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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우연한 만남

말을 마친 소은정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떴다.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박예리는 화도 내지 못하고 입만 벙긋거릴 뿐이었다. 오히려 이민혜가 소리를 지르며 매니저와 직원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소은정, 너 정말 미쳤어? 이게 지금 어느 안전이라고!”

이민혜가 욕설을 내뱉으려던 순간, 소은정은 이미 매니저의 에스코트를 받아 VIP 룸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붉은 레드와인을 뒤집어쓰고 머리도, 옷도 엉망이 된 박예리는 한참을 부들거리다 벌떡 일어서 그 뒤를 따르려 했으나 직원들이 그녀를 막아섰다.

“손님, 저희가 갈아입을 옷을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다른 손님들의 시선을 눈치챈 박예리는 하이힐로 바닥을 세차게 구르더니 중얼거렸다.

“소은정, 두고 봐. 이 치욕 언젠가는 다시 갚아줄 테니까.”

......

VIP룸, 소은호는 여전히 불쾌함을 지우지 못한 모습이었으나 오히려 당사자인 소은정은 별거 아니라는 듯 가볍게 웃었다.

“오빠, 나 유라랑 같이 쇼핑하기로 했는데 오빠도 같이 갈래?”

소은호는 그런 그녀를 흘겨보더니 말했다.

“넌 애가 속도 없어? 그 꼴을 당하고도 쇼핑이 하고 싶어? 저 집안사람들 도대체 지금까지 널 어떻게 생각했던 거야? 기르던 개한테도 그렇게는 안 할 거야!”

소은정은 어깨를 으쓱했다. 방금 전까지 환하게 웃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됐어. 어차피 다 지난 일이야. 앞으로 날 또 건드린다면 그때는 나도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걱정하지 마.”

식사를 마치고 레스토랑을 나온 두 사람의 시야에 박수혁의 차량이 들어왔다. 차 안에 있던 박예리는 소은정이 나온 걸 보고 바로 울면서 고자질을 시작했다.

“쟤가 그랬다고. 오빠, 내가 아까 얼마나 쪽팔렸는지 알아? 내 몸에 손까지 댔다고. 엄마도 곁에서 다 봤단 말이야.”

소은정은 박수혁과 눈이 마주쳤지만 아무렇지 않다는 듯 소은호의 손을 잡고 자리를 뜨려 했다. 소은정의 반응에 박수혁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항상 순종적이던 소은정이 왜 이렇게 변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실 저번 파티에서 서민영이 저지른 일에 대해 제대로 사과하고 싶은 생각으로 온 것인데 이렇게 투명인간 취급을 하니 짜증이 치밀었다.

박수혁은 무표정으로 그의 앞을 스쳐지나는 소은정의 손목을 낚아챘다.

“소은정, 뭐라고 해명이라도 좀 해봐!”

하지만 소은정은 피식 웃더니 당당하게 말했다.

“내가 한 거 맞아. 뭘 더 해명해?”

이 정도 일은 별거 아니라는 듯, 박수혁의 기분 따위는 신경 쓸 바가 아니라는 그녀의 태도에 손목을 잡은 박수혁의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손목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소은정은 고개를 돌렸다. 아름다운 눈동자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경멸뿐이었다.

“왜? 여동생 대신 복수라도 해주려고?”

“오빠, 난 이대로 절대 못 넘어가. 감히 날 때려?”

어려서부터 금지옥엽으로 자란 박예리는 이런 치욕을 안긴 소은정을 용서할 수 없었다. 박수혁은 미간을 찌푸리며 여동생에게 물었다.

“뭘 어떻게 하고 싶은 건데?”

박예리는 거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 당장 고개 숙여서 사과하라고 해.”

“사과?”

소은정은 차갑게 웃으며 박수혁을 바라보았다. 이 멍청한 남자는 또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있겠지. 박예리가, 이민혜가 그녀를 괴롭힐 때마다 그녀는 박수혁의 입장을 생각해 모두 그녀가 인내하고 사과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두 사람의 비위를 맞춰줄 이유는 없었다.

“당신도 내가 사과했으면 좋겠어? 그전에 일단 시시비비부터 가리는 게 어때? 레스토랑 CCTV부터 돌려봐. 당신 여동생이 아무 이유 없이 맞고 다닐 사람이야? 어디서 순진한 척이야.”

소은정은 세 사람을 한껏 비웃어준 뒤 박수혁의 손을 뿌리치고 자연스레 소은호의 팔짱을 꼈다.

옆에서 가만히 보고만 있던 소은호도 나섰다.

“그쪽 가족들 가문에 대한 프라이드가 대단한 것 같던데. 그에 걸맞은 가정교육은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군요. 사과? 그럼 은정이한테 했던 모욕, 악담에 대해서도 사과받아야겠습니다.”

소은호의 폭로에 박예리는 흠칫 놀랐지만 바로 박수혁의 뒤에 숨으며 중얼거렸다.

“오빠, 난 그런 적 없어...”

가식적인 박예리의 모습을 소은정과 소은호는 차갑게 바라볼 뿐이었다. 박수혁은 두 사람 사이의 일에 소은호가 끼어드니 그 나름대로 기분이 불쾌해져 미간을 찌푸렸다.

“쟤가 먼저 인터넷에 폭로했잖아. 내가 목걸이를 훔쳐 갔다고! 그것 때문에 내가 무슨 망신을 당했는데. 그건 애초에 우리 집안 물건이야. 그런데 어떻게 훔쳐 갔다는 표현을 쓸 수 있어? 그래서 몇 마디 했더니 바로 손부터 올라가잖아. 천박한 게.”

박예리는 괜히 찔려 더 흥분하며 소리쳤다. 그 사건 때문에 그녀가 당한 모멸감을 생각하니 다시 화가 치밀었다. 상황을 살피던 박수혁이 입을 열려던 순간, 소은정은 황당한 박예리의 궤변에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과거의 소은정이었다면 그런 말을 듣고도 바보처럼 가만히 있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아가씨, 진심으로 충고하는데 인성 교육이라도 받고 와요. 다음에는 와인으로 안 끝날 거니까.”

“레스토랑 CCTV는 1달 동안 저장됩니다. 그 사이에 언제든지 확인하세요. 그럼 이만.”

말을 마친 소은호는 젠틀하게 소은정을 에스코트한 뒤 유유히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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