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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렇게 하니까 심 씨가 깨갱하고 뼈도 못 추리고 가는 거 아니겠어요?“정 씨의 신이 난 목소리에 식탁에서 밥을 먹던 본용이 껄껄 웃었다.”그동안 한 게 있어서 우리가 할 말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속은 시원하긴 하네. 그 여자, 남을 얼마나 깔보고 다녔어?“ ”그죠?” ”지난번에 재형이에 관해 입 놀려댄 거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아.“심 씨와 정 씨의 실랑이가 있던 날. 본용은 뒤늦게 집에 들어와 그 광경을 보고 말았다. 서로에게 엄청난 막말이 오가던 때. 심 씨는 기어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서 그들의 손주, 재형까지 욕을 하고 만 것이었다.그 순간, 애써 정 씨를 말리던 본용은 그대로 분노를 터뜨리고 말았다. 재형은 작은방 안에 잠이 들어 있었다. “아무튼 속이 시원~ 하네요.” “그러네.” “그나저나, 우리 재형이가 인협이를 굉장히 따르더라고요?” “응? 인협이를?”정 씨의 말에 본용이 의아해하며 그녀를 쳐다보았다.“그래요, 인협이요. 인협이만 보면 순한 강아지처럼 되더라니까요. 인협이가 한마디하면 딱 들어먹고.” “그래?”아무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 지금으로서는 두 사람의 가장 큰 골칫덩어리인 재형이 유독 믿고 따른다는 말에 본용의 마음이 움직였다.“그러니까, 인협이가 학교에 최대한 오래 붙어있도록 월급이라도 더 주는 건 어때요? 듣자 하니, 50밖에 안 받고 일하고 있다면서요.” “…….”소원 초등학교의 예산은 늘 빡빡했지만, 지역 교육청과 잘 이야기해서 추가 인원에 대한 예산을 받아내는 건 불가능한 일은 아닐 터였다.“한번 이야기해 볼게. 힘을 한번 써보면 월급을 100까지는 올려줄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요.”정 씨는 인협과 에스더에게 완전히 반해버린 모양인지, 남은 식사 시간 내내 자신이 목격했던 것을 본용에게 들려주었다. *** “정렬아!” “정렬 씨!”에스더와 인협은 마을의 맨 안쪽 집 마당으로 들어서며 정렬의 이름을 불렀다. 정렬에게 연락해도 닿지 않아 결국
“어? 다시 오셨네요.”마스크를 쓴 우겸이 다시 카페 안으로 들어온 걸 발견한 유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말했다. 어마어마하게 유명한 선수던데. 전 세계적으로 팬도 많고. 유진은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이기 짝이 없는 우겸을 살펴보았다. 아무리 봐도 한곳에서 정점을 찍은 사람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아우라는 있었으나, 외모로는 크게 특출난 기색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다.“아, 제가 지인한테 간곡한 부탁을 받아서요.” “네?” “제가 여기로 올 수 없던 그분 대신 부끄러움을 느끼며 한번 말을 전해보도록 할게요.” “…….”뭐지? 저렇게 유명한 사람의 지인이 날 알 리가 있나?도통 뜻을 알 수 없는 우겸의 말에 유진은 그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조봉길, 혹시 기억나시나요?”잊어본 적 없는 이름을 우겸이 언급하자, 유진의 눈이 커졌다. 맞다. 그 사람도 리그 오브 카오스 팀 코치라고 했었는데. 명함을 받은 날 검색해 봤던 내용들을 떠올린 그녀였다. “표정 보니까 기억하시나 보네요.” “네, 기억은 하죠. 알바하다가 누군가로부터 명함을 받는 일은 흔한 일은 아니니까요.”유진의 말에 우겸은 조용히 속으로 감탄했다. 생각보다 저돌적인 분이시네, 우리 봉길 코치님.“그런데요?” “네?” “근데 왜 연락 안 하세요?” “제가 왜 꼭 연락해야 하나요?”유진의 역질문에 우겸은 당황도 하지 않고서 씩 웃었다. 재밌는 분이시네. 꼭 봉길 코치님이랑 이어드리고 싶어질 만큼. “당사자는 오지도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나 보내고…. 혹시 사람 갖고 장난하시는 게 아닌가 싶은 정도인데요. 그리고 만에 하나 그런 거라면 매우 불쾌하고요.” “아…. 장난은 전혀 아니에요. 제가 봉길 코치님의 마음을 잘못 전달한 거라면 정말 죄송해요.” “…….” “봉길 코치님은 매우 진지하세요. 진지하게 만나고 싶어 하세요.” “…….”그놈의 진지함. 진심 빼면 시체인양 주아의 친부는 늘 그것을 남발하고는 했다. 그리고 그걸 진심이라고 바보같이 믿었던 그녀였고.
