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동해시의 어느 작은 시골 마을. 집이라고는 열 가구 남짓한 작은 마을. 푸르기만 한, 특별한 일 없는 그곳에 온 세상 불만은 다 끌어안고 있는듯한 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나인협. 한때는 매우 잘나가던 프로게이머였던 남자. 가시를 잔뜩 세운 고슴도치처럼,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서 찔러대는 남자의 공격에 들썩거리는 소원리. 로맨스 한 스푼, 시골 사람들의 이야기 한 스푼 섞인, 잔잔슴슴 이야기. atthebrink3@gmail.com
Lihat lebih banyak**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등장인물, 사건, 장소는 모두 허구로 창작된 것임을 밝힙니다**
“아, 오늘은 역사적인 날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두 팀이 결승전에서 만나게 되었는데요-.”고조된 돔 안의 분위기 위에 해설자의 쾌활한 음성이 울려 퍼진다. 세계적인 게임인 리그 오브 카오스의 월드컵 결승전이 진행되는 날.
세계 각국에서 뛰어난 팀들이 모두 참여하는 만큼, 한국에서 가장 인기 많은 두 팀이 결승전에서 만난 건 엄청난 광경이었다.
“국내 리그에서는 부동의 1위인 원티드와 그 뒤를 늘 바짝 쫓는 케이비가 있습니다.” “네, 그 두 팀이 다시 월드컵 결승전에서 격돌하게 되었는데요.” “매번 승리의 문턱에서 넘어지고 마는 케이비. 오늘만큼은 우승을 거머쥘지 기대가 됩니다.”두 해설자의 의견이 오가고, 각 팀의 다섯 명씩의 선수가 각자 컴퓨터 앞에 앉아서 몸을 풀고 있다. 전광판에는 선수들의 긴장된 얼굴이 번갈아 비쳤다. 헤드셋을 쓰고서 각자 컴퓨터를 응시하고 있는 선수들이었다.
각 선수의 얼굴이 나올 때마다 관중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그렇습니다. 이번 시즌에도 아주 좋은 역량을 보여주고 있는 케이비이지만, 매번 중요한 경기 막바지에 1등의 꿈이 좌절되고 마는데요-.” “맞습니다. 특히나 케이비의 레브 선수가 그런 실수의 중심에 자주 있어서 아쉬움이 큽니다.” “네, 중요한 경기마다 큰 실수가 나오고는 하는 레브 선수인데요. 개인 기량으로만 보면 레전드라고 불리는 원티드의 카이 선수를 한번 쯤은 꺾을 만도 하기에, 여러번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이런 중요한 경기에서는 일관성 있는 모습이 중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은 큰 경기인만큼 좋은 모습을 볼 수 있으면 하는데요-.”그 중 무대 왼쪽의 안쪽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앉은 선수가 긴장한 얼굴로 손을 풀고 있었다.
오늘만큼은 실수는 안 돼. 케이비의 레브라 불리는, 관심의 중심에 선 나인협이었다.
“인협. 오늘은 실수 없으리라 믿는다, 응?”노이즈 캔슬링 헤드셋에서 들려온 팀 보이스에 인협은 굳은 얼굴로 이를 악물었다. 오늘만큼은 절대로 안 돼. 생사를 건, 결의가 가득한 그의 눈빛이었다.
“자, 오늘 와 케이비의 역사적인 우승이 될 것인지 아니면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원티드의 카이 선수의 세 번째 월드컵 우승이 될 것인지 지켜봐 주세요!”와아아-. 해설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객석에서는 우렁찬 함성이 쏟아졌다.
마우스를 잡은 인협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 [6개월 후]드르륵, 드르륵-.
캐리어 바퀴가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는 소리가 고요한 시골 마을에 울려 퍼졌다. 동해시 신화읍 소원리. 신화읍에서 차를 타고 30분 정도 굽이진 길을 들어와야 만날 수 있는 외진 마을이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로 캐리어를 끄는 남자는 얇고 동그란 테의 안경을 쓰고서 잘 정돈되지 않아 덥수룩해 보이는 머리를 하고 있었다.
182센티미터의 키. 그다지 못생기지도, 잘생기지도 않았지만, 곳곳을 잘 살펴보면 나름의 매력을 가진, 리그 오브 카오스 계의 몇 안 되는 훈남이라고 한때 불리던 얼굴이었다.
