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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7화

작가: 탄산요정
은희는 사무실에서 서류를 검토하던 중 핸드폰에 뜬 속보 알림을 보게 됐다.

[하진그룹 하남우 대표, 대형 교통사고... 차량 추락 후 폭발, 현장 사망 추정]

은희의 손가락이 굳었다. 눈이 크게 흔들리며 몸까지 멈춰 버렸다.

‘하남우가 죽었다고?’

떨리는 손으로 기사를 열자 불에 탄 차량 잔해와 흐릿한 현장 사진이 화면에 나타났다. 기사에는 탑승자의 생존 가능성이 사실상 없다는 문장이 반복됐다.

“말도 안 돼.”

은희는 낮게 중얼거렸다. 손끝이 차갑게 식고 가슴이 꽉 눌린 듯 숨쉬기조차 어려웠다.

남우를 미워했다. 과거의 냉정함도, 자신에게 남긴 상처도 여전히 미웠다.

하지만 죽기를 바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은희는 자리에서 급히 일어났다가 심한 어지럼증을 느끼고 책상을 짚었다.

“은희 씨?”

노레드가 문을 열고 들어오다 창백한 은희를 보고 미간을 좁혔다.

“무슨 일이에요?”

은희가 쉰 목소리로 물었다.

“뉴스에 하남우가 죽었다고 나왔어요. 사실이에요?”

노레드는 잠시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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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 당신을 버릴 차례   제292화

    “은희야, 적어도 내가 데려다줄게.”“그냥 보내 주세요.”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빗속에서 들려왔다.노레드가 검은 우산을 들고 다가왔다. 은희 곁에 서서 우산을 은희 쪽으로 기울이자 자신의 한쪽 어깨가 금세 빗물에 젖었다.“노레드 박사님.” 남우의 눈빛이 어두워졌다.노레드는 침착하게 남우를 바라봤다. “은희 씨가 가겠다고 했습니다.”남우는 손을 꽉 쥐었다가 천천히 풀었다. 빗물이 손가락 사이로 떨어졌다.은희를 바라보는 눈에는 미련이 가득했다.“그럼 내가 두 분 다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남우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노레드는 고개를 저었다. “차는 바로 저쪽에 있습니다.”은희는 이미 노레드가 가리킨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남우를 다시 돌아보지도 않았다.노레드는 은희의 뒤를 따라갔고 두 사람은 곧 빗속에 묻혀 보이지 않게 됐다.남우는 그 자리에 홀로 남아 빗물을 맞았다.효찬은 이미 수사 인력에게 이송되고 있었다. 멀어지는 사이렌 소리가 비 내리는 밤을 가르며 울렸다.“대표님, 이제 가셔야 합니다.”비서가 우산을 들고 달려와 조심스럽게 말했다.남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빗물이 시야를 가렸고 눈가의 물기까지 감춰 줬다.이번에도 잘못했다. 은희에게 미리 알려 줬다면 은희가 저런 위험에 빠질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두 사람 사이가 더 멀어지는 일도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남우는 늘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은희를 상처 입혔다.씁쓸한 웃음이 흘렀다. 예전에는 은희가 뱃속 아이 때문에 자신과 이혼하려 한다고 믿었다.그때는 은희가 다른 사람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때 조금만 달랐다면 은희를 잃지 않았을지도 모른다....한편, 노레드의 차 안은 따뜻한 바람으로 가득했다.은희는 조수석에 웅크리고 앉아 여전히 두 손으로 배를 감싸고 있었다.옷도 머리카락도 흠뻑 젖어 평소보다 훨씬 약해 보였다.노레드가 마른 수건을 건넸다. “하남우에게 사실을 말해도 됩니다.”은희는 수건을 받아 기계적으로 머리를 닦았다.

