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투 소원리

웰컴 투 소원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7
By:  랑끗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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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시의 어느 작은 시골 마을. 집이라고는 열 가구 남짓한 작은 마을. 푸르기만 한, 특별한 일 없는 그곳에 온 세상 불만은 다 끌어안고 있는듯한 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나인협. 한때는 매우 잘나가던 프로게이머였던 남자. 가시를 잔뜩 세운 고슴도치처럼,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서 찔러대는 남자의 공격에 들썩거리는 소원리. 로맨스 한 스푼, 시골 사람들의 이야기 한 스푼 섞인, 잔잔슴슴 이야기. atthebrink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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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01. 그의 등장(1)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등장인물, 사건, 장소는 모두 허구로 창작된 것임을 밝힙니다**

“아, 오늘은 역사적인 날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두 팀이 결승전에서 만나게 되었는데요-.”

고조된 돔 안의 분위기 위에 해설자의 쾌활한 음성이 울려 퍼진다. 세계적인 게임인 리그 오브 카오스의 월드컵 결승전이 진행되는 날. 

세계 각국에서 뛰어난 팀들이 모두 참여하는 만큼, 한국에서 가장 인기 많은 두 팀이 결승전에서 만난 건 엄청난 광경이었다. 

“국내 리그에서는 부동의 1위인 원티드와 그 뒤를 늘 바짝 쫓는 케이비가 있습니다.”

“네, 그 두 팀이 다시 월드컵 결승전에서 격돌하게 되었는데요.”

“매번 승리의 문턱에서 넘어지고 마는 케이비. 오늘만큼은 우승을 거머쥘지 기대가 됩니다.”

두 해설자의 의견이 오가고, 각 팀의 다섯 명씩의 선수가 각자 컴퓨터 앞에 앉아서 몸을 풀고 있다. 전광판에는 선수들의 긴장된 얼굴이 번갈아 비쳤다. 헤드셋을 쓰고서 각자 컴퓨터를 응시하고 있는 선수들이었다.

각 선수의 얼굴이 나올 때마다 관중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그렇습니다. 이번 시즌에도 아주 좋은 역량을 보여주고 있는 케이비이지만, 매번 중요한 경기 막바지에 1등의 꿈이 좌절되고 마는데요-.”

“맞습니다. 특히나 케이비의 레브 선수가 그런 실수의 중심에 자주 있어서 아쉬움이 큽니다.”

“네, 중요한 경기마다 큰 실수가 나오고는 하는 레브 선수인데요. 개인 기량으로만 보면 레전드라고 불리는 원티드의 카이 선수를 한번 쯤은 꺾을 만도 하기에, 여러번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이런 중요한 경기에서는 일관성 있는 모습이 중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은 큰 경기인만큼 좋은 모습을 볼 수 있으면 하는데요-.”

그 중 무대 왼쪽의 안쪽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앉은 선수가 긴장한 얼굴로 손을 풀고 있었다. 

오늘만큼은 실수는 안 돼. 케이비의 레브라 불리는, 관심의 중심에 선 나인협이었다. 

“인협. 오늘은 실수 없으리라 믿는다, 응?”

노이즈 캔슬링 헤드셋에서 들려온 팀 보이스에 인협은 굳은 얼굴로 이를 악물었다. 오늘만큼은 절대로 안 돼. 생사를 건, 결의가 가득한 그의 눈빛이었다. 

“자, 오늘 와 케이비의 역사적인 우승이 될 것인지 아니면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원티드의 카이 선수의 세 번째 월드컵 우승이 될 것인지 지켜봐 주세요!”

와아아-. 해설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객석에서는 우렁찬 함성이 쏟아졌다. 

마우스를 잡은 인협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

[6개월 후]

드르륵, 드르륵-. 

캐리어 바퀴가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는 소리가 고요한 시골 마을에 울려 퍼졌다. 동해시 신화읍 소원리. 신화읍에서 차를 타고 30분 정도 굽이진 길을 들어와야 만날 수 있는 외진 마을이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로 캐리어를 끄는 남자는 얇고 동그란 테의 안경을 쓰고서 잘 정돈되지 않아 덥수룩해 보이는 머리를 하고 있었다. 

182센티미터의 키. 그다지 못생기지도, 잘생기지도 않았지만, 곳곳을 잘 살펴보면 나름의 매력을 가진, 리그 오브 카오스 계의 몇 안 되는 훈남이라고 한때 불리던 얼굴이었다.

