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얘기에 미쳐 버린 내 남편의 모든 챕터: 챕터 1 - 챕터 10

30 챕터

제1화

“엄마, 아빠 기다렸다가 같이 촛불 부는 거 아니었어요?”딸아이의 말에 진리은은 응답 없는 수십 통의 통화 기록을 바라보며 눈을 내리깔았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전화를 걸려다가 결국 포기하고 핸드폰을 옆에 내려놓았다.“아빠는 바빠. 루이가 엄마랑 같이 촛불 불까?”어린 나이에 일찍 철이 든 루이는 엄마의 볼을 매만졌다.“그래요. 제가 언제나 엄마 곁에 있을게요!”두 모녀가 케이크를 자르고 있을 때 핸드폰 화면이 반짝 빛났다.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주유한이었다. 통화 버튼을 눌렀더니, 건너편에서 명령조가 다분한 말 한마디가 들려왔다.[나 데리러 와.]문자에 적힌 주소대로 유한이 있다는 클럽의 프라이빗 룸에 도착한 건 그로부터 얼마 뒤였다. 문고리에 손을 얹고 문을 열려는 순간, 안에서 왁자지껄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유한아, 너 인영이랑 또 미국 간다며?”소파에 앉아 있는 주유한은 검은색 셔츠 단추를 몇 개 풀어 헤친 채 나른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풀어 헤친 옷깃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살짝 드러난 쇄골은 섹시했고, 어두운 조명은 그의 이목구비를 더욱 뚜렷해 보이게 했다. 남자의 얼굴은 그야말로 매혹적이었다. 분명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지만, 자기도 모르게 자꾸만 가까이하고 싶은 느낌이 들게 했다.“응.”“이번에 얼마 있다가 돌아올 건데? 보름? 한 달?”“글쎄.”문밖에 있던 리은은 눈을 내리깔았다. 유한이 인영과 함께 매해 출국한다는 건 그녀도 아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매번 출국할 때면 두 사람은 오랫동안 함께했다.둘만의 시간을 즐기러 간다는 사실도 리은은 알고 있었다.“그러고 보니 너랑 진리은도 벌써 몇 년째 같이 살았는데, 대체 언제 이혼할 거야? 허씨 가문에서 계속 네 답변 기다리고 있을 텐데. 어찌 됐든 그때...”“크흠!”그때 누군가 갑자기 헛기침을 하자, 말하던 사람은 얼른 입을 다물고 유한의 눈치를 살폈다. 유한의 상처를 건드렸을까 봐 걱정하는 모양새였다.어쨌든 애초에 리은만 아니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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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유한은 눈에 띄게 움찔하더니 무거운 눈빛으로 리은을 응시했다.“뭐라고? 잘 못 들었어. 다시 한번 말해 봐.”유한의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주먹을 살짝 쥔 리은이 용기를 내서 다시 한번 말했다.“우리 이혼해.”유한의 눈가에 조롱의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잠 덜 깼어?”상대의 눈에 드리운 비아냥이 리은의 가슴을 후벼 팠다. 유한이 자기를 믿지 않을 거라는 건 이미 짐작했다. 때문에 어제저녁 이미 이혼합의서를 프린트했다.“이건 내가 작성한 이혼합의서야. 난 이미 사인했으니까, 보고 문제없으면 당신도 사인해.”리은이 이혼합의서를 건네는 순간 유한의 얼굴이 차가워졌다. 그는 ‘이혼합의서’라는 다섯 글자를 보더니, 차갑게 입술을 비틀면서 말했다.“어제 생일인데 같이 있어주지 않았다고 시위해?”유한의 싸늘한 질문에 리은은 눈꺼풀을 내리깔았다. 상대가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리은은 어쩔 수 없이 이혼합의서를 티테이블에 내려 놓고 이미 짐을 싸 놓은 캐리어 쪽으로 걸어갔다.“난 아무것도 필요 없어. 루이 양육권만 넘겨줘.”말을 마친 리은은 캐리어를 잡아 끌며 유한을 보더니 싱긋 미소 지었다.“미안해, 주유한.”유한이 음험한 눈으로 리은을 응시했다. 그 눈빛은 마치 서리가 내린 겨울 아침 같았다.“내가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지? 나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지내기까지 하고. 하지만 앞으로 이런 일은 없을 거야. 사랑하는 사람 마음껏 만나.”