  • 이제 당신을 버릴 차례   제291화

    차가운 빗물이 피부를 때렸다. 은희는 온몸의 피가 굳어 버리는 것 같았다.반사적으로 배를 감싸 쥐었다. 젖은 옷감 위로 손가락이 파고들었다. 그렇게 하면 비밀을 지킬 수 있을 것처럼.“놔!”은희는 남우를 세게 밀쳐 냈다. 두 걸음 물러나는 사이 구두굽이 진흙 섞인 물웅덩이에 박혔다.빗물이 속눈썹을 타고 내려 시야를 흐렸다.남우의 손이 허공에 멈췄다. “은희야, 여긴 위험해. 일단 나가자.”“위험하다고?”은희가 말을 끊었다. 목소리는 빗물보다 차가웠다. “진효찬보다 자기 죽음을 숨긴 사람이 더 위험한 거 아니야?”은희는 수사 인력에게 제압당한 효찬을 가리켰다. 효찬은 입가에 피를 묻힌 채 두 사람을 독하게 노려보고 있었다.남우가 한 걸음 가까이 왔다. “미리 말했으면 이번 판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을 거야.”시선이 은희 목에 남은 붉은 자국을 스쳤다. 남우의 목울대가 움직였다. “하지만 효찬이가 너까지 노릴 줄은 몰랐어.”사실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남우는 은희가 자신이 죽었다고 믿으면 조금은 편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그런 속마음까지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그래서 난 네 계획에 없던 변수였다는 거네?” 은희가 웃었다. 그 웃음에 남우의 가슴이 조여 왔다.은희는 배를 감싸며 말했다. “이 아이처럼?”빗소리가 갑자기 더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효찬이가 한 말 들었어.”남우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턱끝에서 떨어진 빗물이 은희의 손목에 닿았다.“아이... 아직 있는 거지?”은희의 손끝이 떨렸다.“그게 중요해?” 은희가 턱을 들었다. “누구 아이든 너랑 무슨 상관인데? 우리 이미 이혼했어.”“내 아이로 키울게.”남우가 갑자기 은희의 손목을 잡았다. 번개가 스치는 사이 눈빛이 집착에 가까울 만큼 짙게 빛났다. “맹세할게. 이번에는 너도 아이도 절대 다치게 하지 않아.”은희의 숨이 걸렸다. 아이 이야기에 이렇게까지 낮아진 남우는 처음 봤다. 늘 모든 걸 결정하던 남자가 빗속에서 젖은 채 자신에게 고개

  • 이제 당신을 버릴 차례   제290화

    ‘하남우가 나를 죽이라고 했다고?’은희는 절대로 믿을 수 없었다.빗속에서 주삿바늘 끝이 서늘하게 번뜩였다. 은희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효찬의 배신 때문에 남우가 죽었을 가능성이 오히려 더 크게 느껴졌다.“당신이었군요.” 은희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남우를 팔아넘긴 사람이 진효찬 씨였어요.”효찬은 입가를 비틀며 은희의 귀 가까이 다가갔다. “이제야 알아차렸네요. 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주사기를 들어 올리며 낮게 웃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오래 아프진 않을 겁니다.”탕!총성이 빗소리를 가르며 울렸다. 효찬의 손목에서 피가 튀었고 주사기는 바닥에 떨어져 빗물에 휩쓸려 갔다.“악!” 효찬이 비명을 지르며 뒤를 돌아봤다.빗속에 남우가 총을 든 채 서 있었다. 검은 코트가 강풍에 크게 펄럭였다.뒤쪽에는 무장한 수사 인력이 줄지어 서 있었고 효찬을 향한 조준점이 흔들림 없이 고정돼 있었다.“하, 아니, 남우야... 살아 있었어?” 효찬의 안색이 창백해지며 뒤로 비틀거렸다.남우는 천천히 다가가 총구를 효찬의 이마에 대었다. “내 여자를 건드렸으니 그 대가를 치러야지?”은희는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눈물과 빗물이 뒤섞여 얼굴을 타고 흘렀다.남우의 뒷모습을 보자 결국 울음이 터졌다. “살아 있었네... 정말 살아 있었어.”남우가 돌아보자 얼음처럼 차갑던 눈빛이 금세 풀렸다. “미안해. 늦었어.”그때 효찬이 갑자기 몸을 일으키며 부츠 안에서 칼을 뽑아 남우의 등을 향해 찔렀다.“조심해!” 은희가 소리쳤다.남우는 뒤를 완전히 돌아보지도 않은 채 팔을 틀어 효찬의 다리를 향해 총을 쐈다.효찬은 눈을 크게 뜬 채 비에 젖은 바닥 위로 쓰러졌다.“신병 확보해서 데려가.” 남우는 총을 내리고 은희에게 다가가 품에 안았다. “이제 괜찮아. 끝났어.”은희는 남우 품에서 떨다가 문득 무언가를 떠올리고 고개를 들었다. “진효찬이 배신한 걸 알고 있었어?”방금 남우의 반응을 보면 효찬의 정체에 놀라지 않은 게 분명했다.남우

