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8화

Author: 보루비
진윤슬이 문강찬의 손을 뿌리치고 비웃듯이 말했다.

“괜찮아. 강찬 씨는 여기서 친구나 챙겨. 나 때문에 두 사람 사이가 껄끄러워져선 안 되잖아.”

사실 속으로는 그에게 묻고 싶었다. 볼일이 있다고 한 게 진세린을 만나러 오는 것이냐고. 그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뻔한 일로 스스로 상처받을 필요는 없었다.

문강찬도 물러서지 않았다.

“같이 가.”

진윤슬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조금 전 한바탕 소란을 피운 터라 다정한 척할 필요도 없었다. 어쨌거나 이 결혼의 진실은 너무나 초라하니까.

다리가 불편한 박순옥은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서 보냈다. 그런데 진윤슬이 왔다는 소리에 지팡이를 짚고 나왔다.

진윤슬은 서둘러 할머니를 부축해 방으로 들어갔다. 입을 떼기도 전에 벌써 눈시울이 붉어졌다.

“할머니...”

목이 메어 할머니의 다리에 얼굴을 묻었다.

박순옥은 손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진윤슬은 재빨리 감정을 추스르고 눈물을 닦은 다음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할머니가 보고 싶었어요.”

“싱겁긴. 할미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보러 오면 될 것을.”

박순옥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진윤슬이 억울한 일을 당해 속상해서 이렇게 운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억울함은...

박순옥의 시선이 문 앞에 서 있는 문강찬에게로 향했다.

문강찬이 들어와 인사를 건네자 박순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뭐라 하지 않고 진윤슬에게만 말했다.

“아주머니한테 갈비탕을 끓이라고 했는데 다 됐는지 가서 봐줄래?”

진윤슬이 순순히 주방으로 향한 다음 박순옥은 문강찬에게 앉으라고 손짓했다. 나이가 지긋한 목소리가 엄숙해졌다.

“그때 다른 가족들이 너랑 윤슬이를 결혼시키려 했을 때 사실 난 반대했었어.”

문강찬이 시선을 늘어뜨리고 두 손을 무릎에 얹었는데 누가 봐도 혼나길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박순옥이 말을 이었다.

“이제 세린이가 돌아왔으니 딱 한 가지만 물을게. 네 생각은 어때?”

문강찬에게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 묻고 있었다.

문강찬의 차갑고 무심한 얼굴에 어떤 감정도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주먹을 살짝 쥘 뿐이었다.

“전 윤슬이랑 이혼할 생각 없습니다.”

이건 그가 할머니에게 하는 약속이었다.

“만약 윤슬이가 이혼하겠다고 하면?”

박순옥이 다시 묻자 문강찬은 마음 깊숙한 곳에서 짜증이 밀려왔다.

“걱정하지 마세요, 할머니. 저희 잘 지낼 겁니다.”

문강찬의 모호한 대답에 박순옥이 한숨을 내쉬었다. 손녀가 안쓰러웠지만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문강찬에게 간곡하게 부탁할 뿐이었다.

“만약 언젠가 윤슬이가 자유를 원한다고 하면 힘들게 하지만 말아줘.”

문강찬은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가 진윤슬과 이혼할 거라고 생각했다. 진윤슬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사실 문강찬은 진윤슬과 이혼할 생각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진세린에게는 그저 어릴 적 함께 자란 정이 있어 잘해준 것이었고 감싸주고 지켜줬던 건 과거 진세린이 그의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어서였다.

“할머니, 갈비탕 다 됐어요.”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진윤슬이 갈비탕 한 그릇을 들고 들어왔다. 문강찬의 옆을 지나갈 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녀의 냉랭한 태도를 문강찬도 느꼈다.

부부로 3년을 사는 동안 처음에는 계약으로 시작했으나 나중에는 몸과 마음을 나눴고 이젠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다.

“할머니, 전 먼저 나가 있을게요. 윤슬아, 밖에서 기다릴게.”