말을 마친 뒤 유한을 빤히 응시하던 리은은 캐리어를 끌고 남자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루이의 짐은 정리할 새도 없었다.하지만 리은이 유한의 옆을 지나칠 때, 유한이 그녀의 손목을 거칠게 잡았다.그 힘이 너무 세서 저도 모르게 캐리어를 쥔 손이 풀렸다. 리은은 미간을 짜푸린 채 손목을 잡고 있는 유한을 응시했다.리은의 망연한 눈빛에 유한의 눈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갑자기 차갑게 웃으며 그녀를 품으로 끌어당겼다.“정말 아무것도 필요 없어?”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다고 생각한 리은이 급히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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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다음 날, 리은은 딸을 유치원에 데려다 준 뒤 곧바로 택시를 타고 가정법원으로 향했다.유한과 결혼한 뒤로 일한 적은 없지만, 평소에 자신의 돈을 쓸 일은 거의 없었다.때문에 결혼 전에 따로 모아둔 돈으로 딸과 한동안 버티는 건 문제가 없었다.게다가 얼른 일자리를 찾아서 자기와 딸이 생활할 생각이었다.8시가 조금 넘어 가정법원에 도착한 리은은, 정문 한쪽에 서서 안으로 드나드는 사람들을 지켜봤다.덤덤하게 결혼생활의 마감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들어가는 와중에 싸우는 사람들도 있었다.그 사람들을 보자, 리은의 머릿속에 문득 유한과 혼인신고를 하던 날이 떠올랐다.기대에 찬 눈으로 혼인관계증명서를 보면서 유한에게 막 말을 걸려던 찰나, 남자의 차가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을 보는 남자의 날카로운 눈에는 혐오감이 가득했다.“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이 자리를 꿰찼으니 소원 이뤘네. 주씨 가문 안주인 자리 잘 지켜.”‘주씨 가문 안주인’이라는 단어에는 악감정이 담겨 있었다.리은은 그날 남자가 자신을 바라보던 악의에 찬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다.그리고 그날 알았다. 남자의 눈에 자신은 그저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악독하고 이기적인 여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하지만 지난 몇 년간 자꾸만 왜 이렇게까지 됐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그들도 분명 사랑했던 적이 있었는데.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유한도 한때는 리은을 대할 때 허인영을 대하는 것처럼 다정했었다.남자는 리은의 눈가에 입을 맞췄고, 뺨과 귓가에 키스했고, 입술을 탐하면서 사랑을 속삭였었다.그랬던 남자가 왜 갑자기 이렇게 변한 건지 리은은 도무지 알 수 없었다.왜 갑자기 헤어지자고 하면서, 왜 갑자기 허씨 가문과 정략결혼을 하기로 하고 심지어 그에 대한 설명도 없었는지.이전에 답을 얻지 못했을 때는 리은은 모두 자기 탓이라고만 생각했다.다만 너무 큰 신분 차이 때문에, 리은은 헤어지고 나서도 유한에게 집착할 생각은 없었다.그날 밤은 넘 혼란스러워 지금까지도 그날 아침 깨어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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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유한의 갑작스러운 출장 때문에 이혼은 잠시 보류되었지만 리은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그 사이에 리은은 작은 아파트를 임대해서 입주했고, 많은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다.리은의 학력은 꽤 경쟁력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유한과 같은 학교였으니까.주유한과 만난 것도 대학 때였다.하지만 졸업하자마자 결혼하는 바람에 아무런 커리어도 쌓지 못해서 뽑아주는 회사가 있을지 문제였다.그런데 놀랍게도 한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LC 테크놀로지, 최근 몇 년 동안 반짝 나타나 무서운 추세로 발전하고 있는 테크놀로지 회사였다.