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모든 일이 이제는 정말 제자리를 찾은 것만 같았다.리은은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다만 지난 반년 동안, 리은이 유한을 본 건 단 두 번뿐이었다.그마저도 만날 때마다 나눈 이야기는 전부 루이에 관한 것뿐, 다른 이야기는 없었다.[시간 돼? 할 말이 있는데.]리은은 유한의 변화를 느끼고 있었다.유한은 더 이상 예전처럼 독단적으로 굴지 않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예 돌아보지 않는 사람도 아니었다.두 사람이 만나는 일은 드물었지만, 주유한이라는 사람이 리은의 삶과 세계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간 적은 없는 듯했다.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루이는 두 사람 사이를 영영 끊어 낼 수 없는 매듭 같은 존재였다.루이는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꺼냈다.지금 루이의 생활은 꽤 공평하게 나뉘어 있었다.일주일은 엄마 집에서, 또 일주일은 주씨 가문 본가에서 지냈다.그래서 직접 마주치지 않는 날이 많아도 두 사람은 서로의 근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시간 돼.”[오늘 저녁 같이 밥 먹자.]“그래. 주소 보내.”리은은 핸드폰 화면을 내려다보다가 문득 생각했다.‘우리 사이에 이렇게 감정 섞이지 않은 말투로, 이렇게 차분하게 대화를 나눈 게 대체 얼마 만이지?’저녁이 되자 리은은 약속한 장소로 향했다.이미 먼저 온 유한이 자리에 앉아서 리은을 기다리고 있었다.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유한은 머리를 더 짧게 자른 모습이었다.거의 삭발에 가까울 정도로 짧았지만, 좀더 세련된 느낌이었다.그 때문에 주유한이라는 사람 전체가 더 차갑고 더 날카로워 보였다.여전히 시선을 끄는 남자였지만, 지금의 유한은 쉽게 다가설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그런데도 유한은 리은을 보자 미소를 지었다. 직접 의자를 빼 주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왔어? 앉아.”고맙다고 말한 뒤 자리에 앉은 리은이 곧바로 물었다.“무슨 일로 보자고 한 거야?”“5년 전 그 교통사고 때문이야.”리은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무슨 일인데?”“인영이 미리 모영
대화가 끊어진 뒤, 리은은 핸드폰만 가만히 내려다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얼굴이었다.그런데 유한이 리은의 손을 붙잡고 조용히 말했다.“미안해. 그때 내가 너를 조금만 더 믿었더라면, 질투에 눈이 멀지만 않았더라면, 이렇게까지 많은 오해가 생기지도 않았을 거야. 이런 일들도 없었을 거고. 다 내 잘못이야. 사과할게.”하지만 리은은 손을 빼내고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다 지난 일이야. 그리고 이미 끝난 일이기도 하고.”유한은 리은이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리은을 겁주면서까지 자기 곁에 붙잡아 둘 자신이 없었다.“정말... 나한테 다시 기회를 줄 생각이 없는 거야?”리은은 대답하지 않았다.그러나 그 침묵만으로도 리은의 뜻은 충분히 전해졌다.이제야 모든 일을 분명하게 알게 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리은이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유한의 목소리가 조금 더 낮아졌다. 어딘가 간절하게 매달리는 기색도 묻어 있었다.“한 번만 더 기회를 주면 안 될까?”리은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난 진작 너를 포기했어. 앞으로 우리는 루이의 부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그동안 네가 루이한테 못 해준 건 앞으로 두 배로 갚아. 너한테 바라는 건 그거 말고는 없어.”이번에는 유한이 말을 잃었다.차가 멈추자, 리은은 내리기 직전에 다시 입을 열었다.