문강찬이 예의 바르게 말하고 나갔다.

진윤슬은 아무 대답 없이 할머니에게 갈비탕을 떠먹여 주었다.

손녀의 창백한 얼굴을 보면서 박순옥은 진세린이 돌아온 후 진윤슬이 많은 고생을 했겠다고 생각했다.

진윤슬의 부모는 옛날부터 편애가 심했다.

“윤슬아, 너희들이 밖에서 하던 얘기 다 들었어.”

박순옥이 목소리를 낮추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마음속에 그녀에 대한 미안함이 가득했다.

“이 할미 때문에 네가 고생이 많구나.”

진윤슬이 국그릇을 힘껏 움켜쥐었다. 마음은 파도처럼 일렁거렸지만 말투는 여전히 해맑았다.

“할머니, 할머니 탓이 아니에요. 게다가 가끔 싸우면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잖아요.”

박순옥이 한숨을 내쉬었다.

진윤슬은 방에서 할머니와 오랫동안 얘기를 나누다가 할머니의 낮잠 시간이 돼서야 방에서 나왔다.

밖에 도우미가 점심 식사를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와서 밥 먹어.”

주아란이 진윤슬을 부르긴 했지만 그다지 살갑지는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 얼굴을 붉혔던 터라 딸에게 좋게 좋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주아란에게는 많이 양보한 것이었다.

“입맛 없어요. 난...”

진윤슬이 거절하려 했다.

“강찬이랑 결혼하더니 다른 건 못 배우고 콧대만 높아졌구나. 왜? 집에 밥이 진수성찬이 아니라서 먹기 싫어?”

막 집에 도착한 진성국이 굳은 얼굴로 호통쳤다.

진윤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있어 할머니에게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태도를 보니 밥을 먹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식탁으로 가서 앉았다.

진성국이 더욱 노발대발했다.

“전생에 내가 대체 너한테 무슨 빚을 졌길래 아빠를 보자마자 얼굴을 찌푸리는 건데?”

“됐어. 그만해.”

주아란이 말렸다.

식탁 위의 분위기가 무겁기 그지없었다.

진윤슬은 진태호가 혐오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여기에 나타나지 않길 바라는 게 틀림없었다. 그녀가 온 바람에 화목했던 가족 분위기가 깨졌으니까.

“언니, 갈비탕 좀 먹어.”

진세린이 조심스럽게 갈비탕 한 그릇을 진윤슬의 앞에 놓으며 잘 보이려는 듯이 상냥하게 말했다.

진윤슬은 갈비탕에 손도 대지 않고 고개를 숙여 그릇에 담긴 반찬만 먹었다.

그러자 진세린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하더니 입술을 깨물고 무척이나 속상해했다.

그 모습에 진태호가 젓가락을 던지면서 진윤슬에게 삿대질하며 욕했다.

“진윤슬, 적당히 해!”

진윤슬이 고개를 들고 덤덤하게 물었다.

“내가 뭘 어쨌다고 이래?”

“세린이가 말하고 있잖아. 갈비탕도 한 그릇 떠줬고. 귀가 먹었어? 혹시 눈도 먼 거야?”

진태호가 노발대발했다.

진윤슬이 갈비탕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세린이가 떠줬다고 꼭 먹어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어? 안 먹으면 큰일이라도 나?”

신경질적인 반응보다 차분한 반문이 오히려 사람을 더 미치게 했다.

“그만들 해.”

진성국이 식탁을 치며 분노를 터뜨렸다.

“밥 한 끼 제대로 먹을 수가 없네. 대체 뭘 하자는 거야?”

그는 진윤슬을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

“먹기 싫으면 나가.”

진윤슬은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도 원래 밥 먹고 갈 생각 없었어요.”

할머니가 걱정할까 봐 참았던 것뿐이었다. 차라리 그녀를 내쫓길 바랐다.

“진윤슬, 거기 서.”

진태호가 다가와 진윤슬의 팔을 잡았다.

“갈비탕 다 먹고 가.”

