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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시작되기 두 시간 전
우리가 시작되기 두 시간 전
Author: 레이디 드라코

제1화

Author: 레이디 드라코
윤지원을 본 신아영은 순간 굳어졌다. 벌겋게 부은 눈을 보니 조금 전까지 울었던 모양이었다.

“지원아? 네가 여긴 어떻게...”

“아영 언니...”

윤지원은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차분하게 물었다.

“안에 들어가서 이야기해도 돼요?”

거실은 어수선했고 테이블 위에는 먹다 만 케이크가 놓여 있었다.

윤지원은 옅게 웃으며 곧장 본론을 꺼냈다.

“오빠 대신 사과하러 왔어요. 언니 생일을 잊은 건 오빠가 잘못한 거예요.”

신아영은 입술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빠가 언니를 사랑하지 않는 건 절대 아니에요. 오빠는 어릴 때부터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툴렀어요. 언니가 헤어지자고 했다면서... 지금 혼자 술집에서 속상한 마음을 달래고 있어요.”

윤지원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언니, 오빠한테 가 봐요...”

지난 생에서 윤주혁은 윤지원과 결혼한 뒤에도 해마다 신아영의 생일이 돌아오면 혼자 술을 마시며 괴로운 마음을 달랬다.

윤주혁은 단 한 번도 신아영을 마음에서 지운 적이 없었다.

신아영은 윤지원을 바라보다가 문득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눈물은 여전히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주혁 씨처럼 무뚝뚝한 사람한테 어떻게 너처럼 살가운 동생이 있을까. 지금 바로 갈게. 고마워, 지원아.”

윤지원이 윤주혁이 있는 술집을 알려 주자 신아영은 곧바로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윤지원은 집을 나서는 신아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번 생에는 윤주혁과 하룻밤을 보내는 일도 없을 터였다.

집으로 돌아온 윤지원은 옷장 깊숙한 곳에 숨겨 두었던 일기장을 꺼냈다.

윤지원이 열 살이던 해, 갈 곳 없이 거리를 떠돌던 윤지원을 열여덟 살이던 윤주혁이 집으로 데려갔다.

윤주혁은 다른 사람에게는 차갑고 무뚝뚝했지만, 윤지원에게만큼은 한없이 다정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처음 알게 되었을 무렵, 윤지원은 자신이 윤주혁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평생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짝사랑이었다.

윤지원은 일기장을 펼친 뒤 한 장씩 뜯어 갈기갈기 찢었다. 잘게 찢은 종잇조각들을 변기에 버린 뒤 물을 내려 흔적도 없이 흘려보냈다.

두 시간쯤 지난 뒤, 현관문이 열렸다.

신아영은 술에 잔뜩 취한 윤주혁을 부축하며 안으로 들어왔다.

윤주혁은 신아영을 품에 꽉 끌어안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혀가 꼬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영아... 헤어지자고 하지 마... 내가 잘못했어... 정말 잘못했어...”

신아영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몇 번이고 윤주혁을 달랬다.

“알았어, 알았어. 헤어지자고 하지 않을게.”

윤지원을 발견한 신아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원아, 미안한데 해장국 좀 끓여 줄래? 나는 주혁 씨부터 방에 눕히고 올게.”

“네, 언니.”

신아영은 윤주혁을 부축해 침실로 들어갔다.

윤지원은 주방에서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침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응석을 부리는 윤주혁의 목소리 사이로 신아영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지난 생에서 윤주혁이 윤지원에게 신아영을 처음 소개했을 때, 윤지원은 두 사람이 무척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신아영은 밝고 당찬 데다 좋은 집안에서 자라 교양까지 갖춘, 완벽에 가까운 여자였다.

게다가 윤주혁의 동생인 윤지원에게도 늘 다정하게 대해 주었다.

‘아영 언니는 정말 좋은 사람이야. 나 때문이 아니었다면 아영 언니는 죽지 않았을 거야. 오빠와 아영 언니도 행복하게 살았겠지. 이번 생에는 꼭 만회할 거야.’

