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청장님,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이렇게 화가 나신 겁니까? 아까 전화 온 분은 누구신데요?"간이 배 밖으로 나온 인원 중 한 명이 용기를 내서 물었다.송호문은 싸늘한 시선으로 상대를 쏘아보며 말했다."내가 화를 내? 아니, 난 화난 게 아니야! 두려운 거라고! 그분 앞에서는 이 송호문이도 벌벌 떠는 개미에 불과하다고! 그분 한 마디면 S시 전체가 발칵 뒤집힐걸? 한민학, 소지성 같은 인물들도 그분 앞에서는 고개도 들지 못해! 금조그룹이 어떻게 됐는지 잊었어? 그분 작품이야!""그분 사모님이 관리하는 공장이 지 서장 관할구에 있는데 조폭들의 습격을 받았다잖아! 지 서장 자네 이거 제대로 해결 못하면 큰일 나! 모가지가 날아간다고! 도대체 치안 관리를 어떻게 했으면 조폭이 대낮에 판을 치고 돌아다녀?!"지찬웅은 머리가 어지럽고 당장이라도 이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경찰청 청장인 송호문까지 벌벌 떨게 하는 존재라면 관할서 서장 옷을 벗기는 건 일도 아닐 터!그들 모두 금조그룹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건경과는 기밀로 분류되어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그 사건기록지를 본 사람은 송호문밖에 없었다.그것만으로도 그들은 이 사건이 거대한 세력과 깊게 관여되어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소문으로만 들은 소리지만 나중에 용각에서 직접 그 사건자료를 인계 받아 가져갔다는 얘기도 돌았었다.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기에?‘설마 용경 사람인가?’지찬웅뿐만 아니라 다른 인원들도 착잡한 표정으로 고민에 잠겼다.그리고 이때, 핸드폰 진동음과 함께 지찬웅은 다급히 전화를 받았다."결과 나왔어?"양규혁의 긴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서장님, 결과 나왔어요. 이 장해성이란 놈이…."결과를 전해들은 지찬웅은 송호문에게 그대로 전했다. 서림구의 장해성은 조폭 세계에서는 꽤 유명인사였다. 수하에 백 명이 넘는 부하들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관리하는 유흥업소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많았다.장해성이 이렇게 기고만장할 수 있었던 건 배후에 정도현
공장 밖을 지키던 직원들은 놀라서 다리에 힘이 풀렸다.악명이 자자한 장해성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그의 등 뒤에는 백 명이 넘는 조폭들이 살기를 뿜으며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매일매일 성실하게 일해서 밥벌이나 하는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영화에서나 볼법한 장면이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겁에 질린 일부 직원들은 부리나케 도망쳤다.장해성은 느긋하게 담배를 피우며 뚜벅뚜벅 한지훈 일행에게 다가왔다. 그가 단추를 풀고 외투를 벗자 옆에 대기하고 있던 부하가 나와서 외투를 받았다.장해성은 각진 얼굴에 사나운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후!”그는 하얀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앞에 있는 공장 직원들에게 물었다.“내 애들 건드린 자가 누구지?”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직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지훈에게로 향했다.한지훈은 싸늘한 목소리로 대꾸했다.“나야. 내가 그랬어.”장해성은 한지훈을 힐끗 쳐다보더니 담배를 바닥에 던지며 말했다.“이놈 다리 두 개 부러뜨려서 내 앞에 무릎 꿇려. 어린 놈이 건방지네.”장해성이 살아온 인생에서 한지훈처럼 대드는 자들의 말로는 다 비슷했다.그의 뒤에서 쇠파이프를 든 장정들이 나오더니 험악한 표정으로 한지훈에게 달려들었다.소리를 들은 강우연은 다급히 공장 밖으로 달려 나왔다. 그 순간 그녀의 눈에 보인 건 한지훈을 향해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조폭이었다.“지훈 씨!”하지만 그 순간!요란한 소리와 함께 쇠파이프가 바닥에 떨어졌다.한지훈에게 달려들었던 네 명의 장정이 공중을 날아 바닥을 뒹굴었다. 한 명은 기절해서 정신도 못 차리고 있었다.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현장에 있던 모두가 경악했다.뒤에서 느긋하게 상황을 지켜보던 장해성은 제자리에 꿋꿋이 서 있는 한지훈을 보고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싸움 좀 하네? 그래도 혼자서 백 명은 무리지 않겠어?”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등 뒤에서 수십 명의 조폭들이 칼과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달려나왔다.한지훈은 피식 냉소를 짓고는 그들을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등골이 오싹하게