다행히 뼈대는 굵은 편이라 따로 운동한 것 없이 어깨는 좀 있는 편이었으나, 전체적으로 몸이 마른 편이었다. 그의 몸에서 굳이 근육을 찾아보자면 마우스와 키보드를 다루느라 돋보이는 전완근 정도였다. 

구름도 한 점 없이 맑은 초여름의 하늘 아래. 머리를 태울 듯이 내리쬐는 쨍쨍한 햇볕에 남자는 인상을 잔뜩 구기고 있었다. 

사방에 쟁쟁한 푸르름이 가득한 6월의 초여름. 

차 한 대가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포장된 길을 중심으로 양옆에는 푸르름을 머금은 너른 밭과 집들이 띄엄띄엄 지어져 있었다. 

마을을 둘러싼 봉긋한 산세는 부드럽고 둥그런 편이었다. 산이 마을을 둘러싼 덕분인지, 유독 푸르른 하늘 아래 마을의 푸르름은 배가 되었다. 

“이 동네는 변한 게 거의 없네.”

인협은 혼잣말을 중얼거리고는 어딘가 잔뜩 날이 선 눈으로 한눈에 들어오는 동네의 전경을 찬찬히 살폈다.

마을 초입은 평지에 가까웠지만, 산 초입에 가까워질수록 경사가 져 있는 덕분에 길에서도 소원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곳에서 살았던 어렸을 적의 기억과 다른 점이라고는 새로 지어진 집 두 채와 그가 이곳에 살았을 적에는 없던 작은 교회 건물뿐이었다. 

그때는 모든 게 다 멀고 커 보이더니. 

기억 속 마을의 풍경보다 축소된 듯한 마을의 전경을 꼼꼼하게 살핀 그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완만하던 길이 급격한 오르막으로 바뀌자, 짐이 든 캐리어를 끄는 손에 힘줄이 바짝 섰다. 

비교적 선선한 편인 초여름인데도, 그의 이마에는 앞머리가 달라붙어 있었다. 

“후-.”

양옆에 풀숲이 펼쳐지는 광경을 보며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다 보면, 소원 초등학교의 교문이 울창한 나무 사이로 빼꼼 보였다. 

여기도 변한 게 없네. 

까르륵-. 주중 낮 시간인지라,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단층짜리 학교 건물 외벽을 어설프게 밝은색 페인트로 덧칠되어 있었지만, 학교의 낡은 티를 완전히 덮지는 못했다. 

운동장 놀이터도 옛날 것 그대로였고, 관사도 어느 정도 노력은 기울인 듯해 보였지만, 옛 모습 그대로였다. 

그 광경을 잠시 지켜보던 인협은 다시 캐리어를 끌며 학교를 지나갔다.

교문 초입을 어느 정도 지나고 보면 가파른 내리막길이 시작되었다. 대체로 마을 뒷산 초입을 향해 오르막으로 경사진 마을이었으나, 신기하게도 학교 터는 마을 어떤 곳보다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여기네.”

내리막이 조금 완만해진 오르막으로 바뀔 때쯤. 

초등학교 언덕 바로 밑에 위치한 집으로 들어가는, 풀숲 사이로 난 길 앞에 멈춰선 인협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열 걸음 정도 되는 좁은 길을 걸어 들어가면, 남자의 어깨높이까지 오는 담으로 둘러진, 낡은 기와집이 보였다. 제대로 된 대문도 없는 집이었다 

8년여의 시간 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거의 폐가처럼 보이는 집.

‘인협이 왔나?’

언제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따스함이 머무르던 집은 어느새 아무런 온기 없는, 마을 사람들에게 버려진 곳이 되어있었다. 

중앙에는 마당을 두고서 기역 자로 꺾인 집이었는데, 꺾여지는 부분에는 집 건물이 끊겨 있고 장독대가 여럿 세워져 있고, 옛날에 사용했던 수돗가가 있었다. 

집 입구 바로 옆에는 예전에 변소로 쓰던 작은 건물이 있었고, 그 옆에는 창고 공간이 있었다. 사랑방으로 쓰던 공간과 아궁이가 있는 공간을 끝으로 기역자 중 한쪽 공간은 끝이 났다. 

그리고 장독대와 수돗가가 있는 꺾어진 부분을 지나면 있는 공간에는 약간의 현대식 공간이 있었다. 인협이 어렸을 적 동네 사람들과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위인 인협의 아버지가 공을 들여서 고쳐준 공간이라고 들었다.