그는 진윤슬에게서 풍기는 묘한 오만함이 항상 눈에 거슬렸다. 처음부터 이 집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인 것처럼 오만했다.

하여 오늘 이 갈비탕은 먹기 싫어도 먹어야 했다.

“됐어, 오빠.”

진세린이 다가와 진태호의 팔을 잡고 울먹이며 말했다.

“언니 몸이 안 좋잖아. 그러니까 힘들게 하지 마.”

“아직도 얘 편을 드는 거야?”

진태호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동생을 쳐다봤다.

“윤슬이 쟤 네 생일 파티를 망친 것도 모자라 사람들 앞에서 네가 드레스를 훔쳐 입었다고 했어. 나중에는 그 옷을 종업원한테 줘서 망신을 당하게 했고. 그리고 지금은 또 네 진심을 짓밟고 있는데 아직도 감싸주고 싶어?”

“윤슬아, 세린이는 진심으로 언니인 너한테 잘해주고 싶어 해.”

문강찬이 다가오더니 험악한 표정의 진태호를 막아서면서 진윤슬을 달랬다. 갈비탕은 동생이 언니에 대한 마음이니 고맙게 받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아이를 유산한 건 우리도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 줄 누가 알았겠어?”

주아란이 한숨을 쉬며 함께 달랬다.

“두 사람 아직 젊으니까 아이는 언제든지 또 가질 수 있어.”

“임신한 애가 집에 가만히 있을 것이지, 왜 밖에 나가서 돌아다녀? 그리고 유산했으면 스스로한테서 잘못을 찾아야지, 남을 탓해? 우리가 널 그렇게 가르쳤어?”

진성국은 진윤슬에 대한 불만을 서슴없이 드러냈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유산은 모른 척, 이혼에 왜 눈물?   제432화

    ‘하지만... 강찬 씨...’그 이름만 떠올려도 성하린은 마음이 저릿하게 아팠다.‘강찬 씨의 결말이 어째서 이렇게 되어야 했을까...’그녀는 차가 어디로 가는지도 신경 쓰지 못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해오름 앞에 멈춰 서 있었다.익숙한 장소였다.주인이 집에 없어서인지 고용인들은 작은 조명 몇 개만 켜두고 있었다.오창윤이 급히 말했다.“성하린 씨, 죄송해요. 방금 기사님께 주소를 말씀드리는 걸 깜빡했네요. 지금 바로 모셔다드리겠습니다.”“괜찮아요. 잠깐 걸을게요.”성하린은 차 문을 열고 내렸다.정말 오랜만에 이곳에 왔지만, 서로 얽혀 지내던 시간이 마치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그녀는 천천히 계단을 올라 비밀번호를 입력했다.문이 열리더니 고용인이 급히 달려 나왔다.“문... 아니, 성하린 씨.”고용인은 몹시 기뻐했다.“돌아오셨군요.”“대표님은 아직 안 들어오셨어요. 요즘 계속 집에 안 계셨는데... 들어와 앉아 계세요. 제가 대표님께 전화할게요.”성하린과 문강찬의 관계를 늘 지켜봐 온 고용인은 두 사람이 다시 이어지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성하린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익숙한 인테리어, 벽에 걸린 그림조차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오창윤은 고용인이 전화하려는 것을 막았다.“성하린 씨.”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오늘 밤 여기서 쉬실 건가요?”그는 지금 성하린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는 걸 알아차렸다.그녀는 슬픔을 마음 깊이 숨기고 있었다.오창윤은 문득 그녀 역시 참 안쓰러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성하린은 잠시 생각하다가 조용히 응했다.오창윤은 고용인에게 방을 정리하라고 시켰다.고용인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의 지시로 지난 3년 동안 매일 안방을 청소해왔어요. 성하린 씨가 돌아오시기만 기다리면서요.”성하린은 이미 위층으로 올라간 뒤였다.안방 문을 열자, 방 안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옆 객실도 마찬가지로 잘 정리되어 있었지만 남성용 물건들이 많이 놓여 있었다.문강찬의 물건이었다.