다행히 뼈대는 굵은 편이라 따로 운동한 것 없이 어깨는 좀 있는 편이었으나, 전체적으로 몸이 마른 편이었다. 그의 몸에서 굳이 근육을 찾아보자면 마우스와 키보드를 다루느라 돋보이는 전완근 정도였다.
구름도 한 점 없이 맑은 초여름의 하늘 아래. 머리를 태울 듯이 내리쬐는 쨍쨍한 햇볕에 남자는 인상을 잔뜩 구기고 있었다.
사방에 쟁쟁한 푸르름이 가득한 6월의 초여름.
차 한 대가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포장된 길을 중심으로 양옆에는 푸르름을 머금은 너른 밭과 집들이 띄엄띄엄 지어져 있었다.
마을을 둘러싼 봉긋한 산세는 부드럽고 둥그런 편이었다. 산이 마을을 둘러싼 덕분인지, 유독 푸르른 하늘 아래 마을의 푸르름은 배가 되었다.
“이 동네는 변한 게 거의 없네.”인협은 혼잣말을 중얼거리고는 어딘가 잔뜩 날이 선 눈으로 한눈에 들어오는 동네의 전경을 찬찬히 살폈다.
마을 초입은 평지에 가까웠지만, 산 초입에 가까워질수록 경사가 져 있는 덕분에 길에서도 소원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곳에서 살았던 어렸을 적의 기억과 다른 점이라고는 새로 지어진 집 두 채와 그가 이곳에 살았을 적에는 없던 작은 교회 건물뿐이었다.
그때는 모든 게 다 멀고 커 보이더니.
기억 속 마을의 풍경보다 축소된 듯한 마을의 전경을 꼼꼼하게 살핀 그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완만하던 길이 급격한 오르막으로 바뀌자, 짐이 든 캐리어를 끄는 손에 힘줄이 바짝 섰다.
비교적 선선한 편인 초여름인데도, 그의 이마에는 앞머리가 달라붙어 있었다.
“후-.”양옆에 풀숲이 펼쳐지는 광경을 보며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다 보면, 소원 초등학교의 교문이 울창한 나무 사이로 빼꼼 보였다.
여기도 변한 게 없네.
까르륵-. 주중 낮 시간인지라,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단층짜리 학교 건물 외벽을 어설프게 밝은색 페인트로 덧칠되어 있었지만, 학교의 낡은 티를 완전히 덮지는 못했다.
운동장 놀이터도 옛날 것 그대로였고, 관사도 어느 정도 노력은 기울인 듯해 보였지만, 옛 모습 그대로였다.
그 광경을 잠시 지켜보던 인협은 다시 캐리어를 끌며 학교를 지나갔다.
교문 초입을 어느 정도 지나고 보면 가파른 내리막길이 시작되었다. 대체로 마을 뒷산 초입을 향해 오르막으로 경사진 마을이었으나, 신기하게도 학교 터는 마을 어떤 곳보다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여기네.”내리막이 조금 완만해진 오르막으로 바뀔 때쯤.
초등학교 언덕 바로 밑에 위치한 집으로 들어가는, 풀숲 사이로 난 길 앞에 멈춰선 인협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열 걸음 정도 되는 좁은 길을 걸어 들어가면, 남자의 어깨높이까지 오는 담으로 둘러진, 낡은 기와집이 보였다. 제대로 된 대문도 없는 집이었다
8년여의 시간 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거의 폐가처럼 보이는 집.
‘인협이 왔나?’언제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따스함이 머무르던 집은 어느새 아무런 온기 없는, 마을 사람들에게 버려진 곳이 되어있었다.
중앙에는 마당을 두고서 기역 자로 꺾인 집이었는데, 꺾여지는 부분에는 집 건물이 끊겨 있고 장독대가 여럿 세워져 있고, 옛날에 사용했던 수돗가가 있었다.
집 입구 바로 옆에는 예전에 변소로 쓰던 작은 건물이 있었고, 그 옆에는 창고 공간이 있었다. 사랑방으로 쓰던 공간과 아궁이가 있는 공간을 끝으로 기역자 중 한쪽 공간은 끝이 났다.
그리고 장독대와 수돗가가 있는 꺾어진 부분을 지나면 있는 공간에는 약간의 현대식 공간이 있었다. 인협이 어렸을 적 동네 사람들과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위인 인협의 아버지가 공을 들여서 고쳐준 공간이라고 들었다.
