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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Author: 보루비
진윤슬은 칼로 도려내듯 가슴이 아팠다. 모두들 그녀의 탓이라고 몰아가자 순간 분노가 솟구쳐 올랐다.

“저를 가르친 적도 없잖아요.”

진윤슬이 코웃음을 쳤다.

집에 돌아온 후로 그들은 항상 진윤슬과 진세린을 비교했다. 그녀가 진세린보다 모든 면에서 부족하고 또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왜 그런 차이가 생겼는지는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이제 와서 무슨 염치로 교양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단 말인가?

“너...”

진성국은 화가 치밀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말 좀 아껴.”

문강찬이 진윤슬의 손을 잡았다.

“이만 가자.”

그런데 진윤슬이 그의 손을 가차 없이 뿌리쳤다. 얼굴을 붉힌 김에 깔끔하게 해결하는 게 나았다.

진윤슬이 문강찬에게 물었다.

“그날 내가 왜 밖에 있었는지 알아?”

문강찬은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조사해봤지만 진윤슬이 직접 운전해서 나갔다는 것만 알아냈다. 혹시 그가 모르는 다른 사정이 있는 걸까?

진윤슬은 그의 표정을 보고 그가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마음이 아프지만 이제 와서 뭘 어쩌겠는가?

진윤슬이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

“누가 나한테 전화 와서는 강찬 씨가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병원 가는 길에 납치를 당했어.”

문강찬이 흠칫 놀랐다.

‘납치를 당했다고? 그런데 왜 지금까지 얘기 안 한 거지? 허 비서는 왜 또 알아내지 못한 거고?’

“어디서 거짓말이야?”

진태호는 코웃음을 치며 전혀 믿지 않았다.

“납치당했다면 어떻게 도망쳐 나왔는데?”

진윤슬은 억울함과 슬픔에 북받치는 눈물을 참아내려고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아무도 내 전화를 받지 않는 걸 보고 납치범들이 나한테 몹쓸 짓을 하려 했었는데 내 아이가 날 지켜줬어.”

그녀는 손바닥으로 아랫배를 어루만졌다. 아이의 존재가 아직도 느껴지는 듯했다.

“납치범들이 내 배를 걷어찬 바람에 아이는 유산됐고 내가 피를 흘리는 걸 보더니 그냥 길에 버려버렸어.”

만약 아이가 없었다면 이미 그 사람들에게 몹쓸 짓을 당했을 것이다.

결국 진윤슬을 구해준 건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아닌 그녀의 아이였다.

“그런데 그때 내 가족이라는 사람들은 뭘 하고 있었지? 세린이 생일 파티를 하고 있었잖아.”

진윤슬은 흥분한 나머지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다.

“내 아이가 죽어갈 때 당신들은 세린이의 생일을 축하하고 있었다고.”

그리고 지금은 하나같이 그녀가 진세린을 괴롭혔다고 비난했다.

“그게 세린이랑 무슨 상관이야? 세린이도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지 않았어.”

진태호는 엄한 사람에게 화풀이하는 진윤슬이 이해되지 않았다.

진윤슬이 고개를 돌려 차갑게 웃었다.

“세린이는 잘못 없고 그럼 내 아이는? 내 아이도 아무 잘못 없어.”

“언니, 미안해. 나도 그런 일이 있었는 줄은 몰랐어.”

진세린이 울면서 사과했다.

이젠 그녀의 눈물조차 혐오스럽게 느껴졌고 이런 사과도 필요 없었다. 진윤슬은 숨 막히는 이곳을 떠나고 싶어 몸을 돌렸다.

문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문강찬도 따라 나왔다는 걸 알았다.

그녀는 모든 감정을 정리했다. 얼굴에 남아있는 눈물 자국을 제외하고는 다시 덤덤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따라 나올 필요 없어.”

문강찬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두 눈에 진윤슬이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

“네가 세린이한테 사과할 수 있게 새 드레스를 한 벌 사 왔어.”

진윤슬의 눈빛이 차가워지더니 손을 빼내고는 살짝 뒷걸음질 쳤다.

“강찬 씨, 제발 좀 남자답게 굴면 안 돼?”

문강찬의 눈빛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세린이를 챙겨주고 싶으면 차라리 나랑 이혼하고 세린이한테 따뜻한 가정을 만들어줘.”

진윤슬이 고개를 들고 비웃었다.

“그때 세린이를 잡지 못했잖아. 이젠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돌아왔는데 빨리 명분을 주고 붙잡아둬야 하지 않겠어?”

“난 분명히 말했어. 세린이랑 아무 사이 아니라고.”

문강찬의 안색이 더욱 굳어지더니 진윤슬의 손목을 잡고 차에 태웠다.