  • 유산은 모른 척, 이혼에 왜 눈물?   제431화

    성하린을 깔보는 문서현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성하린, 강찬 일은 오빠가 도와주게 해. 그래도 강찬의 아버지인데 힘을 좀 보태야지.”“그럴 필요 없어요.”성하린은 오창윤에게 사람을 시켜 문강찬의 시신을 잘 지키게 한 뒤, 몸을 돌려 원장실로 향했다.문강찬의 죽음에 대해 병원은 전적인 책임을 져야 했다. 원장은 도저히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어서, 관련된 사람들을 일찍부터 사무실로 불러 조사하고 있었다.그리고 지금, 마음속으로도 어느 정도 판단을 끝낸 상태였다.한참을 기다린 끝에, 성하린이 모습을 드러냈다.경찰 두 명이 그녀와 함께 나타났다.원장은 깜짝 놀랐다. 성하린이 이 일을 조사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경찰까지 올 줄은 몰랐다.성하린이 담담히 말했다.“수사는 제가 전문이 아니라서 경찰 두 분께 도움을 요청했어요.”“이, 이건...”원장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오창윤은 이미 사람들을 데리고 사무실 문 앞을 지키며 누구도 드나들 수 없게 막고 있었다.경찰의 질문이 시작됐다.성하린은 창가에 서서 뭐라고 답하는지 하나하나 마음속에 새기며 빠르게 분석했다.문강찬은 세 번째 수액을 맞은 뒤 문제가 생겼다.그 뒤로는 CCTV 확인이 이어졌다.주차장에 세워진 차 안에서 문서현의 표정은 유난히 차갑고 뒤틀려 있었다.문성환은 주먹을 꽉 쥔 채 이를 악물고 말했다.“네가 죽였어.”문서현은 비웃으며 말했다.“죽인 건 오빠죠.”그녀는 문성환을 바라보며 비아냥거리며 말했다.“사람을 찾은 건 오빠였잖아요.”“넌 그냥 병원에 며칠 더 입원하게만 한다고 했어.”“전 그렇게 말했죠. 그런데 오빠가 데려온 사람이랑 어떻게 얘기했는지는 저도 모르잖아요.”“일부러 그런 거지?”문성환은 이제야 깨달았다.문서현은 처음부터 문강찬을 죽일 생각이었고, 그래서 일부러 자신을 부추긴 것이었다.“아버지께 말할 거야. 진짜 범인은 너라고.”문성환은 몸을 돌려 차에서 내리려 했다.“그래요. 말해봐요. 어차피 범인으로 몰리는 건 오빠일 테니까