“그리고 내가 주강그룹을 탐낼까 봐 걱정할 필요 없어. 때가 되면 주식도 너한테 돌려줄게. 난 내가 가져야 할 것만 가질 거야.”리은은 더는 빈손으로 돌아서는 선택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자기가 받아야 할 몫은 분명히 챙길 생각이었다.더이상 억지로 참고, 혼자만 손해 보는 식으로 살지 않을 거였다.리은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잘못하고 실수한 적도 있었다. 유한을 향한 마음은 그래서 더 복잡했다. 이제는 그 감정을 하나로 정리해 말할 수도 없었다.사랑한 적도 있었다.원망한 적도
오랜 침묵 끝에 리은은 성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그래서 오빠가 일부러 주유한한테 루이가 자기 아이가 아니라고 오해하게 만든 거야. 맞지?”성빈은 조금도 피하지 않고 대답했다.“맞아. 그날 네가 내 병실에서 잠들었고, 그래서 내가 일부러 그런 말을 했어. 주유한이 오해하도록.”리은의 안색은 더 창백해졌다. 입술을 떨며 움직였지만, 말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오빠는 그게 루이한테서 뭘 빼앗는 일인지 알고 있어?”성빈은 잠시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낮게 말했다.“내가 한 말 몇 마디에 바로 믿어 버릴 정도면, 애초에 유한은 너를 믿지 않았다는 뜻이잖아.”“리은아, 널 믿지 않는 남자는 가치 없어. 주유한이 루이를 내 아이라고 오해하게 만든 건, 결국 너를 믿지 않았던 대가라고 생각했어. 그게 뭐가 그렇게 잘못됐는데?”리은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정말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그때 등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유한이었다.유한은 차갑게 가라앉은 얼굴로 성빈을 노려봤다. 당장이라도 성빈을 찢어 버릴 것 같은 눈빛이었다.“우리 감정이 어땠는지, 네가 감히 끼어들 자격은 없어. 네가 뭔데 멋대로 평가해?”성빈은 유한을 보고도 비웃음을 거두지 않았다.“넌 또 뭐가 다르지? 그렇게까지 리은이를 신경 쓰면서도, 네 눈에는 내가 마치 불륜 상대처럼 보였으면서도, 결국 나 같은 사람까지 살려 두고 돌보잖아.”“그렇게까지 마음에 두면서도 끝내 리은이를 못 믿은 건 너야. 주유한, 네가 제일 우스운 거 알아?”유한의 안색은 금방이라도 시커먼 물이 뚝뚝 떨어질 것처럼 어두웠다.“죽고 싶어?”유한이 앞으로 나서려는 걸 리은이 팔을 들어 막았다.리은의 시선은 여전히 성빈에게 머물러 있었다. 가슴이 저릿할 만큼 아팠다.리은에게 성빈은 가족이었다.진짜 오빠처럼 여기던 사람이었다.그런데 성빈은 그런 리은과 루이를 이렇게까지 짓밟았다.리은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오빠가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동생으로 생각하지 않았
최면사의 최면이 끝난 뒤, 루이는 이번 일을 완전히 잊었다.누가 일부러 꺼내거나 강하게 자극하지 않는 이상, 다시 떠올릴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리은 자신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루이는 네가 먼저 데리고 들어가.”유한이 물었다.“어디 가려고?”리은은 대답하지 않았다.그저 말 없이 돌아섰다.성빈이 왜 그때 일부러 그런 말을 했는지, 왜 유한이 자기 뱃속 아이가 자기 아이가 아니라고 믿게 만들었는지, 리은은 직접 확인해야 했다.그 한마디 때문에 루이는 5년 동안 아빠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리은은 그 이유를 반드시 알아야 했다.이번 일은 너무 갑작스럽게 벌어졌지만, 바깥으로는 아무 소문도 새지 않았다.사정을 아는 사람들 역시 입을 다물고 있었기에, 이 일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 지나갔다.리은은 요양병원으로 향했다.직원의 안내를 받아 성빈의 병실 앞까지 갔다.병실 안에는 간단한 재활 기구들이 놓여 있었고, 성빈은 그 안에서 재활 훈련을 하고 있었다.문이 열리는 소리에 성빈이 고개를 돌렸다. 리은을 보자, 성빈은 곧바로 웃었다.