그곳에는 거실로 사용하던 공간이 있었고, 그 안으로 한 번 더 들어가면 한 사람만 겨우 지나다닐 법한 작은 부엌 공간이 나왔다.
부엌 공간 끝에는 화장실이 있었다. 그리고 부엌과 거실 공간과 두 문으로 연결된 큰방이 있었다.
큰방에서 한지와 나무로 만들어진 미닫이문을 열면 예전에는 툇마루였지만, 현대식으로 바꾸며 생겨난, 베란다 같은 복도 공간이 있었다.
미닫이문을 열면 바로 마당으로 나갈 수 있는 복도를 지난 끄트머리에는 예전에 어머니의 공간이었던 작은방이 있었다.
인협은 익숙하고도 낯선 집 외관을 둘러보았다. 돌봄을 받아 낡았어도 포근한 느낌을 주던 집은 온데간데없었다.
흙으로 된 마당에는 구석구석에 듬성듬성 풀이 높게 자라있었고, 마당 한구석을 차지한 아무것도 없는 닭장과 개집은 흉해 보일 뿐이었다.
“후-.”괜한 선택이었나?
이곳으로 오기로 한 건. 집 외관을 찬찬히 둘러본 인협은 약간의 후회를 했다. 이 정도로 낡아빠진 집의 상태는 이곳으로 와야겠다는, 계시에 가까운 생각이 들었을 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인협은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주머니에서 집 열쇠를 꺼내 들었다.
이곳을 떠나게 되었을 때 언젠가는 꼭 돌아오리라 생각하며, 당연히 제 것이었던 열쇠를 챙겼던 그였다.
당시에 지긋지긋해하던 소원리를 떠났던 날 이후로 단 한 번도 써보지 못한 열쇠였지만.
낡은 쇠붙이를 한참 만지작거리던 인협은 비릿한 쇠향이 맡아질 때에서야 그것을 낡은 철문으로 가져갔다.
바로 거실로 통하는 문이었다.
철컥. 인협이 약간의 힘을 주자, 열쇠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약간 열렸다.
끼익. 녹슨 철문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열리자, 일부러 누군가가 보존이라도 해둔 듯이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공간이 보였다. 군데군데 물샌 자국이나, 장판이 들렸다거나 보수가 필요한 부분은 있었지만.
모든 것이 기억보다 조금 더 낡고 먼지가 쌓여있기만 할 뿐이었다.
“하-.”한숨을 푹 쉬자마자 확 밀려오는 먼지 냄새에 재채기를 연달아 한 인협은 얼굴을 찌푸린 채로 건넌방 앞 복도 문을 열어서 그 앞에 놓인 청소도구를 집어 왔다.
유선 청소기와 빗자루와 쓰레받기.
부지런했던 할머니가 이른 아침부터 걸레질하기 전에 늘 즐겨 사용하던 것들이었다.
코드를 꽂고 버튼을 작동으로 바꾸니, 낡은 청소기가 우렁찬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그 바람에 다시 한번 밀려오는 먼지바람에 재채기를 또다시 연거푸 한 인협은 앞으로 지내게 될 거실, 부엌, 그리고 큰방까지 청소기를 꼼꼼히 돌렸다.
다른 곳들은 차근차근 청소하면 될 터였다. 어차피 당장 허물어져도 이상해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 얼마간 머무를지도 모르는 노릇이니까.
그다음은 걸레질. 할머니가 습관처럼 하던 걸 기억해 낸 그는, 부엌 낡은 수납장에 쌓여있는 걸레들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집안의 물건도, 위치도 기억 속 그대로였다.
이곳으로 오기 전, 수도를 연결해 두어 다행이었다. 걸레에 물을 꽉 짜낸 뒤, 그는 바닥을 꼼꼼하게 훔쳤다.
기억 속 외할머니처럼 야무진 손짓은 못 됐지만, 그래도 어설프게나마 흉내는 내는 듯해 보였다.
“하, 이 정도면 됐고-.”집안에 에어컨도 없어, 땀이 맺힌 이마를 팔뚝으로 대충 닦아낸 그는 집안의 창문을 모두 열어젖혔다.
그러자, 어둑하던 집안에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햇빛이 집안을 비추자,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의 흠이 아주 잘 드러났다.