...

신아영은 밤새 윤주혁의 방에 머물며 윤주혁을 보살폈다.

다음 날 아침, 윤지원이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때 윤주혁은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윤주혁은 계란 프라이를 만들고 우유를 데운 뒤 식빵을 삼각형으로 잘라 접시에 담았다.

아침 식사를 모두 준비한 윤주혁은 신아영 앞에 음식을 차려 놓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식기 전에 얼른 먹어.”

신아영은 웃으며 윤주혁의 팔을 쿡 찔렀다.

“언제부터 이렇게 다정해졌어? 아침 식사도 챙길 줄 알고?”

윤주혁은 신아영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져 있었다.

지난 생에서 윤주혁은 윤지원과 결혼한 뒤에도 종종 윤지원을 위해 요리해 주곤 했다.

윤지원이 생리할 때면 진통제를 사다 주기도 했다.

윤지원은 계단 앞에 멈춰 서서 잠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지원아, 이리 와서 아침 먹어.”

신아영이 윤지원을 불렀다.

윤주혁은 고개를 들어 윤지원을 무심히 바라보았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고, 표정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윤지원이 식탁 앞에 앉자, 윤주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 칸 떨어진 의자로 옮겨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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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시작되기 두 시간 전   제9화

    동료들은 회의실에서 프로젝트의 성공을 축하하고 있었다.윤지원은 잠시 바람을 쐬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밖으로 나오자, 휴대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건 사람은 신아영이었다.“지원아! 축하해! 뉴스에서 봤어!”윤지원은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 언니.”“고맙긴, 이제 친언니처럼 편하게 대해도 돼.”신아영의 목소리는 한없이 밝았다.“참, 이번 주말에 시간 있어? 내가 커피 한잔 사고 싶은데.”“시간 있어요. 언니 남자 친구도 같이 나와요?”신아영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웃음을 터뜨렸다.“어떻게 알았어?”“언니가 SNS에 올린 꽃다발이요. 딱 봐도 직접 산 건 아니던데요.”“참 눈치도 빨라.”신아영이 웃으며 말했다.“그래, 데리고 갈 테니까 네가 한번 봐줘.”주말에는 햇살이 유난히 따스했다.윤지원이 카페에 도착했을 때, 신아영은 이미 와 있었다. 옆자리에는 부드럽고 점잖은 인상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지원아!”신아영이 손을 흔들었다.“이쪽은 임서준 씨야. 서준 씨, 이쪽은 윤지원이에요. 제가 아끼는 동생이에요.”임서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반갑습니다. 아영 씨에게 지원 씨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윤지원은 임서준과 악수한 뒤 웃으며 임서준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반갑습니다. 저도 아영 언니한테서 말씀 많이 들었는데, 직접 뵈니 듣던 것보다 훨씬 멋지시네요.”신아영은 얼굴을 붉히며 윤지원을 흘겨보았다.“놀리지 마.”세 사람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오후 내내 이야기를 나눴다.임서준은 다정하고 세심한 사람이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신아영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고 눈빛에는 애정이 가득했다.윤지원은 비로소 안심했다.‘아영 언니는 행복을 누릴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니까.’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덧 저녁 무렵이 되었다.임서준이 차를 가지러 간 동안, 신아영과 윤지원은 카페 앞에서 기다렸다.“지원아.”신아영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아직도 혼자야?”윤지원은 가볍게 웃었다.“혼자도