"장해성 잘 들어! 마지막 경고야! 무기 버리고 바닥에 엎드려!"스피커를 든 양규혁이 안쪽을 향해 소리쳤다.뒤늦게 도착한 지찬웅은 양규혁의 손에서 스피커를 빼앗아 들고 소리쳤다."장해성! 넌 오늘 이곳을 못 빠져나가! 당장 나와서 자수해!"불리한 상황에 처한 장해성의 얼굴도 창백하게 질렸다.그가 데려온 조직원들은 전부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고 순식간에 안으로 들어온 무장경찰이 그들을 하나씩 끌고 나갔다.결국 그는 천천히 두 손을 머리위로 올리고 바닥에 엎드렸다.지찬웅은 성큼성큼 다가와서 장해성을 발로 걷어차고는 한지훈에게 다가가서 공손히 말했다."많이 놀라셨죠? 저는 서림 경찰서 서장 지찬웅이라고 합니다. 송 청장님의 명을 받고 달려왔습니다."한지훈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너무 늦은 거 아니에요?"그 말을 들은 지찬웅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는 눈앞의 젊은 청년이 내뿜는 압도적인 카리스마에 완전히 기가 죽었다. 송호문이 왜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는지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안에서 달려나온 강우연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한지훈에게 물었다."괜찮은 거죠?"한지훈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괜찮아. 여기 서장님까지 놈들 체포하러 오셨잖아. 조폭들 체포 현장에 직접 오시다니. 우리 입장에서는 감사한 일이지."강우연은 그제야 고개를 돌리고 지찬웅에게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강우연이라고 합니다. 이 공장 담당자입니다. 정말 너무 감사해요. 형사님들이 제때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정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었어요."지찬웅이 웃으며 말했다."우린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장해성은 우리 강력계에서 오래 쫓던 인물입니다. 덕분에 이번 기회에 오성파 놈들을 일망타진하게 되었네요! 공장이 입은 피해액은 저놈들이 변상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겠습니다."강우연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인사를 했으나 지찬웅은 오히려 한지훈 눈치를 살폈다.그는 한지훈이 고개를 끄덕인 뒤에야 뒤돌아서 현행범들을 끌고 공장을 빠져
털썩!이한승의 불호령에 정도현은 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이 회장님, 무슨 말씀인지 제대로 말씀해 주셔야죠. 제가 무슨 잘못을 했단 말입니까?"이한승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추궁하듯 물었다."장해성 네가 데리고 있던 애새끼 아니야?"정도현은 곧장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 제가 부리던 애 맞습니다만…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말은 그렇게 해도 그는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 있었다.조금 전에 장해성이 잡혀갔다는 소식을 접하고 인맥을 동원해서 그를 빼내올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가 이번에는 사고를 쳐도 단단히 쳤다는 생각이 들었다.이한승은 짜증스럽게 정도현의 어깨를 걷어차며 으르렁거렸다."네 밑에 애새끼들이 그렇지! 여기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말을 마친 이한승은 곧장 정도현의 옆으로 가서 무릎을 꿇었다.정도현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경악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S시 재계의 거장, 하늘 같은 존재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비장한 표정으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정도현은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고 귀에서 이명이 들렸다. 이한승이 누군가의 앞에 무릎을 꿇는 날이 올 줄 누가 알았을까?정도현은 무릎을 질질 끌고 이한승의 가까이 다가가서 말했다."이 회장님, 저 좀 살려주세요. 장해성 그 놈이 혼자 날뛴 거지 저는 아무것도 모른단 말입니다!"이한승은 허리를 곧게 세우고 두 눈을 감으며 말했다."나한테 말해도 소용없어. 그분이 오셔서 판결할 거야!"아니나 다를까, 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별장 밖에서 날카로운 엔진소리가 들려왔다.잠시 후, 차분한 걸음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다가왔다.고개를 든 정도현의 눈에는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젊은 남자가 보였다. 그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본다는 듯이 매서운 눈매로 정도현을 쏘아보고 있었다. 정도현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쿵쾅거리고 온몸이 떨려왔다.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살기였다.한지훈의 뒤에는 건장한 체구를