군데군데 핀 조그마한 곰팡이 자국. 물샌 자국. 장판이나 벽지가 들리거나 우는 부분들. 그저 자연스럽게 낡아진 부분들이 더 적나라하게 보였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곳에 햇빛이 내려앉자, 집안이 훨씬 더 살기 좋은 곳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딘가 따스해 보이는 집안을 보며 인협은 잠시나마 어린 시절 소원리에 살았던 기억 속의 온기를 조금 느낀 것 같았다.
얕은 담 너머로 보이는 마을 풍경과 산의 모습에 인협은 가슴이 뻥 뚫리는 것만 같았다.
늘 분주함에 치이고 노력이라는 이름의 정체불명의 불안에 쫓겨 멈춤이라고는 모르던 그의 삶에 드디어 완벽한 고요함이 찾아든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망망한 바다 위에 떠다니는 돛단배가 된 막막한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당장, 이 고요함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지난 몇 달간 특히나 머릿속이 이 정도까지 조용한 일이 없었으니까.
“모두 아직도 계시려나?”인협의 가슴팍까지 오는 낮은 담장 너머로 보이는 소원리 마을의 한 자락에는, 떠나기 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 집도 있었지만, 낡은 집들 속 완전히 현대식으로 지어진 집도 두 채가 눈에 띄었다.
새로이 이 따분한 곳으로 이사 온 분들이시려나. 아니면 나처럼 도피하듯이 이곳으로 숨어든 분들이시려나.
인협은 잠시나마 겉보기에도 예쁜 집들의 주인들을 상상해 보았다.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던 인협은 끄응, 하는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랫동안 환기되지 않아 텁텁했던 집안에서 먼지를 뒤집어쓰며 청소하다 보니, 피부가 간질거리기도 했고, 또 청소하느라 땀을 흘려서 물을 끼얹고 싶어진 그였다.
아직 청소가 완전히 되지 않아 군데군데 곰팡이도 슬고, 더러워 보이던 욕실 내부를 떠올린 그는 얼굴을 찌푸린 후, 바로 야외 수돗가로 향했다.
어렸을 적 더운 날이면 이곳에서 남동생인 인섭과 등목을 하거나 큰 대야에 물을 가득 받아놓고는 물장난을 치고는 했었다.
안경을 수돗가에 놓인 작은 돌 위에 벗어둔 그는 씻을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수돗가에 연결되어 있는 짤막한 초록색 호스를 붙든 인협은 더러워진 티셔츠를 벗어 던지고는 물을 틀어서 그 앞에 쪼그려 앉아 물을 끼얹기 시작했다.
어차피 땀과 먼지에 절은 옷들을 모두 벗어 던질 생각이었기에, 젖는 건 상관없었다.
온도 조절도 안 되는 시원한 물을 끼얹자, 추워서 이가 딱 맞물렸다.
이 짓도 어렸을 때나 할만하구나. 20대 중반인 나이에 하니까 곧 심장마비라도 올 것 같네.
인협은 생각보다 더 차가운 물을 견뎌내며 챙겨온 것들로 간이 샤워를 마쳤다. 그러고는 일어나 캐리어에서 미리 꺼내둔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탈탈 털어냈다.
부스럭.
그때 바로 옆 담장 너머에서 들려온 소리에 인협이 안경을 벗어둔 탓에 흐릿한 초점을 맞추기 위해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자, 집을 둘러싼 풀숲에서 인영이 하나 불쑥 튀어나오는 게 보였다.
