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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신경주라는 이름은 구아람의 가슴속 깊이 가시처럼 박혀 있다. 울리는 휴대전화를 보니 마음 속에서 갈등이 일어났다.

“받아?”

구윤이 물었다.

“받아!”

구윤은 휴대폰을 스피커폰으로 돌리고, 말을 안 했다.

“구사장님, 제 아내가 당신과 함께 있습니까?”

신경주는 쉰 목소리로 물었다.

화가 치밀어 오른 구아람은 아내라는 소리가 귀에 거슬리는 것을 느꼈다.

“신 사님장, 말 조심해요, 난 이제 니 부인이 아니야, 전처 일뿐이에요.”

“백소아, 너 역시 그 사람과 같이 있네.”

신경주의 목소리가 조금 더 가라앉았다.

“설마 나보고 당신 집에서 이불에 돌돌 말려서 밖으로 내던져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란 말인가요?”

참 각박하다.

한편 신경주는 얼굴이 먹물처럼 어두워지고 있었다.

“우리 아직 이혼 절차가 진행중이야, 이혼 확인서가 없는 이상 당신은 여전히 내 와이프고. 우리 집안과 당신의 체면을 좀 생각 해야지.”

“우리가 이혼을 안 했을 때 당신은 김은주를 그냥 관해정원에 데려와선 나보고 이혼서류에 사인을 하라고 강요했어요. 그때 내 생각을 해봤어요?”

구아람이 냉소적으로 말했다.

“단지 이에는 이일 뿐이에요. 내가 신씨의 체면을 고려야 할 필요가 있어요? 어차피 사장 부인 자리까지 다 내줬으니 그녀한테 가요!”

구윤은 살며시 눈썹을 치켜 올리고 차를 마셨다.

이게 구아람의 진짜 모습이었다. 지난 3년 동안 그 집에서 억울하게 지냈던 그 얌전하고 온순한 아내는 그녀가 신경주를 위해 만든 컨셉일 뿐이었다.

그의 동생은 언제나 완벽했지만, 그는 한때 세상을 놀라게 했고 거침없고 위험한 사랑을 택했었다.

다행히 그녀가 돌아왔다.

“난 지금 당신 이랑 말장난 할 시간이 없어.”

신경주는 피곤한 소리로 말했다.

“할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지금 병원에 계시는데, 너를 꼭 만나겠다고 아우성치고 약도 안 드셔.”

아람의 마음이 갑자기 흔들렸다.

설령 그녀와 신경주가 헤어졌다고 해도, 3년 동안 신씨 어르신은 그녀에게 매우 친절했다. 그 집에서 혈혈단신으로, 아무 것도 바란 적 없고, 그 집에 대한 미련도 없지만, 그 ‘개구쟁이’ 귀여운 노인은 아니다. 손 놓고 지켜볼 수 없다.

“구씨 병원에 계신다고요? 알았어요. 이따가 할아버지 뵈러 갈게요.”

전화를 끊고 구아람은 한숨을 쉬고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아람아, 내가 데려다 줄까?”

구윤은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됐어. 오빠가 날 데려다 준다면 그 인간과 갈등만 일으킬 뿐이야.”

구아람은 난처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말했다.

“혼자 가면 돼.”

……

병원

신경주와 비서 한준희는 할아버지 신남준의 병실 앞을 지키고 있었다.

구아람은 당당하게 그들한테 걸어갔다. 며칠 동안 보지 못했지만, 이 남자가 말랐다는 것을 문득 알아차렸다.

아 진짜, 그녀가 이런 걱정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가 어떻게 변했던 간에 그녀가 더 이상 상관할 일이 아니다.

죽든 말든!

하이힐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 오자 두 남자는 일제히 그녀 쪽을 바라보았다.

자기도 모르게, 멍하게 쳐다보았다.

특히 신경주는 3년 동안 아내로 지낸 그 여자가 바로 눈 앞에 이 사람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없었다.

“한 비서님, 할아버지는 어떻습니까?”

구아람은 신경준을 보지도 않고 한준희에게 물었다.

“작…… 작은 사모님, 정말 작은 사모님이 맞습니까?”

한준희는 멍 해져서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

눈 앞에 이 여자는 청아하고 우아했다. 작은 얼굴에 산뜻한 메이크업과, 붉은 입술이 곱고 매우 여성스러웠다. 게다가 몸매에 잘 맞는 세련된 옷차림은 그녀를 더욱 눈부시게 부각시켰다. 도저히 이전의 그녀와 비교할 수가 없었다.

구아람은, 너무 급하게 온 나머지 백소아의 모습으로 ‘변신’하고 온다는 걸 깜빡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알아챘다.

“당연하죠, 왜요? 내 새 모습이 별로예요?”

“그럴리가요? 예전보다 훨씬 예뻐지셨네요! 그리고 이렇게 차려 입으시니…… 예전보다 자신감도 있어보이고, 더 밝아 보이기도 합니다.”

한준희는 아부하며 말했다.

“그래요? 내가 이혼해서 그런가 봐요.”