  • 유산은 모른 척, 이혼에 왜 눈물?   제430화

    문강찬의 죽음은 너무 갑작스러웠다.짧은 슬픔이 지나가자 이익 문제가 가장 중요한 핵심으로 떠올랐다.문서현이 앞으로 나섰다.“아버지, 강찬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는데 그룹 일은 이제 아버지께서 결정하셔야 해요.”최민경은 그 말을 듣자마자 미친 듯이 욕을 퍼부었다.아들이 막 죽었는데 그런 말을 하는 건 너무 냉혈했다.문서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비웃었다.“강찬이는 죽었지만 그룹은 돌아가야 해요. 수많은 사람이 먹고살아야 하는데, 다 같이 굶어 죽게 할 거예요?”최민경은 그런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아들이 죽었는데 이들은 오직 이익만 생각하고 있었다.“강찬이를 죽인 게 아가씨 아니에요?”최민경은 원래 성격이 거칠고 직설적인데, 이 순간에는 더욱 날카로운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몹시 화가 난 문서현 역시 최민경을 바라보는 눈빛이 싸늘했다.“강찬의 체면 봐서 당신을 새언니라고 불러주는 거예요. 여기서 행패 부리라고 그런 거 아니라고요. 강찬의 죽음은 아버지가 사람을 시켜 분명히 조사하실 테니 여기서 함부로 억지로 엮지 말아요.”문서현은 날카로운 어투로 최민경을 무시하는 말을 내뱉었다.화가 난 최민경은 점점 더 격해졌다.“강찬이가 혼수상태였을 때, 두 사람이 손 잡고 주식을 빼돌리려 했잖아요. 하린이 있어서 포기한 거지. 어쩌면 이번 일도 그때의 보복일 수도 있어요!”“무슨...”문서현은 얼굴이 붉어진 채 씩씩거렸다.“헛소리도 정도껏 하세요.”그녀는 고개를 돌려 문중엽을 바라봤다.“아빠, 강찬의 일은 반드시 철저히 조사해야 해요. 제 생각엔 오빠에게 맡기시는 게 좋겠어요. 강찬의 아버지이니 분명 제대로 밝혀낼 거예요.”문성환도 맞장구쳤다.“맞아요. 아버지. 저에게 맡겨주세요. 강찬의 죽음을 반드시 밝혀 문씨 가문에 설명해 드릴게요.”그는 원래부터 온화하고 단정한 인상이었는데, 지금은 고개까지 숙여 더욱 공손해 보였다.“하린아...”문중엽의 목소리는 매우 약했지만, 모두가 들을 수 있었다.성하린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 유산은 모른 척, 이혼에 왜 눈물?   제429화

    마치 벼락이 떨어진 것처럼, 성하린의 귀가 웅웅 울렸다.그녀는 손에 든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뭐라고?”성하린은 자신의 이가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몇 번이나 숨을 고르려 했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떨렸다.“병원으로 와. 차 보냈어.”말을 마친 성동민은 전화를 끊었다.성하린은 휴대폰을 꽉 쥐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가 윤보경에게 아이들을 부탁한 뒤, 급히 집을 나섰다.병원.성하린은 입구에서 성동민을 봤다.불빛 아래 그의 얼굴은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계단을 급히 오르던 성하린은 마지막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했다.성동민이 그녀를 붙잡았다.“하린아, 무너지지 마.”성하린은 그의 팔을 꽉 붙잡았다.“멀쩡했는데... 어떻게...”아이들과 떠날 때만 해도 괜찮았다.성동민은 고개를 저었다.“초기 조사로는 약물 때문인 것 같아.”“약물?”“응. 약물 중독 같아.”정확한 건 조사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며 영안실 앞에 도착했다.문중엽은 휠체어에 앉아 등이 굽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마치 잠든 것처럼 보였다.최민경은 거의 기절할 듯 울고 있었고, 문성환과 문서현은 한쪽에 서서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성하린은 발이 납덩이처럼 무거워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었다.차가운 문을 바라보는 순간, 온몸의 피까지 식어버린 것 같았다.“하린아, 마지막으로 보고 올래?”성동민이 그녀를 부축하며 말했다.성하린은 눈이 따끔해졌다.“그래...”그녀는 한 걸음씩 안으로 들어갔다.흰 천이 덮인 침대가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힘이 완전히 빠져버렸다.“하린아...”성동민이 걱정스럽게 불렀다.“힘들면 다음에 와도 돼.”“괜찮아...”성하린은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천을 살짝 들자 창백한 얼굴이 드러났다.성하린은 눈을 감았다.눈물이 흘러내렸다.문강찬이었다... 이미 숨이 멎은 문강찬...성하린은 떨리는 손으로 그의 코와 이마를 만졌다.차갑기만 했다.그 순간, 그가 정말로 떠났다는 걸 분명히 느꼈다.

