹수들도 더욱 강해졌다. 만약 임설이 맹호를 상대한다면, 그건 바로 먹잇감이 되는 것이었다.당시 한지훈의 일전도 마찬가지라는 뜻이었다. 십여 명의 역외 강자들을 상대하다니, 게다가 모두 한지훈보다 한두 단계 높은 경지의 고수들이라니. 비유하자면 당시의 한지훈은 마치 현재의 임설과도 같았고, 그 십여 명의 역외 강자들은 바로 맹호 같은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들의 대결 결과는, 전혀 추측할 필요가 없이 다들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그럼 당시 그 대결이 만약 오로지 한지훈의 소행이었다면, 이건 합리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유 씨 어르신은 뒷짐을 진 채 오만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리둥절해졌다. 필경 유 씨 어르신은 화산 고수중 한 명이었기에, 그의 말은 신빙성이 아주 높았다. 게다가 진정한 무도 중인 만이 한지훈이 당시 직면한 것이 얼마나 큰 도전이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보통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유 씨 어르신은 이런 속임수에 넘어갈 리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무종이 점점 강해지게 되면서, 현재 더욱 많은 일반인들이 모든 경계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잘 알게 되었다. 천신경은 말할 것도 없고, 설령 전신계라 하더라도 작은 경계 사이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였다. 즉 천릉자는 비록 일성 준 천신의 최고 실력에 도달하긴 했지만, 그가 2성 천신계를 돌파하지 못한 이상, 2성 천신계 상대에게 있어 그는 마치 땅강아지와도 같은 존재였다. 두 사람이 동원할 수 있는 역량이 전혀 같은 수평선에 놓여있지 않는데, 어떻게 싸울 수 있겠는가? “어르신, 그 말씀은 전에 한지훈이 다른 사람의 힘을 이용하여 모든 사람들을 속여왔다는 뜻인가요?”임설이 다시 물었다. “그래. 중요한 포인트를 짚었네. 너희들 아직도
임설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 “혹시 임설이니?”바로 이때, 임설의 뒤에서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 씨 어르신?”고개를 돌린 임설은, 뒤에 선 노인을 보고는 순간 멍하니 있다가 이내 급히 열정적으로 그를 맞이했다. 그녀가 유 씨 어르신이라 부르는 이 사람은 바로, 세속에서 활동 중인 화산 강자이자 현재 무도 재판소의 부회장이기도 했다. 게다가 화산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었기에 유 씨 어르신은 세속에서도 소문이 자자했다. 매체인으로서 임설 역시 유 씨 어르신이 낯설지는 않았다. 게다가 전에 그녀는, 유 씨 어르신의 인맥을 통해 5대 명산의 3기 다큐 영화까지 제작했었다. “어르신, 어르신께서는 왜 여기 계신 거예요?”임설은 겉으로는 궁금해하는 척했지만, 사실 내심 전혀 의외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번 사건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장령풍과 천릉자 두 사람이었기에, 같은 5대 명산인 화산에서 사람을 보내지 않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난 단지 길을 가던 중 한번 와서 본 것일 뿐이야. 그나저나 이 아이들은 이젠 모두 어른이 되었는데, 이들이야말로 용국의 미래 희망이지!”유 씨 어르신은 눈을 지그시 뜨고는 산 꼭대기 쪽을 유유히 바라보았다.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 임설은 급히 보조 카메라 감독을 불러 휴대폰으로 촬영하라고 지시하였다. 이내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 유 씨 어르신 가까이에 다가갔다. “어르신, 어르신의 경험으로 봤을 때 오늘 이 자소화, 과연 어느 집안이 가져갈 거라고 예상하시나요?”필경 유 씨 어르신의 신분 지위는 꽤나 높았기에, 아마 일부 내막에 대해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5대 명산끼리의 호흡은 결코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장령풍과 천릉자가 맞붙기도 전에, 아마 암암리에 모든 준비를 마쳤을 가능성도 매우 높았다. “아이고, 그 질문은 좀 난처하네. 원칙부터 말하자면, 장 씨 집안 역사는 엄청 유구하지. 우리 용국의 많은 비진도 모두 장 씨 집안으로부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