“여기예요.”“네?”“유진이가 여기에서 버스를 기다리러 올 거예요.”영애는 제 차를 읍내의 어느 한산한 길 한구석에 세우고는 봉길에게 알려주었다.차 조수석에 타 있던 봉길은 어리둥절해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아직 문을 열지 않은 노포가 즐비한 어느 길에는 다 쓰러져가는 것처럼 보이는 버스 정류장이 하나 있었다. “여기서 내려요. 그리고 기다려봐요. 어차피 앞으로 버스는 세 대밖에 안 지나갈 거예요. 그 세 대 중에 하나쯤은 잡아타겠죠, 유진이가.”“아….”“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우리 유진이랑 잘해보기 위해서.”“네, 맞습니다.”영애의 우아한 어투에 압도된 봉길은 얼떨떨한 얼굴로 답했다.“그냥…. 글쎄다. 카페에 찾아왔다가 유진이가 안 보여서 근처 산책을 하다가 잠시 쉬어가는 중이라고 둘러대요.”“네?”“그러다가 봉길 씨 차로 데려다주게 되면 완전 더 나이스한거지. 한번 잘해봐요?”“네, 감사합니다.”“뭐해요? 어서 내려요.”“아, 네!”봉길은 영애의 재촉에 차 문을 열고 내렸다. 그러자, 영애가 조수석 쪽 창문을 내리고는 카페에서 조금 전 내려온 시원한 커피 한잔을 봉길에게 건네주었다.“자, 이거 마시면서 기다리고요. 행여나 유진이가 너무 안 와서 열사병에라도 걸릴 것 같으면 우리 카페로 피신 와요.”“감사합니다.”“그럼, 건투를 빌어요. 주차해 놓은 차는 걱정하지 마시고요.”영애는 마지막 말을 끝으로 창문을 다시 올리고는 카페로 차를 돌렸다. 봉길은 영애가 건네준 커피를 손에 쥐고서 벤치에 앉았다.“앗, 뜨거워.”30도를 웃도는 무더운 날씨에, 지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벤치는 매우 뜨거웠다. 봉길은 하는 수 없이 일어선 채로 정류장 앞을 서성대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무모한 짓이람.봉길이 인생에서 최고로 무모한 짓을 해보았던 건, 꽤 잘하던 공부를 때려치우고 이스포츠의 길로 들어선 것이었다. 극 내향에 극안정주의인 그의 성격상, 이런 행동은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그러나, 사랑에 정말 눈이 멀어
“선생님! 선생님 진짜로 유명한 사람이에요?”“선생님, 텔레비전에 나와본 적 있어요?”“선생님-.”이렇게까지 빨리 알려지길 원한 건 아니었는데. 음악 시간 내내 이어지는 아이들의 질문 세례와 환대에 인협은 심드렁한 얼굴로 생각했다. “얘들아, 내가 유명한 사람이었던, 뭘 하든 사람이었든지 그건 지금 별로 중요하지 않아. 지금 중요한 건, 너희가 교과서를 펴야 한다는 거야.”“에이, 선생님 이야기 더 듣고 싶은데.”재형의 볼멘소리에 다른 아이들도 연달아 맞장구를 쳤다. 그 모습을 화를 억누르기 위한 미소를 띠고서 바라보고 서 있던 인협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오케이, 질문 세 개만 더 받아줄게. 그다음에는 얄짤없어.”“우와아!!”“선생님은 많이 이겨봤어요?”“응, 경기에서 많이 이겨봤지. 당연히.”“우와아아!”이게 뭐라고. 당연한 질문에 당연한 답을 내놓자마자 흥분해서 환호를 해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인협은 생각했다. 마치 자기들이 우승해 본 것만 같은 반응이었다.“선생님은 카이 선수 알아요? 카이 선수랑 이야기해 본 적 있어요?”“당연하지. 엄청 많이 이야기해 봤다.”그리고 그 선수가 날 찾아다니느라 혼났단다. 인협의 말에 질문했던 재형의 얼굴에 환희가 깃들었다. 마치 인협의 인맥이 제 인맥이라도 되는 양.그때, 교실에서 늘 조용히만 있는 편인 유림의 손이 번쩍 들렸다. 그 모습에 놀란 인협이 곧바로 유림을 가리켰다.”선생님….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조용한 목소리로 던진 유림의 질문에 온 아이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인협에게로 쏠렸다. 이걸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나? 인협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띤 얼굴로 아이들을 찬찬히 바라보았다.“응.”“꺄아아아-!!”인협의 답에 처음으로 여자아이들의 환호성이 더 크게 들렸다. 아이들은 싱글벙글한 얼굴로 눈을 반짝거렸다.“누구예요?”“어떻게 생겼어요?”“예뻐요?”“자, 자, 자-.”연이은 아이들의 질문 세례에 씩 웃은 인협은 손바닥으로 교탁을 두들겼다. 그러자, 날뛰던 아이들