토요일. 이른 아침의 소원리 앞 버스 정류장. “그래서, 둘이서만 가니까 좋아?” “또 놀리지?”인협과 에스더는 정류장 의자에 함께 붙어 앉은 채로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무더운 7월 말의 날씨도 새롭게 사귀기 시작한 이들의 애정행각을 막을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이 맞잡은 손 사이에는 땀이 가득 차 있었으나, 잠시 열기를 식히기 위해 손을 살짝 펼칠 때를 제외하고는 두 사람은 손을 굳게 붙들고 있었다. 누군가를 사귀기 전에는 이런 미련한 짓을 왜 굳이 하는 거지, 라고 생각해 왔던 인협이었다. 무더운 여름날 내일이라고는 없는 것처럼 찰나의 스킨십도 참지 못하는 연인들을 보며 한심해했던 그였다. 애초에 사랑이 미련한 짓인데 말이야. 이 험한 세상에서 상대를 위해 나를 다 내놓는 거라는 게.애초에 사랑부터가 말도 안 되는 미친 짓이니, 무더운 날 손잡는 거쯤이야. 인협은 과거의 자신을 부정하며 에스더의 손을 더 꼭 붙들었다. “정렬이가 너 좋아하는 거 알았어?” “몰랐다면 거짓말이겠지.” “허어, 근데 그런 애를 밀어내지도 않고….” “어쩔 수 없잖아. 그렇게 되면 이 좁은 동네에서 마주칠 때마다 얼마나 껄끄러워. 나야 어차피 떠날 사람이고, 정렬 씨도 높은 확률로 풋사랑을 하는 걸 거고. 어차피 내가 기를 쓰고서 마음을 모르는 척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백 못 해.”에스더의 설명에 인협은 기가 차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렸다. “너, 연애 고수지?” “고수는. 중학생 때 풋내기 연애 두 주 해본 거 외에는 나도 연애 경험 없네요.” “근데 뭐가 이렇게 여유로워?”인협은 괜스레 억울해지는 마음에 물었다. “사람 경험의 차이랄까? 교회도 그렇고, 교육계라는 것도 그렇고 은근히 진상 집합소거든.” “응?” “교회에는 의지할 곳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이 몰리기도 해. 대체로 상처 입고 이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 종교에 잘 기대고는 하니. 또, 교사 실습을 하다 보면 별의별 애들도 만나고, 그 문제적 행동의 근원인 어마어마한
“뭐지….”인협은 관사 거실 소파에 앉은 채로 고민에 빠져 있었다. 오늘 저녁 식사를 같이하자고 보낸 문자에도 에스더는 묵묵부답이었다. 답답해진 인협은 용기를 내어 그녀의 관사 문도 두들겨보았으나, 에스더는 침묵할 뿐이었다. “나도 나름의 은인인데, 은인을 왜 이렇게 대하냐고….”시무룩한 얼굴로 인협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외로움 따위는 모르는 줄 알았더니, 워낙 따스한 사람이 곁에 있다가 확 사라지니 외로움이 하루 사이에 사무칠 지경이었다.“너무하다, 에스더야….”인협은 꿍얼거리듯 중얼거리고는 눈을 감았다. “후-.”너무해. 알려주지도 않고. 정렬이랑 읍내 나가는 게 왜 그렇게 화가 날 일이야!인협은 답답함에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어졌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다시 다짐했다.“대답할 때까지 두드린다, 내가.”오랜만에 그의 승부욕이 발동된 것이었다. 인협은 성큼성큼 걸어서 집에서 나가, 에스더의 집 문 앞에 섰다.큰소리를 내면 동네 창피해서라도 나오겠지.쾅쾅쾅쾅! 그는 힘을 꽉 준 주먹으로 최대한 큰 소리로 문을 두들겼다. “황 선생님! 황 선생님!!”쪽팔림도 무릅쓰고 인협은 목소리 높여서 애타게 외쳐댔다.몇 초가 채 지나지 않아서 철컥, 소리와 함께 문이 활짝 열렸다. 물론 인협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에스더가 맞은편에 나타나긴 했지만 말이다.인협은 흠칫 놀랐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며 입을 열었다.“아무런 답이 없길래 걱정이 돼서 말이지.” “그게 말이야, 방구야?” “당연히 말이지. 그것도 아주 다정한 말.”인협의 능청스러운 대꾸에 에스더의 눈썹이 위로 솟았다. 미간의 주름은 덤이었다. “뭐?” “나 안으로 좀 들어가도 돼?” “…….” “나도 나름 손님인데.”힘껏 인협을 노려본 에스더는 마지못해 인협이 집안에 들어오는 걸 허락해 주었다. 이대로 인협을 문전박대했다가는 또 어떤 미친 짓을 저지를지 모르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인협의 등 뒤로 에스더가 일부러 더 힘주어 당긴 현관문이 굉음을
