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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Author: 강노을
“맞... 맞아요. 사모님한테서 연락은 안 왔고, 제가 전화 드려도... 계속 안 받으세요. 그게... 아마... 저를 차단하신 것 같기도...”

탁!

제헌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일어났다.

그리고 표정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이순심은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내가 착각했네. 사모님과 좀 떨어져 지내면 대표님도 잠잠해질 줄 알았는데...’

제헌은 평소에 화를 내는 사람은 아니었다. 웬만해선 목소리조차 높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불쾌해하는 태도만으로도 주위를 얼어붙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이순심은 그제야 깨달았다.

‘사모님... 대표님한테 이렇게 튕길 게 아니었어...’

‘대표님은 강하게 나오는 사람한테 절대 약하지 않거든.’

‘그걸 모를 리 없을 텐데...’

이순심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사모님, 정말 눈치도 없다니까.’

...

제헌은 사무실에 도착해 평소처럼 정례회의를 마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성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대표님, 택배입니다.”

그가 내민 작은 선물 봉투.

제헌은 말없이 그것을 받아 들었다.

상자를 열자, 안에는 심플한 디자인의 실반지 하나.

‘지후 말이 맞았네. 결혼반지를 팔아놓고... 또 다른 주얼리 샵을 들렀다더니.’

‘이틀 동안 연락 한 통 없더니, 결국 이런 식으로 나타나는 거야?’

‘이따가 도시락 들고 회사까지 찾아오겠지.’

‘기성이 말로는 매번 점심 무렵에 맞춰 오는 패턴이니까.’

제헌의 이마가 좁아지며 주름이 생겼다.

그는 반지 케이스를 닫고, 무심하게 책상 한쪽으로 밀어놨다.

몇 초 뒤, 내선 전화 수화기를 들었다.

“오늘 와이프 들어오게 하지 마. 출입 절대 금지시켜.”

목소리는 차갑고 명확했다.

기성이 당황해 아무 말 못 하고 끊자, 제헌은 반지 케이스를 그대로 휴지통에 던져버렸다.

‘이런 식의 계산된 접근, 딱 질색인데...’

월요일 아침.

이람은 SY그룹의 사무실, 자신의 자리 앞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결혼 초반 몇 달간, 이람은 직장을 다니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 강 회장은 집안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식사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고, 그 자리를 채운 채영희 여사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이람을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집에서 빈둥거리면서 남편 뒷바라지도 못하고, 애는커녕 몸조리 하나 제대로 못 하면서 입은 잘 나불대. 창피해서 내 친구들 앞에서 며느리 얘긴 꺼내지도 못해요.”

그 자리에 제헌도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니, 일부러 외면했다.

그날 밤, 이람은 바로 노트북을 열고 이력서를 썼다.

지원한 곳은 KU그룹이 아닌, 완전히 다른 계열사인 SY그룹이었다.

‘같은 건물 안에서 숨 쉬는 것도 싫었거든.’

...

SY그룹은 설립된 지 고작 5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시가총액은 이미 수천조 원을 넘어선 국내 대표 테크기업 중 하나였다.

이 정도 규모의 기업이라면, 비서직 하나도 전국 상위권 명문대 출신이 기본 조건이었다.

이람은 시우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출신.

학벌도 전공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당연히 개발팀이나 R&D 부서로도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기술 직군은 대부분 ‘9 to 9, 주 6일’이라는 살인적인 일정이 기본.

대형 프로젝트에 투입되면 밤샘도 수시로 반복된다.

그렇게 일하면, 제헌을 챙길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그녀는 비교적 여유가 있는 총무실 산하, 대표이사 비서실을 선택했다.

즉, 행정 업무 중심의 포지션이었다.

이람이 SY그룹에 들어간 걸 안 강수철 회장은 이람에게 KU그룹으로 오라고 권했다.

“내 회사니까 출퇴근도 융통성 있게 해줄 수 있고, 네가 너무 힘들지 않게 조정해줄게.”