얼굴 곳곳에 멍이 든 장해성은 자신이 모시던 형님과 S시 최고의 재벌 이한승이 바닥에 무릎을 꿇은 모습을 보고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선생님, 제발 한번만 봐주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앞으로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요! 제가 순간 정신이 나갔었나 봐요. 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 저도 돈 받고 한 일이란 말이에요…."장해성은 무릎을 질질 끌고 한지훈 앞에 다가가서 머리를 땅에 박았다.한지훈이 무심한 얼굴로 물었다."그래서 돈 주고 너한테 이런 일을 시킨 자가 누구지?"장해성은 사실 경과를 남김없이 실토했다."오찬그룹 오관우 사장이 1억 현금을 가지고 와서 저한테 부탁했습니다. 저는 일순간 돈에 눈이 멀어서… 제 말 전부 사실입니다! 전 아무것도 모르고 그랬어요! 살려만 주세요!""오관우?"익숙한 이름이 나오자 한지훈의 눈에 살기가 번뜩였다.그는 장해성을 내려다보며 차갑게 말했다."돈에 눈이 멀어 타인을 사지로 내몬 자는 살려둘 필요가 없지!"쾅!한지훈의 주변으로 살기가 치솟더니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장해성이 날아올랐다. 그는 끈 떨어진 연처럼 날아서 벽에 몸을 부딪히더니 벽을 부수고 저 멀리 나가떨어졌다.위력은 가슴뼈를 뚫고 오장육부에 가해지면서 장해성은 입에서 피를 뿜으며 바닥에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정도현의 두 눈이 공포로 가득 찼다."죄송합니다, 선생님! 제가 애들 교육을 제대로 안 시켜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제발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앞으로 선생의 충실한 개가 되겠습니다."결국 겁에 질린 정도현은 자존심도 잊고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했다.한지훈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예전이었다면 당신도 죽었을 거야. 하지만 이 도시에 내가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내 일을 대신 처리해 줘야 할 사람이 필요해.""알죠, 알죠. 앞으로 이 정도현이를 노예처럼 부려주십시오. 대대손손 선생에게 충성하겠습니다!"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직감한 정도현은 고개를 낮게 조아리며 충성을 맹세했다. 살면서 이렇게 생생한
잠시 후, 오관우와 강희연은 돈 박스를 가지고 정도현의 별장을 찾았다."어떻게 오셨습니까?"입구를 지키던 경호원이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오관우를 가로막았다.오관우는 지극히 공손하게 대답했다."정 회장님 좀 만나러 왔습니다. 장해성 형님의 동생이라고 전하면 아실 거예요. 오찬그룹 오관우라고 합니다."문앞을 지키던 경호원은 싸늘한 눈빛으로 오관우를 훑어보고는 말했다."알았으니까 여기서 기다려요!"말을 마친 그는 바로 안채로 향했다.강희연은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오관우에게 바짝 붙어 섰다.악명이 자자한 정도현 회장을 직접 만나는 건 처음이라 긴장되지 않을 수 없었다."관우 씨, 회장님이 우릴 만나줄까?"강희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오관우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걱정하지 마. 해성 형님 동생이라면 분명 만나는 주실 거야. 그리고 우리 오찬그룹도 S시에서는 꽤 잘나가는 기업이잖아."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아까 안채로 들어갔던 경호원이 다시 밖으로 나왔다.그의 뒤에는 야구방망이를 든 조폭들이 살기를 내뿜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오관우를 본 아까 그 경호원이 차갑게 말했다."회장님 지시다! 저 놈 잡아서 족쳐!"오관우가 예상치 못한 전개에 당황하는 사이 조폭들이 그를 에워싸더니 거침없이 방망이를 휘둘렀다."제발! 얼굴은 때리지 마세요! 뭔가 오해가 있으신 거 같은데 저 오관우예요! 오찬그룹 오 회장 아들이라고요. 정 회장님 만나러 왔어요. 저 해성 형님 동생이에요. 제발 멈춰요! 그만… 그만… 잘못했어요."바닥에 쓰러진 오관우는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살려달라고 애원했다.하지만 상대는 조폭, 폭행을 휘두르는데 거침이 없었다. 그 뒤로 한참 동안 그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조용한 산속에 메아리쳤다.겁에 질린 강희연은 다가가서 한 조폭의 손목을 잡고 소리쳤다."다들 그만해요! 사람 잘못 보셨어요! 이 사람 오찬그룹 후계자라고요.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게 틀림없어요!"짝!조폭 남자가 짜증스럽게 그녀의 뺨을 후려치더니 인상을 쓰
"아파 죽겠네! 젠장, 정도현 그 인간 미친 거 아니야?"차에 오른 오관우가 욕설을 내뱉으며 문을 닫으려는 순간, 너덜너덜한 상태로 차에 오른 강희연이 다짜고짜 그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오관우 이 나쁜 자식아, 어떻게 날 버리고 혼자 도망갈 수 있어?"오관우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으며 진지하게 말했다."희연아, 내가 널 두고 도망간 게 아니라 그 인간들 나만 쫓아오면서 때리는 거 못 봤어? 그 상황에서 널 차에 태웠다가 너까지 다칠까 봐 그런 거지. 결국 내가 도망치니까 놈들도 그만뒀잖아."그 말을 들은 강희연은 산발이 된 머리를 뒤로 넘기고는 울먹이며 말했다."진짜? 난 그런 줄도 모르고… 관우 씨가 날 버리고 갈 리가 없는데. 내가 오해해서 미안해. 많이 아파?"오관우는 인상을 찡그리며 엄살을 부렸다."아야… 너무 아파!"강희연이 말했다."그 정도현 회장 노망난 거 아니야? 어떻게 사람을 만나주지도 않고 다짜고짜 패기부터 해?"오관우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중간에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아. 