  • 이제 당신을 버릴 차례   제289화

    남우는 감시실 의자에 앉아 펜을 쥔 손에 힘을 주고 있었다.앞의 화면에는 효찬과 세준이 비공개 라운지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선명하게 잡혀 있었다....“하진그룹의 주도권은 결국 내가 가져야 해.” 세준이 잔을 흔들며 말했다. “어른들 쪽도 이미 정리해 뒀고.”효찬은 공손하게 세준에게 자료를 내밀었다. “하진그룹 최신 지분 현황입니다. 지시하신 대로 시장에 풀린 주식 5%도 조용히 확보했습니다.”...남우가 쥐고 있던 펜이 뚝 부러졌다. 검은 잉크가 흰 셔츠에 튀었다.남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먹으로 콘솔을 세게 내리쳤다. 손등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효찬아... 난 널 친형제처럼 믿었어.”쉰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 목 안쪽으로 피비린내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화면 속 효찬의 비굴한 미소가 유독 선명하게 보였다.[대표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남우 그 멍청한 인간은 아직도 제가 제일 가까운 사람인 줄 압니다.]효찬이 비웃었다. [이제 죽었을 테니 이사회도 자연스럽게 대표님 쪽으로 넘어올 겁니다.]“윽...”남우가 갑자기 피를 토했다. 붉은 핏방울이 모니터 아래쪽으로 튀었다.두 걸음 비틀린 남우는 벽을 짚고서야 겨우 서 있었다.10년이었다. 무려 10년 동안 가장 믿었던 친구가 세준이 심어 둔 사람이었다.화면 너머로 세준의 웃음이 크게 들렸다. [집안 어른들이 알면 볼만하겠지. 그렇게 아끼던 후계자가 자기 심복한테 뒤통수 맞았다는 걸 알면 쓰러지는 거 아냐?]남우는 입가의 피를 닦았다. 흔들리던 눈이 서서히 얼음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통신 장치를 눌러 명령했다. “매 사냥 작전 시작해. 누가 하진그룹을 움직이는 사람인지 확실하게 보여 주지.”창밖에는 번개가 치고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남우는 유리창 앞에서 비에 흐릿해진 도시를 바라보며 차갑게 웃었다.“여기까지 왔으면 끝을 봐야지.”...은희는 거센 비를 뚫고 약속된 폐부두에 도착했다. 머리끝에서 빗물이 계속 흘러내렸다.컨테이너 옆에 서 있는 사람을 알아본

