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송여준과 결혼한 지 어언 7년, 유하늘은 악성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유하늘은 남편과 아이를 위해 성공률이 50%밖에 되지 않는 수술을 받으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남편이 사랑하는 여자 권아람이 귀국한 뒤, 유하늘은 그동안 송여준이 권아람과 결혼한 사실을 숨기고 자신과 혼인신고 한 척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송여준은 권아람을 자신의 비서로 고용했고 송여준의 친구는 권아람을 형수님이라고 불렀으며 6살 된 아들마저 권아람이 자기 엄마가 되기를 바랐다. 유하늘은 그들에게 완전히 실망하여 그들과 인연을 끊고 잠적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유하늘이 남긴 진단서를 보게 된 송여준과 송우주는 땅을 치며 후회했다. 두 사람은 유하늘을 따라 해외로 가서 무릎 꿇고 참회하며 유하늘이 한 번이라도 자신들을 돌아봐 주길 바랐다. 그러나 유하늘은 그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녀는 매정한 전남편과 배은망덕한 아들 따위 필요 없었다.
View More“아, 죄송해요. 차가 갑자기 고장 나서 급히 옆집 차를 빌려 왔거든요. 조금 불편하시겠지만 양해 부탁드려요.”운전기사는 차에서 뛰어내리더니 혹시라도 거래가 취소될까 봐 노은결의 짐부터 받아들었다.유하늘은 노은결과 눈짓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냥 이 차로 이동하자는 신호였다.“한 시간 뒤면 배 타야 하니까 다시 부를 상황은 아닌 것 같아요.”노은결은 어쩔 수 없이 유하늘과 함께 차에 올랐다.차 문이 닫히는 순간 기사의 눈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하지만 곧 무표정으로 돌아왔고 시동을 걸어 현장을 벗어났다.가는 동안 유하늘은 조용히 거리의 풍경을 감상했다.어릴 적부터 해외에서 자라 송여준과 함께한 이후에야 이 낯선 도시에 돌아와 살게 되었다.마음 붙일 곳은 아무 데도 없었지만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아이를 볼 수 있다는 이유로 지난 7년간 이 도시를 수차례 오가며 지냈다.예전에는 너무 아늑하고 아름다운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냥 따분하고 지루하게 느껴졌다.마치 송씨 부자 때문에 이 도시에 환상을 갖게 된 것처럼.이제 마음이 떠났으니 환상도 산산조각이 났다.이곳은 그녀가 자란 고향의 10분의 1도 못 미쳤다.한창 생각에 잠긴 와중에 갑자기 누군가 소매를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다.정신을 차리고 돌아보니 노은결이 의심 가득한 표정으로 문자 한 통을 보냈다.유하늘은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여기 항구로 가는 길이 아닌 것 같은데요? 제가 기억하기로 항구는 남쪽 방향이거든요.]유하늘의 눈빛이 흔들리더니 곧바로 지도를 켜고 위치를 확인했다.운전기사는 남정구를 향해 달리고 있었고 항구로 가는 방향과 정반대였다.그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즉시 물었다.“기사님, 지금 어디로 가는 거예요? 저희 항구로 가서 배 타야 해요.”운전기사는 그녀의 말을 듣고도 백미러로 힐긋 쳐다만 봤다. 게다가 시선에는 비웃음과 서늘한 기운이 가득했다.유하늘은 점점 불안해지며 거듭 재촉했다.“내 말 안 들려요? 차 세워요! 여기서 내릴게요.”
“아니.”송우주는 깜짝 놀라 고개를 번쩍 들었다.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유하늘을 바라보았고 잘못 들은 줄 알았다.“엄마,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유하늘은 허리를 숙여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했다.“그러니까, 그림책 같이 보기 싫다고. 앞으로도 너랑 뭐 안 해. 농담 아니야.”송우주는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 나이대의 아이가 느끼기에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가 밀려왔다.이내 당황한 듯 옷자락만 베베 꼬았다.“엄마, 설마 진짜 저 버리는 거예요? 이제 집에 돌아왔잖아요. 제발 이러지 마세요.”“너한테 권아람 엄마가 있는데 굳이 왜 온 거야?”사실 지금 돌아와봤자 이미 늦어버렸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송우주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아람 이모는 엄마만 못해요. 그, 그 사람은 저랑 아빠를 속였어요. 심장병도 없고, 화가도 아니었어요.”말을 마치고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한때 심장병을 앓던 권아람을 걱정하느라 엄마를 소홀히 했던 일을 떠올리자 죄책감이 가슴을 짓눌렀다.유하늘은 그를 조용히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권아람에 대한 모든 일이 거짓이라는 거 몰랐으면 나한테 돌아오는 일도 없었겠지.”“안 그래?”송우주가 대답하기도 전에 유하늘이 못을 박았다.그리고 비웃음이 섞인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그를 스쳐 지나 자리를 떠났다.