돌아가서 알아보면 알겠지. 일단 나 집에 좀 데려다줘."한편, 한지훈과 강우연의 집.한지훈은 평소처럼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고 고운이는 거실에서 퍼즐놀이를 하고 있었다.강우연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디서 울었는지 눈은 새빨게져 있었고 볼에도 손바닥 자국이 있었다.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그녀는 곧장 침실로 숨어버렸다.밥상을 다 차린 한지훈은 조심스럽게 침실 문을 노크했다."우연아, 나와서 밥 먹어."하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았고 조용히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한지훈은 미간을 확 찌푸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강우연은 책상에 엎드려 울고 있었다."왜 그래?"힘겹게 몸을 일으킨 강우연은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무 일 없으니까 나가서 밥 먹어요."식탁에 마주 앉은 강우연은 입맛이 없는지 깨작거렸다.한지훈이 고운이에게 눈짓하자 아이는 고개를 갸웃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엄마, 무슨 일 있어? 눈이 왜 이렇
강우연은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쓱 닦고는 고운이한테 말했다."고운아, 배불리 잘 먹었어? 엄마랑 샤워하고 이제 잘까?"고운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싫어! 고운이는 아빠랑 놀래!"강우연은 못 말린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아빠 오늘 피곤하시대. 내일 아빠랑 놀아."아이는 그제야 입을 삐죽이며 그녀의 품에서 나와 한지훈에게 다가가서 뽀뽀했다."아빠, 사실 엄마는 아빠를 정말 보고 싶어했어. 예전에 고운이 잠자기 전에 아빠 얘기를 많이 해줬거든. 엄마는 아빠가 슈퍼맨이라 돌아와서 엄마랑 고운이를 지켜줄 거라 했어. 아빠, 다시는 고운이랑 엄마 버리고 떠나지 마. 알겠지?"아이는 애처로울 정도로 긴장된 표정으로 한지훈을 바라봤다.한지훈은 그 모습에 울컥하며 눈물이 났다. 그는 서둘러 표정을 수습하고 아이의 볼을 꼬집으며 말했다."그래! 약속할게. 이제 절대 너랑 엄마 곁을 떠나지 않을 거야!"고운이는 힘껏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지훈의 볼에 입을 맞추고 방긋 웃으며 강우연에게 말했다."엄마, 들었지? 아빠가 다시는 우리 버리고 안 떠난대."강우연은 급기야 입을 틀어막고 침실로 달려 들어갔다.아이는 입을 잔뜩 내밀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지훈에게 물었다."아빠, 엄마 오늘 왜 저래?"한지훈도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굳게 닫힌 방 문을 바라보았다.공장에 다녀온 뒤로 강우연은 마치 다른 사람처럼 낯설게 행동했다.깊은 밤, 정원으로 나온 한지훈은 담배를 물고 한참을 고민에 잠겼다. 반면 피곤에 지친 강우연은 고운이를 안고 잠이 들었다.조용히 침실 문을 열자 깊게 잠든 그녀와 고운이의 모습이 보였다. 한지훈은 다시 조심스레 방 문을 닫고 정원으로 나가 용일에게 전화를 걸었다."우연이 오늘 공장에서 무슨 일 있었어?"용일이 공손한 말투로 대답했다."장해성이 잡혀간 뒤로 사모님은 동서구 공장으로 가셨습니다. 강문복 일가가 관리하는 공장인데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강문복 일가가 동서구 공장을 관리한다고?그 말을
이 둘과 비교하면, 기자인 그녀는 마치 한 줌 모래처럼 미미한 존재였다.임설의 얼굴에 두려움이 떠오르자, 유 씨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설아, 사실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지금의 용국은 이미 몇 년 전의 용국이 아니야. 너도 알겠지만, 내 뒤에는 오대 명산이 있단 말이지.”“우리 오대 명산이 널 지지하는데, 뭐가 두려운 것이냐? 설령 용국 조정이라도 감히 우리를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그날의 대화는 줄곧 내가 한 말이었으니 잡으려면 나를 잡는 거지, 널 잡을 일은 없다.”임설은 그 말을 듣고 다소 안심한 듯 보였으나, 여전히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지만…… 유 씨 어르신, 그건 전부 어르신의 추측일 뿐이에요. 우리 손엔 아무 증거도 없잖아요!”“증거? 증거가 그렇게 중요해?”유 씨 노인은 냉소하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무종 전체가 내 말에 동의한다면, 그게 바로 증거지!”비록 천릉자가 대량산에서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지만, 한지훈의 명예를 실추시키기만 한다면 국왕은 가장 중요한 의지를 잃게 된다.바로 이때, 국왕의 자리를 노린다면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이때, 산성시.산중에 위치한 호화로운 별장에서, 검은색 양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젊은 여인에게 말했다.“선아, 며칠 전 장 도령께서 놀란 일이 있었단다.”“우리 천산 장씨 가문과는 대대로 교류가 깊었지. 어떤 의미에서든, 넌 가서 한 번은 그를 봐야 하지 않겠니?”“그리고 네 신분도 좀 자각해야 해. 진씨 가문의 큰 아가씨가 어찌 그리 속된 백성들처럼 옥기점 같은 데서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냐!”이 중년 남자의 이름은 진천국, 산성 진씨 가문의 가주였다!진천국이라는 이름은 산성 전체에서 거의 군왕이나 다름없는 존재다.특히 영기가 되돌아온 이후, 진천국의 사문은 현재 산성 최대의 종문인 천앙종이었다!게다가 진씨 가문은 지금 천산 장씨 가문과 우호 관계를 다져가며, 혼인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만일 혼인이 성사된다면, 진씨 가문은