  • 유산은 모른 척, 이혼에 왜 눈물?   제428화

    성하린은 전화를 끊고 돌아서다가 문강찬의 시선과 마주쳤다.다정하고 집요한 눈빛을 마주한 성하린은 아주 미세하게 미간을 찌푸린 뒤, 아무렇지 않게 시선을 돌렸다.그녀는 지우의 옆에 앉아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봤다.행복하고 따뜻한 풍경에, 문강찬은 이 순간이 멈춰버리기를 간절히 바랐다.하지만 시간은 누구를 위해서도 멈춰주지 않았다.그때 집사가 문중엽이 앉은 휠체어를 밀고 들어왔다.어르신은 성하린과 지우를 보자, 마른 얼굴에 금세 미소가 번졌다.“하린이 왔구나.”그는 흐뭇해했다.성하린은 지우에게 증조할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했다.“증조할아버지.”지우가 얌전히 부르자 문중엽은 크게 기뻐했다.드디어 증손녀를 봤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느꼈다.성지우는 누구도 무서워하지 않고, 누군가 말을 걸어도 또박또박 대답했다.아이지만 전혀 수줍어하지 않았다.문중엽은 볼수록 만족스러웠다.성하린은 훌륭한 엄마고 문씨 가문에 어울리는 안주인이기도 했다.그렇게 생각하니 문강찬은 못마땅했다.‘이렇게 오래도록 성하린을 다시 데려오지 못하다니.’그는 참지 못하고 문강찬을 노려봤다.문강찬은 영문을 몰랐다.문중엽은 성하린에게 아이들과 함께 문씨 가문에 놀러 오라고 정성스럽게 권했다.성하린은 옅게 웃으며 거절하고 두 아이를 데리고 떠났다.문중엽은 붙잡지 못한 채 그들이 복도 끝으로 사라질 때까지 아쉬운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뒤돌아 손자에게 화를 냈다.“못난 놈, 아직도 못 데려왔어?”문강찬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집안이 저렇게 어지러운데 제가 어떻게 데려와요?”문중엽은 말문이 막혔다.확실히 집안이 엉망이었다.“문서현은 정리해서 돌려보내라고 했고, 성환이도 빨리 나가게 할 거야.”문강찬은 미간을 찌푸렸다.그런 조치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자신이 혼수상태일 때 온갖 일을 벌였던 문서현과 문성환이 그렇게 쉽게 포기할 리 없었다.문중엽은 잠시 침묵하다가 천천히 말했다.“나도 이제 오래 못 살 거야. 마지막 길을 지켜줄 사람이 필요해서 그러는

  • 유산은 모른 척, 이혼에 왜 눈물?   제427화

    두 사람은 계획을 정리하고 차를 타고 떠났다.집으로 돌아오자, 예상과 달리 문중엽이 먼저 와 있었다.요즘 들어 기력이 많이 약해진 그는 소파에 앉아 계속 기침을 하고 있었다.문서현과 문성환은 서로 눈을 마주 봤다.두 사람은 어르신이 언제 돌아왔는지 전혀 몰랐다.“아버지.”문성환이 공손하게 불렀다.문서현은 더 많은 생각이 들었다.문중엽은 분명 문강찬이 불렀을 것이다.그런데 자신은 아무런 소식도 받지 못했다.그렇다면 문강찬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한 사람이었다.그녀는 문강찬을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문중엽은 한참을 기침하다가 겨우 멈추고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문서현.”문서현이 다가갔다.“네, 아버지.”“언제 해성으로 돌아갈 거냐?”문서현은 순간 멈칫했다.‘쫓아내려는 거네.’그녀는 억울함을 억누르며 말했다.“제가 뭘 잘못했어요?”문중엽은 아무 감정 없이 말했다.“넌 이미 시집간 몸이야. 계속 친정에 있을 이유 없어.”“저는...”“결혼할 때 충분히 많은 재산을 줬잖아. 아직도 부족하냐?”문서현의 손에 땀이 맺혔다.그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녀도 같은 문씨 성을 가진 가족인데 왜 이 막대한 재산에서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가 하는 억울함이 들었다.게다가 그녀는 돈이 필요했다.“아버지, 남편도 죽었고 갈 데도 없어요. 저를 쫓아내시려는 거예요?”문중엽은 눈을 감았다.한숨이 나왔다.순하다고 생각해 남겨두었더니 이제는 이빨을 드러냈다.“자식도 있고, 갈 데 없는 것도 아니다. 3일 안에 다람시를 떠나라.”그리고 문성환을 보며 말했다.“너도 마찬가지야. 이 집에서 다시는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나이가 들었지만 기세는 여전했다.두 사람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나갔다.문서현이 냉소했다.“이제 알겠죠? 이 집엔 우리 자리가 없어요. 아버지 돌아가시면 재산은 전부 문강찬과 성하린 아이들한테 갈 거예요. 우리는 아무것도 못 가져요.”문성환은 이를 악물었다.“네 말대로 하자.”그들이