“고작 드레스 한 벌 때문에 세린이한테 망신을 줬잖아. 사과하는 건 당연하지. 그리고 아이 일은 다시 조사해서 알려줄게. 그런데 세린이랑은 아무 상관 없어.”

진윤슬은 빨개진 손목을 문지르며 눈물을 흘렸다.

납치 사건은 확실히 진세린과 상관이 없었고 아이 일도 진세린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남편이 한 달 동안 다른 여자 옆에 있었다는 것만 생각하면, 심지어 귀찮아서 그녀의 구조 요청 전화를 끊었다는 것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듯 아팠다.

아무리 내려놓으려 해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문강찬과 진세린, 둘 다 미웠다.

돌아가는 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해오름 별장에 도착한 후 진윤슬은 홀로 위층으로 올라가 휴식했다. 한잠 자고 나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샤워하고 내려왔을 때 도우미는 이미 저녁 식사 준비를 마쳤다. 국을 가지고 나오면서 문강찬의 지시라고 했다. 도우미는 다정한 남편을 둔 그녀를 부러워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진윤슬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밥을 먹었다. 문강찬이 맞은편 의자를 당겨 자리에 앉았다.

편안한 홈웨어로 갈아입은 문강찬은 여전히 싸늘한 분위기를 풍겼다. 긴 손가락으로 젓가락을 쥐고 진윤슬에게 생선 한 조각을 집어주었다.

“많이 먹어.”

변함없는 다정함이었지만 진윤슬은 모두 가식으로 느껴졌다.

그녀는 생선에는 손도 대지 않고 국만 조금씩 먹었다.

문강찬이 미간을 찌푸렸다. 지난 3년 동안 진윤슬은 항상 다정했고 이렇게 크게 화를 낸 적이 없었다.

처음 보는 모습이라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문씨 가문 사모님의 자리가 그녀를 오만하게 만들어서 억지를 부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며칠 쉬다가 몸이 좀 나아지면 그때 다시 회사로 나가.”

진윤슬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24절기 시리즈가 지금 중요한 시점에 놓여있다는 거 알아.”

24절기 향수 시리즈는 문산 그룹 최근 3년간의 중점 프로젝트였고 현재 8개 절기의 향수를 출시했는데 시장 반응이 매우 뜨거웠다.

진윤슬은 개발 책임자로서 항상 최선을 다해왔다.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지만 최대한 빨리 업무에 복귀하고 싶었다.

게다가 환경이라도 좀 바꿔서 마음을 조절하고 싶었다.

문강찬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무심하게 말했다.

“세린이를 연구 개발팀에 보냈어.”

진윤슬의 안색이 잿빛으로 변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뭐?”

“세린이는 해외에 있을 때 캐서린 마스터의 밑에서 3년 동안 조향을 배웠어. 이제 돌아왔으니 네가 좀 가르쳐줘.”

차분한 말투였지만 상의하는 말투가 아니라 그냥 통보였다.

“내가 세린이를 싫어하는 거 알잖아.”

진윤슬이 바로 거절했다. 그러다가 문득 뭔가 생각났는지 입꼬리를 씩 올리면서 물었다.

“나중에 세린이가 잘되면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연구 개발 본부장 자리도 세린이한테 넘겨줘야 하는 거야?”

“진윤슬, 제발 세린이 그만 좀 미워하면 안 될까?”

문강찬은 진윤슬이 왜 진세린을 이렇게까지 싫어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진세린은 언니와 친해지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진윤슬은 항상 거리를 두었다.

진윤슬이 피식 웃었고 눈빛도 차갑기 그지없었다.

“만약 세린이만 아니었더라면 난 강찬 씨랑 평생 만날 일도 없었을 거야.”

진세린이 결혼하지 않겠다고 도망친 바람에 진윤슬이 대신 결혼했고 결국 인생을 망치고 말았다.

이제 겨우 마음을 열고 결혼 생활을 잘 꾸려나가려던 찰나에 진세린이 갑자기 돌아와 그녀의 남편을 흔들고 있었다.

그렇게 지난 3년간 진윤슬의 노력이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문강찬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고 말투에도 불쾌감이 섞여 있었다.

“난 분명히 말했어. 세린이랑 아무 사이 아니라고. 그냥 귀국한 지 얼마 안 돼서 일을 시작한 터라 잠깐 도와주고 있을 뿐이야. 일이 안정되면 나도 거리를 둘 생각이었다고.”

이건 문강찬의 약속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진윤슬은 믿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상을 두드리면서 진지하게 말했다.

“어찌 됐든 세린이가 연구 개발팀에 들어오는 건 반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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