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하랑 역시 잠옷으로 갈아입고 불을 끈 뒤 이불을 들어올려 침대 위에 누웠다.토실토실한 부시아가 곧바로 굴러들어왔다.온하랑은 자연스럽게 부시아를 품에 끌어안았다.부시아는 고양이처럼 온하랑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부비적댔다.“작은 엄마, 좋은 냄새 나요.”온하랑은 말 없이 그저 웃기만 하면서 부시아의 등을 토닥였다.“얼른 자자. 자다가 화장실 가고 싶으면 작은 엄마한테 얘기해.”“네.”낮잠을 자지 못한 아이는 눈을 감자마자 바로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온하랑 역시 천천히 잠에 들었다.어렴풋이 무언가가 떠올랐다. 아무래도 그녀는 꿈을 꾸는 것 같았다.꿈속에서 그녀는 한 병원에 병상 위에 누워 있었다. 옆에는 갓난아기가 누워 있었는데 태어난 시에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그녀는 침대 머리맡에 누워 있는 갓난아기를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았다.“온원녕, 앞으로 너는 원녕이야.”꿈속에서의 온하랑은 아기를 안고 살살 흔들었다.그렇게 흔들다가 갑자기 품속의 아이가 사라졌다.깜짝 놀란 온하랑은 비몽사몽한 상태로 눈을 떴다. 어둠만이 내려앉은 자신의 방이 눈에 들어왔다.꿈이었구나.그녀는 손을 뻗어 침대맡 탁자에 놓인 휴대전화를 들고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다섯 시밖에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이었다.온하랑은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부시아를 바라보다 손가락으로 아이의 통통한 볼살을 한 번 찔러보며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아마도 부시아가 그녀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묻어둔 아이를 향한 갈망을 깨워준 듯 싶었다. 그 때문에 이런 꿈도 꾼 것이겠지.부시아와 천천히 멀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온하랑의 마음은 이내 죄책감으로 가득 찼다.그녀는 다시 눈을 감고 잠에 들었다.7시가 되어 잠에서 깬 그 순간에도 부시아는 여전히 곤히 자고 있었다.온하랑은 기지개를 키더니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내려와 송이의 밥응 챙겨주고 세수를 마친 뒤 아침식사를 준비했다.온하랑은 두 개의 수제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식빵 두 조각, 스테이크 한 조각, 계란프라이 하나, 상
부승민의 눈빛은 초점을 잃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마치 무언가를 떠올리며 그리워하기라도 하는 듯싶었다.그는 고개를 돌려 온하랑을 바라보았다. 높게 솟은 눈썹뼈가 아이홀 밑에 짙은 그림자를 만들어 검은 눈동자가 더욱 그윽해 보이게 만들었다.온하랑은 마음속으로 부승민을 변태라 욕보였다. 그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부승민을 째려보았다.부승민은 화를 내기는커녕 낮게 웃었다.부승민의 밝은 웃음소리가 오히려 온하랑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그녀는 다급하게 대화 주제를 돌렸다.“시아야, 방학 숙제 있어?”부시아는 고개를 들고 큰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있어요, 근데 다 엄청 간단한 것들이에요.”“알겠어.”“작은 아빠, 저 지금 집으로 돌아가야 해요? 저도 그 술자리 가고 싶은데.”부시아가 고개를 들어 부승민을 바라보며 그의 팔을 살살 흔들었다.“시아야, 말 들어야지. 너 집에 데려다주고 작은 아빠가 과자 사줄게.”“저 과자 별로 먹고 싶지 않아요. 저도 술자리 가고 싶다고요.”“안 돼.”“흥, 작은 아빠랑 말 안 할래요!”부시아는 작은 볼에 바람을 넣고 삐진 티를 내며 고개를 온하랑 쪽으로 홱 돌렸다. 그리고는 온하랑을 끌어안고 말했다.“작은 엄마, 저 오늘 밤에도 작은 엄마랑 같이 자고 싶어요.”온하랑은 아이의 부탁에 하마터면 또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을뻔했다.그녀는 몇 분 정도 망설이더니 결국 부드럽게 아이의 부탁을 거절했다.“시아야, 오늘 밤에는 작은 엄마가 엄청나게 늦게 돌아갈 것 같은데 혼자 자는 게 어때?”하지만 부시아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했다.“기다릴 수 있어요.”“하지만 작은 엄마가 너무 늦게 돌아가면 너를 챙겨줄 수 없을 거야.”“저 스스로 챙길 수 있어요. 혼자 세수도 하고 양치도 하고, 저 혼자 옷도 벗을 수 있어요. 만약 정말 늦게 돌아오시면 저 먼저 자고 있을게요!”“…”온하랑의 침묵을 보던 부시아는 작은 입술을 말아 물며 불쌍한 표정으로 온하랑을 바라보았다.“작은 엄마, 혹시 제가 싫어진
