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진명과의 협상이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이틀 뒤, 양측은 계약서에 서명을 마쳤고, 온진명은 다음 일정을 위해 넥스 그룹을 떠났다.반나절 내내 업무로 지친 연미혜와 김태훈은 회의실로 돌아와 따뜻한 음료를 마시며 잠깐 숨을 돌리고 있었다.그때 전아현이 무거운 파일을 안고 들어와 탁자 위에 툭하고 내려놓았다.“이번 주까지 도착한 연말 파티 초대장이에요.”서른 장은 족히 되어 보이는 두툼한 초대장 뭉치 안에는, 염성민, 하승태, 경문 그룹, 세인티에서 보낸 초대장도 섞여 있었다.연미혜와 김태훈이 대충 훑어보던 중, 임씨 가문에서
임지후가 말했다.“모두가 누나를 존경하는 것 같아요.”그를 맞이하는 사람은 임지후의 조금 전 한마디에 웃음을 지었다.“그야 당연하죠. 임 이사님은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고 우리 팀원 모두가 이사님을 따르고 있어요.”게다가 임지유와 경민준의 관계 덕분에 팀 내의 복지 또한 매우 좋았다.물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상대방의 입에서 누나의 칭찬을 들은 임지후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마음속으로 크나큰 자부심을 느꼈다.하지만 그는 임지유가 일하는 중에 들어가서 방해할 생각은 없었다.“다른 곳도 보여주세요.”“네.”밖으로 나가려
임지유는 신경 쓰지 않았다.그녀는 연미혜를 향한 하승태의 부드러운 태도는 모두 넥스 그룹과 함께 일하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했고 정범규 또한 그녀와 생각이 같았다.한편, 임지후가 연미혜를 본 것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저분은 승태 형님의 여자 친구인가요?”“콜록콜록!”그의 말을 들은 정범규는 기침하며 답했다.“무슨 여자 친구? 두 사람은 그런 관계가 아니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임지후는 도원시에 막 도착한 상태였기 때문에 아무것도 몰랐다.그들은 임지후가 예쁜 연미혜와 훤칠한 하승태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보고
경민준과 임지유를 본 후, 하승태의 시선은 곧바로 연미혜에게로 향했다.두 사람을 마주하고도 별다른 반응이 없는 그녀를 보며, 그는 고개를 숙여 가볍게 웃었다.“잠깐 저쪽에 다녀올게요.”연미혜와 김태훈은 고개를 끄덕였다.하승태가 경민준과 임지유 쪽으로 가 몇 분간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즈음, 염성민이 도착했다.임지유를 본 그는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임지유도 염성민을 보고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염 대표님, 안녕하세요.”“지유 씨, 반갑네요.”그동안 바쁜 일정에 치여 임지유를 보지 못했던 염성민
염성민은 무심하게 물었다.“둘이 무슨 얘기를 하고 계셨죠?”경민준은 웃었다.“아직 할 얘기가 더 있긴 합니다만...”염성민이 말을 하기도 전에 인사할 기미가 전혀 없었던 연미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곧장 그를 지나쳐 자리를 떴다.염성민은 자신의 옆을 지나가는 연미혜에게 시선을 거두었고 경민준이 들고 있는 두 잔의 와인을 발견하고는 물었다.“이게 뭐죠?”“특별 제작한 와인이라고 할 수 있죠. 염성민 씨도 한잔 마셔보시겠어요?”염성민이 물었다.“다른 한 잔은 임 대표를 위한 건가요?”“네.”염성민이 말하려던 찰
