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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Author: 보루비
진윤슬이 문강찬의 손을 뿌리치고 비웃듯이 말했다.

“괜찮아. 강찬 씨는 여기서 친구나 챙겨. 나 때문에 두 사람 사이가 껄끄러워져선 안 되잖아.”

사실 속으로는 그에게 묻고 싶었다. 볼일이 있다고 한 게 진세린을 만나러 오는 것이냐고. 그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뻔한 일로 스스로 상처받을 필요는 없었다.

문강찬도 물러서지 않았다.

“같이 가.”

진윤슬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조금 전 한바탕 소란을 피운 터라 다정한 척할 필요도 없었다. 어쨌거나 이 결혼의 진실은 너무나 초라하니까.

다리가 불편한 박순옥은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서 보냈다. 그런데 진윤슬이 왔다는 소리에 지팡이를 짚고 나왔다.

진윤슬은 서둘러 할머니를 부축해 방으로 들어갔다. 입을 떼기도 전에 벌써 눈시울이 붉어졌다.

“할머니...”

목이 메어 할머니의 다리에 얼굴을 묻었다.

박순옥은 손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진윤슬은 재빨리 감정을 추스르고 눈물을 닦은 다음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할머니가 보고 싶었어요.”

“싱겁긴. 할미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보러 오면 될 것을.”

박순옥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진윤슬이 억울한 일을 당해 속상해서 이렇게 운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억울함은...

박순옥의 시선이 문 앞에 서 있는 문강찬에게로 향했다.

문강찬이 들어와 인사를 건네자 박순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뭐라 하지 않고 진윤슬에게만 말했다.

“아주머니한테 갈비탕을 끓이라고 했는데 다 됐는지 가서 봐줄래?”

진윤슬이 순순히 주방으로 향한 다음 박순옥은 문강찬에게 앉으라고 손짓했다. 나이가 지긋한 목소리가 엄숙해졌다.

“그때 다른 가족들이 너랑 윤슬이를 결혼시키려 했을 때 사실 난 반대했었어.”

문강찬이 시선을 늘어뜨리고 두 손을 무릎에 얹었는데 누가 봐도 혼나길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박순옥이 말을 이었다.

“이제 세린이가 돌아왔으니 딱 한 가지만 물을게. 네 생각은 어때?”

문강찬에게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 묻고 있었다.

문강찬의 차갑고 무심한 얼굴에 어떤 감정도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주먹을 살짝 쥘 뿐이었다.

“전 윤슬이랑 이혼할 생각 없습니다.”

이건 그가 할머니에게 하는 약속이었다.

“만약 윤슬이가 이혼하겠다고 하면?”

박순옥이 다시 묻자 문강찬은 마음 깊숙한 곳에서 짜증이 밀려왔다.

“걱정하지 마세요, 할머니. 저희 잘 지낼 겁니다.”

문강찬의 모호한 대답에 박순옥이 한숨을 내쉬었다. 손녀가 안쓰러웠지만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문강찬에게 간곡하게 부탁할 뿐이었다.

“만약 언젠가 윤슬이가 자유를 원한다고 하면 힘들게 하지만 말아줘.”

문강찬은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가 진윤슬과 이혼할 거라고 생각했다. 진윤슬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사실 문강찬은 진윤슬과 이혼할 생각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진세린에게는 그저 어릴 적 함께 자란 정이 있어 잘해준 것이었고 감싸주고 지켜줬던 건 과거 진세린이 그의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어서였다.

“할머니, 갈비탕 다 됐어요.”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진윤슬이 갈비탕 한 그릇을 들고 들어왔다. 문강찬의 옆을 지나갈 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녀의 냉랭한 태도를 문강찬도 느꼈다.

부부로 3년을 사는 동안 처음에는 계약으로 시작했으나 나중에는 몸과 마음을 나눴고 이젠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다.

“할머니, 전 먼저 나가 있을게요. 윤슬아, 밖에서 기다릴게.”

문강찬이 예의 바르게 말하고 나갔다.