“하 대표님, 안녕하세요. 진리은이라고 해요...”“알아요. 제 기억이 맞다면 주유한 대표 아내분이시죠?”리은은 흠칫 놀라 멍하니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을 바라봤다. 단정하게 생긴 남자는 고작 해봐야 30살 정도로 보였고, 금테 안경을 낀 채 웃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하지만 리은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몰라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의자에서 일어난 허광윤이 소파를 가리켰다.“괜찮아요. 앉으세요.”“고마워요.”“사모님이 밖에 나와 일하는 거, 주 대표님은 알아요?”리은은 광윤이 건네는 물컵을 받으며 말했다.“이혼 준비 중이라 얼마 뒤면 더 이상 주씨 가문 안주인이 아니에요. 그러니 이름으로 부르시면 돼요.”광윤은 예쁘장한 여자의 얼굴을 한참 동안 응시하다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미안합니다.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거든요.”리은은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아직 밝힌 적이 없어 모르시는 게 당연해요.”보아하니 유한은 이혼증명서를 발급받은 후 정식으로 발표할 모양이다.“외람되지만, 주 대표님과 이혼해도 돈이 부족하지 않을 텐데, 어떻게 우리 같은 작은 회사에 입사 신청서를 넣게 되었나요?”리은의 신분 때문에, 제대로 상황 설명을 하지 않으면 아마 그녀를 받아줄 회사는 없을 것이다.“우선 저는 LC테크놀로지를 작은 회사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최근 2년간 AI분야의 전망이 좋잖아요. 그리고 저는 맨몸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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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리은을 슬쩍 훑어본 광윤은, 바짝 긴장한 그녀를 보고 말없이 시선을 거두었다.“방금 계약서를 룸에 두고 온 것 같은데. 가서 가져다 줄래요? 저는 주 대표님 일행하고 먼저 내려가 있을게요.”리은은 멍하니 고개를 쳐들었지만 이번에는 얼른 반응했다.비록 그 계약서는 바로 자신의 손에 든 서류 가방 안에 있지만.“네, 대표님.”대답을 마친 리은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두 사람이 나왔던 룸으로 돌아갔다. 그 때문에 유한이 음험한 눈빛으로 도망치는 자신을 응시하는 걸 보지 못했다.구연준 역시 똑같이 느꼈는지 직설적으로 물었다.“아니, 무슨 상황이야? 왜 너를 피하는 것 같지?”“닥쳐.”연준은 머쓱한 듯 코를 문질렀고, 그사이 광윤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세 사람 중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광윤도 사실 유한이 했던 말이 자기한테 한 말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주강그룹 같은 대기업의 대표가 중소기업 대표인 그에게 물어볼 게 뭐가 있겠는가?하지만 궁금증이 많은 사람은 어디에나 존재했다.“허 대표님, 진리은 씨 신분은 알고 있죠?”광윤은 연준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네.”연준은 눈썹을 추켜올렸다. “알면서도 받아줬어요?”광윤은 잠시 멈칫했다. 마치 뭔가를 고민하는 듯했다. 연준은 광윤이 당연히 자기 말뜻을 알아들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곧이어 의외의 답이 날아왔다.“혹시 무슨 잘못이라도 있나요?”“...”구연준은 할 말을 잃었다.광윤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무표정한 주유한을 한번 훑어보고 말했다.“구 대표님, 저도 리은 씨한테 왜 우리 같은 작은 회사에 지원했냐고 물어봤어요. 하지만 혼자 아이를 키우며 생활하려면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그것뿐이에요.”그 말에 놀란 연준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유한의 어두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대체 어떻게 된 거야?”