그곳에는 거실로 사용하던 공간이 있었고, 그 안으로 한 번 더 들어가면 한 사람만 겨우 지나다닐 법한 작은 부엌 공간이 나왔다. 

부엌 공간 끝에는 화장실이 있었다. 그리고 부엌과 거실 공간과 두 문으로 연결된 큰방이 있었다. 

큰방에서 한지와 나무로 만들어진 미닫이문을 열면 예전에는 툇마루였지만, 현대식으로 바꾸며 생겨난, 베란다 같은 복도 공간이 있었다. 

미닫이문을 열면 바로 마당으로 나갈 수 있는 복도를 지난 끄트머리에는 예전에 어머니의 공간이었던 작은방이 있었다. 

인협은 익숙하고도 낯선 집 외관을 둘러보았다. 돌봄을 받아 낡았어도 포근한 느낌을 주던 집은 온데간데없었다. 

흙으로 된 마당에는 구석구석에 듬성듬성 풀이 높게 자라있었고, 마당 한구석을 차지한 아무것도 없는 닭장과 개집은 흉해 보일 뿐이었다. 

“후-.”

괜한 선택이었나? 

이곳으로 오기로 한 건. 집 외관을 찬찬히 둘러본 인협은 약간의 후회를 했다. 이 정도로 낡아빠진 집의 상태는 이곳으로 와야겠다는, 계시에 가까운 생각이 들었을 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

인협은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주머니에서 집 열쇠를 꺼내 들었다. 

이곳을 떠나게 되었을 때 언젠가는 꼭 돌아오리라 생각하며, 당연히 제 것이었던 열쇠를 챙겼던 그였다.

당시에 지긋지긋해하던 소원리를 떠났던 날 이후로 단 한 번도 써보지 못한 열쇠였지만. 

낡은 쇠붙이를 한참 만지작거리던 인협은 비릿한 쇠향이 맡아질 때에서야 그것을 낡은 철문으로 가져갔다. 

바로 거실로 통하는 문이었다. 

철컥. 인협이 약간의 힘을 주자, 열쇠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약간 열렸다. 

끼익. 녹슨 철문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열리자, 일부러 누군가가 보존이라도 해둔 듯이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공간이 보였다. 군데군데 물샌 자국이나, 장판이 들렸다거나 보수가 필요한 부분은 있었지만. 

모든 것이 기억보다 조금 더 낡고 먼지가 쌓여있기만 할 뿐이었다. 

“하-.”

한숨을 푹 쉬자마자 확 밀려오는 먼지 냄새에 재채기를 연달아 한 인협은 얼굴을 찌푸린 채로 건넌방 앞 복도 문을 열어서 그 앞에 놓인 청소도구를 집어 왔다. 

유선 청소기와 빗자루와 쓰레받기. 

부지런했던 할머니가 이른 아침부터 걸레질하기 전에 늘 즐겨 사용하던 것들이었다. 

코드를 꽂고 버튼을 작동으로 바꾸니, 낡은 청소기가 우렁찬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그 바람에 다시 한번 밀려오는 먼지바람에 재채기를 또다시 연거푸 한 인협은 앞으로 지내게 될 거실, 부엌, 그리고 큰방까지 청소기를 꼼꼼히 돌렸다.

다른 곳들은 차근차근 청소하면 될 터였다. 어차피 당장 허물어져도 이상해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 얼마간 머무를지도 모르는 노릇이니까. 

그다음은 걸레질. 할머니가 습관처럼 하던 걸 기억해 낸 그는, 부엌 낡은 수납장에 쌓여있는 걸레들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집안의 물건도, 위치도 기억 속 그대로였다. 

이곳으로 오기 전, 수도를 연결해 두어 다행이었다. 걸레에 물을 꽉 짜낸 뒤, 그는 바닥을 꼼꼼하게 훔쳤다. 

기억 속 외할머니처럼 야무진 손짓은 못 됐지만, 그래도 어설프게나마 흉내는 내는 듯해 보였다. 

“하, 이 정도면 됐고-.”

집안에 에어컨도 없어, 땀이 맺힌 이마를 팔뚝으로 대충 닦아낸 그는 집안의 창문을 모두 열어젖혔다. 

그러자, 어둑하던 집안에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

햇빛이 집안을 비추자,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의 흠이 아주 잘 드러났다. 

