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8화

“아이고! 은주야! 괜찮아?”

진주는 대경실색하였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모습이 우스꽝스럽지만 차마 웃을 수가 없었다.

이에 놀란 신경주는 쏜살같이 앞으로 다가가 몸을 숙여 김은주를 바닥에서 끌어올렸지만, 그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흑흑, 오빠…… 나 아프기도 하고, 정말 창피해 죽을 꺼 같아. 얼른 안아줘…….”

김은주는 무릎이 부숴지도록 넘어져 울부짖었다.

구아람은 가슴에 두 팔로 팔짱을 끼고, 바닥 위에 드러누워 있는 김은주를 냉냉하게 보았다.

“오빠…… 저 여자가…… 날 이렇게 밀었어!”

김은주는 남자의 품에 안겨서 구아람의 눈빛을 흘끗 보았다.

“은주야, 뭐라고?”

신경주는 놀라서 구아람을 째려보았다.

“저기, 김은주씨, 내가 밀었다는 확실한 증거 있어?”

구아람은 화도 내지 않고, 웃으며 오히려 김은주의 어설픈 연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럼 설마 내가 혼자 바닥에 넘어진 건 거란 말이야?”

김은주는 오히려 자신이 화를 내며, 여태껏 부드러웠던 목소리가 날카롭게 높아졌다.

“나야 모르지. 그렇게 죽을 것처럼 아프다니까…… 어쩌면 바람에 날려 쓰러졌을지도 모르지……?”

“너…… 나 놀리는 거야?”

김은주는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개졌다.

“내가 걸어올 때, 분명히 니 손이 내 팔에 닿는 느낌이 들었는데, 인정 못하겠단 거야?”

“이봐, 여기 곳곳에 카메라가 있는데, 어디서 생떼 쓰는 거야?”

구아람은 논리 정연하게 김은주를 압박했다.

방금 아람의 말에 모든 걸 집어 삼킬 것 같던 기세는 전부 사라졌다.

“일단 내가 증거를 찾게 되면, 너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수 있어.”

신경주는 지금의 백소아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더 이상 답답하게 독수공방하고, 고분고분하던 그 어리석은 아내가 아니다.

김은주는 구아람의 강한 카리스마에 눌려 진주에게 도움의 눈빛을 보냈다.

“아이고, 오해야, 다 오해야!”

진주는 정수리 위의 카메라를 몰래 보고 웃으며 말했다.

“은주가 똑바로 보지 못하고 부주의로 넘어지면서 소아를 부딛혔나봐. 그래서 소아가 밀었다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이건 다 오해야!”

“은주야, 정말 네 부주의로 넘어진 거 아냐?”

신경주는 품속에 안긴 여인을 내려다보며 살짝 서늘한 말투로 물었다.

“난…… 그녀가 날 밀었다고 생각했는데…….”

남자의 눈빛은 어두워졌다.

김은주는 당황한 마음에 끝까지 억지를 부렸다.

“분명히 백소아가 일부러 그런 거야! 이것 봐, 일부러 날 넘어뜨리는 바람에 내 팔찌도 깨졌어. 이거 우리 할머니가 물려준 건데, 백소아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부서지지도 않았을 꺼야!”

“백소아씨, 당신이 경주 오빠와 이혼해서 화가 난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나한테 분풀이를 하면 안 되지. 당신들이 헤어진 게 설마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말하면서 김은주는 눈물을 흘렸다.

정말 눈물 연기의 달인이 된 것만 같았다.

“우선, 나 화 안 났어. 아니 반대로 날 고통 속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에 고마워하고 있는 걸?”

구아람은 턱을 살짝 치켜들며 되받아쳤다.

신경주의 멋진 얼굴이 굳어졌다.

“그리고 둘째, 만약 이 팔찌가 정말 너의 집안 대대로 전해내려온 것이라면, 넌 오늘 나한테 감사해야 해.”

말하면서 구아람은 걸어가서 팔찌 반을 주워 불빛에 비추었다.

“짝퉁.”

“뭐?”

김은주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주까지도 깜짝 놀랐다.

“이 팔찌 안에는 유독물질로 된 접착제가 발려 있어서 오랫동안 착용하면 오히려 몸에 좋지 않아. 유독물질이 피부에 침투하여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어.”

“신 사장님, 김은주씨가 당신을 이렇게나 사랑하는데 좋은 악세사리라도 사줘야 되지 않아요?”

“백소아!”

신경주는 눈썹을 찌푸리며 조금 화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신씨네 집 화장대에 옥 두꺼비를 두고 왔어. 싫지 않다면 그걸로 팔찌 하나 바꿔.”

구아람은 손에도 없는 먼지를 툭툭 털었다. 누군가가 팔찌를 건드리면 그녀의 손을 더럽힌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두꺼비…… 두꺼비?

백소아, 이 비천한 년이 분명히 빙빙 돌려서 그녀를 모욕한 것이다!