때마침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자, 광윤은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엘리베이터를 나섰다.곧이어 엘리베이터가 닫히더니 계속해서 지하 1층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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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리은은 전화 너머로 드려오는 남자의 차가운 목소리에 폰을 꽉 움켜쥐었다.“장 비서님, 그 사람 좀 바꿔줄 수 있어요? 할 얘기가 있어서요.”선호는 난감한 듯 망설였다. 다음 순간 남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귀가 먹었어? 내 말 못 들었어?”선호는 결국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는 걸 선택했다.유한은 어두운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며 엄하게 쏘아붙였다.“앞으로 진리은 전화 받지 마!”선호는 백미러에 비친 어두운 얼굴의 남자를 보며 대뜸 물었다.“만약 사모님이 대표님을 찾는 거면요?”유한은 차갑게 선호를 쏘아봤다. 그 눈빛에 선호는 얼른 시선을 피하며 잘못을 인정했다.“죄송합니다. 제가 말이 길었습니다.”그때 놀랍게도 유한의 대답이 들렸다.“내가 언제 걔 전화 받은 적이 있다고?”선호는 그제야 깨달았다. 사모님이 아무리 이혼하고 싶다고 해도 아마 한동안은 대표님과 연락이 닿지 않으리라는 것을.리은은 갑자기 끊어진 핸드폰 화면을 보며 눈빛이 어두워졌다.유한한테 리은은 중요하지 않는 사람이다.그렇다면 이혼을 계속 미룰 수는 없었다....“대표님, 이 서류에 서명해 주실 수 있나요?”“네. 확인할게요.”서류를 받아서 쭉 훑어본 광윤은 문제가 없는 걸 확인하고 사인했다.다시 서류를 받아 든 리은은 입을 열었다.“대표님, 스케줄을 한번 확인해 봤는데, 오후에는 외근하지 않고 회사에 계신 건가요?”광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네. 별일 없으면 오후에는 회사에 있을 건데, 왜요?”리은은 조금 미안했다. 이제 막 입사했으면서 또 휴가를 신청해야 하는 상황이라 말을 꺼내기가 민망했다.광윤도 그걸 눈치챘는지 웃으며 물었다.“괜찮아요. 어려운 게 있으면 뭐든 얘기해요.”리은은 고개를 저었다.“어려운 건 아니고, 제가 오후에 잠깐 나갔다 와도 될까요?”“반차를 신청하겠단 말인가요?”리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래요. 나가 봐요.”리은은 어리둥절했다. 허광윤이 좋은 사장이라는 건 진작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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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강덕순은 회사에 들어오자마자, 휴게실에 앉아 있는 리은을 발견했다.“리은아?”리은은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소리가 난 방향에 있는 사람을 본 순간 리은은 멍해졌다. 할머니가 회사에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리은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할머니에게 다가갔다.“할머니,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강덕순은 리은의 손을 잡고 자애로운 표정으로 바라봤다.“오늘 병원에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다가 한번 들러봤어. 왔으면서 왜 안 올라가고 여기 있어?”리은의 눈이 반짝 빛났다. 사실 강덕순은 리은과 유한의 상황을 잘 모른다.해성시의 모든 사람이 리은과 유한의 결혼이 유명무실하다는 걸 알아도, 강덕순 앞에 가서 입을 털어댈 사람은 없다.게다가 지난 몇 년 동안, 리은은 강덕순 앞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었다.유한도 비록 리은을 싫어했지만, 할머니 앞에서만큼은 사랑하는 부부인 척 연기했다.“저도 방금 왔다가 바쁜 것 같아서 올라가지 않았어요.”그때 선호가 엘리베이터에서 다가왔다.“어르신, 사모님, 오셨어요?”리은은 선호와 눈을 마주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리은의 손을 잡은 강덕순이 웃으면서 물었다.