온하랑이 다급하게 손을 빼냈다.“이번 한 번만 봐준다.”그녀는 마음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이번에도 거절 실패다. 멀어지기 실패.됐다. 이게 마지막인 걸로 하자.다음엔 무조건 칼같이 거절할 것이다.운전기사가 물었다.“대표님, 차 돌릴까요?”“아뇨, 우선 저택에서 시아 옷이나 몇 벌 챙기고 하랑이네 집으로 가죠.”“네.”차가 단지 앞에 멈춰 서자 온하랑이 차에서 내려 부시아의 옷가지를 담은 가방을 꺼내 직접 부시아를 위층까지 올려주었다.그 시각, 김시연은 한가하게 소파에 누워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온하랑이 돌아온 것을 발견한 김시연이 입을 열었다.“걔 돌려보내…”김시연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온하랑의 뒤로 부시아가 보이자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온하랑도 어딘가 민망해져 감히 김시연의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고 다급하게 가방만 소파 위에 놀려놓은 채 말했다.“시연 씨, 오늘 밤 시아 좀 부탁할게요. 저는 일이 좀 있어서 늦을 것 같아요.”부시아의 앞에서 김시연은 망설임 없이 빠르게 대답했다.“그래요, 얼른 가봐요. 시아야, 오늘은 아줌마랑 같이 밥 먹자!”“네.”부시아도 씩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아줌마, 잘 부탁드립니다.”온하랑은 혹시라도 부시아가 심심해할까 아이패드까지 꺼내 부시아에게 전해주며 몇 마디 당부하고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엘리베이터를 나서자마자 온하랑의 휴대전화에 카카오톡 메시지 알림음이 떴다.알림을 확인해보니 김시연이 보낸 째려보는 듯한 이모티콘이 떠 있었다.“무슨 상황인지 설명 좀 해보시죠? 왜 아직도 안 돌려보낸 거예요?”온하랑이 몇 초 정도 침묵을 유지하더니 곧이어 말을 꺼냈다.“안심하세요. 이게 정말 마지막이니까.”안심은 개뿔.김시연은 부승민이 얼마나 교활한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부승민은 지금 온하랑이 아이에게 약하다는 것을 이용해 부시아로 그녀를 유혹 중이었다.“확실한 거예요?”“확실해요.”온하랑은 확고하게 대답했다.“좋아요. 믿어줄게요. 아 맞다, 오늘 저녁에 무슨 일이 있길
온하랑이 옷걸이 쪽으로 걸어갔다.부승민이 그쪽으로 다가가 패딩을 꺼내 그녀의 몸 위에 덮어 주었다.스튜디오를 나서자 뼈까지 파고드는 한기가 밀려 왔다.“얼른 차 안으로 가자.”부승민은 차가운 온하랑의 손을 붙잡으려 했지만 그녀는 빠르게 부승민의 손을 피했다.그는 조금 어색한 듯 빠른 걸음으로 차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부승민은 온하랑을 도와 뒷좌석 문을 열어 주었다.온하랑은 치마를 들고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부승민은 바로 차 문을 닫고 다른 한쪽 문으로 차에 올라탔다.차 안에는 히터가 틀어져 있어 바깥과는 사뭇 다른 따뜻한 공기가 감돌았다.목적지에 도착하자 온하랑은 패딩을 벗고 부승민의 뒤를 따랐다.문 앞까지 도착했을 때, 부승민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팔을 살짝 굽히고는 온하랑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잠시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손을 들어 부승민의 몸과 팔 사이에 생긴 작은 틈에 밀어 넣고는 로비로 들어섰다.“부승민 대표님.”이번 술자리 주최자가 바로 달려와 웃는 얼굴로 두 사람을 맞이했다.“이렇게 와주시다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부승민의 수하에 있는 자산이 만만치 않게 많았다. 최근 몇 년 동안 과학 기술 분야에서 신예로 떠오르고 있는 금영 테크, 첨단산업개발 구역 랜드마크 건물을 인수한 부동산 회사, 그리고 시내 중심의 가장 높은 사무실 건물과 강남 시내를 통틀어 최고의 무역액을 달성한 금정 빌딩까지.따라서 그가 BX 그룹 대표이사직에서 물러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부승민을 추앙했다.“과찬이십니다.”“이쪽은 온하랑 씨, 맞으시죠?”이 씨는 온하랑에게 아는 척을 하고 싶었지만 미처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얼마 전에 금방 이혼한 둘이 지금은 함께 모임에 참석하고 있으니 말이다.그렇다는 건 합의로 진행된, 평화롭게 이루어진 이혼이었겠지?“안녕하세요.”온하랑이 꾸벅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안으로 드시죠, 부 대표님.”“네.”부승민과 온하랑은 천천히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오랜만입니다, 부 대표님.”“어머, 대표님 동