진윤슬은 아무 대답 없이 할머니에게 갈비탕을 떠먹여 주었다.

손녀의 창백한 얼굴을 보면서 박순옥은 진세린이 돌아온 후 진윤슬이 많은 고생을 했겠다고 생각했다.

진윤슬의 부모는 옛날부터 편애가 심했다.

“윤슬아, 너희들이 밖에서 하던 얘기 다 들었어.”

박순옥이 목소리를 낮추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마음속에 그녀에 대한 미안함이 가득했다.

“이 할미 때문에 네가 고생이 많구나.”

진윤슬이 국그릇을 힘껏 움켜쥐었다. 마음은 파도처럼 일렁거렸지만 말투는 여전히 해맑았다.

“할머니, 할머니 탓이 아니에요. 게다가 가끔 싸우면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잖아요.”

박순옥이 한숨을 내쉬었다.

진윤슬은 방에서 할머니와 오랫동안 얘기를 나누다가 할머니의 낮잠 시간이 돼서야 방에서 나왔다.

밖에 도우미가 점심 식사를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와서 밥 먹어.”

주아란이 진윤슬을 부르긴 했지만 그다지 살갑지는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 얼굴을 붉혔던 터라 딸에게 좋게 좋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주아란에게는 많이 양보한 것이었다.

“입맛 없어요. 난...”

진윤슬이 거절하려 했다.

“강찬이랑 결혼하더니 다른 건 못 배우고 콧대만 높아졌구나. 왜? 집에 밥이 진수성찬이 아니라서 먹기 싫어?”

막 집에 도착한 진성국이 굳은 얼굴로 호통쳤다.

진윤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있어 할머니에게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태도를 보니 밥을 먹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식탁으로 가서 앉았다.

진성국이 더욱 노발대발했다.

“전생에 내가 대체 너한테 무슨 빚을 졌길래 아빠를 보자마자 얼굴을 찌푸리는 건데?”

“됐어. 그만해.”

주아란이 말렸다.

식탁 위의 분위기가 무겁기 그지없었다.

진윤슬은 진태호가 혐오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여기에 나타나지 않길 바라는 게 틀림없었다. 그녀가 온 바람에 화목했던 가족 분위기가 깨졌으니까.

“언니, 갈비탕 좀 먹어.”

진세린이 조심스럽게 갈비탕 한 그릇을 진윤슬의 앞에 놓으며 잘 보이려는 듯이 상냥하게 말했다.

진윤슬은 갈비탕에 손도 대지 않고 고개를 숙여 그릇에 담긴 반찬만 먹었다.

그러자 진세린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하더니 입술을 깨물고 무척이나 속상해했다.

그 모습에 진태호가 젓가락을 던지면서 진윤슬에게 삿대질하며 욕했다.

“진윤슬, 적당히 해!”

진윤슬이 고개를 들고 덤덤하게 물었다.

“내가 뭘 어쨌다고 이래?”

“세린이가 말하고 있잖아. 갈비탕도 한 그릇 떠줬고. 귀가 먹었어? 혹시 눈도 먼 거야?”

진태호가 노발대발했다.

진윤슬이 갈비탕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세린이가 떠줬다고 꼭 먹어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어? 안 먹으면 큰일이라도 나?”

신경질적인 반응보다 차분한 반문이 오히려 사람을 더 미치게 했다.

“그만들 해.”

진성국이 식탁을 치며 분노를 터뜨렸다.

“밥 한 끼 제대로 먹을 수가 없네. 대체 뭘 하자는 거야?”

그는 진윤슬을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

“먹기 싫으면 나가.”

진윤슬은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도 원래 밥 먹고 갈 생각 없었어요.”

할머니가 걱정할까 봐 참았던 것뿐이었다. 차라리 그녀를 내쫓길 바랐다.

“진윤슬, 거기 서.”

진태호가 다가와 진윤슬의 팔을 잡았다.

“갈비탕 다 먹고 가.”