“아이고! 순옥이 잘 왔어?”최 씨의 가게 앞. 간만에 마을에 방문한 딸 덕분에 읍내에서 살뜰하게 장을 본 갑순은 흡족한 얼굴로 복란에게 음료수를 쏘는 중이었다. 가게 앞에 평상에 앉아서 시원한 음료를 들이키던 두 사람은 순옥과 철호가 탄 차가 마을로 들어오는 걸 보고는 인사를 건넨 것이었다.“네!” “안 그래도 차 들어온 거 보고 한번 보러 가야겠다 했는데, 몸 상태가 어떤지 알 수가 없어서 조용히 있었지.”순옥이 차에서 내리려 하자, 철호와 할머니들이 황급히 그녀를 말렸다.“떽! 병자가 뭘 내려! 그냥 차 안에서 인사나 받아.” “아휴, 그래도요.” “그래도요는 무슨!”갑순의 호탕한 다그침에 순옥은 곤란한 표정으로 웃기만 했다. 근황을 두런두런 이야기하다가 철호의 차는 먼저 마을 쪽으로 들어갔다. 그때 정 씨가 마을에서 걸어 나오다가 황급히 얼굴을 가렸다. 차가 지나가고 나서야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다시 걸음을 서둘렀다. 급하게 필요한 게 있어서 최 씨의 가게에 들리러 가던 정 씨는 가게 쪽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흠칫하고선 뒤로 돌았다. “기순아! 어디 가냐!”아니나 다를까. 그 찰나 동안 정 씨를 보았던 갑순의 우렁찬 부름에 결국 그녀는 울상을 했다. 모르는척하고 그냥 빨리 집으로 뛰어갈까? 심 씨의 술수로 보나 마나 그녀에 관한 악소문이 퍼져있을 터였다. 정 씨는 과거에 심 씨와 함께 열심히 씹어댔던 사람들이 한데 모여있는 것을 보고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만약에 언니가 악의적으로 내가 모두를 안 좋게 말했다는 식으로 퍼뜨렸다면?정 씨는 과거의 뿌렸던 말의 씨앗이 덤불이 되어서 모두 덮쳐오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후-.”그래도 나가서 죗값은 받아야지. 늘 회피하면서 살 수는 없으니.그녀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는 죄인이라도 되는 양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평소에는 우악스럽고 큰 목소리의 정 씨가 힘없는 목소리로 인사를 하자, 나머지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본용의 집 마당. “아니, 너 내 연락을 왜 이렇게 안 받아? 걱정돼서 찾아왔잖아.”보통은 정 씨가 심 씨의 집으로 찾아가거나, 심 씨가 불러내는 곳으로 늘 나가고는 하던 정 씨였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달랐다. 행여나 재형에 관한 소문이 안 좋게 퍼져 나갈까 봐 심 씨의 연락을 못 본 척하고서 집에만 있던 정 씨였다.잔뜩 심통 난 심 씨의 표정을 본 정 씨는 곤란한 기색을 감추고 애써 미소를 지었다. 심술맞은 심 씨의 눈 밖에 나봤자, 재형에 관해 좋은 말을 할 리가 없는 그녀였기 때문이었다.“아, 우리 둘째 성모 있잖아. 성모가 아들 재형이 좀 몇 달간 돌봐달라길래.” “그래서, 내 연락을 못 받아? 말이 안 되잖아. 재형이는 지금 학교 갔지?” “그렇긴 한데, 새 식구가 집에 들어오면 할 일이 워낙 많잖아, 언니….”정 씨의 파리한 얼굴을 흰자가 유독 많은 큰 눈으로 살핀 심 씨는 코웃음을 크게 쳤다.“어쭈? 그렇다고 내 연락도 다 씹고 집에만 있었다? 야, 너 의리가 없어도 너무 없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나 참, 손주를 아들이 버리고 간 건 아니고?” “뭐, 뭐라고?” “거짓말하는 거지, 너? 어제 네 손주 세상 떠나가라 통곡하는 소리 다 들었어. 내가 바보야? 이런 것도 눈치 못 채게?”“언니, 아무리 그래도 버리고 갔다는 표현은 좀….” “그리고, 너 자식들이 연락 끊은 거지? 바빠서 못 오기는 못 오길. 딱 봐도 네 심보 못 견뎌서 아들들이 연락 끊은 것 같더구먼.”가까운 사이였던 사람이 약점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하던가.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를 난도질해 대는 심 씨를 보며 정 씨는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정 씨는 순간 화도 났지만, 누굴 탓하리오. 다 본인이 쌓아 올린 업보나 다름없었다. 심 씨의 방식이 우악스럽고 교묘해서 싫었으나, 어찌 됐든 마을의 실세인 이장에게 붙어있으면 콩고물이라도 떨어지겠지라는 생각에 심 씨에게 여태 붙어있던 정 씨였다.심 씨의 곁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주워듣다 보니,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