구아람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내가 결혼이라는 무덤에서 나와 햇빛을 다시 봐서 그런지, 활력도 되찾고 밝아진 거 같아요.”

신경주의 얼굴은 침울해졌고, 가슴에는 우울함이 솟아올랐다.

“무덤이라고 생각하면서 왜 내 곁에 3년 동안 머무르고 있었어? 내가 말했지, 이혼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할아버지께 말씀드리면 됐었잖아, 그렇게 긴 시간을 참을 필요는 없었다고…….”

구아람은 가슴이 쓰라리다.

이 사람이 바로 신씨네 둘째 도련님이다. 좋아하는 사람은 누가 말려도 차지하고야 말고, 마음에 없는 사람은 눈곱만큼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녀는 그 사람의 차갑고 오만한 마음까지도 사랑했고, 그 사람과 결혼했다. 그 때문에 뼈저린 대가를 치렀지만.

“할아버지가 약속을 하셨으니 계약은 지켜야 했어요. 3년이면 3년, 한 시간도 빠지면 안 돼죠. 근데 이제 당신도 이혼했으니 앞으로 어떤 여자를 집에 데려와도 되겠네요. 더 이상 밖에 나가서 애인을 만날 필요 없잖아요.”

구아람은 놀랄 정도로 차갑게 웃었다.

신경주는 목구멍의 숨이 넘어가는 듯해졌다.

이 여자가 왜 다른 사람처럼 보일까? 이미 헤어졌다고 생각해서 그런가?

그러고 보니 날카롭게 보이는 그녀는 이전보다 훨씬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 신경주는 아람에게 다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경주오빠!”

구아람은 차갑게 돌아보며 김은주와 진주가 급히 걸어오는 모습을 보았다.

김은주는 구아람이 여기에 있는 것을 보고 눈에 약간의 불편한 기색이 비쳤지만, 곧 가냘픈 연약함으로 변신했다.

“어머니, 오셨어요. 은주야, 니가 어떻게……?”

신경주는 의아하게 물었다.

그 말이 끝나자 김은주는 그의 품에 안기고 가냘픈 두 팔로 그의 허리를 휘감았다.

“경주 오빠, 이렇게 큰 일이 생겼는데 왜 얘기 안했어요? 나를 오빠의 여자로 생각하지 않아요?”

“내 말이……. 은주가 할아버지께서 병원에 입원하셨단 소식을 듣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점심에 먹었던 죽도 올리고…….”

진주는 옆에서 은주를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왜 갑자기 토해요?”

신경주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물었다.

“은주는 위장이 좋지 않아서, 긴장하면 탈이 나고 그래. 의사선생님들도 별 문제가 없다고 했으니까 걱정하지 마.”

진주는 한숨을 쉬었다.

“유명한 의사를 찾아 은주를 진료를 받게 할게요. 국내에서 안 되면 외국에도 데려가 보구요…….”

신경주는 은주의 허리를 감쌌다.

구아람은 마음속으로 냉소했다. 한때 속병이 재발하여 땀투성이가 되어 혼자 병원에 간 자신의 아팠던 모습이 떠올랐다. 비록 당시엔 신경주에게 얘기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몸이 아프고 안색이 창백했다는 것을 그도 분명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단 한번도 그녀에게 관심을 준 적이 없었다.

신경주는 사랑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단지 구아람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을 뿐이다.

김은주는 신경주의 품에 기대해 구아람을 바라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잠깐!

‘이 여자…… 왜이리 갑자기 변했지? 왜 이렇게 예뻐졌을까?’

게다가 그 나비 브로치는 아시아 최고의 디자이너 알렉스의 최신작 아닌가? 오백 만원도 넘는데……. 여자가 어떻게 이런 귀한 장신구를 착용할 수 있지? 설마 돈 많은 남자라도 잡았나? 아냐, 아냐 짝통일거야…….’

“경주아, 은주와 같이 할어버지 뵈러 들어가라. 은주가 오는 길에도 엄청 울었거든, 얼마나 걱정하는지 물라.”

진주는 3년 동안 신씨 가족을 돌본 소아, 즉 아람을 철저히 무시하였다.

구아람은 냉담한 얼굴로 일관했다. 신경주에게도 눈길 한 번 줬고, 더구나 신씨 집안 사람들도 투명인간으로 취급했다.

이때 병실 문이 열리고 신남준의 비서가 나왔다.

“신 어르신께서 손자며느리가 왔는지 확인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김은주의 표정이 굳었다.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눈치였다.

“아저씨, 저 여기 있어요.”

구아람이 앞으로 나섰다.

신 어르신이 걱정돼서 호칭 따위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작은 사모님.”

서 비서는 공손히 청하는 몸짓을 하며 말했다.

“신 어르신께서 작은 사모님과 둘째 도련님, 두분 같이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구아람은 말없이 병실로 들어갔다.

신경주는 입술을 오므리고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경주오빠, 잠깐만요…….”

김은주도 그 뒤를 쫓으려 했으나, 서 비서가 그녀를 차갑게 가로막았다.

“죄송합니다. 신 어르신께서 손자와 손자며느리 외에는 아무도 만나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이만 돌아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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