“장 비서, 유한이는 바쁜가?”선호는 몸을 살짝 옆으로 돌려 들어가자는 손짓을 했다.“지금은 안 바쁘세요. 안으로 가시죠.”참 어이없었지만 리은은 마지못해 할머니를 부축한 채 엘리베이터에 올랐다.“할머니, 오늘 건강검진 결과가 어떻대요? 저한테 전화라도 하지 그러셨어요. 그러면 제가 같이 갔을 텐데.”강덕순은 웃으며 리은의 손등을 토닥였다.“걱정하지 마. 나 아직 쌩쌩하니까. 게다가 집에나 돌봐 주는 사람도 많아.”강덕순이 한번 외출할 때면 따라붙는 사람은 확실히 많다. 경호원 두 명에 기사 한 명, 그리고 집사에 도우미 아주머니까지.“요즘 유한이랑 어때? 한 달 동안 나 보러 안 왔는데, 혹시 바빠?”리은은 눈을 반짝이며 가볍게 대답했다.“루이가 요즘 2학년 반이 돼서 조금 정신이 없었어요. 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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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리은은 순간 멍해졌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밀당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내가 진심으로 자유를 주는 게 아니고, 진심으로 이혼하려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가?’“나한테 그런 수작이 통할 것 같아?”입술을 살짝 오므린 리은은 고개를 살짝 돌리면서 뒤로 한 발 물러났다. 그리고 약 3초 뒤, 고개를 돌려 남자의 차가운 시선을 다시 마주했다.이번에 리은의 표정은 유난히 진지하고 단호했다. 심지어 결의에 찬 눈빛으로 또박또박 말했다.“하늘에 맹세할 수 있어. 만약 이혼하려는 게 진심이 아니면...”여기까지 말한 리은은 잠깐 멈췄다가 진심을 보여주기 위해 말을 바꿨다.“나하고 오빠는 고통스럽게 죽게 될 거야!”리은한테 가장 친한 가족은 진성빈과 루이뿐이다.하지만 루이는 유한의 딸이기도 하기에, 자신과 오빠로 맹세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자기 진심과 결의를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 입 다물어! 한 번만 더 지껄여 봐.”그런데 마지막 한마디를 내뱉자, 유한의 표정은 전례 없이 어두워졌다. 심지어 리은이 임신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보다 더.리은은 유한이 왜 갑자기 화를 내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다만 오늘 찾아온 목적은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리은은 이미 이혼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녀는 유한에게 잘못한 짓을 한 적이 없다고 자신했다.유한에게도 이 가정에도, 이 결혼에도 잘못한 게 없었다. 전에 계속 양보했던 건, 유한을 붙잡고 이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제 모든 걸 내려놓기로 했으니, 더 이상 비굴하게 저자세로 나올 필요가 없었다.“주유한, 오늘 싸우려고 찾아온 게 아니야. 그냥 가능한 시간만 알려줘. 언제든 협조할 거니까.”유한은 그늘진 얼굴로 리은의 손목을 꽉 잡았다. 그 힘은 당장이라도 리은의 뼈를 으스러뜨릴 것만 같았다.“왜? 이제 진성빈이 깨어났다고 눈에 뵈는 게 없어? 그래서 이렇게 이혼하려고 하는 거야?”리은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손목에서 찌릿찌릿 통증이 느껴졌다.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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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리은은 주먹을 꽉 쥔 채 유한을 보지도 않고 말했다. “되도록 빨리 시간 비워. 이혼 절차 마무리 짓게.”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무실 문이 열렸다. “유한아, 내가 디저트 좀 사 왔어...”고개를 돌린 리은은 마침 인영과 시선이 맞닿았다. 인영은 깜짝 놀라더니 리은에 대한 증오를 그대로 드러냈다. 리은은 그런 눈빛에 진작부터 적응해 있었다. 어쨌든 자신이 인영과 유한을 갈라놓은 장본인이니까. 그게 고의든 실수든 불변의 사실이었다. “난 이만 가볼게.”