  • 우리가 시작되기 두 시간 전   제8화

    하지만 윤주혁은 모든 잘못을 윤지원에게 돌렸다.윤지원에게 이혼을 요구해 빈손으로 내쫓았고 어디에서도 일하지 못하도록 앞길까지 막았다.결국 윤지원은 곁을 지켜 주는 사람 하나 없이 월세방에서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윤지원이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들은 말은 ‘네 사랑은 정말 역겨워’였다.윤주혁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온몸을 떨었다.‘기억이 돌아왔다...’불현듯 모든 기억이 돌아왔다....윤주혁은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날이 밝자마자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윤지원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윤주혁은 멍하니 굳어 있다가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똑같은 안내 음성만 흘러나왔다.윤주혁은 카톡을 열어 윤지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지원아, 오빠가 할 말이 있어.]메시지를 보냈지만, 숫자 ‘1’은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잠시 후 대화 상대의 이름마저 ‘(알 수 없음)’으로 바뀌었다.윤지원은 이미 계정마저 삭제해 윤주혁과의 연락을 완전히 끊은 상태였다.윤주혁은 떨리는 손으로 휴대전화를 움켜쥐었다.잠에서 깬 신아영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윤주혁을 발견했다.윤주혁의 얼굴은 섬뜩할 만큼 창백했다.“무슨 일이야?”신아영은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악몽이라도 꿨어?”윤주혁은 눈시울을 붉힌 채 신아영을 돌아봤다.“아영아...”목이 잠겨 목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나... 기억이 돌아왔어.”신아영의 표정이 굳었다.“무슨 기억?”윤주혁은 입술을 달싹였지만,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결국 윤주혁은 지난 생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털어놓았다.윤주혁은 눈을 감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부탁했다.“아영아, 부탁이야... 지원이한테 연락 좀 해 줘.”신아영은 고개를 저었다.“싫어.”“제발...”신아영은 차분한 눈빛으로 윤주혁을 바라봤다.“주혁 씨는 나한테 부탁할 자격도 없어. 지원이한테는 더더욱 그렇고. 지원이는 지난 생에서 월세방에 혼자 남겨진 채 병으로 죽었어.

  • 우리가 시작되기 두 시간 전   제7화

    사진 속 윤지원의 눈매는 곱게 휘어 있었고 눈동자는 밝게 빛났다.윤주혁은 윤지원이 자기 앞에서 저토록 환하게 웃은 적이 있었나 싶었다.실제로 윤지원은 윤주혁에게 늘 환한 미소를 보여 주었다. 다만 윤주혁이 그 웃음을 한 번도 눈여겨보지 않았을 뿐이었다.신아영은 주방에서 나오다가 휴대전화를 바라본 채 넋을 놓고 있는 윤주혁을 발견하자 곁으로 다가와 화면을 들여다봤다.“지원이가 SNS에 사진 올렸어? 와, 이 코트 정말 잘 어울린다.”윤주혁은 화면을 잠근 뒤 휴대전화를 뒤집어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응.”신아영은 윤주혁을 잠시 바라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밤이 되어 신아영이 잠든 뒤에도 윤주혁은 홀로 거실에 앉아 있었다.윤주혁은 다시 휴대전화를 꺼내 윤지원의 SNS를 열고 화면을 아래로 내렸다.런던에서 찍은 사진들이 연달아 올라왔다.도서관, 카페, 템스강, 빅 벤...모든 사진에서 윤지원은 무척 행복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가끔 사진에 키가 크고 마른 남자의 뒷모습이 찍혀 있기도 했다.‘아마 서태욱이겠지?’윤주혁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최근 들어 자꾸만 꿈을 꾸었다.꿈속은 뒤죽박죽 얽혀 있었다. 윤지원과 신아영뿐 아니라 낯선 방까지 반복해서 나타났다.윤주혁은 무언가를 붙잡으려고 애썼지만,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신아영이 정기검진을 받은 날, 모든 검사 결과가 정상으로 나왔다.의사는 회복 상태가 매우 좋으니, 앞으로는 6개월에 한 번씩 정기검진만 받으면 된다고 말했다.신아영은 아이처럼 기뻐하며 윤주혁의 손을 붙잡았다.“샤브샤브 먹고 싶어! 오늘 제대로 축하하자!”윤주혁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래. 먹고 싶은 건 다 먹어.”저녁 식사 자리에서 신아영은 평소보다 훨씬 많이 먹었다. 식사 내내 눈꼬리가 곱게 휘어질 만큼 환하게 웃었다.그러나 윤주혁은 밝게 웃는 신아영을 바라보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 알 수 없는 불안을 느꼈다.밤이 깊어지자, 윤주혁은 또다시 꿈을 꾸었다.