사실, 한지훈이 산에 들어서는 길목에서 이미 유 씨 노인의 말을 다 듣고 있었다.오대명산과 무종 사람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어찌 한지훈이 모를 수 있을까!최근 이 시기 동안 천릉자의 기세가 드높다는 건, 곧 오대명산이 천릉자를 내세워 한지훈이 용국에 세운 공적을 지우려는 의도임을 뜻한다.게다가 이 기회에 국왕의 지위마저 위협하려는 것이었다.개인의 영예나 치욕 따위는 한지훈에게는 이미 중요하지 않았지만, 누구든 국왕의 권위를 흔드는 일만큼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오대명산의 계략을 깰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천릉자의 기세가 가장 드높을 때 정면으로 한방 먹이는 것이었다!그리고, 천릉자가 살해당한 사건은 과연 큰 파장을 일으켰다!그 전에 오대명산은 이 일을 공개적으로 보도하게 하려고 수많은 언론 기자들을 초청했다.하지만 정작 결과는, 제 발등을 찍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현장에 와 있던 언론사 수가 너무 많았고, 모두가 생중계로 현장을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게다가 수많은 인플루언서들까지 합류하며 정보를 봉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이 사건은 마치 다리가 달린 듯, 하룻밤 사이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흥! 정말 웃기는군. 그 따위가 어찌 한지훈과 견줄 수 있단 말인가? 한지훈보다 깨달음이 뛰어나다고? 타고난 자질이 낫다고? 결국 누가 죽였는지도 모른 채 죽어버렸잖아!”“흥, 내 보기엔 그냥 날뛰는 광대였을 뿐이지!”“날뛰는 광대? 그래도 광대는 멀쩡한 머리를 잃진 않겠지! 하하하…”온라인에서는 조롱이 난무했고, 항산의 사람들은 아예 모습을 드러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한순간에 오대명산의 기세는 급격히 꺾이고 말았다.그 뒤 한 달 동안, 모든 이들의 화제는 이 사건에 쏠렸다.오직 한지훈만이 조용히 천생서문에 기록된 내용을 따라 진지하게 약제를 조합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그에게는 강우연이 천신계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이런 화제들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게다가 천하 정세는 이미 크게 변하고 있었고,
그들은 누군가가 도중에 강탈할 거라는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장령풍이 자소화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는 약속대로 천릉자에게 져주지 않을 가봐 걱정됐다. “여러분, 드디어 가장 관건적인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과연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됐을지 함께 알아봅시다!”한 인터넷 BJ는 생방송을 켜고는 팬들을 향해 말했다. 그렇게 시간은 1분 1초가 흘렀고, 모두들 손꼽아 승패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산 길에서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걸어 나왔다. 다만, 천릉자와 장령풍 두 사람의 종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설마 사고라도 난 건 아니겠죠? 장 사부님이랑 천릉자 사부님은 왜 여태까지도 나오지 않는 거죠?”임설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사실 또 다른 가능성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두 사람이 너무 격렬하게 싸운 나머지 모두 중상을 입어 전혀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지는 않을 거야. 필경 모두 동문 사람이기에 두 사람이 한판 붙게 된다 하더라도 반드시 어느 정도 여지를 남겨둘 거야!”유 씨 어르신은 확신에 가득 찬 말투로 말했다. 알다시피 이번 대결은 5대 명산이 함께 손을 잡고 벌인 판이다. 게다가 천산 장 씨 집안도 이 계획에 얽혀있었기에, 절대 어떠한 실수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주위에는 또 수많은 고수들이 지켜보고 있을 텐데, 의외의 사고란 발생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유 씨 어르신의 말이 떨어지기도 바쁘게, 산길에서는 어두운 안색의 항산 제자 4명이 단대 하나를 들고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이내 카메라들은 일제히 그 단대에 초점을 뒀고, 모든 기자들은 순간 숨을 죽였다. 단대 위에는 머리 없는 시체 한 구가 누워 있었고 옆에는 웬 동그란 물건이 놓여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서야,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바로 천릉자의 머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른 한편, 몇 명의 장 씨 집안 자제들 역시 단대 하나를 들고는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장령풍