“리은아? 웬일이야?”리은은 입술을 가볍게 눌렀다.“오빠 보러 왔어.”“앉아. 나 데리러 온 거야? 집에 같이 가려고?”성빈의 표정에는 기대김이 드러났다. 입가에도 가벼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하지만 리은은 웃을 수 없었다.잠시 침묵한 뒤, 리은이 조용히 말했다.“허인영이 붙잡혔어.”그 한마디에 성빈의 얼굴에 걸려 있던 미소가 그대로 굳었다.리은은 그런 성빈을 똑바로 바라봤다. 목소리는 갈라질 듯 잠겨 있었다.“왜 그랬어?”성빈은 굳어 있던 미소를 천천히 지우면서 고개를 숙였다.“다 알게 됐구나?”“그러니까 왜 그랬냐고. 왜?”“왜냐고...”성빈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한 번도 보여 준 적이 없었던 차가운 표정으로 리은을 바라봤다.“당연히 너를 미워했으니까.”리은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나를... 미워했다고? 왜? 내가
“그 일 때문에 나는 지난 몇 년 내내 괴로웠어. 네 거짓된 마음도 나를 속이고 이용한 것도, 무엇보다 나를 배신했다고 믿었던 그 사실도 견딜 수가 없었어.”“그래서 지난 5년 동안 일부러 너를 힘들게 했어. 계속 상처 주고 모욕하면서, 괴롭게 만들었어.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복수라고 생각했으니까.”리은은 입술을 떼려 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믿고 싶지 않았다.그런데도 한편으로는 알고 있었다.유한이 지금 하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오빠가... 왜 그런 짓을 했을까...”리은은 멍하니 중얼거렸다.‘내가 오빠에게 잘못한 게 있었던가.’리은은 성빈에게 가족으로서 줄 수 있는 정과 미안함을 전부 줬다. ‘그런데도 왜 유한이 루이를 오빠의 아이로 오해하게 만들었을까? 왜 그랬을까?’그때 병실 문이 열리고 수혁이 들어왔다.“제수씨, 깼네요?”몇 걸음 다가오던 수혁은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챘다.수혁은 시선을 유한 쪽으로 돌렸다.“유한아, 제수씨도 깼으니까 너 나랑 먼저 가서 팔 사진 좀 찍자. 내가 보기엔 금이 간 것 같아.”‘금이 간 것 같다고?’리은의 시선이 유한의 한쪽 팔로 향했다. 계속 축 늘어져 있던 팔이었다.‘3층에서 떨어지는 루이를 받아내다가 다친 거야?’리은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한 번에 너무 많은 사실이 들이닥쳐서 제대로 받아들일 틈도 없었다.“가봐.”리은이 조용히 말했다.“나 좀 혼자 있고 싶어.”유한은 잠시 리은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했다.“알겠어.”검사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유한의 팔에는 가벼운 골절이 있었다. 수술까지 필요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깁스를 하고 쉬어야 했다.리은은 내내 루이 곁을 지켰다. 그런데 루이가 눈을 뜨고 나자마자 다시 울고 보채기 시작했다.결국 리은은 유한이 내놓은 최면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리은 자신도 그 효과를 경험한 사람이었다. 이번 일을 루이의 기억에서 지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결국 그것뿐
“그래서, 너랑 진성빈은...”리은은 이번엔 정말 웃었다.그런데 그 웃음은 너무 쓰고 허망했다.유한이 자기를 떠난 이유가... 고작 그런 오해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어떻게 생각하는데? 내가 오빠랑 어떤 사이라고 생각했어?”유한은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리은을 바라봤다.“그러니까 너는 진성빈한테 남자로서 감정이 없었다는 거지?”리은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저 기가 막혔다.“그때 네가 나를 조금만 더 믿었어도, 단 한 번만이라도 직접 물어봤어도, 지금 같은 일은 없었을 거야.”리은은 다시 눈을 뜨고 유한을 정면으로 봤다.“너는 내가 오빠랑 부적절한 관계라고 생각했지. 