주중 저녁 시간에 가까운 시각. “저기요, 계세요?”기탁의 아내이자, 소원리 교회의 사모인 지혜. 작은 체구였지만, 단단한 선함이 뿜어져 나오는 30대 후반의 여자였다. 지혜는 손에 반찬 그릇을 든 채로 애라 혼자만 남은 집 앞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정렬이 교회에서 지내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은 그녀는 평생 정렬을 의지해 살아온 애라에게 마음이 쓰여서 아이들과 정렬 몰래 찾아온 것이었다. “계세요? 유림이 어머니-.”그때 잠금장치가 열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조금 열렸다. 그곳에는 이전에 잠깐씩 마주쳤을 때보다 훨씬 더 퀭해 보이는 애라가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옆집에 사는 권지혜라고 합니다.”“…….”“그냥 반찬 몇 개 좀 해왔어요. 드시라고요.”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지혜의 표정을 살피던 애라는 이내 주름지고 파리한 손을 내밀어 그것을 받았다. “밥 잘 챙겨 드시고, 혹시라도 뭐 필요해지면 말씀해 주세요. 바로 옆집에 있으니까요.”“감사합니다.”“안녕히….”지혜가 인사를 마치기도 전에 문이 닫혀버렸다. 머쓱한 미소를 지은 지혜는 잠시 그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이내 집으로 돌아갔다. ***에스더와 인협은 저녁을 먹은 후에 거실 소파에 앉아 결승전을 보다가, 잠시 충격을 이기지 못한 채 급하게 광고로 전환된 화면만 보고 있었다.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니까.”정적을 먼저 깬 건 에스더였다. “…….”이렇게까지 공론화되기를 바란 건 아니었는데. 화면이 전환되기 전, 창백해진 얼굴의 정현과 기태가 스치듯 보였을 때 인협이 일종의 쾌감을 느낀 건 사실이었다. 인협이 어중간하게 착한 탓인지, 동시에 누군가의 몰락을 보는 건 아주 유쾌하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설령 그것이 자신을 벼랑으로 내몬 악인일지라도. “기분이 껄쩍지근하네.”“그게 무슨 기분이야?”“그냥…. 오묘하네. 마냥 시원하지도 않고.”인협의 대꾸에 에스더는 고개를 돌려서 화면만 응시하고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뭐…. 인간이라면 그런 거지.
“어서 와요.”늦은 밤. 소원리 교회 앞 주차장에 파란색 포터가 정차하자, 그곳으로 다가온 기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낮에는 양복 차림을 하고 있던 것과는 다르게, 그는 아주 편한 차림을 하고 있었다.”잘 왔어, 얘들아.”“목사님!”기탁의 환영에 유림과 정결에 단숨에 그에게 다가가 안겼다. 기탁은 그런 두 아이를 제 아이인 양 품어주며 꼭 안아주었다. “안으로 들어가 있을래? 예담이랑 예솜이가 너희를 많이 기다렸어.”“네에!”두 아이는 제집처럼 기탁의 집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풀벌레와 개구리들의 합창 외에는 정적이 찾아왔다. “잘 왔어요.” “네…. 염치불구하지만, 목사님께서 도와주신다고 했던 게 생각나서요.”정렬은 고개를 살짝 숙인 채로 말했다. 그런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던 기탁은 10미터는 족히 떨어진 곳에 있는 옆집을 힐끗 쳐다보았다. 집에는 안방 불이 켜져 있었다.“큰 결심을 했네요.”“아이들 때문에요.”“…….”“경찰이 출동했던 날…. 방 안에 있던 유림이가 신고했다고 하더라고요.”“…….””그걸 듣고 나니, 아이들에게 못 할 짓이다 싶어서요. 저야 다 큰 성인이니 이곳에 남아 신고하지 않고서 버텨내기를 선택하고 책임을 지는 거지만, 아이들은 아니니까요.“언젠가 어린 시절의 정렬이 그랬었듯이. 방 안에서 지금은 서울로 가버린 어린 여동생들을 껴안고는 벌벌 떨며 모든 소리를 견뎌내야만 했던 그처럼. 유림과 정결은 그저 이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그 모든 것을 성인이 될 때까지는 견뎌내야 할 것이었다.아무도 어른답게 책임지지 않았기에 결국 모든 걸 아이들이 떠맡게 되고 마는 것이었다. ”잘 생각했어요.“”엄마는 늘 아버지가 불쌍하다고 생각하세요. 근데 오늘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건 엄마가 한 선택이지, 내가 한 선택은 아니라고.“”…….“”아버지는 접근 금지를 당하셨으니, 한동안 엄마는 안전하기는 할 거예요. 그래서….“”잘했어요.“이 와중에도 애라의 안위를 챙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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