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그날 오후, 경다솜이 경기를 마치자마자 경민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경기 끝났어? 결과 어때?”경다솜은 물병을 들고 물을 마시면서도 들뜬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1등 했어요! 다음 라운드 진출했어요!”“잘했네.”경민준이 웃으며 덧붙였다.“할아버지는 오늘 퇴원해서 집에 오셨어. 저녁에는 증조할머니 댁으로 와서 밥 먹자.”“네, 알겠어요.”두 사람은 더 길게 이야기하지 않았다.통화는 금세 끝났다.전화를 끊은 경다솜이 연미혜를 바라봤다.“엄마, 아빠가 저녁에 증조할머니 댁으로 오라고 했어요. 우리 지금 갈까요?”
임지유는 고개를 끄덕였다.경민준이 차에 오르자, 차량은 천천히 병원을 빠져나갔다.오늘 경다솜은 병원에 나오지 않았다.경문세의 퇴원 날이었고 게다가 주말이었다. 평소라면 경다솜이 빠질 리 없는 자리였다.노현숙은 그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조금 전까지는 감정이 격해져 있어서 바로 따져 묻지 않았을 뿐이었다.차에 올라탄 뒤, 그 일이 다시 떠올랐다.‘다솜이 오지 못한 이유는 아무래도...’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노현숙의 표정이 굳었다.곧장 고개를 돌려 경민준을 노려봤다.“설마... 저 아이 데려오려고 다솜이한테
월요일, 연미혜는 경다솜을 학교에 데려다준 뒤 소우진 일행과의 미팅에 참석했다.구진원과 함께 도착했을 때, 경민준도 이미 와 있었다.경민준은 두 사람을 보자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이후 며칠 동안 두 번 더 마주쳤지만 대화는 모두 업무에 한정됐다. 그 외에는 별다른 대화가 없었다.며칠 사이, 경문세의 상태는 눈에 띄게 호전됐다.토요일이 되자, 주치의는 퇴원 후 자택에서 요양해도 된다고 했다.노현숙은 직접 병원을 찾아 경문세의 퇴원을 챙겼다.병실 문을 여는 순간, 예상치 못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바로 임지유였다.경민
연미혜가 입을 열려는 순간, 경다솜이 화장실에서 뛰어나왔다.“엄마, 증조할머니! 저 다 됐어요!”경다솜의 말에 흐름이 끊기자, 연미혜와 노현숙은 더 이상 방금의 이야기를 이어가지 않았다.두 사람은 경다솜을 데리고 관광차에 올라 산에서 내려왔다.그날, 연미혜와 경민준이 노현숙의 부탁을 받아 이혼을 미루기로 했다는 소식은 곧 임지유와 정범규, 하승태에게도 전해졌다.소식을 들은 정범규는 단체 채팅방에서 곧바로 경민준을 불렀다.[야, 이혼 진짜 미뤄진 거야? 드라마도 이렇게 안 찍어... 아니, 이제 몇 번째냐.]하승태와 임지
이틀이 더 흘렀다.경민준은 여전히 처리할 일이 많았다.주말이 되자, 경다솜은 연미혜와 함께 연씨 가문에 머물렀다.경민준은 경다솜에게 틈이 날 때마다 병원에 들러 할아버지를 뵙고 가라고 했다.아침 식사를 마친 뒤, 연미혜는 경다솜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도착했을 때, 경문세는 마침 깨어 있었다.두 사람을 보자, 창백한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미혜랑 다솜이 왔구나.”연미혜는 고개를 끄덕였고 경다솜도 조르르 달려가 인사했다.“할아버지, 다솜이 왔어요!”경문세는 아직 완전히 안정되지 않은 상황이었다.힘겨워 보이는
연미혜가 도착했을 때, 허미숙과 노현숙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노현숙은 연미혜를 보자마자 옆에 앉으라며 자리를 권했다.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전화를 받은 노현숙의 표정이 금세 굳어졌다.잠시 후, 짧게 그녀는 ‘알겠어.’라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민준이 전화였어.”노현숙은 미안한 기색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오는 길이었는데,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겼다네. 오늘은 같이 식사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하더라.”연미혜는 허미숙을 따라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두 사람 모두 진심이었다. 애초에 이 자리는 노현숙의 마음을
식사를 마친 후, 두 회사는 몇 시간 동안 논의를 이어간 끝에 협력 관계를 맺기로 잠정 합의했다.이틀 뒤, 연미혜와 김태훈은 계약 협상을 위해 세인티에 방문했다.그들을 맞이한 사람은 전현재와 세인티의 핵심 임원 중 한 명인 김재원이었다.다만, 김재원은 약간 늦게 회의실에 들어섰다. 도착하자마자 먼저 사과를 건넸다.“조금 전에 경민준 대표님과 회의하느라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그러면 지금 경민준도 세인티에 있는 건가?’연미혜는 그렇게 생각하며 김태훈과 함께 김재원과 가볍게 악수를 나눈 뒤, 담담하게 말했다.“괜찮습니다
염성민의 머릿속에 스친 생각은 짧았다.‘경민준의 딸이니, 경민준을 닮은 건 당연하겠지...’그런데 아이의 얼굴에서 경민준 말고도 다른 누군가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듯했다.“염 대표님, 이쪽에 앉으시죠.”염성민은 그 느낌이 처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이전에도 경다솜을 볼 때면 비슷한 인상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막상 누구를 떠올린 것인지는 끝내 짚어내지 못했다.그는 시선을 거두고 소파에 앉았다.곧바로 화제는 업무 이야기로 넘어갔다.업무를 논하는 동안, 경민준의 태도는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집중력은 흐트러지지 않았고
‘민준 씨는 연미혜와 다시 관계를 회복하려는 걸까. 그렇다면 왜 먼저 우리 관계를 정리하자고 말하지 않는 걸까? 아니면 일부러 거리를 두고 냉담하게 굴며 내가 먼저 이별을 꺼내길 기다리고 있는 걸까...’임지유는 경민준의 의도가 궁금했다.‘혹은 마음 한쪽에 아직 내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제는 연미혜가 더 중요한 존재가 되었을까.’손씨 가문과 임씨 가문 사람들은 최근 경민준과 연미혜가 이혼 절차를 밟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경다솜을 이유로 당분간 이혼을 미루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표정이 썩 밝지 않았다.그러나 경민준
연미혜가 임해철 남매의 속내를 알 리는 없었다.그녀는 평소와 다름없는 평온한 얼굴로 정혁완 일행과 식사하며 업무 이야기를 나눴다.식사를 마친 뒤, 연미혜와 정혁완 일행은 함께 룸을 나와 아래층으로 내려가려 했다. 그때 다시 임해철 일행과 마주쳤다.아까와 달리 이번에는 임지유와 손수희까지 합류해 인원이 훨씬 많아 보였다.임씨 가문과 손씨 가문 사람들 역시 연미혜를 발견했다.손아림과 임혜민은 연미혜를 보자마자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정혁완 일행은 그 미묘한 기류를 눈치채고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가족들과 달리, 임지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