온하랑이 고개를 들어보니 한 손에 와인잔을 든 민지훈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다.“설마 했는데 정말 누나였네요. 잘못 본 줄 알았어요!”눈을 반짝이며 그를 바라본 온하랑의 입가의 미소가 번졌다.“지훈 씨가 왜 여기 있어요?”만약 온하랑이 오늘 부승민과 함께 여기에 온 것을 안다면, 아마도… 민지훈의 시선이 굳었다.“민지훈?”“아… 친구가 초대해서요.”황급히 정신을 차린 민지훈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더니 긴 속눈썹을 깜빡이며 물었다.“누나, 누나는 왜 여기 있어요??”온하랑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초대장을 받았는데, 시간이 남아서 왔어.”말을 마친 그녀가 지나지 않게 로비를 쓱 훑어보았다.로비에는 서로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로 붐벼 온하랑의 시선을 방해했다.민지훈은 아마도 부승민이 이곳에 있는 것은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는 아무런 의심 없이 말했다.“저도 비슷해요. 누나, 뭐 좀 먹을래요? 제가 갖다 드릴게요.”“같이 가요.”온하랑은 몸을 일으켜 민지훈과 함께 음식 코너로 향했다.그녀는 민지훈이 음식 코너로 가던 중 혹시라도 부승민을 마주칠까 봐 겁이 났다. 그러니 같이 가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대화를 통해 민지훈의 집중력을 분산시켜야 했다.온하랑은 두 조각의 작은 케이크와 쿠키를 집었다.그녀는 와인 잔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다시 휴대전화로 옮겼다.민지훈은 바로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접시를 받아들었다.“누나, 이거 제가 들어 드릴게요.”“고마워요, 지훈 씨는 안 먹어요?”온하랑은 와인 잔을 들고 가볍게 한 모금을 들이켰다.잠시 멈칫한 민지훈은 집게로 쿠키 두 조각을 집었다.“같이 담아도 괜찮아요?”“괜찮아요. 같이 담죠.”민지훈은 먹고 싶은 쿠키, 케이크와 초콜릿 몇 조각을 한데 담았다.다시 소파로 돌아가는 길, 온하랑은 몰래 주위를 둘러보며 부승민의 실루엣을 찾아냈다.언제부터인지 그의 근처에는 젊은 여자 한 명이 더 있었다. 멀리서 보아도 아주 좋은 몸매를 가진 여자였다.온하랑은
거대한 그림자가 온하랑을 덮치자 엄청난 압박감이 몰려왔다.남자의 몸에서는 짙은 알코올 냄새가 풍겨 온하랑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리며 숨을 참았다.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런데도 온하랑은 평정심을 잃지 않고 선수를 쳐 상대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당당하게 맞섰다.“부승민, 너 미쳤어? 날 여기까지 데리고 와서 뭘 하려는 거야?”부승민은 입술을 꽉 깨물더니 블랙홀처럼 깊은 눈동자를 깜빡이며 온하랑을 바라보았다.부승민에 의해 두려움을 느낀 온하랑이 있는 힘껏 그를 밀어내 보았지만 어떻게 하든 절대 밀리지 않았다.부승민은 얇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비웃음 섞인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모른다고? 그럼 나 왜 피한 건데?”온하랑은 부승민의 동공을 똑바로 응시하며 평정심을 잃지 않고 대꾸했다.“내가 언제 피했는데?”“아, 안 피하셨다?”부승민이 재밌다는 듯 쳐다보며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그의 섹시한 목울대가 위아래로 울렁거렸다.온하랑은 다급하게 고개를 내저었다.“안 피했어.”부승민의 눈빛이 깊어지더니 흥미롭다는 듯 웃었다.“그럼 이렇게 된 김에 민지훈 얘기나 좀 해보자. 그런 인재라면 분명 금영에서도 탐내고 있을 거야. 나한테 추천해 보는 게 어때?”부승민의 말에 온하랑은 2초 정도의 침묵을 유지했다.“걘 금영 테크에서도 캐스팅을 받았어. 하지만 결국 선택한 게 BX였을 뿐이야. BX한테 더 마음이 갔다는 증거 아니겠어? 지금 찾아가봤자 소용없을걸?”“네가 날 도와줄 생각이 없다고 하니, 어쩔 수 없네. 내가 직접 찾아가야지.”말을 마친 부승민은 곧바로 문손잡이를 잡더니 당장이라도 밖으로 나갈 기세였다.온하랑의 낯빛이 변하더니 다급하게 부승민을 붙잡았다.“부승민!”부승민이 눈을 내리깔더니 온하랑을 흘겨보았다.“왜?”온하랑이 한참이나 머뭇거렸다.부시아는 단순히 어린 아이일 뿐이니 민지훈도 크게 신경 쓰지는 않을 것이다.하지만 부승민이라면 얘기가 달랐다.만약 민지훈이 그녀가 부승민과 함께