내가 사랑한 사람이 네가 아니라 오빠라고. 심지어 내가 가진 아이도 네 아이가 아니라 오빠 아이라고 생각했던 거고. 맞아?”리은 얼굴에는 실망과 허무함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유한의 울대가 한번 움직였다. 본능적으로 리은을 안아 주고 싶었지만, 리은이 먼저 매섭게 잘라냈다.“오지 마.”리은은 한 글자 한 글자 힘줘 물었다.“너는 루이가 네 딸이 아니라, 내가 오빠랑 낳은 아이라고 생각한 거야. 그렇지?”유한은 눈빛만 더 어두워졌을 뿐, 대답하지 못했다.리은은 그 침묵을 확인하듯 헛웃음을 흘렸다.“하... 그래서 그랬구나. 왜 그렇게 루이를 싫어했는지, 왜 내가 오빠랑 같이 있기만 하면 네가 미친 사람처럼 굴었는지. 이제야 알겠네. 이제야 다 맞아떨어져.”리은은 고개를 저었다.“그런데 주유한, 너 진짜 웃긴 거 알아.”리은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담담해서 더 아프게 들렸다.“네 말대로 나는 오빠를 많이 신경 써. 맞아. 그건 사실이야. 너도 알다시피 나는 어릴 때 내 양부모님에게 입양된 아이였고, 정말 어릴 때부터 그 집에서 자랐어.”“그리고 나는 양부모님이 한 번도 친아들을 찾는 걸 포기한 적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어. 오빠를 찾으려고 정말 많은 돈과 시간도 썼고.”리은은 숨을 한번 고른 뒤 말을 이었다.“그런데 결국 내 양부모님이
리은은 멍하니 서 있다가 반사적으로 허리를 곧게 폈다.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가득 찼다.‘뭐야...? 설마 이 정도로?’‘내가 뭘 그렇게 잘못 말했단 말이야?’예전에 리은도 인영에게 훨씬 더 날 선 말들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숨이 막히고 속이 불편하긴 했어도 이렇게 쓰러진 적은 없었다.유한의 표정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의자에서 일어난 유한이 인영에게 다가가서 부축했다.뺨을 가볍게 두드려도 반응이 없자, 유한은 고개를 돌려 리은을 바라봤다.남자의 시선을 마주하자, 리은은 순간적으로 가슴이 조여 들었다. 하지
안내데스크 직원은 지시를 이미 전달받은 상태였다.리은이 수령 구역에 나타나는 순간, 반드시 비서실로 연락을 넣고 가능한 한 시간을 끌 것.엘리베이터에서 리은이 내리는 걸 확인하자마자, 안내데스크 직원은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안내데스크입니다. 사모님께서 방금 내려오셨어요.]“네, 알겠습니다.”전화를 끊자마자 안내데스크 직원은 자리에서 나와 리은 쪽으로 다가갔다.“사모님, 무슨 일로 내려오셨어요?”“도와드릴 일이 있습니까?”갑자기 ‘사모님’이라는 호칭을 들은 리은은 순간 놀라 고개를 돌렸다가, 익숙한 얼굴을 보고서야 긴
약을 쓰는 방법이 막혔다고 해서 인영에게 선택지가 없는 건 아니었다.방법은 얼마든지 더 생각해 낼 수 있었다.어쨌든 목적은 반드시 이뤄야 했다.‘더이상 미루면 안 돼.’이상하리만큼 강한 예감이 인영을 재촉했다.처음부터 이렇게 될 걸 알았더라면, 진작에 움직여야 했다.지금처럼 한 발 한 발 몰리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그날 저녁, 퇴근 시간 무렵 리은의 핸드폰이 울렸다.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리은은 그대로 통화를 끊었다.하지만 거의 동시에 다시 진동이 울렸다.이번에는 선호의 이름이었다
리은도 그때는 잠깐 멍해졌다.손이 그렇게 빨리 나갈 줄도 몰랐고, 하필이면 정확히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차에 붙은 엠블럼을 보는 순간, 리은은 가슴이 철렁했다.‘어... 이거...’하지만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먼저 물을 튄 건 저쪽이야.’‘그리고 던진 것도 커피지, 돌이나 벽돌이 아니잖아. 닦으면 끝나는 건데.’그렇게 생각하자 괜히 기죽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허리를 곧게 편 리은은 자세를 바로잡고 괜히 더 당당하게 보이려고 했다.예상대로 운전석 문이 열리더니, 남자가 내려왔다.뒤쪽 창문을 한 번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