  • 우리가 시작되기 두 시간 전   제6화

    윤지원은 화장대로 다가가 보석함을 집어 들고 안을 확인했다.보석함 안에는 윤지원의 열여덟 번째 생일에 윤주혁이 선물한 진주 귀걸이 한 쌍이 들어 있었다.윤지원은 귀걸이를 몇 초 동안 바라보다가 다시 뚜껑을 닫았다.“이건 안 가져가?”윤주혁이 물었다.윤지원은 고개를 저었다.“응, 필요 없어.”윤지원은 보석함을 화장대 위에 내려놓고 몸을 돌려 방을 나갔다.윤주혁은 방문 앞에 멈춰 서서 보석함을 바라봤다.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텅 빈 방에 덩그러니 남겨진 진주 귀걸이 한 쌍이 자신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졌다.“오빠.”아래층에서 윤지원이 불렀다.“나 이제 갈게.”윤주혁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윤지원은 현관 앞에 서 있었다. 등 뒤로 쏟아진 햇빛이 윤지원의 모습을 금빛으로 감싸고 있었다.흰색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머리를 하나로 묶은 윤지원은 꾸밈없이 단정한 모습이었다.“그동안 챙겨 줘서 고마워, 오빠.”윤지원은 옅게 웃으며 덧붙였다.“아영 언니는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으니까, 오빠가 앞으로도 잘 돌봐 줘.”윤주혁은 윤지원을 바라보다가 문득 말했다.“시간 나면 보러 갈게.”“괜찮아. 정리는 다 끝났어. 오빠는 오빠 일 봐.”윤지원은 몸을 돌려 집을 나섰다.윤주혁은 현관 앞에 서서 이삿짐 차량이 단지를 빠져나가 교차로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지켜봤다.한참 동안 자리를 지키던 윤주혁은 집으로 들어왔다.문이 열린 윤지원의 방 앞을 지나가던 윤주혁은 문득 걸음을 멈췄다.윤주혁은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갔다.방은 텅 비어 있었고, 활짝 열린 옷장 안에도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커튼만 바람에 가볍게 흔들렸다.화장대 위에는 윤지원이 두고 간 보석함만 그대로 남아 있었다.윤주혁은 화장대 앞으로 다가가 보석함을 열었다.조금 전 가져가지 않느냐고 물었던 진주 귀걸이는 여전히 보석함 안에 놓여 있었다.윤주혁은 휴대전화를 꺼내 윤지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귀걸이 두고 갔어.]몇 분 뒤 답장이 도착했다.[필요 없어.