부승민도 자신의 손이 이미 말을 듣고 있지 않다는 것을 어느 정도 느끼고 있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인지 그는 꽉 잡고 있던 온하랑의 손목을 놓아주었다.온하랑은 드디어 부승민이 자신을 놓아주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의 가슴께가 서늘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부승민이 온하랑의 일자넥으로 된 하이엔드 드레스의 옷깃을 손으로 잡아 찢어버렸다. 그는 큰 손으로 온하랑의 가슴을 주물렀다.정말 말랑하네.“… 읍, 으응…”막아낼 틈도 없이 들어온 손길에 온하랑의 목에서는 의도치 않은 옅은 신음이 흘러나왔다.분위기가 점점 달아올랐다.그 순간,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화장실 문 앞에 멈춰 섰다.문고리를 잡아 돌렸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다. 문밖의 남자는 의아하다는 목소리로 물었다.“안에 사람 있나요? 문 좀 열어주세요.”부승민의 어깨를 밀어내던 온하랑의 손이 움직임을 멈추고 감히 움직일 엄두를 내지 못했다.부승민 역시 동작을 멈추더니 끊겼던 이성을 빠르게 되찾았다.그는 다급히 눈을 떠 온하랑과 눈을 마주쳤다.맑게 빛나던 그녀의 진한 눈동자는 물속에 잠겨있는 보석처럼 아름다웠다.두 사람의 입술이 다시 포개어지고 호흡이 뒤섞였지만 둘 중 그 아무도 함부로 행동하지 않았다.문밖의 남자는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하자 포기하고 돌아섰다.부승민이 곧바로 고개를 들어 온하랑의 입술에서 떨어졌다. 그는 다 쉬어버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미안해, 내가 너무 충동적이었어.”온하랑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그저 고개만 숙였다.그녀의 시선을 따라간 부승민은 온하랑의 시선 끝에 자신의 큰 손이 있어서는 안 될 위치에 있는 것을 뒤늦게 발견했다.그는 데이기라도 한 사람처럼 황급히 손을 떼어내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나 온하랑에게서 등을 돌렸다.“우선 너 옷 정리부터 해.”온하랑은 부승민이 흐트러트린 자신의 옷매무새를 다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곧장 문의 잠금장치를 풀어 밖으로 나갔다.화장실에 남겨진 부승민은 몸에 남아있는
온하랑은 화장실로 가 온 매무새를 정리하려 했다. 그런 그녀의 눈앞에 이런 장면이 펼쳐질 줄이야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운도 없지.온하랑은 마음속에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며 자리를 떴다.온하랑의 뒷모습을 보자 부승민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뒤따라 갔다. “부승민!”오미연은 아직 할 말이 남은 듯 부승민의 팔을 다급하게 잡았지만 이내 매정하게 내팽개쳐졌다.…“누나, 돌아오셨군요.”로비 휴게실에 있던 민지훈은 온하랑의 실루엣을 보자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온하랑은 입꼬리를 내리며 말했다.“미안해요, 일이 좀 있어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요.”“데리러 올 사람 있어요?”“아니요.”민지훈이 몸을 일으키고는 말을 이어나갔다.“그럼 누나, 제가 데려다드릴까요?”온하랑은 무의식적으로 거절의 의사를 표하려 했지만 결국 입 밖으로 나온 것은 긍정의 의사였다.“좋아요.”민지훈은 신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제가 가서 직원분한테 차 좀 보내 달라고 얘기해볼게요.”“응.”부승민이 로비로 들어서자마자 목격한 것은 바로 온하랑과 민지훈이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연회장을 나가는 모습이었다.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부승민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그의 주위에 서늘한 한기가 내려앉았다.부승민의 새카만 눈동자가 공허해지더니 이내 주먹을 꽉 쥐고 으드득 소리를 내었다.“고작 민지훈 주제에 감히 내 것에 손을 대?”…차가 동네 입구에 도착했다.패딩으로 몸을 감싼 온하랑이 차에서 내렸다.온하랑과 함께 민지훈도 차에서 내렸다.“누나, 같이 올라갈까요?”온하랑이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다음에요, 지훈 씨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요. 직원분도 얼른 퇴근하셔야죠.”민지훈이 머쓱하게 웃으며 다시 차에 올라탔다.“그럼 저도 먼저 가보겠습니다.”민지훈은 차에 올라타며 빨리 차 한 대 장만해야겠다고 생각했다.“잘 가요.”온하랑이 손을 흔들고는 동네 안으로 들어섰다.1월의 차가운 밤공기가 뼛속까지 파고들어 온하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