그러나 한지훈은 장령풍을 투명 인간 취급한 체 눈 깜짝할 사이에 숲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한지훈이 멀어질 때까지, 장령풍은 여전히 깊은 공포 속에 빠져 있었다. 사실 천릉자는 실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방금 그와의 정면승부에서, 그는 천릉자의 털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두 사람의 실력은 그야말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천릉자의 촘촘한 검망을 깨뜨려 그의 머리를 아작 낸다는 건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최선을 다해봤자 기껏해야 천릉자에게 상처만 입힐 거라 확신했다. 천릉자를 죽이는 건 하늘의 별 따기보다도 더욱 어려웠다. 모두들 알다시피 검망 아래에서는, 수천 갈래의 검의 습격을 마주해야 했다. 그 검망을 피해 사람을 죽이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그 검방을 피하는 것조차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설사 2성 천신계 강자라 하더라도 밀집된 검망을 마주하게 되면,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게 되고 더욱이는 천릉자를 사지로 몰아넣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지훈은? 오직 나뭇잎 하나만으로, 마치 어린애 장난처럼 닥치는 대로 나뭇잎을 던져 천릉자의 머리를 아작 냈다. 지금 이 순간, 산 전체는 비할 데 없이 조용했다. 한지훈이 멀어질 때까지 장령풍은 줄곧 조용히 땅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고 있었다. 그는 심지어 감히 고개 한번 들어 앞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그렇게 30분이 흐르고 나서야 장령풍은 고개를 살짝 들었다. 한지훈의 자취가 더 이상 보이지 않자, 그는 비로소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익숙한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장령풍, 오늘 벌어진 일을 소문내면 장 씨 집안은 멸망하게 되는 줄 알아!”“네... 저는... 아무것도 못 본겁니다!”크게 놀란 장령풍은 벌벌 떨었다. 한지훈의 경고는 그에게 있어서 성지였다. 한지훈은 뱉은 말은 무조건 지키는 사람이라는 걸,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유럽은 용경과는 80리 정도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오직 용국을 위해 복수
게다가 사방에서 한지훈을 헐뜯고 있는 발언들에 대해, 장령풍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한지훈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몇몇 명산 모두가 그의 적이었다. 그렇기에 한지훈이 남의 도움을 받았다는 얘기 자체는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역외 강자조차도 흔들 수 없는 거물을, 누가 감히 건드리려 하겠는가? 그러나 옆에 있던 천릉자는, 장령풍의 표정 변화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한지훈의 정체가 뭐든, 자신이 쟁취해야 할 성과를 이대로 빼앗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내 그는 장령풍과 상의도 하지 않고 바로 손을 들었다. 곧이어 그물처럼 촘촘한 검망이 한지훈의 정수리 위에 펼쳐졌다. 그는 단 한 방에 한지훈을 산산조각 내어,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을 건드리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줄 작정이었다. 온 하늘을 덮은 검망에도, 한지훈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닥치는 대로 나뭇가지에서 잎사귀 하나를 따냈다. 그러고 나서는 천릉자가 서있는 쪽으로 잎사귀를 가볍게 던졌다, 곧장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잎사귀에, 제대로 화가 난 천릉자는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 잎사귀로 사람을 다치게 하는 건, 무종 모든 종사들의 장기였다. 그러나 종사계의 실력은, 그저 전신계와 같을 뿐이었다. 그런데 일성 천신계 고수인 자신이 뜻밖에도 전신계 같은 땅강아지한테 무시당하게 될 줄이야? 생각할수록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른 천릉자는 곧바로 또 하나의 검망을 휘두르며 사악한 웃음을 보였다. “네 이 녀석, 천신계 강자를 상대로 도전장을 내밀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오늘 내가 제대로 보여주마!”“죽어!”지금 이 순간, 천릉자는 이미 한지훈을 죽은 사람으로 취급했다.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눈 깜짝할 사이에 한지훈은 산산조각 나게 될 것이다. 예상치 못한 눈앞의 상황에 장령풍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전에 이미 한지훈의 전력을 직접 목격했었다. 모든 전투에서, 한지훈은 오릉군 가시를 던졌었다.