넥스 그룹의 리셉션은 사흘 뒤에 열렸다.그날 저녁, 하승태는 비교적 이른 시간에 모습을 드러냈다.주변에 임지유, 경민준, 염성민 등이 보이지 않아서였는지, 이번 리셉션은 별다른 소란 없이 차분하게 흘러갔다.그날 밤, 참석자는 많았고 연미혜와 김태훈은 쉴 틈 없이 바빴다. 그래서인지 하승태에게 특별히 신경을 쓸 겨를은 없었다.리셉션 중간에 연창훈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하승태를 보고서야 그들은 그가 일찍 자리를 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하필이면, 오늘 밤은 임씨 가문 쪽에서도 리셉션이 열리는 날이었다.하승태가 이렇게 일
그럴 경우 경다솜은 경씨 가문에서 새해를 보내야 할 확률이 높았다.허미숙은 마음속으로 경다솜을 떠나보낼 수 없었지만, 동시에 연미혜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연미혜는 침착하게 할머니에게 말했다.“할머니, 솜이가 행복하기만 하면 전 괜찮아요.”허미숙은 연미혜가 자신이 걱정할까 봐 억지로 미소를 짓고 있다고는 걸 느꼈다.허미숙은 한숨을 쉬며 다시는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아침 식사를 마친 연미혜와 하여진은 함께 새해 선물을 사러 나섰다.밖은 조명으로 장식되고 친숙한 새해 노래가 곳곳에서 들리며 새해 전야의 분위기가 풍기고
김태훈은 직접 연씨 가문 본가로 가서 폭죽을 전달했다.불필요한 문제를 피하고자 연미혜는 하승태에게 연씨 가문 근처의 별장 주소를 알려주었다.오후 두 시쯤, 연미혜는 차를 몰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하승태는 다른 사람이 폭죽을 건네줄 거라 전화로 연미혜에게 알렸다.하지만 차를 주차한 후 연미혜의 눈앞에는 하승태가 서 있었다.“왔어요?”“네.”“트렁크를 열어봐.”연미혜는 트렁크를 열었고 하승태는 폭죽과 설 선물 일부를 트렁크에 옮겼다.연미혜는 선물을 보곤 잠시 말없이 있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선물은 필요 없을 텐데
캐벳 스미스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내 박사 과정 학생, 임지유입니다.”그는 임지유 외에도 네댓 명의 학생들을 데려왔는데, 그중 임지유만이 유일한 동양인이었다.임지유가 캐벳 스미스의 제자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현장에선 감탄과 부러움이 쏟아졌다.“세상에, 스미스 교수님 박사 과정 학생이라니 완전 대단한데?”“그런데 저렇게 예쁘기까지 해? 신이 모든 걸 다 줬네. 너무 불공평해!”“더 기가 막힌 건... 저 여자가 경민준의 여자 친구라는 거잖아.”“헐... 진짜 비교할 게 못 되네. 나 같은 인생은 어떡하라고...”순식간
이틀 뒤, 김태훈은 서원시에서 열리는 국제 인공지능 대회에 참석했다.지난해의 기술 박람회와 마찬가지로 이번 행사 역시 업계 관계자들이 AI 관련 최신 동향을 파악하고 기술을 교류할 수 있는 중요한 자리였다.이번에 그와 함께한 일행은 연미혜, 그리고 최근 넥스 그룹에 새로 합류한 구진원을 포함한 몇몇 엔지니어들이었다.구진원을 비롯한 신입 직원들을 함께 데려온 이유는 아직 이들이 회사의 핵심 기밀에 접근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기술 유출에 대한 걱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서원시에 도착한 뒤, 행사장에 들어서자 이미 내부
구진원은 결국 연미혜와 함께 래프팅을 타볼 기회를 잡지 못했다.하지만 저녁 무렵, 그는 또 한 번 ‘우연히’ 연미혜와 연씨 가문 사람들을 마주쳤다.그녀의 외삼촌 연창훈과 외숙모 하여진은 반갑게 인사하며, 그와 그의 친구에게 같이 식사하자고 흔쾌히 자리를 권했다.이야기를 나누다 그가 구씨 가문의 도련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연창훈이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근데 어쩐 일이에요? 갑자기 도원시로 내려올 생각을 다 하고...”구진원은 젓가락을 잠시 멈췄다.도원으로 돌아오게 된 이유가 순간 머릿속을 스쳤던 그는 짧게 숨을 고르고