김은주는 화가 나서 한바탕 더 싸우려고 했으나 백소아는 이미 멀리 가버렸다.

……

병원 문밖.

김은주의 일그러진 멍청한 얼굴을 생각하니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백소아.”

뒤에서 신경주의 부르는 소리에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 몇 가닥을 흩날렸다. 더욱 청순해 보였다.

신경주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 앞으로 다가갔다.

“또 무슨 할 말씀이 있으십니까, 신 사장님.”

구아람의 표정엔 아무런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만약 김은주가 여전히 팔찌 때문에 속상해한다면, 내일 골동품시장에서 한 개 사서 보내준다고 알려주세요.”

“방금 병실에서 할아버지께…….”

“아, 그 일이요,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단지 할아버지를 화나게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에요.”

할아버지 이야기를 꺼내자 그녀의 눈빛은 비로소 온기가 더해졌다.

“그럼 우린 쌤쌤인 거지?”

“……?”

구아람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채지 못했다.

“당신이 신분을 위조해 속임수를 써서 나와 결혼한 일은…… 할아버지를 포함한 모든 신씨 집안 사람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게.”

신경주의 표정은 침울하였다. 눈동자엔 날카로움이 숨겨져 있었다.

구아람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야! 그게 사람이 할 말이야?

“하지만 당신이 왜 가짜 신분으로 나와 결혼 한 건지는 말해줘. 아니, 이렇게 물어보는 게 낫겠네…….”

신경준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당신, 처음부터 가짜 신분을 이용하여 할아버지께 접근했던데……, 도대체 목적이 뭐야?”

구아람은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며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결국 그녀는 뒤에 계단이 있다는 것을 잊고 발을 헛디뎌 소리를 지르며 뒤로 쓰러졌다.

하지만 순간, 그녀의 허리를 신경주가 꽉 끌어안았다. 그래서 넘어지지 않고 신경주의 품에 안겼다.

두사람의 시선이 마주치자 구아람은 살며시 얼굴을 붉혔고, 남자의 호흡도 가빠졌다.

이혼한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는 여전히 신경주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다고 느꼈다.

13년전, 구아람은 그때 겨우 11살이었다. 폭우속에서 그녀를 구해준 지금 신경주의 눈동자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신경주가 그녀의 생명을 구해줬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지금의 구아람은 없었을 것이다.

경주는 곧바로 구아람을 바로 일으켜 세웠다.

“고마워요……”

“방금 내 질문에 대답해.”

신경주는 다그쳤다.

“저는 이제 당신의 아내가 아니니. 당신에게 대답해줄 의무가 없어요.”

구아람은 냉담하게 웃으며 몸을 돌렸다.

“서로 쌤쌤이라고 하면서 왜 저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으세요? 설령 제가 가짜 신분이었다고 해도, 지난 3년 동안 당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았나요? 안 그래요?”

갑자기, 신경주는 그녀의 팔을 잡아당기곤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우리는 아직 이혼확인서를 받지 않았어. 서류상 여전히 당신은 제 아내야. 그러니 진짜 당신이 누군지 알 권리가 있어!”

“알 필요 없어요!”

구아람은 숨이 가빠지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금 말끝마다 의무를 말씀하시는데, 너무 우습지 않아요? 3년 동안 당신은 남편의 의무를 다했나요? 왜 지금 왜 저에게 아내의 의무를 요구하는 거죠?”

“백소아, 당신이 말하지 않는다고, 내가 끝까지 모를 꺼라 생각하지 마!”

신경주는 갑자기 그녀를 품으로 끌어당겼다. 두 사람은 모두 화가 나서 숨을 헐떡였다.

그는 쉽게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닌데, 이 여자는 그의 인내심을 자꾸 테스트한다.

대단한 재주이군!

“그럼 가서 직접 확인해 보세요, 왜 저한테 물어요.”

구아람은 힘껏 그의 손을 뿌리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신경주는 그녀의 냉정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왠지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왜 그녀는 이렇게 변했을까?

설마 구윤의 취향으로 변하는 건가?

마음속에 남은 궁금증에 더해 할아버지도 그렇게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를 정말 모르겠다.

“사장님, 김은주 아가씨께서 발목을 삐었다고 아프다며 울고불고…… 지금 올라오시라고 하십니다.”

한준희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쫓아왔다.

갑자기 스포츠카 엔진의 굉음이 사방을 뒤흔들었다.

“아! 작은 사모님이시군요!”

신경주는 놀랐다. 뜻밖에도 스포츠카를 운전하고 있는 백소아, 아니 구아람이 선글라스로 얼굴 반쯤 가린 채 오만한 모습으로 그의 앞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운전하는 것은 최고의 한정판 스포츠카, 부가티 라 부아튀르 누아르였다.

“작은 사모님…… 부잣집 아가씨였군요!”

한준희는 눈을 똑바로 떴다.

신경주의 눈빛은 어두워졌다.

Related chapters

Latest chapter

DMCA.com Protection Status