천산 장 씨 집안과 항산 사이에는 서로 맺은 약속이 있었다. 오늘 이 자소화도 사실은 천릉자에게 주기로 내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자소화 자체는 결코 희귀하지는 않지만, 꽃이 피기 전의 자소화를 찾는 건 매우 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대다수는 사람들에게 발견되기 전에, 산속의 맹수들에 의해 먹히고는 만다. 사실 천신계 강자에게 있어, 자소화의 장점은 셀 수 없이도 많았다. 이 자소화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순조롭게 2성 현급 천신계까지 도달할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이렇게 큰 유혹 앞에서, 장령풍은 장 씨 집안과 항산의 약속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고 오로지 이 자소화를 손에 넣을 생각뿐이었다. 그의 단호한 태도에 천릉자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령풍, 작은 것을 얻으려고 큰 것을 잃으려 하지는 마. 당시 한지훈의 그 사건도 장 씨 집안이 자초한 일이었어. 네가 자소화를 손에 넣는다면, 그동안 우리가 한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게 될 거라고!”사실 전에 5대 명산, 항산 그리고 천산 장 씨 집안이 줄곧 천릉자를 치켜세운 이유는 그 배후에는 아주 큰 음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른바 불세출의 천재란 타이틀을 근본적으로 꾸며낸 것이다. 사실 천릉자는 이미 30년 전에 항산 문하에 들어선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항산은 줄곧 그를 중점 육성 대상으로 간주해오고 있었다. 그렇게 4년 만에 단번에 천신 경계를 돌파하게 된 기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가짜였지만, 그 최종 목적은 천릉자를 이용하여 한지훈을 호되게 밟는 것이었다. 그리고 방금 유 씨 어르신의 발언과 언론을 통해 한지훈은 영원히 용국의 치욕이라는 이미지로 매장하려는 속셈이었다.그러려면 이 과정에서 천릉자의 후광을 더욱 밝게 비추어야 했다. 그의 후광으로 한지훈의 공적을 덮어 그를 폄하하고 말살하는 목적을 달성하려는 계획이었다. “장 씨 집안의 계략이 뭐가 대수야? 난 지금 오직 이 자소화만 갖고 싶을 뿐이야!”장령풍은 여전히 굳은 표정
만약 이 모든 게 사실이라면, 이 내용이 보도된다면 전 세계를 뒤흔들 만한 사건이 될 것이다.필경 현재 용국은 물론, 심지어 전 세계가 모두 한지훈이 단지 일성 준 천신계의 실력으로 10여 명의 역외 강자들을 참살했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하여 전 세계는, 한지훈과 용국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만약 그 배후에 호천 창세가 손을 쓴 거라면 용국은 과연 어떻게 될까? 한지훈은 또 어떻게 될까? 과연 누가 용국을 두려워하겠는가? 아마 그 누구도 한지훈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지 않을 것이다.“됐어, 한지훈 그 반역자에 대해서는 이쯤하자. 저 두 사람의 시합이나 지켜보자고!”유 씨 어르신은 의도적으로 반역자라는 세 글자를 강조하며, 한지훈의 못된 이미지를 제대로 박았다. 한편 그 시각, 한지훈도 어느새 산꼭대기에 도착했다. 장령풍과 천릉자 두 사람은 여전히 교전을 펼치고 있었다. 게다가 보아하니 장령풍의 상황은 딱히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새하얀 도포에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장령풍은, 어느새 피범벅이 되었고 분노 가득한 두 눈동자는 천릉자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 반면 천릉자는 조금도 다치지 않고 여유롭게 한 손을 짊어진 채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듣기로는 너희 장 씨 집안 삼절진은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하다고 하던데, 오늘 보니 역시나 명실상부라 느껴지긴 하는구나. 하지만 다만 아쉬운 건, 넌 아직 제대로 불꽃이 튀지 않아 천절진의 위력은 크게 발휘하지 못하고 있어!”“앞으로 만약 10년만 더 지나게 된다면, 나중에 나의 천망 검진은 너를 더 이상 격파하기도 어렵게 될 거야. 하지만 어찌 됐든 그건 10년 후의 일이니, 오늘은 일단 이 자소화를 나한테 양보해!”이내 천릉자가 허리 굽혀 자소화를 따려는 순간, 숲속에서는 갑자기 우렁찬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오옥!”불곰보다도 몇 배나 더 큰 맹호 한 마리가 갑자기 숲에서 뛰어나오고 있었다. 순간 천릉자와 장령풍 모두 멍해졌다. 전에 5대 명산 고수들이 이미 산꼭대기를