하지만 이람은 단번에 거절했다.

‘시어머니가 날 얼마나 싫어하는데...’

‘KU 들어가면 그분이 날 더 가차 없이 몰아붙일 거야.’

채영희 여사는 틈만 나면 이람이 강씨 가문의 재산을 탐내는 것처럼 몰아갔다.

이람은 KU그룹에 가면 그런 소리를 공식적으로 듣게 될 것이 뻔해서 차라리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지금 회사가 더 편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SY는 국내에서 가장 앞선 기술과 데이터를 쥔 회사다.

다시 논문을 쓰기로 마음먹은 이상, 여기만큼 좋은 환경은 없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이람은 임신 소식 때문에 사직서를 써놓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메일을 보낼 생각이 없다. 행정 업무는 충분히 여유가 있었고, 그 시간에 자신은 업계 자료도 충분히 살펴볼 수 있다.

게다가 자료 접근 권한도 넉넉했고, 사람들과 부딪힐 일도 거의 없었다.

“이람 씨, 오늘은 도시락 안 가져왔어요?”

옆자리 직원이 툭 던지듯 물었다.

이람은 살짝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가끔 아주 정성스럽게 도시락을 싸왔다.

하지만 점심 시간이 되면, 늘 그 도시락을 들고 회사 밖으로 나갔다.

도시락... 사실 남편 주려고 싸온 거였다.

제헌은 술자리가 잦았고, 이람은 그 다음 날 아침이면 속을 편하게 해줄 음식 위주로 직접 도시락을 쌌다.

그가 아침에 회사로 가져가면 편할 일이었지만, 제헌은 ‘들고 다니는 게 귀찮다’며 거절했다.

그래서 이람이 직접 들고 와 점심시간에 맞춰 택시를 타고 KU 본사 근처까지 배달하듯 건넸다.

거리도 그리 멀지 않았고, 시간도 맞출 수 있어서 그 정도 수고는 감당할 수 있었다.

“오늘은 그냥... 도시락 안 싸고 싶었어요.”

‘아니, 이제 싸줄 필요도 없지.’

그 순간, 비서실 실장 남진이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일에 집중하던 이람과 다른 직원들이 모두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다들 주목해주세요. 우리 대표님 귀국이 다음 주 월요일입니다.”

순간 사무실이 술렁였다.

“각 부서 자료들 정리 다시 들어갑니다. 대표님이 열람하시는 문서에 누락이나 오류 하나도 없게 부탁드립니다.”

탁- 탁-

남진은 책상 가장자리를 두드리며 단호하게 말했다.

“시간 없습니다. 전원 집중하세요.”

SY그룹은 창업 이래 지금까지, 실무의 거의 대부분은 모두 부대표 부연훈이 도맡아 처리해왔다.

회사의 실질적인 권한과 자금, 비전은 오로지 ‘대표’에게 집중되어 있었지만, 정작 단 한 번도 공식 석상에 등장한 적이 없다.

얼굴도, 나이도, 성격도 전부 미상.

신화처럼 떠도는 존재였다.

다음 주면... 드디어 나타날 것이다.

그날 이후, 사무실은 온종일 분주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

KU그룹.

아무런 예고도 없이, 한 여성이 제헌의 사무실에 들어섰다.

대표이사를 만나려면 최소 며칠 전부터 비서실을 통해 사전에 약속을 잡는 게 관례인데, 오늘 그 여성의 이름은 어떤 명단에도 없었다.

더 놀라운 건, 기성이 직접 1층까지 내려가 그녀를 안내해서 올라왔고, 문까지 닫아주고 나왔다는 점이었다.

이례적인 대응에 비서실 직원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 여자 누구야? 완전 연예인 얼굴 아니야? 풍기는 아우라가 장난 아니던데.”

“강 대표님이 예고 없이 즉석에서 약속 잡는 거 거의 못 봤어. 그것도 단독 응대? 이건 진짜 흔한 일이 아닌데.”

