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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상자 위의 먼지를 대충 털어낸 그는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별다른 물건이 없었다.

제일 위쪽에 가지런한 기름 묻은 포장지가 놓여있었다.

18년 전, 임지환 가족에게 변고가 들이닥쳐 그는 다른 이의 추살을 피해 연경을 떠나 강한시까지 왔었다. 하지만 결국 배고픔과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길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때, 한 여자가 빵을 사 조금씩 떼어줘 물과 함께 그에게 먹여준 덕분에 그는 살 수 있었다.

그 여자가 바로 배지수였다.

임지환은 그 빵을 포장했던 포장지를 여태껏 보관하고 있었다.

"그때의 은혜는 다 갚았으니 우리 이제 서로한테 빚진 거 없는 거야."

임지환이 말을 마치더니 포장지를 찢어버렸다.

상자 안에 들어있던 두 번째 물건은 바로 검은색의 영패였다.

영패는 고풍스러운 디자인에 묵직한 재질로 이루어졌다. 위에는 이를 드러내고 발톱을 치켜세운 용이 그려져 있었다.

"또 만났네."

영패의 무늬를 만지니 임지환은 몸속의 피가 다시 들끓는 것 같았다.

이 영패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면 전 세계에 다시 파란이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임지환은 숨을 들이켜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세 번째 물건은 검은색의 헝겊 자루였다.

임지환은 곧바로 네 번째 물건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것은 바로 예전에나 쓸법한 휴대폰이었다.

충전기를 연결하고 휴대폰을 열어보니 그 위로 연신 메시지가 떴다.

"용주님, 어디 계세요?"

"용주님, 제발 대답 좀 해주세요. 형제들이 용주님을 너무 보고 싶어해요."

"......"

임지환이 메시지를 보고 있을 때, 갑자기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그는 낯선 전화번호를 보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이 전화번호는 암호화된 특수 번호였기에 친한 사람 말곤 다른 이는 알 수조차 없었다.

결국, 임지환은 잠시 망설이다 전화를 받았다.

"용성수님, 정말 다행이네요. 제가 한 천 번은 넘게 전화한 것 같은데 드디어 제 전화를 받아주셨군요!"

휴대폰 반대편에서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용성수, 임지환은 이 별명이 대외로 알려진 자신의 신분 중 하나라는 것을 잊을 뻔했다.

"당신 누굽니까? 제 전화번호는 또 어떻게 안 거고."

임지환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양주왕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봤습니다. 저는 강한시 이씨 가문의 이성봉이라고 합니다, 제 아버지가 위급한 상황이어서 성수님께 도움을 청하고자 이렇게 전화를 드린 겁니다."

그 말을 들은 임지환은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잠겼다. 양주왕은 아마 임지환의 부하였던 조강기를 말하고 있는 듯했다.

조강기가 부상을 입고 물러났을 때, 임지환은 그에게 거액의 돈을 줘 자리를 잡을 수 있게 했다.

조강기는 양주로 돌아가 출중한 실력을 통하여 결국 양주의 왕까지 되었다.

이씨 가문은 아마도 강한시의 최고 재벌 집을 말하고 있는 듯했다. 그들은 강한시에서 방대한 세력을 지니고 있었다.

"싫습니다."

임지환은 금방 이혼을 해 기분이 좋지 않았기에 여행이라도 하면서 기분을 풀 생각이었다. 지금의 그는 이런 일을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잠깐만요, 성수님! 제 아버지께서는 젊었을 때, 나라를 위해 싸우신 분입니다. 지금 이렇게 앓아누우신 것도 그 때문이고요, 그러니까 제발 저희 아버지 한 번만 살려주세요."

이성봉이 다급하게 애걸하기 시작했다.

"나라를 위해 싸우셨던 분이셨군요."

그 말을 들은 임지환이 잠시 고민하더니 다시 입을 뗐다.

"시도해 볼 수는 있지만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성수님!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제가 지금 데리러 가겠습니다."

이성봉이 신이 나서 말했다.

"저 지금 강한시에 있습니다."

임지환이 담담하게 말했다.

"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이성봉은 조금 놀랐다. 유명한 용성수가 자신과 같은 곳에 있었다니.

"구르미 빌리지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한 시간안에 저 데리러 오세요."

임지환은 전화를 끊고 상자를 들고 아래로 내려갔다.

하지만 문 앞에 도착했을 때, 한수경이 그의 길을 막았다.

"거기 서, 너 여기서 못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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