군데군데 핀 조그마한 곰팡이 자국. 물샌 자국. 장판이나 벽지가 들리거나 우는 부분들. 그저 자연스럽게 낡아진 부분들이 더 적나라하게 보였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곳에 햇빛이 내려앉자, 집안이 훨씬 더 살기 좋은 곳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딘가 따스해 보이는 집안을 보며 인협은 잠시나마 어린 시절 소원리에 살았던 기억 속의 온기를 조금 느낀 것 같았다.

얕은 담 너머로 보이는 마을 풍경과 산의 모습에 인협은 가슴이 뻥 뚫리는 것만 같았다.

늘 분주함에 치이고 노력이라는 이름의 정체불명의 불안에 쫓겨 멈춤이라고는 모르던 그의 삶에 드디어 완벽한 고요함이 찾아든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망망한 바다 위에 떠다니는 돛단배가 된 막막한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당장, 이 고요함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지난 몇 달간 특히나 머릿속이 이 정도까지 조용한 일이 없었으니까. 

“모두 아직도 계시려나?”

인협의 가슴팍까지 오는 낮은 담장 너머로 보이는 소원리 마을의 한 자락에는, 떠나기 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 집도 있었지만, 낡은 집들 속 완전히 현대식으로 지어진 집도 두 채가 눈에 띄었다. 

새로이 이 따분한 곳으로 이사 온 분들이시려나. 아니면 나처럼 도피하듯이 이곳으로 숨어든 분들이시려나. 

인협은 잠시나마 겉보기에도 예쁜 집들의 주인들을 상상해 보았다.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던 인협은 끄응, 하는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랫동안 환기되지 않아 텁텁했던 집안에서 먼지를 뒤집어쓰며 청소하다 보니, 피부가 간질거리기도 했고, 또 청소하느라 땀을 흘려서 물을 끼얹고 싶어진 그였다. 

아직 청소가 완전히 되지 않아 군데군데 곰팡이도 슬고, 더러워 보이던 욕실 내부를 떠올린 그는 얼굴을 찌푸린 후, 바로 야외 수돗가로 향했다.

어렸을 적 더운 날이면 이곳에서 남동생인 인섭과 등목을 하거나 큰 대야에 물을 가득 받아놓고는 물장난을 치고는 했었다. 

안경을 수돗가에 놓인 작은 돌 위에 벗어둔 그는 씻을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수돗가에 연결되어 있는 짤막한 초록색 호스를 붙든 인협은 더러워진 티셔츠를 벗어 던지고는 물을 틀어서 그 앞에 쪼그려 앉아 물을 끼얹기 시작했다. 

어차피 땀과 먼지에 절은 옷들을 모두 벗어 던질 생각이었기에, 젖는 건 상관없었다.

온도 조절도 안 되는 시원한 물을 끼얹자, 추워서 이가 딱 맞물렸다. 

이 짓도 어렸을 때나 할만하구나. 20대 중반인 나이에 하니까 곧 심장마비라도 올 것 같네. 

인협은 생각보다 더 차가운 물을 견뎌내며 챙겨온 것들로 간이 샤워를 마쳤다. 그러고는 일어나 캐리어에서 미리 꺼내둔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탈탈 털어냈다. 

부스럭. 