“엄마? 엄마!”게다가 송우주의 말은 듣지도 않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송우주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어쩔 줄 몰라 눈시울을 붉혔다.집사 최민형이 다가와 그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도련님, 이제 그만 정리하고 주무시죠. 너무 늦었어요.”“저 엄마한테 버림받은 거예요? 절대 용서 안 하신대요?”송우주는 고개를 들어 간절한 눈빛으로 최민형을 바라봤다.최민형이 부드럽게 웃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럴 리가요. 그래도 모자 사이잖아요. 도련님이 예전에 권아람 씨와 가까이 지낸 거 때문에 속상하셔서 그렇지, 곧 괜찮아질 거예요. 걱정 마세요.”유하늘은 위층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빠짐없이 들었
마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슨 일이 터질 듯한 예감이 들었다.이내 유하늘과 깍지를 끼며 실제로 눈앞에 존재하는 사람인지 확인하려 했다.“그래? 알았어. 아람이 얘기는 그만하자. 내일 친구랑 만나고 집에 와서 밥 먹으며 대화 좀 나눌까?”유하늘은 송여준을 빤히 쳐다보다가 잠시 후 미소를 살짝 지었다.“좋아.”송여준은 팔을 들어 손목시계를 확인했다.“그럼 난 여론부터 처리할게. 아람이가 노은결 행세를 한 일로 시끄럽더라고. 은결 씨도 이제 억울함 풀었으니까 얼굴 한 번 공개해달라고 해. 그래야 사람들도 잠잠해질 거야.”말을 마치고 조심스레 유하늘의 표정을 살폈다.시종일관 무덤덤했고 화난 기색은 없었다.송여준은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며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너무 신경 쓰지 말고 집에서 편히 쉬어.”유하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곧장 2층으로 올라가 방 안의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그리고 짐을 바리바리 싸서 캐리어를 몰래 아래층으로 끌고 갔다. 뒷마당 샛길을 지나 차까지 무사히 옮겼다.다시 돌아왔을 때 가방을 메고 거실로 들어서는 송우주를 발견했다.그녀는 멈칫했다.최근에는 대부분 송정희 집에 있거나 권아람과 함께 지내느라 이곳에 돌아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유하늘은 송우주를 힐긋 보더니 인사도 없이 그를 무시한 채 2층으로 올라가려고 했다.하지만 그녀를 발견한 송우주가 즉시 입을 열었다.“엄마!”유하늘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고개를 돌려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왜?”송우주는 급히 앞으로 달려가 간절한 눈빛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엄마, 아주머니가 지금 밥하고 있는데 이따 우리 같이 먹어요. 네?”유하늘은 어안이 벙벙했다. 마치 예상이라도 못했다는 듯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왜 갑자기 나랑 밥 먹겠다는 거야?”송우주는 그녀의 소매를 잡아당겼다.“언제 마지막으로 같이 밥 먹었는지 기억도 안 나잖아요. 오늘은 엄마랑 같이 먹고 싶어요, 네?”조금 전, 권아람이 유명
유하늘은 휴대폰을 꼭 쥐고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은결 씨랑 같이 있어. 왜?”“아니야. 그럼 먼저 일 봐. 나중에 끝나고 집에 오면 잠깐 얘기 나누자.”송여준이 말을 아꼈다.당최 무슨 의도인지 알 수 없어 유하늘은 대충 얼버무리고 전화를 끊었다.노은결이 그윽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하늘 씨가 은퇴했을 때 정말 안타까웠어요. 예전에 내가 산속에서 은거했던 걸 하늘 씨도 참 아쉬워했잖아요.”유하늘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왜 안타까워요?”노은결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때 하늘 씨는 지금의 남편을 죽도록 사랑했잖아요. 어릴 적부터 살아온 곳도, 피땀 흘려 연습한 첼로도 포기할 정도로. 그런데 결국 이렇게 된 걸 보면 참 안쓰러워요.”유하늘은 고개를 숙였다.뜨거운 커피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그녀의 시야를 가렸다.목소리는 시종일관 무덤덤했고 일말의 미련조차 없었다.“처음부터 끝까지 난 당당하게 사랑했고 모든 걸 바쳤어요. 떠날 때도 하늘 우러러 떳떳하니 그걸로 충분해요. 나한테 상처 준 사람들은 언젠가는 반드시 대가를 치를 거로 믿어요.”다만 지금은 아직 업보를 받을 때가 오지 않았을 뿐이었다.노은결이 고개를 끄덕였다.“쓰레기 같은 남편과 무능한 아들, 그리고 교활한 권아람까지 모두 벌을 받게 될 거예요. 무조건!”유하늘이 웃으며 노은결과 회포를 풀고는 집으로 돌아갔다.송여준은 집에서 그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유하늘을 보자마자 얼른 마중 나갔다.“하늘아, 오늘 일 노은결과 같이 꾸민 거야?”그의 눈에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유하늘이 낯설게 느껴졌다.유하늘은 기죽지 않고 그의 질문에 정면으로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친구가 불이익을 당하는 데 가만히 있어? 권아람이 자기 것이 아닌 남의 명성을 누리는데 이게 과연 맞는 일이라고 생각해?”정직하고 당당한 시선을 마주하자 송여준은 즉시 고개를 저었다.“아니, 나도 아람이 잘못한 걸 알고 있어. 대신 변호할 생각도 없고 그냥 물어본