  • 유산은 모른 척, 이혼에 왜 눈물?   제162화

    진세린은 그의 상태가 이상함을 느끼고 태블릿을 가져왔다.“이게 뭐야? 친자 감정? 진윤슬이랑 온건우가 혈연관계가 아니라고?”진세린은 멍해졌다.“언니는 직접 자기 아이라고 인정했었잖아. 왜 그런 거지?”문강찬은 눈을 감았다.사실 이유는 너무 단순했다.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그가 사랑하는 존재까지 사랑한 것이다.진세린은 태블릿을 내려놓고 문강찬의 팔을 끼며 부드럽게 위로했다.“오빠, 너무 상처받지 마. 언니는 그냥 그 아이가 좋았던 걸 수도 있잖아. 게다가 이미 이혼했잖아. 인제 그만 내려놓아. 예빈이는 자기가 잘못한 걸

  • 유산은 모른 척, 이혼에 왜 눈물?   제153화

    ‘약혼식... 그래, 성예빈과 약혼할 예정이었지...’진윤슬은 고개를 숙이고 담담하게 대답했다.“네...”입맛이 없어 대충 몇 숟갈 먹고 수저를 내려놓았다.가정부가 약탕을 한 그릇 가져왔다.“이건....”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윤슬은 그릇을 받아 두 모금 만에 다 마셔버렸다.여현식이 처방해준, 몸을 덥히고 기혈을 보하는 약이라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쓴맛이 혀끝에서 터지듯 퍼지며 위에까지 밀려들어 왔고, 속이 뒤집히는 듯한 고통에 진윤슬은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했다.입안에는 시고 쓴 맛만 남고 위장은 텅

  • 유산은 모른 척, 이혼에 왜 눈물?   제141화

    성예빈은 다가가 그녀의 팔을 끼었다.“향 테스트하느라 밤새웠다면서. 오빠가 걱정해서 절대 깨우지 말라고 했어.”진성국은 가정부들에게 진윤슬을 안아 거실 소파에 눕히라고 지시했다.진윤슬은 마침 성예빈의 그 말을 들었다.문강찬이 진세린을 아끼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되니 지금 ‘기절한 상태’라서 다행이었다.진세린은 이제야 발견한 듯 말했다.“언니는 왜 이래요?”성예빈이 대신 설명하자 진세린은 놀란 듯 입을 가리며 눈시울을 붉혔다.“오빠, 미안해. 언니가 그런 줄 몰랐어. 다 내 잘못이야.”그녀는 잠시 멈췄다가 말을 다시

  • 유산은 모른 척, 이혼에 왜 눈물?   제123화

    그가 본 광경은 충격적이었다.늘 고고하고 만인의 위에 군림하던 문중엽이 자기 어머니 앞에서 한없이 몸을 낮추고 있었고, 심지어 지나칠 정도로 비위를 맞추고 있었다.진성국의 기억 속 어머니는 그저 평범하고 온화하며 현숙한 여인이었을 뿐이었다.‘문중엽이 어머니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 걸까?’순간 마음이 복잡해졌다.요즘 진씨 집안이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집안의 노소를 막론한 여자 셋이 모두 문씨 가문과 얽혀 있었다.잠시 더 지켜보던 그는 조용히 자리를 떴다가 문중엽이 나가는 걸 확인한 뒤에야 병실로 들어갔다.들어가자마자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