그때 바로 옆 담장 너머에서 들려온 소리에 인협이 안경을 벗어둔 탓에 흐릿한 초점을 맞추기 위해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자, 집을 둘러싼 풀숲에서 인영이 하나 불쑥 튀어나오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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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그의 등장(1)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등장인물, 사건, 장소는 모두 허구로 창작된 것임을 밝힙니다** “아, 오늘은 역사적인 날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두 팀이 결승전에서 만나게 되었는데요-.”고조된 돔 안의 분위기 위에 해설자의 쾌활한 음성이 울려 퍼진다. 세계적인 게임인 리그 오브 카오스의 월드컵 결승전이 진행되는 날. 세계 각국에서 뛰어난 팀들이 모두 참여하는 만큼, 한국에서 가장 인기 많은 두 팀이 결승전에서 만난 건 엄청난 광경이었다. “국내 리그에서는 부동의 1위인 원티드와 그 뒤를 늘 바짝 쫓는 케이비가 있습니다.” “네, 그 두 팀이 다시 월드컵 결승전에서 격돌하게 되었는데요.” “매번 승리의 문턱에서 넘어지고 마는 케이비. 오늘만큼은 우승을 거머쥘지 기대가 됩니다.”두 해설자의 의견이 오가고, 각 팀의 다섯 명씩의 선수가 각자 컴퓨터 앞에 앉아서 몸을 풀고 있다. 전광판에는 선수들의 긴장된 얼굴이 번갈아 비쳤다. 헤드셋을 쓰고서 각자 컴퓨터를 응시하고 있는 선수들이었다.각 선수의 얼굴이 나올 때마다 관중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그렇습니다. 이번 시즌에도 아주 좋은 역량을 보여주고 있는 케이비이지만, 매번 중요한 경기 막바지에 1등의 꿈이 좌절되고 마는데요-.” “맞습니다. 특히나 케이비의 레브 선수가 그런 실수의 중심에 자주 있어서 아쉬움이 큽니다.” “네, 중요한 경기마다 큰 실수가 나오고는 하는 레브 선수인데요. 개인 기량으로만 보면 레전드라고 불리는 원티드의 카이 선수를 한번 쯤은 꺾을 만도 하기에, 여러번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이런 중요한 경기에서는 일관성 있는 모습이 중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은 큰 경기인만큼 좋은 모습을 볼 수 있으면 하는데요-.”그 중 무대 왼쪽의 안쪽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앉은 선수가 긴장한 얼굴로 손을 풀고 있었다. 오늘만큼은 실수는 안 돼. 케이비의 레브라 불리는, 관심의 중심에 선 나인협이었다. “인협. 오늘은 실수 없으리라 믿는다, 응?”노이즈 캔슬링 헤드셋에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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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그의 등장(2)
“으아아아악-!!!!”인협이 놀랄 새도 없이 여자로 보이는 사람이 큰소리로 비명을 질러댔다. 그 갑작스럽고 우렁찬 비명에 인협은 놀라지도 못한 채, 귀가 찢어질 것만 같은 고통을 참아내야만 했다.젊은 사람 같은데, 이 마을에는 왜? 인협은 호기심에 안경을 집어 들어서 그것을 바로 썼다. 그러자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고서 눈과 콧구멍을 있는 대로 크게 개방한 여자 하나가 보였다. 까무잡잡한 편인 피부에 비교적 작고 갸름한 얼굴이지만, 팔다리는 얇고 긴 편이었다. 호리호리한 체격이었지만, 어딘가 탄탄한 인상을 주었다. 모델 한혜지를 닮은 거 같은데? 아주 좋게 말하면 피겨 여신 김윤아와도 언뜻 닮은 얼굴이었다. 한마디로 눈에 띄는 미인상은 아니었으나, 매력이 충분히 있는 인상이었다. 182센티미터인 인협과 눈높이가 많이 다르지 않은 걸 보아하니, 키가 적어도 170센티미터는 넘는 듯해 보였다.“어, 어-.”그녀의 흔들리는 시선이 잠시 인협의 헐벗은 상체로 내려갔다가 황급히 그의 눈으로 돌아왔다. “전 아무것도 못 봤-.”“누구신데 남의 집 옆을 막 다니십니까?”얼굴이 붉어진 채로 황급히 변명하려던 여자의 말을 인협이 막았다. 그러자 여자는 천천히 두 손을 아래로 내렸다. 또 다른 충격으로 인해 헤벌어진 입이 보였다. 무슨 뻐끔대는 붕어 같네. 그 모습에 인협은 얼굴을 찡그리며 생각했다.”저, 저-.”“……”흔들리는 동공. 어찌할 바를 몰라 망설이던 여자는 이내 더 깊이 팬 인협의 미간 주름을 보고는 황급히 제정신을 붙들었다.“아, 저는 저기 소원 초등학교 관사에 살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이름은 황에스더예요. 나이는 한국 나이로 스물다섯입니다.”한국 나이? 에스더의 이질적인 소개법에 인협의 얼굴에 의문이 깃들었다. 애석하게도 그 표정 변화는 에스더의 오해를 사, 그녀의 어깨를 한껏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죄송해요. 이곳에 사람이 사는 줄 알았더라면 돌아갔을 거예요. 그동안 아무도 살지 않는다고 해서 여길 지름길로 많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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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그 사람이라면