게다가 이미 합의된 일이라니?대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었다. 설마 잘못 들은 걸까?송정희는 주먹을 꽉 쥐었고, 얼굴에 짜증이 가득했다.이내 어두운 표정으로 또박또박 말했다.“그때 아람이 심장병 앓았던 건 사실이야. 근데 완치돼서 화가로 돌아오든 병 걸린 척했든 다 너한테 조금이라도 동정받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니겠어?”말을 이어갈수록 송정희는 권아람이 점점 더 불쌍하게 느껴졌다. 외로이 혼자서 아무의 관심도 받지 못하니 거짓말이라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다.곧이어 냉소를 지었다.“아람은 그저 너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었을 뿐이야. 그런데 일이 터지자마자 바로 버리고 떠나겠다고? 이혼하더라도 지금은 안 돼. 이미 받은 충격만으로도 버티기 힘들 거야.”송여준은 흠칫 놀랐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어쨌든 송정희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송정희가 다급히 한 마디 보탰다.“아무튼 지금은 무조건 아람 곁에 있어 줘야 해. 안 그러면 할머니가 하늘에서 이 모습을 보신다면 얼마나 마음 아프시겠어? 어떻게 할지는 네가 알아서 해.”송여준은 주먹을 꼭 쥔 채 침묵했다.그동안 늘 쓸데없는 일에 발이 묶여 유하늘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기회를 찾지 못했다.곰곰이 생각해보면 권아람이 나타난 순간부터 그의 결혼 생활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머릿속으로는 이혼 문제를 더는 미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지금이야말로 모든 걸 정리하고 떠나야 할 적기라고, 그래야 비로소 끝을 맺을 수 있다고 여겼다.하지만 송정희의 말을 듣고 나니 다시 망설여졌다.아니나 다를까 이런 중요한 시점에 자신까지 성급하게 권아람과 이혼하겠다고 나서면 그녀는 큰 충격을 받아 무너질지도 모른다.잠깐의 침묵 끝에 송여준은 결국 타협했다.“알겠어요. 이혼은 잠시 미룰게요.”유하늘은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두 눈에 조롱이 가득했다.물론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였다.항상 말로는 그럴듯하게 떠들었지만 실제로는 어떤 일이 벌어져도 권아람과 이혼하는 것을 망설였다.그녀가 굳이 멈
한참이 지나도 대답이 없자 홍이수는 고개를 돌렸다. 이내 눈살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긴 송여준을 발견하고 넌지시 물었다.“이제 어떡할 거야? 아람 씨한테 정떨어졌어?”송여준은 그를 힐긋 쳐다보았다.“정이 있었던 적이 없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내 마음속엔 오로지 유하늘뿐이었어. 단지 내가 그때 할머니의 강요에 못 이겨 억지로 결혼한 거 보고 너희들이 아람을 좋아한다고 생각한 거지, 내 입으로 직접 인정한 적 있냐?”말투는 차갑기 그지없었다.곰곰이 생각해 보던 홍이수는 정말 그런 것 같았다.이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마침 가짜 신분이 들통나고 심장병도 거짓인 게 밝혀졌으니 이참에 이혼해.”홍이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권아람이 한 짓이 떠오르자 코웃음이 터져 나왔다.송여준을 보는 순간 속으로 약간의 미안함도 느꼈다.여태껏 유하늘을 무시해 왔는데 권아람보다 훨씬 낫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적어도 입만 열면 거짓말을 늘어놓지 않았다.송여준이 생각에 잠겼다.“이혼은 당연한 거고, 일단...”하지만 말을 끝내기도 전에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안 돼!”고개를 돌리자 입구에서 급히 달려오고 있는 송정희를 발견했다.한편, 또 다른 숲길.울창한 나무가 몇몇 그림자를 가렸고 그중에 유하늘도 포함되었다.그녀의 발길이 멈칫했다. 송정희의 목소리와 함께 나무를 사이에 두고 송여준과 홍이수가 주고 받는 대화가 얼핏 들렸다.유하늘은 멈춰 서서 귀를 기울였다.갑자기 나타난 송정희를 보고 송여준은 깜짝 놀랐다.“고모가 여긴 웬일이에요?”“이렇게 큰일이 벌어졌는데 내가 안 올 수 있겠니? 아람이가 우리를 속였다는 거 다 알아. 화가라는 신분도 거짓이고, 심장병도 꾸민 거잖아. 하지만 네 할머니의 생명을 구한 은인이라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어.”송정희는 숨을 헐떡이며 초조한 표정으로 송여준을 바라보았다.누가 봐도 권아람을 위해 변호하려는 모습이었다.송여준은 싸늘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할머니를 구한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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