  • 이제 당신을 버릴 차례   제288화

    은희는 남우를 미워했다. 그런데 그제야 알았다.미움이 남아 있다는 건, 어쩌면 사랑도 아직 남아 있다는 뜻일지 모른다는 걸.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걸.그때 핸드폰이 짧게 진동했다.모르는 번호로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하남우를 보고 싶으면 오늘 밤 12시, 혼자 남쪽 부두로 와.]은희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벌떡 일어섰다.‘안 죽은 거야?’은희의 표정이 달라지자 노레드가 곧바로 가까이 다가왔다. “무슨 메시지예요?”은희는 반사적으로 화면을 껐다. 손끝이 떨렸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회사 일이에요.”노레드는 믿지 않는 눈이었다. 늘 냉정한 은희를 저렇게 흔들 수 있는 건 남우와 관련된 일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은희 씨.” 노레드가 어깨를 잡고 낮게 말했다. “무슨 연락을 받았든 충동적으로 움직이면 안 됩니다.”은희는 시선을 피했다. “알아요.”노레드가 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남우 사고는 단순한 일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만약 하남우가 일부러 만든 판이라면 지금 섣불리 움직이는 게 계획을 망칠 수도 있어요.”“그게 아니라면요?” 은희가 눈을 붉히며 고개를 들었다. “정말 하남우에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면요?”노레드는 잠깐 침묵하다 결국 타협했다. “적어도 먼저 사람을 보내 확인하게 해 주세요.”은희는 고개를 저었다. “혼자 오라고 했어요.”“그 말 자체가 함정이라는 뜻이잖아요.” 노레드가 드물게 목소리를 높였다. “하남우의 ‘죽음’이 누군가를 끌어내기 위한 계획일 수도 있다는 걸 은희 씨도 알잖아요. 혼자 갔다가 위험해지면 하남우의 계획까지 망칠 수 있습니다.”은희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물론 알고 있었다.하지만 정말로 남우가 위험에 빠졌을지도 모른다는 단 하나의 가능성까지 외면할 수는 없었다.“박사님.” 은희가 힘없이 웃었다. “맞아요. 함정일 가능성이 훨씬 크겠죠.”은희는 핸드폰을 가방에 넣고 주차장 쪽으로 몸을 돌렸다.“그래도 그 아주 작은 가능성까지

  • 이제 당신을 버릴 차례   제287화

    은희는 사무실에서 서류를 검토하던 중 핸드폰에 뜬 속보 알림을 보게 됐다.[하진그룹 하남우 대표, 대형 교통사고... 차량 추락 후 폭발, 현장 사망 추정]은희의 손가락이 굳었다. 눈이 크게 흔들리며 몸까지 멈춰 버렸다.‘하남우가 죽었다고?’떨리는 손으로 기사를 열자 불에 탄 차량 잔해와 흐릿한 현장 사진이 화면에 나타났다. 기사에는 탑승자의 생존 가능성이 사실상 없다는 문장이 반복됐다.“말도 안 돼.”은희는 낮게 중얼거렸다. 손끝이 차갑게 식고 가슴이 꽉 눌린 듯 숨쉬기조차 어려웠다.남우를 미워했다. 과거의 냉정함도, 자신에게 남긴 상처도 여전히 미웠다. 하지만 죽기를 바란 적은 한 번도 없었다.은희는 자리에서 급히 일어났다가 심한 어지럼증을 느끼고 책상을 짚었다.“은희 씨?” 노레드가 문을 열고 들어오다 창백한 은희를 보고 미간을 좁혔다. “무슨 일이에요?”은희가 쉰 목소리로 물었다. “뉴스에 하남우가 죽었다고 나왔어요. 사실이에요?”노레드는 잠시 말이 없었다. 최대한 은희에게 알려지지 않게 하려 했지만 결국 기사를 본 모양이었다.“현재 공식적으로 나온 내용은 그렇습니다. 차량 잔해는 확인됐지만 DNA 확인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쾅!은희의 손에서 핸드폰이 떨어져 바닥에 부딪혔다. 화면이 깨지면서 거미줄처럼 갈라졌다.입술이 움직였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시야가 갑자기 뒤집히는 듯 흔들리더니 다리에 힘이 풀렸다.“은희 씨!” 노레드가 빠르게 받아 안았지만 은희는 이미 의식을 잃은 뒤였다....은희는 아주 긴 꿈을 꿨다.꿈속에서 몇 년 전으로 돌아간 은희 앞에 남우가 햇빛 아래 서 있었다. 남우는 손을 내밀며 다정하게 웃었다. “은희야, 나랑 가자.”은희가 그 손을 잡으려 하자 장면이 바뀌었다.남우는 차갑게 은희를 밀어내며 싫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고은희, 넌 정말 사람을 질리게 해.”은희는 숨을 크게 들이켜며 눈을 떴다. 이마는 식은땀으로 젖었고 호흡이 거칠었다.“깼어요?” 노레드가 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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