“강 대표님이 원래 여자랑 단둘이 있는 것도 안 좋아하잖아. 입사하고 몇 년 됐는데, 여직원을 사무실오 부른 건 처음 봐.”

그 순간, 누군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설마... 진짜 그분? 미래 사모님이신가?”

그 말에 몇몇 직원이 숨을 삼켰다.

모두 알고 있었다. 강제헌 대표가 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알려진 바 없었다.

공식적인 발표가 없었기 때문에 대외적으론 ‘미혼’으로 보는 게 중론이었다.

하지만 제헌을 오랫동안 봐온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그는 항상 절제되어 있었고, 스캔들에 연루된 적도 없었다.

그런 사람이 어떤 여자에게 특별한 대우를 한다면, 그건 ‘가능성’ 그 이상이라는 뜻이었다.

...

사무실 안.

제헌은 그 여성이 들어오자마자 손에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놨다.

바로 하유리였다.

유리는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책상 앞으로 다가와 양손을 책상 위에 짚고 몸을 살짝 기울였다.

그리고 남자의 손가락을 스치듯 바라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반지, 못 받았어?”

제헌은 잠시 멈칫했다.

“네가 보낸 거야?”

그건 이람이 보낸 줄 알았다.

유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어제 저녁에 우리 같이 식사하기로 했잖아. 근데 한빈 교수님 쪽에서 급하게 연락이 와서... 결국 그 자리에 못 갔지. 미안해서 선물로 반지 보냈어.”

그녀는 자신의 왼손을 들어 보여줬다.

무광의 심플한 반지가 빛을 반사했다.

“이 브랜드, 남자 반지는 별로 예쁜 게 없더라고. 그나마 내가 낀 이거 커플링으로 나온 게 제일 괜찮아서 그걸로 했어. 나 그냥 장난으로 끼고 다닌 거니까, 부담 안 가져도 돼.”

그 말과 달리, 여자의 눈빛에는 기대가 숨어 있었다.

제헌은 그제야 무언가 떠오른 듯 자리에서 일어나 휴지통 옆을 뒤적였다.

조금 전 쓰레기로 던져버렸던 반지 케이스를 꺼냈다.

손에 쥔 케이스를 열어보며 표정이 전과는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유리는 순간 얼굴이 굳었다.

“버렸던 거야?”

제헌은 그녀를 조용히 바라봤다.

그 눈빛 속에 유리의 마음이 전부 읽혔다.

그는 반지를 꺼내 자연스럽게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웠다.

“네가 보낸 건 줄 몰랐어.”

말투는 변함없었지만, 그 말 한마디에 유리의 얼굴이 조금 환해졌다.

지후가 말했었다.

제헌은 절대 반지를 끼지 않는 사람이라고.

특히 결혼반지는 더더욱.

그 이유는 간단했다.

‘반지 따위 낀다고 해도 아무 의미 없으니까.’

제헌이 조용히 물었다.

“화났어?”

유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네가 싫어하는 건, 반지가 아니라 그 반지를 줬다고 생각한 그 사람이겠지.”

그녀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물었다.

“예뻐?”

“괜찮네.”

제헌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어제는 뭘 그렇게 바빴는데?”

유리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

“한빈 교수님 프로젝트가 한 기술에서 막혀서... 어젯밤엔 집에서 자료만 뒤적였어. 근데 잘 안 풀리더라. 다행히 내 친구가 다니고 있는 그 회사가 그 분야 기술을 다루거든. 시간 나면 연락해보려고.”

유리의 그 ‘친구’가 다니고 있는 회사의 대표이사는 바로 진민서였다.

유리와 민서는 시우대 동문.

유리가 선배, 민서는 후배였다.

둘이 같은 명문대를 나왔고, 업계에서도 이미 잘 알려진 사이였다.

그래서 유리는 민서 정도는 언제든 연락해서 쉽게 만날 수 있다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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