말을 마치고 사무실을 나가려던 리은은, 인영을 지나칠 때 잠시 멈칫했다. “좀 비켜 줄래요?”인영은 리은에 대한 적의와 증오를 숨기지도 않았다. 그 점에 대해서 유한은 아무 말도 한 적이 없었다. 마치 마음대로 하라고 방임하는 것처럼, 인영이 리은에 대한 불만과 증오를 마음대로 풀라는 듯이. “진리은 씨가 여긴 왜 왔죠?”리은이 입술을 꽉 깨물고 말했다. “이번이 제거 회사로 오는 마지막일 거예요.”인영은 어리둥절했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리은이 유한과 이혼 준비 중이란 사실을 말하려고 할 때, 등 뒤에서 분노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장 나가!”리은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인영의 우쭐거리는 눈빛을 봐도 이제는 슬프지도 않았다. 리은은 더 이상 그곳에 머무르지 않고, 인영을 지나쳐서 사무실을 나갔다. 인영은 유한의 차가운 표정에 궁금한 듯 물었다. “유한아, 진리은 말이 무슨 뜻이야?”유한은 입술을 굳게 닫은 채,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덤덤하게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여긴 어쩐 일이야?”인영의 눈빛이 순간 번뜩였다. 여자의 직감으로,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급하게 알려고 들지 않으면서, 손에 든 디저트를 들어 올렸다. “지나가는 길에 들렀어. 마침 디저트도 갖다 줄 겸. 한번 먹어 봐.”유한은 아무 답도 하지 않고 창가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유한이 뭘 보는지 궁금해진 인영이 옆으로 다가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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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리은은 회사로 돌아오자마자 광윤에게 감사 인사를 하러 갔다.“일은 잘 해결했어요?”리은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정법원에 가서 이혼 절차를 밟는 게 시간이 많이 허비되는 것도 아닌데. 좋아하지도 않는 나하고 억지로 결혼했으면서, 자유를 주겠다면 오히려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닌가?’리은은 수많은 가능성을 떠올렸다. 하지만 유한이 자기와 이혼하는 걸 싫어한다는 가능성만은 없었다.진작부터 그런 가능성은 생각도 하지 않았으니까.리은의 어두운 표정에 광윤은 잠시 멈칫했다.“도움이 필요하면 말해요.”운전기사 유찬민의 말을 떠올린 리은은 얼른 한마디를 보탰다.“정말 필요하면 말씀드릴게요.”광윤은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마음에 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리은처럼 이렇게 대범한 사람을 늘 마음에 들어 했다.“그래요. 오늘 저녁 식사 모임이 있는데, 이따가 같이 가요.”리은은 오늘 저녁 본가로 가겠다고 할머니와 약속한 걸 떠올렸다. 하지만 업무에 지장을 주고 싶지 않았다.“왜 그래요? 혹시 무슨 일 있어요?”리은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아무 일도 아니에요.”사무실에서 나온 리은은 곧바로 본가로 전화했다.한편, 유한은 마지막 서류에 사인한 뒤 시간을 확인했다.벌써 5시가 다 되었는데, 핸드폰을 확인했더니 문자 한 통도 없었다.“대표님, 지금 본가로 가실 겁니까?”유한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외투를 집어 들며 담담하게 말했다.“약속했는데 안 가면 할머니가 또 화내실 거야.”고개를 끄덕이며 뒤따르던 선호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대표님, 먼저 사모님 모시러 갈까요?”유한은 차가운 눈으로 선호를 훑어보았다.“왜? 진리은한테서 뭐 돈이라도 받았어?”선호는 입꼬리를 떨면서 머쓱하게 웃었다.“어르신이 사모님더러 회사에 있다가 대표님과 같이 오라고 하셨잖아요. 만약 따로 가면 아마...”그제야 걸음을 멈춘 유한이 선호를 곁눈질로 보면서 말했다.“그럼 뭘 더 기다려?”“네, 대표님. 바로 사모님께 연락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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