그는 진윤슬에게서 풍기는 묘한 오만함이 항상 눈에 거슬렸다. 처음부터 이 집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인 것처럼 오만했다.

하여 오늘 이 갈비탕은 먹기 싫어도 먹어야 했다.

“됐어, 오빠.”

진세린이 다가와 진태호의 팔을 잡고 울먹이며 말했다.

“언니 몸이 안 좋잖아. 그러니까 힘들게 하지 마.”

“아직도 얘 편을 드는 거야?”

진태호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동생을 쳐다봤다.

“윤슬이 쟤 네 생일 파티를 망친 것도 모자라 사람들 앞에서 네가 드레스를 훔쳐 입었다고 했어. 나중에는 그 옷을 종업원한테 줘서 망신을 당하게 했고. 그리고 지금은 또 네 진심을 짓밟고 있는데 아직도 감싸주고 싶어?”

“윤슬아, 세린이는 진심으로 언니인 너한테 잘해주고 싶어 해.”

문강찬이 다가오더니 험악한 표정의 진태호를 막아서면서 진윤슬을 달랬다. 갈비탕은 동생이 언니에 대한 마음이니 고맙게 받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아이를 유산한 건 우리도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 줄 누가 알았겠어?”

주아란이 한숨을 쉬며 함께 달랬다.

“두 사람 아직 젊으니까 아이는 언제든지 또 가질 수 있어.”

“임신한 애가 집에 가만히 있을 것이지, 왜 밖에 나가서 돌아다녀? 그리고 유산했으면 스스로한테서 잘못을 찾아야지, 남을 탓해? 우리가 널 그렇게 가르쳤어?”

진성국은 진윤슬에 대한 불만을 서슴없이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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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로등 아래 서 있는 문강찬은 표정이 유난히 차가웠다.“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어머니는 제 모든 걸 통제하려 하셨죠. 이제 제가 어머니 뜻대로 후계자가 됐는데 아직도 절 관리하실 건가요?”더없이 냉랭한 말투에 최민경은 화가 치밀었다.“넌 내 아들이야. 내가 간섭하는 게 당연하지.”문강찬은 관자놀이를 눌렀다.몹시 피곤했고, 다툴 기력도 없었던 그는 그녀를 스쳐지나 집 안으로 들어갔다.뒤에서 최민경이 차갑게 말했다.“내일 맞선을 잡아놨으니 반드시 나가.”문강찬은 홱 돌아섰다.눈 밑에 짜증과 울분이 번졌다.“그만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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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강찬은 관계를 가진 후에도 항상 신경을 썼다.이혼하면 이렇게까지 꼼꼼하게 챙겨주는 남자는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 같았다.한창 생각에 잠긴 그때 문강찬이 몸을 숙여 진윤슬을 안아 올리더니 침대에 눕혔다.“수고했어. 얼른 자.”문강찬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품에 안았다. 진윤슬은 몹시 피곤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진윤슬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최대한 빨리 이사 나갈게.”이미 부동산을 통해 집을 알아보고 있었다.이혼하기로 한 이상 더는 질척거릴 필요가 없었다. 오늘 밤 같은 일이 다시 일

  • 유산은 모른 척, 이혼에 왜 눈물?   제13화

    “강찬 씨, 제발 아기를 살려줘. 내 아기...”고통과 절망이 뒤섞인 흐느낌이 귓가를 맴돌았다....“진윤슬, 정신 차려. 너 악몽 꿨어.”다급한 목소리가 천둥소리를 뚫고 들려왔다.진윤슬이 눈을 떠보니 익숙하고 잘생긴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문강찬은 그녀를 품에 안고 초조한 기색으로 이름을 불렀다.“진윤슬.”진윤슬은 아직 정신이 몽롱했다. 몸에 아직 악몽 속 고통이 남아있는 듯 하얀 손가락으로 문강찬의 옷을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혼란스럽고 괴로운 목소리로 그에게 애원했다.“강찬 씨, 배가 너무 아파. 제발 우리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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