  • 우리가 시작되기 두 시간 전   제5화

    퇴원 서류를 쥔 윤주혁의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윤주혁은 아무 말 없이 신아영만 바라봤다.신아영은 여전히 웃으며 윤주혁의 팔을 가볍게 두드렸다.“지원이도 다 컸나 봐. 이제 다른 남자 따라 해외로 간대. 오빠인 주혁 씨도 축하 한마디 해 줘야지?”“응.”윤주혁의 목소리는 무척 담담했다.“잘됐네.”윤주혁의 시선이 신아영 너머로 윤지원에게 향했다.윤지원은 고개를 숙인 채 창가에 조용히 서 있었다. 커튼 사이로 스며든 햇빛이 윤지원의 그림자를 바닥에 길게 드리웠다.윤지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윤주혁 쪽으로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일단 집에 데려다줄게.”윤주혁은 퇴원 서류를 챙긴 뒤 신아영의 어깨를 감싸고 병실 밖으로 향했다.“의사 선생님도 푹 쉬어야 한다고 했잖아. 당분간 무리하면 안 돼.”신아영은 웃으며 알겠다고 대답한 뒤 윤지원을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지원아, 가자. 집에 가야지.”차에 탄 신아영은 조수석에 앉았고 윤지원은 뒷좌석에 자리 잡았다.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 가운데 차 안의 라디오에서는 오래된 노래가 흘러나왔고 등받이에 몸을 기댄 신아영은 서서히 잠들었다.윤주혁은 룸미러로 뒷좌석을 힐끗 바라봤다.윤지원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차창에 옆모습이 희미하게 비쳤지만 표정까지는 알아볼 수 없었다.윤지원은 지난 몇 달 사이 눈에 띄게 야위었다.학교와 병원을 쉴 새 없이 오간 탓에 턱선이 뾰족해질 정도로 살이 빠져 있었다.윤주혁은 무슨 말이라도 건네려 입술을 달싹였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무슨 말을 해? 이제 와서 이사 가지 말라고? 나가라고 한 것도 나고, 오피스텔까지 구한 것도 난데... 이제 와서 번복하는 건 말도 안 되지.’교차로의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자, 차가 멈췄다.그때 룸미러 너머로 윤지원의 휴대전화 화면이 켜지는 모습이 보였다.윤주혁은 룸미러 너머로 카톡 알림창에 뜬 이름까지 얼핏 확인할 수 있었다.‘서태욱? 그 남자인가?’메시지 내용까지는 읽지 못했지만, 화면을 확인한

  • 우리가 시작되기 두 시간 전   제4화

    “윤지원.”윤지원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윤주혁은 주소가 적힌 메모지 한 장을 내밀었다.“학교 근처에 오피스텔을 하나 마련했어. 방이 두 개고 거실도 따로 있어. 인테리어도 다 끝났으니까... 되도록 빨리 이사해.”윤지원은 순간 굳었지만 곧 메모지를 받아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따져 묻지도, 망설이지도 않았다.윤주혁은 윤지원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읽어 내려는 듯 한동안 빤히 바라보았다.하지만 윤지원은 아무렇지 않은 듯 메모지를 챙긴 뒤 몸을 돌려 2층으로 올라갔다.다음 날 윤지원은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물건 대부분은 기부하거나 버릴 생각이었다.새 오피스텔에 필요한 물건은 모두 새로 장만해 완전히 새로운 삶을 시작할 계획이었다.윤지원은 날이 갈수록 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왔고 식사 때도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방 안의 물건도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었다. 책장과 옷장은 텅 비었고 화장대 위에는 보석함 하나만 덩그러니 남았다.어느 날 밤, 윤지원은 열 시가 훌쩍 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윤주혁은 불도 켜지 않은 채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어둠 속에서는 담뱃불만 붉게 타올랐다가 사그라들기를 반복했다.“늦었네.”윤주혁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요즘 뭐 하고 다녀?”신발을 벗던 윤지원이 잠시 멈칫했다.“학교에 볼일이 있었어.”윤지원은 신발을 마저 벗고 곧장 방으로 향했다.등 뒤에서 윤주혁이 유리잔을 탁자 위에 거칠게 내려놓는 소리가 들려왔다.신아영의 항암 치료는 순조롭게 진행됐다.치료를 시작한 지 석 달이 지난 뒤, 의사는 상태가 어느 정도 호전되었으니 집에서 요양하며 정기적으로 검진만 받으면 된다고 말했다.신아영이 퇴원하는 날에는 윤지원도 병원을 찾았다.신아영은 눈에 띄게 야위었지만 표정은 밝았고 활기가 넘쳤다.윤주혁이 퇴원 수속을 밟으러 간 사이, 윤지원과 신아영은 병실에서 함께 기다렸다.“지원아...”신아영이 문득 입을 열었다.“너랑 주혁 씨... 혹시 싸웠어?”윤지원은 순간 굳었고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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