‘경민준 씨는 바쁘다며 다솜인 못 챙긴다더니, 정작 임지유랑은 같이 있고?’그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연미혜는 끝내 입을 열지 못했다.그보다 먼저, 경다솜이 해맑게 말했다.“엄마, 조금만 더 일찍 전화했으면 좋았을 텐데요! 헬기 타고 있을 때 영상 통화했으면 진짜 멋지게 보여드릴 수 있었을 거예요!”그 말에 연미혜는 조심스럽게 웃었지만, 경다솜이 이번 여행에 얼마나 만족하고 있는지가 고스란히 느껴져 더는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그럼에도 마음 한쪽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가슴안에 찜찜함이 또 하나 차곡히 쌓였다.경다솜은
연미혜도 같은 생각이었다.그녀는 짧고 단호하게 메시지를 보냈다.[바빠. 그리고 약속 지켜. 다솜이 외할머니댁엔 절대 못 가게 해.]잠시 뒤, 경민준에게서 짧은 답장이 도착했다.[알겠어.]이후로 그는 더 이상 아무 연락도 해 오지 않았다.어린이날 연휴 다음 주말은 마침 주말이었다.그날 오후, 연미혜는 가족들과 함께 관광지에서 래프팅을 준비하고 있었다.그때 차예련에게서 사진 한 장이 도착했는데, 사진 속 인물은 임지유였다.차예련은 지금 쿠바나에 머무르며 패션쇼 준비로 한창이었다.사진을 본 연미혜는 메시지를 보냈다.[
‘넥스 그룹이랑 세인티가 해지한 건 알고 계신가요? 교수님의 제자인 김태훈 대표가 요즘 하는 짓을 보면 재능을 믿고 우쭐대는 것도 모자라, 사사건건 여자한테 휘둘려서 점점 판단력도 흐려지고 있던데요. 혹시 그 사실도 알고 계십니까?’염성민은 막 입을 열려다 말았다.곁눈질로 경민준이 있는 걸 본 순간,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이 쑥 들어가 버렸다.사실 이 얘기는 전부 임지유와 관련된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 임지유의 옆에 경민준이 있었다.염성민의 입장에서 굳이 나서서 이런 말을 할 명분이 없었다.괜히 앞장서서 이런
임지유는 곧바로 해약서에 서명했다.배상금은 계약서에 명시된 기한 내에 전액 납부하겠다고 약속했다.이 소식을 들은 김태훈은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생각보다 행동이 빠릿빠릿해서 좋은걸?”해약 이후의 처리 절차는 변호사가 맡았고, 임지유가 서명한 뒤로는 김태훈과 연미혜 모두 더 이상 그 일에 신경 쓰지 않았다.이삼일 뒤, 유명욱이 휴가를 맞아 오랜만에 두 사람을 불러 모았다. 한동안 얼굴을 못 본 터라, 사제지간에 오붓하게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던 것이었다.연미혜와 김태훈은 회사를 나와 약속 장소인 식당에 도착했는데, 식당 입
임지유는 계약 해지를 결정한 뒤, 곧바로 경민준에게 전화를 걸었다.“경매 날에 김태훈 어머님이랑 얘기하다가, 내가 말을 좀 잘못했어. 그걸 사모님이 딱 집어냈고... 게다가 김태훈 쪽은 아예 세인티랑 엮일 생각이 없어 보여. 만약 소송으로 가서 이긴다고 해도 나중에 또 딴지를 걸어 협력 관계가 틀어지게 만들 가능성이 높아.”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담담히 결론을 내렸다.“그쪽이 처음부터 협력 의지가 없었다면, 괜히 시간 끌기보다 지금 깨고 다른 파트너 찾는 게 낫다고 봐.”경민준은 그녀가 무슨 말을 실수했는지 구체적으로 묻
‘김태훈 어머니가 연미혜를 좋아한다고? 그게 말이 돼? 진짜라면... 어제 김태훈 어머니한테 했던 말들은 대체...’임지유는 갑자기 이미연이 대화 도중 갑자기 통화하러 다녀온 일이 떠올랐다.머릿속에 전화를 받는다며 자리를 비운 장면이 스치자, 묘한 불안감이 다시 가슴을 짓눌렀다.그녀의 낯빛이 안 좋아진 것을 본 경민준이 곁에서 물었다.“왜 그래? 어디 아파?”그 말에 임지유는 정신을 가다듬고 애써 미소를 지었다.“아니야. 나 괜찮아.”그날 저녁, 임지유는 이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렸다.이미연이 연미혜를 마음에 들어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