유 씨 어르신의 말에, 임설은 끊임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기가 돌아온 후, 모든 사람들의 몸에는 큰 변화가 생겼고 저항력도 강해졌을 뿐만 신체능력도 향상되었다.그러나 마찬가지로 맹수들도 더욱 강해졌다. 만약 임설이 맹호를 상대한다면, 그건 바로 먹잇감이 되는 것이었다.당시 한지훈의 일전도 마찬가지라는 뜻이었다. 십여 명의 역외 강자들을 상대하다니, 게다가 모두 한지훈보다 한두 단계 높은 경지의 고수들이라니. 비유하자면 당시의 한지훈은 마치 현재의 임설과도 같았고, 그 십여 명의 역외 강자들은 바로 맹호 같은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들의 대결 결과는, 전혀 추측할 필요가 없이 다들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그럼 당시 그 대결이 만약 오로지 한지훈의 소행이었다면, 이건 합리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유 씨 어르신은 뒷짐을 진 채 오만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리둥절해졌다. 필경 유 씨 어르신은 화산 고수중 한 명이었기에, 그의 말은 신빙성이 아주 높았다. 게다가 진정한 무도 중인 만이 한지훈이 당시 직면한 것이 얼마나 큰 도전이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보통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유 씨 어르신은 이런 속임수에 넘어갈 리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무종이 점점 강해지게 되면서, 현재 더욱 많은 일반인들이 모든 경계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잘 알게 되었다. 천신경은 말할 것도 없고, 설령 전신계라 하더라도 작은 경계 사이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였다. 즉 천릉자는 비록 일성 준 천신의 최고 실력에 도달하긴 했지만, 그가 2성 천신계를 돌파하지 못한 이상, 2성 천신계 상대에게 있어 그는 마치 땅강아지와도 같은 존재였다. 두 사람이 동원할 수 있는 역량이 전혀 같은 수평선에 놓여있지 않는데, 어떻게 싸울 수 있겠는가? “어르신, 그 말씀은 전에 한지훈이 다른 사람의 힘을 이용하여 모든 사람들을 속여왔다는 뜻인가요?”임설이 다시 물었다. “그래. 중요한 포인트를 짚었네. 너희들 아직도
임설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 “혹시 임설이니?”바로 이때, 임설의 뒤에서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 씨 어르신?”고개를 돌린 임설은, 뒤에 선 노인을 보고는 순간 멍하니 있다가 이내 급히 열정적으로 그를 맞이했다. 그녀가 유 씨 어르신이라 부르는 이 사람은 바로, 세속에서 활동 중인 화산 강자이자 현재 무도 재판소의 부회장이기도 했다. 게다가 화산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었기에 유 씨 어르신은 세속에서도 소문이 자자했다. 매체인으로서 임설 역시 유 씨 어르신이 낯설지는 않았다. 게다가 전에 그녀는, 유 씨 어르신의 인맥을 통해 5대 명산의 3기 다큐 영화까지 제작했었다. “어르신, 어르신께서는 왜 여기 계신 거예요?”임설은 겉으로는 궁금해하는 척했지만, 사실 내심 전혀 의외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번 사건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장령풍과 천릉자 두 사람이었기에, 같은 5대 명산인 화산에서 사람을 보내지 않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난 단지 길을 가던 중 한번 와서 본 것일 뿐이야. 그나저나 이 아이들은 이젠 모두 어른이 되었는데, 이들이야말로 용국의 미래 희망이지!”유 씨 어르신은 눈을 지그시 뜨고는 산 꼭대기 쪽을 유유히 바라보았다.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 임설은 급히 보조 카메라 감독을 불러 휴대폰으로 촬영하라고 지시하였다. 이내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 유 씨 어르신 가까이에 다가갔다. “어르신, 어르신의 경험으로 봤을 때 오늘 이 자소화, 과연 어느 집안이 가져갈 거라고 예상하시나요?”필경 유 씨 어르신의 신분 지위는 꽤나 높았기에, 아마 일부 내막에 대해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5대 명산끼리의 호흡은 결코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장령풍과 천릉자가 맞붙기도 전에, 아마 암암리에 모든 준비를 마쳤을 가능성도 매우 높았다. “아이고, 그 질문은 좀 난처하네. 원칙부터 말하자면, 장 씨 집안 역사는 엄청 유구하지. 우리 용국의 많은 비진도 모두 장 씨 집안으로부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