“허억-.”그날의 치욕과 절망에 고스란히 잠긴 채로 인협이 상체를 벌떡 세우고 숨을 헐떡거렸다. 문의 반이 반투명한 유리로 된 철문 너머로부터 비춰 들어온 가로등 불빛과 달빛에 땀에 젖은 인협의 얼굴이 어슴푸레하게 드러났다. 아직 깊은 새벽이었다. “또 개같은 꿈-.”그날 이후로 몇 번째 반복되는지도 모를 지독한 악몽이었다. 인협은 옆에 두었던 페트병을 들어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래도 해갈되지 않은, 타는듯한 갈증이 느껴졌다. 다시 잠들기 위해 술이 간절했으나, 이 늦은 새벽 시간에, 이 외딴곳에서 술을 구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후우-.”떨리는 한숨을 토하듯이 내뱉은 인협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한번 거칠게 쓸어내렸다. 그의 등은 식은땀으로 차게 젖어있었다. 악몽을 꾸고 나면 누군가가 제 목을 조이듯이, 꼭 가슴이 너무 답답하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거친 숨을 겨우 내뱉으며 숨을 이어가던 인협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게임 세계에서 세계 랭킹 2위까지 올라섰던 인협은 그렇게 서서히 팀 내에서 애물단지가 되어갔다. 월드컵 경기 후, 모든 비난의 화살이 인협을 향했으나 그는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버텨냈다. 부모님의 사업이 기울어져 있었고 그로 인해 그가 가족들을 부양하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는 생존의 선택이었다. 그리고는 월드컵 경기가 끝난 지 며칠 되지 않아 케이비 팀의 승부조작 논란이 터졌다. 처음에 익명의 폭로 글. 작은 불씨로 시작된 그 의심은 큰 불길로 번져나갔다.순간순간 이상함을 느꼈던 때와 단순히 따돌림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승부조작의 증거였다. 팀 리더인 기태와 감독과 코치진 몇 명이 영문을 알 수 없는 대화를, 목소리를 낮춘 채로 나누고 있었을 때. 인협을 제외한 모두가 짠 듯이 연습 때와는 다르게 행동했을 때. 그 폭풍 속에서 스스로의 결백함을 아는 인협은 드디어 권선징악의 때가 왔다, 하며 기쁨 속에서 그것을 관망하기로 했다.기태와 감독이 인협을 승부조작의 중심으로 끌어들이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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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왜 그 인간을 떠올려서
는 개뿔. 워낙 고요한 토요일의 한낮. 에스더가 하루에 마을 앞 정류장을 네 번만 지나가는 버스를 타고서 읍내로 나가 장을 보기 위해 손잡이 달린 장바구니를 옆에 두고서 소원 초등학교 교문을 다시 잠그고 있을 때였다. 카트식 장바구니는 읍내에 나가서 장을 보러 다니는 할머니들의 추천템이자, 필수템이었다. 보통 마음씨 좋은 마을 어른이 도맡아 차가 없는 할머니들의 발이 되어주었으나, 그와 버금가게 마음씨 좋은 할머니들은 굽은 등이나 하얗게 센 머리도 아랑곳하지 않고서 종종 버스를 타고 읍내에 다니고는 했다. 짤그랑, 짤그랑-.마을 초입까지 이어진 동네 길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 저 멀리에서부터 들려오는 맑은소리에 에스더는 호기심 어린 눈을 그쪽으로 향했다.그러자 그녀가 서 있는 쪽으로 걸어오는 인협이 보였다. 그의 손에는 검은색 봉지가 쥐어져 있었는데, 인협이 무심하게 한 발짝씩 내디딜 때마다 유리병이 부딪치는 소리가 고요한 마을에 먹먹하게 울렸다.“어쩌지?”순간 밀려온 거부감에 에스더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닫힌 교문을 붙들었다. 다시 들어갈까, 라는 충동이 일어서였다. 그러나 이번 버스를 놓치면 점심시간은 지나야 읍내로 나갈 수 있을 터였다.물론 보통 아무 일정이 없는 토요일인지라 크게 상관은 없었지만, 세 시간은 족히 지나야 다음 버스가 올 터였다. 잘 모르는 남자 하나 때문에 제 루틴을 바꾸는 게 억울하게 느껴진 에스더였다. 앞으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할 텐데. 숨을 한번 깊이 들이마셨다가 내쉰 에스더는 결의를 다진 얼굴로 발걸음을 옮겼다.저벅저벅. 짤그랑, 짤그랑-.에스더의 발소리와 유리병이 부딪치는 소리가 점점 더 서로에게 가까워졌다. 온 세상을 보지 않겠다는 다짐이라도 한 건지, 고개를 숙인 인협은 가장 깜깜한 어둠보다 더 어두워 보이는 얼굴을 하고서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다행히 그 덕분에 그는 아직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이 에스더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에스더는 긴장한 얼굴로 뒤에서 끌고 있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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